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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 개 다람쥐는 메리온네 가족의 헛간에서 태어났다. 엄마는 다섯 강아지를 낳았지만 셋은 죽고, 오빠 뼈다귀와 다람쥐 자신만이 살아남았다. 태어난 지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음식을 구하러 나갔던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남아진 남매는 메리온네 가족의 헛간을 떠나기로 한다.
태어나서 처음 보게 된 고속도로 위를 쌩하니 달려가는 차들, 그들은 그곳에서 마시와 조지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난생 처음 집으로 들어가게 된 이 남매는 그곳에서 어떻게 생활을 해아하는 건지 전혀 알 수 없었고, 엄마의 가르침대로 사람들을 무서워하며 경계하게 된다. 말썽만 피우고, 으르릉대는 두 마리의 강아지를 키울 수 없다고 생각한 조지는 쇼핑센터의 아스팔트 주차장에 그들을 내동댕이쳐 버린다. 그 와중에 어깨를 다치게 되는 다람쥐, 엎친데 덮친격으로 오빠 뼈다귀를 어느 여인이 키우겠다고 데려가 버리고, 혼자 남겨진 다람쥐,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막막하고 두렵다.
다람쥐는 엄마가 그러했듯이 떠돌이로 삶을 이어가게 된다. 강아지시절 누군가의 애완견이 되었다면 좋았으련만 봄이 가고 겨울이 오고 다시 봄이 오는 쌓여가는 세월 속에 자라나는 개로 성장해도 다람쥐는 떠돌이의 신세를 면하지 못 했다. 길가의 쓰레기통을 뒤져 음식을 구하고, 들쥐를 잡아 먹으며, 풀숲 위에서 밤하늘을 이불삼아 잠을 청해야 했던 떠돌이 개 다람쥐, 그 아이의 인생이 담겨져 있는 책이다.
떠돌이 개의 시선으로 채워진 이 책은 다람쥐의 고단한 인생길을 함께 따라가면서 찡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말년에 누리는 평화에 안도의 행복감이 들기도 한다. 다람쥐와 달의 우정에 관한 부분을 읽을 때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아름답고 감동적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결국 달과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될 때는 애잔해지기도 했다. 한떄는 누군가의 애완견으로 살아가게 되기도 하는 다람쥐이지만 그들의 무관심으로 다시 버려지고마는 다람쥐는 결국 세월이 흘러 흘러 늙은 개가 되고만다.
애완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책임감을 가슴에 담아두고 시작해야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단순히 귀여워서 키워보고싶다고 생각했다가 애완동물들을 제대로 돌볼기를 하지 않고 버려버리는 일들도 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떠돌이 개로 살아가야하는 삶의 고단함을 생각한다면 신중한 결심 속에 강아지를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책이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이나 소중한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생명가진 것들에 대한 보살핌과 사랑의 열린 따스함을 가지는 것은 사람이기에 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햇살의 따스함만큼 뜨거운 심장을 가진 사람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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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랜만에 읽은 동물책이네요. A Dog's Life라,,, 어쩌면,, 개의 삶 또한 인간의 삶처럼 태어나고, 인생을 살고, 또 죽음을 맞이하는것은 같을 수 있지만,, 인간의 삶으로 살아가고 있기에,, 또 그리고 제가 그렇게 동물을 키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에 이 책을 통해서 동물을 만난다는 것은 개의 인생을 읽어보고, 어떤 편견도 버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책 한권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본 책이랍니다.