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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의 즐거움을 다시 한번 알게 일깨워 준 책이다. 우리가 책을 읽는 것은 다름 아닌 저자의 사상과 소통을 위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특히 古典은 그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어 더욱더 소통의 의미를 배가 시킨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墨子>>는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특히 묵자를 접하는 동안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 기독교의 복음서와 불교의 법화경, 마르크스의 유토피아, 애덤 스미스의 경제학등 마치 익히 우리가 알고 있는 주요한 사상이 어떻게 그 옛날 한개인에 의해서 설파되었을까 하는 생각과 인문사상사를 다시 집필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묵자의 내용이 친근감으로 와닿았던 것이다. 묵자는 단지 중국사상의 르네상스시대였던 춘추전국시대에 유가, 도가, 법가등 수많은 사상가중 하나로서 그리고 좀 더 나아가서 '겸애사상' 정도를 주창했던 잊혀진 고대사상가로만 알고 있었던 일자무식의 필부인 나에게 그래서 기세춘선생의 <<묵자>>는 많은 충격을 던져 주었다. 첫째, 묵자의 출신성분이 불손하다. -한족의 입장에서- 공자, 노자, 한비자, 순자, 맹자등 이름만 들어도 장장한 이들은 한족의 후예들이다. 하지만 묵자의 경우 학자들의 대체적인 견해는 한족출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묵자는 어디에서 왔을까? 중국 사서의 기록으로 추론하면 묵자는 고죽국의 후손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바로 묵자가 동이족의 후예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추친된 중국의 상고사 발굴 프로젝트에 의하면 고죽국이 위치한 홍산문화, 하가점하층문화가 바로 동이족의 문화라는 것이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근거로 보면 묵자는 동이족의 후예였고 그래서 한족의 시각에서 그의 사상을 부각시키는 것이 다소 부담스럽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둘째, 묵자는 아주 불손한 사상의 소유자이다. -지배계층의 입장에서- 공자를 비롯한 사상가들의 출신성분은 대체로 사(士)였다. 요즘으로 치면 식자층에 속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묵자의 경우 비천한 노동자 출신으로 출신만 놓고 보면 이들과 비교대상이 되질 않는다. 특히 그가 내세운 겸애사상 즉 만민평등사상은 당시 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왕조국가에서도 받아 들이기 힘든 사상임에 틀림 없었다는 것이다. 하물려 현대의 정치제도하에서도 상당히 진보적인 사상이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한족이 아니고 하층민출신으로 위험천만한 사상을 펼친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진시황의 전국통일이후 진행된 집단의 망각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서서히 역사의 망각에서 깨어나고 있는 것이다. 묵자의 사상을 좀더 쉽게 그러면서도 그의 뜻이 제대로 살아있는 말로 함축하면 아마도 "天下無人" "兼愛" 이 두마디로 대변될 수 있을 것이다. 글자그대로 풀이하면 천하무인은 천하에 남은 없다라는 뜻이고 겸애 두루평등하게 사랑하라는 뜻이 될 것이다. 묵자의 철학과 정치,경제, 외교,반전사상등을 한꺼번에 표현하는 말이 바로 천하무인과 겸애이다. 묵자는 천하무인/겸애의 세상을 이루기 위해서 두가지의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삼표론과 절용론을 통해서 천하무인, 兼相愛 交相利로 이르는 길을 설파하고 있다. 마치 예수가 그의 하나님을 찾아 가는 구도의 길을 제시하듯이 말이다. 묵자가 말하는 구도의 길은 삼표론과 절용론으로 대변된다. 三標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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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단 한편을 꼽으라면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항상 《미션》을 꼽는다. 1750년 험준한 남미 오지에서 예수회 선교사들은 과라니족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서로 다른 투쟁방식을 보여준다. 가브리엘 신부(제레미 아이언스)는 결연히 비폭력 저항노선을 걷는다. 로드리고 신부(로버트 드니로)는 검과 총을 다시 잡고 무장항쟁을 준비한다. 급한 물살의 강물과 하얀 물보라를 날리는 폭포를 따라 잔잔하게 울려퍼지는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들으며, 이들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지키려 한 사랑과 정의의 의미를 되새겼다. 어린 마음에도 두 사람은 각각 그리스도를 본받는 두 가지 길을 제시한다고 믿었다. 저항의 정치와 섬김의 정치. 난 그렇게 이해했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여긴다. 그 후 엔니오 모리꼬네의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들을 때면 불연 듯 자신의 신념과 희망을 관철하고 구현하기 위해 온몸을 내던진 혁명가들을 상기하게 된다. 체 게바라, 김산, 간디, 호치민, 예수, 그리고 묵자.
