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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영화 '왓치맨'을 보다> 작년 3월쯤이었던 것 같다. 평소 알고 지내던 대학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그 친구는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고 영화제목은 '왓치맨'이었다.
남자끼리 영화보는 게 어색했고, 제목을 듣고 수퍼맨이나 배트맨 같은 뻔한 영웅 이야기일 것 같아 약간 회의적으로 말했다. 그랬더니 이 친구는 약간 흥분한 상태로 정말 재밌는 영화이고 두 번째 보는 거라고 말했다. 나는 친구의 말에 조금 흥미를 느꼈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그 친구와 왓치맨을 보기로 했다. ![]() 영화보기 전에 위의 영화 포스터만 보더라도 촌스럽고 조잡한 느낌이 들었다. 이 포스터에서 느낀 것은 수퍼맨과 배트맨은 혼자지만, 왓치맨은 여럿이라는 것 뿐이었다.
영화관에서 친구와 만났다. 친구는 예전에 왓치맨은 만화로 나왔었다고 얘기했다. 나는 왓치맨을 처음 듣는다고 말했더니 그 친구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다. 어떻게 왓치맨같은 유명한 만화를 모를 수 있느냐면서 나를 미개인 취급했다. 나는 살짝 기분이 나빴지만 왓치맨을 살짝 기대하면서 참았다. 영화 처음부분에 케네디 대통령 암살관련 영상이 나오더니 코미디언이 손에는 총을 들고 입에는 담배를 물고 기분나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때부터 나는 영화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코미디언이 얻어터지고 고층빌딩에서 창문을 깨트리고 내동댕이쳐지는 장면은 정말 예술적이라고 할 만했다. 거기다 마지막 부분의 반전, 그리고 묻어버릴 수 밖에 없는 씁쓸함! 왓치맨은 상당히 잘 만든 영화임에 틀림없다. 본지 1년정도 지났지만 다시 보고 싶은 영화다. 물론 영화보기전에 살짝 기분 나빴던 것은 눈 녹듯 사라졌다^^;
<1년후에 만화 '왓치맨'을 읽다> 왓치맨을 본 후에 그 친구가 원작 만화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빌려달라고 했다. 그 친구에게 왓치맨 1, 2권을 받은 것은 올 해 3월이었다. 영화 왓치맨을 본 후 1년쯤 되는 때였다. 왓치맨은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를 쓴 앨랜 무어의 작품이다. 나는 기대하면서 왓치맨 1권을 펼쳤다. 왓치맨 1권은 로어셰크의 일기(1985년 10월 12일)로 시작한다. 코미디언이 고층빌딩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누군가로부터 창문에 내팽개쳐서 살해당했다. ![]() 위는 이 장면과 일치하는 영화의 한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는 영화가 더 실감나고 멋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코미디언한테는 인생 최악의 순간이었겠지만.
로어셰크는 이 살인사건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코미디언이 누군가에게 쉽게 내동댕이쳐질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은 활동하지 않지만 예전에 왓치맨으로 불리던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배경이 되는 시대상황 설명> 잠시 상황 설명을 하겠다. 이 시대는 미국과 소련이 서로를 견재하려고 핵무기보유량을 늘리는 냉전시대이다. 1940년대 주위에 만연한 악을 물리치려고 발벗고 나선 가면을 쓴 능력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경찰 대신 약자를 구하고 범죄자들을 소탕했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따라하려는 사람들이 생겼다. 이것이 '미닛맨'이라는 단체를 결성이다. 미닛맨은 나이가 들면서 은퇴하거나 자신의 명성을 이용하여 사업을 하거나 자서전을 쓰거나 아니면 아직도 활동하고 있다. 이들을 대신해 2기 미닛맨이 등장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나이트 아울(댄)과 실크 스펙터의 딸(로리)이다. 그러다가 맨허튼이라는 신적 존재가 등장하고 1970년대 이들의 활동이 법적으로 금지된다. 그래서 현재 활동하고 있는 왓치맨은 코미디언(정부를 위해)과 로어셰크(악을 징벌하기 위해) 정도다. 위 사진은 1대 나이트 아울이었던 할리스가 쓴 자서전 '후드 아래(under the hood)'의 일부분이다.