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다람쥐라는 개의 한 평생을 그린 책이랍니다. 이 책은 사이즈가 작아서 전철안에서 읽은 도서인데요.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참 행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 조카의 돌잔치에 가려고 일산으로 출발하면서 책을 꺼내 가방에 넣고 왔다 갔다 하면서 읽었던데 다람쥐(개의 이름)의 인생을 읽으면서 재미와 함께 또한 인생도 느낄 수 있고, 감동까지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가 기억나는 것은 다람쥐의 오빠랑 함께 모험을 떠나면서 오빠랑 헤어지게 되고 다람쥐가 인간에 의해 발견하게 되면서 두 아이들이 다람쥐를 자기들이 키우자고 했는데 두 아이는 처음엔 다람쥐랑 잘놀고 또 밥도 잘 챙겨주고 하다가 나중에 점점 다람쥐를 잊고 나중엔 아에 밥도 제때 챙겨주지 않아서 다람쥐가 혼자 끼니를 떼우는데,, 여름 휴가가 끝난 가족이 다람쥐를 아에 그 집에 두고 가버리고 홀로 되는 다람쥐를 보면서,, 어쩌면 우리또한 이렇게 필요에 의해 동물들을 키운다 약속하고 점점 잊혀져 가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하지만,, 나중에 다람쥐가 다람쥐를 잘 돌봐줄 할머니를 만나서 둘이서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마지막 장면은 정말 감동적이였던 기억이 납니다. 떠돌이 개라고 해서 우리가 그저 한번 슬쩍 보고 지나갈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 개 역시 하나의 인격체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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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떠돌이 개의 자전적 이야기이다. '다람쥐'라는 이름에 책을 펼치기도 전부터 궁금증이 밀려왔지만 그에 대한 해답은 너무도 쉽게 풀렸다. 떠돌이 개였던 다람쥐의 엄마는 출산을 얼마 앞두고 메리온네 헛간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다람쥐의 오빠 '뼈다귀'와 '다람쥐'를 낳았다. '뼈다귀'와 '다람쥐'라는 이름은 엄마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 중에서 골라 붙여준 것이 바로 그 이유였다. 처음엔 '뼈다귀'라는 중요성은 이해가 되었지만 '다람쥐'에 대해서는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아닌게 아니라 개들은 잡식성이긴 하지만 다람쥐를 먹는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말이다.
그러나, 떠돌이 개였던 엄마의 보살핌으로 메리온네 헛간에 있는 손수레에서 지내던 다람쥐가 결국엔 운명처럼 떠돌이 개로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비로소 다람쥐가 떠돌이 개의 먹이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다람쥐에게 삶은 과연 어떠했을까....... 떠돌이 개 다람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고단함 그 자체였다. 엄마품에서 평화로운 삶은 지나치게 짧았고 오빠마저 사람들에 의해 헤어지고 난후 혼자서 살아가는 다람쥐. 사람들로부터의 구원의 손길은 너무나 멀리 있었고, 도시의 개가 되어 쓰레기통을 뒤지기도 하고 도로위와 숲속을 전전하는 떠돌이 개가 되어 들쥐며 작은 짐승들도 사냥하며 사계절을 몇 번이나 살아낸다.
물론, 간간이 사람들의 따스한 손길이나 온기를 함께 나누었던 동무도 있었지만 언제나 마지막엔 다람쥐 혼자였다. 어느새 어설프던 강아지였던 다람쥐는 세상 구석구석을 온몸으로 살아낸 늙은 개가 되어 있었고 세상 끝에 다다랐을 즈음엔 행운과도 같은 늙은 여자 '수잔'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를 너무나 잘 이해한다.......
떠돌이 개 다람쥐의 이야기는 무엇하나 특이할 것 없는 이야기임에도 다람쥐의 이야기에 점점 더 빠져들어 결국엔 수잔의 침대에서 온기를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다람쥐의 모습에 참으로 안도하게 된다.