《맹자•등문공》편에 따르면 춘추전국시대의 지배적 사조는 공자와 노자가 아니라 양주楊朱와 묵자墨子였다. 유가에서 볼 때 양묵은 받아들이기 힘든 양극단의 유행사조였다. 가령 양주는 위아為我•귀기貴己•경물중생輕物重生으로 대변되는 극단적 이기주의자로, 묵자는 겸애로 대변되는 극단적 이타주의자/평등주의자로 간주된다. 양묵은 마치 서구의 쾌락주의자 에피쿠로스와 예수처럼 비춰지거나, 혹은 서구의 정치사조인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에 비유될 수도 있다.
묵자의 눈으로 보면, 유가는 당대의 보수적인 지배계급질서를 옹호하고 재생산하는 정치적 헤게모니였다. 다시 말해 가진 자의 지배를 합리화하는 천명사상과 노예제적 종법질서의 수호자였다. 유생의 최종목표는 군자가 되는 것이다. 군자란 대부이상의 관리를 지칭한다. 재미난 것은 저자가 대인을 봉건귀족으로, 소인을 지주계급 같은 신흥자본가와 엘리트 관료계급으로 간주한다는 점이다.
묵학은 거의 2000년간 잊혀진 사상이었다. 그러나 1783년 도가경전 속에 어록이 발견되어 청조중엽부터 주목받기 시작한다. 청말 묵학연구의 교과서적 텍스트는 손이양孫詒讓(1848-1908)의 《묵자한고墨子閒詁》다. 엄복嚴復(1854-1921)、양계초梁啟超(1873-1929), 호적胡適(1891-1962), 풍우란馮友蘭(1895-1990) 같은 학자들은 묵학과 서양사상을 비교하는 작업을 펼쳤다. 비교대상으로 플라톤, 기독교, 홉스, 로크, 루소, 칸트, 벤담, 존 스튜어트 밀, 사회주의, 논리학 등을 망라한다. 1992년 국내 최초로 묵자를 완역한 바 있는 저자 기세춘 선생의 글에도 묵자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여러 사상가들이 무대에 등장한다. 앞서 언급된 대상들 말고도, 아리스토텔레스, 헤겔, 베르그송, 애덤 스미스, 모택동, 베블런, 르페브르, 보드리야르, 만하임, 공동체주의, 기독교 사회주의, 아나키즘, 논리실증주의 등등이 언급된다. 전체적으로 저자의 강점은 종교철학에 있다. 묵자와 기독교와의 비교가 특히 인상적이다. 묵자와 서양철학과의 비교는 단순히 언급하는 수준에 그치고 상세히 설변하지는 않는다.
묵자는 이름이 적翟이며 노魯나라(지금의 산동남부) 사람이다. 묵자의 사상적 지위에 대해 저자 기세춘은 「실천하고 조직하고 투쟁한 혁명가였다」고 압축한다. 반전주의자이지만 전쟁이 일단 일어나면 침공당하는 나라로 제자들을 이끌고 가서 방어와 수성에 힘쓴 사회운동가였다. 영화 《묵공》은 개인주의적인 영웅의 이미지화란 약점이 있지만, 묵가의 사회운동가적 면모를 잘 재현하고 있다. 묵자집단의 최고지도자를 거자鉅子라 칭하는데, 묵적이 제1대 거자였고 제자 180여명은 그를 성인으로 받들며 절대적으로 복종했다. 공동체의 내부규율은 엄하기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살인자는 사형에 처하고 상해자는 형에 처한다. 《여씨춘추》를 보면 당시 거자 복돈腹䵍이나 맹승孟勝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흥미있으면 참조하길 바란다. 묵학은 전국말기에 겸애兼愛•유협游俠•명리名理 세파로 갈라진다.
■묵자는 평등공동체를 지향한 공화주의자다.
겸애는 생명존중 사상과 공동체 정신을 반영한다. 겸애의 실천을 교리交利라고 말한다. 정치사상적 측면에서 겸상애/교상리의 원칙은 인권평등의 근원을 하늘의 뜻에 두는 천부평등권과 어진 이를 높이고 능한 이를 채용하는 상현사능尚賢使能, 그리고 안락한 생명살림인 안생생安生生의 대동사회론으로 연결된다. 공자의 인정의 목표가 예치의 소강사회라면 묵자의 겸정의 목표는 겸애의 대동사회로, 우임금의 평등사회를 전범으로 한다.
