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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모질게 사람대접을 받지 못할 때가 있다. 그 극적인 사례가 기원전 70년대 로마시대의 스파르타쿠스이다. 그는 방금전까지 함께 밥먹고 이야기하던 동료를 원형경기장에서 수만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칼이나 창 철퇴 등의 무기를 써서 쓰러트려야 한다. 혹은 그렇게 동료의 손으로 쓰러 질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무기가 쓰러진 자의 머리나 가슴을 공격하여 죽게 만들어야 했다. 죽은 자는 사나운 짐승의 먹이가 되었다. 스파르타쿠스는 그렇게 살다가 죽기를 기다리느니 반항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동료 검투사들을 이끌고 검투사들의 감옥을 뛰쳐나가 로마에 저항하였다. 그는 대군을 조직하고 정예 로마군에 맞섰다. 그는 3년간의 저항 끝에 패배하였다. 그러나 그의 행적은 역사적 사건으로 남았다. 인간이 숨쉬고 있다는 사실은 단지 짐승처럼 일하고 입에 구겨 넣을 음식을 찾는 것으로 족하지 않는다. 목숨이 붙어있다는 것으로 만족하는 삶으로는 반항이 태동할 수 없을 것이다. 반항은 현실에 대한 거부를 기반으로 한다. 이 책은 강요된 현실을 거부한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각각의 인물들은 매우 구체적이고 상세한 근거에 의해 정리되어 있다. 각 편이 대략 15쪽 내외의 분량이라 읽기에도 무리가 없었다. 인물들의 면면도 여러 나라와 시대 그리고 분야에 걸쳐있어서 흥미를 유발하였다. 특히 마직막 장에 들어 있는 인물들은 현대사회에 연결되는 시대적 특징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의 행적이 너무 괴기스럽기도 하지만 복잡다기한 사회적 현상의 한 특징에 대응하는 인물들로 보여서 재미있었다.. 디자인도 꺌끔하다. 삽화와 삽화에 달린 설명문 그리고 주석은 책의 이해를 돕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한마디로 방대한 분량의 역사적 인물들을 집약적으로 담아내면서도 매우 정돈된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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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행동 중 연습이나 모방없이 태어날 때부터 유전적으로 몸에 지니고 있는 성질을 본능(本能)이라고 한다. 이러한 본능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식욕, 잠자고자 하는 욕구, 성욕등등. 반항도 그중의 한가지이고, 무엇엔가 반항하려는 본능은 인간이면 누구나 갖고 있다. 다만 그 방향이나 목적이 어느 쪽으로 향해 있느냐와 어느 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반항하면 누구나 먼저 좋지 않은 방향의 반항을 먼저 떠올린다. 우리들 대부분이 현실을 잠시 도피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반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 책에 나온 주인공들의 반항은 커다란 용기(勇氣)의 또다른 표현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반항은 개인을 위한 사소하고 작고 보잘것 없는 용기일 뿐이라면, 책속의 주인공들의 반항은 나보다는 남과 타인과 사회를 위한 의지와 신념을 단념하지 않고 목숨과도 기꺼이 바꾼 큰 용기를 내포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서 말 하는 반항은 단순한 불만에 대한 충동적이고 돌발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자유나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도전이라고 볼 수 있다.
