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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에 남은 없다 두루두루 평등하게 사랑하라
"천하에 남은 없다 두루두루 평등하게 사랑하라" 내용보기
책읽기의 즐거움을 다시 한번 알게 일깨워 준 책이다. 우리가 책을 읽는 것은 다름 아닌 저자의 사상과 소통을 위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특히 古典은 그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어 더욱더 소통의 의미를 배가 시킨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墨子>>는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특히 묵자를 접하는 동안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 기독교의 복음서와 불교의 법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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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의 즐거움을 다시 한번 알게 일깨워 준 책이다. 우리가 책을 읽는 것은 다름 아닌 저자의 사상과 소통을 위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특히 古典은 그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어 더욱더 소통의 의미를 배가 시킨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墨子>>는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특히 묵자를 접하는 동안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 기독교의 복음서와 불교의 법화경, 마르크스의 유토피아, 애덤 스미스의 경제학등 마치 익히 우리가 알고 있는 주요한 사상이 어떻게 그 옛날 한개인에 의해서 설파되었을까 하는 생각과 인문사상사를 다시 집필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묵자의 내용이 친근감으로 와닿았던 것이다. 

묵자는 단지 중국사상의 르네상스시대였던 춘추전국시대에 유가, 도가, 법가등 수많은 사상가중 하나로서 그리고 좀 더 나아가서 '겸애사상' 정도를 주창했던 잊혀진 고대사상가로만 알고 있었던 일자무식의 필부인 나에게 그래서 기세춘선생의 <<묵자>>는 많은 충격을 던져 주었다. 

사실 동양사상은 그 다양성이나 깊이면에서 서양사상과는 비교대상이 될 수 없을 정도로 심원하다고 할 수 있다. 단지 근대화라는 담론에서 서양의 영향을 받게 되어 그 의미가 퇴색한 부분도 있지만 그 근원을 고찰해보면 인류문명의 뿌리와도 같은 존재가 바로 동양사상인 것이다. 이러한 다양성이 한때 정치논리(한제국의 유교 공식화)에 의해 억압되었고 서양의 근대화담론에 의해 휘청거렸던 것이다. 심지어 고전사상은 사회발전의 걸림돌이나 병폐로 치부되기도 하였다. 그나마 몇몇 뜻있는 학자들에 의해 그 다양성을 재발견할 수 있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면에서 보면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정치상으로는 혼란시대라고 하지만 사상적인 면에서는 그야말로 서구의 르네상스시대를 능가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사상의 다양성이 공존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사상들은 현대에 이르러 그 의미가 더 확대되고 연구되고 있지만 유독 묵가만이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주목받지 못한 이유가 여러가지 있을 수 있지만 나는 가장 큰 이유는 두가지 정도라고 생각된다. 

첫째, 묵자의 출신성분이 불손하다. -한족의 입장에서-

공자, 노자, 한비자, 순자, 맹자등 이름만 들어도 장장한 이들은 한족의 후예들이다. 하지만 묵자의 경우 학자들의 대체적인 견해는 한족출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묵자는 어디에서 왔을까? 중국 사서의 기록으로 추론하면 묵자는 고죽국의 후손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바로 묵자가 동이족의 후예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추친된 중국의 상고사 발굴 프로젝트에 의하면 고죽국이 위치한 홍산문화, 하가점하층문화가 바로 동이족의 문화라는 것이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근거로 보면 묵자는 동이족의 후예였고 그래서 한족의 시각에서 그의 사상을 부각시키는 것이 다소 부담스럽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둘째, 묵자는 아주 불손한 사상의 소유자이다. -지배계층의 입장에서-

공자를 비롯한 사상가들의 출신성분은 대체로 사(士)였다. 요즘으로 치면 식자층에 속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묵자의 경우 비천한 노동자 출신으로 출신만 놓고 보면 이들과 비교대상이 되질 않는다. 특히 그가 내세운 겸애사상 즉 만민평등사상은 당시 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왕조국가에서도 받아 들이기 힘든 사상임에 틀림 없었다는 것이다. 하물려 현대의 정치제도하에서도 상당히 진보적인 사상이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한족이 아니고 하층민출신으로 위험천만한 사상을 펼친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진시황의 전국통일이후 진행된 집단의 망각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서서히 역사의 망각에서 깨어나고 있는 것이다. 

묵자의 사상을 좀더 쉽게 그러면서도 그의 뜻이 제대로 살아있는 말로 함축하면 아마도 "天下無人"  "兼愛" 이 두마디로 대변될 수 있을 것이다. 글자그대로 풀이하면 천하무인은 천하에 남은 없다라는 뜻이고 겸애 두루평등하게 사랑하라는 뜻이 될 것이다. 묵자의 철학과 정치,경제, 외교,반전사상등을 한꺼번에 표현하는 말이 바로 천하무인과 겸애이다.
천하에 남이 없기 때문에 우리 인간들은 나를 대하듯 남을 대해야 하는 것이고, 자기 가문을 대하듯 남의 가문을 대해야 하는 것이고, 자기 나라를 대하듯 남의 나라를 대한다면 그 어떠한 분쟁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하늘아래의 그 어떠한 차별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유가에서 말하는 사농공상의 그 어떤 신분적인 차별이 없는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는 입장이다.
겸애는 천하무인이기 때문에 당연히 되는 말이다. 천하에 남이 없는데 어찌 두루두루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두루 평등하게 사랑하는 세상이 묵자가 바라는 바로 유토피아였던 것이다. 현대인들은 더불어 같이 살아가는 공동?? 묵자가 주장했던 것이다. 

묵자는 천하무인/겸애의 세상을 이루기 위해서 두가지의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삼표론과 절용론을 통해서 천하무인, 兼相愛 交相利로 이르는 길을 설파하고 있다. 마치 예수가 그의 하나님을 찾아 가는 구도의 길을 제시하듯이 말이다. 묵자가 말하는 구도의 길은 삼표론과 절용론으로 대변된다. 

