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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재 공화국.. 제목이 강렬하여 읽어보았다.
아이는 저마다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성적으로만 아이를 평가하고 아이가 못하는 점에 집중하는 우리의 교육 시스템을 비판하고 있는 책이다. 그리고 이를 옆에서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부모의 무지함과 우매한 교사들을 꾸짖고 있다.
보는 내내 가슴이 뜨끔거렸다. 나 역시 산만하고 숙제도 안 해오는 아이는 문제아로 치부해버리고 관심을 아예 두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던 것이다. 그리고 열심히 수업을 듣고 착실히 공부하는 아이만이 우수 인자이며 나중에 성공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그것이 아니였음을.. 내가 여태까지 받은 획일적인 낙후된 교육으로 그러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으로 지금 이순간도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재능을 잃고 낙오되고 있는지도 말이다.
어쩌면 나도 그러한 교육을 받은 한 사람으로서.. 내가 가지고 있던 재능이 파괴되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그저 선생님에게 칭찬받으며 우쭐했던 나의 과거가 너무 어리석게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어렸을 땐 난 잘하는 것이 많았는데..
커서 보니 너 특기가 뭐니라는 질문에 상당히 난감해지곤 한다.
이것 역시 뒤틀린 교육 시스템 탓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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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아이를 가졌을때의 흥분을 아직도 기억한다. 자녀 넷을 모두 영재로 키웠다는 텔레비전에서 본 미국의 어떤 엄마처럼 나도 태교를 열심히 해서 영재로 키워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그래서 매일 뱃속의 아이에게 말도 걸고, 동화책도 읽어주고, 동요도 불러주고 했다. 누군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태어난 후 얼마되지 않아서 고열로 입원하게 되었다. 미련하게도 그제야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았다.
우연히 서점에서 구입한 <엄마 학교>를 읽고 아이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욕심, 조급함을 버리고 아이의 성장발달에 맞춰 적기 교육을 해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확고한 중심을 잡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가끔 내가 아이의 지적호기심을 다 채워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아이의 재능을 어떻게 발견하고 부모로서 어떻게 잘 다듬어 나가야 할지에 대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내 기대와는 달리 현 교육체제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 책이다. 부모가 아이의 교육에 대해 많은 돈을 쏟아붙는지만 교육의 질은 그에 비례하지 않음을 지적하며 어떻게 해야 학교에서 아이의 재능을 죽이지 않고 잘 발전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누가 우리 아이의 재능을 죽이는가 무지하고 만성피로에 지친 부모일수도 있고, 변화를 두려워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무능력한 교사 일수도 있다. 영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어떻게 교육시켜야 할지 준비가 덜된 학교 탓일수도 있다. 제대로만 성장했다면 노벨상을 탔었지도 모를 영재 프란츠가 범죄자가 된 사례만 보더라도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낀다.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시기가 다가오니 시설좋은 학교 주변으로 이사를 해야 할지 소문난 학원들이 많은 곳으로 이사를 해야할지 고민스러워진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훌륭한 교사를 만나는 것이다. 좋은 교사는 학생이 자신의 재능을 통해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학생이 지닌 호기심과 의문, 야심에 불을 붙인다. 문제는 교사의 자격을 갖춘 사람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런 자질을 갖춘 사람중 일부만이 교사를 직업으로 선택한다는 것이다.