<코미디언의 죽음으로 모든 것의 시작!> 위 그림의 왼쪽에 로어셰크가 보이고 오른쪽에 댄이 보인다. 로어셰크가 나이트 아울에게 경고해주러 간 장면이다.
'코미디언의 죽음'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마치 과녁을 향해 쏘아진 화살같다. '탕'하고 총알이 발사된 것이다. 빅뱅이 우주의 시작이라고 하듯이, 탄생은 죽음을 향해 달리듯, 코미디언의 죽음은 이 책의 마지막에 벌어진 사건을 위해 쉼없이 달려간다.
달려가는 도중에, 왓치맨들 각각의 이야기와 도시의 어두운 현실 등이 절묘하고 철학적으로 묘사한다. 이 책은 꾸준히 관조적이고 비관적인 태도이다.
<주요 왓치맨에 대한 설명> 왓치맨 각각을 살펴보면 그들은 절대 우리가 생각하는 수퍼맨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닥터 맨허튼을 제외하고^^;). 그들은 초능력같은 게 없는 보통 평범한 사람이다. 하지만 하나의 이상을 위해 꾸준히 자신을 개발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것이다. 어찌보면 배트맨과 비슷한 점이 많다. 왓치맨 각각은 악을 물리치고 세상을 구하겠다는 신념은 같지만 그들이 바라는 지향점은 다르다.
로어셰크는 창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 친구들의 놀림과 괴롭힘을 많이 당했다. 결국 고아원에 갔고 학교를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 방직공장에서 일한다. 방직공장에서 일하다가 두 옷감사이에 잉크를 넣어서 움직일 때마다 잉크의 무늬가 바뀌는 재질의 옷을 오려서 자신의 가면을 만들고 왓치맨으로 활동한다. 그는 범죄자는 쓰레기로 취급하고 약자를 보호하려는 마음이 강하다. 절대 악과 타협하려 하지 않는다. ![]() 모자를 쓰고 바바리 코트를 입고 가면을 쓴 로어셰크이다.
댄은 홀리스에 이은 2대 나이트 아울(밤 부엉이)이다. 은행가였던 아버지가 물려준 재산은 엄청났다. 댄은 어릴 적부터 자신만의 판타지를 갖고 있었다. 영웅에 대한 동경, 특히 새에 대한 동경이 대단하다. 그래서 새 전문잡지에 글도 쓰고 날으는 비행정도 만들었다.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그 내부에는 엄청한 괴짜가 들어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종종 있다. 자신만의 아지트를 만들고 자신만의 판타지를 키우고 연구한다. 그러다가 자신만의 슈트를 만들고 2대 나이트 아울이 됐다. 당연히 1대 나이트 아울인 홀리스와 친하다. 지금은 정부의 법령에 따라 왓치맨 활동을 중단하고 활기없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 댄은 배트맨과 비슷한 분위기다. 비행정도 있고 장비도 좋다. 위 그림의 오른쪽은 댄이 기고한 글 '팔라스의 어깨에 흐르는 피'이다.
존 오스턴(닥터 맨허튼)은 시계 수리공의 아들로 태어난다. 존은 시계가 정확히 시간을 측정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며 시계 수리를 배웠다. 그러다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다. 존의 아버지는 앞으로는 원자력의 시대가 올 거라며 아들의 진로를 바꿔버린다. 존은 원자물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연구소에 들어간다. 연구소에서 제이니라는 여자를 만나 사귀고 그녀의 손목시계를 고쳐준다고 약속한다. 존이 고친 그 손목시계를 진성장 안에 있는 까운 주머니에 놓고 온 것을 찾으러 진성장 안으로 간 후에 문이 자동으로 잠긴다. 그리고 그는 그 안에서 완전 분해된다. 그러나 존은 놀랍게도 다시 재조합되어 등장한다(파란 몸으로). 그는 원자수준으로 사물을 분해, 조합하거나 공간이동능력을 가진다. 그 후 존을 닥터 맨허튼이라고 불리고 미국은 소련에 대한 방어수단으로 이용한다.
원자력의 공개는 우리의 사고 방식 이외의 모든 것들을 바꿔버렸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인류의 마음 속에 담겨 있다. 만일 내가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나는 시계공이 되었을 것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로리는 실크 스펙터였던 어머니에게 왓치맨 수업을 받으며 자랐다. 어머니의 의도대로 왓치맨으로 성장하여 활동하다가 지금은 존의 연인으로 존과 같이 있다.
