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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혐오에 관한 짧은 이야기들/바람 속에서 서서히, 서서히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처음 들어봤다. 하지만, 그녀가 쓴 소설의 영화 <리플리>를 보면서 한껏 감성에 젖어있던 내가 아닌가! 그 영화의 원작 소설 작가의 글을 이렇게 우연히 접해보게 된 건 그것조차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가 있었다. 그만큼 나에게는 첫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이미 글자에, 그리고 글자가 이루어 낸 글들에 매혹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 정말 벅차다.
단편에 단편. 하지만, 그 단편들을 읽어내면서 책을 잡고 있던 손이 놓아지기를 바랬다. 그만큼 나도 혐오스러웠으니까. 작가라는 편견상, 아니 글을 쓰는 편견상 나는 왜 남성 작가이기를 바랬나. 그리고 여성 혐오에 관한 이야기라는 글자를 본 순간 왜 남자라고 생각했을까. 혐오스러운, 그렇지만 내내 나 자신이 생각은 하고 있었던 그런 추악한 모습의, 어쩌면 여자라는 본성의 느낌을 지니고 글을 써내려갈 수 있었던 것은 여자라서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를텐데. 그만큼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첫번째 단편인 "손"의 첫 문장을 보았을 때부터. 하지만 나도 그녀도 여자이기에 공감할 수 있고 감정이입 할 수 있는, 어쩌면 반대의 느낌상 남자로서 생각할 수도 있었을 그런 이야기였기에.
바람속에서 서서히, 서서히는 정도가 더했다. 컬트 문학이란 이런거구나. 그리고 컬트 영화에 한껏 고취되어 있었던 나는 그 강도를 슬며시 편안하게도 받아들일 수가 있었다. 아, 라는 감탄과 함께 비탄에 젖어있는 내가 느낄 수 있던 한가지는, 그래, 내 주변의 이야기구나. 아니, 나의 이야기, 어쩌면 내 상상속에서나 할 수 있었던 그런 이야기들이구나, 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만큼 삶은 다양하고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으로서, 다른 사람의 생각이 곧, 나일 수도 있다는 그런 착각 속에서 읽어내리기에는 불편하기 짝이 없었지만, 한시름 놓아버린 후의 읽는 과정에서는 태연하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살면서 행해지는 이야기들, 뉴스 속에서나 떠들어대는 경악할만한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들이 담겨있지만 꼭 흥미를 위해서는 아니다. 그저, 이런 이야기들을 읽고 깨달아버릴 경지에만 다다를 수 있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깨달아버릴 수가 없었기에, 그저 읽고 지나쳐버리기에는 너무나도 충격적이었기에 영상으로 보여지는 미학을 글로서 옮겨버렸기에 그 강도는 지나쳤다. 물론,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지나침.
느껴봐, 들리지 않니? 라고 속삭일것만 같은 작가의 외침에 나는 그냥 주저앉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생각만 하고 내보이지 않는 나의 속내들. 각자 자기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 생각으로밖에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 글로서 읽고 말았다. 느끼는 게 많았을지도 모르고, 읽고 나서 던져버릴 지도 모르는 편협한 축의, 호불호가 갈리는 이야기일 지도 모르지만 감정은 언제나 독보적인 것이고 독특함이라는 성격의 무언가를 갖고 있기 때문에 나의 손이 닿는 가까운 곳에 놓아둔다. 내 삶이 찌들어버렸을 때, 아니면 너무나 기쁠 때, 한번쯤 들춰보고 싶은 이야기들. 이런 생각을 하는 나에게 말한다. 이제 느낄 때도 되지 않았니? , 너의 생각과 현실에 대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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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플레망 감독의 '태양은 가득히' 그리고 앤서미 밍겔라 감독의 '리플리'의 원작자로 유명한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어찌보면 서스펜스 장편 소설작가로 명망높은 그녀의 신간이기에 기대감이 너무 앞선 것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책을 펼치면서 놓기까지 일관되게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어쩌면 책을 보는 내내 불편한 내 심리를 반영한 것인지도 모른다. 냉랭하면서 담백하고 거침없이 쏟아내는 표현, 그리고 실소를 자아내는 글귀에 내 스스로가 불편했음은 분명했고, 그녀의 자유분방한 실존주의 사상이 신의 존재를 믿고, 생활하는 나의 신념과 충돌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쉽게 써내려간듯한 짧은 소설에서도 '이게 뭐야~'라는 나의 생각과 상반되게 생각나게하는 힘이 있었다. 그것은 매혹적인 흡인력이 있었다.