훌륭한 의사가 많은 이유는 물론 수입이 많은 탓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기 때문이다.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되는데 교사가 존경받는 사회가 된다면 아이들의 재능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좋은 교사들이 학교에 더욱 많아져서 믿고 내아이들을 맡길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목표가 너무 높아 이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목표가 너무 낮아서 지나치게 쉽게 이루어 내는 것이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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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읽기전에 우선 자식을 가진 부모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왜 그 점을 이토록 강조하려고 하는것인가? 내 자식을 떠나서 그 아이가 누구의 자식이라는 점에 매달리지 않고 일단 아이들은 우리나라를 떠메고 나가야 할 우리 다음에 후세대들이다. 이들에게 훌륭한 교육을 시켜서 인재로 키우기까지는 정말 많은 노력이 깃들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내가 낳아 키운 자식이 더 잘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과 입장에서 그리고 그 아이의 앞날에 대해서 책임을 가진 부모라는 점에서 이 책은 많은것을 생각하게 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교육이라는 두 글자를 인식하게 하고 그에 대한 연구를 하게 한다. 훌륭한 자식 뒤에는 훌륭한 어머니가 있고 훌륭한 학생뒤에는 그를 가르친 훌륭한 선생님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 눈먼 사랑으로 한명이나 두명으로 구성된 자녀를 가진 부모들은 두꺼운 껍질속에 번데기마냥 너무 아이들을 싸고 돌고 과잉보호해주려고 한다. 주변에서 자주 보는 현상이라 처음엔 깜짝 놀랬지만 지금은 말을 해주다 못해 내가 지친 사례도 있다. 사십대 중반에 7살짜리 딸애를 가진 부모이다. 우연히 어린이집에서 진행하는 가을운동회에 갔다가 목격하게 된 일인데 충격 그 자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딸애가 자기 마음에 안든다고 하여 손에 들고 있던 초콜렛을 모두 엄마 낯에 던지더니 엄마의 뺨을 (철썩~ ) 소리가 나게 때리는것이 아닌가... 그것도 주변에 많은 학부모들이 보는 앞에서... 그런데 거기에 대응하는 그 여자애의 어머니의 태도가 나를 더욱 놀라게 했다. 나중에 상담하면서 들은 이야기이지만 늦게 본 아이라서 정말 애지중지 키워서 그렇다고 말했다. 사실은 본인도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하나밖에 없는 딸이라서 욕도 못하고 제 멋대로 하게 냅두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교육은 가정에서 60%의 비중을 차지한다. 부모가 아이들의 거울이 되어 훌륭하고 멋진 모습을 보여주면 그대로 따라하는것이 아이들이다. 보통 아이들이 밖에 나와서 하는 말이나 행동들을 듣고 보느라면 그 집안 환경이 어떤지를 대충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그 다음으로 나머지 40%는 학교에서의 교육이 비중을 차지한다. 책속에서 훌륭한 교사를 따돌리는 학교에 대한 내용이 적혀있다. 말 그대로 쉬는날도 놀지 않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학생 개개인의 재능에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고 기울여주는 교사... 학생의 부모와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그들이 아이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이며 잘못된 인식을 바꿔주는 교사, 동료 교사와 학교의 개선 사항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교장에게 건의하는 교사, 이런 교사들이 말 그대로 훌륭한 교사인것이다. 그런데 이런 교사들을 따돌리고 왕따시키는 학교가 있다니... 참으로 냉혹한 현실앞에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례이다. 그들은 조직의 평화를 깨는 방해꾼취급을 받고 동료 교사들에게 소외당하며, 선배 교사들에게 그렇게 해봤자 아무 소용 없다며, 장래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을뿐이다. 그래서 교사들은 서서히 지쳐가고 초심에 부풀었던 꿈을 버리고 환경에 맞는, 분위기에 맞게 대충 일하고 넘어가는 심한 경향이 서서히 자리잡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소리없이 살아가는 인생이 되버리고 마는 것이다. 예전같으면 숙제 안해와도 각목들고 뚜드려 패서라도 공부를 시키고 해도 학부모들은 신경을 거의 안썼다. 왜 학교에서 엄한 선생님들을 믿고 내 자식을 맡겼으니까.. 그런데 오늘날은 전혀 다른 환경이 벌어진다. 