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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외에 수많은 아가사 크리스티 작품의 스포일러를 담고있습니다. 따라서 이 리뷰에도 일부 포함됩니다. 그러므로, 위 작품을 읽지않으신분은 일단 멀리하시길. 아가사 크리스티 작품을 전반적으로 집어내기 때문에, 그녀의 대표작품들을 먼저 읽으신다면 이 책이 더 재미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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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기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가 1926년 자신의 여섯번째 작품으로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The Murder of Roger Ackroyd)]을 내놓았을때 대단한 센세이션이 일어났다. 그 이전의 작품에서 단 2번 탐정역을 했을 뿐인데 바로 은퇴후를 보여주는 포아로를 위해 아르헨티나로 간 헤이스팅즈를 대신하여 포아로를 보좌하며 수사를 돕는데다가, 수사일지까지 쓰며 보다 독자쪽과 친밀하게 이야기를 해주던 나레이터 셰퍼드의사가 (거기다가 의사이면서)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라는 사실에서.
일단 이 작품을 자근자근 씹으면서 소화하고픈 저자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이 보여주는 네가지 설명방식을 보여준다. 위장, 전환, 전시, 그리고 생략. '위장'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처럼 범인이 죽은 상태였거나, 아니면 권위가 있는 존재인지라 감히 범인이 되어 불법성을 저지를 수 없는 존재로 놓는 것, '전환'은 일종의 포커스를 이동시키는 것으로 [네개의 시계]에서 일부러 네개의 서로 다른 시간을 보여주는 시계를 늘어놓는 것으로 정작 수사를 해야할 사실에서 시선을 이동, 탐정의 수사력을 일부러 소모시키는 것, '전시'는 너무나 명명백백한터라 심리상 그럴 수 없다고 오히려 의심하게 만드는 것으로 [검찰측 증인]이나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처럼 범인이 스스로 가장 불리한 증거를 늘어놓는 경우를, 그리고 '생략'은 [애크로이드 살인사건]뿐만 아니라 아비코 다케마루의 [살육에 이르는 병]이나 우타노 쇼고의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등이 있다. 그러지만 각기가 독자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합쳐져서 상호작용을 하므로 단 하나씩의 방법만 사용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생략'의 방법을 사용하는데 있어, 추리소설을 다시 읽었을 경우 생략된 부분을 다시 채우고 새롭게 밝혀진 시각으로 보는데 있어 설명이 가능하여야 한다. 그러지않을 경우, 독자는 '불공정하다'란 감정을 품을 수 있다).
그리하여, 일단 아가사 크리스티에서 포아로로 저자는 이야기의 대상을 바꿔나간다. 근데 포아로의 망상으로 보기엔 저자가 근거로 삼는 텍스트는 세퍼드의사가 쓴 내용이 아닌가? 과연 범인이 누구이건간에 결정적이고 객관적인, 결과적 행동으로 보건데 셰퍼드 의사는 범인을 감싸던 범인이 밝혀지는 것을 최대로 막고자하는 이해관계를 갖고있는데, 과연 포아로가 광기를 보이는 건지 망상을 하는건지에 대해 저자가 근거로 삼는 텍스트에 객관적일 수 있을까?
여하간,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와 무지 공감가는 이야기 (..'셰퍼드가 자백을 했다손 치더라도, 수시로 상습적인 거직말쟁이를 상대해야 하는 경찰은 그의 자백이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안다. 민주주의 사법체제에서 범죄 용의자의 자백은 기소의 한 요소일뿐, 그 이상의 무엇도 아니다. 진짜 문제는 그가 과연 실제로 살인을 저지를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p.111)를 하면서 저자는 결국 또다른 범인을 보여준다.
근데, 폴 알테르의 [네번째문 (관습적 요소로 새로움을 창조한, 뛰어난 밀실추리물)]에선 추리소설작가가 일종의 추리퀴즈인 사건을 이야기하면 해답을 쓰겠다는 제안에, 다음과 같은 대답을 한다. 이에 대해선 이미 히가시노 게이고가 [명탐정의 규칙]에서 기발하게 한번 꼬집어 놨다.