三標論
묵자는 천하무인/겸애를 이루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뜻(天志)만이 가치판단의 근원이면서 표준이라 주장했다. 묵자가 제시하는 세가지 표준을 이른바 삼표라고 한다.
: 하늘의 뜻을 실행한 바 있는 성왕의 역사적 경험을 표본으로 삼는 것이며(본받을 표본이라는 뜻으로 보편적인 선)
: 판단 주체인 인민의 이목에 따르는 것이며(근원으로 삼아야하는 공동의 선)
: 실제로 인민의 이용후생에 이로운 것을 따른다는 것(백성의 이익을 위한 구체적인 실용성)
묵자가 말하는 모든 가치의 근원은 유가에서 말하는 군사부(君師父)가 아니라 일반 백성의 뜻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봉건 지배 체제를 부정하는 혁명선언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맹자는 묵가들을 부모도 모르는 탕아들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묵자의 민의는 이러한 효나 충의 개념을 뛰어넘는 담론이다. 당시 지배자들의 이데올로기를 반대하고 본받을 표준은 오직 인민의 뜻과 이익뿐이라고 주저없이 주장했고 이러한 삼표만이 천하무인를 이룩하는 기준이라고 한 것이다. 이는 지금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보다 더 민본주의, 민주주의적인 사고인 것이다.

節用論
묵자가 말하는 절용이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절약의 개념과는 사뭇다르다. 절용이란 절도 있는 소비를 지칭한다.
그럼 절도있는 소비란 어떤 의미인가? 백성들로 하여금 재화를 풍족하게 사용하토록 하되 이용후생에 보탬이 되지 않는 것은 결코 하지 말라는 것이다. 첫째로 백성의 이용후생에 보탬이 되지 않는 것은 생산하지도 말고 할 필요성도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재화는 그 본래의 목적대로 소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백성의 노동과 자원을 지배계급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낭비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는 유가에서 강조하는 예악(禮樂)의 개념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것이다. 묵자는 귀신에 대해선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도를 넘어서는 장례나 호화로운 음악으로 인한 재물낭비를 비판한 것이다. 결국 이러한 절용의 도를 넘어서는 것이 요즘의 경제학 용어로 말하면 시장실패의 원인이 되고 또한 전쟁의 목적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자기 나라에서 나오는 물산을 주어진 목적대로 사용하게 되면 전쟁은 발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기막힌 발상인가 묵자가 아닌 그 어떠한 이가 이처럼 생각했겟는가. 이것은 묵자 자신이 노동계급출신이기 때문에 이런 폐단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꼈던 것이다. 특히 고대의 경우 전쟁의 목적중 가장 큰 목적인 이러한 노동력의 확보였다는 점에서 묵자는 절용을 통한 자국의 경제안정과 반전사상을 동시에 설파했던 것이다.

이처럼 묵자는 천하무인과 겸애가 실현되기 위해서 삼표론과 정용론을 방법론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방법론의 핵심은 다름아닌 백성의 뜻(民意)에 따라 백성의 이롭게(利)하는 것이 진정한 성인의 방침이라는 것이다. 국가가 지향하는 모든 정책은 결국 인민의 행복을 위해서만이 그 존재가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백성이 존재하지 않는 국가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어떠한 사상보다 묵자의 사상은 사람을 중요시 한다. 유가의 사(士)가 아닌 일반 백성을 중요시 한다. 백성의 뜻이 바로 하늘의 뜻이라는 것을 묵자는 알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체만이 진정한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점은 민주화된 제도에서 정치를 펼치고 있는 지금의 정치인들에게 많은 점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아마도 이러한 백성본위의 사상으로 인하여 묵자사상은 그 빛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아니 굳 없었던 것이다.

묵자의 사상은 한마디로 토탈리스트라 할 정도로 철학,정치,외교,사회,종교,경제등 분야에서 그의 표현처럼 두루두루 걸쳐 확인되고 있다. 그 어떠한 사상가보다 확고한 신념과 자기정체성을 가졌던 사상가였던 것이다. 비록 묵자의 사상은 그 당시에 철저하게 외면 당했지만 예수의 하나님과 불교의 중생구제, 애덤스미스의 국부론, 마르크스의 유토피아를 통해서 그 면면을 전달했던 것이다.약 2500여년전 이러한 불세출의 사상가의 사상이 시대를 흘러 지금에 와서야 빛을 보게된 것은 어쩌면 역사라는 신의 시샘은 아니였는지 모르겠다.


忠實欲天下之富 而惡基貧    진실로 천하가 부유하기를 바라고 가난을 싫어한다면
欲天下之治 而惡基亂           또한 천하의 태평을 바라고 혼란을 싫어한다면
當兼相愛 交相利                  마땅히 두루 평등하게 서로 사랑하고 이롭게 해야 한다

l******e 2009.04.01. 신고 공감 1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자유와 평화를 위해 묵자가 걸었던 길
"자유와 평화를 위해 묵자가 걸었던 길" 내용보기
내 인생의 영화 단 한편을 꼽으라면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항상 《미션》을 꼽는다. 1750년 험준한 남미 오지에서 예수회 선교사들은 과라니족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서로 다른 투쟁방식을 보여준다. 가브리엘 신부(제레미 아이언스)는 결연히 비폭력 저항노선을 걷는다. 로드리고 신부(로버트 드니로)는 검과 총을 다시 잡고 무장항쟁을 준비한다. 급한 물살의 강물과 하얀 물보라
"자유와 평화를 위해 묵자가 걸었던 길" 내용보기

내 인생의 영화 단 한편을 꼽으라면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항상 《미션》을 꼽는다. 1750년 험준한 남미 오지에서 예수회 선교사들은 과라니족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서로 다른 투쟁방식을 보여준다. 가브리엘 신부(제레미 아이언스)는 결연히 비폭력 저항노선을 걷는다. 로드리고 신부(로버트 드니로)는 검과 총을 다시 잡고 무장항쟁을 준비한다. 급한 물살의 강물과 하얀 물보라를 날리는 폭포를 따라 잔잔하게 울려퍼지는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들으며, 이들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지키려 한 사랑과 정의의 의미를 되새겼다. 어린 마음에도 두 사람은 각각 그리스도를 본받는 두 가지 길을 제시한다고 믿었다. 저항의 정치와 섬김의 정치. 난 그렇게 이해했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여긴다. 그 후 엔니오 모리꼬네의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들을 때면 불연 듯 자신의 신념과 희망을 관철하고 구현하기 위해 온몸을 내던진 혁명가들을 상기하게 된다. 체 게바라, 김산, 간디, 호치민, 예수, 그리고 묵자.