진심으로 마음아파서 공부 안하는 애들을 바로잡으려고 몇대 쳐도 학교가 난장판이 된다. 매 맞은 학생 학부모들은 학교에 와서 떠들썩 거리면서 교장을 찾고 교사를 찾고 신고한다 어쩐다 난리 부르스다. 정말로 이해하기 힘든 점이다. 그렇게 대단하고 위대한 자식을 가진 부모이면 그냥 학교보내지말고 스스로 가르쳐도 될 것을 굳이 학교에 보내는가... 그렇다면 그런 학부모들에게 나는 한가지 질문을 하고 싶다. 대충 대충 수업을 에떼우며 학생과 교사에게 서로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조건으로 강요도 하지 않고 압박도 받지 않는 편안한 환경속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우수한 성적을 원하는 대기업에 자식이 진출하기를 바라는가? 공부 안하면 매 맞으면서라도 하게 하고 알때까지 배워줘야 하는 곳이 학교가 아닌가? 우리 부모님들이 학교다닐때에는 종아리가 시퍼렇게 매맞고 멍들어와도 부모님들이 학교에 쳐들어가서 난리치고 고함치고 그런적은 없다. 부모의 보호막속에서 말 그대로 온실속에 화초처럼 고이 자라다가 험난한 세상밖에 어떻게 내보내며 조금만 어렵고 힘들어도 부모의 도움을 청하는 쓸모없는 자식으로 키우길 바라지는 않을것이다. 여기서 잠간, 한가지 사례를 들려고 한다. 얼마전에 중국어 강의하러 간적이 있다. 그런데 학생이 겨우 두 명뿐이다. 기타 학원에 여러명이 갔고 그날은 부모님들이 일찍 데리러 와서 모두 없는 상태라 전시간에 배운것을 질문하고 끝내려고 했다. 그날은 기분도 좋고 마음도 가볍고 업된 상쾌한 마음을 가지고 질문을 하고 대답하는 학생의 발음을 바로 잡아주기도 하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다른 애는 도무지 대답을 안한다. 그래서 뭐 토닥거리는 수준으로 ... 엉덩이를 툭 쳤더니 각목으로 맞은 마냥 펑펑 울기시작했다. 급황당 ~ 어찌 해야 할지 무척 난감해서 왜 우냐고 질문을 했더니 내가 때려서 운다고 대답을 한다 ~ 이런 억울할데라고... 아주 작은 일같지만 이런 상황에 처한 교사들이 한두명이 아닐것 같다는 생각에 참 교육부문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고층을 조금은 이해할것 같기도 하다. 뭐.. 정말 보다듬어주면서 겨우 달래긴 했지만 마음이 안좋왔던것 만은 사실이다. 그래서 도서 <영재공화국>이라는 도서가 더욱 마음에 와 닿는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낳은 자식, 그리고 내가 가르치는 학생, 이 모든것을 감당하고 준수해야 할 과정에서 고층들을 그대로 담아낸듯한 도서인것같아서 누구에게라도 권하고 싶은 심정이다. 이 책을 읽으면 아마도 내가 왜 학교가서 그 난리를 쳣을까? 하고 한번쯤은 반성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지도 않을까... 자식은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귀하다. 그런 자식이기에 더욱 엄하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눈먼 사랑으로 감싸주다가 그 자식에게 매를 맞으며 한평생 고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측은하기까지 하다. 부모들은 가정환경에 신경을 써야 하고 자식이 가정환경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하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가정교육이 60%라고 나는 이야기 하고 싶고 강조하고 싶다. 내 자식을 훌륭한 교사에게 맏기고 싶은 부모님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추천하고 싶다. 그만큼 부모가 하는 행동이나 말에 따라서 그 자식의 인격이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부모는 자식의 거울인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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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재공화국
누구에게나 소망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남들보다 똑똑하고 남들보다 뛰어난 삶을 살고 싶은 욕망이다. 조금은 우스울수도 있지만 우리는 남보다 뛰어나다는 착각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알수 있는것은 우리는 평범하다는 것이다. 평범한것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평범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욕심만 커지게 된다면 그것은 또 다른 집착을 부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에게라는 의미보다는 한 세대를 내려가서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기대에서 좀 더 많이 표출 된다고 하겠다. 이 대한민국에서 살아남으려면 공부밖에 없다는 인식이 강한데 그런 고정관념들이 우리 사회를 영재공화국으로 만들어 버린것이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안드레아스 잘허의 영재공화국은 우리에게 또 다른 시선에서의 경종이 될것이다.
