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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사학자인 필자의 <<왕을 참하라>>는 조선통사이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통사와는 사뭇 다른 시각에 저술된 역사서이다. 그동안 조선사를 군주내지는 권력층의 시각에 바라봤다면 이번 시각은 조선민중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조선통사라는 점에서 신선한 충격을 준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왕을 참하라>>를 읽고 느끼는 감정은 통쾌함과 서글픔이라고 해야겠다. 우선 통쾌함이란 학창시절 역사 시간을 통해서 배웠고 각종 역사서를 통해서 알고 있었던 조선사에 대한 일종의 역사적 사유를 송두리채 흔들었다는 점(그렇다고 필자가 말하듯이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들이 신화나 소설은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과 그 어느 역사서에서 볼수 없는 필자만의 거침없는 언어선택(죽일놈의 왕, 견공지자제분등)나 역사서에는 일종의 금기로 여겨지는 필자의 감정이입등이 마치 읽는 이로 하여금 대리만족의 기쁨을 주고 있다. 물론 조선시대이래로 당당한 양반가의 자손이라고 하는 이들이 보기엔 무척 당혹스럽고 소위 말해서 열이 받게지만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는 정말 통쾌함을 감출수 없다. 두번째는 서글픔이다. 이점은 필자가 머리말에서도 밝혔듯이 조선사 500여년을 통틀어 27명의 군주중에 세종과 정조를 제외한 세월은 일반 민중에겐 암흑같은 시간이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역사를 인식하면서 알게 모르게 우리는 사고는 고정된 관념에서 역사를 보아 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어두운면보다는 부각되는 부분을 더 조명하게 되고, 군주와 사대부층을 중심으로 보는 역사적 관념이 거의 도식화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인식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한 일반민중에 대한 역사적 배려나 인식은 소홀히 될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이 이번 책을 읽고 나서 느껴지는 감정이 서글프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가지 측면에서 <<왕을 참하라>>는 책 제목처럼 상당한 반향을 불러 오리라 여겨진다. 조선의 역대 군주 27명에 대한 평가나 지배계층이었던 사대부들의 무능과 부패등 그들의 치부를 고스란이 들어내고 있고, 민란등을 통한 일반 백성들의 삶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필자의 집필의지를 알 수 있다. 또한 그런 점에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단지 몇가지 점에서 필자의 의도가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조선은 절대군주의 나라인 왕조국가이다. 군주를 중심으로 형성된 권력층 일부가 국가전체를 이끌어 가는 구조이다. 이는 조선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역대 왕조국가의 공통된 특징이다. 이러한 구도를 부정하고 소위 우리가 말하는 만인이 평등한 국가라는 개념은 최근래에 들어선 국가개념일 뿐인 것이다. 사회구조가 이러하다 보니 역사적인 서술방식에서 일반 백성의 반영비율을 떨어질수 밖에 없는 것이고 일부 권력층의 시각으로 역사를 서술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후대의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역사는 행간을 읽을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필자의 집필의도는 아마도 이 책을 대략 몇페이지 만 읽어봐도 알수 있을 만큼 그 의지가 대단히 강하다. 단지 아쉬운 점은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뉘양스(그러니까 군주을 비롯한 지배계층과 민중과의 관계 설정에서 너무 이분법적인 대립구도로 설정했다는 점)와 필자 개인의 감정이입이 책 전반에 걸쳐 너무 많이 실려있다는 점이다. 필자뿐만 아니라 조선사를 읽고 있노라면 입에서 좋은 소리나올 경우는 드물다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 만큼 안타까운 장면도 수없이 많고 필자의 표현처럼 입에서 개거품물고 싶은 장면 또한 많은 것이 조선사이다. 오죽하면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그 만큼 가정이라는 것이 개입되면 필자가 평가하는 세종이나 정조에게도 적지 않는 부분이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동안 역사학자들이 담지 못했던 면을 총대를 메고 만천한에 고한점에 대해선 높이 평가하고 싶다. 하지만 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자칫하면 오류의 함정에 빠질수도 있다는 점이 심히 걱정된다. 