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배값은 나날이 인상되고 있다. 몇몇 이들은 비싼 가격으로 인해 흡연을 포기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담배에 대한 사랑을 늦추지 않고 있다. 암을 유발하는 물질이 들어있다는 이야기도 존재하지만 동시에 정서적 안정을 가져다준다는 연구결과도 존재한다. 어쨌건 많은 이들이 흡연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위대한 정신분석가로서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있는 인물인 프로이트 역시 애연가였다. 담배 없이 그를 논하지 말라 했던가? 훗날 그를 죽음으로 몰고갔던 병이 다름 아닌 구강암이었음을 고려할 때 그의 삶에서 담배는 결코 적지만은 않은 부분을 차지했음에 틀림없다. 친지들과의 만남의 자리는 항상 뿌연 담배 연기로 가득찼으며, 그처럼 탁한 공기 속에서 어떻게 숨을 쉴 수 있었는지 여부가 궁금했다라는 그의 아들의 고백도 있었을 정도로 그는 담배를 사랑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바로 프로이트의 흡연과 관련된 것이다. 흥미롭게도 그는 치료사로서 수많은 이들을 치료했지만 동시에 환자로서 자기 자신을 의사(플리스)에게 맡기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는 플리스와 수차례 주고받았던, 오늘날 남아있는 편지를 통해 명확히 들어난다. 다른 이들이 같은 내용의 편지를 주고 받았더라면 그것은 아마도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의 것으로 치부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프로이트가 누구였던가? 그는 다른 이들의 감정을 다스리던 사람이다.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오늘날까지 문제가 되고 있는, 해결되지 못한 과제를 들추는 치료사였다. 그런 그가 다름 아닌 자신의 문제를 다른 이에게 토로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로운 것이다. 아니, 그렇기 때문에 그는 더욱 인간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자신의 문제를 타인에게 고백하는 용기라... 그와 플리스 사이의 편지는 자기 고백이자 자기 방어이다. 플리스는 프로이트의 흡연에 대해 달가워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때론 강압적이다 싶을 정도로 완고하게 담배를 끊을 것을 권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흥미를 가져다 주는 것은 바로 이러한 권고에 대한 프로이트의 반응이다. 그는 클라이언트의 저항과 전이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이해했던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서 나타나는 저항의 모습을 우리는 그의 편지를 통해 엿볼 수 있으니 말이다. 담배를 끊는 것이 불가능함을 토로하고, 현재는 이전만큼 담배를 많이 피우지 않고 있음을 그는 이야기한다. 흔히 담배를 피웠을 때 나타나는 증상들이 다른 원인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교묘한 발뺌이라고 할까나. 의사의 처방을 보면서 그 처방대로 행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식의 심보일지도 모른다. 어쨌건 그의 저항이 흥미로운 것은 사실이다. 그와 플리스 사이에서의 편지는 1887년에 시작하여 무려 1904년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이는 프로이트에게 자기 분석에 몰두할 수 있는 하나의 주춧돌이었던 것 같다. 타자의 존재를 통해 자신을 깨닫는 과정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그는 드디어(!) 자기 자신에 대한 분석을 행하기 시작하니 말이다. 그 분석과정에서도 담배는 프로이트와 함께 했겠지? 안타깝게도 우리의 프로이트는 플리스로부터 행해진 치료 과정을 통해 담배와 완전히 연을 끊는데 실패한 듯 하니 말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서로 다른 것을 좋아하고 행하는 흥미로운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이 책을 읽으면서 담배를 빼어물고 있는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프로이트와 자신을 심히 동일시하면서 말이다. |
|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올린 기억 하나..흡연이력 13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담배와의 인연. 喫煙한 지가 13년이나 됐다는 것보다는 '담배'라는 백해무익(百害無益)한 물질에 대한 나의 애착이 이 책에 대한 투자(invest ; To devote morally or psychologically, as to a purpose)를 결정하게 했다. 담배에 대한 나의 애착이 과연 무엇때문인지는 분명 분석의 대상이다. 이 책을 쓴 사람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또 정신분석학과 프로이트를 알게 된 이후 나는 언젠가는 담배와 정신분석학에 대한 책을 써보리라 생각했었다. 내가 언제나 결심만 하는 바보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예상대로 분석은 담배와 정신분석학, 특히 정신분석학의 '아버지' 프로이트와의 관계에 대해 어떤 성(性)적인 투여(investment)로부터 시작됐다. 유아기 성적 투여의 대상인 어머니의 유방과 그에 대한 흡착. 물론 이런 분석은 이제는 상식이 되어버렸다. 마치 20세기초 변태로 인식되던 펠라치오가 수용가능한 것이 된 것처럼. 그러나 몇몇 독자들은 알아차렸을 것이다. 프로이트와 그의 친구 플리스간의 서신에 필자가 그토록 관심을 가지는 이유를. 미리 결론을 말하자면, 프로이트에게 담배는 저항할 수 없는 대상이자 분석을 회피하는 대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저작들속에서 담배에 대한 언급은 고작해야 할 줄에 불과했던 것이다. 필자가 주목한 것도 결국 이러한 프로이트의 저항이자 플리스와의 불화의 대상이었던 담배에 대한 무관심 혹은 상처(trauma)였다. 프로이트에게 담배는 코케인(Cockayne)처럼 중독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러나 미리 말해두지만, 담배는 코케인처럼 정신분석학의 타자, 혹은 서구의 타자다. 프로이트에게 담배가 중독의 대상일 뿐이라면 굳이 담배에 대한 정신분석을 실시할 필요는 없다. (중독될 수도 있는)약물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필자가 주목하는 것처럼, 담배가 정신분석학적으로 중요한 것은 금욕과의 관련성 때문이다. 물론, 대중적인 관심은 지독한 담배중독자였던 프로이트와 그를 죽음으로 내몬 구강암에 집중되어 있다. 여기서는 담배와 배설(물)과의 연관이 중요하다. 현재 시점에서는 흡연자와 비흡연자간의 경계짓기가 의미를 지닐 수도 있다. 사실, 필자가 후반부에 전개하는 담배와 배설물간의 관계에 대한 설명은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필자가 책에서 전개한 설명을 여기서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담배와 후기 프로이트에게서 중요한 '자아분열'을 연관지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설명을 회피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솔직히 말해서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차라리 나는 직접 프로이트의 후기 저작들--[문명의 불만]이나 [집단심리학], [토템과 터부], [쾌락원칙을 넘어서] 등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단언컨대, [프리이트와 담배]라는 평이한 에세이 형식을 통해 담배 혹은 프로이트를 이해하려는 것보다 수익이 많을 것이다. 투자는 수익을 거두기 위한 것이지 낭비를 위한 게 아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덧붙이자면, Pas de fumees sans Freud가 과연 '프로이트없이 담배연기없다'로 번역이 되어야 하는가. 프로이트없는 담배에 대한 분석의 단계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