<점점 고조되는 갈등> 코미디언의 죽음 이후에 바이트에게 자객이 간 사건이 있었다. 닥터 맨허튼이 TV 프로에 등장했을 때 그를 곤경에 빠트려서 닥터 맨허튼은 화성에 가버린다. 로어셰크는 점점 누군가가 마스크를 쓴 왓치맨들을 살해하고 있다는 심증을 굳힌다. 로어셰크는 몰라크를 추궁하는 과정에서 함정에 빠져 경찰에 잡히고 만다. 감옥에서 로어셰크를 설득하려던 정신과 의사는 갈수록 혼란스러워진다. 오히려 로어셰크에게 자신이 설득당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괴물들과 싸우지 말라. 싸우는 동안 당신 자신도 괴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심연 속을 들여다 보게 되면 심연 역시 당신을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로리는 댄에게 가서 위로를 구하고 둘은 가까워져서 연인 사이가 된다. 로리와 비행정을 타고 나가서 화재 사고에서 사람들을 구한 후에 댄은 자신감을 찾는다. 그리곤 로어셰크를 구하러 감옥으로 간다. 로어셰크까지 잡혀간 것을 알고 댄도 이상한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한편, 안전핀 역할을 했던 닥터 맨허튼이 지구를 떠났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다. 미국은 불안해하고 선제 공격 가능성을 신중하고 고려한다. 사람들도 3차 세계대전이 날지도 모른 생각을 하게 되고 불안해 한다.
<신문가판대, 그리고 잡지와 만화책> 여기에서 신문 가판대가 등장한다. ![]() 위의 사진에서 신문가판대에 서 있는 뚱뚱한 사람이 신문을 판다. 이런 불안한 시절일수록 소식이 중요해진다. 사람들은 주로 가제트라는 신문을 사러 온다. 뉴 프론티어즈맨과 노바 익스프레스 라는 신문도 등장한다. 뉴 프론티어즈맨은 진보적이고 왓치맨에게 우호적이고 노바 익스프레스는 지원 자금의 출처가 불분명하고 왓치맨에게 비판적이다. 위의 그림의 오른쪽에 후드를 쓴 왓치맨을 옹호하는 뉴 프론티어즈맨의 기사이다. 명예는 매와 같다: 가끔 후드를 쓴 채로 가야 한다. 그리고 위위의 신문가판대 옆에 앉아 있는 흑인소년이 만화책을 읽는다. 그 책의 내용도 액자소설처럼 이 왓치맨에 상당히 많이 등장한다. 해적선에 침략당한 어선에서 자신만이 살아남아서 자신의 고향을 향해 가는 내용이다. 결국 해적들로부터 자신의 고향을 지키려고 가지만 고향에서는 전혀 예상밖의 일이 발생한다. 그 내용이 암울하고 비참하다. 위 그림의 왼쪽은 신문가판대 옆에 앉은 소년이 읽고 있는 만화책에 대한 내용이다. 이 만화책의 작가인 셰이는 왓치맨에서 행방불명된다. 위 그림 오른쪽의 시계가 의미심장하다. 이 시계는 만화 왓치맨 곳곳에 자주 등장한다. 이 시계가 의미하는 바를 책의 마지막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다시 결성된 왓치맨!> 댄과 로리는 로어셰크를 감옥에서 구해내고 왓치맨 활동을 재개한다. 그 사이 닥터 맨허튼은 황량한 화성에서 고민을 계속 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건설한다. 그리고 로리를 화성으로 데려가서 자신이 왜 인간을 위해 지구에 가야 하는지를 설득해보라고 한다. 로어셰크와 댄은 누가 왓치맨을 살해하는지 그리고 그 배후가 누구이고 목적이 뭔지에 대해 수사를 계속한다.
<세상을 구해야 하는 이유?> 닥터 맨허튼은 로리를 화성에 데려왔다. 그리고 설명한다. 앞으로 세상에 큰 재앙이 닥친다고 한다. 닥터 맨허튼은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력까지 있다. 그런데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지구를 구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인간들에 대한 환멸을 느낀 것이다. 다음은 닥터 맨터튼의 말이다. "여기 있는 붉은 세계는 당신의 푸른 세계보다 내게 훨씬 값어치 있어요." 하긴 닥터 맨허튼은 원자를 읽을 수 있는 신적인 존재이므로 인간세계를 구해야할 이유를 찾지 못할 수도 있다. 로리는 무조건 그런 재앙은 막아야 한다고 매달린다. 그러면서 로리의 어린 시절 기억에 대해 얘기하고 결국 자신의 어머니와 그 어머니를 겁탈하려고 했던 코미디언 사이에서 자신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 게 된다. 그제서야 닥터 맨허튼은 결심을 굳힌다. 다음은 닥터 맨허튼의 말이다.
