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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내 서재에 꽂힌지 3개월이 넘었다. 238쪽의 그리 두텁지 않은 분량이지만 딱딱한 내용일 듯싶어서 그동안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서울에 다녀올 일이 있어서 버스와 지하철에서 효과적으로 시간을 보내기 위한 방편으로 이 책을 가지고 나갔다. 문고판 정도의 작은 크기이므로 가벼운 마음으로 도전을 시도한 것이다.
서울까지 왕복 3시간 20분, 지하철을 탄 시간이 40분이었다. 즉 4시간 동안 완독할 수 있었다. 심리 치료에 대한 전문 용어가 나오므로 쉬운 책이 아니지만, 이 책에 실린 사례(가브리엘 뤼벵 박사의 환자, 또는 프로이트가 연구한 사례 등)들이 가슴이 울리듯이 와 닿아서 의외로 편하게 책장을 넘겼다.
이 책은 짧은 시간에 단 한 번 읽고서 리뷰를 쓸 만큼 만만한 책은 아니다. 그러나 다시 찬찬히 읽을 여유가 있을지 장담할 수 없으므로 잠시 느낀 마음의 자취를 이곳에 남긴다.
오빠에게 몇 년에 걸쳐서 근친상간을 당하고도 오빠를 원망하기 보다는 숭배하는 위게트, 자신을 포함하여 두 여동생이 차례로 10살 무렵에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조지안의 사례가 연이어 나왔다. "피해자는 잘못이 없다. 가해자를 용서하지 말고 법의 심판을 받게 하라."는 메시지가 마음에 와 닿았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혹시 나도 잘못을 한 것이 아닐까?"나 "내가 문제를 제기하면 사랑하는 오빠나, 우리 집안은 어떻게 되나?" 등으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치유하는 첫 걸음은 가해자에게 그가 잘못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것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용서는 그 다음에 이어진다고 한다.
문득 영화 <밀양>이 떠올랐다. 자녀를 죽인 살인범을 용납할 수 없어서 괴로워하던 주인공은 교회를 나간다. 목회자와 신도들의 위로를 받으면서 신에게 귀의한 뒤 그를 용서하기로 결심했다. 그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 사형수로 복역 중인 살인범을 찾으니 그는 편안한 모습이었다. 자신도 신에게 귀의해서 용서를 받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내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신이 나보다 먼저 용서를 한단 말인가?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살인범은 나의 허락도 없이 나보다 먼저 평화를 얻을 수 있는가?"
주인공은 이것을 용납할 수 없어서 절망을 하고 신을 버리기까지 한다.
이 책의 가해자들은 하나같이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피해자가 자신이 큰 잘못이라도 한 듯 괴로워하고 있었다. 가브리엘 뤼벵 박사는 자신의 환자들에게 설득하고 있다.
"당신은 잘못이 없다. 설사 당신의 생각대로 당신이 도발하는 등 유혹을 했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어린이였고 상대는 어른이었다. 상대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를 증오하라. 그 다음에 비로소 당신의 병을 고칠 수 있고, 용서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마지막 장을 덮은 뒤 다시 이 책을 펼쳤을 때 첫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정의의 기본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책임을 지고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것이다."
이어서 첫 장에 있는 문장들이 다시 눈에 들어오면서 분노가 느껴졌다.
"'맞은 놈은 다리 뻗고 잔다.'는 속담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다. 죄를 짓지 않았다면 자책할 일이 없으니 마음을 편히 가질 만하다. (그러나 가해자는 아무런 죄책감이 없이 편안히 있고,) 오히려 피해자가 괴로워하고 저지르지도 않은 잘못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우리의 현실도 그렇지 않은가? 미필자가 군복을 입고 연평도에서 보온병 폭탄을 뇌까리는 것을 보면서 병역을 완수한 이들은 분노를 참지 못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부족해서 멍청하게 군대에 간 것이 아닌가 자책을 하고 있다. 그 미필자나 그의 동료들은 수치심에 얼굴을 숙이기는커녕 여전히 활개 치면서 다른 망언들을 양산하고 있다.
책을 통해서 현실의 여러 모습을 연상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치유가 됨을 느꼈다.
"병역을 완수한 내가 잘못을 한 것이 아니다. 병역을 미필한 부류가 잘못을 한 것이고, 그들이 가해자다. 그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반성하지 않는 부류를 증오하는 것도 역시 그렇고, 그것이 정의다."
