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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내 눈이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김기택 시집을 읽노라면. 그의 세심한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놀라기 일쑤다. 그가 이미 본 것을 난 여태 보지 못했을까. 그의 수정체엔 울트라 렌즈가 껴 있는 걸까? 그의 렌즈로 세상을 보면 버스도, 버스를 운전하는 기사도, 문방구 앞도,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도, 골목에서 우연히 만난 고양이도 새롭게 보인다. 잠깐 그와 눈이 마주쳤다. 낯이 많이 익은 얼굴이었지만 누구인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너무나도 낯선 낯익음에 당황하여 나는 한동안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도 내가 누구인지 잠시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는 쓰레기봉투를 뒤지고 있었다. 그는 고양이 가죽 안에 들어가 있었다. 오랫동안 직립이 몸에 배었는지 네발로 걷는 것이 좀 어색해 보였다. (하략) - ‘그와 눈이 마주쳤다’ 부분 나 또한 고양이와 눈이 마주친 적 많았다. 고양이와 함께 로시니의 ‘두 마리의 고양이’나 불러볼까, 싶은 우스운 상상으로 끝내곤 했다. 고양이 눈 속에서 또 다른 누군가를 발견할 수 있음은 아예 차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저 지나침이라고 하기엔 긴 시간을 서로가 서로를 응시하면서, 내가 먼저 자리를 비켜주지 않으면 그의 행위를 방해하는 꼴이 될 것 같아 시선을 피하곤 했다. 그와 나의 ‘연’을 짐작하지 못한 채. 물기가 다 말라 딱딱한데도 지금은 불에 구워지고 있는데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생선 굽는 나를 지글지글 구워지는 눈으로 보고 있다. (중략) 아무것도 볼 필요가 없는데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도 아직도 눈을 뜨고 있다. 이글이글 익는 눈으로 눈을 태우는 불을 보고 있다. - ‘생선구이’ 부분 한번도 죽음을 본 일이 없었기에, 죽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기에, 죽음은 접시 위에서 살아 있을 때보다 더 격렬하게 꿈지럭거렸다. 죽으면 꼼짝 않고 있어야 한다는 걸 몰랐기에 제 힘과 독기를 모두 모아 거친 물굽이처럼 요동쳤다. 어찌나 심각하게 꿈틀거리던지 자칫하면 죽음이 취소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중략) …토막난 다리와 빨판들은 한 마리의 통일된 죽음이기를 포기하고 한 도막 한 도막이 독립된 삶이 되어 접시 밖으로 무작정 나가려 했고… - ‘산낙지 먹기’ 하나같이 생생하게, 아니 섬뜩하게 다가온다. 관찰자가가 응시하는 질긴 죽음의 과정이 무덤덤하면서도 유쾌하면서도 아릿하다. 표제작 ‘껌’은 어떤가. 질긴 죽음의 과정이, 아니 질긴 생의 과정이 진저리쳐진다. 누군가 씹다 버린 껌. 이빨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껌. 이미 찍힌 이빨자국 위에 다시 찍히고 찍히고 무수히 찍힌 이빨자국들을 하나도 버리거나 지우지 않고 작은 몸속에 겹겹이 구겨넣어 작고 동그란 덩어리로 뭉쳐놓은 껌. (중략) 지구의 일생 동안 이빨에 각인된 살의와 적의를 제 한몸에 고스란히 받고 있던 껌. 마음껏 뭉개고 갈고 짓누르다 이빨이 먼저 지쳐 마지못해 놓아준 껌. - ‘껌’ 부분 세상이 생활이 달라 보인다, 그의 시집을 보면. 그의 손가락들에 경의를 표한다. 옷을 갈아입고 외출하다 뭔가 쓰려고 보니 주머니에 볼펜이 없다. 적어놓지 못한 생각들이 불안하다. 얼른 종이에 찰싹 들러붙지 못해 우왕좌왕한다. 쓰는 데 중독된 손가락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공연히 주머니에서 헨드폰으로 수첩으로 돌아다니고 있다. (하략) - ‘손가락들’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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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건이 실제로 있었는데 시인이 시로 적은 것 같다.
