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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터는 읽은지가 꽤 오래 되어 화가 박수근의 일생이 확연하게 떠오르지는 않지만 문득 아들 박성남씨가 어릴적 화가로서의 아버지의 직업에 대한 마뜩잖음과 소원했던 관계가,저의 돌아가신 아버지와 저와의 관계를 떠올리면서 당시의 아버지들은 말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가족을 사랑하고 가정을 꿋꿋히 책임지며 살아갔으리라는 것을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나서야 아버지의 고단한 삶 속에서 가정을 제일로 여기셨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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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터 *남편이 외로워하는 건, 그리고 소외감을 느끼는 건 타협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타협하려 해도 그렇게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는 세상과 자신의 불일치를 느낀 것이었다. -139쪽-
아내에게 따뜻한 털 속치마를 사주지 못하고 가는 것을 안타까워 하던 사람, 천국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너무 멀다는 말을 남기고 아내의 곁을, 아이들의 곁을 떠난다. 자신의 화풍을 지키고, 타협하지 않고 살기를 그리도 힘들어했던 그가, 그런 방황의 시간을 술에 의지하다가 결국은 간경화라는 병으로 세상을 등지고 만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를 많이도 미워한다. 엄마의 고단함이, 가족의 가난이 모두 아버지가 그림을 그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에, 아버지가 나가서 막노동이라도 하기를 바란다. 모두를 힘들게 하고 무능력하다고만 느껴지는 아버지였지만, 아버지의 죽음은 그런 아들에게 큰 충격이 되고, 아버지에 대해 새로운 사랑의 마음과 함께 다시 살아난다. 결국 아들은 아버지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기둥이고, 나무였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리고 그렇게도 아버지의 그림 그리는 모습이 싫었지만, 결국은 아들 역시 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이제는 너무도 그리운 아버지만이 아들의 마음속에 남아있을 뿐이다.
화가라는 직업, 어쩌면 창조적인 모든 직업들이 얼마나 그들에게 힘든 고난의 시간들이고, 갈증의 시간일지. 그림을 잘 모르지만 친정오빠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어서인지 너무도 공감하면서, 아파하면서 읽었다. 오빠 때문인지, 박수근의 이야기 때문인지 참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여리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결국은 그저 세상 속에 타협하는 삶을 택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 느끼는 방황은 화가를, 예술가를 아프게 한다. 그들을 그저 온전히 그들이 추구하는 예술 속에서 마음껏 살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나 비슷하게 찍어내듯 그렇고 그런 창작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상업적으로 전락해가는 예술을 우리가 어떻게 진정한 창작이라 할 수 있을지. 정말 어렵고 또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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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검색창에 '빨래터 위작 논란'이라고 입력한 후 엔터키를 눌렀다. 마치 내가 궁금해 한다는 것을 미리 알고 준비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이, 새끼손가락이 컴퓨터 자판에 닿자마자 관련 내용의 게시글이 주르륵 올라왔다. 박수근 화백도, 그 분의 그림 [빨래터]도 모두 내게는 낯설다. 그래서 [빨래터]가 국내 경매사상 최고가인 45억 2천만 원에 낙찰됐었다는 사실도, 그 후 위작 논란에 휩싸였었다는 사실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위작 논란은 예술 분야에 발을 담그고 있지 않으니 모를 수도 있다 치더라도, 국내 경매사상 최고가로 낙찰됐다는 소식은 풍문에라도 들었음 직한데 왜 나는 몰랐을까 싶다. 그 때 나는 달나라에라도 가 있었던 걸까. 이경자 작가의 소설 <빨래터>를 읽은 직후라서 인지 박수근 님의 작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던 게시글들을 읽고 있자니 마음이 불편해져왔다.
성남은 아버지의 그림 [빨래터]의 위작 혐의가 미술계의 현안으로 떠올랐다는 소식을 기자로부터 전해 듣는다. 무너지는 마음을 추스르고 모든 의혹을 풀 열쇠를 찾아서 돌아오겠다는 생각으로 [빨래터]의 소장자였던 존 릭스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에 오른다.