솔직히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그런 주제도 아니고... 그리고 감동과는 조금은 거리가 먼 책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나의 일면을 보는 것같아 낯 뜨거워 감추고 싶기도 했다.
책의 첫부분에 나오는 '손'이란 작품은 결혼을 의미하는 손을 달라는 것을 기괴하게 진짜 손을 잘라줌으로써 한 인간의 끝을 보게하는 블랙코메디 같은 내용이다. 중의적 의미를 띈 문장을 가지고 어찌보면 말장난처럼 써내려간 내용을 보고 있자니, 언어 선택이나 말을 함에 있어서 따르는 책임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전도사'란 제목의 작품에서는 갑자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사람이 세계적인 전도자로서 살다가 너무나 허무맹랑한 자기 오류에 빠져 창에서 뛰어내려 최후를 맞이하는 스토리다. 과연 평생 자기가 맞다고 믿었던 것을 가지고 수많은 사람들을 전도했지만, 결국 너무나 허무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을 보면서 인생무상을 말하고자하는 작가의 염세주의가 여실히 들어난 부분이었다. 하지만 같은 삶을 살고 있는 난 작가의 그런 시선이 과연 그녀가 잘 알지 못하면서 써내려간것은 아닐까 하는 작가 스스로의 오류가 아닐까한 생각이 들었던 부분이었다.
'머리로만 책을 쓴 남자' 소설가였지만, 평생 눈에 보이는 책은 한권도 쓰지 않은 남자. 결국 머리속에서는 완벽하게 책을 8권을 썼지만, 그외에는 아무도 그 소설을 본 적도, 그 내용도 알지 못했다. 가족까지도 말이다. 그러나 한 편 그는 행복한 사람이었단 생각이 든다. 비록 그의 아들은 그를 조소했지만, 그의 아내만큼은 그를 훌륭한 소설가로 여기고 심지어 숭배하기까지 했으니. 심지어 머리도 같은 방향으로 틀어져(?) 그의 남편이 가족묘에 묻혔음에도 불구하고, 문인 묘지에 묻힌걸로 착각하며 죽었으니 말이다.
살면서 행복하려면 같이 나누는 사람과 같은 방향으로 미치면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정상적이지 못한 것을 지적만 하고 살았다면 그 부인만큼 불행한 사람도 없었을텐데, 배려가 착각이 되고, 그 착각속에서 살다보니 그녀는 그 남편만큼이나 행복한 생애를 마칠 수 있었다. 가끔은 이렇게 함께 미쳐주는 것도 삶을 행복하게 사는 하나의 방법일까?
'당신이 견디며 살아가야 할 것' 부부에게 일어난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그 부인이 살인자로 평생 자책하며 사는 것을 평생 지켜보는 남편. 이 모든 것을 자신의 숙명으로 알고 견디어 내는 어쩌면 이런게 사랑일까?