기세춘 선생의 역작 《묵자》를 완독했다. 이제 두 선교사의 모습이 예수가 아닌 묵자의 모습으로 재형상화된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그러니까 예수보다 약 500년 앞서 살았던 묵자의 두 눈은 핍박 받는 민중들과 동일한 눈높이로 현실적 이상향을 지향했다. 묵자가 살던 때도 난세였고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세상도 난세다. 그래서 묵자의 사상은 생동적이고 자기성찰적이며, 더욱 뜻 깊은 인문학적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 책 《묵자》는 936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묵자를 처음 대하는 이들에게 일단 〈노문魯問〉편부터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묵자 사상의 요약판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맹자•등문공》편에 따르면 춘추전국시대의 지배적 사조는 공자와 노자가 아니라 양주楊朱와 묵자墨子였다. 유가에서 볼 때 양묵은 받아들이기 힘든 양극단의 유행사조였다. 가령 양주는 위아為我•귀기貴己•경물중생輕物重生으로 대변되는 극단적 이기주의자로, 묵자는 겸애로 대변되는 극단적 이타주의자/평등주의자로 간주된다. 양묵은 마치 서구의 쾌락주의자 에피쿠로스와 예수처럼 비춰지거나, 혹은 서구의 정치사조인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에 비유될 수도 있다.

 

묵자의 눈으로 보면, 유가는 당대의 보수적인 지배계급질서를 옹호하고 재생산하는 정치적 헤게모니였다. 다시 말해 가진 자의 지배를 합리화하는 천명사상과 노예제적 종법질서의 수호자였다. 유생의 최종목표는 군자가 되는 것이다. 군자란 대부이상의 관리를 지칭한다. 재미난 것은 저자가 대인을 봉건귀족으로, 소인을 지주계급 같은 신흥자본가와 엘리트 관료계급으로 간주한다는 점이다.

 

묵학은 거의 2000년간 잊혀진 사상이었다. 그러나 1783년 도가경전 속에 어록이 발견되어 청조중엽부터 주목받기 시작한다. 청말 묵학연구의 교과서적 텍스트는 손이양孫詒讓(1848-1908)의 《묵자한고墨子閒詁》다. 엄복嚴復(1854-1921)、양계초梁啟超(1873-1929), 호적胡適(1891-1962), 풍우란馮友蘭(1895-1990) 같은 학자들은 묵학과 서양사상을 비교하는 작업을 펼쳤다. 비교대상으로 플라톤, 기독교, 홉스, 로크, 루소, 칸트, 벤담, 존 스튜어트 밀, 사회주의, 논리학 등을 망라한다. 1992년 국내 최초로 묵자를 완역한 바 있는 저자 기세춘 선생의 글에도 묵자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여러 사상가들이 무대에 등장한다. 앞서 언급된 대상들 말고도, 아리스토텔레스, 헤겔, 베르그송, 애덤 스미스, 모택동, 베블런, 르페브르, 보드리야르, 만하임, 공동체주의, 기독교 사회주의, 아나키즘, 논리실증주의 등등이 언급된다. 전체적으로 저자의 강점은 종교철학에 있다. 묵자와 기독교와의 비교가 특히 인상적이다. 묵자와 서양철학과의 비교는 단순히 언급하는 수준에 그치고 상세히 설변하지는 않는다.

 

묵자는 이름이 적翟이며 노魯나라(지금의 산동남부) 사람이다. 묵자의 사상적 지위에 대해 저자 기세춘은 「실천하고 조직하고 투쟁한 혁명가였다」고 압축한다. 반전주의자이지만 전쟁이 일단 일어나면 침공당하는 나라로 제자들을 이끌고 가서 방어와 수성에 힘쓴 사회운동가였다. 영화 《묵공》은 개인주의적인 영웅의 이미지화란 약점이 있지만, 묵가의 사회운동가적 면모를 잘 재현하고 있다. 묵자집단의 최고지도자를 거자鉅子라 칭하는데, 묵적이 제1대 거자였고 제자 180여명은 그를 성인으로 받들며 절대적으로 복종했다. 공동체의 내부규율은 엄하기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살인자는 사형에 처하고 상해자는 형에 처한다. 《여씨춘추》를 보면 당시 거자 복돈腹䵍이나 맹승孟勝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흥미있으면 참조하길 바란다. 묵학은 전국말기에 겸애兼愛•유협游俠•명리名理 세파로 갈라진다.


묵자의 사상은 크게 겸애兼愛, 비공非攻, 상현尙賢, 상동尙同, 천지天志, 명귀明鬼, 절용節用, 절장節葬, 비악非樂, 비명非命 10가지로 요약된다. 요즘 말로 풀어 본다면, 이권금권 때문에 전쟁이나 인종청소를 일삼지 말고 널리 두루 사랑하라. 정부관료들은 무능부패를 일삼지 말고 낙하산 인사 쓰지 말고 알짜배기 현인들을 등용하라. 의원직도 인성검사하고 시험 치고 면접 보고해서 깐깐하게 뽑자. 명품점과 면세점에서 쇼핑할 생각 말고 강남에다 아파트 마련할 생각 말고 소박하고 단순하게 좀 살아라. 서양귀신 섬길 생각 말고 네 조상의 귀신이나 잘 섬겨라. 무당이나 풍수나 점 보러 다닐 생각 아서라, 타고난 팔자란 애초에 없다. 그렇게 스타가 되고 싶어. 스타가 될 허망한 생각 빨리 접고 퇴폐향락의 소비문화나 멀리하라. 물론 묵자의 사상은 이보다 심오하다. 지금부터 기세춘 선생이 그린 묵자의 다양한 모습을 다음 네가지 모습으로 정리해 보겠다.

 

■묵자는 평등공동체를 지향한 공화주의자다.


저자는 묵자 사상을 「천하무인天下無人」이란 4글자로 표현한다. 묵가의 사랑은 평등한 사랑이며 혈연을 초월하는 전지구적인 이웃사랑이다. 《묵자•겸애》에서 언급하듯, 「남의 나라 보기를 제 나라같이 보고, 남의 가문 보기를 제 가문같이 보고, 남 보기를 제 몸같이 보라」. 이에 비해 유가의 사랑은 차별적인 사랑으로, 혈연관계상의 친소원근에 따라 차등을 두는 근친애이다. 저자는 묵자와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자기애, 가족애, 민족애 같은 근친애를 극복하고 겸애 공동체로 나아가자고 강조한다.

 

겸애는 생명존중 사상과 공동체 정신을 반영한다. 겸애의 실천을 교리交利라고 말한다. 정치사상적 측면에서 겸상애/교상리의 원칙은 인권평등의 근원을 하늘의 뜻에 두는 천부평등권과 어진 이를 높이고 능한 이를 채용하는 상현사능尚賢使能, 그리고 안락한 생명살림인 안생생安生生의 대동사회론으로 연결된다. 공자의 인정의 목표가 예치의 소강사회라면 묵자의 겸정의 목표는 겸애의 대동사회로, 우임금의 평등사회를 전범으로 한다.