...하지만 불가능해요. 작가는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를 알아야 소설을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합리적인 설명을 내놓는 것에는 신경쓰지않아도 된다면 저야 물론 얼마든지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박사님이 해답을 찾아내지 못할거예요....p.239~241
추리소설속의 사건과 해결과정은 진정으로 논리가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탐정이나 경찰이 등장하여 여러가지 사실중에서 그들에게 의미가 있는 (그렇다고 작위적으로 결론을 도출한다는 것은 아니다. 저자도 언급했듯이 추리란 의미를 찾는 과정이다) 실마리를 찾아내고 이를 구성하여 결론을 만들어내는, 논리를 빙자한 이야기놀이이다.
하물며, 등장하는 인물들이 거의 다 한번씩은 거짓말을 하며 추리소설가는 상습적으로 생략, 전시, 위장, 전환 등의 방법을 조금씩 써나가는데 있어 명탐정의 망상적(?)인지 창의적 행동인지가 없었다면야 그 어느곳에도 이르지못할듯.
여하간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이 즐거운 써프라이즈였다는 것은 다시 읽었을때 포아로의 설명에 (그렇다, 셰퍼드의 설명이나 저자의 설명이 아닌) 따라 다시 음미되는 사실들의 이면의미가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건 아가사 크리스티가 애초에 심리적 맹목을 이끌어내는 상황에서도 걸렸던 부분들 - 세퍼드 의사가 가리려고 했지만, 그닥 의미가 없을 거라고 했던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의 글쓰기가 만족했기에 보다 좋은 글을 쓰려고 솔직했던지 간에 - 을 보여주는데 아가사 크리스티가 인색하지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에 못지않게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결론을 도출한 저자의 범인도 수긍이 간다. 그도 언급했듯 '그(!)'는 아무런 알리바이를 내놓을 필요가 없었던, 참 이상한 인물이었던데다가 아가사 크리스티의 또다른 작품, [다섯마리 아기돼지]처럼 충분히 범인대신 범인으로 나설 수 있는 조건이 가능했던 터라. 단, 아가사 크리스티의 전기작가가 그녀와의 대화에서 '그는 미스 마플의 원조였다'라고 말했기에 전체적인 용의선상에서 자연스럽게 빠졌기 때문에 탐정과 경찰의 지적에도 무사했던게 아닌가싶다.
아가사 크리스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흥미로운 읽기가 된 책이지만, 중간의 정신분석 이야기는 다소 지루했다. 역시나 정신분석적으로 모든이들의 살인본능이나 세퍼드의사 -헤이스팅즈를 연결한 [커텐]의 이야기, 게다가 포아로의 새디스틱한 이야기 등은 다소 흥미로웠으나 평이했다.
에드문드 윌슨이란 비평가는 3편에 나눠 뉴요커에 추리소설이야기를 했는데 그중 두번째 컬럼의 제목이 다음과 같았다. 그는 추리소설을 좋아하지않았고 그건 나랑 반대지만, 이책 (원제가 who killed the Roger Ackroyd?이다)을 다 읽고나니 (머리 아파 ㅡ.ㅡ) 사실상 나도 동일한 말을 하고 싶다.
Who Cares Who Killed Roger Ackroy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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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추리소설을 좋아한다. 추리소설을 읽으며 나는 능동적으로 생각한다고 여겼다. 미스마플이되어, 코난도일이 되어, 그리샴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나는 범인을 유추해보고 트릭의 비밀을 찾기 위해 종이를 펼쳐 도표를 그렸다. 그러다보면 소설에서 밝혀지는 진범의 모습과 내가 유추한 인물이 일치하기도하고 달라지기도 한다. 일치할 경우에는 나는 나의 식견에 대해 조금 우쭐한 마음이 들었다. 일치하지 않는 경우라고 해도 기죽을 이유는 없었다. 작가의 반전에 놀라워하고 그런 놀라운 소설을 쓴 작가의 천재성에 경탄했다. 그렇지만, 나는 소설 속 주인공, 그 자체에 대해서 의문을 갖은적은 없는가. 아가사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살인사건은 아가사의 다른 작품과는 매우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범행에 관련된 알리바이가 치밀해서가 아니라, 서술트릭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애크로이드살인사건은 화자가 범인이라는 충격적인 결말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화자가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범인이 화자는 독자를 속이기위해 거짓이 아닌 진실을 은페시킨다. 잉크로 쓴 편지에 몇 개의 물방울을 떨어트려 내용에 혼선을 준다고 생각하면 된다. 애크로이드살인사건의 트릭이 놀라운 것은 아니다. 축음기의 녹음과 편지 그것이 전부다. 독자가 눈과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면 화자를 의심할 수 도 있다. 하지만 독자는 그럴 수 없다. 사실이지만 볼 수 없는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트릭은 아무리 쉬운 훼이크를 쓴다고 해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이런 추리소설은 추리의 기본적 구조, 말하자면 뿌리를 흔들어놓는 행위라 할 수 있다. 피에르바야르는 추리의 기본구조와 아가사크리스티의 소설 속 추리의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녀가 결말 지은 그 소설에 반론을 제기한다. 과연 범인은 화자였을까? 화자는 독자를 기만한 인물이다. 그 인물의 말을 맹신할 이유가 있는가.