당신의 어머니가 싫어할 이유뿐인 남자를 사랑하고, 그 만남에서, 수정을 위해 경쟁하는 10억개의 아이들 중 당신, 오직 당신이 태어났어요. 그런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의 혼돈 속에서 이렇게 특정한 형태를 증류하는 것은 마치 공기를 금으로 바꾸는 것과 같아요.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열역학의 기적. 하지만 세상은 인간들로 꽉 차 있기 때문에, 이런 기적들로 너무 붐비고 있기 때문에, 평범해지고 그래서 우리는 망각해 버리고 마는 것이죠. 우리가 계속 세상을 들여다볼수록 그것은 우리의 관점에서 단조로워집니다. 하지만 다른 시점에서 보았을 때, 그것은 다시 새로운 것처럼, 당신을 숨막히게 할지도 모릅니다. 이리 와요. 눈물을 닦아요. 당신은 생명이고, 쿼크보다 희귀하고, 하이젠버그의 꿈들보다 더 예측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만드는 힘이, 그것의 가장 선명한 지문을 남긴 점토.
하긴 자신을 간강하려던 코미디어을 사랑하게 된 실크 스펙터가 코미디언의 아이를 낳게 되다니, 세상을 참 아이러니컬한 면이 있다. 내 부모님이 만날 확률과 10억개의 정자들중에 내가 선택될 확률을 생각하면 나라는 존재가 참 희귀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생명이란 신비롭고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식별할 수 있는 한, 인간의 유일한 존재 이유는 단순한 존재의 암흑 속에 의미의 빛을 태우기 위해서이다. - C.G.융 회상, 꿈 그리고 사상-
<모두들 남극으로, 그리고 의도된 평화?, 타협된 진실!> 한편, 로어셰크와 댄은 추적을 계속한다. 그러다가 한 피라미드 배송회사가 배후에 있고 바이트가 후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바이트의 요새가 있는 남극으로 간다. ![]() 로어셰크와 댄은 위의 사진에 있는 비행정을 타고 남극까지 간다.
결국 바이트는 뉴욕시민 3백만의 희생으로 전쟁까지 갔던 미국과 소련의 관계를 협력 관계로 바꿔놨다. 미국과 소련은 새롭고 정체 모를 외계인이라는 공동의 적을 막기 위해 협력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진실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외계인이 아니라 바이트의 치밀한 계획에 따라 일어난 것이었다. 바이트는 "타협합시다."라고 얘기한다. 이 말은 장기에서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장군'이라고 말한 것과 같다. 진실을 밝히면 다시 예전대로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로어셰크만 제외하고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은 할 수 없이 타협하고 만다. 로어셰크는 진실을 알리러 가다가 결국 닥터 맨허튼의 저지로 죽게 된다.
<보여진 모습과 감춰진 모습> 모든 사건에는 보여진 모습과 감춰진 모습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1980년대에는 냉전의 갈등이 심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이 갈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자신의 단체에 이롭게 이용했을 수도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아직도 전두환은 벌을 받지 않고 자유인으로 살고 있다.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만 보면 역사적인 사건들이 왜 그렇게 되는지 잘 이해할 수가 없다. 보이지 않는 감춰진 모습을 봐야 하는 것이다. 왓치맨에서 결국 바이트가 수많은 뉴욕시민들을 희생시켰지만 소련과 미국이 협력하게 됐다는 것만 보여진다. 이 모든 것이 바이트가 계획한 것이 진실인데, 그것을 알고 있는 왓치맨들은 침묵하고 만다. 로어셰크만이 진실을 알리려 하지만 죽임을 당하고 만다. 후드를 쓴 정의 (Hooded Justice)를 외치는 왓치맨조차 이렇다. 하지만 누가 옳을까? 평화적으로 바뀐 현실에 타협한 사람들이 옳을까? 아니면 끝까지 타협하지 않은 로어셰크가 옳을까? 그건 그때그때 다를 것이다. 그 답은 우리 마음 안에 담겨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타협을 하든 하지 않든 중요한 것은 감춰진 모습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감춰진 모습을 알아야 타협을 하든 말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래서 계속 비판하고 토론하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을 의미있고 행복하게 사는 길이다.
