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士禍란 조선시대 사림들의 피맺힌 恨으로 남아있는 좋지 못한 기억일 것이다. 조선건국과 동시에 태생적으로 탄생할 수 밖에 없는 공신세력 그리고 초창기 왕권과 신권사이를 저울지 했던 권력의 향배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던 왕권은 성종조에 이르러 일대 변혁을 가져오게 된다. 성종은 본격적인 친정을 시작하면서 김종직을 필두로 하는 사림들을 정계에 발탁하여 훈구세력의 정권장악력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이러한 권력의 편중을 막기 위한 방편은 사림들과 왕권의 이해타산이 맞아 떨어져 성종의 치세를 뒤받침 하는 원동력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된다.
하지만 연산군의 등장으로 이러한 균형추는 무너지게 된다. 그리고 그 시초는 어찌보면 아주 단순한 개인적인 사건에서 시작하고 물론 조선의 4대 사화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권력욕보다 더 개인적인 욕구에서 그 출발점을 찾을 수 있다. 이는 후대에 가서 사림들로 형성된 권력층사이에서 분당의 원인으로도 작용하게 되는 것을 보면 인간의 욕심이나 질투는 가히 끊이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김일손의 사초와 김종직의 조의제문에서 그 발달된 무오사화는 조선의 사화중 처음으로 대량 살생의 피바람을 불러 오게 된다. 그리고 연산의 생모인 윤씨의 폐비사건과 연관된 갑자사화에서 그야말로 사림들의 씨를 말리는 대대적인 숙청을 가져오게 된다. 이후 중종반정으로 잠시 주춤했던 사림들에 대한 핍박은 걸세출의 영웅 조광조의 정계등장으로 그 대 사건을 예견하였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기묘년에 단행한 숙청의 피바람은 그 자신은 물론이고 이제 막 피어나는 꽃봉우리를 꺾어버린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하지만 사림들의 끈질긴 생명력은 무오,갑자,기묘,을사 4대사화를 거치면서도 그 명맥을 유지하였고 결국 조선의 최후의 승리자로 남게 된다.
흔히 사화라 하면 올곧은 선비들이 훈구세력에게 일방적으로 피해을 본 사건으로 기억되기 쉽다. 하지만 그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훈구세력은 악이고 사림들은 선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위험하다는 것을 쉬이 알 수 있다. 권력창출이라는 대명제에서 양대세력의 치열한 다툼이 있었던 것이지 사림들이 일방적으로 훈구세력에게 핍박 받았다는 논리는 잘못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정치란 타협과 협의의 산물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런 면에서 보면 오히려 사림들은 그런 타협이나 협의에 의한 정치구현이 없었다는 점에서 사화의 일부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만이 존재하는 정치판은 그 어떠한 대의적인 협의는 없었던 것이고 사림들의 일종의 피해의속에 자리 잡게 된다. 이는 후대의 당쟁에서 살펴보면 그러한 매락이 면면히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한편으로 사림들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비싼 댓가를 지불하고 배운 정치술이 바로 사화일 것이다. 급진적인 개혁과 앞뒤 타협없는 공론은 그야말로 그들만의 공론이었지 전반적인 공론이 아니였음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4대사화를 보게 되면 한 개인의 욕심이나 투기가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 오는 지를 볼 수 있다. 한개인의 원한이 정치라는 옷을 갈아입게 되면 그 폐악이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 알 수 있다. 무오사화에서 유자광이나 갑자사화에서 임사홍, 기묘사화의 반정공신세력, 그리고 을사사화의 문정왕후와 윤원형과 정난정등은 극히 개인적인 원한이 결국 역사상 지울 수 없는 피바람을 불러오게 되는 것이다. 이런면에서 보면 정말 사화라고 표현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조선의 사화는 정치적인 이슈는 없는 개인의 복수극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개인의 원한이 확대 재생산되어 일단의 공동체의 복수로 그 대미를 장식한 사건을 사화라 불러야 할 지도 의문이다. 그 이유는 이런 일대의 사화를 통해서 살아남은 사림들의 향후의 정치력을 보면 그 해답은 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조선 4대 사화>는 조선시대 사화에 대한 그 발생원인과 내막 그리고 숨겨진 이야기등을 통해서 그동안 일방적으로 피해를 당했다는 사림들의 항변을 다시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사화는 사림들의 일방적인 피해로 비약할 수 있는 성격은 아니다. 