----- 사실 그 때문에 그들의 결혼 생활이 반쯤은 망가졌다. 하지만 결코 이혼까지 갈 문제는 아니었다. 지니에 대한 그의 사랑에는 변함이 없었다. 어쨌거나 그녀는 여전히 지니였다. 좀 달라진 것뿐이었다. 지니도 자신이 달라졌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내가 견디며 살아야 할 것이지." 스탠은 혼자 중얼거렸다. -----
잔인한 내용을 감정을 싣지않고 휙~휙~ 써내려가는 글에 화가났다. 그런데 책을 덮은 지금 건조한 그의 글이 끈적하게 남는건 왜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책을 다시 한번 뒤적일 것만 같은 찜찜한 기분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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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단편집 「완벽주의자」를 읽다보면 나방이 생각난다. 뜨거운 불빛 가까이 다가가면 타 죽을게 뻔한데도 밝은 불빛 주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날개를 퍼덕이는 모습은 종종 불안한 예감을 받으면서도 뒤돌아서지 못하는 일시적 의지박약자의 모습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라는 이름이 내게는 생소했으나, 이름만 들어도 그들의 영향력을 익히 알 수 있는 세계적인 거장들이 왜 그녀의 작품에 관심을 갖고 수없이 영화화했나를 이 한 권의 책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만큼 독특한 자기만의 영역을 만들어간 작가의 인간에 대한 통찰력과 상상력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흥분을 자아낸다. ‘설마, 세상에 이런 여자가 있을라구...’ 1부에 해당하는 완벽주의자를 포함한 여성 혐오에 관한 짧은 이야기들은 같은 성을 가진 내가 읽어도 참 당황스런 설정아래 불쾌함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여성들의 치부를 드러낸다. 자연계에서 스스로를 번식자로만 인식하게 만드는 아내의 출산과 육아에 대한 엄청난 욕구(번식자), 속옷을 갈아입듯 남자를 바꾸어가며 잠자리를 이동하는 여자(이동식 잠자리), 사랑하는 남자를 붙들기 위해 평생 누워 지내는 것을 선택했다가 결국 아무도 모르게 살해당한 여자(누워만 지내는 여자)들이 등장한다. 2부로 바람 속에서 서서히, 서서히에는 처녀작에 대한 호된 비평에 다시 종이위에 활자를 배열할 자신이 없는 한 소설가가 평생을 열 네 권의 소설을 쓰는데 바치지만, 모두 머릿속에만 저장한 우스꽝스러운 사내가 등장한다(머리로만 책을 쓴 남자). 죽음을 앞두고 산소 텐트 아래에서 자신이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문인 구역에 묻히는 상상을 하며 추도연설문을 읊고 장례식의 복작한 상황을 정리하는 아버지를 보며 씁쓰레한 심정을 느끼는 아들은 8년 후 어머니가 임종을 앞두고 문인구역에 묻힌 아버지 옆자리에 자신의 자리가 없을 것이라 여기며 아쉬워할 때, 아마 가능할지도 모른다며 알아보겠다고 대답해 어머니에게서 미소를 이끌어낸다. 또 다른 단편에서는 삼 개월 전에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은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엘리노어가 네 살 난 아들을 데리고 이사한 집의 정원 연못에서 막연한 불안감을 느낀다(연못). 인부를 불러 물을 퍼내기도 하고 자신이 직접 수초를 잘라내기도 하며 잉어를 사다 물에 풀기도 하지만, 연못은 잉어와 아들의 생명을 앗아가고 결국 엘리노어의 생명까지 거둔다. 관계 맺은 이들끼리 서로를 살뜰하게 보살피는 이들(인맥)에게서도 연못의 수초가 뒤엉켜 발목을 잡는 듯한 느낌을 받고 형체가 분명하지 않은 광기를 감지하게 되는 건 나만의 느낌일까? 30여 편의 짧은 글에서 유쾌함을 찾기란 힘들다. 평범하게 보이는 것 속에 깃들어있는 어두움을 끄집어내는 솜씨가 탁월하다. 