끝으로 아쉬운 마음을 전한다. 이 책에는 전문적인 용어가 많이 나오지만, 결코 어려운 내용이 아니다. 생생한 사례들은 소설같이 흥미 있게 읽을 수도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도 무언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번역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였다.
오역이라는 것은 아니다. 소설처럼 흥미 있게 전할 수 있는 구절들을 연구서처럼 현학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독자를 질리게 하지 않았나라는 것이다. 설사 원작자가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연구물로 썼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쉽게 전달하는 것이 번역자의 능력이 아니겠는가?
* 덧붙임 : 짧은 시간에 주마간산 식으로 책을 읽고 그 느낌을 가볍게 쓴 나도 훌륭한 독자는 아니다. 나의 글 역시 좋은 리뷰라고 볼 수는 없다. 이 책에는 많은 사례가 실려 있다. 그런데 나는 겨우 두 가지만 언급하면서 다른 이야기로 비약시켰다. 이 책을 읽지 않고 내 리뷰만 본 이들이 있다면, 그들을 오도하는 못된 안내자일 수도 있다고 반성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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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작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즉 억압되거나 지워져버린 무의식의 세계를 풀어헤치는 심리치료 방식을 취하고 있다. 즉, 유아나 어린 시절의 상처받거나 표출하기 어려웠던 기억이 억압되어 무의식으로 침전된 기억을 조심스레 꺼내어 그 손상된 상흔을 치유하는 패턴이다. 결국 이 저술의 주제가 증오의 기술이 되었든, 용서의 기술이 되었든, 상담환자들에 대한 저자의 접근태도는 동일한 것으로서 새로운 지식의 전달로서 이해되기에는 부족하다. 다만, 부모나 형제, 자매로부터 받았던 어린아이의 상처가 성장하여 일상생활을 하는데 어느 만큼이나 삶의 고통으로 지속되며, 인생을 황폐하게 만드는지, 그리고 그 고통의 괴로움을 가해자에게 향하지 못하고 자신의 내면에 돌리는 피해자에 대한 치유의 지침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하겠다. 피해자이지만 가해자에게 그 잘못을 묻지 못하고, 외려 죄책감이란 감정을 자신에게 향하여 이로 인한 내면의 피폐함이나 또는 광기로 치닫는 사례를 보면서 고통스런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앞서기도 한다. 책은 가해자의 분류를 통해 사례를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딸을 근친상간하는 파렴치한 아버지와 같은 가학적 가해자, 자식을 경쟁자로 또는 노예적 분신으로서 이용하는 어머니와 같은 이기적 가해자, 어린자식을 남기고 일찍 세상을 떠나는 가해 의도는 없으나 가해의 결과를 낳는 무고한 가해자를 예로 하고 있다. 한편 마조히즘적 선량하기만 한 피해자, 죄를 뒤집어쓰는 피해자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들 사례를 쫒다보면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엘렉트라 콤플렉스의 원형들을 중심으로 구성하였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근친상간을 당한 여자아이의 완전히 파괴된 영혼이 성인이 되어서도 치유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무의식속에 완전히 침전된 쾌락 때문일 수도 있다고”환자를 방해하는 무의식의 기억을 설명하기도 하며, 또한 어머니와 자신의 고통스러운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을 깡그리 잊어버린 한 중년 남성의 예에서도 이러한 기조는 지속된다. 이는 무의식속에 “자기 불행을 인정하거나 자기감정에 빠지는 일이 금지”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며, 결국 “가해자를 원망하지 못”하고, 부모라는“사랑하는 존재가 자신들의 삶을 파괴하자 그에 대한 원한을 표현하지 못했고 심지어 그런 감정을 느끼지도 못했다. 그래서 가해자에 향했어야 할 적대감을 스스로에게 돌릴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한다. 나아가 “자기표현의 충동을 지나치게 억누르면 바깥으로 투영되지 못한 충동이 리비도 에너지를 환자 본인에게 되돌리게 되어”극단적인 보복을 낳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상처받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원망하지 못하고, 더구나 그들이 용서를 구하지도 않는 상황은 자아분열, 우울증, 자살과 같은 그간의 고통을 자신에게 돌려, 더욱 그 고통을 심화시킨다. 저자는 이와 같이 “피해자에게 사랑하는 사람의 잘못을 책임지게 하는 메커니즘은 개인부터 사회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나타난다.”고 한다. 