나의 말은 50%가 거짓이다.
나는 그를 죽이지 않았다.
이말은 진실이다.
과연 위의 논제에서 나의 진실은 무엇일까? 피에르 바야르는 우리가 추리소설을 보며(추리가 아닌 다른 문학작품일지라도) 사고 하는가에대해 의문을 품는다. 우리는 그저 작가의 망상을 쫓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피에르바야르는 자신의 글 역시 망상에 대한 또 하나의 망상이라고 이야기한다.
[누가 로저애크로이를 죽였는가]는 충격적인 글이다. 책을 좋아하고 책을 이해하고 사고한다고 생각했던 독자에게 충격을 안겨준다. 그간 자신이 이해했다고 믿었던 텍스트에 대한 고민을 안겨준다. 하지만 이 혼돈은 즐겁다.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에대해 다시 한번 즐거운 고민을 안겨준다.
진실을 알려주기 보다 진실을 찾을 수 있는 이해력을 올려주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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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의 해답은 그것이 유일하다는 ... 중략 ... 본연의 특성으로 인해 해석자의 지위를 상대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 해답이 해석자의 개입 이전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으며, 해석자에게 '창조하라'고 하기보다는 '찾아내라'고 명하기 때문이다. 주관성과 주체에게 양도된 언어의 몫 역시 기록되어 있는 것을 경청하는 데 있지, 앞으로 도래할 어떤 것을 만들어내는 데 있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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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의 범인을 미리 밝히고 그 범인이 범인이 아니라면에서 출발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추리소설로 읽은 나는 저자가 저지른 명백한 오류인 독자에게 범인을 알려주는 행위를 간과할 수 없기에 밝히지 않기로 한다. 또한 애거서 크리스티의 다른 작품들에 대한 언급도 하지 않으려 한다. 이것은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비롯한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을 읽지 않은 독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추리소설 독자의 입장에서 나온 것이니 양해를 구한다. 비록 책 소개에서 모든 것이 나오고 목차 속에서 유추가 가능하다 할지라도. 그러므로 내 글을 통해 가려진 진실을 보아주기를 바란다. 때로는 밝혀진 진실이 불편할 때도 있는 법이니까 말이다.
이십여년 전에 처음 이 책을 읽었을때는 '와, 이런 작품도 있구나. 역시 애거서 크리스티다.'라고 감탄했다. 십여년전에 다시 읽었을때는 '페어플레이 논쟁을 왜 벌였을까?' 이런 생각을 했다. 관점을 달리 하거나 책을 읽을 때 나라면 범인을 이 사람으로 할텐데 하고 생각할 때가 있지만 그렇다고 작가에게 이미 나온 작품의 수정을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고 이것은 작가의 고유 권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시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말았다. 이 책을 처음 보고 '역시 애거서 크리스티는 대단해.'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전에도 그렇게 끊임없이 논란을 만들더니 사후에까지 이런 현미경같은 작가에게 해부되는 일을 겪다니 책이 대단하지 않다면 어디 가능하기나 할 법한 일인가 말이다. 그러고 보니 몇 해전 미국에서 공부한다는 사람이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에 대한 과제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런 점을 생각하고 <오이디푸스왕>과 비교하는 모습속에서 추리소설이 장르소설이라는 하위 문학으로 더 이상 치부될 수 없음에 가슴 벅찼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추리소설계의 대모이자 그의 작품은 추리소설의 바이블이다. 그의 책을 읽지 않고 추리소설을 읽었다 할 수 없고 그의 책을 모두 읽는다면 대부분의 트릭은 배우게 된다. 본격추리소설의 트릭은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속에서 태동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거라 생각한다. 그런 그의 작품은 언제나 논란을 불러 일으킨다.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일을 시도한 결과라 할 수 있고 그 자신도 어쩌면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자서전과 작품 속에서 남긴 것들로 볼 때 커다란 추리소설의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닌가 느껴진다. 