특히 역사에 대해 아직까지 제대로된 개념이 성립되지 않는 청소년이나 일반인들에게 오히려 편협된 시각의 역사관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가 역사를 바라보는 눈은 좌,우 두눈의 균형감각으로 통해서 봐야함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또한 우리가 역사를 통해 얻는 교훈은 과거의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 미래의 바탕이 되고함임을 잊이 말아야 할 것이다. 조선사는 필자의 말대로 수탈의 역사라고 해도 틀린것은 아니다. 왕조국가에서 당연히 민중은 수탈과 착취의 대상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사회적 구조인 것이다. 세계사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오래 유지되었으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민중들이 고생하였겠는가 이는 말안해도 알고 있는 사실인 것이다. 다만 이러한 조선사 또한 엄연한 우리의 역사라는 점에서 이제는 더이상 감출 필요 없는 성숙된 역사인식을 가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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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책을 볼때 머리말을 꼼꼼히 살펴 읽는 편은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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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아마도 토요일 오후일 것이다. 어린 마음에 달걀토스트를 만들어 먹어가며 즐겨본 대하드라마가 있다. 〈개국〉이란 드라마인데 배우 임동진씨가 태조 이성계 역을 맡은 작품이다.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철퇴를 맞아 피를 뿌리고, 최영장군이 칼을 맞고 쓰러지는 장면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쟁쟁한 인물들이 하나둘 피를 뿌리며 쓰러져갈 때마다 내 양 입가에 흐르는 토마토 케첩의 맛이 어딘가 섬찟하게 느껴졌다. 삼국시대의 을지문덕, 김유신, 계백은 물론, 여말선초의 정몽주, 최영, 이성계 등 평소 위인전을 통해 흠모하게 된 인물들끼리 치고 박고 싸우는 것이 어린 내 눈엔 의아하게 비춰졌다. 위인전이란 젖을 떼고 난 뒤엔, 정규 국사수업과 대학시절 한국사특강을 거쳐, 〈용의눈물〉, 〈한명회〉, 〈장희빈〉, 〈명성황후〉 같은 숱한 드라마로 조선사에 대한 상식을 비축해 갔다. 비록 공식적인 국사수업은 고등학교로 끝나지만, 해외 다른 나라 학생들과 비교해 보면 한국의 국사교육수준은 높은 편이라고 자평한 바 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 《왕을 참하라》의 저자 백지원은 이런 국사학습에 딴지를 건다. 교과서는 왜곡되고, 대하드라마는 소설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볼 때 나 또한 「허구인 연속극을 보면서 역사지식을 얻는다고 생각하는 딱한 민중들」 중 하나다. 저자의 사관은 사실주의에 가까운데, 애플비Appleby와 젠킨스Jenkins의 영향을 듬뿍 받은 나의 포스트모던한 사관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아마도 공상과학소설로 취급할 것 같다. 저자는 「불쌍한 백성들, 노비와 천민, 서얼 등의 시각에서」 다시 말해 약자의 편에서 조선사를 조망한, 「조선사에 관한, 지금까지 밝혀진 모든 자료가 수록된 『조선사 백과사전』」으로 자신의 책을 정위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이 책은 단지 무능한 왕과 사대부 같은 지배계급에 대한 비판적인 글이지, 결코 돌쇠나 개똥이, 마당쇠, 언년이 등 하위주체의 관점에서 본 역사서는 아니다. 우리나라 통사의 자료가 지배계급의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하위주체의 시선이란 저자가 비판한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 속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내용적 측면에서 보면, 알찬 백과사전적 성격을 지니지만 (가령 인물열전과 족보위조, 과거제도, 조선의 형벌 및 형구, 암행어사제도 같은 풍습이나 법제를 소개), 아쉽게도 책 말미에 색인이 없다.
책의 재미난 점은 저자의 문체다. 저자는 자기는 한문을 싫어한다고 말하면서도 한자를 좀 알아야 이해가능한 「수항단」, 「탐학」, 「민도」, 「단모」, 「용력」 같은 한자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장중한 문체의 다른 역사서와는 아주 상이하게 「이빨만 까는」, 「개 같은」 , 「등신」 등의 비속어와 가끔 삼천포로 비약하는 「필자 생각」을 막간 휴식처럼 사용한다. 백과사전풍의 지겨움을 방지하려는 저자의 글쓰기 전략인 듯하다. 지면을 아끼려고 그런지 한자어에는 한자를 병기하지 않아 때때로 뜻을 이해하기 위해 이삼초 멈춰야했다. 참고로 저자의 호가 「청장」인 걸 감안하면 고결함과 고아함을 추구하는 분일듯한데, 글의 속어적 문체를 떠올리면 구수한 청국장이 떠오른다. 모쪼록 농담이니 양해하시길.