여기에는 인용되고 있는 ‘모스크바 재판’에서와 같이 “자기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 걸세!”와 같은 모순되고 설명 불가능한 기이한 일들이 우리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 또한 피해자들은 자신의 고통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자가 마땅히 그럴만하다고 믿는데 ‘가해자는 옳고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실이 아니라 피해자 자신의 믿음이라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피해자는 자신을 용서하는 것, 가해자인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공격적 충동을 느낀 자신을 용서함으로써 그런 감정이 정상이며,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외부의 현실에서 욕망을 실현 할 수 없게 되면, 인간의 무의식은 상황을 이용해 광기를 드러내고 욕망을 실현한다고 하는 ‘피란델로’의 비극 <하인리히 4세>나, ‘프로이트’의 <환상의 미래>를 통해 보상을 받는 광기의 금지된 욕망에 대한 저항을 설명하기도 한다. 어두운 심연에 가라앉아 있는 우리의 무의식의 세계는 신비스럽기만 하다. 이 임상사례집이라 할 수 있는 ‘증오의 기술’에서 부모의 자녀에 대한 무심한 행위가 아이의 삶에 얼마나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가를 이해하게 된다면 또 다른 수확이라 할 수 있을까? 누군가 우리에게 상처를 준다면, 그 가해자를 원망하고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신의 내면으로 그 상처를 돌려 자신의 영혼을 손상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지워버린 기억, 억압된 기억들로 고통 받지 말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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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보다 강력한 것이 증오다. <분노는 나의 힘>이란 책을 읽으면서 적잖게 도움을 받은 나는, <증오의 기술>이란 책 역시 궁금했다. 분노보다 한층 깊은 증오를 용서하는 올바른 방법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상대를 도울 수 있는 것과 동시에 이해하고 헤아릴 수 있을까? 궁금한 마음으로 책을 들었다. 햇빛아래 살짝 반짝이는 표지 속 소녀가 꽃에 물을 주는 모습이 예쁘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고 표지를 다시보니 한결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한다. 셀 수없이 많은 꽃들, 물을 주는 모습이 사소할지언정 새롭게 다가왔다.
미움과 용서의 올바른 사용법을 되새겨보다!
분노를 잘 다스리는 방법, 화를 잘 참아내는 방법처럼 증오를 어떻게 발산하는 방법이 효율적인지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내는 책이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이 책은 가해자에대해 가지고 있는 미움과 용서를 어떻게 풀어내야하는지에 대해 확고한 대답을 내주지 않는다. 스스로가 생각하도록 해준다. 심리학자 가브리엘뤼뱅이 상담자들과 함께 한 내용을 보여줌으로써 억압되어 있던 기억들을 재조명한다. 가학적 가해자, 무의식적 가해자, 무고한 가해자 세파트로 나뉘어져 있으며 각각 해당되는 사례들을 짚어줌으로써 나 자신에게도 억압되어 있던 기억을 되새겨보게 해준다.
"당당히 미워하라. 당신의 증오는 정당하다. 부당한 죄책감에서 벗어나 정당하게 미워하라" 이 책의 핵심이다. 상담 사례를 예로 들어 설명하는데 내용들이 극단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극을 주기에 이보다 더 할 수 있겠는가? 싶을 정도로 근친상간을 비롯한 내용들이 강하게 와닿는데, 읽는 내내 안타깝고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피해자인데도 가해자를 대신하여 죄책감을 지니며 사는 사람들의 상담 사례를 통해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곰곰히 생각을 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왜' '어째서' 라는 질문이 머리를 맴돌았지만 아무것도 질문할 수가 없었다. 책의 마지막장을 덮은 후, 가슴이 먹먹해져옴을 느꼈다. 무언가 묵직한게 와닿았는데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던 책이었다.
끔찍했던 상황을 잊고 가해자를 용서하기란 쉽지 않다.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올바른 용서를 한다는 것은 어떤것일까? 이 책이 전하는 핵심 메세지들 <미움과 용서의 올바른 사용법>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 하나를 끝으로 마치려 한다. 죄책감에서 벗어나 정당함을 인정하고 모순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 잊지 말아야겠다.