엄마도 오빠도 친구도 결국엔 잃어버리고 꿋꿋하게 버티며 여러 계절을 견디는 떠돌이 개 다람쥐의 이야기에서 어쩌면 우리의 모습을 읽고 있는 듯한 착각(생각?)이 들게 한다. 그래서 다람쥐의 정처없는 발걸음에 가슴이 찡하고 구원과도 같은 수잔과의 만남은 얼마나 다행인지....... 길고 긴 외로움의 끝에 짠~하고 나타난 수잔이 얼마나 고마운지........ 내가 다람쥐라면 용기와 끈기를, 그리고 수잔이라면 따듯한 마음을 가진 그런 모습을 그려보게 하는 잔잔한 그러나 가슴 찡~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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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라는 이름을 지닌 어느 떠돌이개의 일생을 그리고 있다. 원제가 A Dog's Life. 처음에는 다람쥐라는 이름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리라 여겼는데, 읽고나니 꼭 그렇지만은 않고, 원제에서 왜 표현되어 있지 않은지 알 것 같았다. 그럼 다람쥐를 저토록 전면에 내세운 건 단순히 호기심을 끌기 위한 것이었을까? 다람쥐라는 이름은 엄마 개가 지어준 이름이다. 좋아하는 대상물로서 이름을 삼는 것이 떠돌이개들의 전통이다. 그래서 다람쥐의 오빠는 뼈다귀이다. 다람쥐와 뼈다귀 둘 다 먹잇감이다. 이쯤 되면 다람쥐라는 예쁜 이름이 좀 무색하다. 다람쥐를 사랑하는 것이거나 다람쥐와 친구라서 지은 이름이 아니라 다람쥐를 잘 잡아먹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 사실 책을 읽고나서 바로 든 생각은 '굳이 책 제목을 저렇게 뽑아야 했나.' 였다. 그런 뒤 곰곰 생각해 보았다. 다람쥐라는 이름이 지닌 의미를. 그건 주인공이 떠돌이개라는 뜻이겠구나 싶었다.
애완견은 다람쥐를 잡아먹지 않는다. 그럴 일도, 그럴 능력도 없다. 반대로 살기 위해 다람쥐를 사냥해야 하는 떠돌이개에게 먹는 일이 녹록할 리 없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개를 육식동물로 여기지 않는다. 우리에게 떠오르는 모든 개는 사람과 함께 살며 보살핌을 받는다. 저 밖으로 떠돌아다니는 개는 전혀 고려와 사랑의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야생으로 가지도 못하고, 사람 주변을 떠도는 개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개의 삶은, 사람과 가장 친하다는 이유로 참 팍팍해졌다. 사람은 다른 동물 위에 군림한다. 마음대로 잡아다 길들이고, 예뻐했다가, 싫증 나면 외면한다. 길들여진 동물들이 버려지면 그야말로 비참한 지경에 빠진다. 떠돌이개도 누군가가 버린 개들이다. 자신이 누구에게서 왜, 언제 버려졌는지 모르지만, 떠돌이개는 최선을 다해 살아나간다. 다람쥐의 뒤를 쫓아 숲속을 누비며.
방학 때만 가족들이 찾는 어느 집 헛간에서 태어난 다람쥐와 뼈다귀. 어느 날 엄마가 나가서 돌아오지 않자 다람쥐 남매의 삶은 낯설고 험한 세상으로 곤두박질친다. 엄마는 아마 죽었을 것이라고 다람쥐는 생각한다. 사실이 그럴 것이다. 죽음이거나 그 비슷한 상황에 처하지 않고 자식을 버리는 어미는 없으므로. 뼈다귀를 따라 정처없는 떠돌이 생활에 나선 다람쥐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무작정 데려갔다가 때리고 차에서 밖으로 던지는 이, 말없이 먹을 것을 주는 이, 사랑하는 척하면서 방치하고 굶기는 이 등. 떠돌이가 더 귀엽게 생겼다는 이유로 사람에게 잡혀가고, 방랑 중에 만난 친구 달은 둘이 함께 당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매번 다람쥐는 혼자가 된다. 길고 고단한 삶. 다람쥐가 따뜻한 사람을 만나 정착했을 때 그 개는 이미 늙어 있었다. 그리고 다람쥐를 동반자로 받아들인 사람, 수잔도 여든이 넘은 할머니였다. 둘은 아마 삶을 마감할 때 옆에 있어줄 동반자가 될 것이다. 짧은 행복.