<그들은 왜 세상을 구하려고 했을까?> 이 책은 닉슨 대통령 이야기와 케네디 대통령 암살, 그리고 미국과 소련의 군비경쟁 같은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왜 세상을 구해야 하는가? 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왜 그들은 가면을 쓰고 슈트를 입을 수 밖에 없었을까? 모두 정의를 지키고 악을 물리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건 달랐다. 어릴 적 판타지때문에, 어머니의 교육때문에, 범죄를 뿌리뽑겠다는 의지때문에, 정부를 위해 일한다는 사명감때문에, 더 근원적인 악을 물리치기 위해 등. 완전한 선인도 없고 완전한 악인도 없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대선과 절대악 사이에 있는 것이다. 왓치맨도 마찬가지이다. 사회가 악한 쪽으로 진행되면 왓치맨같은 선한 쪽의 사람들이 나타난다. 반대로 사회가 너무 선한 쪽으로 진행되면 많은 사람들이 범죄의 유혹에 넘어갈 것이다.
<누구나 왓치맨이 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누구나 세상을 구하는 왓치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가면을 쓰고 슈트를 입지 않았을 뿐 세상에는 왓치맨같은 분들이 계시다. 나 역시 왓치맨이 될 수 있다. 누구나 가면을 쓰고 선행을 하고 사라지는 멋진 모습을 꿈꾼 적이 있을 것이다. 마치 수퍼맨처럼. 가면을 써서 아무도 내 정체를 알지 못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없는가? 아마 있을 것이다. 왕따당하는 친구편에 서서 친구를 위로해 준다는가 힘든 것을 들고 가시는 할머니를 도와준다는가 소매치기를 잡아서 물건을 돌려준다는가. 제일 중요한 것은 아무도 내 정체를 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왓치맨들은 가면(hood)을 썼을 것이다. 우리는 블로그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블로그에서 닉네임만 알 뿐 블로그 친구지만 서로의 얼굴 한 번 못 본 사람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마치 이웃처럼 댓글을 쓰고 추천도 하면서 서로 소통하고 있다. 이런 것이 매력이 아닐까? 우리는 이미 블로그라는 슈트를 입고 닉네임이라는 가면을 쓴 왓치맨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선행을 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그것은 개인의 판단에 달렸다. 하지만 여기 예스블로그로 소통하는 분들은 왓치맨처럼 세상을 더 정의롭게 만들고 싶어하고 책과 문화를 사랑하는 멋진 분들이다. 우리 모두 왓치맨이 됐으면 좋겠다.
<누가 왓치맨을 감시하는가? (Who watches watchmen?)> 이 질문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왓치맨도 인간이기 때문에 자신의 초심을 잃을 수 있다. 그들도 그들의 명성을 이용하거나 타락할 수 있다. 이 질문은 정부나 권력자에게도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란 권력이라는 달콤함을 맛보는 순간 그것에 중독되기 쉽기 때문이다.
<로어셰크를 추모하며> 왓치맨 2권 마지막 장면은 뉴 프론티어즈맨 신문사에서 일하는 젊은이가 로어셰크가 보낸 일기장에 손을 대는 장면이다. 그 일기장으로 인해 진실이 알려질까? 궁금하다. 그래서 다시 예전의 냉전체제로 갈까? 로어셰크는 죽었지만,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분노할 줄 아는 로어셰크같은 사람이 꼭 있어야 한다!
<코미디언의 스마일 마크> 영화 왓치맨을 볼 때부터 코미디언이 항상 가지고 다니던 노란색 스마일 마크가 궁금했다. 왜 코미디언은 그것을 항상 가지고 다닐까?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게 뭘까?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인 것 같다. 세상이 이렇게 부조리가 심하고 삐뚫어질수록 이건 코미디라는 관조적인 자세로 비웃는 것이다. 코미디언은 그렇게 이 세상을 비웃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웃음을 보면 왠지 기분나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 노란색 스마일 마크에 핏자국, 뭘 의미할까?! 웃음속에 아픔을 품고 있을까?