묵자는 인류 최초의 반전평화주의자다. 원칙적으로 전쟁은 하느님의 뜻을 어기는 반인륜적 죄악이고 노예를 만들어내는 제도이자 파괴적인 초과 소비의 전형이라 여겨 반대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전쟁의 성격을 정의로운 전쟁인 주誅와 불의의 전쟁인 공攻으로 구분했다. 다시 말해 비공은 일체의 전쟁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침략전쟁에 반대하는 것이다.
■묵자는 예수의 선지자다.
저자는 유교의 하느님을 천인부합설, 천인감응설, 오상설, 귀명주의로 깔끔하게 요약한다. 중국의 천제신앙은 공자•동중서•주희를 거치는 삼대변혁을 겪는다. 공자는 인본주의적 종교사상을 보이는데, 유신론과 유물론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신에 대해서 불가지론을 펼쳤다. 경신敬神과 원신遠神이 바로 대표적인 공자의 종교관. 동중서는 천인분이설에 대항하여 천인부합설과 귀명론을 내세우며 경학사상의 신학화를 이룬다. 예수에게 사도 바울이 있다면 공자에겐 동중서가 그런 존재다. 교부철학의 토마스 아퀴나스에 비견할 수 있는 성리학의 집대성자 주희는 이신론理神論과 인심이 천심이라는 이념을 내세웠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묵자의 하느님을 살펴보자. 저자는 묵자의 하느님을 12가지 테마로 정리하는데 이는 다시 조물주, 유일신, 인격신, 구세주, 민중의 수호신 5가지로 요약가능하다.
「묵자와 예수의 하느님은 다 같이 구세주였다. 그러나 묵자는 현세의 구원이었고 예수는 내세의 구원이었다. 묵자는 『땅의 나라』를 말하고 예수는 『하늘나라』를 말한다. 묵자는 혁명가였고 예수는 종교가였기 때문에 시각이 달랐던 것이다.」(p.162)
■묵자는 과학철학자다.
인식론에 있어서 묵자는 경험론자이고 유명론자다. 그리고 실천적 인식론을 펼치는데, 《묵자 • 수신》편에 이르길, 많은 말을 하려고 힘쓰지 말고 실행하는데 힘써야 하며 지혜는 자기를 드러내는데 쓰지 않고 잘 살피는데 써야 한다고 말한다. 묵자에게 지知는 재료이며 지智는 경험이며, 의意는 선험적 경험 또는 관념이다. 주로 아포리즘 성향이 농후한 〈경經•경설經說〉에 실려있는데, 내 미천한 지식으론 이해하기가 어렵다. 겉보기에 단순하나 막상 파고들면 심오하게 다가온다. 원인故, 부분體과 전체兼, 지식知 등 여러가지 과학철학적 키워드를 해설해 모아놓은 개념어사전 같다.
앞서도 언급했듯 묵자 사후의 후기 묵가는 3파로 분열되는데, 《묵자》란 책이 상•중•하로 나뉘어진 것은 이 후기 3파의 글을 모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묵자》 상편을 묵자 본연의 가르침을 지키려는 순수파의 글로, 하편을 현실에 영합하려는 반동파의 글로 본다는 사실이다. 저자의 이런 관점은 아이러니하게도 곽말약의 《묵경墨經》 연구에 근거한 것 같다. 내가 「아이러니」란 말을 쓴 까닭은 저자와는 반대로 곽말약은 묵자를 우파적 보수적 인사로 보았기 때문이다. 곽말약은 〈경상〉편과 〈경하〉편 사이에 대립하는 관점을 예리하게 지적했는데, 장자가 말한 후기 묵가의 견백지변堅白之辯과 동이지변同異之辯이라고 했다. 〈경상〉파는 단단하고 흰 것이 서로 외면하지 않는다盈堅白라 말하고, 〈경하〉파는 단단하고 흰 것이 서로 나뉜다離堅白고 말한다. 곽말약은 단지 이 두파의 견해차이를 지적했을 뿐 그들을 순수파와 반동파로 규정짓지는 않았다. 이런 순수파와 반동파의 구분이 올바르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본다. 지나친 사변이다.