평생을 떠돌아다닌 개, 다람쥐의 이야기는 어쩌면 어머니의 뱃속에서 떨어져 나와 끝없이 홀로서기를 하는 우리네의 삶을 투영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상 속에서 분투하고, 성공과 좌절을 번갈아 경험하며, 끝없이 외로워하며, 마치 다람쥐가 태어난 그 헛간을 그리워하듯 딱 그렇게 유년시절을 그리워하며, 결국 늙어가는 우리네의 삶. 뉴베리상 수상작가이기도 한 작가는, 실제 동물구호단체에서 일한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하여 이 책이 그저 개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다람쥐의 삶을 우리 삶에 투영해 보지 않으면 이 이야기는 정말 '타자'의 이야기에 그치게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신의 필요에 의해 불러들여 길들인 동물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 것인지 여러 가지로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물론 주 독자층인 어린이들이야 어떤 의미가 됐든 감동적인 느낌으로 읽으면 그것으로 충분하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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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좋아하는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시댁어른들, 반면에 난 개를 무척 싫어한다. 세퍼드부터 시작해서 진돗개, 족보가 있는 개부터, 동네에서 얻은 누렁이까지 결혼해서 15년이 지나도록 집에 개가 없었던적이 없는것 같다. 그덕에 신랑은 서울에서 족보가 있는 개라면 구해서 시댁에 선물해 주기위해 시댁내려가기전 이삼일 정도를 집에서 강아지를 키운적이 몇번 있었다. 아이들은 강아지가 집에 있는 날이면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와서는 그 강아지를 목욕시키고, 학교운동장으로 끌고 가서 산책시키고, 아이들 불러모아 자랑하고, 하지만 나에게 개냄새에 사료에 강아지가 있는 삼일동안은 히스테리가 극에 달해 거의 실신지경에 이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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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성화에 못이겨 강아지를 키운 지 2년이 조금 넘었다. 우리가 키우고 나서 주위 몇 집도 영향을 받아 키우고 있다. 그런데 그 중 한 집은 유기견을 입양시켰다. 그 강아지는 아주 아기였을 때부터 키웠던 우리집 강아지보다 말을 어찌나 잘 듣던지, 우리 아이들이 샘을 낼 정도다. 가끔 그렇게 훈련도 잘 되었고 순한 녀석이 어째서 주인을 잃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제라도 새 가족을 만났으니 다행이다. 그 강아지도 보호소에 있는 동안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까. 문득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 감정이 사람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이라지만 강아지를 키우다 보니 감정이 인간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기 때문이다.
다람쥐라고 이름 지어진 강아지의 일대기를 강아지 본인의 서술로 들려주고 있다. 그런데 다람쥐라는 이름은 강아지의 엄마가 붙여준 이름이기 때문에 사람은 그 강아지를 다람쥐라고 부른 적이 한 번도 없다. 사람이 강아지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으니 이름이 다람쥐라는 것을 어찌 알겠나. 처음부터 누군가의 강아지가 아니라 그냥 엄마, 오빠와 함께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헛간에서 살던 다람쥐가 그곳을 떠나 떠돌아다니기도 하고 가끔은 인간의 손에 키워지기도 하다가 마침내 함께 살아갈 누군가를 만난다는 이야기는 어찌보면 뻔한 구성일 수 있지만 작가는 개가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는지에 초점을 맞춘 듯하다. 특히 휴가 기간에 머무는 동안에만 키울 것이면서 입양을 해서 처음에는 정성껏 돌보다가 차츰 소홀해지고 결국 개를 키웠었다는 것조차 잊고 그냥 떠나가는 가족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무책임을 비꼰다.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가 다람쥐가 떠돌이 생활을 하는 부분을 자세하고 길게 묘사하고 있다. 요즘 우리 동화책의 추세가 상황이나 배경묘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인데 이 책은 그러한 묘사가 상당히 많다. 