 

묵자는 인류 최초의 반전평화주의자다. 원칙적으로 전쟁은 하느님의 뜻을 어기는 반인륜적 죄악이고 노예를 만들어내는 제도이자 파괴적인 초과 소비의 전형이라 여겨 반대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전쟁의 성격을 정의로운 전쟁인 주誅와 불의의 전쟁인 공攻으로 구분했다. 다시 말해 비공은 일체의 전쟁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침략전쟁에 반대하는 것이다.

 

■묵자는 예수의 선지자다.


보통 유가의 자연관과 종교관은 천天과 신神의 용법에서 드러난다. 유가의 정통은 천명론天命論이다. 공자의 천은 주재하는 하느님이고, 맹자가 말한 천은 주재•운명•의리란 삼중적 의미를 지닌다. 이에 반해 이단은 천기론天氣論이다. 순자의 천은 자연만을 가리키고, 천도란 다름아닌 자연법칙을 의미한다. 전국시대는 천기론이 오히려 주류적 담론이었다. 참고로 천기론으로 대변되는 중국유물론사상의 계보를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중국의 유물론은 관자管子, 자산子產, 순자의 천인분이설天人分異說, 후한 왕충王充의 원기자연론元氣自然論, 진대 범진范縝의 신멸론神滅論, 송대 장재張載의 기일원론, 명대 왕정상王廷相의 성기일관론性氣一貫論, 명말청초 왕부지王夫之와 안원顏元, 그리고 청대 대진戴震의 기화유행설氣化流行說로 이어진다. 특기할 점은 천명론에서 천기론으로의 전환이 채취경제에서 농업경제로의 구조적 전환과 관계가 있다는 논점이 흥미롭다.

 

저자는 유교의 하느님을 천인부합설, 천인감응설, 오상설, 귀명주의로 깔끔하게 요약한다. 중국의 천제신앙은 공자•동중서•주희를 거치는 삼대변혁을 겪는다. 공자는 인본주의적 종교사상을 보이는데, 유신론과 유물론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신에 대해서 불가지론을 펼쳤다. 경신敬神과 원신遠神이 바로 대표적인 공자의 종교관. 동중서는 천인분이설에 대항하여 천인부합설과 귀명론을 내세우며 경학사상의 신학화를 이룬다. 예수에게 사도 바울이 있다면 공자에겐 동중서가 그런 존재다. 교부철학의 토마스 아퀴나스에 비견할 수 있는 성리학의 집대성자 주희는 이신론理神論과 인심이 천심이라는 이념을 내세웠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묵자의 하느님을 살펴보자. 저자는 묵자의 하느님을 12가지 테마로 정리하는데 이는 다시 조물주, 유일신, 인격신, 구세주, 민중의 수호신 5가지로 요약가능하다.

 

「묵자와 예수의 하느님은 다 같이 구세주였다. 그러나 묵자는 현세의 구원이었고 예수는 내세의 구원이었다. 묵자는 『땅의 나라』를 말하고 예수는 『하늘나라』를 말한다. 묵자는 혁명가였고 예수는 종교가였기 때문에 시각이 달랐던 것이다.」(p.162)

 

■묵자는 과학철학자다.


시공은 존재의 필요조건이다. 칸트를 빌리면 시공은 선험적 형식이다. 이에 비추면 서양의 존재론은 관념적/직선운동적 시간관에 기초하고, 동양의 존재론은 자연적/순환운동적 시간관에 기초한다. 동양의 순환론에 차이가 있다면, 유가의 회귀론은 낙관적이며 상고주의적이지만, 노장의 회귀론은 비관적이며 허무주의적이란 점이다. 묵자의 시간관은 이들과 또 다르다. 묵자의 관점은 직선적이고 자연적이며 현재 연원의 시간관이다. 그는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우주을 공간宇과 시간久으로 설명하고, 기특하게도 시간을 공간의 이동이라 주장했다. 이 점에서 묵자는 동양의 헤겔 또는 아인슈타인이라고 칭찬할만하다.

 

인식론에 있어서 묵자는 경험론자이고 유명론자다. 그리고 실천적 인식론을 펼치는데, 《묵자 • 수신》편에 이르길, 많은 말을 하려고 힘쓰지 말고 실행하는데 힘써야 하며 지혜는 자기를 드러내는데 쓰지 않고 잘 살피는데 써야 한다고 말한다. 묵자에게 지知는 재료이며 지智는 경험이며, 의意는 선험적 경험 또는 관념이다. 주로 아포리즘 성향이 농후한 〈경經•경설經說〉에 실려있는데, 내 미천한 지식으론 이해하기가 어렵다. 겉보기에 단순하나 막상 파고들면 심오하게 다가온다. 원인故, 부분體과 전체兼, 지식知 등 여러가지 과학철학적 키워드를 해설해 모아놓은 개념어사전 같다.

 

앞서도 언급했듯 묵자 사후의 후기 묵가는 3파로 분열되는데, 《묵자》란 책이 상•중•하로 나뉘어진 것은 이 후기 3파의 글을 모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묵자》 상편을 묵자 본연의 가르침을 지키려는 순수파의 글로, 하편을 현실에 영합하려는 반동파의 글로 본다는 사실이다. 저자의 이런 관점은 아이러니하게도 곽말약의 《묵경墨經》 연구에 근거한 것 같다. 내가 「아이러니」란 말을 쓴 까닭은 저자와는 반대로 곽말약은 묵자를 우파적 보수적 인사로 보았기 때문이다. 곽말약은 〈경상〉편과 〈경하〉편 사이에 대립하는 관점을 예리하게 지적했는데, 장자가 말한 후기 묵가의 견백지변堅白之辯과 동이지변同異之辯이라고 했다. 〈경상〉파는 단단하고 흰 것이 서로 외면하지 않는다盈堅白라 말하고, 〈경하〉파는 단단하고 흰 것이 서로 나뉜다離堅白고 말한다. 곽말약은 단지 이 두파의 견해차이를 지적했을 뿐 그들을 순수파와 반동파로 규정짓지는 않았다. 이런 순수파와 반동파의 구분이 올바르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본다. 지나친 사변이다.

 

인성론에 있어 묵자는 사회적 학습에 의한 소염론所染論을 주장하는데 오늘날의 「빈 서판」이론이라 하겠다. 묵자의 가치론은 근원•원인•실용으로 대표되는 삼표론三表論에 나타난다. 삼표론에서 민본주의, 민중주의, 결과를 중시하는 실용주의적 태도를 읽을 수 있다.