그동안 역사는 살아남은 사림들에 의해 만들어진 역사임을 기억하고 4대사화의 진실에 접근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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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국사 과목을 꽤나 좋아했지만 그때만 해도 국사는 암기과목처럼 인식됐다.사건이나 연도 인물 등 외울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그중에서 사화와 당쟁 부분은 유난히도 헷갈려하며 연도와 발생순서, 원인을 외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조선시대에는 학파의 대립과 권력쟁탈과 관련해서 선비가 화를 입은 사화가 모두 12차례 발생했는데, '조선 4대 사화'는 이중 무오(1498,연산4),갑자(1504, 연산 10), 기묘(1519 중종14), 을사(1545,명종 즉위)사화를 다루고 있다. 이때만 해도 사림세력이 완전히 중앙정계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을 때라, 훈구파와의 대립을 벌이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패배할 경우 목숨을 잃거나 유배를 당해야 했던 것이다.
'조선 4대 사화'는 기존에 내가 알고 있었던 것 이상의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은 아니었다. 이 사료 저 사료를 취합해서 열거한 책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의 내용을 일단 파악해야 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사건이 발생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나 의미, 그리고 후세에 미친 영향을 따져보고 평가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이 책은 평가와 해석이 현저하게 부족했다.
서문에 따르면 목에 칼이 들어 오더라도 옳고 그름의 시비를 가렸던 선비들의 기개를 전하는 것이 집필 목적이었다지만, 이런 집필의도는 실종되고 말았다.그저 사건의 내용을 전달하는 데 치중하고 급급한 했다는 말인데, 그렇게 된 데에는 아무래도 필자도 서문에서 인정했듯이 역사에 관한 지식이 많이 부족했던 탓이 아닐까 싶었다. 참신한 기획에 흥미로운 내용 전개와 필력을 발휘한 역사책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이 책은 그다지 경쟁력을 갖춘 책은 아니었다. 독자에게 무엇을 전하고자 한 것인지 기획 의도도 명확하지 않았고, 필자만의 시각이 부재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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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꿈에라도 왕이 되고 싶어 한다. 왜 그럴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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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도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조선조 최대의 4대 사화 불과 50년도 채 안되는 사이에 일어난 4번의 엄청난 사화, 절대 권력에 맞서 목숨을 던지며 사상과 기개를 지키는 선비들의 수난사를 한권의 도서 <조선 4대사화>를 만나는 설레임이 정말 크다. 역사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에서 먼 훗날 후대들이 돌아볼때 오늘날 역시 역사의 한 흐름속에 속한다고 볼수 있다. 우리가 지금 우리의 조상님들이 살았던 그 과거의 시대로 되돌아가 역사를 알아가고 배우고 있는 것이 어쩌면 행운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이야기 하고 싶다. 책 내용보다 먼저 그 이유를 설명하고 싶은것은 요즈음 TV속 드라마나 국민애니메이션들에서 역사속 인물들을 강하게 주인공들로 내세워 당시의 역사배경을 알고 그당시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서 역사를 잘 알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그 흥미로운 내용으로 이끌고 인도하여 푹 빠져들게 한다는 장점이 첫번째다. 