각각의 작품이 장편에서 보여주는 자세한 기승전결 없이도 일상과 특별한 일을 짧은 글 속에 담아내며 불안감을 조성하는 이 책에서 손을 떼지 못했기에,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은 불빛을 쫓는 나방이 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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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미국과 유럽에서 아주 유명한 심리소설가이다. 칠십여년 동안 스물두편의 장편소설과 일곱 권의 단편집을 발표할만큼 그의 창작활동은 아주 왕성했고, '재주꾼 리플리(The Talented Mr. Ripley)'란 작품으로 미국 추리 작가 협회 특별상을 비롯하여 에드거 앨런 포 상까지 거머쥐는 등 그의 작품은 공포적이면서도 인간의 심리를 거침없이 묘사하고 있어 혐오스러우면서도 매력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그녀의 여러작품들이 영화화 되고 연극화 되기도 했을만큼 독자들의 인기를 끌었다. 하이스미스는 에드거 앨런 포의 뒤를 이은 작가라는 찬사를 받아왔다. 그녀는 겨우 아홉살 때부터 메닝거 의사의 '인간의 마음(The Human Mind)'에 매료되어 도벽, 정신분열증, 방화벽 같은 이상심리나 일탈행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대학시절 프로이트 사상에 심취하였고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을 접하면서 인간의 무질서하고 비합리적인 무의식 세계에 관심은 극에 달했으며 그것은 곧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완벽주의자는 1974년, 1979년에 각각 발표된 두편의 단편을 엮어 놓은 책이다. 그녀는 자신이 여성이면서도 여성을 어리석고 이기적이며 노예근성에 젖어 있는 모습을 혐오스러워했으며,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먼저, '여성 혐오에 관한 짧은 이야기들'은 다시 열일곱개의 단편으로 이뤄져있고, 미련하고 어리석은 여자주인공들이 나온다. 그 중 '완벽주의자'의 마고는 남들이 보기엔 너무나도 완벽한 집과 살림살이를 갖추었지만, 그녀는 가족을 위해 식사준비를 한 적이 없다. 마고가 음식을 잘 만들지 못할까봐 겁내는 바람에 가족들은 언제나 외식을 해야했고 손님초대를 한번도 한적이 없었다. 어느날 남편의 생일을 겸해 승진파티를 열자고 제안을 했다. 마고는 완벽한 여자가 되기위해 그렇게 해야만 했고, 완벽한 파티를 위해 밤을 새워가며 모든 것을 손수 준비했다. 파티가 시작되고, 손님의 권유로 술도 마셨고, 몸의 이상을 느껴 각성제와 수면제도 먹어야했다. 파티가 끝나자 그녀는 쓰러졌고, 위세척을 받아야했으며 자신이 큰 실수라도 한 것 같아 초조해했다. 그녀는 이제 뜨개질에 매달려 살았고, 가족들은 걱정했지만 그것이 그녀에겐 위안이 되는 유일한 일이었다. 세상엔 완벽한 사람이 없는데 마고는 완벽하기위해 자신을 혹사시키는 어리석고 미련한 여자였던 것이다.
두번째 단편 '바람 속에서 서서히, 서서히'. 머리로만 책을 여덟권이나 썼지만 한번도 글로 옮기지 않은 채 죽어버린 황당한 남자와 그 남자를 대단한 작가로 여기는 아내, 남편의 죽음을 잊기위해 시골로 이사와 정원의 기이한 연못에 아들까지 빠져죽게 되는 이야기, 복수심으로 사람을 죽이고 그 시체를 허수아비로 위장시켜 놓고 쌍안경으로 지켜보며 희열을 느끼는 남자, 아이들에게 폭력을 일삼고 아이를 방치하여 결국 죽게 만들고도 자신은 자유를 누리는 꿈을 꾸는 여자.....등의 열두편이 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윌슨 대통령의 넥타이'라는 단편이다. 마담 티볼트 공포 밀랍인형 박물관에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위해 단순히 저지른 살인. 박물관 직원들을 죽여 밀랍인형 대신 시체를 두고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보는 너무도 평범한 살인자. 그는 자백까지 했지만 그저 정신과 치료를 정기적으로 받으란 말만 듣고 울분을 느낀다. 앞으로 더 큰 살인을 저질러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길 바라는 엽기적인 주인공이었다.