먼저 저자를 소개하자면 독일의 정치가이며 영재교육의 선구자라 하겠다. 세계적 철학자 칼 포머와 함께 오스트리아에 최초의 영재학교 칼포퍼 학교를 설립하고 학교 교육 시스템의 문제를 연구하고 많은 영재들과 함께 이상적인 교육을 위해 연구하고 있는 열정의 교육자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획일화된 독일 공교육의 문제점과 영재를 문제아로 만들어 버리는 각종 환경요인에 대해 이야기 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을 보면서 느낀것은 독일 교육이 우리나라 교육과 너무 흡사하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 책의 구성은 모두 12장으로 구성이 되어져 있지만 크게 세부분정도로 구분 지을수 있다.
첫번째 부분은 교육시스템의 부재를 이야기 하고 있다. 지금과 50년전의 우리의 학교를 비교해 보라고 이야기 한다. 따닥따닥 붙은 교실에서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전국의 거의 모든 학생들이 똑같은 책에 똑같은 수업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획일화된 공교육에 익숙해져 버린 우리 자신을 뒤 돌아 보라고 말하고 있다. 약점만 물고 늘어지는 교육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고 한다. 성적이 잘 나오던 과목도 점수가 미달인 과목 보충에 버려져야 하는 이 교육시스템의 문제를 정확하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교사들에 대한 존중감과 그에 맞는 급여정책의 결여이다. 과연 교사들이 의사나 변호사만큼의 급여와 사회에서의 위치가 걸맞는가 하는 것이다. 교육을 최우선시 하는 사회라면 교사에 대한 대우도 최고의 대우로 해주어야 된다는 것이 저자의 이야기이다.
두번째로는 교사의 자질과 부모의 역할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인성과 실력없는 교사에 대해 무차별하게 비판을 하고 있다. 심지어 자질 없는 교사는 수 많은 아이들의 재능을 죽이는 중추역할을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곳에서 굉장한 딜레마가 찾아 온다고 생각한다. 교사를 멘토인 스승으로 생각을 해야 할지, 아니면 지식 전달만 하는 매개체로 생각을 해야 될지. 요즘은 후자가 더 강한 편이라고 말하고 싶다. 현 교사들도 인생의 멘토로서의 교육자이기 보다는 보다 안정된 직장에 다니고 있는 월급쟁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전자든 후자든 우리의 미래는 교사들에게 달려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교사의 사고방식과 자질 중요성을 말하고 교사들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뛰어난 영재와 가장 형편없는 범죄자의 유형은 부모들에게서 나온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부모라면 당신들의 아이에 대한 사랑의 크기가 아이를 영재로 또는 가장 극악한 범죄자로 만들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것이다. 부모된 입장에서 정말 무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자신이 교사이거나 부모된 입장이라면 이 책을 꼭 한번 읽어보라 하고 싶다.
세번째로는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교육의 방향성의 제시이다. 교육 당국은 교사와 학생들에게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며 획일화된 교육방식을 틀을 버리고 좀 더 다양하고 발전성 있는 교육방식을 연구, 개발해야 될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사회에서 교사를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가 필연적일 것이며 교사 또한 전인적인 멘토정신 가지고 교육에 임해야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들이 내 아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지 파악을 해야 하며, 아이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버리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안드레아스 잘허는 좋은친구와 같은 교사와 부모가 좋은 영재를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획일화 되고 지식만 가르치는 교육에서 자라는 우리 아이들이 아니라, 재미가 있고, 하고 싶은 것을 할수 있으며, 친구와 같은 교사와 부모들이 곁에 있어주는 그런 이상적인 교육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부모된 입장에서 느끼고 깨달은 점이 많은 책이었다. 이 나라의 교육방식과 교사에 대한 불신, 부모로써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면 꼭 이 책을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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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재의 사전적 의미는 아주 뛰어난 사람을 지칭한다. 이만큼 영재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능력을 상회하는 능력이다. 인간의 능력은 무한하다는 전제를 두고 판단한다면 누구에게나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영재로서의 특성과 자질은 누구에게나 가질 수 없는 법이다. 이러한 유한특정성은 상대적으로 평범한 인간을 영재로 둔갑하려는 착각 내지는 환상에 사로잡히게 한다.
