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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 과 아도르노의 저술을 접하기 전에 ‘프랑크푸르트 학파’로 불리는 이 두 명의 지식인에 대한 사상적 기반, 주요 저술에 대한 해박한 해설, 그리고 이어지는 이들의 주장에 대한 토론과 이들의 연장선에서 제기되는 새로운 이슈로 구성된 이 저작은 훌륭한 입문서, 나아가 소개되는 이들의 저술에 대한 핵심적 주제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길라잡이로서 손색이 없다.
특히,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과 <문화산업론> 그리고 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 등장하는 용어의 해설을 기반으로 하여 비판이론, 동일화, 사물화에 이르는 아도르노 사상의 본질적 탐험은 물론, 그의 대중문화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진정한 예술을 향한 미학이론을 설명하며, 또한 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에 대한 가치전환, 그리고 충격체험, 몽타주에 대한 해설과 비평에 이르는 풍부한 배경 이론으로 지적 욕구를 만족시켜준다. 한편 이 저술은 칸트와 마르크스의 철학전통에 입각한 비판이론과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론이 시대상황을 반영하고 있지 못하여 오늘의 대중문화를 읽어내는데 적합지 못하다는 비판의 의견이 지배적인 현실에서 벤야민의 예술이론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비중을 할애한 것은 다소 의구심을 자아낸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의식인지는 모르겠으나, 저작의 후반부 ‘대화’편에서는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론>에 대한 신랄한 난상토론을 게재하고 있어 독자들의 판단참여를 요구하고 있는 등 지적흥미를 제고시키고 있기도 하다.
아도르노와 벤야민은 “이전의 다른 어떤 이론가들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대중문화와 이데올로기가 수행하는 의미와 역할을 중요하게 이해하고 이에 대한 철저한 비판과 평가를 수행한 이론가”들이다. 즉 자연의 위협적인 힘에 맞서 자신을 보존하고 자연을 지배하려는 데서 시작된 계몽주의 ‘이성적으로 각성된 사유양식’은 오히려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발전시킨 사회체계의 구속아래 점차 종속되어갔다는 인식에서 그들의 대중문화에 대한 비판과 평가가 출발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일례로서 아도르노는 “대중문화의 산물은 이윤추구를 위한 상품으로 동일한 것이 무한히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중략) 대중문화는 우리가 진지하게 사고하고 비판적으로 반성하는 힘을 무력화 시키는데 한 몫 함으로써, 기존의 잘못된 현실이 그대로 유지되는 데 기여하는 것 같다.”고 대중문화의 현실을 비판하고, 우리에게 대중문화가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주는가, 아니면 또 다른 억압과 기만을 낳는가?”고 질문한다.
급기야 대중문화와 대중예술은 “사람들의 내적 본성에 작동하여 모든 사람이 동질적으로 사고하고 반응하며 행위 할 수 있게 만드는 효과적 수단이 된다.”고 ‘동일화’로 인한 대중의 포섭과 통제, 지배관계와 이데올로기 정당화의 도구역할에 머물며, ‘루카치’의 ‘사물화’이론을 통해 인간이 자신의 노동 산물과 대립하고 오히려 산물에 지배당하는 현실을 지적한다. 결국 오늘날의 독점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중문화와 예술이 더 이상 문화와 예술이라는 범주 속에서 고찰될 수 없다.”고 비판하며, “진정한 예술은 고통이 현존하는 상황에서조차 고통을 극복해야 하며, ‘행복에의 약속’을 드러내야 하는 것”으로서의 지향을 주장한다.
한편, 벤야민 사상은 신학적 배경과 유물론적 사유가 교차된 특수한 사상으로 정의하면서, ‘아우라’의 상실로 대변되는 현대의 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 대한 그의 문예이론을 소개한다. 오늘날, 사진, 영화, 음반과 같은 기술복제시대의 새로운 예술은 수많은 복제물의 생산을 전제로 한 것이기에 애초 원본과 복제본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되었으며, 이로 인해 아우라를 상실해버린 예술은 더 이상 숭배가치가 아니라 전시가치의 대상으로 전환되어 이전과는 다른 기능을 갖게 되었다, 또한 영화와 같이 감상방식의 집단화로 정신 산만한 새로운 수용방식을 요구되는가하면, 수많은 영상들의 흐름은 달리는 기차에서 바라보는 풍경과 같이 깊이라는 차원을 상실하고 파노라마식 시선과 같은 새로운 지각방식을 가져오게 하였음을 지적한 벤야민의 저술에 대한 개관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더구나‘푸돕킨’의‘연결 몽타주’와‘예이젠시타인’의‘충돌 몽타주’에 대해서, 그리고 ‘바쟁’의 몽타주라는 형식원리 비판에 대한 해설, ‘월든’,‘고다르’의 전통영화와 대항영화에 대한 소개까지 흥미진진한 대중예술의 현대이론이 독자를 즐겁게 한다. “수익을 올린 작품일수록 그 작품에 대한 미학적 가치나 사회적 유용성 등의 논의는 슬그머니 뒷전으로 물러나버리는”“시장성이 예술의 가치를 결정”하는 오늘의 대중문화는 과연 “예술과 현실 사이에 화해되지 않은 긴장에 의해 남아있는 흔적과 차이를 정확하게 그려내고 해독하고 있는가?” 오늘의 대중예술이 극복하고 자동적인 반응에 익숙해진 대중의 정신적 불구에 대한 자성이 요구되는 시대에서 ‘벤야민과 아도르노’는 귀중한 시사점을 제시해준다. 끝으로, 벤야민과 아도르노의 저술을 읽기 전에 이 입문서를 반드시 먼저 읽어볼 것을 권한다. 낯선 미학의 언어들과 난해할 수 도 있는 벤야민의 저술을 본격적으로 독해하는데 커다란 도움을 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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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자유로의 출발점인가, 억압과 통제의 수단인가
대학시절 한때 유행했던 비판이론, 프랑크푸르트학파, 문화연구... 유행은 유행일뿐 제대로 알지 못하고 겉만 둘렀던 아도르노와 벤야민에 대해 새롭게 읽을 수 있었던 개론서...
오늘날 엄청나게 발전한 대중문화공간 과연 지난 50여년 전의 두 인물이 제기했던 문제가 과연 오늘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그들의 이론적인 행보에서 오늘의 상황을 이해하고, 사유하고, 비판하는 단초만이라도 제공해준다면 좋을 거라 생각하며 책을 읽었다.
20세기초 대중문화와 거대한 상법주의가 결합한 문화산업의 근원에 대한 추적, 이에해난 통렬한 비판과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했던 두사람.
아도르노 경제적 상품으로서 대량생산되고 수용되는 문화산업은 지배계급의 허위적 이데올로기를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지배의 도구일 뿐...
벤야민 예술일반의 몰락이 아닌 새로운 예술, 새로운 문화, 새로운 대중시대, 새로운 소비시대의 시작이며 복제기술에 의한 대중예술은 대중의 해방을 동시에...
그러나 나에게는 어쩌면 아직도 인간의 이성적인 힘과 대중의 새로운 힘을 믿었던 벤야민에게 더 애정이 가는 것을...
어렵지만 쉽고, 쉽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읽기 많은 도움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