또한 책으로 여러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어냄으로써 여기서 한단락의 내용이 부족하다면 다른 출판사의 책을 읽다보면 보충될때도 있더라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좋은 충고와 조언을 해주시는 분이 계셔서 역사서쪽으로 눈길을 돌리게 된것 또한 행운 중에 행운이 아니라고 할수 없다. 역사속에서 드러난 인물들의 내용을 충분히는 알지 못해도 조금씩은 아마도 기억을 할수도 있다 하지만 50년도 안되는 짤막한 사이에 일어난 4번의 엄청난 사화에 대해서 알아간다고 하는 그 느낌.. 얼마나 벅차고 그 설레임을 말로 다 표현 못할만큼 지금의 짜릿한 내 심정을 어찌 드러낼 수 있을까... 새로운 세상을 꿈꾸어 왔던 선비들의 개혁 이야기를 이제부터 펼쳐보자. 조선시대에는 학파의 대립과 권력 쟁탈로 인해 많은 선비가 화를 입은열 두 가지의 콘 사화가 있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4대사화라 일컫는 큰 사건만 간추려 정리했다. 즉 1498(무오, 연산군4)년의 무오사화, 1504(갑자,연산군10)년의 갑자사화, 1519(기묘, 중종14)년의 기묘사화, 그리고 1545(을사,명종 즉위)년의 을사사화다. 유교를 국교로 삼았던 조선은 문을 숭상하고 유학으 ㄹ장려함으로써 유림이 중심이 된 사회였다. 그러나 이들은 각자의 사상과 감정, 또는 지연 등을 연고로 하여 파벌을 형성했으며 서로 논쟁하고 대립, 투쟁하면서 서로를 반역으로 몰아 목숨까지 앗는 사화를 발생시켰다.
※ 사화란? 사림(史林)의 화(禍)를 줄인 말이다.
사화로 인해 수 많은 선비가 무고한 누명을 쓰고 목숨을 잃었으며 산간벽지나 천해도고에 유배되었다. 사화에 연루되면 집안이 멸문지화를 당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비가 사화를 피하지 않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부나방처럼 맹목적으로 맞섰다. 결국 역사는 이긴 자의 기록이다. 패자는 말없이 승복하고 어떠한 평가도 감내해야 하는 것이 바로 역사이다. 조선의 선비 하면 척 하고 떠오르는 것이 붓과 종이다. 그만큼 우리 선조는 문에 큰 힘을 기울였으며 그만큼의 높은 학식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잠깐 기개가 높았던 남이를 역모로 모는 데 혜성을 운운한 남이의 말과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돌아오면서 지은 한편의 시를 옮긴다.
백두산석마도진 白頭山石磨刀盡 두만강파음마우 頭滿江波馬無 남아이십미평국 男兒二十未平國 후세수칭대장부 後世誰稱大丈夫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없애리 사나이 스므 살에 나라를 평정 못하면 훗날 그 누가 대장부라 하리오
말그대로 사나이 대장부의 마음을 드러낸 글이라 읽는자의 마음 또한 울려주는 글귀이다. 모함과 모해가 살판치는 험한 때 나라의 평정을 생각하면서 불속에 뛰어드는 불나방마냥 목숨을 바친 선비들의 죽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이런 애국충정을 알아주고 그들의 편이 되어주는 곳이 없었다니 얼마나 슬픈 일인지 모르겠다. 원한은 또 다른 원한을 낳게되고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는 말이 정말 그를데 없이 딱 맞는 말이다. 죽이고 죽이면서 물어뜯으면서 관직에 오르는 비열한 자들이 잠시나마 세상을 지배했다 해도 상상하기 끔찍한 일들이 오늘날 역사로 남아있을 터이니 너무도 소름돋는 일이 아닌가... 우리의 역사는 단순히 알아가고자 하는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사건들을 기록함으로써 후대들에게는 더 이상 이러한 비참하고 처참한 상황들이 재연되지 않기를 바라는 선조들의 넋이 담긴 기록이 충고의 메시지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의 역사서는 지금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교양적가치를 심어주고 어떤 과정을 통해서 오늘날이 이룩되고 발전했는지를 소개하는 훌륭한 교과서로서 독자들의 마음속에 막중한 자리를 차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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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생이었을 때에 국사시간이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사건 중 하나가 조선4대 사화이다. 당시에 나는 국사에 그다지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내가 좋아했던 과학 과목과 달리 국사는 그저 달달 외워서 시험치는 과목이라는 망상(?)속을 헤매이고 있었기에 무오사화/갑자사화/기묘사화/을사사화의 이름과 연대별로 일어난 순서 정도만을 머리에 남겨두고 있었다. 국사의 재미를 느끼지 않고 마구잡이식으로 외운 탓에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된 지금에는 사화의 이름조차 가물가물하게 되어버렸다.