나의 아이가 남들보다 뛰어난 것을 마다할 부모가 있을까? 제 나이 또래를 훌쩍 뛰어넘는 탁월한 재능과 비범한 능력을 보인다면 어찌 방치할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 사회가 아이의 재능에 관대하였는지, 제대로 된 교육적 토양을 배양하여 주었는지, 교육행정의 다양한 기회의 제공 및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지, 보호자로서의 제 역할을 다했는지에 대해 반드시 묻고 따져 보아야 할 문제라 할 것이다.
이 책 <영재공화국>은 독일의 정치학자이자 교육학자인 안드레아스 잘허가 자국 내 무너지는 공교육환경을 냉철한 시각으로 분석하고, 구태의연한 교육행정으로 인하여 사장되어 버리는 아이의 재능을 바로 잡아 줄 수 있는 토양과 새로운 대안환경을 제시하고 나섰다. 저자는 인접한 국가인 오스트리아의 사례와 교육선진국인 싱가포르, 창의성의 나라 미국의 교육환경을 사례로 들어 신랄하게 비판의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다.
교육은 만년지대계라 한다. 또한 교육은 올바른 자의식을 배양하고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의무와 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전인교육이 목표가 된다. 더불어 아이의 특성과 적성에 따라 타고난 재능을 일구고 모자란 분야를 보완하는 것이 우선적 과제가 된다. 하지만 교육적 목표와 현실은 일정한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아이의 참된 재능이 무엇인지를 바라보는 학교, 교사, 부모의 제 역할이 밑바탕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것이 작금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사상적 기저에도 아이의 숨은 재능을 발굴하는 것의 배경으로 적성과 능력에 부합하는 교육적 환경조성이 보다 시급함을 내세운다. 그가 말하는 영재의 관념이 기존의 우리 사회가 바라본 것과 다르지 않음에 놀라게 한다. 유아기적 신동이 청소년기를 지나 성년이 되면 그저 평범한 보통 사람이 되어 버리는 현실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국가적 문제에 방증이라 하겠다.
무엇보다 공교육의 붕괴현상은 교사에 대한 위상 실추와 공교육의 획일화와 불신감을 조장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찾는다. 이러한 현상은 국내에서 또한 얼마만큼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었는지는 누구나 인식하고 공감하는 문제다. 문제의 왜곡 분출은 사교육시장으로 몰리게 하고 양극화에 따른 교육기회의 균점마저 형평성을 잃게 만들었다. “이제 개천에서 용 난다. “는 말은 잊혀진지 오래다.
저자가 바라 본 독일의 교육시스템의 심각성은 교사의 자질과 정부의 교사육성부재에 일차적 원인을 묻는다. 무능력한 교사의 순환적 퇴출구조가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져야 교육이 살고 아이의 재능이 돋보인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더 나아가 진정한 교육자의 육성에 정부가 나서서 바로잡아야 할 것이며 현재의 관료주의적 사고로 인한 경직화된 교육정책의 후진성향을 통렬하게 되짚었다.