 

「모든 존재판단과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세 가지 표준 이른바 『삼표』를 제시한다. 첫째 표준은 본本인데, 하늘의 뜻을 실행한 바 있는 성왕의 역사적 경험을 표본으로 삼는 것이며, 둘째 표준은 원原인데, 판단 주체인 인민의 이목에 따르는 것이며, 셋째 표준은 용用인데, 실제로 인민의 이용후생에 이로운 것을 따른다는 것이다.」(p.223)

 

묵자의 논리학은 명실론名實論인데 공자의 정명론正名論에 대한 비판이다. 그 맥락은 대취大取와 소취小取에 나온다. 묵자의 명제논리는 조건故•조리理•유추類로 대표되는 삼물론三物論이다. 조건은 필요조건小故과 충분조건大故을 말하고, 조리는 논리규칙을, 유추는 귀납법과 연역법을 말한다. 삼물론 이외에도 비유, 제등, 원용이나 추론 등이 언급된다.

 

■묵자는 공리주의 경제학자다.


경제생산에 있어, 묵자는 인류 최초로 노동의 가치를 발견한 사회사상가이며, 민중의 이용후생에 보탬이 되지 않는 과다한 생산을 비판한 공리주의자였다. 그리고 소비에 있어서, 묵자는 과도한 소비를 비판하고 절도있는 소비를 중시하는 절용문화론을 논한다. 가령 절검한 생활, 박장단상薄葬短喪, 호사스런 음악과 궁궐반대 등을 그 주요내용으로 한다. 아울러 경제활동에 있어서 묵자는 「완전고용, 필요공급, 절용, 초과소비, 균분을 주장」한 경제학자이다.


z***a 2012.11.05.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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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인문학 도서 리뷰응모]묵자_기세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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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묵자’를 읽게 되었을 때는 단순한 호기심이 나를 이끌었다. 분명 공자, 맹자, 노자, 장자들과 같이 역사시간에 등장은 했으나 별로 기억나는 이야기가 없었다. 현재 나의 시대에 등장했던 옛 성현이므로 분명 뭔가 대단한 일은 했을 것인데 왜 어정쩡하게 슬쩍 언급만 되고 사라져야 했는지 궁금했다.   묵자는 각 제후들이 영토전쟁을 일삼으며 민중들의 삶을 힘들게 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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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묵자’를 읽게 되었을 때는 단순한 호기심이 나를 이끌었다. 분명 공자, 맹자, 노자, 장자들과 같이 역사시간에 등장은 했으나 별로 기억나는 이야기가 없었다. 현재 나의 시대에 등장했던 옛 성현이므로 분명 뭔가 대단한 일은 했을 것인데 왜 어정쩡하게 슬쩍 언급만 되고 사라져야 했는지 궁금했다.

 

묵자는 각 제후들이 영토전쟁을 일삼으며 민중들의 삶을 힘들게 하던 춘추전국시대 서로 다른 시각과 철학으로 민중과 제후들을 이끌었던 제자백가 중의 하나로 우리는 겸애설을 주장했다고만 배웠다. 서로 하도 싸우니까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자연 속에서 성품을 닦으면서 살라는 노자처럼 겸애를 주장했다는 묵자도 서로 싸우지 말고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 철학자인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묵자’라는 책은 나에게 너무나 혁신적인 위대한 사상을 실천하면서 민중들의 삶을 돌보고자했던 묵자라는 인물을 소개해주었다. 묵자가 살았던 시절은 한반도에서는 고조선이 나라의 틀을 잡고, 부여라는 부족국가가 형성되는 시기이며, 유럽에서는 그리스의 패권을 잡은 아테네가 파르테논 신전을 세우면서 전성기를 누리던 때이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으로 노예 집단을 만들고, 그들의 힘으로 건축물을 세우고 사회 조직을 만들어가던 시절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 대륙에서는 더 치열하게 제후국들의 전쟁이 끊이지 않던 때이다.

 

책에서 만난 묵자는 평소 내가 가지고 있는 의문에 친절하면서도 쉽게 설명해 주었다.

나: 임금은 누구이며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겁니까?

묵자: 하느님이 처음으로 백성을 낳아 통치자가 없을 때는 백성이 주권자였습니다. 그러나 분쟁이 생기면서 백성들의 뜻이 하늘의 뜻과 일치하도록 어진 이를 뽑아 천자로 삼았지요. 하늘은 힘을 가진 자는 서로 돕고, 도리를 가진 자는 서로 가르쳐 인도하고, 재물을 가진 자는 사로 나누며, 윗사람은 힘써 다스리고 아랫사람은 힘써 자신의 일을 하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천자는 이를 세상에 펼쳐야 합니다.

 

나: 백성들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야 할까요?

묵자: 윗사람의 허물을 감시하고, 옳은 것은 옳다고 말하고, 주위의 선한 사람을 천거하면서 자신의 능력과 역할에 맞게 힘써 일하며 살아야 합니다. 또한 자신의 미래와 노력에 대해서는 운명론을 거부하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때는 허례허식에 의존하지 말며, 두루 많은 사람들에게 의롭고 이롭게 행동해야 합니다.

 

나: 열심히 일하는 선한 백성들이 늘 쪼들리는 것은 왜입니까?

묵자: 신분제에 의해 지배계급들이 지나친 장례나 호화로운 행사 및 가무, 전쟁 등에 초과 소비를 하게 되면서 백성들의 삶이 힘들어집니다. 따라서 백성들이 그들이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억지로라도 생산해내기 위한 노예노동에 종사하게 되고, 이는 풍요로운 삶을 위한 노동의 가치를 떨어뜨리면서 부의 불평등을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노동을 하면서도 행복하지 못하고 결과물을 자신들의 것으로 충분히 누리지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백성들이 노예노동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백성들의 이용후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생산하려 하지 말고, 재화를 본래의 목적에 부합되게 소비하면서 모든 이들이 절도 있는 소비생활을 하면 되고 가진 자들이 나눔을 베풀고 살아야 합니다.

 

나: 무엇이 옳은 것입니까?

묵자: 어떤 주장이나 명제, 행위를 판단함에 있어 민중들의 눈과 귀의 사실성에 근거를 두고 참이어야 하며, 역사적 경험에 의해 그 타당성이 검증되어야 하며, 실천에 의해서 민중의 이익으로 그 실용성이 검증되어야 합니다. 즉 정당한 행위나 명제는 사실판단의 진실성, 당위판단의 역사적 검증성, 실천적 검증의 실용성을 담보되어야만 합니다.