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다는 다이아몬드를 갤 수 있는 건 다이아몬드밖에 없다. 이처럼 가장 격정적인 감정인 미움을 물리칠 수 있는 것도 미움밖엔 없다. 피해자는 자신을 좀먹는 스스로에 대한 미움을 가해자에게 되돌려야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진짜 죄인의 미움을 받고 피해자는 자신에 대한 미움을 거둘 수 있다. -p14
<미움과 용서의 올바른 사용법>
1. 당신의 증오를 인정하라. 때로는 미움도 쓸모가 있다. 어떤 외상은 반드시 미워하는 마음이 작동해야 극복 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가해자에 대한 원망은 절대 나쁜 생각이 아니다. 당신은 고통을 인정하고 내보일 권리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당신의 적대감은 정당할 수 있다. 3. 누가 죄를 지었으며 누가 무고한가를 명백히 가려라. 정의의 기본은 잘못은 저지른 사람이 그 책임을 지고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4. 당신의 고통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확인하라. 자신이 죄를 지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당신이 다른 사람을 미워한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인가. 당신은 가해자에 대한 미움을 자신에게 돌렸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5. 당신은 속죄의 희생양이 아니다. 당신이 받고 있는 고통은 그 누구도 구원할 수 없다. 당신은 진짜 죄인이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받지 못하게함으로써 정의 실현을 막고 있다. 6. 가해자가 당신보다 우월하다는 환상을 버려라. 가해자가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데는 마땅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당신의 믿음일 뿐이다. 가해자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책임을 대신 질 수는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쁜 사람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라 해도 그런 가능성을 부인해서는 안된다. 8. 당신의 고통이 중요하다. 증오에 시달리는 죄책감에서 벗어나 정당함을 인정하고 모순을 받아들여야 한다. 9. 가해자에게 공격 충동을 느낀 자신을 용서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에 대한 애정이 없어지는 것이아님을 인정한 뒤에야 용서가 가능하다. 10. 오해가 없길 바란다. 가해자에 대한 증오심이 정당하는 말은 가해자를 벌하자는 것도 아니요. 그에게 복수를 하자는 것도 아니다. 증오는 엄격히 제한된 조건 안에서만 가능하며 그 누구에게도 해가 되어서는 안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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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책은 상처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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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면서 분명히 증오해야만 하는 대상들이 있다. 누가봐도 증오하는 것이 당연한 대상들, 그런 대상들을 향하여 증오하지 못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로 이 책에 기록되어 있다. 참 안타까운 사연들이 너무 많았다. 사실 이 사람들의 사연을 들어보노라면, 누구든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증오를 받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가해자들을 향하여 단 한번도 미움의 감정, 증오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이 사람들은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을까 정도였다. 사실 어려서부터 그런 상황들이 몸 속에 체득이 되어진다고 한다면, 나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일들을 자세히 기록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피해자들의 아픔이 내 가슴속에 아련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가슴 한구석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이런 고통의 과정들을 묵묵히 모두 감내해냈지만, 정작 자기에게 돌아온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자신만이 모든 책임을 걸머지고 살아나가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서 어쩌면 이 시대의 어머니들의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땅에 많은 어머니들이 바로 이런 모습들, 가정의 모든 아픔을 홀로 지고 살아왔던 모습들이 있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뭐라고 해도, 시부모님이 뭐라고 해도, 심지어 자식들이 모든 잘못을 어머니 탓으로 돌려버릴 적에도, 어머니들은 아무런 대꾸조차도 안하고 살아왔으니 말이다. 그런 어머니들이 모두 나중에는 홧병을 얻게 되는데, 지금 그것을 의학적으로 분석해보면 그것이 바로 암덩어리라는 소리를 들었던 적이 있다. 이 책이 이런 경우들을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이런 경우를 미리 알고 대처하라는 의미도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의사로써의 처방전을 써가듯이 지은이는 조금씩 조금씩 그 처방전을 내리고 있다. 이렇게 했다면 좀 낳았을지도 모른다는, 아니 더 나았을 것이라는 의견들을 조금씩 타진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만일 내 삶의 현장에 이런 일이 벌어질 때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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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용어로 '울화병'이라 불리는 화병(火病)은 다른 나라에 없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병이라고 한다. 화병은 오랜 기간 억울한 감정을 표출하지 못하고 내면에 쌓인 울분이 곪아 신체적 통증으로 나타나는 질병이다. 마음의 병이 결국 육체의 고통의 수반하는 것이다. 대게 우리 부모님 시대의 어머니들이 많이 화병을 앓았다. 참는 것이 미덕이고, 여자는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사상이 팽배했던 시절 많은 어머니들이 오랜 세월 억울함과 분노를 가슴에 담고 살았다. 피해자이면서도 가해자처럼, 죄인처럼 숨죽이며 살았던 한 많은 여인들이 삶이 책을 읽는 동안 여러번 겹쳐졌다.