이 책 <조선4대사화>는 '조선'이라는 큰 시대적 배경에서 약 50여년 사이에 일어난 4번의 사화를 집중조명하고 있다. 사화의 배경을 시작으로 당시의 시대상과 역사적 흐름을 함께 이어나가고 있기 때문에 사화(史禍)란 사림의 화를 줄인 말이라는 것을 이제서야 제대로 깨치며 읽어들어 갔음에도, 사화에 대한 윤곽 뿐만 아니라 4대 사화가 읽어났던 50년은 머릿속에 그림처럼 남은 느낌이 든다. 저자의 바람대로 쉽게 쓰였고 그래서 쉽게 읽힌 덕분이다.
필자의 서문에서 밝혔듯, 그리고 누구나가 공감하듯 역사는 이긴 자의 기록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우리는 기록된 역사밖에 보지 못한다. 하지만 이 책 <조선 4대 사화>에서 역사의 궤적을 너무나도 쉽게 따라다닌 덕분에 기록된 역사만 본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생각하는 역사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던 것 같다. 포악한 정치를 일삼았기에 중종 반정으로 폐위되어 왕의 호칭을 얻을 수 없었던 연산군의 절대 왕권에 대한 노력과 개혁의 불씨를 지폈으나 너무 빠른 흐름으로 그 빛을 발하지 못한 조광조의 정치는 깊은 생각의 샘을 솟아나게 했다.
김종직의 조의제문이 도화선이 된 무오사화/ 폐비 윤씨의 한맺힌 죽음으로 말미암은 갑자사화/ 조광조의 개혁정책을 모함하여 발발한 기묘사화/ 대윤과 소윤의 다툼에서 시작된 을사사화. 각각 사화의 시발점은 모두 다르지만 그 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각자가 사상과 학연, 지연 등을 기준으로 파벌을 형성하여 논쟁하고 대립하면서 서로를 반역으로 몰아 사화가 발생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사실 이런 파벌은 옛말만은 아니다. 요즘 우리나라 정치에서 보수당과 개혁당간의 싸움은 당쟁에 비유되곤 하는데,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는 이런 당 싸움이 조선시대의 사화와 같은 사건들을 불러내지 않는다는 보장 또한 없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 내내 조금은 씁씁한 기분이 들었던 것은 현재 우리나라 정치의 모습 때문이 아닐까.
역사의 발자취를 찾아간다는 것이 쉬운일은 아닐터인데 필자의 노력 덕분에 쉽게 역사의 흐름과 큰 틀을 알게 되었기에, 50여년간의 역사는 내것이 되었기에 매우 뜻깊은 시간이었다. 이 책으로 말미암아 우리나라 역사에 또다시 한걸음 다가선 느낌이다. 이미 역사속에서 숨쉬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모두가 한번은 읽어볼만한 책이라 권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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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역사를 이야기할때 꼭 등장하는 여러사화들을 만나본다. 익히 역사드라마를 통해 한번쯤 만날수 있었던 이야기인지라 낯설지 않으면서도 짜증이 나기도 하는 부분이다. 조선시대에 발생했던 큰사화중 이번에 만난 4대사화는 조선의 근간이 흔들릴정도로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는 굵직한 사건들이었다. 짧은 기간동안에 발생한 4번의 사화속에서 서로의 권력을 위해 사라져간 많은 선비들과 문헌들, 그리고 한나라를 이루는 최고의 위치에 있는 이들의 잔인하고 포악한 모습은 나라의 안녕과 국민의 생활을 방해하는 커다란 요소로 작용한 듯 하다.