교사의 책임이 그 어느 누구보다 크다는 것은 통감하지만 교사의 처우문제에 대해서는 잘못된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재단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저자의 주장은 난해한 문제를 오롯이 교사에게만 전가하려는 미루기의 전형이다. 교사의 질적 개선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아이의 교육적 혜택이 군더더기 행정잡무에 묻혀 사라질 수밖에 없음은 당연지사라 하겠다. 교사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보장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아이의 재능은 기성세대 모두의 책임이며 인식의 전환이 우선되어야 한다. 부모는 교사의 책임을 묻기 이전에 부모로서의 자질과 아이에 대한 애착관계가 올바르게 형성되어야 하는지 살펴야 한다. 이러한 건전한 교육적 토양이 대내외적으로 배양되고 정부의 일관되고 창의성을 살리는 교육정책이 흔들림 없이 시행된다면 공교육의 부활은 힘든 일이 아니라 할 것이다. 아이의 재능은 저절로 발현되는 것이 아닌 관심을 통해 발견하고 개발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이제라도 우리는 교육환경에 대한 기존의 시스템과 패러다임을 변환하고 조급함에서 벗어나 아이의 잠재된 재능을 살리는 것에 주력하여야 한다. 조기교육을 통한 아이의 재능을 발굴하는 것 또한 중요하나 부모의 눈높이로 아이를 재단하려 하는 시대착오적 행위를 중단하여야 한다. 이는 잠재했던 능력 또한 매몰되고 상실되어 버릴지 모를 일이다. 아이와의 열린 대화를 통한 조력자로서의 기능을 다하고 상호소통의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며 사회적 파수꾼인 인식 있는 교사로서의 자리매김을 다 할 때 일그러진 교육현장을 개선할 수 희망의 불꽃을 피울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듯 불편한 교육계에 대한 자성의 시간을 가져야 할 때이다.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 아이의 눈을 통해 아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찾고 더불어 학교와 교사를 통한 내적인 자기변신을 통해 잃어버린 열정과 주인의식 및 상호간 가치인정의 온전한 자리매김이 절실히 필요한 때라 하겠다. 이러한 상호작용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실추한 교권의 확립과 절로 흥겨워지는 신명나는 학교로 거듭날 것이다.
독일은 동서독 통합을 원만하게 이루어 모두가 부러워하는 경제대국이며 선진국이다. 이러한 나라의 저자가 교육계의 비현실적 관행과 만연한 교육의식에 대하여 펜을 든 것은 다름 아닌 교육의 성공이 곧 나라의 흥망성쇠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비단 저자가 독일사회의 성찰과 각성을 촉구하는 계기로 이 글을 써 내러 갔다 할지라도 우리의 현재와 다르지 않은 것은 더 이상 변화의 물결을 막을 수 없음에 있다. 저자를 통해 교육계의 현실을 성찰하고 각성할 수 있는 가늠좌가 될 여지가 충분한 책이다.
미래 사회를 짊어지고 갈 아이들에게 이분법적 편 가름으로 아이들을 나누는 어리석음을 그치지 않는다면 하향평준화를 통한 질적 저하의 위기는 마치 내리막길을 걷는 것처럼 불을 보듯 뻔하다. 정보화시대에 역행하는 산업화시대의 유물인 허울 좋은 학교를 벗어 버리고 생동감 있고 활기찬 교육환경이 조성되기를 기원해 본다.
훌륭한 교사는 예전이나 앞으로나 2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해요. 따뜻한 마음(감성)과 활발하게 돌아가는 두뇌(이성), 다시 말해 다정함과 엄격함이죠. 어느 것 하나 빠져선 안 돼요. 저마다 이를 요구하는 순간이 있거든요.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것이 필요한 적재적소의 순간을 알려줘요. 언제 부드러움을, 언제 엄격함을 보여야 하는지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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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재 공화국을 읽고
“ 교사에게는 한 명의 천재 보다 열 명의 바보를 가르치는 게 훨씬 수월하다. 왜냐하면 교사의 과제는 뛰어난 우수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암기를 잘하는 사람, 계산을 잘하는 사람, 세상에 순응하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독일의 소설가인 헤르만 헤세의 글을 인용하면서 헤세 당시의 학교나 지금의 학교 모습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거의 대부분의 학교 교육이 아이들 각자의 독특한 재능과 창조적인 잠재력을 빼앗는 교육을 함으로써 오히려 각개 분야에서 다양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이 방해꾼으로 몰려 버리게 되어 아이들의 재능을 파괴하게 된다고 역설한다.
서로 다른 아이들을 똑같이 다루는 행위야 말로 아이들을 심각한 차별로 다루는 행위이다. 각자의 장점과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학교 교육이 개혁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의 숨겨진 재능을 훌륭하게 키워 줄 우수한 교사에게 배울 수 있도록 교사의 처우와 학교 교육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부모 역시도 자신의 개인적인 편협한 가치 기준으로 아이의 추상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나 예술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아이가 부모의 사고방식을 빠른 속도로 흡수하여 자신에게 숨겨진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묻어 버리고 본의 아니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에게 숨겨진 보물인 잠재력과 재능을 스스로 사장 시키게 된다.
