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뭐? <벤자민 버튼...>이 스물 다섯살 때 쓴 작품이라고?
'내가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간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는 생각이다. 좋은 학교에서 많은 친구들과 사귀는 일이 그렇게 좋은 지 몰랐던 사람은 다시 학교를 다니며 열심히 학창시절을 보내고 싶을테고, 집과 일로 쳇바퀴를 도는 어느 직장인은 베낭 하나 달랑 메고 젊다는 것 하나만 믿고 세계를 다니고 싶을게다. 반토막난 주식에 매일 시름을 앓는 투자자나 부동산 투기꾼은 젊은 시절로 돌아가면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 블루칩 투자종목과 노른자위 땅들을 사놓고 싶다 할테고, 얼굴도 보지 못하고 시집간 할머니는 한 번이라도 좋으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싶다 할게다.
하지만 역시 인간인지라 이런 꿈조차도 욕심이 뭍어 있다. 운좋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면 기억은 두고가야지, 살아본 인생의 경험을 가지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니 '칼안든 도둑놈 심뽀'가 따로 없다. 원래 남녀한몸이었던 인간의 능력은 '신의 그것'에 준해서 감히 신의 자리에 가고자 바벨탑을 쌓았다가, 신의 노여움으로 탑은 무너지고, 남녀는 반으로 쪼개졌으며, 서로 다른 언어와 생각을 갖게 하는 벌을 내리지 않았던가? 오늘까지의 기억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가려는 인간의 마음은 바벨탑을 쌓았던 남여한몸의 인간과 별 다를 바 없다. 그러니 아예 그런 꿈일랑 꾸지 않는 편이 좋을게다. 용케 과거로 돌아가는 기술을 발견한다면, 발견자가 사라지던지 아니면 기억은 놓고 가도록 만들것 같다. 신화속 신들은 인간을 꽤나 질투했으니까.
또 한 명의 어리석은(?) 인간이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 '내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어려진다면...어떨까?' 백세주를 마셨나? 나이들면서 점점 회춘하시겠다? 발칙하고 당돌한 상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상상은 이야기가 되어 지난 겨울 우리에게 영상으로 나타나 현실화 되었다. 세계적인 명배우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이 벤자민과 데이지로 나와 안타까운 한 편의 러브스토리를 만들었으니, 영화제목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였다. 이 영화의 원작은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으로 어니스트 헤밍웨이, T. S. 엘리엇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20세기 최고 거장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F. 스콧 피츠제럴드가 썼다. 영화가 기괴하지만 슬프고 애절한 사랑을 이야기했다면, 원작은 로맨스와는 상관없이 고독한 인간의 원형을 그리고 있다. 원작대로 영화가 만들어졌다면...글쎄, <크리스마스의 악몽>의 팀 버튼 감독이 메가폰을 잡으면 좋겠다.
책장 처음을 넘기자 마자 좋지 않은 병원 분위기가 나타나더니 태어나면서부터 지팡이가 필요할 정도의 늙은 노인의 모습을 한 괴물 벤자민이 등장한다. 엄마의 모습은 언급조자 하지 않고, 아이는 말을 한다. 아마도 쉰 목소리의 할아버지 음성이겠지? 배가 고프다하니 우유를 주더라 역정을 내는...어떻게 태어났을까 상상만 해도 걱정된다. 제대로 순산은 아닐 듯, 에일리언의 탄생을 닮지 않았을까? 아서라, 생각만도 끔찍하다.
출생부터 냉대를 받더니 한참을 클 동안 무관심 속에서 자란다. 아, 할아버지와는 친구를 먹더구만. 할아버지가 '~씨'라고 붙일 정도의 외모였다니, 짐작하고 남는다. 머리는 영young 하지만 몸은 올드old 한 50줄 모습의 벤자민은 성숙한 중년을 이상형으로 갖고 있는 처자 데이지를 만나 사랑에 눈뜬다. 사업엔 '딱'좋은 풍채의 벤자민이었으니 비즈니스는 성했고, 결혼 또한 축복을 받았다. 그런 기쁨의 순간도 잠시 점점 젊어지는 벤자민, 상대적으로 제대로 늙어가는 데이지의 격차는 점점 커지고, 급기야 아들이 '날 삼촌이라고 불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젊어진다. 그리고 결국...