처음 연산군이 즉위하면서 폐비가 된 어머니의 피묻은 저고리의 영상은 그 누구보다더 잔인한 모습으로 등장하게 되는 연산군의 모습과 피바람을 몰고 오는 모습을 서로 오버랩하게 만든다. 한개인의 문제가 아닌 서로의 권력과 잇속을 챙기기위해 남을 모함하고 끝내는 피바람을 불게 만들었던 선비들 사이의 전쟁
그리고 반정에 의해 임금이 되어 제대로 권력을 행사도 못하고 훈구세력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던 중종이 신진사대부를 기용하면서 자신의 나약한 왕권을 위해 한차례 사화를 일으킨 조광조등 신진사대부들의 처형은 안타깝기만 하다. 어쩌면 그들의 급진적인 개혁때문에 일어난 문제이기에 서로 더불어 융화되지 못함이 한스럽기만 하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 자기의 자식을 임금의 자리에 앉히기 위해 다른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내고 자신의 위치를 지켜나갔던 문정왕후의 모습속에서 이기적이기만 한 인간의 모습에 놀랍기만 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자신의 권력과 잇속을 체우기위해 파벌을 만들고 학연과 지연으로 나와 다른이들을 배척하고 벼랑으로 밀어 넣었던 모습들은 안타깝게만 하는 듯 하다.
조선4대사화는 우리가 역사를 배울때 단순하게 언제 무엇 때문에 일어난 사화라고 단정지어 버린 부분을 사화와 관련된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해관계와 심적인 변화,배경들을 쉽게 이야기하듯이 풀어나가고 있어서 그 관계를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책속에 등장하는 사진들을 통해 역사의 한부분을 차지하는 여러 유적지와 유물들을 만날수 있는 기회를 준다. 마지막으로 한눈에 볼 수 있는 사화와 임금의 계보는 그 시대를 이해하는데 역사적 순서와 함께 도움을 준다. 복잡하고 안타까운 과거사이지만 우리에겐 역사의 한부분으로 다시는 그런 발자취를 따르지 않기 위해서라고 배워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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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4대 사화
어렵지 않고 딱딱하지 않고 지루하지 않게 읽었다. 오히려 다른 책들보다 술술 넘어가는 책이었다.
수많은 선비들이 불의에 부나방같이 대들었다 스러져간 사화를 읽고 재미있었다고 하면 돌 맞을까?
그 피비린내 나는 사화 내용이 재미있었다는 것이 절대 아니라 작가의 글솜씨가 탁월하여 다른 역사서보다 훨씬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조선조 12개의 사화 중 가장 역사에 영향을 많이 끼친 4대 사화를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연산군 일기, 승정원 일기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으로 다듬어 글을 썼다.
글과 함께 관련 역사속 사진 자료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글을 읽으면서 보니 더 유심히 들여다보게 되고 그 자료들까지 좀 더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게 되었다.
짧은 역사적 지식, 부족한 글이라하는 겸손함이 진정 겸손함인 줄 읽고 나서 더 느꼈다.
역사 이야기가 이렇게 생생하게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것은 대개 역사소설을 읽을 때였다.
작가의 상상력이 보태졌다고는 하나 철저히 자료의 고증을 바탕으로 한 역사서이다.
그런데도 소설을 읽는 것처럼 술술 넘어가고 장면 장면이 마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지나갔다.
권력이 무엇이기에 파벌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기를 쓰고 사화를 만들어가야 했을까.
그 주인공들은 권력의 맛을 보지 않았기에 그리 말할 수 있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 권력의 중심에 서 있다 하더라도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담보로 권력을 휘두르지는 않았을 것 같다.
역사는 이긴 자의 기록이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그러나 그런 이긴 자들의 기록을 펼쳐 연구하여 되도록 객관적으로 살려 쓰려 애쓴 저자의 노고를 치하하고싶다.
