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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근대소설의 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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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만세보에 연재되었던 작품이다.우리나라 근대소설의 효시, 또는 신소설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힌다.작품의 배경은 1894년 청일전쟁이다. 작품 속에는 주로 일청전쟁으로 이야기 되고 있다.청일전쟁의 장소적 배경은 바로 우리나라였다.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으려던 두 나라는 언제든 양국 군대를 주둔시키려는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고 1894년 동학농민운동은 그러한 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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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만세보에 연재되었던 작품이다.
우리나라 근대소설의 효시, 또는 신소설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힌다.

작품의 배경은 1894년 청일전쟁이다. 작품 속에는 주로 일청전쟁으로 이야기 되고 있다.

청일전쟁의 장소적 배경은 바로 우리나라였다.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으려던 두 나라는 언제든 양국 군대를 주둔시키려는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고 1894년 동학농민운동은 그러한 빌미를 제공한다.

전쟁으로 평양 일대는 쑥대밭이 되어 버린다. 전쟁 난리 통에 생이별을 한 가족들의 수야 일러봐야 부지기수이다. 일곱살난 옥련과 김관일, 최씨부인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들은 전쟁통에 헤어져 서로의 생사도 모른다. 최씨부인은 남편과 애지중지하던 딸이 죽은 걸로만 생각해 자기집 벽에다 강물에 몸을 던져 죽겠다는 글을 남기지만 다행히도 목숨을 보전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는 전쟁통에 딸이 걱정되어 올라온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그를 통해 자신의 남편이 미국으로 유학길에 올랐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딸에 대한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며, 하나 남은 가족 남편에 목숨을 붙여 하루하루를 살아 간다.
배경은 다시 피난길 군병원으로 옮겨 간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옥련이 목숨을 보전한 것이다. 그녀도 부모를 찾지만 집에 쓰여 있던 어미의 유서를 보고 저 혼자 남은 줄만 안다. 이를 불쌍히 여긴 일본군 군의관 이노우에의 후의로 그의 양녀가 되어 일본으로 건너간다. 그녀는 원래 총명하고 예쁜 탓으로 이노우에 군의의 부인으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옥련은 그 후 이노우에 군의가 전사하자, 부인으로부터 냉대를 받게 되고 갑자기 갈 곳이 없는 신세가 되어 방황하다가, 구완서라는 청년과 알게 되어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다. 구완서는 부국강병의 뜻을 품고 조선을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처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유학길에 오르던 중이었다. 옥련은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우등으로 마치고 이미 미국에서 살고 있는 아버지 김관일과 10년만에 만나게 된다. 옥련이 우등으로 졸업하자 그곳 신문에 옥련에 관한 기사가 나고 이것을 옥련의 아버지인 김관일이 본 것이었다. 이런 가운데 옥련과 구완서는 일생의 반려가 되기로 기약하며 약혼을 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아직 평양에 살아 있음을 확인한 옥련은 매우 기뻐하며, 그리움 속에 어머니에게 우선 편지를 띄운다. 구완서는 우리 나라를 문명한 강대국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였고, 또 옥련은 우리 나라 여자들의 지식을 넓혀서 남자에게 눌리지 않고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게 하며, 또한 여자들도 사회에 유익하고 명예 있는 백성이 되도록 교육할 것을 마음먹는다.

일본과 서구 문명에 대한 찬사일색과 우리나라가 개화되지 못한 것에 대한 무시가 나타나 있으며 구완서와 옥련의 대화에서 나타난 문명에 대한 동경과 자유결혼에 대한 의지는 현대인이 보기에는 오히려 무지몽매해 보인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 당시 지식인들과 유학생들이 느꼈던 충격은 지금 우리가 해외에서 유행하는 새로운 드라마를 보고나 박스오피스 개봉신작영화를 보는 느낌과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비약적인 면이 많고 혹여 일본과 서양에 대해 호의적인 모습도 있지만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보았을 때 이런 부분을 비판 일색으로 볼수는 없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더불어 역사란 100년의 세월이 지나서 돌아보아도 그 허와 실을 가리기가 힘든데 현실에서 당대 역사를 돌아보는 일개인의 시각은 어떠할까 하는 생각도 하여본다.

하지만 이인직과 같이 당시의 지성을 대표하는 작가였다면 좀 더 현실을 폭넓게 보았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없다. 그만큼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일본과 서구문명에 대해 편향된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역사 인식이 부족해 보인다. 당찬 개화지식인으로 그려지고 있는구완서와 김관일이 최판서보다 조금도 나아보이지 않는 것은 그것 때문일 것이다. 당시 이 소설을 읽는 사람들은 어쩐지 모르겠지만 나의 시선에 보이는 구완서는 지나친 자신감과 사대주의에 빠진 편향된 지식인일 뿐이다. 이와 달리 옥련에게는 무엇이라 말하기 어려운 듯하다. 옥련처럼 그 당시 뛰어난 재능을 가진 많은 젊은이들이 일본이나 다른 문명의 달콤한 거짓말이나 꼬임에 어떻게 넘어갔을 지 짐작하게 해준다. 대부분 그들에게는 극단적인 두 가지 선택만이 기다렸으리라...

끝으로 소설 속에는 우연적인 요소가 많고 이야기의 진행도 비약적이다. 현대 소설들이 추구하고 있는 여러가지 가치가 일절 통용되고 있지 않다. 한편으로는 소설을 읽으며 작위저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고 필요 이상의 기교를 부리거나 지나치게 복선과 여러가지 추리기법이나 과학적 요소들을 사용하지 않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쉽게 읽을 수 있고 오히려 더욱 새로운 느낌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점들이 책을 읽는 색다른 재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t********n 2010.07.0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