하이스미스의 글은 놀랄만큼 진전이 빠르고 흥미진진해서 두꺼운 책을 단숨에 읽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다소 황당스럽기도 하고, 살인과 불안한 미래, 공포와 인간의 내면을 서슴없이, 너무도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어서 충격적이기도 했다. 인간의 무의식 세계에 이런 충격적인 것들이 존재한다면 그 무의식을 깨우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세상을 평온하고 순리있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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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심리....긴장감 히치콕의 영화를 보는듯 소름이 돋았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단편을 모아놓은 단편선집이다 살짝 긴장을 하며 보기시작했는데, 불편함과 낯설음으로 끝까지 나를 몰아가는 소설이었다 왠지모르게 일상에서 이런일을 겪게 되면 얼마나 싫은 느낌일까, 어색하지만 밀어놓치는 못할분위기랄지...암튼, 내가 그동안 참 말랑한 소설들만 읽어왔구나 싶었다
여성 혐오에 관한 짧은 이야기들
첫 단편부터 손'이라는 제목하에 딸에게 청혼하기 위해 따님의 손을 달라고했던' 청년에게 딸의 잘린손'을 보내는 아버지가 등장한다 끔찍하고 소름끼치는 사건의 재구성이라고 해야되나, 이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어찌 있을수있지? 왜 이런 이야기를 쓰는걸까 싶기도하구 이 작가의 정신세계는 어떤건가 ... 추리소설과는 또 다른 불편한 진실, 구역질나는 뒤틀린 인간의 본성을 들추는듯한 묘사들에 살짝 경악하기도한다 어쩌면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인간의 추악한 단면을 보게되어 외면하고싶었던건지도 모르고, 덜컥 내려앉는 가슴을 쓸어담아야하는데 소화되지도 않는 음식물을 우격다짐으로 먹고있는듯한 불쾌한 기분도 동시에 느꼈다
옮긴이의 글을 통해 하이스미스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에 대해 왜곡된 편견'과 몰이해'를 하고있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글에서도 느꼈던거지만 여자의 저 밑바닥에 누구나 갖고있을법한 본성...혹은 열망 등을 거부한다거나 아님 단순히 쓸데없는것으로 놓고 시작된 글쓰기'일수도 있겠다는 가설....내겐 정말이지 낯선 글들이었다 물론 이야기가 유치하다는건 절대 아니다 책을 보면서 이렇게 긴장감을 갖고 본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던거같다 불안과초조...손톱을 물어뜯으면서 다음엔 반드시 무슨일이 일어날꺼야?!!! 어두운 터널에서 무언가 내 발을 잡지 않을까 뭐가 떨어지지 않을까...두려움에 떨며 있는 상황이라고 해야할까
바람 속에서 서서히,서서히
이젠 긴장감에 익숙해졌던건지 ,아님 몇 편의 단편을 읽으면서 심장이 튼튼해진건지..이번 장부터는 흥미로운 글 구성이 눈에 들어온다 <머리로만 책을 쓴 남자>에선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유형이지 않을까 ...나도 일정부분 포함이 된다 행동은 하지 않으면서 머리로만 온갖 계획과 찬란한 미래를 제시한다 현실에선 아무것도 바뀌는게 없고, 나 스스로는 제자리걸음을 하고있는데도 정작 본인은 깨닫지 못한다 머리로는 소설책 몇개분량을 써둔다 하지만 정작 책으론 나오지 않고 일생을 마치는 주인공을 보면서 헉' 이건 아니다! 하지만 난 어떤가...! 나도 저러면서 인생을,시간을 낭비하고 있지 않나 두려움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연못>..인간이 운명앞에 얼마나 하쟎고 나약한 존재인지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지 실랄하게 말해주는 조금 섬뜩했던 이야기.. <바람 속에서 서서히,서서히> 어딘지 모를 시니컬한 제목이 끌리던 이 단편은 그 짧은 이야기속에 함축된 모호한 인간심리,각각의 인간 군상들의 실랄한 모습들...자극적인 전개...멜랑꼴리한 제목에 어울리지않는 당황스러움이 압권! <윌슨 대통령의 넥타이><깨진 유리>... 마지막으로 <나무를 쏘지 마시오>의 SF적인 전개까지 이 작가의 엄청난 역량에 경의를 표한다