부챗살처럼 펼쳐지는 다리에서 전율했다. 글을 잘 쓰면 사진보다도 훨씬 더 그로테스크할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시 같다. 실제로 이 시집
중에서 가장 잔인하고 말이다. 고양이는 로드킬로 한방에 죽기라도 했지 저 개는 서서히 죽어가는 게 아닌가. 실제로 치인 것도 아니고 자리에서
도망가려다가 자동차 바퀴에 서서히 깔려 납작해진 강아지를 본 적도 있고, 내가 키우는 반려견도 에스컬레이터에 끼어 발가락을 잃은지라 기분이
묘하다. 그 사건을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더욱 많은 생각이 들고 말이다. 왠지 이게 우리 인생같지 않은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직업으로밖에
보지 않는데, 인공지능들이 인간의 직업을 대신하고 있고. 사람들은 인공지능을 미워하면서도 결국은 그들의 속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결국 질질
끌려가게 되고 발은 살집이 통째로 떨어져 나가고 무릎뼈는 아작이 나고. 그런데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더더욱 노력하라네. 병원에 입원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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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 아파트 계단을 올라간다.
1층, 2층, 3층, 4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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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 시스템도 비만 시스템과 오십보백보로 다르지 않다.
육체적인 건강만 챙기면 뭐하는가. 머릿속에 지식만 채우면 뭐하는가. 약자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고 인격이 파탄되고 영혼이 병든 어른들 때문에 아이들은 안 그래도 힘든데 더욱더 힘들어진다. 어른들의 말에 상처받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은 아이들에게 정신적인 건강까지 챙기라 추구하는 시대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딸이 남자 어른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나서야 뒤늦게 분노하여 죽이겠네 마네 설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아버지들이 그러는 경우가 많은데, 미안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딸들은 더 싫어한다. 되려 역효과가 나는 경우도 많고, 무엇보다 피해자의 의사를 전혀 존중해주지 않는 기색이다. 보통 사람들은 정의의 기사 행색을 하고 싶게 마련이다. 문인이나 교수들일수록 더욱 그런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시집에서 시인은 되려 자신을 가해자의 입장에 세운다. 가해자의 생각으로 현실을 파헤치고 있다. 가식을 떨지 않는 그 점이 마음에 든다. 현대 사회 특유의 오버액션과 과잉의 행패는 이 메시지는 본인은 죽었으므로 우편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에서도 사회의 병폐는 명백히 드러난다. 이것도 요즘 실감하기 시작한 건데, 진짜 살면서 우리나라는 공부하라는 거 무지 많다; 이게 나중엔 학원기업으로 나아가면서 광고와 홍보물로 전락하지 않을까 싶다. 엄청난 분량의 프린트물들을 다 출력해 놓으면서도 '이거 다 풀었는데도 시험에서 떨어진 사람 있겠지' 이렇게 생각하면 오싹 소름이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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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클리에서 2라는 시를 보고 문득 JTBC의 스포트라이트 중 한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일가족을 살해했다는 사람이 있다는 주제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지만 장소가 용인이었다. 좋은 사람들 2명 허세부리던 사람 1명 거짓말을 밥먹듯 했다 마지막에 진심이 담긴 말을 했던 사람 1명과 같이 그 프로그램에 나왔던 어느 한 건물을 걷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를 사랑하면서도 유달리 미워해서 카톡방마저 따로 팠던 이상한 사람. 아마도 첫 만남이었다. 상당히 충격적인 사건이던데, 그 분은 휘말려들지 않고 잘 지내고 계실까. 솔직히 그 분은 걱정되지 않더라도 허언을 했던 마지막 한명이 마음에 걸린다. 허언하는 사람들 살면서 꼭 있더라. 대학에 합격했다고 하면서 MT만 참석한다던가. 자신이 얼마의 유산을 받을 거라던가. 새 삶을 살겠다는 엄마를 죽이겠다고 밥먹듯 욕한 걸 보면 엄연히 정신병인데 이런 사람들이 있음 꼭 정신병원에 들렀음 좋겠다. 돈 빼낸 액수보면 그냥 감방에서 썩기 전에 호화는 다 부려보자 생각했던 것 같은데 망상이 있던 게 아니었을까. 