마음 속에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우리의 가슴에 상처를 준 당사자는 대부분 멀리 있지 않다. 많은 경우 가족, 특히 부모나 배우자가 가해자일 것이다. 그들이 준 상처는 그 어떤 타인에게 받은 상처보다 크고 깊은 흔적을 남기며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힌다. 어쩌면 평생을 따라다니며 괴롭히거나 사사건건 브레이크를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족이기 때문에 드러내놓고 미워할 수 없고, 미워해서도 안 된다. 이제껏 우리는 미워하면 안 된다고, 용서하라고, 감싸주라고 배워왔고 또 우리 자녀들에게 그렇게 가르친다. 세상의 많은 책들도 용서와 화해만 말한다. 나 자신을 위해 용서하고, 나를 위해 먼저 다가가라고. 그러나 이게 마음대로 되던가? 말처럼 쉽던가? 설령 그렇게 했다하더라도 그러한 용서는 감정의 찌끼까지, 마음의 앙금까지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증오의 기술]은 가까운 사람,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의 가슴 아픈 사연은 우리의 공감대를 자극한다. 책에 소개된 많은 사람들의 사연은 쓰리고 아픈 내용 일색이다. 이 책은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해 가지고 있는 미워하는 마음의 죄책감에 대한 반론이다. 미워해도 괜찮다고 당당히 미워하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가해자를 벌하자거나 복수를 하자는 게 아니다. 가해자에게 공격 충동을 느낀 자신을 용서해야 한다고 말한다. 진정한 용서는 증오를 인정한 다음에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이다. 당당하게 증오하라는 말은 결국 궁극적으로 용서에 이르기 위함이다.
증오는 건강한 반응이며, 정상적인 감정의 표출이다. 이것을 강제로 억누르고 잠재우려다 오히려 죄책감과 자기 파괴, 우울증, 신경증 등로 발현하는 것이다. 증오가 증오로 끝나지 않고 용서로 이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용서일 것이다. 또한 증오는 증오를 없애는 방법이며 때때로 미움도 쓸모가 있다.
이 책을 읽고 불필요한 죄책감, 즉 가해자가 느껴야 할 죄책감까지 대신 떠안고 괴로워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유했으면 한다. 오래 전 받은 상처, 기억 속에 가둔 상처의 무의식을 서서히 떨구어 내는 데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용서했다고 생각했다가도 불현듯 되살아나 자신을 괴롭히는 상처로부터 해방되기를 바란다. 그것을 해결해주는 책은 아니지만, 적어도 방법을 제시해주고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내 자신의 고통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우쳐주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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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 [憎惡]] : 명사]아주 사무치게 미워함. 또는 그런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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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이 있다. 물론 대부분은 선량하다. 그러나 그네들 중에는 아주 아주 나쁜 사람들이 있다. 겉으로는 선량한 것처럼 보이지만, 보통 사람들이 생각할 수 없는 악함으로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 의해 어렸을 적에 가해를 받은 사람은 상황에 대해 일반적인 반응이 아니라 병적인 반응을 하게 된다.
그리고 또 정신적으로 너무나 연약한 사람들이 있다. 선천적으로 육체가 약한 사람이 있는 것처럼 선천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민감하고 더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이 다 이겨내는 작은 일에도 큰 영향을 받아서 삶의 고통 속에서 방황하게 된다. 문제는 둘 다 정신의 문제라서 쉽게 눈에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증오의 기술’은 평범한 보통의 사람들 보다는 이렇게 연약한 사람들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어렸을 적에, 그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큰 고통이나 자극을 경험하게 되면, 성장한 후에 삶의 여러 방면에서 어렸을 적의 상처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고 삶을 황폐하게 만든다. 저자는 이런 사람들을 치료한 임상 경험을 통해, 잠재된 분노와 미움에 대해 올바르게 해소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내 주위에도 이런 사람이 있다. 어렸을 적의 부모에 대한 큰 상처 때문에 심한 조울증을 겪고 있다. 안타깝지만,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 어떻게 도와야 될지 모르겠다. 솔직히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주위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또 이 책에 나와 있는 것처럼 상처받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다. 상처가 깊을수록 세심하고 주의 깊은 상담과 치료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하나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주위에,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내면의 깊은 상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보다 더 큰 사랑과 배려와 다가감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육체의 질병은 쉽게 눈에 띈다. 그러나 영혼의 질병은 잘 보이지 않아서, 우리의 일상적인 반응은 그들의 상처를 더욱 깊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살펴본다면 그들의 마음이 병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좀 더 사랑과 이해와 배려를 가지고 다가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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