그러니까 그의 책 한권 한권이 어쩌면 독자에게는 그의 작품 세계 전체에 대한 단서로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저자에게 그런 관점을 알려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작가는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의 범인이 다른 사람이라는 전제하게 작품을 파헤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본격 추리소설이 독자에게 보여줘야 하는 것들, 쉽게 말하자면 어린 시절 소풍 가서 보물 찾기를 할때 반드시 보물이 숨겨져 있어야 하는 것처럼 작가가 독자에게 작품안에 단서를 보물처럼 숨겨 놓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을 간과하고 읽는 것은 독자의 책임이지 작가의 책임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범인은 확실한 타당성을 지녀야 한다는 점이다. 살인의 동기, 살인할 수 있는 행동력같은 것 말이다. 이런 세세한 점들이 모여져 지목할 수 있는 한 사람이 범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이 작품에서 푸와로가 지목하는 범인은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것은 푸와로의 망상의 결과물일 뿐이라고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이라는 막강한 카드를 들이대고 여기에 애거서 크리스티의 다른 작품들과의 비교를 통해 푸와로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처음부터 숨겨진 보물이 없는 보물 찾기란 말이 안되듯이 텍스트 자체가 오류로 뒤범벅이 되서 추리소설, 아니 문학적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데 어떻게 작가와 푸와로가 주장하는 범인이 범인이라 믿을 수 있겠느냐며 타당한 다른 범인을 저자 본인이 수사를 통해 지목한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그 범인이 나도 더 마음에 든다.
그러니까 우리는 진범을 놓치고 피해자를 한 명 더 만든 셈이 된다. 이것은 독자에 의한 살인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가 쓴 것, 탐정이 지목한 대상을 여과없이, 아무런 의심없이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은 독서, 추리소설 읽기에서 수반되는 위험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처음에는 하나의 또 다른 추리소설을 기대했다가 너무 어려워서 집중이 안됐는데 뒤로 갈수록 저자의 해석이 마음에 들었다. 정곡을 찌르는 여러 책에 대한 비교 분석과 설명, 그리고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 전반에 걸친 간단한 검토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복기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만들었다. 언젠가 반드시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들을 꼼꼼히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 그 과정에서 누가 알겠는가? 또 다른 해석 망상에 의한 피해자를 구제하게 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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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시절, 홈즈와 푸아로의 이야기에 빠져 보지 않은 분들은 없을 것이다. 추리소설에 대한 깊이 있는 독서를 도와주는 책을 소개해 본다. 바로 프랑스 정신분석가 피에르 바야르의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여름언덕, 2009)라는 책이다. 저자는 추리소설의 트릭 유형을 애거서 크리스티의 대표작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끝없는 밤]과 [커튼]을 중심으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독자로 하여금 진실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고전적인 추리소설의 서사 방식을 크게 위장, 전환, 전시, 생략 네 가지 트릭으로 나누어 범주화한다. 이 책은 가격도 저렴하고 내용의 폭과 깊이도 훌륭하다. 다만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을 읽어보지 못한 독자라면 재미가 반감하겠지만, 본격추리소설의 애독자라면 분명히 맘에 들 것이다.
독자로 하여금 진실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가장 고전적인 첫 번째 방식이 바로 '위장'이다. 진실 자체를 위장하거나 그 구성 요소들 가운데 하나를 위장하는 것이다. 이는 사람에 대한 위장 수법과 물건에 대한 위장 수법으로 이중화된다. 가령 살인이 자살로 위장되거나 사고로 위장된다. 역으로 자연사가 살인으로 위장되기도 한다. 대개 위장은 살인범에게 행해진다. 살인범을 피해자로 위장하거나 수사관으로 위장하는 것, 그리고 알리바이를 만드는 위장 수법이 가장 고전적이다. 이처럼 추리소설 작가는 살인범의 본성, 신체적 특징, 관계상의 특징, 심리적인 것, 직업적 활동 등을 위장하여 독자들이 진실을 식별하지 못하게 한다.