 

지금까지 내용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논리이며 생각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하지만 묵자의 세상을 살펴보면 이러한 생각들이 얼마나 파격적이고 혁명적인 사고인지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이 내린 천자, 하늘이 정한 신분과 부의 세습, 백성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한계등이 이후 천 년 이상 계속되던 주류의 세상이었다. 신분제, 세습제의 폐단을 강력한 설득력으로 지적했으니 그 바탕위에 있는 귀족, 제후, 지배계급의 눈에는 묵자는 너무나 위험한 사상을 가진 불온분자였을 것이다. 그의 혁명적 사상은 그 뿐이 아니다.

 

먼저 당시는 상상할 수 없었던 평등사상을 주장했다. 신분 세습, 부의 세습을 당연시하고 백성들의 혁명을 방지하기 위해 운명론을 퍼트리면서 기득권의 지배세력들은 통치 권력을 유지해 나갔다. 묵자는 이에 대해 인권의 평등, 운명론의 폐해, 세습제도의 문제점, 지배세력의 역할들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세력들은 차별에 근거를 한 폭력의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닌 평등, 겸애를 기초로 한 통치가 의로운 정치임을 천명함으로써 진보주의적 정치관을 처음으로 드러낸 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또한 전쟁을 통해서만 천하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누구나 믿었던 세상에서 반전 평화를 주장하고 실천했던 운동가이다. 전쟁이 가지는 경제적, 사회적 문제점,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 전쟁을 막기 위한 노력, 승리를 찬양하는 것의 논리적 문제점 등을 구체적으로 상징을 이용해서 꼬집어냄으로써 왜 평화롭게 사는 것이 하늘의 뜻인지를 알려준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지금 우리의 동시대적 사고방식으로 경제상황을 설명해나갔다. 가격이 설정되는 방법, 노예노동의 문제점, 절도 있는 소비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 허례허식이나 과소비가 가져오는 폐해 등을 매우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또한 그는 예를 빙자한 과도한 장례나 행사들, 학문 수양을 빙자한 무노동 또는 게으름 등의 공맹사상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또한 그는 백성들의 노동의 부담을 덜기 위해 각종 도구나 기계등을 스스로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경제에 대한 각종 이론과 논리를 펴면서도 실제로 생활 속에서 스스로 실천했던 과학자이면서도 기술자이기도 했다.

 

이런 묵자의 생각들을 알아가면서 나는 매우 충격적인 사고의 전환을 해야만 했다. 마음 한편으로 인간이 만들어내는 많은 이론들이나 주장들, 철학들은 선구자들의 틀을 조금씩 바꾸어가면서 발전을 이루어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라캉의 정신분석이론이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발전한 것처럼 획기적이거나 혁명적인 인식의 전환은 인문학에서는 만들어지기 어렵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묵자를 만나고 나서는 이런 생각을 고집할 수가 없었다. 인간 생활의 사고의 변천을 본질적 근원에 질문을 하면 2500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보편적 사상과 해답을 찾아 낼 수 있는 인간의 이성의 힘이 느껴졌다. 선견지명이 예언이 아닌 철학, 사상의 힘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묵자의 설명은 예언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의 설명에는 당위성이 늘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노동의 문제를 다루는 그의 설명을 들어보자. 노동은 인간이 존재의 존엄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늘이 부여한 가치이며 편리함과 행복을 추구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재화를 필요한 만큼, 원래의 목적에 부합되도록 사용할 수 있을 만큼만 생산하게 되면 강제되지 않는 한가한 노동, 자신의 가치 창조를 위한 노동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일부 계층의 초과소비와 신분제로 인해 일하기를 강요당하는 노예노동에 종사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를 설명했다. 그런데 노예노동의 발생을 보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런 사회현상이 그대로 나타난다. 일부 계층의 과도한 욕심과 자본의 권력을 이용해서 대량생산으로 많은 재화들이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초과근무로 인한 자유노동이 아닌 노예노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그의 논리는 지금도 여전히 강력한 설득의 힘을 가지고 있다.

 

묵자의 논리나 철학은 당시의 사고의 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혁신적이면서도 혁명적이었다. 그러면서도 공맹의 사상에 대적할 정도로 세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설득력 있는 민중의 논리뿐 만 아니라 그의 실천력이었다. 각 제후국들의 전쟁을 실제로 막기 위해서 동분서주했으며 전략을 짜고 스스로 전쟁을 막기 위해서 전쟁터로 나가기도 불사했다. 부모도 자식을 평등하게 대하나, 불의를 저지르면 인간관계에 관계없이 형벌을 실행하는데 냉정했으며, 검소한 삶 등을 모범을 보임으로써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서 자신의 주장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그러기에 많은 백성들이 따르고 세력을 키워 낼 수 있다.

 

공맹사상을 따르던 지배세력의 막강한 영향력에도 굴하지 않고 힘든 민중들의 삶 속에서 함께하며 그들의 삶을 돌보았다. 하지만 그러기 때문에 그의 사상은 또한 암흑 속에서 2000년간을 보내야 했다. 어느 정도 지배계급들의 세력이 자리 잡자마자 바로 묵자의 사상을 탄압하며 그를 따르는 사람이나 자료들을 모두 제거하게 되었다. 그런데 근대에 들어서도 검소, 정의, 평화, 평등의 가치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은 쉽게 세상에 드러나지 못했다. 아니 그들도 묵자의 사상을 적극적으로 발굴해서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의 실천력 때문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 냉정하면서도 온 정열을 쏟으며 자신의 주장을 실천했던 그의 행동은 현대의 아무리 깨우친 사람도 따라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디 한번 읽어 볼까하고 시작했던 '묵자'라는 책은 삶의 지표를 알려줄 스승 묵자에게로 나를 인도해 주었다. 책을 덮고 내 생각을 정리해서 쓸려고 하니 마치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고 있는 느낌이다. 마음에 새길 말 따로, 실천적 용기를 주는 말 따로, 토론에서 논박에 사용할 말 따로따로 정리하고 싶기도 하고, 글 한 편 한 편 확대하여 돌아가면서 책상 앞에 붙여놓고 매일매일 새기고도 싶다. 마음속에 계획만 어지럽게 춤을 춘다. 책의 표지만 봐도 마음속에 경외심이 저절로 떠오른다.