선과악의 구분을 명확하게 짓고자하는것 자체가 모순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어쩌면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의 양면성을 누구나 갖고 있을테니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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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느라 꽤 힘들었다. 틈틈히 짬짬이 시간을 내어 읽은 책. 처음으로 본것은 " 손 " 이었다. 솔직히 난 이 책을 처음에는.... 기막힌 이야기만 있는것 같다. 하지만 " 바람속에서 서서히, 서서히 " 이곳을 읽은때는 좀 감명깊었다. 일단 " 여성들의 혐오에 관한 짧은 이야기들 " 에서는 정말 여성들이 혐오한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어떻게 이렇게 할수 있지? 바보아냐? 참 어이없다... 이런 느낌을 아주 많이 받았다. 무섭기 보다는 좀 뭐랄까? 꼭 자기가 귀신을 보고 있기 보다는 자기가 귀신이라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여기서는 읽은 느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것을 읽어본 사람도 이것은 어이없다. 정말 그런것 같다. 이렇게 생각할것이다. 난 처음 받아서 표지만 볼때 완벽주의자라...... .완벽한 사람들의 이야기일까? 이렇게 생각했다. 안에 내용. 생각치 못했던것이었다. 그러니까 이 책을 쓴사람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왜 이런이야기를 책에 담을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좋아했던 걸까? 그런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엄청나게 뒤엉킨 실마리처럼 그런 이야기도 들어있었고 딱둘이 붙어진 테이프 같은 이야기들도 있었다. 내 생각엔 이 책의 목적과 이해를 할려면 아무래도 박사에게 찾아가봐야 할것 같다.
추신 : 읽는 사람마다 이런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사람들과 못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을것같다. 어이없다.....라는 것을..... 싫어하든 좋아하든 그것은 정말 평점을 자기맘대로 할수 있을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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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이것이 20세기의 에드거 앤런 포라고 일컬어지는 작가의 작품이라니. 솔직히 흥미진진한 추리소설을 기대했다. 그러나 내용 자체가 암울하고 섬뜩한 현실을 그대로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이 책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단편소설집이다. 처음 만나보는 작가지만 느낌이 강렬하다. 일단 차례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두 개의 큰 제목이 보인다. 비슷한 내용을 묶어 놓은 것인 줄 알았더니 원래 두 권의 단편집을 합쳐 놓은 것이다.
[여성 혐오에 관한 짧은 이야기들] 정말 짧지만 여성에 대한 혐오감이 극적으로 전해지는 작품들이다. 악취를 맡는 순간 저절로 얼굴이 찡그려지듯 바로 반응이 온다. 유독 나쁜 여자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주인공인데도 불구하고 전혀 호감가지 않게 만든다. 불행한 결말을 봐도 동정이나 연민이 느껴지지 않게 말이다. 읽는 사람을 냉정하게 만든다. 세상에 수많은 여자들 중에 하필이면 이런 여자들만 모아놓다니, 정말 대단하다. 여자라는 인간의 어두운 심리가 낱낱이 파헤쳐진 느낌이다. 보고 있는 사람마저 울적해진다. 혹시나 이 이야기들 때문에 여성을 혐오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굳이 실망스럽고 혐오스런 주인공들을 만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면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바람 속에서 서서히, 서서히] 여기 작품들은 약간 추리소설 분위기가 느껴진다. 뭔가 기발한 상황 속에서 반전이 있다. 앞서 이야기만큼 불쾌하지는 않지만 역시 어둡고 기이하다. 인간의 악한 본성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우리가 평소에는 눈치챌 수 없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들을 확인하게 된다. 아무래도 단편소설이다 보니 하이스미스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기에는 부족한 것 같다.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었던 첫 장편 <낯선 승객>이나 추리 작가로서 인정받은 <1월의 두 얼굴>과 같은 작품을 읽어봐야 될 것 같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라는 작가를 이제 처음 알게 됐는데 1995년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작품도 20 여 년 전에 나온 것이다. 그런데도 섬뜩하고 예리한 묘사가 신선하게 느껴진다. 부조리한 현실과 비뚤어진 인간 심리에 대한 그녀만의 작품 세계를 아주 조금 맛 본 느낌이다.