가령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에서 이야기의 화자인 제임스 셰퍼드라는 인물을 위장하기 위해, 아가서 크리스티는 본성에 대한 위장, 직능에 의한 위장, 푸아로 수사에 적극 협조하는 정직함과 솔직함의 모델인 '헤이스팅스'와 같은 역할로서의 전환, 음향 트릭을 통한 알리바이 위장술 등을 모조리 사용했다.
"여러 측면에서 이 소설은 우선 '위장' 수법을 사용한다고 할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독자가 그 내면을 자주 접하게 되는 셰퍼드라는 인물은 우선 살인을 할 만한 성품의 소유자로 여겨지지 않는다. 우리에게 그는 성품이 원만하고 기질도 쾌활하며, 사건에 대해 거리를 둘 줄 알고 유머감각도 탄탄한 인물로 소개된다.
두 번째는 '전환'이다. 전환은 위장과 단짝처럼 함께 사용된다. 위장이 진실 자체를 감추는 것이라면, 전환은 진실 자체를 은폐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관심을 다른 기호쪽으로 돌리는 것이다. 허위 단서들로 하여금 독자들의 주의를 끌도록 하는 방법인데, 의심스런 용의자, 범인의 이니셜이나 다잉 메시지, 범인이 일부러 남긴 물질적 단서들이 대표적이다. 가령 『로저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에서 독자의 주의는 막대한 유산의 주된 수혜자인 랠프 페이튼과 전 고용주를 협박한 전적이 있는 집사 파커, 마약에 빠진 공격적인 부랑자 찰스 켄트와 같은 그럴듯한 용의자들에게 쏠리게 된다. 또한 현장에서 발견된 결혼반지, 풀 먹인 수건 조각, 코카인을 흡입하는 데 쓰이는 깃털 달린 관 등의 단서들도 결국 진범과는 무관한 엉터리 실마리로 밝혀지는 '전환'의 사례들이다.
세 번째는 '전시'다. 전시 수법은 진실을 낱낱이 기록하면서도 보이지 않게 만들어 버리는 데 있다. 가령 범인이 자신을 좀 더 잘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경우다. 범인을 전시함으로써 은폐하는 수법이라 하겠다. 또한 '도둑맞은 편지의 법칙'처럼 가장 중요한 물질적 단서를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개방된 곳에 두는 경우다. 가령『검찰측 증인』이나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처럼 범인이 스스로 가장 불리한 증거를 늘어놓는 경우다.
마지막으로, 생략은 크게 '이중의 뜻을 가진 담론'을 활용하는 글쓰기 기법과 '생략에 의한 거짓말'이라는 서사적 입장이 있다. '이중의 뜻을 가진 담론'이란 완전히 상반되거나 최소한 서로 확연히 다른 두 가지 해석을 제공하는 진술을 의미한다. 때문에 책을 재독할 때야 이중의 모호한 표현의 뜻이 명백하게 다가오게 된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화자는 전지적 화자이다. 전지적 화자는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주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으며, 아주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등장인물의 생각도 전해주지 않는다. 가령 헤이스팅스가 화자인 경우, 그는 투명한 등장인물로서 그의 외적기호는 내면성을 반영한다. 하지만 셰퍼드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절대 자신의 진짜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
추리소설의 일인칭화자는 자기 자신을 정직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부정행위를 저지른다. 그런 부정행위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생략에 의한 거짓말이다. 생략에 의한 거짓말은 구조적으로 진실의 전달을 취대한 늦추려는 경향을 가진 추리물의 근본 특성이다. 미스터리를 최대한 오래도록 유지하여 깜짝 놀라게 하는 효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추리소설은 생략에 의한 거짓말을 자주 사용한다. 생략에 의한 거짓말은 진실을 말하더라고 부분적인 진실만을 말할 뿐이기에 발생하는 거짓말 유형이다.