인성론에 있어 묵자는 사회적 학습에 의한 소염론所染論을 주장하는데 오늘날의 「빈 서판」이론이라 하겠다. 묵자의 가치론은 근원•원인•실용으로 대표되는 삼표론三表論에 나타난다. 삼표론에서 민본주의, 민중주의, 결과를 중시하는 실용주의적 태도를 읽을 수 있다.
「모든 존재판단과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세 가지 표준 이른바 『삼표』를 제시한다. 첫째 표준은 본本인데, 하늘의 뜻을 실행한 바 있는 성왕의 역사적 경험을 표본으로 삼는 것이며, 둘째 표준은 원原인데, 판단 주체인 인민의 이목에 따르는 것이며, 셋째 표준은 용用인데, 실제로 인민의 이용후생에 이로운 것을 따른다는 것이다.」(p.223)
묵자의 논리학은 명실론名實論인데 공자의 정명론正名論에 대한 비판이다. 그 맥락은 대취大取와 소취小取에 나온다. 묵자의 명제논리는 조건故•조리理•유추類로 대표되는 삼물론三物論이다. 조건은 필요조건小故과 충분조건大故을 말하고, 조리는 논리규칙을, 유추는 귀납법과 연역법을 말한다. 삼물론 이외에도 비유, 제등, 원용이나 추론 등이 언급된다.
■묵자는 공리주의 경제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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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묵자’를 읽게 되었을 때는 단순한 호기심이 나를 이끌었다. 분명 공자, 맹자, 노자, 장자들과 같이 역사시간에 등장은 했으나 별로 기억나는 이야기가 없었다. 현재 나의 시대에 등장했던 옛 성현이므로 분명 뭔가 대단한 일은 했을 것인데 왜 어정쩡하게 슬쩍 언급만 되고 사라져야 했는지 궁금했다. 묵자는 각 제후들이 영토전쟁을 일삼으며 민중들의 삶을 힘들게 하던 춘추전국시대 서로 다른 시각과 철학으로 민중과 제후들을 이끌었던 제자백가 중의 하나로 우리는 겸애설을 주장했다고만 배웠다. 서로 하도 싸우니까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자연 속에서 성품을 닦으면서 살라는 노자처럼 겸애를 주장했다는 묵자도 서로 싸우지 말고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 철학자인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묵자’라는 책은 나에게 너무나 혁신적인 위대한 사상을 실천하면서 민중들의 삶을 돌보고자했던 묵자라는 인물을 소개해주었다. 묵자가 살았던 시절은 한반도에서는 고조선이 나라의 틀을 잡고, 부여라는 부족국가가 형성되는 시기이며, 유럽에서는 그리스의 패권을 잡은 아테네가 파르테논 신전을 세우면서 전성기를 누리던 때이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으로 노예 집단을 만들고, 그들의 힘으로 건축물을 세우고 사회 조직을 만들어가던 시절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 대륙에서는 더 치열하게 제후국들의 전쟁이 끊이지 않던 때이다. 책에서 만난 묵자는 평소 내가 가지고 있는 의문에 친절하면서도 쉽게 설명해 주었다. 나: 임금은 누구이며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겁니까? 묵자: 하느님이 처음으로 백성을 낳아 통치자가 없을 때는 백성이 주권자였습니다. 그러나 분쟁이 생기면서 백성들의 뜻이 하늘의 뜻과 일치하도록 어진 이를 뽑아 천자로 삼았지요. 하늘은 힘을 가진 자는 서로 돕고, 도리를 가진 자는 서로 가르쳐 인도하고, 재물을 가진 자는 사로 나누며, 윗사람은 힘써 다스리고 아랫사람은 힘써 자신의 일을 하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천자는 이를 세상에 펼쳐야 합니다. 나: 백성들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야 할까요? 묵자: 윗사람의 허물을 감시하고, 옳은 것은 옳다고 말하고, 주위의 선한 사람을 천거하면서 자신의 능력과 역할에 맞게 힘써 일하며 살아야 합니다. 또한 자신의 미래와 노력에 대해서는 운명론을 거부하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때는 허례허식에 의존하지 말며, 두루 많은 사람들에게 의롭고 이롭게 행동해야 합니다. 나: 열심히 일하는 선한 백성들이 늘 쪼들리는 것은 왜입니까? 묵자: 신분제에 의해 지배계급들이 지나친 장례나 호화로운 행사 및 가무, 전쟁 등에 초과 소비를 하게 되면서 백성들의 삶이 힘들어집니다. 따라서 백성들이 그들이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억지로라도 생산해내기 위한 노예노동에 종사하게 되고, 이는 풍요로운 삶을 위한 노동의 가치를 떨어뜨리면서 부의 불평등을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노동을 하면서도 행복하지 못하고 결과물을 자신들의 것으로 충분히 누리지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백성들이 노예노동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백성들의 이용후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생산하려 하지 말고, 재화를 본래의 목적에 부합되게 소비하면서 모든 이들이 절도 있는 소비생활을 하면 되고 가진 자들이 나눔을 베풀고 살아야 합니다. 나: 무엇이 옳은 것입니까? 묵자: 어떤 주장이나 명제, 행위를 판단함에 있어 민중들의 눈과 귀의 사실성에 근거를 두고 참이어야 하며, 역사적 경험에 의해 그 타당성이 검증되어야 하며, 실천에 의해서 민중의 이익으로 그 실용성이 검증되어야 합니다. 즉 정당한 행위나 명제는 사실판단의 진실성, 당위판단의 역사적 검증성, 실천적 검증의 실용성을 담보되어야만 합니다. 