우리가 역사를 짚어 보는 이유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이극돈의 비행을 적은 김일손의 사초에서 화의 싹이 터 여러 가지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트집잡아 유자광과 훈구 세력은 그 무리를 고변하고 이미 선왕인 성종 때부터 대신들의 의견에 밀리는 왕권에 대해 불만이 있었던 연산군은 이 일을 기회로 사림의 축출한다. 사초가 계기가 되어 일어났기 때문에 1498년의 무오사화는 다른 士禍와는 달리 사화史禍라고 불린다.
1504년 연산군 때 일어난 갑자 사화
드라마 사극으로도 여러 번 방영된 바로 그 사건이다.
연산군이 생모인 폐비 윤씨의 복수를 위해 처절한 피바람을 부른 그 사화.
1519년 중종의 기묘사화는 조광조의 주초위왕 건이다.
그토록 믿었던 왕에게 그렇게 버려질 줄이야. 굽히지 않는 강직함이 불의의 무리에 의해 꺽어지는 슬픈 이야기이다.
그때 조광조가 사약을 받지 않고 계속 개혁을 밀어부쳤다면 역사는 또 어떻게 바뀌었을까?
1545년 명종 때 장경왕후 윤씨의 오빠인 윤임을 위주로 한 대윤과 문정왕후 윤씨의 동생인 윤원형을 중심으로 한 소윤의 싸움으로 시작된 을사사화.
인종이 재위 1년 만에 승하하고 열두 살의 명종이 즉위하자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한다. 이에 소윤이 득세하여 5-6년에 걸쳐 대윤 일파를 처단했다. 이후 외척 세력이 발호하여 나라를 흔들었다.
을사사화 이후에도 이어지는 붕당과 당쟁은 끊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나라 안의 모습은 어떤지 정치계에 묻고싶다.
비록 주살은 없다하더라도 온 국민이 보는 토론장에서조차 거침없이 말이 오가고, 나라 일을 의논해야하는 국회에서 주먹다짐이 난다는 그 기사는 어찌 보아야 할까.
과거는 현재와 미래를 잇는 다리이다. 환란의 역사 속에서도 배울 점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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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 연상의 여인에게 사랑을 느껴 아내로 삼았다가, 다른 젊은 여자들에게 자신의 몸과 마음을 줘버린 남자, 집안으로 보나, 성품으로 보나 무엇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며느리를 평소 못마땅해 하던 차에 남편의 얼굴을 할퀴어 상처를 낸 사건을 빌미로 집안에서 내 쫓고 끝내 죽여 버린 시어머니, 죽으면서 자신의 피 묻은 옷을 꼭 간직했다가 자신의 어린 아들이 성장해서 자신을 찾을 때 전해달라는 복수의 유언을 남긴 여자. 어미 없이 외롭게 자라 무언가 늘 허기진 자신의 삶 뒤에 자신이 모르던 어마어마한 집안의 비밀이 숨어 있음을 알아버린 한 사람. 그리고 예고된 세상을 향한 그의 복수... 어느 막장드라마의 파란만장한 가족사도 이처럼 기가 막히지는 않을 것 같다. 이것은 예종에 이어 왕위에 오른 성종과 그 아들 연산군의 가족사이다. 자신을 낳아준 생모가 할머니와 아버지, 그 밖에 이권에 얽힌 사람들에 의해 사약을 받아 죽은 사실을 안 후 왕위에 오른 연산군은 생모인 윤씨 폐위와 사사 사건에 관계자들인 사림세력을 제거한다. 이것이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이다. 성종이 훈구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대거 등용해 실권을 쥐고 있던 사림세력은 연산군 때의 이 두 사화로 수백 명이 목숨을 잃고 정치적인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연산군이 폐위되고 중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사림을 등용하는 등 개혁정치를 펼치지만 급진적인 개혁세력의 힘이 커지면서 중종은 이들을 또한 내치게 된다. 이것이 나뭇잎에 꿀을 발라 벌레들이 갉아먹어 생긴 글자로 신진 사림 세력의 중심인물이었던 조광조와 그를 추종하던 사림들을 역적으로 몰아 죽인 기묘사화이다. 