이 소설은 아버지의 흔적을 찾기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목적지에 도착하기 까지 아들이 아버지를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성남의 눈에 비친 박수근은 무섭고 무능하고 창피하다. 가족의 배를 곯게 만들고 특히 어머니를 힘들게 만드는, 가난한 그림만 그리는 능력 없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좋아하게 되면, 아버지 같은 가난한 그림을 그리게 될까봐, 아버지처럼 살게 될까봐 두려워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고 멀리 달아나지도 않고 제자리에 멈추어 서 있다.
김복순의 남편이자 성남의 아버지이며 그림 밖에 모르는 화가 박수근은 가난해서 춥고 미안했지만 '선함과 진실함, 소박함과 순박함'을 그리겠다는 꿈이 있어 기뻤다. 그리고 자신의 그림 세계를 이해하고 지지해 주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어 행복하고 따뜻했다. 그러나 어렵게 찾아 낸 자신만의 표현 기법의 가치를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냉대와 냉랭함 속에서 박수근의 여린 마음은 점차 병들어 쓰러져 갔다.
무섭고 미웠고 그래서 애써 무시해 오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성남에게는 스스로도 놀랄만한 변화가 찾아온다. 강한 자성에 이끌리듯 아버지가 남긴 그림들을 바라보게 되고 자꾸만 찾게 된다. '아버지는 누군가'라는 복잡하고 끈끈하고 덥고 냉혹한 질문이 생겼다. (p208) 두렵고 죄송하고 궁금하고 그리운 아버지라는 존재에 천천히 다가간다.
생전에 불우했던 아버지와 달리 작품이 누리는 영광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p19
당대에는 '버림받은 화가'였던 박수근의 첫 개인전 - 그가 세상을 떠나고 다섯 달 후에 열린 - 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그 성공에 아무것도 모른 척 환호만 보낼 수가 없다. 박수근이 그토록 바라던, 그의 그림이 제대로 평가받는, 일은 그가 이미 죽은 후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사후에라도 소원이 이루어졌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가난한 전업화가로 활동한 박수근은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기에 어렵고 힘들 때 기댈만한 학연이나 지연이 없어 외롭고 쓸쓸했다. 그가 바랐던 것은 그의 그림이 화단(畵壇)에서 인정을 받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족 앞에서 떳떳한 남편,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고 싶었을 뿐이다. 마음 한구석에 켜켜 쌓기만 한 슬픔과 서러움이 얼마나 컸을까. 그의 심정을 헤아려볼 수 있는 한 문장이 있다. '술까지 못 마시면... 미칠 것 같아...' p161 그러나 이제 박수근은 더 이상 외롭거나 슬프거나 서럽지 않을 것 같다. 다른 누구의 인정보다 아들 성남의 따뜻한 이해와 관심과 존경을 얻었기 때문에.
진실은 진실 자체로 이미 그것의 중심이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다. p26
이 소설은 경매사상 최고가로 낙찰된 기록을 가지게 된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가 위작 논란에 빠졌다는 사건을 바탕으로 쓰여 진 이야기이다. 그러나 단순히 진실과 거짓을 밝혀서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의도를 가진 책은 아니다. 소설 <빨래터>는 박수근 화백의 생애를 그린 작품이면서 아들 성남이 아버지를 이해하고 아버지와 화해하며 성숙해져가는 모습을 그렸다. 그리고 성남의 변화를 지켜보는 독자에게 인간 박수근을 제대로 알아보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을 제공한다.