영화를 봤던 독자라면 원작을 통해 각본의 놀라움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스물 넷의 젊은 나이에 대법원 판사의 딸과 결혼 했지만, 방탕한 생활로 재산을 모두 탕진해 버리고 많은 빚을 지게 되는 F. 스콧 피츠제럴드, 경제적 압박과 아내 젤다의 신경쇠약 발작등 노년의 그의 삶은 그가 남긴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데, 이 작품은 제대로, 아주 제대로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젊은 시절 소설가로 유명해질 만큼 똑똑했던 피츠제럴드는 70 노인의 머리를 가졌고, 술에 의지해 하루 하루를 연명했던 말년은 우유가 필요한 아기의 모습을 닮은 것 같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작품이 1921년 콜리어Colliers 잡지에 실렸다는 점이다. 그의 미래를 내다봤다는 것일까? 아니면 결혼 후(1920년) 1년 만에 평생동안 암울할 것 같은 자신의 결혼생활을 짐작했단 소릴까? 아무튼 25세의 청년이 정신연령과 신체연령간의 심오한 의미를 알았다는 점은 그가 위대한 작가로 불리는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영화를 먼저 봤던 터라 원작을 읽는 재미가 반감되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비슷한 스토리지만 전혀 다른 관점이었던 원작이라 특별하게 느껴졌다. 원작에 충실한 영화가 나와도 괜찮을 법하다(물론 메가톤은 팀 버튼 감독이 잡아야겠지만...). 책 속에 또 다른 책 한 권이 부록으로 있으니 놓치지 말자.
P.S: 친절하게도 한국어판을 거꾸로 뒤집어 보면 영어 원작을 만날 수 있다. 원작은 39 페이지 였지만, 이 책은 읽기 쉽게 65 페이지로 늘려주었다.
|
|
책보다 영화로 먼저 만난 이야기.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어떻게? 태어나면서 죽음에 가까운 노인의 모습? 으악.. 경악스러워라. 하지만 그 발상이 정말 기발하다는 감탄을 멈출 수 없었던 이야기.
영화는 병원에 있는 한 여인의 회상신으로 시작하는데 반해 책은 바로 벤자민 버튼의 탄생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태어나면서부터 노인의 모습으로 생활하게 되는 벤바민 버튼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래선지 영상으로 만나면서 보게 된 그의 모습과 그의 성장보다 책은 빠르게 이야기를 전개시켰다는 느낌이다.
차분하게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어간다기보다 뭔가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빠르게 정리해 놓았다는 느낌이랄까. 중요한 부분만 썸머리해놓은 이야기를 만났다는 느낌이랄까. 미안하지만 영상으로 만난 벤자민 버튼보단 머릿속 그림을 그려주던 상상력이 덜 했음이 솔직함이다.