책은 전체적으로 역대 군왕기와 인물열전의 형식을 취하지만, 저자가 힘을 기울인 문제의식은 조선의 배타적인 신분차별제도, 부패한 양반의 실상, 세종과 정조의 치적, 훈민정음창제의 비밀, 조일전쟁사의 진실이다. 저자의 전공이 전쟁사라 그런지, 조일전쟁 말고도 조청전쟁, 러일전쟁, 태평천국의 난에 관한 글도 비중을 두고 실었다. 책의 시작은 조선의 사대주의와 숭명배청의 소중화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재차 조선의 멸망원인을 언급하는데, 명청의 보호산 아래 경쟁국이 없었다는 점과 국시인 성리학의 폐단, 그리고 피 튀기는 당쟁을 든다. 각종 사화의 이름은 지금도 기억하기 어렵다. 조선 중기의 4대사화는 무오/갑자/기묘/을사이다. 조선 최대의 사화는 기축옥사로, 서인의 영수 정철이 동인을 핍박하기 위해 조작한 사건이다.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현숙경영/ 정순헌철고순. 한국사람이면 누구나 한두번쯤 외워본 조선왕조의 계보다. 모두 27명으로, 「조」자가 붙은 왕이 7명, 「종」자가 붙은 왕이 18명, 「군」자가 붙은 왕이 2명이다. 저자 백지원의 평가에 따르면, 그 중 훌륭한 명군이 2명(세종•정조), 밥값을 한 왕이 5명(광해군•효종•태종•세조•영조), 죽값을 한 왕이 2명(성종•숙종)에 불과하며, 나머지 18명의 왕들은 요절내지는 단기재위거나, 얼뜨기, 멍청이, 소인배, 반편, 모자라고 무능한 임금들이다. 저자가 꼽은 가장 무능한 왕은 조일전쟁 때의 선조와 조청전쟁 때의 인조. 저자는 늦어도 영정시대가 끝날 무렵에 조선은 망했어야 했고, 조선후기의 르네상스는 죽어가는 조선이 잠깐 회광반조하는 반짝기간이었다고 말한다. 조선의 숨통을 끊는데 큰 공을 세운 원흉들로, 부패한 안동 김씨들과 멍청한 고종 그리고 민비의 후원을 받은 썩어빠진 민씨 척족들을 꼽는다.
책을 통해 그 동안 맥을 잡지 못하던 당쟁과 사화에 대한 인식의 지도가 그려졌다. 동인, 서인, 남인, 북인, 탁남, 청남, 대북, 소북, 노론, 소론, 벽파, 시파 등에 대해 맥이 좀 잡힌다. 사림파의 붕당이 무협지의 구대문파보다 복잡하고 어의가 없어서 여기 내가 이해한 걸 정리해본다.
성종조에 부상하기 시작한 사림파는 주로 홍문관과 예문관 그리고 대간(사헌부와 사간원)에 자리잡고 언 론을 무기로 훈구파와 대치하였다. 사림파란 원래 「학문을 강론하고 도를 논하는 사람들」로, 그 기원은 고려말의 온건개혁파들과 신흥사대부들이었다. 훈구파가 몰락한 명종대를 거쳐 선조 때부터 사림파는 정권을 장악한다. 서인은 율곡 이이의 문인들이고, 북인들은 남명 조식과 화담 서경덕의 문인인 반면, 남인은 퇴계 이황의 문인들이었다. 사설교육기관인 서원과 지방의 공동체규약인 향약은 당쟁의 온상이 된다.
이황의 문인 김효원의 이조전랑 임명을 두고 이에 찬성하는 동인東人과 반대하는 서인西人(심의겸)으로 분열한다. 동인은 기축옥사를 계기로 서인에 대한 엄벌을 주장하는 강경파 북인北人(정인홍)과 관대한 처벌을 주장하는 온건파 남인南人(유성룡)으로 갈린다. 북인은 다시 홍여순의 대사헌 천거를 두고 대북大北과 소북小北으로 분열된다. 광해군 승계를 두고 대북(정인홍, 이이첨, 허균)은 지지하고 소북(유영경)은 반대했다. 대북은 광해군 정권의 핵심이었다가 인조반정으로 정권을 잡은 서인에 의해 완전히 와해된다. 인조반정은 서인(김류)이 주동하고 남인이 동조한 쿠데타다.