 

하지만 분명한 한 가지는 내가 자본주의적 사회에서 적응하기 위해 계산적인 삶으로 돌아가고자 할 때, 나만의 편리함을 위해서 이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이익을 추구하고자 할 때, 어차피 세상은 이럴 것이다 라면서 주변에 대한 인식을 닫고 나만의 삶 속으로 은둔하고자 할 때, 큰 눈을 부라리며 큰 소리로 나를 추슬러줄 묵자라는 스승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이끌 만큼은 아니어도 묵자의 생각들을 되새기며 실천하려는 마음의 자각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y*****5 2011.09.05.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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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남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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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나 노자, 장자는 읽어도 묵자는 간단하게 지나갔다. 평가는 그냥 특이한 사람 정도다. 이유는 뭘까? 아마, 현실에서 실현 가능성이 없는 공리공론 누가 말 못해, 뭐 그 정도 인상 때문이 아닐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다 편견이다. 잘 모르기 때문에 하는 얘기다. 묵자는 탁월한 이론가이자 실천가이다. 구석에서 잠깐 나왔다 사라진 인물도 아니다. 춘추전국 시대에는 유가와 맞먹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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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나 노자, 장자는 읽어도 묵자는 간단하게 지나갔다. 평가는 그냥 특이한 사람 정도다. 이유는 뭘까? 아마, 현실에서 실현 가능성이 없는 공리공론 누가 말 못해, 뭐 그 정도 인상 때문이 아닐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다 편견이다. 잘 모르기 때문에 하는 얘기다. 묵자는 탁월한 이론가이자 실천가이다. 구석에서 잠깐 나왔다 사라진 인물도 아니다. 춘추전국 시대에는 유가와 맞먹는 세력을 형성했다. 그의 이론은 정밀하고 실천은 과감했다. 왜 나는 그 동안 묵자를 몰랐을까. 왜 눈 감았을까. 왜 그를 단지 어쩌면 예수와 만났을 지도 모르는 사람, 등의 신비주의적 측면으로만 이해했을까. 왜 나는 자본론은 읽으면서 묵자는 읽지 않았던 걸까.

경제사상, 정치사상 등 어느 것 하나 지나칠 수 있는 게 없다. 묵자의 사상을 한 마디로 하면, '세상에 남이란 없다'이다. '겸애'. 이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말만 하고 실천은 아닐 수 있으니까. 경제사상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노동관이다. 필요 이상의 일을 해 잉여 자본을 축척하지 않는다. 절약을 강조하는 데, 그 절약도 민중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잉여 가치의 산츨이나 필요없는 장식을 위한 피하기 위한 절약이다. 묵자는 항상 민중의 이익을 앞에 세웠다. 세상에 왕이 있는 이유도 같다. 민중의 대표자일 뿐이다. 맹자의 '혁명' 정도 개념이 아니다. 얼마나 탁월한가. 2000년 전에 이 말을 했다니.

묵자는 전쟁을 반대한다. 전쟁은 하늘의 뜻에 어긋난다. 하늘은 겸애를 원하기 때문이다. 묵자는 말만 하지 않았다.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치면 약한 나라를 직접 도왔다. 왜 반대했는가. 민중의 이익에 어긋나는 일이 전쟁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누가 가장 피해를 입는가.

묵자는 행동 근거로 하늘을 삼는다. 일부 학자들은 하늘이라는 비이성적 존재를 행동 근거로 삼는 묵자를 우파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는 단견이다. 묵자가 보는 하늘의 뜻은 어디에 있는가. 민중의 이익에 있다. 민중의 이익에 부합하는 하늘이다. 문득 공산당 선언 서장에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민중의 이익에 부합하는 하늘과 귀신. 이를 단지 '괴력난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예를 들어 묵자는 '운명론'을 반대한다. 지배층은 운명론을 퍼뜨린다. 어쩔 수 없어. 지배층의 이익을 위해서다. 묵자는 다 하늘의 뜻이고 운명이라는 말 대신에 분명한 원칙을 세운다. '삼표론'이다. 그 중 하나가 민중의 이익에 부합하는 일이 운명이다, 라는 말이다. ㅋ 이렇게 분명할 수가.

묵자의 공동체론은 맑스의 '코뮨'을 떠올리게 한다. 자율적인 개인들의 연합체. 묵자와 제자들의 삶을 보면 이들은 탁월한 사회변혁가들이기도 했다.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공동체가 아니라, 세상에 열린 공동체다.

다시 묵자를 읽어야 한다. 우리가 끊임없이 자본론을 펼치는 이유와 같다. 혼란스러운 시대이기 때문이다. 실천의 기준을 어디에 둬야할 지 헷갈리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나만 편하면 세상은 다 편한 줄 안다. 세상은 병들고 고통받고 있는 데 나만 편하면 진정 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세상이 다 그런 거라고. 뭐가 다 그렇다는 말인가. 우리는 지금 최소한의 부끄러움도 모르는 시대를 살고 있다. 끝으로 기세춘 선생의 번역은 정말 좋다.

g********m 2011.06.3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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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를 통하여 억울한 사람이 없는 공동체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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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묵자(墨子)를 언제 배웠는지 생각해보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언젠가 제자백가 속에 묻혀있는 그를 들은 적이 있겠지만 그게 정확하게 언제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런 사람을 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은 순전히 영화 『묵공(墨攻)』 때문이다. 『묵공(墨攻)』은 단순히 역사물을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접하게 된 영화다. 그런데 그 속에서 정확하게 예수의 사상과 겹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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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묵자(墨子)를 언제 배웠는지 생각해보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언젠가 제자백가 속에 묻혀있는 그를 들은 적이 있겠지만 그게 정확하게 언제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런 사람을 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은 순전히 영화 『묵공(墨攻)』 때문이다. 『묵공(墨攻)』은 단순히 역사물을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접하게 된 영화다. 그런데 그 속에서 정확하게 예수의 사상과 겹치는 장면을 본 것이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 언제 배웠는지 기억도 안 나는 묵자(墨子)가 있었다.