그래도 영화의 마지막 부분을 궁금해하던 내겐 그 이야기의 결말이 안개 속으로 인생의 한 모습이 사라지듯 아련한 것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리고 모습의 변함, 모습이 가진 시간에 따른 생각의 변함도 어찌 보면 놀라왔다. 그렇구나, 생각하기엔 모습이 젊어져도 전에 가졌던 기억은 남았으리라 싶었는데, 벤자민은 어쩜 그리도 솔직한지 나이가 젊어지면서 그 나이에 맞는 기억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세월을 거꾸로 살아간 그의 모습, 그의 모습에 정상적으로 장난치지 말라고 짜증 내던 그의 아들의 모습. 이야기를 접할 수록 평범함이 주는 행복감에 난 지금의 나에게 감사하게 되었던 책이다. |
|
영화 예고편을 눈여겨보다 원작을 위해 조금 아껴뒀다. 영화에서는 벤자민 버튼과 그 사랑하는 여인과의 시간의 엇갈림을 안타깝게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원작은 좀 무겁고, 철학적이다. 버튼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운명으로 태어나 사람들의 입방아에 쉴새없이 오르내리며 가족들의 냉대를 받고 집안의 골칫거리가 된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깊은 주름이 사라지고 흰 머리가 다시 멋진 갈색머리로 바뀌면서 그의 실제 나이와 신체 나이가 하나가 되었을 때, 그의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기에 이른다. 그 행복도 잠시뿐, 그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심지어 그의 아들보다 더 젊 고 아름다운 청년으로 바뀌어 가고 운명으로 여겼던 그는 누구보다 아름답게 생각하던 아내의 나이든 모습에 실망하며 사교계에서 다른 쾌락을 쫓는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실제 나이와 신체 나이가 일치했던 순간을 정점으로 벤자민 버튼은 자꾸 젊어지고, 결국 청소년, 아동, 유아에 이르러 요람에서 사라진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세월을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나이가 들면 그 나이에 맞는 책임감과 행동들을 요구한다. 짓궂은 그의 운명이 그러했듯 벤자민 버튼은 그러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나이 들어감을 참을 수 없어한다. 깊게 패인 주름, 점점 딸리는 기력, 침침해지는 눈... 그래서 의학에 힘을 빌리고 그 겉모습을 더욱 젊게, 아름답게 만든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닐 것 같다. 세월이 흘러가며 쌓이는 인생의 많은 경험들과 노하우들. '연륜'이 묻어 난다고 하지 않는가?
사람은 젊고, 늙음의 기준은 겉모습이 아니라 그 내면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을 더욱 가꾸어야 하지 않을까? |
|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영화로 재미있게 봤었는데 원작소설의 작가가 영화 개봉 전후로 여러 출판사에서 경쟁이라도 하듯 이 책을 쏟아내었는데 우연히 그 중 한 권을 손에 넣게 되었다. 아기의 모습이 아닌 그야말로 노인의 모습 그대로 태어난다는 것이 큰 차이라 할 수 있었다. 아기라고 할 만한 구석이 전혀 없는 아기였다. 책에서는 그냥 집에 데리고 가서 키운다. 그래서 아버지와의 갈등이랄까 그런 면이 부각되고 있다. 다루어지고 있지만 오히려 점점 젊고 매력적으로 변하는 벤자민이 늙고 매력을 잃어가는 아내에 현실이 등장해 완전히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마지막에 벤자민이 너무 늙어 아기가 되어 죽기까지의 과정도 영화에선 데이시가 사랑으로 그를 돌봐주지만 책속에선 벤자민의 아들의 냉대 속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한다. 영화가 너무 로맨스에 치중하면서 독특한 설정의 묘미를 많이 빼앗아갔다면 책에서는 정말 나이를 거꾸로 먹는 사람이 겪게 될 일들을 보다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물론 설정 자체는 황당하다 할 수 있겠지만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면 겪게 될 일들을 통해서 우리와 같은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의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위대한 개츠비'도 영화로만 보고 소설로는 읽어보지 못했는데 이 책을 통해 있는 일들, 그리고 벤자민과 주변 사람들의 적나라한 마음까지 거의 백년 전의 단편임에도 전혀 감각이 떨어지지 않는 책이었다. 내가 읽은 북스토리 버전의 이 책은 거꾸로 뒤집으면 영어로도 읽을 수 있는 재미를 선사해주었다. 물론 영어로는 그다지 재미를 느낄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ㅋ 주인공 벤자민의 특징을 잘 살린 출판사의 편집도 나름 돋보였던 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