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라는 공간은 뭔가 감춰지고 은밀하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일상이 아닌 조금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지금은 우리의 주거 공간으로 아파트가 대세가 되었지만, 과거 우리의 전통 가옥에서는 본채와 구별되는 곳간 혹은 창고를 따로 만들기도 했다. 아마도 서양의 주택에서 지하실은 일상의 공간이 아닌, 우리의 곳간이나 창고처럼 무언가를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지하실이라는 공간과 그곳에서 살던 오이대왕이 가족에게 나타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라고 하겠다. 지하실과 ‘오이대왕’이라는 설정이 어떤 문화적 배경을 지니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사람들의 상상 속에는 인간과 다른 존재들이 공존하고 있다는 생각이 보편적으로 퍼져있다고 여겨진다. 도깨비와 귀신 혹은 요정이라는 존재를 상정하고, 그들과 어우러져 엮어내는 이야기가 동양과 서양에 공존하는 것이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한 가족에게 갑자기 나타난 ‘오이대왕’이라는 존재, 그리고 그것을 통해 가족 구성원들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하는 내용이다. 할아버지와 부모 그리고 삼남매 등 모두 여섯 명으로 구성된 볼프강의 가족들이 소개되는 것이 작품의 시작이다. 작품의 주인공인 누나와 동생 사이에 낀 볼프강의 시선을 따라 진행되며, 가부장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아버지와 나머지 가족들과의 관계는 그리 원만하지 못한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일견 지극히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면모를 보이는 아버지와 나머지 가족들과의 갈등이 일상화되어 있다고 이해되기도 한다.

부활절 아침에 갑자기 부엌에 등장한 ‘오이대왕’으로 인해 가족은 일순 당황하기 시작한다. 오이처럼 생긴 몸체에 보석이 박힌 왕관을 쓰고, 손에는 장갑을 낀 상태이며 발에는 빨간색 페티큐어까지 바른 모습이었다. 자신을 ‘트레페리덴 왕조의 쿠미-오리 2세 대왕’이라고 소개하면서, 자신은 반란으로 내쫓겨 잠시 정치적 망명을 청하는 신세임을 밝혔다. 다른 가족들은 모두 오이대왕을 불편해하지만, 아빠와 남매 가운데 막내인 닉은 ‘오이대왕’을 정성스럽게 돌보았다. 그의 말을 통해서 자신의 집 지하실 2층에 살던 ‘오이대왕’은 다른 쿠미-오리들에게 쫓겨나, 지상으로 ‘망명’을 떠나왔음을 알게 된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지하 2층으로 내려간 볼프강은 그곳에 사는 다른 쿠미-오리들을 만나고, 그들이 날마다 대왕을 위한 궁전을 지어야만 했기에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오이대왕’을 내쫓았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오이대왕을 도와 지하 2층을 탈환하도록 돕고자 하는 아빠와 닉, 그리고 다른 쿠미-오리들이 행복하게 살도록 돕는 볼프강과 누나의 입장이 대비되어 형상화되고 있다. 이러한 구도는 ‘오이대왕’이라는 존재를 등장시켜,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아빠와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를 원하는 다른 가족들의 갈등을 비유적으로 그려낸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아빠와 다른 가족들의 갈등은 이미 존재했었고, 단지 ‘오이대왕’을 둘러싼 상황은 그러한 갈등을 보다 뚜렷하게 드러낸 것일 뿐이었다고 여겨진다. 결국 ‘오이대왕’의 거짓말이 탄로나게 되고, 다른 가족들에게 완고하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던 이전과 조금은 달라진 아버지의 모습이 제시되면서 작품은 종결되고 있다. 아빠가 진심을 다해 섬기던 ‘오이대왕’은 다른 이들에게는 가족들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가치나 물질 등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바람직한 가족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이해된다.(차니)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작가님의 오이대왕 리뷰입니다. 본책은 독일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입니다. 1972년 독일에서 출간되고 1997년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었던 소설입니다.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과 날카로운 유머로 한 가정 안의 모순과 불신을 파헤칩니다. 평범한 볼프강네 집에 밀가루 반죽으로 빚은 듯한 오이 모양의 생명체가 나타나 정치적 망명을 요구하면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내용도 재미있고 작품성도 갖춘 훌륭한 책입니다.

어렸을 때 자란 환경은 내 몸속 뼛속 깊이 박혀 있다. 엄마의 무한한 사랑을 받은 좋은 면도 있고 아버지의 엄하고 가부장적인 습성도 배어 있다. 스무 살부터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려고 애썼고 많은 부분 바꾸었지만 가부장적인 습성이 이따금 불현듯 고개를 든다. 앞으로도 내내 이를 고치려고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주인공은 중학생으로 할아버지, 아버지, 엄마, 누나, 동생과 함께 산다. 부활절에 볼프강네 집에 밀가루 반죽으로 빚은 듯한 오이 모양의 생명체가 나타난다. 자기는 지하실에 살고 있는 쿠미-오리 2세 대왕으로 신하들의 반란으로 내쫓겼다고 한다. 그러면서 정치적 망명을 요구한다. 가족들은 자칭 오이대왕을 탐탁찮게 여기지만 아버지는 예외다. 오이대왕을 극진히 대접하며 오이대왕이 권위를 되찾을 수 있도록 적극 나선다. 오이대왕은 아버지의 환심을 사려고 가족들 비밀을 훔친다. 엄마는 아버지 몰래 비싼 물건을 사들였고, 누나는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 일기장을 갖고 있으며, 볼프강은 형편없는 점수를 받은 수학 시험지에 아버지의 서명을 받아 가야 한다. 오이대왕 때문에 평범한 가족이 문제 가족으로 불거진다.

아버지는 내가 껌을 씹는 것도 싫어하고 내 옷들도 너무 요란스럽다고 했다. 학교 성적도 아버지가 보기에는 형편없었다. 도무지 집에 붙어 있는 법이 없고 어쩌다 집에 있을 때는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본다고 혼냈다. 텔레비전을 보지 않을 때는 어른들 말씀에 끼어든다고 나무랐고, 내가 어른들 말씀에 끼어들지 않는다 싶으면 이번에는 또 나랑은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을 꼬치꼬치 캐묻기나 한다고 짜증을 냈다. 그래서 내가 아무 일도 안 하고 있으면 허구한 날 빈둥거린다고 꾸짖었다. (101쪽)

아버지가 오이대왕을 반긴 까닭은 가부장적인 생각이 통하기 때문이었다. 오이대왕과 아버지는 어린아이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고 독립한 하나의 인격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니 오이대왕과 아버지의 비극은 예정되어 있다. 문제로 불거진 식구들의 문제는 오이대왕이 사라지고 아버지가 생각을 바꾸면 자연스레 해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