중종에 이어 왕위에 오른 인종이 6개월도 안되어 죽고, 중종의 두 번째 부인 문정황후에 의해 첫 번째 부인의 아들인 인종의 지지 세력인 사림들이 대거 죽거나 귀양을 가게 된 사건이 을사사화이다. 조선 중기의 왕들, 예-성-연-중-인-명-선으로 외우는 이 왕들 중 연산군, 중종, 인종, 명종 4대에 50년도 채 안 되는 시기에 일어난 네 번의 사화로 사림은 엄청난 핍박을 받게 된다. 갈등과 정쟁을 효과적으로 조절하고 견제하며 인재를 적재적소에 등용하여 나라를 이끌 왕권의 부재, 정치적 이상과 명분을 현실 정치에 잘 적용하고 화합하여 나라의 발전을 이끌어야할 정치그룹의 부재, 조선 중기의 백성들의 삶이 엄청나게 고통스러웠던 것은 이러한 이유들의 뻔한 결과일 것이다. 그 시간들은 또한 남쪽으로는 왜적들이 출몰하여 백성들을 유린하고, 북쪽으로는 여진족에게 침략을 당하고, 내부적으로는 의적들이 일어나 국가체제에 대항하는 혼란의 시대였다. 인물중심으로 쉽게 풀어쓴 저자의 4대 사화 이야기는 드라마를 보듯 편안하다. 몇 년 전 구혜선이 폐비 윤씨를 맡았던 <왕과나>와 더 오래전 영화배우 강수연이 ‘정난정’으로 주연을 맡았던 <여인천하>의 사건들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며, 몇 개월에 걸쳐 TV 앞에 앉아 있지 않아도 단번에 정리가 되어진다. 구혜선의 윤씨는 이미지가 너무 청순가련한 듯 해 실제 인물과는 어울리지 않는 듯하고, 강수연은 정난정이란 인물에 참 잘 어울렸었다. 중국의 여제, 측천무후나 서태후에 비유되는 ‘문정왕후’가 주인공인 드라마로 <여인천하>란 제목도 적절한 듯하다. 그런 광란의 사건을 시간을 내어 흥미진진하게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무지 시끄러운 것이 싫어 일부러 외면하는 사람도 있다. 집안이 시끄러우면 집에 들어가기가 싫고, 발악하는 사람들의 광기가 버거운, 후자에 가까운 내게 이 책은 그런 혼란의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간 많은 옛 인물들을 새롭게 만나보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갈등하고, 투쟁하고, 격분하고, 죽이고 죽는 광란의 불구덩이 속에서도 후대의 평가가 어떻든 간에 거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다는 생각도 불쑥 드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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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화(士禍)란 조선시대에 정객이나 선비가 정치적인 반대파에게 몰리어 조신및 선비들이 참혹한 화를 당하는것을 말하며 사림(史林)의 화(禍)를 줄인 말이다. 조선은 개국이래 유교를 국교로 삼아 문(文)을 숭상하고 유학(儒學)을 장려함으로 우수한 학자들이 많이 배출되어서 선비사회가 매우 활기에 찼다. 그러나 세조∼성종 때에 이르러 그들 사이에 이들은 주의(主義), 사상(思想), 감정(感情) 향사(鄕士)의 관계등으로 인하여 여러 파벌을 형성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서로가 상통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서로 대립 혹은 반목하는 파벌이 많았다. 대표적인 파당은 세조의 왕권찬탈에 가담하여 높은 지위와 부귀를 누린 훈구파 혹은 기호파가 있으며 여기에 반대하는 절의파가 있었으며 또한 세조의 왕권 찬탈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면서도 조정에 진출하여 기회를 찾는 사림파,영남파,청담파등이 있다. 이들의 각파는 서로의 논쟁과 대립으로 투쟁하고 패자는 역적으로 몰려 모든것을 빼앗겨버리거나 목숨을 잃었다. 