<내가 다 이해하지 못한 깊이있는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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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치맨 : 그들의 이야기에서 우리의 현실을 떠올리다 일찍이 영화 개봉 소식을 듣고 대체 어떤 작품인지 궁금해서 원작을 먼저 보고픈 마음에 본 책 왓치맨의 매력 개성 넘치는 히어로들과 탄탄한 스토리 라인 왓치맨은 저마다 확실한 색깔을 지닌 캐릭터 그리고, 일련의 사건을 둘러싼 추리극 사건에 가져진 진실의 그림자와 복선 이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만화는 그저 만화일 뿐이다’라는 상식을 아주 간단히 깨는 탁월한 작품이다. 보면 그 이유를 잘 알 수 있을 듯. 수퍼 히어로에 대한 새로운 시선 대개의 수퍼 히어로는 언제나 정의의 편에 서야만 한다. 이제껏 수퍼 히어로 만화와 영화들이 그랬듯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이와 같은 기존의 편견이나 관념을 완전히 깨뜨린다. 선과 악은 반드시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선과 악도 상황이나 결과에 따라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수퍼 히어로의 반대는 수퍼 악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매우 절대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매우 상대적인 개념이다. 왜?! 설령 수퍼 히어로라는 존재가 있다 해도 빗나간 정의를 행한다면, 정의의 수퍼 히어로라는 가면을 쓴 괴물에 불과할 뿐이다. 법과 정의라는 미명하에 저질러지는 독선과 불의의 선택은 결국 시대를 역행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이다. 그에 대한 시선이 너무나 잘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더 빛을 발한다. 수퍼 히어로를 통해 미국을 그려내다. 지구 방위대라고 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인 미국. 왓치맨에 등장하는 수퍼 히어로는 바로 미국의 자화상과도 같다. 수많은 굴곡진 역사의 굴레 속에서 정의라는 이름으로 무자비한 파괴와 살상을 이끌어왔다는 결코 숨길 수 있는 진실이니까. 그 속에서도 그들은 스스로 정의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 매번 변화를 시도한다. 하지만, 그 결과나 진실은 눈에 보여지고 있는 일련의 상황에서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한 일련의 모습과 과정을 보면서 미국을 떠올리게 했다는 점에서 더 각인된 작품. 왓치맨을 보고 그들의 이야기에서 우리의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만화, 왓치맨 이 만화에 등장하는 수퍼 히어로는 현존하지는 않는다. 다만 현재 상황에 따라 여러 면에서 볼 수 있다. 현실에서 국가의 안전와 평화를 지킨다는 명분 하에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면 그건 바로 권력 기관이다. 이와 같은 권력은 대개 국민으로 나오지만,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모습은 다른 미래를 만들어 나간다. 그 결과는 모두 역사가 대변해준다. 그러면 그들을 견제하고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없는 걸까. <왓치맨>에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존재하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그런 것을 볼 수 없다는 것이 무척이나 서글프다. 그 때문에 더 인상적으로 느껴진 만화 과연 영화는 또 어떤 모습을 할 것인지 궁금해지다 만화에서 보여진 매력은 분명 대단하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일찍이 <300>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준 감독이 <왓치맨>을 어떤 모습의 영화로 보여 줄 기 기대된다. - Copyrights © 방콕맨. 무단 전재 및 재 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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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무어의 왓치멘 원작이 참 명작이다 보니 여러가지 버전으로 많이 나오네요. 이 작품의 영화가 참 혹평으로 욕을 많이 먹었는데 감독판으로 여러가지 수정하고 해서 나온 작품은 원작의 어느 정도 잘 표현 했다고 봅니다. 원작이 주는 메시지도 어느 정도 반영을 했지만 영상에 힘을 너무 줘서 정작 중요한 것을 표현 못한점은 많이 아쉬웠지만 그래픽 노블 원작을 보고 치유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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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을 보고 영화를 볼까 영화를 보고 원작을 볼까?
그냥 생각 마시고 한번 보시고 영화를 보신다면 좀 더 괜찮게 다가 오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알렌무어의 생각에 조금은 가까워 지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여튼 추천 꾹
버트 종이는 닥종이라 좀 잘 찟어지는 듯한 종이라 불안 불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