"애크로이드 씨는 본디 고집이 몹시 셀 뿐 아니라, 억지를 쓰면 쓸수록 더욱 굳어지는 사람이다. 이렇게 되면 이제 아무래도 그 고집을 꺾을 수 없다. 파커가 편지를 가지고 들어온 것은 8시 40분, 내가 편지를 마저 읽는 것을 끝내 보지 못한 채 애크로이드 씨의 서재를 나온 것은 정확히 8시 50분이었다."(79쪽)
이런 생략의 난점은 잠재적인 해답의 수를 무한히 증식시킨다는 점이다. 즉 작품의 제한된 공간을 무한을 향해 열어젖혀 해석상의 어려움을 증폭시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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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내 손에서 책이 떨어지지 않게 해 준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감사하게 생각하는 작가가 두 명 있다. 바로 코난 도일 경과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이다. 셜록 홈즈가 펼친 추리가 주는 재미는 그다지 길지 않은 나의 독서 경력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으며, 크리스티 여사의 작품이 보여준 인간 본성과 심리에 대한 통찰은 놀라운 간접 경험이었다. 특히 크리스티 여사는 등장인물의 말 한 마디와 배경설명에 아무렇지도 않게 중요한 단서를 뿌려 놓는 것에 정말 천재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그녀의 능력은 같은 작품을 2-3번씩 재독하게 만든다. 추리소설이란 것이 범인과 트릭을 알게 되면 급격히 흥미가 떨어지기 마련인데도 불구하고, 크리스티 여사의 작품은 천천히 다시 읽으면서 처음 읽을 때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는 ‘보물찾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이런 ‘보물찾기’에도 한계가 있다. 결국에는 작가가 정해준 하나의 길, 즉, 범인과 트릭이 정해진 길을 다시 따라간다는 점이다. 독자들은 너무도 당연하게 포와로나 미스 마플이 지명하는 사람을 범인으로 단정하며, 트릭을 그대로 인정한다. 하지만 혹시 여기에 허점이 있는 것은 아닐까? 피에르 바야르의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는 이런 점에 착안한다. 그의 작업은 크리스티 여사가 숨겨놓은 보물을 찾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길로 들어가 새로운 보물을 캐내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가 대상으로 삼은 작품은 크리스티 여사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이다.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이제 스포일러라고 부르기도 어려울 정도로 유명하다. 추리소설을 읽는 독자의 모습을 생각해 보자. 아마도 누구나 ‘범인은 누구일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내가 그 범인을 맞춰보겠다’라는 의욕에 차서 독서를 시작할 것이다. 물론 잘 맞출 때도 있지만, 아마 대부분은 의외의 범인과 트릭이 주는 반전에 경탄하며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아둔함(?)을 탓하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독자들은 무의식 중에 절대 범인일 수 없는 두 명을 빼고 생각한다. 바로 수사를 행하는 탐정과 이를 기록하는 화자이다. 크리스티 여사는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에서 이러한 고정관념을 뒤집어 버렸다. 그녀의 설정이 과연 정당한 것이었는지는 당대에는 물론이고 현재까지도 논란이 분분하여 롤랑 바르트나 움베르토 에코와 같은 학자들까지도 이 논쟁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피에르 바야르는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에서 크리스티 여사가 뒤집어 놓은 고정관념을 다시 한 번 전복시킨다. 피에르 바야르는 질문한다. ‘과연 에르큘 포와로가 지목한 범인이 진짜 범인인가?’ 그는 이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한다. 진범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셰퍼드 의사를 범인으로 지목한 것은 포와로의 ‘망상’의 산물이며, 독자들은 크리스티 여사가 창조한 기가 막힌 반전에 감탄하느라 포와로가 펼친 추리의 허점을 깨닫지 못하고 낚여 버린 것이다. 크리스티 여사가 창조한 추리소설에 대한 또 하나의 추리소설이 탄생한 셈이다. 물론 로저 애크로이드를 살해한 진짜 범인이 따로 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는 당연히 근거가 있어야 하는 법. 피에르 바야르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먼저 추리소설(특히 크리스티 여사의 추리소설들)에서 어떻게 범인을 숨기고 독자들을 속이는가를 분석한다. 그는 여기서 특히 ‘생략’의 기법에 초점을 맞춘다. 작품 상의 화자는 진실만을 말하고 있지만, ‘모든(!)’ 진실을 말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전공(정신분석학)을 살려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빠질 수 있는 ‘망상’과, 그 망상이 소설속에 어떻게 나타나는지로 논의를 전개한다. 