역시 역사는 이긴자의 기록으로 가해측인 훈신이나 척신계열에서는 '난(난)'으로 규정하였으나 피해측인 사림계열에서는 정론을 주장하던 선비들이 죄없이 화를 당한 것이라 하여 사화로 불리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학파의 대립과 권력 쟁탈로 인해 많은 선비가 화를 입은 열두 가지의 큰 사화가 있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4대 사화(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라 일컫는 큰 사건만을 간추려 정리했다, 4대사화란, 훈구세력이 사림세력을 대거 숙청한 사건인 1498(연산군 4)년의 무오사화, 궁중세력이 신하세력을 대거 숙청한 사건인 1504(연산군 10)년의 갑자사화, 훈구세력이 사림세력을 대거 숙청한 사건으로 1519(중종 14)년의 기묘사화, 그리고 외척세력이 다른 외척세력을 대거 숙청한 사건인 1545(을사, 명종즉위)년의 을사사화를 이르며 이렇듯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불과 50년도 채 안되는 사이에 4번의 엄청난 사화가 거듭되었다. 사화의 동기로 무오사화와 같은 사초 문제를 비롯, 폐비 윤씨 문제 등 일반적으로 지적되는 사항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직접적인 동기보다는 그 이면의 사회 경제적인 이해 관계의 대립과 이에 따른 정치적 입장의 차이가 더 근본적인 문제라 할 수 있다. 즉, 농장의 확대 등과 같은 16세기 조선의 사회 경제적 변동 속에서 재지 중소 지주층에 속하는 새로운 정치 세력이 형성되고, 이들이 기성 특권 관료층의 정치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보임에 따라 일어난 마찰이 사화였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당쟁의 전주가 아니라 기성 특권 관료층의 정치 및 폐단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 책은 조선시대 사화가 일어나게된 배경과 그 내용을 자세하고 방대한 역사적인 자료를 간추려 비교적 알기쉽게 기술하고 있는점이 특징이다.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조선조의 사화사건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꿈꾸어 왔던 선비들의 개혁을 이루고자하던 부분에서 지금까지 혼란스럽게 생각하던 당쟁과의 차이가 있다는 점을 깨닿게 되었다. 즉위 초기 연산군은 정통성이 결여됐던 세조나 성종과 달리 세자로서 당당히 왕위에 오른 만큼 간쟁기관인 삼사에 맞서 강력한 왕권 강화정책을 펼치고자 했다. 사실 조선은 왕위계승에 있어 장자상속 제도를 원칙으로 했지만 문종이나 단종을 비롯한 일부 왕을 제외하고는 그 원칙이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정종, 태종, 세종, 세조, 성종 등 조선전기를 대표하는 왕은 모두 장남이 아닌 신분으로 왕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자로서 왕위를 계승한 연산군의 자부심은 대단한 것이었고 그것이 오히려 연산군의 폭정을 가속화시킨 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우리가 연산군의 폭정을 해석함에 있어 어머니인 폐비 윤씨와 상관지어 바라보기보다 왕권 강화를 도모하는 연산군과 이를 저지코자 하는 대간과의 대립으로 보는 시각이 요구된다고 보아진다. 왕좌에 오른 이후 초기 4년간 대간들과 사사건건 대립을 하다가 무오사화로 이를 일거에 제거한 후, 천성적으로 아버지 성종의 여성 편력과 어머니 윤씨의 광폭한 성질을 이어받은 연산이 향음과 방탕을 동반한 폭정을 일삼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나친 향음과 방탕으로 국고가 탕진하자 또다시 생모 문제를 들고 나와 훈구파 대신들 다수를 살육하고 가산을 적몰하는 사화를 의도적으로 유발하니, 갑자사화가 바로 그것이라는 것이다. 네번의 사화중 무오년과 갑자년에 일어난 사화의 중심에 있었던 연산군에 대해 많은 부분을 알게 해준 책이다.
"예로부터 비록 난폭한 임금이 많았으나 연산과 같이 심한 자는 아직 있지 않았다"라는 기록이 있을정도로 연산은 역사적으로 혹평을 받아온 임금이다.(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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