따라서 부모는 아이의 재능을 개발 시켜 주기 위해 최소한 3가지를 유념해야 한다.
1) 지식습득 ; 자녀가 가진 재능과 관련된 지식이나 이해가 부족한 부모는 자녀의 재능을 발견하지도 못하고 개발시키지도 못할 것이며, 혹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자녀에게 강요한다면 그것도 문제가 됨으로 아이의 재능은 전문가의 객관적인 판단에 맡기는 것이 필요하다.
2) 동기 부여 ; 부모가 아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격려한다면 아이 스스로 자신의 재능을 키워 한 명의 전문가로 거듭나는 것이 훨씬 쉬워질 것이다. 특히 사춘기의 자녀에게 부모의 적절한 동기부여와 지지는 아주 중요하다.
3) 집중 ; 특정한 분야에 집중적이고 치밀한 몰입 없이 장기적으로 뛰어난 성과를 가져오기란 불가능하다. 이 외에도 부모는 자녀에게 호기심 자극과 정서적 안정 제공, 인내심 향상 그리고 성취감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여야 한다.
이 책의 부제는 ‘누가 우리 아이의 재능을 죽이는가?’이다. 학교 교육 구조의 문제, 부모의 문제, 교사의 문제, 교사의 처우 문제.... 아이들의 재능과 잠재력을 개발시켜주는 문제는 도처에 수많은 불가능한 현실적 문제를 안고 있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우리의 가장 큰 적이 어디에 있는가 묻고 있다. 그것은 바로 제10장의 제목처럼 < 가장 큰 적은 바로 우리 마음속에 있다. > 고 말한다.
‘ 가장 큰 적은 항상 우리 마음속에 있다. 그리고 위대한 영웅, 역시 그 내면에는 적의 모습을 품고 있다.’
재능 있는 아이의 적은 누구인가? 아이를 돌볼 능력이 없어 아이가 가진 재능을 남에게 떠넘기려는 안이한 부모인가? 아니면 긍정적인 경쟁 관계와 사회와의 소통이 단절된 우리의 학교인가? 전인적 교육의 안목을 가지고 아이의 개별적 재능을 개발시키지 못하는 교사인가? 가정과 학교 교육의 구조적이며 총체적인 문제인가?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지 말라. 사실은 모든 책임은 이 글을 읽는 우리 각자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
이제 우리는 모두 재능 있는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 주어야 한다.
그들이 자신이 가진 특별한 재능에 집중 할 수 있도록 돕고, 적과 대치할 때 옆에서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그들 자신만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지지해 주어야 한다. 그가 넘어지면 다시 일으켜 주고 그가 좌절하면 희망을 주며,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가 너무 빨리 성공의 자리에 오른다면 성공의 이면에 존재하는 실패와 좌절의 순간을 걱정해 주어야 한다.
이 글을 읽는 이가 부모이든지, 교사이든지, 곁에서 지켜보는 이웃이든지 그 누구라도 누구나 재능 있는 아이의 친구가 될 수 있다. 친구란 그가 가진 재능이라는 미지의 세계에서 아직 개발되지 않은 대륙을 발견할 수 있도록 그에게 힘을 주는 사람이다.
미래의 학교를 이끌어 가는 공통적인 요소는 3가지인데 첫째는 이 일에 대한 뜨거운 열정,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지치지 않는 노력, 그리고 미래에 대한 끊임없는 투자이다. 여기는 절대로 지름길이 없으며 마법의 성공비법도 없다. 깨달은 사람이 누구나 이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저는 영재 교육 현장에서 홈스쿨링의 방법을 선택하여 지금 이 일을 시작해 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책을 통해 영재 교육, 전인적 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용기와 도전을 받았다.