최근 몇 달 동안 가족을 소재로 한 소설을 여럿 접하였다. 소설 <빨래터>는 표면적으로는 화가 박수근의 삶과 예술 세계를 그리는 이야기이지만 그 내부는 남편과 아내의 사랑, 부모와 자식의 사랑이 담긴 소설이다. 영원히 지켜주고 싶고 아낌없이 주고도 모자란 사랑으로 똘똘 뭉친 가족을 <빨래터>에서 만날 수 있다. 애처롭고 짠하지만 정겨운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이 소설 <빨래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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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가 1952년 여름에 그려놓은 <장남>은 어언 예순세살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할아버지와 손자>처럼, 손자를 앞에 앉혀야 어울릴 할아버지...라는 문장을 끝으로 책장을 덮개된 빨래터는 나에게 진정한 가슴뭉클함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예술을 찾는 화가 박수근! 그리고 그의 사랑이자 평생의 조언자인 박수근 화가의 아내를 보면서 훌륭한 화가를 만든건 아무래도 늘 곁에서 힘든내색 하나 비치지 않고 소리없이 지켜봐주었던 아내가 아닌가 쉽고 그 일이 매우 어려운일인데도 불평없는 아내가 나에게 너무 크게 비춰졌다. 어머니는 이해하는 박수그느이 예술을 그의 아들에 눈에는 돈을 못벌어오는 아버지의 예술로 비치게되고 아버지의 불신만 키운 그는 어느덧 아버지의 유작전에서 그 어두컴컴한 색상들의 그림이 모여 살아 숨쉬는 것을 보면서 아버지의 그림을 진정한 예술로 깨닫는 과정을 책으로 일긍면서 나도 모르게 책 깊숙이 빠져들게 되고 소리없이 숨죽이며 읽게된 책은 어느덧 훌쩍 책장을 덮게 했다. 박수근에 대해 아무지식도,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채 yes24신간도서에서 눈에 띄어 읽게된 이책을 통해 나는 진정한 예술이 무엇인지.. 그리고 성공한 예술가 뒤에 숨어있는 가족들의 고달픔을 아주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이제 내가 할일은 화가 박수근의 작품을 찾아 보는게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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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동안 TV에서 박수근 화백의 그림이 엄청난 거액에 팔렸다는 뉴스가 흘러나왔고 뒤이어 갑자기 그 고가의 그림이 위작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몇 년 전부터 주변에서 아트펀드니 뭐니 해서 그림에 투자한다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렸지만 나와는 거리가 멀다 싶어 그냥 흘려들었던 게 막상 그 가치를 눈으로 확인하니 참 대단하다 싶었다. 뭐 가치를 눈으로 확인했다 해도 여전히 나와 거리는 멀고도 멀지만. 암튼 이 위작 논란이 요즘 참 큰 이슈인 것 같다. 아침에 출근 준비하면서 켜놓는 TV 뉴스에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오니까 말이다. 그래도 여전히 나완 먼 일이기에 결론이 나면 그때 확인하자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문득 그 소설이 나왔다고 했다. 그래서 마침 현재진행형인 이 사건을 어찌 다뤘을까 싶은 호기심에 덜컥 사다 읽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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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를 아버지로 둔다는 것, 그 상황은 처해보지 못하면 알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작품이 팔리지 않아 생활이 어려운 예술가라니. 평생을 자유롭게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산 아버지의 밑에서 자라는 것은, 거기다가 자신은 아버지의 길과는 털끝의 인연조차도 없다면 그 삶은 지옥이다. 아버지의 예술적 영혼을 펼치기 위해 뒤늦게 시간의 톱니바퀴에 올라탄 자식은 본인 고유의 삶을 포기한다. 물론 아버지는 변명한다. 그 마음이 얼마나 괴로운지 아냐고, 정말 가족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 길을 포기할까 말까 항상 고민한다고, 하지만 이 길을 가는 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사명이라고. 그런데 이 몇 명의 사명감 투철한 아버지들 때문에 별 특별한 사명감 없이 세상에 태어난 평범한 자식들은 제 삶을 살아보지도 못하고 가족의 생활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 아버지의 할 일 중 의무만을 물려받았다고나 할까. 참 불합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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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양구에 있는 박수근미술관에 다녀왔었다. 왠지 그의 그림은 그렇게 직접 봐야 할 것만 같은 의무감 같은 것이 그때는 있었던 것 같다. 놀라웠던 것은 동행했던 친구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그림이 너무 따뜻하다..라고 말했던 일이다. 책으로 볼때는 자세히 보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그의 아들이 어릴적 느꼈던 느낌과 다르지 않았다.왜 우울한 그림을 그린 것일까? 라고 생각했었는데, 직접 본 그림들의 느낌은 '따뜻하다'였다.
소설로 만나는 '박수근'의 이야기는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다. 미술관에서 마주했던 자료와 일치하는 부분도 있었고,그림을 통해 느꼈던 그림에 대한 해석이 작가의 해석과 비슷하게 일치하는 경우도 있었다. 영화 '프리다칼로'에서 처럼 각각의 그림에서 화가의 이야기를 유추하는 듯한 인상이 들었다.그래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허구적인 느낌이 크게 들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야사'라고 해야 하나?