이후 남인은 유배중인 노론 송시열의 처형을 둘러싸고 강경파 청남清南(허목)과 온건파 탁남濁南(허적)으로 분화한다. 서인은 김익훈의 무고죄에 대해 비판적인 소론少論(윤증, 박세채)과 지지하는 노론老論(김석주, 송시열)으로 분열된다. 노론과 소론의 대립은 남녀의 옷차림과 제사절차와 방식 등에서도 서로 다를 정도로 극심했다. 노론은 다시 현실주의지향의 한당(김육)과 명분원칙지향의 산당(송시열)으로 대립하고, 이후 영조 때 사도세자의 죽음을 동정하는 시파時派와 당연시하는 벽파僻派(김종수)로 갈라진다. 시파는 남인 일부와 합세했기에 당시 영수는 남인 채제공이다. 조선 멸망 때까지 정권을 쥐락펴락한 서인의 노론벽파는 망국의 원흉으로 저자의 집중포화를 받는다.
책은 내가 상식으로 알고 있던 사건들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툭툭 던지는데, 가장 충격적인 것은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에 대한 평가이다. 아울러 두세번 넌지시 드러나는 저자의 박통에 대한 변호도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조선의 지배계급과 재벌에 대한 저자 자신의 비판정신과 모순되지 않는가 반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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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역사가 얼마나 큰 잘못인지, 또 후세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왕을 참하라’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본다. 그동안 역사서를 그렇게 많이 읽었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이처럼 통렬하고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듯이, 그야말로 속이 다 후련해졌던 이야기는 그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왕을 참하라를 통해 들여다 본 조선사회에 대한 전혀 다른 새로운 해석은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역사와 또 새로운 역사에 대해서 조선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역사란 인류가 만들어낸 유산이고, 어느 시대에서나 권력과 분쟁은 늘 존재해 왔다. 그리고 후손들에게 전해지는 역사는 그 시대에서 이긴 승자만이 쓸 수 있었던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어려서부터 우리의 역사에 대해 얼마나 관대하고 또 무지한 교육을 받으며 살아왔던 것인가에 대해 생각할수록 속이 편치가 않다. 살면서 여지껏 배워왔고, 또 내가 알고 있었던 역사는 역사가 아닌, 소설이었을까 물론 모든 역사가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대부분 지배층의 시각에서 서술되었던 일반적인 역사서와 이 책은 뭔가 확실히 다르다는 사실을 머리말에서부터 확실하게 느낄수 있다. 역사에 관한 딱딱하고 어려운 이야기가 아닌 친구들과 주고 받으며 이룰수 있는 대화의 내용처럼 조선의 역사를 너무 편하고, 자연스럽게 읽을수 있었기 때문에 역사서란 말만으로 지루하거나 재미없다는 편견이 있는 사람들이 읽어 보기에도 괜찮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처음 왕을 참하라라는 제목만 보고나서는 수많았던 조선의 왕들 가운데, 특히 몇 몇의 왕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 책은 잘못되었던 어떤 인물에 대한 분석과 이해를 돕는 책이 아니라, 조선의 역사 전체를 대다수 백성들의 편에서 보고 기록한 내용의 책이다. 조선사에 관한 모든 자료가 다 들어있다고 얘기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개인적으로 조선의 신분제도와 양반에 대해 좋지 않은 시선을 갖고 있었던 나에게는 특히나 반가웠던 책이기도 하다.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였고, 사대부란 곧 양반이었다. ‘불친서사’라 하여 양반은 자기 밭에 난 잡초 한 포기도 직접 뽑으면 안 되고, 꼭 사람을 불러 뽑아야 했으며,‘절기비사’라 하여 농업, 상업, 공업 등의 천한 일을 하면 절대로 안 되었다. 조선의 역사를 되돌아 보면 가장 잘못된 부분이라 생각되는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성리학으로 세뇌된 조선의 사대부들은 실천은 없었고, 오로지 명분만 내세웠으며 먹고 사는 일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조선의 천민과 서얼들에게 뭐라 따로 해줄 말도 떠오르지 않는다. 유능하고 능력있는 서얼들은 없어도 되는, 죽은 것처럼 지내야 했고, 천민들은 소 한마리의 값어치도 안되었던 사람들이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던 일이었는지... 조선이 멸망한 원인을 살펴보면 국시인 성리학의 폐단과 피 튀겼던 당쟁을 치르며 아까운 인재들이 참살되었고, 동양에서 유일한 강대국이었던 중국의 그늘 아래 500여 년을 편히 지내오는 동안 조선에는 경쟁국이 없었다. 한치 앞만을 보고 달려왔던 조선은 대외적으로 전혀 긴장을 모르고 지내왔기 때문에 이런 병폐가 쌓이고 쌓여서 조선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다. 