그래서 앞부분에는 좀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게다가 로드 무비처럼 다람쥐가 끊임없이 떠돌아다니는 모습을 반복해서 묘사하니 더 그랬을 것이다. 또 힘들게 지내는 다람쥐의 모습이 안타까워서 이제 그만 좋은 주인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을 것이고(마지막에 수잔을 만나서 편안하게 생활하는 부분을 읽으면서는 그런 지루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분명하다). 태어나서부터 거의 구 년간 떠돌아다니는 개를 묘사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중간중간 다람쥐가 만나는 여러 모습의 인간을 겪으면서 다람쥐가 불평을 할 만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아마도 다람쥐가 인간의 생활이나 마음을 다 아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개의 입장에서 보아 온 모습으로만 판단하기 때문에, 즉 다람쥐에게 작가를 대입시키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에 드디어 다람쥐가 에디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수잔과 함께 사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안도하게 된다. 이제 에디는 애완동물이 아니라 수잔의 반려동물이 된 것이다. 가끔 나도 혼자 있을 때 강아지에게 말을 걸곤 한다. 수잔이 에디를 만나고 나서 수다쟁이가 되었다고 하는데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 어떻게 개와 이야기를 하냐고 할지 모르지만 키우다 보면 그렇게 된다. 어쨌든 동물보호에 애쓰는 작가가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그런지 책을 읽고 나면 강아지의 입장에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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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og"s life 라는 원제에서 알수있듯 개의 시점에서 바라본 개의 일생이야기였습니다. 난 어릴적 시골에서 자란탓에 개하면 우리 조상님들이 그러했듯 소위 똥개라고 불리우는 개들의 삶에 더욱 친숙합니다. 우리가 먹다 남긴 찌꺼기를 먹고 잠자리는 마루밑이었으며 간혹 심기불편한 아빠의 화풀이 상대가 되어야만했던 워리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던 개 그후 친한 언니가 애지중지했던 둥이라는 이름의 개를 통해 그런 나의 생각들은 많은 변화를 격게 되었습니다.
절대 사람과는 같은 공간에 있을수 없다 생각했던 가축의미가 컸었던 개였는데 어느날 보게된 잠자리와 음식을 공유하는 둥이와 친한 언니의 모습은 나를 기겁하게 만들었었습니다. 어떻게 그럴수 있는걸까. 하지만 자주보면 적응되고 적응되면 자연스러워지는 법, 그후 몇번의 만남을 통해 내가 가지고 있던 개에 대한 생각들이 변화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요즘 개는 더이상 가축의 의미가 아니라 가족의 일원으로 당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듯합니다.
요즘 주변에서 흔히 볼수 있는것이 애완견이고 우리집 또한 몇년전부터 강아지를 키우고싶다는 아이들의 성화가 끊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사람들의 삶속에 당당히 끼지못한 개가 있었습니다. 떠돌이 엄마의 몸에서 태어났기에 떠돌이일수밖에 없었던 다람쥐 험난한 세상에 엄마를 잃고, 오라버니 뼈다귀와도 헤어질수 밖에 없었으며 그래서 혼자였던 떠돌이개 다람쥐입니다.
수잔이라고 하는 마지막 동반자를 만나기전 10년의 시간을 홀로보낸 다람쥐의 이야기속에는 혼자이기에 고단했던 삶이 친구가 있어 행복하고 위안이 되었던 삶이 있었으며 더불어 참으로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인간들의 다양한 군상이 담겨있었습니다.
드넓은 자연속에서 혼자 살아간다는것은 참으로 외롭고 고된 인생이었습니다. 아침에 집을 나섰다 돌아오지 않는 엄마의 부재는 바로 죽음으로 연결되고, 그 죽음의 그림자를 피해 나선길에 다람쥐는 인간의 무지막지한 힘앞에서 어깨부상을 당하고 오빠 뼈다귀를 떠나보냅니다. 다람쥐는 뼈다귀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고 뼈다귀는 사람들의 삶속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지만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엄마가 그러했든 다람쥐도 이젠 혼자만의 따돌이 개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루의 잠자리를 해결하기위해 이동해야하고 살기위해 음식을 찾아다녀야만 하는 고단한 인생, 친구보다는 적이 많은 세상속에서 혼자 살아간다는것이 그리 녹록하지가 않습니다, 간혹 아무말없이 식사를 해결해주는 고마운 이도 있고 따뜻한 손길을 건네는 이도 있지만 다람쥐에게 사람은 여전한 경계대상 1호입니다.