<빨래터>라는 소설은 소설이라기 보다 박수근에 대한 숨은 이야기정도라고 하면 더 좋을 것 같다. 그의 그림을 따뜻하게 느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가 추구했던 그림의 철학이'素朴(소박)함과 따뜻함을 추구했기때문이다. 친구와 나는 박수근미술관에서 놀랍다고 할정도였다. 그의 그림이 따뜻하다니.. <빨래터>는 그런 궁금증을 많이 해결해 준 책이었다. 위작이라는 사건과 다양한 에피소들이 등장하지만,이 책의 재미는 단연코 박수근이란 화가의 그림에 대한 열정을 풀어 낸 부분이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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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터가 박수근에 대한 이야기란 걸 듣고 박수근에 대해 생각나는 걸 총동원했다. 화가이다. 그리고 여인들이 그림에 많이 등장한다. 그것밖에는 더이상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랬던 터에 보게된 책은 표지부터 눈길을 끌었다. 빨래터에 앉아있는 아낙들. 강가에 앉아 방망이질을 하는 여자 머리에 힌 두건을 쓴 사람, 옆집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하시는 분까지. 순박해보이는 모습들이다. 박수근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서 작품이야기가 나올때 그림을 몇 개는 찾아보았다. 느낌들이 한사람의 손에서 나왔다고 고개가 끄덕일 정도로 닮아있다. 한 가족을 보면 어떤 가족은 가족이라 이야기를 안해도 가족의 이미지가 확 풍기듯, 박수근의 그림에서도 그의 향기가 곳곳에 배어있었다. 한가지 특징이 있다면 사람들이 대체로 흐릿하다. 사람 얼굴의 정면보다는 옆면을 선호한다. 색감이 눈아프지 않고 편안하다. 색감 자체가 오래된 느낌이 든다. 이렇게 박수근이라는 화가에 대해 새로운 것들을 마음속에 담아가는 순간 박수근의 그림은 그림이상의 무엇인가로 느껴졌다. 그림은 작품을 넘어 그의 삶 자체로 받아들여진다. 그의 온 힘을 쏟고, 그의 정신세계를 투사한 하나의 세상과의 매개물이다. 박수근은 그림을 통해서 아내 복순과 아들 성남에 대한 마음을 세상에 내어 놓았다.
아들 성남에 대한 부분은 특히 재미있었다. 성남이가 아버지를 처음부터 존경하지는 않았던 부분이 오래 남는다. 아버지의 그림에서 뭍어나는 가난함이 싫었던 아들의 심경이 귀여우면서도 애처롭다. 아버지 그림에 나오는 사람들이 눈,코,잎이 없는 것이 못내 창피했던 어린 아들 성남이. 성남이의 어머니 사랑을 보면서 기특하기도 하고 아버지와의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다. 이런 것을 성장통이라고 하나보다. 부모님의 어떤 점이 마음에 못내 안내키는 소년 소녀적의 심경들 말이다. 그런 것들이 때론 반항으로 나타나기도 성남이처럼 대화의 부재로 이어지기도 한다. 다행히 크면서 성남이는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어쩌면 어릴적부터 이해는 했지만 이해하는 본인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박수근에 대한 인물 뿐 아니라 그의 아들에 대해 부각시킴으로써 '사랑방손님과 어머니'마냥 소녀소년 발화자가 주는 재미를 던져주었다. 인상깊은 인물로, 복순을 제낄 수는 없을 것이다. 아내 복순은 정말 '지고지순'하다고 밖에는 표현하지 못하겠다. 천상 어머니이고 천상 아내였다. 진정 중요한 내면의 것을 존중할 줄 아는 그녀가 대단하게 생각된다. 그녀의 큰 장점은 가족을 존중한다는 데 있었다. 돈 못벌어오는, 당장은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화가 남편을 끝까지 믿고 끝까지 응원해준 그녀가 있었기에 박수근이라는 이름이 지금에 와서는 크게 이름을 떨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박수근 자체 인물도 은근히 매력이 있긴 하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신이 열성을 쏟는 곳에 매진하는 강인함을 지녔다. 멋진 여자 복순을 알아보고 청혼한 것도 그가 잘한 일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내 복순과 아들 성남의 인물 묘사에 치중하다보니 오히려 박수근 자체의 인물의 매력도는 점점 감해지는 느낌이다. 주변 인물의 강조는 화가로서의 수근보다는 나중에는 남편으로서의 아버지로서의 수근을 보게 됨으로써 새로운 시각을 던져준다. 아들 성남의 화가로서의 인생 행로를 보여주기 위해 박수근의 후광효과는 감해져야 하는 게 당연한 순리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한편으로는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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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전에 박수근 위작 사건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읽기전까지 박수근이란 화가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고 그의 작품이 그렇게 고가에 거래되었다는 사실조차 몰랐었다. 도대체 어떤 그림이기에 국내 경매 사상 최고 가격에 팔릴 수 있었고 위작에 대한 가능성이 제기되었을까? 이 책은 그 시점부터 아들 성남을 통해 되돌아 본 화가 박수근의 삶을 보여준다. 물론 소설이기에 픽션이 가미되었을 것이지만 기본적인 뼈대는 그대로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책을 읽었지만 여전히 나는 어떤 부분이 픽션이고 어떤 부분이 논픽션인지 잘 모르겠다.