이 과정에서 크리스티 여사의 다른 작품들인 [끝없는 밤], [커튼] 등이 함께 검토되며, 정신분석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역시 하나의 텍스트로서 다루어진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두 군데 있는데, 첫 번째는 역시 애크로이드를 살해한 진범을 밝혀내는 마지막 장이다. 하지만 누가 진짜 범인인지 여기서 말하는 것이야말로 완벽한 스포일러가 될 터이니, 그 몫은 각자에게 맡겨야 할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이것도 피에르 바야르가 독자들에게 도전한 ‘추리소설’이니 말이다. 두 번째로 흥미로운 부분은 [커튼]과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비교하는 부분이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커튼]은 포와로가 등장하는 마지막 작품으로서, 여기서 포와로는 악마와 같은 본성을 가지고 있던 피해자를 살해한다. 살인마를 죽여 앞으로의 살인을 막았으니 포와로의 동기는 순수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어쨌거나 결과적으로는 법과 정의의 수호자로 자리매김되어 있던 포와로가 살인죄를 범한 셈이다. 뿐만 아니라 포와로의 오랜 친구인 헤이스팅즈 대위 역시 부지불식간에 살인을 범한다. 결국 독자들이 추리소설에서 그토록 신뢰하여 마지않던 두 사람, 즉, 탐정과 화자가 과정이야 어떻든 모두 살인을 범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앞에서 크리스티 여사의 작품에서 인간 심리에 대한 놀라운 통찰에 감탄했다고 적었다. 수많은 추리소설 속에서 그녀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미움, 질투, 욕망 등이 살인이라는 극단의 행동으로 표출되는 과정을 묘사한다. ‘인간은 누구나 잠재적인 살인자이다!!!’ 다만, 이성의 힘이 그것을 억누르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섬뜩하리만치 냉정한 크리스티 여사의 인간 평가와 세련된 추리소설 기법이 만나서 추리소설사에 빛나는 작품들이 탄생했다. 이 작품들을 보는 즐거움에 더하여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와 같은 새로운 시도를 만나게 되었으니 더욱 즐겁다. 왕년에 크리스티 여사의 광팬으로 자처하며 그녀의 소위 ‘빨간 책’을 모으고 다녔던 입장에서 피에르 바야르의 시도는 신선하고 흥미진진했다. 보통 하나의 문학작품에 ‘텍스트’라는 말을 사용할 때에는 고착화되고 정형화된 하나의 해석방법, 또는 무비판적인 작품 수용을 지양하고 특정 대상이나 개념에 대한 지식을 생성시키는 해석상의 ‘담론’을 도구로 하여 ‘열린’ 해석방법을 적용하고 작품을 해체함으로써 그 이면에 숨겨진 진정한 논리와 구조를 밝히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바라건데, 이와 같은 원작이 주는 고착성과 권위에 도전하여 그것을 ‘텍스트’로서 해체하고, 새롭게 작품을 바라볼 수 있는 시도들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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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제목을 보고 이게 뭐지라는 궁금증을 가졌다... 사실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이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이렇게 추리 소설의 또다른 의미와 해석을 찾아가는 책이 흔한 것은 아니닌까... 저자인 피에르 바야르는 이 책에서 크리스티의 작품 속에 보여진 것들과 숨겨진 의미들을 재해석하여 종국적으로는 새로운 범인을 제시한다. 다양한 논리에 의해 어느 정도의 타당성을 가진 이 예측이 더욱 이 책을 재미있게 만들어 준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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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의, 마니아에 의한, 마니아를 위한 책이다. 혹여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을 읽지 않았다면, 이 책을 장바구니에서 빼도록 하자. 책 전체에 애거서 크리스티 책에 대한 스포일러가 넘실거리고, 그외에도 추리소설을 좀 섭렵한 사람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도 많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시도가 무척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대개 추리소설에서 작가가 낸 결론을 아무 생각없이 받아들이니까. 이런 식으로 딴지를 걸어서 "난 아니라고 생각하거등!" 하는 건 색다른 시도고 꽤 흥미진진하다. 다만...내가 불만인 건 그걸 좀 쉽게 다룰 순 없었을까 하는 거다.
그래, 안다. 이런 식으로 논란이 될 수밖에 없는 주제를 다루는 책이라면 어떻게든 꼬투리 잡힐 꺼리를 만들어서는 안 되고, 그러다보니 온갖 논문이며 에세이를 끌어들일 수밖에 없다는 거. 그렇지만 나처럼 마니아라고 하긴 뭔가 부족하지만 추리소설쪽에 관심 많은 사람이 보기엔 이 책, 꽤 지루하고 어려웠다. 좀더 쉽게 쓸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랬다면 좀더 대중적인 인기를 얻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크리스티 팬, 추리소설 마니아라면 추천. 아니라면 패스할 것.
덧: 표지...2009년에 나온 책이라고 믿기 어렵게 촌스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