묵자(墨子)에 대한 관심의 시작이 다소 엉뚱하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그렇게 해서 묵자의 매력을 접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한 번 작심하고 묵자를 읽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고 2년이 지났나? 거의 천 쪽 가까운 두께로 『묵자(墨子)』라는 책이 나왔다. <기세춘>이라는 지은이는 내가 처음 대하는 사람이지만 이 바닥에서는 꽤나 유명한 사람인 것 같다. 그는 1992년에 이미 묵자(墨子)를 완역할 정도로 묵자에 정통한 사람이기도 하다. 새로 나온 이번 책은 그때 번역을 보완하고 거기에 설명을 붙였다고 하니까 묵자에 대해서는 거의 완결판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묵자를 한 번 작심하고 읽어보기로 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런 책을 읽어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고 책을 받았다. 하지만 책을 받아든 순간 들어온 느낌은 처음에 기대했던 것과 달랐다. 책의 무게에 짓눌렸다고나 할까... 이건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왔다. 물론 그 짓누름이 천 페이지가 주는 분량의 무게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보다는 편집상의 특별함이 가져다주는 억압이었던 것 같다. 책을 읽어가면서 발견하게 된 편집의 특별함이 사실은 독자를 위한 배려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처음 대할 때는 그게 배려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 책은 저자의 해설이 먼저 나오고 그와 같은 해석이 나오게 된 근거로 원문과 그 번역을 해설 뒤에 붙여놓는 방법으로 엮여진 책이다. 이 방법은 단순한 각주로 출처를 밝히는 방법보다 훨씬 실증적이어서 읽는 이에게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책을 쓰다 보니까 읽을 수도 없는 한자들이 빼곡하다. 페이지 아랫단에 설명으로 붙여놓은 각주도 전부 한자로 되어 있다. 나에게 한자(漢字)를 배운 경력이라고는 중학교 2학년 때 딱 1년뿐인데 그 실력으로 이런 책을 읽는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이보다 훨씬 쉬운 책을 상상했던 것 같다. 이문열의 『삼국지』같은 것이었을까? 어쩌면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묵자의 글에 대한 꼼꼼한 해석과 그에 대한 자세한 풀이를 곁들인 주석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세춘의 『묵자(墨子)』는 그런 책이 아니었다.

이 책은 크게 <해설>과 <원전읽기>로 구성되어 있다. 뒤에 나오는 <원전읽기>는 아마도 저자가 17년 전에 번역했다는 그 글인 것 같다. 만약에 이것만 읽게 된다면 나의 묵자 읽기는 성경을 처음 읽을 때와 비슷한 상태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열심히 읽고 페이지를 넘기면 앞 페이지에서 무엇을 읽었는지 까맣게 잊어버리는... 그렇기 때문에 해설이 원전 앞에 위치하는 배열이 나에게는 더없이 유익하다.

뿐만 아니라 전체 분량의 4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해설>은 명석한 선생의 정교한 강의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10회에 걸쳐서 진행되는 이 강의에서 저자는 묵자의 사상을 주제별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다. 그 중 어떤 것은 분량이 많고 어떤 것은 슬쩍 지나갈 정도로 짧지만 묵자의 생각을 주제별로 구분했다는 것이 초심자인 나에게는 묵자를 쉽게 정리할 수 있는 틀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저자의 강의에 홀딱 빠지게 된 데는 전혀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그가 가진 지성의 깊이와 넓이가 어디까지인지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어서 그렇다. 저자의 강의 방식은 이렇다. 일단 정해진 주제가 있으면 그 주제에 대한 사상사의 흐름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반전 평화론>을 강의한다면 먼저 전쟁이 무엇인지를 묻고, 전쟁에 대한 서양사에서의 견해와 공자/맹자의 견해가 어떤 것인지를 고찰한다. 그렇게 하고 나서 묵자의 견해가 다른 견해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하여 설명하고, 최종적으로 묵자의 사상이 오늘날 우리 시대에 어떻게 적실한 것인지로 적용 내지는 비판을 곁들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저자가 끌어오는 수많은 철학과 이상들, 그와 관련된 사상가들을 따라갈라치면 숨이 차오른다. 고대 그리스의 파르메니데스(Parmenidēs)에서 최근의 칼 포퍼(Karl R. Popper)까지, 그리고 고대 중국의 수많은 사상가들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사상을 묵자와 비교하고 있다. 그가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지성의 숲은 너무 넓고 너무 깊어서 그 끝을 찾을 수가 없다.

내가 이번에 배운 것은 묵자가 얼마나 큰 사상가인가 하는 사실이다. 저자는 ‘묵자를 공맹(孔孟)과 함께 골짜기를 이루는 한 쪽 벽’이라고 비유했다. 나에게는 이 그림이 다른 어떤 설명보다도 강하게 다가왔다. 세상에는 공자와 맹자만 있고 나머지는 그저 그런 사람들인 줄로만 알았는데 공자의 반대편에서 사상의 골을 만든 사람으로 묵자를 제안했으니 나의 무지가 놀랄만도 하다. 묵자의 신론(神論)에서부터 국가론(國家論), 철학, 정치, 경제사상 등을 따라가다 보면 저자의 평가가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묵자를 조금이라도 읽어본 사람들에게는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의 사상은 겸애(兼愛)로 요약된다. 겸애의 반대쪽에 있는 것은 체애(體愛)라고 하는데 내 자식, 내 가족, 내 나라와 같이 나를 중심으로 하는 사랑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이에 반해서 묵자의 겸애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사랑”이라는 의미이며 이것은 곧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하는 하느님의 뜻만이 정의”라고 하는 가르침이다. 묵가들이 전쟁을 반대하고 불기피한 전쟁에서도 수비의 자세로 일관한 것은 그들이 가진 이런 신념에서 나온 자연스런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이 사상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결국 대동단결하는 인류공동체를 만나게 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삶의 원칙으로 사는 세상을 상상하게 된다. 내가 예수의 가르침과 겹쳐지는 부분으로 별견한 곳이 바로 거기다.

이렇게 엄청난 가르침이 2,500년 전에 주장되었다고 하는 사실이 놀랍지만 인류 역사에서는 항상 체애(體愛)의 구조가 승리했다. 결국 묵자는 감춰지게 되었고 우리의 기억에는 공맹(孔孟)만이 남게 되었다. 고대 사회에 비해서 어느 정도 열린사회가 되었다고 하는 현재에도 여전히 계층 간의 갈등과 싸움들이 있는 것을 보면 2,500년 전에 살았던 묵자의 가르침이 얼마나 파격적이고 진보적인가를 실감하게 한다.

나에게는 처음 대하는 묵자였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그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급하게 책을 읽었지만 이 책은 한 번에 쑥 읽고 지나가는 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가까이에 두고 곱씹고 묵상하기로 했다. 여전히 욕심에 이끌려서 살게 하는 정신구조가 그의 사상에 물들어간다면 인간을 이롭게 하는 하느님의 뜻에 조금씩이라도 가까워지지 않을까 싶다.

YES마니아 : 로얄 k*****h 2009.04.05.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