새벽에 받은 전화 한통. <빨래터>의 위작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잠이 깬 성남은 그동안 <빨래터>를 소장하고 있었던 존 릭스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어린 시절 성남은 아버지로서의 역할은 등한시한 채 그저 묵묵히 그림만을 그리던 아버지를 많이도 원망했었다. 어린 마음에 엄마를 고생시키는 아버지가 미웠을 것이고 자식들을 배곯게 하는 아버지가 역시 또 미웠을 것이다. 성남은 어머니가 부잣집 딸로 태어났지만 아버지 박수근을 만나 가난한 살림에 고생만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더욱 아버지 수근에 대한 반감이 컸다. 그럴때마다 어머니, 복순은 아버지는 사랑하는 사람밖에 그리지 않는다며, 아버지가 그리는 모든 그림의 주인공이 나라며 함박 웃음을 짓곤 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그림을 그리고 저녁이 되면 술을 마시러 나가는 박수근의 일상이 아들 성남에겐 못미더워보였던 것이 사실이었을 것이다. 화가라는 직업을 싫어했지만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의 그림을 따라 그리고 있었던 아들 성남. 같은 길을 걷게 되면서 아버지의 그림에 대한 애정과 고통을 알게 되었고 뒤늦게나마 아버지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림에 필요한 도구들을 일본에서 사다주고 선물로 받았다던 <빨래터>를 간직했던 존 릭스를 만난 후 그는 그로부터 아버지 박수근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되고 성남에게 그를 많이 닮았다며 아버지는 훌륭한 화가였다는 말을 듣게 된다.
천재는 당대에는 결코 인정받지 못하는 것인가보다. 지금까지 위대한 인물들이 그랬듯이 박수근 또한 살아생전 작품에 대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었으니 말이다. 이 책을 통해 <빨래터>가 위작인지 진짜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위작 논란을 계기로 그동안 알지 못했던 화가 박수근의 삶을 조금 뒤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뿐이다.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위작 논란이 어떻게 결론이 날지 기다려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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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생 시절 교과서를 달력의 하얀 이면으로 싸서 다녔다. 그때 교과서들은 지금처럼 빠딱거리는 종이가 아니어서 반학기가 지날 무렵이면 너덜해지곤했다. 비좁은 가방안에 도시락과 많은 교과서와 공책을 함께 들고 다니면 귀퉁이가 부스러지기 쉬웠던 것이다. 한번은 집에 걸려 있던 제법 따딱한 재질의 달력으로 책꺼풀을 싸게 되었다. 지난 한 해동안 벽에 걸려서 눈에 익었던 그림이 있던 달력이었다. 그런데 보통은 앏은 번들거리는 종이에 사진이나 서양화가의 프린트한 그림이 있어서 달력의 숫자들과 이 그림들의 경계선을 크게 고려않고 반으로 뚝 잘라 두권을 입히곤 했는데 그때 쓰려던 달력지는 그림을 자르기 싫어서 이면의 하얀종이가 아닌 그림이 바깥으로 나오도록 해서 두권이 아닌 한 권을 겨우 쌀 수 있게했다. 그 그림이 바로 박수근이란 화가의 그림이었다. 마치 질긴 옷감에 그려진 그림같기도 하고 기본 무늬가 있는 돌 위에 그려진 그림같아 신기하게 여겼던 기억이 난다. 뿐아니라 그림속의 인물들도 촌티가 풀풀 나는 시골 아주머니들이었다. 가난했던 시절 아낙들의 삶의 체취가 물씬 묻어났다. 이것이 내가 처음 박수근의 그림을 만났던 기억이다.