지금까지 내용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논리이며 생각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하지만 묵자의 세상을 살펴보면 이러한 생각들이 얼마나 파격적이고 혁명적인 사고인지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이 내린 천자, 하늘이 정한 신분과 부의 세습, 백성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한계등이 이후 천 년 이상 계속되던 주류의 세상이었다. 신분제, 세습제의 폐단을 강력한 설득력으로 지적했으니 그 바탕위에 있는 귀족, 제후, 지배계급의 눈에는 묵자는 너무나 위험한 사상을 가진 불온분자였을 것이다. 그의 혁명적 사상은 그 뿐이 아니다. 먼저 당시는 상상할 수 없었던 평등사상을 주장했다. 신분 세습, 부의 세습을 당연시하고 백성들의 혁명을 방지하기 위해 운명론을 퍼트리면서 기득권의 지배세력들은 통치 권력을 유지해 나갔다. 묵자는 이에 대해 인권의 평등, 운명론의 폐해, 세습제도의 문제점, 지배세력의 역할들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세력들은 차별에 근거를 한 폭력의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닌 평등, 겸애를 기초로 한 통치가 의로운 정치임을 천명함으로써 진보주의적 정치관을 처음으로 드러낸 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또한 전쟁을 통해서만 천하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누구나 믿었던 세상에서 반전 평화를 주장하고 실천했던 운동가이다. 전쟁이 가지는 경제적, 사회적 문제점,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 전쟁을 막기 위한 노력, 승리를 찬양하는 것의 논리적 문제점 등을 구체적으로 상징을 이용해서 꼬집어냄으로써 왜 평화롭게 사는 것이 하늘의 뜻인지를 알려준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지금 우리의 동시대적 사고방식으로 경제상황을 설명해나갔다. 가격이 설정되는 방법, 노예노동의 문제점, 절도 있는 소비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 허례허식이나 과소비가 가져오는 폐해 등을 매우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또한 그는 예를 빙자한 과도한 장례나 행사들, 학문 수양을 빙자한 무노동 또는 게으름 등의 공맹사상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또한 그는 백성들의 노동의 부담을 덜기 위해 각종 도구나 기계등을 스스로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경제에 대한 각종 이론과 논리를 펴면서도 실제로 생활 속에서 스스로 실천했던 과학자이면서도 기술자이기도 했다. 이런 묵자의 생각들을 알아가면서 나는 매우 충격적인 사고의 전환을 해야만 했다. 마음 한편으로 인간이 만들어내는 많은 이론들이나 주장들, 철학들은 선구자들의 틀을 조금씩 바꾸어가면서 발전을 이루어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라캉의 정신분석이론이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발전한 것처럼 획기적이거나 혁명적인 인식의 전환은 인문학에서는 만들어지기 어렵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묵자를 만나고 나서는 이런 생각을 고집할 수가 없었다. 인간 생활의 사고의 변천을 본질적 근원에 질문을 하면 2500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보편적 사상과 해답을 찾아 낼 수 있는 인간의 이성의 힘이 느껴졌다. 선견지명이 예언이 아닌 철학, 사상의 힘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묵자의 설명은 예언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의 설명에는 당위성이 늘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노동의 문제를 다루는 그의 설명을 들어보자. 노동은 인간이 존재의 존엄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늘이 부여한 가치이며 편리함과 행복을 추구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재화를 필요한 만큼, 원래의 목적에 부합되도록 사용할 수 있을 만큼만 생산하게 되면 강제되지 않는 한가한 노동, 자신의 가치 창조를 위한 노동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일부 계층의 초과소비와 신분제로 인해 일하기를 강요당하는 노예노동에 종사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를 설명했다. 그런데 노예노동의 발생을 보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런 사회현상이 그대로 나타난다. 일부 계층의 과도한 욕심과 자본의 권력을 이용해서 대량생산으로 많은 재화들이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초과근무로 인한 자유노동이 아닌 노예노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그의 논리는 지금도 여전히 강력한 설득의 힘을 가지고 있다.