밖에 있던 의붓아버지를 굳이 찾아내서 죽인 걸 보면 원한도 엿보인다. 남자들은 자신의 여동생도 어머니도 부하직원도 그냥 주변에 있는 모든 여자들을 제 소유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 그냥 소유욕에서 그치면 괜찮았는데 거짓말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켜서 사기 재판까지 가니 그게 견딜 수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허언이나 독한 말을 하는 사람은 피하는 게 상책이더라. 솔직히 남자들은 다 그렇다던데, 제대로 신고해서 제대로 심판받고 벌금형 받거나 감방에서 썩으면 그럴 생각을 할까? 물론 여자들이 그렇게 허언하는 경우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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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는 않았지만 유명한 영화제목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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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플라타너스 앞에서
덤프트럭 앞에서 짐자전거가 앞만 보며 달린다 갓길 없는 좁은 이차선 도로 아무리 빠르게 페달을 밟아도 느릿느릿 돌아가는 자전거 바퀴 사자 아가리 같은 경적이 쩌렁쩌렁 울며 뒷바퀴를 물어도 헛바퀴만 돌리며 아직도 커다란 플라타너스 앞을 지나가고 있는 자전거
자전거를 삼킬 듯 트럭은 꽁무니에 붙어서 오고 거대한 코끼리 한 마리 줄에 달고 가듯 바퀴는 한적하고 발과 페달은 자전거 바퀴보다 빠르게 돌아가고
# 속도
사람이 네 발 짐승에서 직립보행을 하게 된 까닭은 굳이 네 발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네 발 대신 두 발로 걷는 것을 선택한 사람은 빠른 속도 대신 다른 것을 고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진화 과정을 무시한 채 빠른 속도를 원하면서부터 실상 사람의 생존근거를 파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나마 다른 생명체의 힘을 이용하는 말이나 마차 같은 것은 지속가능한 에너지였다면 자동차의 속도는 우리 자신은 물론 이 푸른 지구별의 온갖 생명체를 죽음으로 몰고 갈 가장 확실한 살상 무기입니다. 그리하여 가장 효율이 높다는 두 발 자전거를 앞에 두고 있는 거대한 자동차는 현재 우리 문명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존재는 거대한 속도로 몰려드는 자동차를 피할 길 없는 자전거입니다.
김기택 시인의 이번 시집에는 속도에 관한 시편이 여러 편입니다. 무섭게 질주하는 속도에 의해 죽어가는 목숨들,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허덕이는 목숨들이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야생동물들을 잡아먹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 호랑이나 사자의 이빨과 발톱이 아니라 / 잇몸처럼 부드러운 타이어’(「고양이 죽이기」)라거나, ‘밤길을 달려온 차 앞유리에 / 반투명 반점들이 다닥다닥 찍혀 있다. / 풀벌레들에게 자동차는 총알’(「교통사고」)라고 읊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시인도 마찬가지라서 ’이 운전을 아무래도 멈출 수 없을 것 같다, / 교통사고로 죽거나 / 불행하게도 죽지는 않아서 엉덩이에 휠체어 바퀴가 달리거나‘(「죽어나 죽이거나 엉덩이에 뿔나거나」)라는 데 비극이 있습니다.
# 비린내
속도를 감당하지 못한 것들에는 죽음의 냄새가 짙게 풍깁니다. 김기택 시에서 나타나는 죽음의 냄새는 비린내입니다. 비린내는 ‘아직도 비명과 발악이 남아 있는 비린내’(「삼겹살」) , ‘피와 살과 비린내와 함께 놀던 껌’(「껌」), ‘오늘 저녁상에선 비린내’(「저녁상에서 비린내가 난다」), ‘비명과 비린내와 체온이 위생적으로 제거된 먹이들’ (「비만 고양이」) 처럼 비명, 발악, 피와 살, 비명 같이 죽음을 떠올리는 말들과 결합하거나, ‘비린 것은 / 흰 접시 위에 동그랗게 누워 있다. / 산과 들을 헤매며 뛰어다니다가 / 지금 막 접시 위에 올라와 웅크리고 누운 듯 / 온몸으로 더운 김을 뿜어올리고 있다.’에서처럼 아예 죽음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세기말의 풍광과 다르지 않으니, 아아, 이 봄을 어찌해야 하나.
봄
바람 속에 아직도 차가운 발톱이 남아 있는 3월 양지쪽에 누워 있던 고양이가 네발을 모두 땅에 대고 햇볕에 살짝 녹은 몸을 쭉 늘여 기지개를 한다. 힘껏 앞으로 뻗은 앞다리. 앞다리를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뒷다리. 그 사이에서 활처럼 땅을 향해 가늘게 휘어지는 허리. 고양이 부드러운 등을 핥으며 순해지는 바람. 새순 돋는 가지를 활짝 벌리고 바람에 가파르게 휘어지며 우두둑 우두둑 늘어나는 나무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