조선은 개국부터 약 100여 년간 융성하다가 10대 연산군, 11대 중종대부터 쇠퇴를 시작했으며 이후 400년 동안을 중국의 속국이 되어 중국의 보호를 받으며 유지해 왔다. 그나마 가장 번성했던 4대 세종과 22대 정종의 시기와 17대 효종과 세종의 아버지인 3대 태종, 7대 세조, 21대 영조, 9대 성종등이 조선시대의 자부심을 키워준 인물로 기억되는 일이 감사할 따름이다. 이미 지나간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역사를 배우고 익히는 이유는 어떤 내용을 근거로 하든지 과거를 되돌아보며 미래에 대한 예측과 더 나은 준비를 할 수 있음이 아닐까 싶다.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바탕이 되어주는 역사에 대해 이번 기회를 통해 접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으로 재미있는 역사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준것 같다. 신선하고, 다소 충격적이긴 했지만 이 이야기들도 결국은 우리의 이야기이고, 역사이다. 왕으로 참하라를 읽으면서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본래의 취지를 잃지 않는다면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올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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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향기 가득한 도서관 책장에서 조선의 역사 관련 책들을 쭈욱 훑어 보고 있었다. 대개가 "조선의 역사.." 혹은 "조선사.."로 시작하는 제목들 사이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책이 있었다. "왕을 참하라!"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그 앞에 붉은 글씨로 조그맣게 쓰여져있는 "백성 편에서 본 조선통사"라는 글은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오직 다른이도 아닌 왕을 참하라는 글만 두 눈 가득 들어왔다. 다른이도 아니고 그 지엄하고 지엄한 왕이란 존재를 감히 "가두어라"도 아니고 최고의 형벌이라 할 수 있는 "참하라"라고 하다니. 책을 집어들도 이리저리 둘러보던 중에야 붉은 글씨로 쓰여있는 "백성 편에서 본 조선 통사"라는 문구가 보였다. 그때서야 늘 당하고만 살았던 백성의 입장에서는 뭐..충격적인 말은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때의 백성들이 왕을 우러러봤음을 생각하면 그리 당연한건 아닐지도 모르지만.
책은 상, 하 두 권으로 되어있으나 일단은 하 권 먼저 읽었다. 이미 상 권은 누군가가 빌려간 후였기에. 소설책은 당연하거니와 역사 관련 책들을 머리부분을 떼어놓고 중간부터 읽었던 적은 없었다. 흐름이 끊기는 듯하고, 이미 말라버린 풀로 무언가를 붙이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용을 쭈욱 보니 이야기식으로 되어있는 책인지라 하 권부터 봐도 별 무리가 없을 듯 했다. 무엇보다 이 발칙(?)한 제목의 책을 빨리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 권에서는 북벌을 꿈꾼 미남 군주 제 17대 효종부터 조선의 마지막 왕인 제 27대 왕 순종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왕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중간 중간 이해를 더하기 위함인 듯한 여러 인물들에 대한 설명이라든지, 청일 전쟁 등에 대해서도 풀어쓰고 있다.
책 속에서의 이야기하는 방식이 그저 놀랍고, 놀랍다. 문어체보다는 구어체로 쓰여졌다고는 하나 과연 역사서를 이런식으로 써도 되는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처음에는 작가의 이런식의 말투가 시원시원하니 마음에 들었었다. 제정신이 아닌듯한 행동에는 미친짓이라는 둥, 재수없는 행동에는 개XX라는 식으로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코 끝이 간질간질 하던 차에 힘차게 코를 풀어버린 기분이랄까?
그런데 점점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 수록 이상하게 기분이 나빠졌다. 너무나도 적나라한 말투로 역대 왕들을 비난하는 장면에서 욱하는 나를 보고는 속으로 어줍잖은 애국심이 발휘되는거냐며 나 스스로를 비웃기도 했다.
누군가는 적어도 한 사람, 아니 그 이상은 숨겨져 있거나 잘못 알려져 있는 역사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고 비난할 것은 하고, 칭찬할 것은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당연한거니까. 그러나 "과유불급"이라고 했다. 지나치면 아니 할만 못하는 것이다. 청장 백지원의 "왕을 참하라"는 이런 면에서 보면 조금 지나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명성황후를 빗댄 말에서 그 분을 "여우"라고 직접적으로 쓴 부분은 심히 거슬렸다. 일본이 우리나라의 왕비를 한 밤중 몰래, 처참하게 살해한 사건은 모두가 알고 있고, 변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때의 일을 일컬어 이를 준비했던 일본인들이 말하길 "여우사냥"이라고 한 것도 이제는 정말 유명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작가가 굳이 우리나라의 왕비를 그런식으로 표현했어야할까.