묵자의 논리나 철학은 당시의 사고의 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혁신적이면서도 혁명적이었다. 그러면서도 공맹의 사상에 대적할 정도로 세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설득력 있는 민중의 논리뿐 만 아니라 그의 실천력이었다. 각 제후국들의 전쟁을 실제로 막기 위해서 동분서주했으며 전략을 짜고 스스로 전쟁을 막기 위해서 전쟁터로 나가기도 불사했다. 부모도 자식을 평등하게 대하나, 불의를 저지르면 인간관계에 관계없이 형벌을 실행하는데 냉정했으며, 검소한 삶 등을 모범을 보임으로써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서 자신의 주장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그러기에 많은 백성들이 따르고 세력을 키워 낼 수 있다. 공맹사상을 따르던 지배세력의 막강한 영향력에도 굴하지 않고 힘든 민중들의 삶 속에서 함께하며 그들의 삶을 돌보았다. 하지만 그러기 때문에 그의 사상은 또한 암흑 속에서 2000년간을 보내야 했다. 어느 정도 지배계급들의 세력이 자리 잡자마자 바로 묵자의 사상을 탄압하며 그를 따르는 사람이나 자료들을 모두 제거하게 되었다. 그런데 근대에 들어서도 검소, 정의, 평화, 평등의 가치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은 쉽게 세상에 드러나지 못했다. 아니 그들도 묵자의 사상을 적극적으로 발굴해서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의 실천력 때문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 냉정하면서도 온 정열을 쏟으며 자신의 주장을 실천했던 그의 행동은 현대의 아무리 깨우친 사람도 따라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디 한번 읽어 볼까하고 시작했던 '묵자'라는 책은 삶의 지표를 알려줄 스승 묵자에게로 나를 인도해 주었다. 책을 덮고 내 생각을 정리해서 쓸려고 하니 마치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고 있는 느낌이다. 마음에 새길 말 따로, 실천적 용기를 주는 말 따로, 토론에서 논박에 사용할 말 따로따로 정리하고 싶기도 하고, 글 한 편 한 편 확대하여 돌아가면서 책상 앞에 붙여놓고 매일매일 새기고도 싶다. 마음속에 계획만 어지럽게 춤을 춘다. 책의 표지만 봐도 마음속에 경외심이 저절로 떠오른다. 하지만 분명한 한 가지는 내가 자본주의적 사회에서 적응하기 위해 계산적인 삶으로 돌아가고자 할 때, 나만의 편리함을 위해서 이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이익을 추구하고자 할 때, 어차피 세상은 이럴 것이다 라면서 주변에 대한 인식을 닫고 나만의 삶 속으로 은둔하고자 할 때, 큰 눈을 부라리며 큰 소리로 나를 추슬러줄 묵자라는 스승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이끌 만큼은 아니어도 묵자의 생각들을 되새기며 실천하려는 마음의 자각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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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나 노자, 장자는 읽어도 묵자는 간단하게 지나갔다. 평가는 그냥 특이한 사람 정도다. 이유는 뭘까? 아마, 현실에서 실현 가능성이 없는 공리공론 누가 말 못해, 뭐 그 정도 인상 때문이 아닐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다 편견이다. 잘 모르기 때문에 하는 얘기다. 묵자는 탁월한 이론가이자 실천가이다. 구석에서 잠깐 나왔다 사라진 인물도 아니다. 춘추전국 시대에는 유가와 맞먹는 세력을 형성했다. 그의 이론은 정밀하고 실천은 과감했다. 왜 나는 그 동안 묵자를 몰랐을까. 왜 눈 감았을까. 왜 그를 단지 어쩌면 예수와 만났을 지도 모르는 사람, 등의 신비주의적 측면으로만 이해했을까. 왜 나는 자본론은 읽으면서 묵자는 읽지 않았던 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