나 한 사람의 무한한 책임의식, 그것은 무거운 중압감만이 아니라 황홀한 미래 꿈을 이루는 행복한 선택으로 나에게 육박해 온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실천할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의 결단이리라. 타고난 아이들의 재능을 발견하고 이를 넉넉히 지지하고 격려하고 일깨워 주고 개발 시켜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하여 무한한 소망과 꿈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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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오스트리아 최초의 영재학교를 세운 ‘안드레아스 잘허’의 교육 이론서이다. 비교적 경제적으로 안정된 나라들이 한 해에 막강한 양의 예산을 교육에 쏟아 부으면서도 크게 교육적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교육의 문제점을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의 배경인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의 학생들의 상황, 교사의 지위나 신분, 교원 노조 등의 실태와 문제점들은 우리나라의 상황과 깜짝 놀랄 정도로 비슷해서 이 사람이 한국에 와서 장학을 하고 간 것이 아닐지 책머리를 다시 읽어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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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교육을 받는 21세기 아이들 이대목을 보는 순간 우리나라의 교육현실 같았다 콩나물 시루같았던 교실환경은 조금씩 바뀌고 있지만 시스템이나 아이들을 대하는 교사의 수준이나 지식은 여전히 똑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공교육이 살아야 교육이 산다고 매년 주장하지만 그것이 현실에 반영 되기까지는 너무나 많은 장벽이 가로막고 있어 그단계로 갈수있을 까하는 의문이 든다 . 얼마전 일제교사를 통한 선생님들의 해직과 일제고사 성적을 조작한 학교의 뉴스를 대하면 코미디극의 한부분을 보는 것 같다 교사들의 반대하는 일제교사를 시행하는 정부나 그것으로 인해 정확한 참고자료도 되지않게 조작하는 학교를 보면 우리교육 사회는 아직도 구한말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회사 직원한분이 초등학생의 학군을 애기하면서 남양주에 집을 샀지만 막상 가려고 하니 아이들의 학교가 신경이 쓰이고 또 같은 학교 학부모들이 다들 이사를 간다고 하니 학군좋은 대치동으로 이사를 가느냐 식으로 물어보니 더욱더 자기 아이에게 미안하고 해서 집을 전세로 내놓거나 손해를 보더라도 그냥 서울권에 있어야 겟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씁쓸함을 느낀다 내가 초등학교 때랑 너무 다른 현실 그때는 놀이터 문화가 있었는데 요즘 아이들의 현실은 교육시설은 좋아지고 있으나 교육체계는 점점더 안좋아져서 과거로 되돌아 가는 것 같다 초등학교때 벌써 대학갈 걱정을 하면서 영어학원이나 특수과외을 받으면서 아이들이 학교 스트레스로 인해 원형탈모까지 있다는 것을 보면 우리 어른들이 정말 잘못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옛날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가 생각이 나면서 그런 교사를 원하고 있지만 정녕으로 그런 교사를 만들 수있는 사회 배경이 안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진정한 교사가 나타나기를 원하지만 개인적 이기주의로 자기의 자식들에게만 눈길과 배려를 해주기를 원하는 학부모들이 진정 지금의 교육현실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 그러므로 인해 학교을 다니는 아이들도 학교를 싫어하고 거기에 학생를 가르치는 교사들도 아이들이 무서운 이교육의 현실은 영재한명을 기르는 교육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행복할수있는 학교를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송유근처럼 학교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우리학교 교육이 보듬어 안을수있는 교육으로 바뀌어서 영재는 영재대로 둔재는 둔재대로 키울수 있는 교육현실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기서 학부모와 교사의 위치와 마음가짐 정부의 교육목표가 얼마나 아이들의 미래에 영향을 끼치는지 잘 알수있다 김연아,박태환등도 훌륭한 부모와 스승이 있지 않았다면 그들이 오늘날의 영광을 누릴수있을까 / 인간의 누구의 도움으로 커는 관계이다 더욱더 어린아이들은 그렇다 아무것도 정립되지 않은 자유롭고 순수한 사고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교사를 양성하고 훈련시키는 정부의 교육체계가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영재를 키우는 공화국 보다는 둔재도 행복할수있는 공화국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고 어떤 교사를 만나느냐가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을 알게 해주는 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