그런 그에게도 친구가 생겼습니다. 달, 같이 있으면 힘이되어주는 존재 비록 적은 양식일만정 나눠먹을수있는 그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는 존재 달로인해 하나보다는 둘이 더 좋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하지만 떠돌이개에게는 친구마저도 사치였나봅니다. 식량을 앞에두고 영역싸움을 벌이는등 서로에게 힘이되어주었던 달은 어느날 달려오는 차를 피하지 못하고 죽고 맙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떠돌이개의 험난한 10년의 삶속에서 맺은 다양한 인연중 가장 부끄러웠던것은 벡커가족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매일매일 놀아주던 사람들이 어느날부터인가 세끼 밥챙겨주는것을 잊더만 여름이 지나고 작별의 인사도 없이 훌쩍 떠나버리는 모습엔 현재 수없이 버려지는 유기견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한때의 호기심과 필요에 의해 애완동물을 키우다 실증나고 힘들다는 이유로 방치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기에 아직도 우린 존중해줘야 같은 생명체로 생각하기보단 사람들의 편의로만 인식하고 있는게 아닐까 ....
무수한 고난을 이겨내고 마침내 수잔이라고 하는 동반자를 통해 다람쥐가 찾아낸 편안한 노년의 모습은 엄마의 품속에서 마냥 행복하기만했던 어린시절로의 회귀인듯 평화롭고 안락하기만하다. 우리 인간들의 모습도 이와 같지않을까 치열한 전쟁을 치루듯 보낸 삶에서 마지막 휴식을 취하고가는듯한 모습을 보게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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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땐 동물을 키워본적도 있고, 주위에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도 있지만 한번도 개의 일생은 어떨까? 혹은 개도 사람처럼 생각을 할까.. 하는 생각을 해본적은없다. 물론 의인화된 동물들이 나오는 영화나 소설등은 많이 있지만, 동물 자체의 일생보다는 사람의 일생을 동물에 투입해서 보는 경우가 많으니 특별히 그 동물 자체에 관심을 두진 않았던 듯하다. 헌데 이 동화책은 색다르게도 개가 주인공이고, 이름이 다람쥐이며, 늙은 개가 되버린 현재에 과거에 인생을 돌아보며 얘기를 들려주듯 시작된다. 늙은 할머니 수잔의 곁에서. 어린시절-친구-홀로서기-정착,,이렇게 4부로 나뉘어진 구성에서도 보여주듯, 다람쥐는 떠돌이 개로서 일생을 살아오며 인간이 성장하듯 성장해온다. 어린시절 엄마가 떠나고 오빠와 시작한 떠돌이 생활..중간에 오빠와도 헤어지고, 친구 달을 만나고 또 헤어지고.. 인간과도 만나 의지하기도 하지만, 또 쉽게 그들로부터 버림받기도 하고.. 처음에 인간에 사랑받는 애완견이기도, 버림받는 개가 되기도,학대받는 개가 되기도 하는등.. 인간에 의해 점점 상처받는 모습들이 참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제 늙은 개가 된 다람쥐는 다행히 수잔을 만나 신뢰를 갖고 정착을 하게된다. 다람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억지로 감정이입을 해서 인간이 어떤 상처를 입혔고,어떤 마음인지 하는 것들을 보여주진 않는다. 다만 그 상황들을 겪어나가는것을 그냥 담담하게 들려줄뿐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어렸을때 키웠던 개도 생각이 많이 나고, 주위의 떠돌이 고양이를 볼때마다 싫은 감정을 가졌던 나도 좀 반성을 하게됐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아마도 그 동물에 대해 좀 다른 시선을 갖게 될것같다. 그들도 인간과 동등한 하나의 자연속의 생명체이고 인간도 역시 동물일뿐이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