1809년 1월 19일 미국 보스턴에서 출생한 에드거 앨런 포, 그리고 112년 뒤인 1921년 1월 19일 미국 텍사스에서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태어났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그녀의 문학적 영웅은 에드거 앨런 포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다음을 잇는 위대한 작가는 미래의 1월 19일에 기대해야 되는 것일까? 위대한 작가는 타고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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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주의자'라는 이 책은 인간의 심리에 대한 날카로운 이해와 불온한 상상력을 장기로 하는 작가 하이스미스의 소설집이다. 크게 [여성혐오에 관한 짧은 이야기들]과 [바람 속에서 서서히, 서서히]로 두권의 단편집이 하나로 나온것이다. 여성혐오에 관한 짧은 이야기들이라는 단편집 안에는 17편의 단편들이 모여 있고, 바람속에서 서서히, 서서히라는 단편집 안에는 12편의 단편들이 모여있다.
총 29편의 단편은 하나 하나 읽을때마다 감탄이라기보다는 기가 막히는 느낌을 받곤한다. 평소에 생각치 못했던 사람들의 어두 침침한 심리를 나타내어 책을 읽고 있는 나자신까지 어두움에 둘려 쌓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했다. 여성 혐오에 관한 짧은 이야기들에서는 책의 제목만 봐서도 알수 있듯이 여성의 치부를 같은 여성인 하이스미스가 신랄하게 펼쳐내어지고 있다. 어쩌면 같은 여성으로서 이런 이야기들을 써 내리면서 하이스미스의 불편했을 마음까지 이어 받는 느낌도 든다.
또다른 단편집 바람 속에서 서서히, 서서히는 종류를 한가지로 집어 낼수 있는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들이 나온다. SF소설에서 부터, 범죄와 호러까지 하이스미스의 끝을 알수 없는 무안한 이야기들이 펼쳐친다. 이렇게 두가지의 소설집이 '완벽주의자'라는 책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것이다. 왠지 책의 제목을 그 많은 단편중에서 '완벽주의자'라는 것을 택한 것이 책 제목에서와 같이 하이스미스의 '완벽한소설집'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중 가장 기억이 남는 이야기를 꼽자면 거의 다 강렬한 인상이 담겨져 있어서 어렵지만, 그래도 유쾌한원시여인 우나와 중산층 주부를 꼽고 싶다. 유쾌한 원시인 여인에서 주인공 여인은 예쁘지 않은 외모를 가졌지만 그녀의 성적 매력력은 마치 냄새처럼 200미터 밖까지 풍겨내어 여러남자에게 사랑을 받지만 그런 남자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질투에 눈먼 여자에게 살해당하고 마는 이야기이다.
또한 중산층 주부는 딸에게 이끌려간 페미니스트들의 집회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므로소 반동으로 몰려 깡통에 머리를 맞아 죽게되는 이야기이다. 이들처럼 정말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여자들의 무서운 한들을 볼수 있는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속담이 있듯이 옆에 남자가 있었다면 '봐봐 여자를 조심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시간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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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여성 혐오에 관한 짧은 이야기들과 바람 속에서 서서히 서서히. 처음 여성 혐오에 관한 짧은 이야기를 읽었을 땐 정말 이게 뭔가. 이런 책일 줄 몰랐는데.. 조금 실망했다.
하지만 두 번 째 부분 바람 속에서 서서히 서서히. 파트를 읽을 땐 정말 내용이 너무 신선하고 참신해서 깜짝 놀랬다. 하지만 잔인한 내용이 많아서 사실 읽는데 조금 거북한 건 사실이였다. 내가 작가에 대해 너무 무지했고 책에 대한 사전 지식없이 제목만 보고 덜컥 고른 것이 조금 창피하기도 했다.
좀 더 서평을 잘 쓰고 싶은데 어떻게 적어야 할지 이번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이 책이 재미있다는 것! 신선하다는 것! 읽으면 읽을 수록 빠져드는 것!이다.
가끔 흥미없는 일상에 자극이 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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