조선은 물론이고, 우리 역사를 통틀어 보면 "참하라"라고 할 만한 존재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1905년 을사조약을 맺을 당시 왕이 끝까지 "아니되오."를 외쳤음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 5적이 아닐까. 책 속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왕들의 경우 비록 여러 면에서 위태위태했고, 부족했던 부분들이 있기는 했어도 적어도 나라를 팔아먹을 생각은 하지 않았으니까.
거침없는 표현에 속으로 욱욱하고 올라오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이러한 역사서는 처음이니 끝까지 읽어보자는 생각으로 끝까지 읽어보았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어렵게 느끼곤하는 "역사"라는 것을 보다 가깝게, 보다 솔직하게 표현하다보니 어느 정도는 위험(?)한 표현이 쓰여지긴 한 것 같다. 그렇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어렵게 느끼곤하는 사람들에겐 보다 쉽게(?) 역사를 접할 수 있는 책이 되지 않을까 한다. 다만, 어느 정도 글을 읽었을 때 본인 나름의 판단을 할 수 있는 분들이 읽어야하지 않을까 한다. 사족이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문득 든 생각이 이 책은 아마 절대로 청소년 권장도서는 되지 못하겠구나..였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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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읽었던 책인데, 뒤늦게나마 후기를 올린다.
저자는 자신이 정식으로 역사를 배운 적이 없지만, 그래도 역사학자라고 주장한다. 재야학자...
그런데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소위 재야학자라는 사람들이 말하는 주장을 엄밀히 파헤치면 거의 믿을바가 못 된다.
위서가 분명한 환단고기를 붙들고 옛날 고조선이 아시아와 중동까지 모두 지배했다고 헛소리나 해대는 걸 보면 말이다.
인터넷상에서는 그런 과대망상+국수주의 성향의 사람들을 가리켜 환빠라고 조롱하는 일이 이미 대세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저자인 백지원은?
환빠는 아니지만 그와 대칭점에 서 있다.
한국사 비하+혐오+경멸...
네티즌들은 그런 성향의 사람을 가리켜 국까, 또는 한까라고 부른다.
백지원은 그런 부류에 속한다.
<왕을 참하라>나 <조일전쟁>만 봐도 알 수 있다.
대체적으로 한국인들이 자랑스럽거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요소들은 모두 까고 욕한다. 충무공 이순신은 명량 해전 빼고는 제대로 싸워 이긴 적이 없었고, 조선은 아프리카만도 못한 미개한 나라였다는 식으로 말이다.
헌데 정말 우스운 건, 명색이 조선사를 다루면서 조선사 연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왕조실록을 이 사람은 철저히 무시한다.
조선왕조실록이 당파의 입맛에 맞춰 조작되었기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조선왕조실록과 그다지 다를바 없는 승정원일기의 내용은 철썩같이 믿는다.
전두환이 경제 살렸다고 쿠데타 일으킨 잘못이 덮어지지는 않는다고 하더니, 똑같이 쿠데타 일으킨 박정희는 열렬히 찬양하고, 민주주의 사회인 미국에 살면서 시위하는 놈들은 몽땅 총을 쏴서라도 제압해야 한다는 모순투성이 발언을 하면서도 전혀 이상하다고 못 느끼는 사람이다.
대체 저자는 조선왕조실록도 보지 않았으면서 무슨 사료나 자료를 보고 책을 썼을까?
설마, 2ch이나 앤조이재팬의 혐한 일본인들에게 자료를 얻었을까?
아닌게 아니라 그들이 보고 딱 좋아할 내용이다.
어쨌든 조선과 한국사를 욕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리는 국까들은 이 책을 매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나를 포함한 양식있는 네티즌들은 그렇지 못하겠지만...
그나저나 이 사람은 쓰는 책마다 노골적인 육두문자와 욕지거리를 꼭 집어넣는다.
욕이 없이는 책을 쓸 수 없나보다.
이 사람이 낸 최신작 <고려왕조실록>도 한 번 보고 와서 쓴소리 좀 해야겠다.
추신: 영국 드라마 <멀린> 1화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문제는 바로 당신의 증오와 무지입니다!"
저자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방향과 원인을 모를 당신의 증오와 한국사를 바라보는 터무니없는 무지함부터 시원하게 베어내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