진짜가 아니라고 뉴스에서 보도되는 바람에 한국 근대 회화에 관심없던 사람들도 박수근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인터넷을 즐기는 청소년들도 다 안다. 그런데 씨끌했던 논란을 가라 앉히기라도 하듯 한 소설가가 그 위작 논란의 그림을 제목으로 한 소설을 펴냈다. 오래전에 박완서 소설을 읽을 때 작가가 미군 피엑스에서 만난 미군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던 화가가 바로 화가 박수근이라는 내용을 알고 호기심이 일었던 기억이 있다. 소설가 박완서만큼 화가 박수근의 삶을 간접적으로 전해준 작가도 드물 것이다. 박완서 작가와 친분이 두텁다고 알고 있는 이 소설의 작가가 화가의 명예회복을 시도한다.
이 소설을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화가의 삶이 새롭게 조명되었다. 소설은 화가의 아들 박성남이 기자로부터 위작뉴스가 보도된다는 것을 전화로 전달받고 답답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던 차에 원 소장자였던 존릭슨을 찾아 미국으로 가게되고 비행기를 타고 가는 도중 그의 머리속에 그려지는 지난 아버지와 어머니의 기억을 이야기로 펼치는 구조로 되어있다. 소설의 내용은 거개 실제 이야기에 기초하고 있을 터이고 팩션은 아닐 것이다. 대신 작가의 시선이 따스하게 화가의 삶을 물위로 건져올려 말려주고 있을 것이다.
작가는 모계사회의 복원을 이상으로 여기는 전작에서 처럼 화가의 어머니와 아내를 많은 부분 이야기의 기본 소재로 삶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아들 박성남의 아버지와의 심적 갈등관계(화가아버지를 둔 사춘기 소년의 입장에서)와 무엇보다도 가난한 삶을 살았지만 그림에의 열정을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았던 화가의 지조가 든든한 이야기의 축이 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작가는 아들에게 늘 자애롭고 아버지의 기운을 살려주려고 노력하는 아내 김복순의 이미지와 화가의 그림에 나타나는 여러 여인네들의 모습을 하나로 오버랩하면서 힘들었던 격변기 한국의 어머니와 아내들의 헌신하는 강인한 모습을 그리고 싶었던 것같다.
존릭슨이란 원소장자를 만나 그의 증언을 듣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되는데 글 사이에는 아들 성남이 아버지같은 화가가 되어 가난하게 살지 않겠다는 어릴 적 생각과는 달리 자신도 역시 화가의 길을 걸었고 또한 아버지의 기법을 따라하며 어머니로부터 아버지보다 낫다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는 말도 곁들여둔다. 위작논란엔 화가의 이 작품이 엄청난 거금으로 경매되었다는 배경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작품의 진위를 떠나 한 화가의 고단했지만 행복했던 열정의 삶이 작품의 가격보다 더 빛난다는 것을 이 소설을 읽으며 깨닫게 된다.
인터넷에서 박수근을 검색했더니 오마이뉴스에 그의 가족 사진이 떠 있다. 아들 성남과 딸 인숙, 그리고 아내 김복순의 모습과 함께 화가의 모습이 드러났다. 런닝셔츠차림의 그가 마루에 앉아 있고 그의 뒤에는 마치 미술관 창고처럼 그의 그림들이 쌓여 있었다. 가난한 화가의 모습에 속이 쓰린다. 아니 42억씩이나 서로 주고 받고 거래하면서 이름도 안 밝힌 거래자들, 또다시 다음 기회엔 더 비싸게 팔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구매자의 투자마인드를 생각하면 위에 구명이 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