인류의 역사는 신화시대부터 오늘날까지 보다 사람답게 살 수 있기를 염원하며 구질서, 구사회, 부폐한 정권이나 왕권에 대한 끝없는 투쟁의 기록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라고 본다. 특히나 알제리 태생의 프랑스 작가 카뮈는 신화부터 현대의 인간 사회에까지 아우르는 반항의 역사와 근원을 파해친 책 ‘반항하는 인간’에서 우리의 역사를 살인과 부정과 폭력의 연속으로 보면서 폭력과 테러를 역사적, 철학적, 정치적 맥락에서 살피며 이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살피고, 폭력에 대항하는 반항이란 무엇이며 그 반항에 내포된 원초적 정신에서 초래되는 결과가 무엇인지를 성찰하면서, 부조리와 직면하여 모순을 해소하려 하지 않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삶을 긍정하는 태도, 그것이 바로 '반항'이라고 정의했다. 반항은 삶의 의지와 폭발인 동시에 삶이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자세라고 본 카뮈의 반항에 대한 정의가 올바른 판단이었음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 책의 제목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 는 알베르 카뮈가 ‘반항인’에서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재한다”에서 따온 말임을 누구나 쉽게 알수 있다. 우리가 이만큼 발달하고 편한 사회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도 다 시대를 앞서갔던 인물들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 한가지 아쉬운 점은 주인공들이 반항할 수 밖에 없던 시대상황에서 그들의 사상적 고뇌나 번민의 흔적들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단순히 위인전 요약본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는 점이 내게는 책을 읽는 내내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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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반골기질 다분한 나에게 재밌는 책을 읽은 느낌이다. 한정된 지면에 많은 사람들을 설명하느라 내용이 좀더 재밌는 일화들로 많이 채워졌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지만, 나름 재밌는 역사적인 인물들을 한 장소에 모아 준 것만으로도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목차만 보더라도 많이 들어본 듯한 사람들이지만, 도대체 왜 이들이 나의 머리속을 맴돌까하는 의심이 든다. 그러나 막상 책을 읽으면서 “아! 이런 사람이었구나!”라는 깨우침(?)과 함께 시간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한다. 책을 읽으면서 늘 이 주인공들에 대해서 다른 책을 구해서라도 조금 더 알고 싶다는 느낌이 계속 생각의 밑바닥에 남는다. 사드? 누굴까? 많이 들어봤는데, 사디즘? 비슷하기도 하고.. 이런 의문의 꼬리가 조금 풀리면서 새로운 관심을 유발시켜 주는 것 같다. 책의 내용의 짧음에 아쉬움이 없진 않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나의 밋밋한 일상에 “특이하게 역사를 살아간 사람들”이 조금 더 의미있게, 무게감 있게 살아보라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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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속성을 느끼게 해주었다.
재미로 말하면 역사서라서 괜찮았다. 몇 사람은 굳이 반항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짤막 짤막한 내용이라서 지루하지 않았다. 다만 내용의 전개나 그들의 생애가 주는 무게 때문에 소설처럼 빠르게 읽어치울 수 없었다.
대략 닷새에 걸쳐서 장별로 몰아서 읽었다. 인물별로 정리가 잘되어 있어서 시대별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다만 이 책이 워낙 다양한 인물과 나라에 걸쳐있어서 쉽게 읽을 수는 없었다.
기본적으로 시대는 권력이 소수에서 다수로 이동해온 것을 보여주는 책인 것 같다. 세번에 걸친 국왕 처형에 관련된 내용을 읽으면서는 민주주의가 피를 요구하는 거구나 확실히 수긍하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 영국 청교도 혁명, 러시아 10월 혁명까지 그 시대의 반항인들은 민중의 정반대에 있는 인물들로 생각되는 국왕처형을 어떤 사명처럼 수행하였다. 프랑스 로베스피에르는 루이16세를, 영국 크롬웰은 찰스 1세를, 러시아의 붉은군대는 니콜라이 2세를 저 세상으로 보냈다.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통치형태인 군주제를 폐지시킨 원동력은 반항인들과 그들을 지지한 민중의 힘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군주제에서 새로운 정치체제로 이행되어 갈때 권력은 계승될 수 있는 독점적 전유물이 돌 수는 없었다. 권력은 매우 가변적이다. 누군가의 수중에 있다가도 민심이 갑작스럽게 돌변하면 그 권력은 연기처럼 사라져 누군가 다른 자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지만 새로 권력을 움켜쥐는 자는 권력의 아주 가까운 곳에서 권력의 냄새를 진돗개보다 더 잘 맡는 자일 것이다. 그런 진돗개같은 권력의 후각을 가진 자는 대개 군대를 동원할 수 있는 자이다. 혹은 군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자이다.
권력이란 정확히 말하자면 군대 또는 경찰력을 움직이고 명령을 내려 무력을 수행하고 그 군대나 경찰이 움직일 수 있는 세금을 걷을 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 권력을 탐하는 자는 경쟁자를 무너뜨리는 것에 모든 생각을 집중하게 되는 반면 그런 권력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자들은 유연하게 권력과 거리를 두려고 한다. 그러다가도 그런 관심없어 보이는 자에게 민중들과의 연계가 떨어지지 않을 때는 권력이 그의 손으로 넘어갈 수도 있어서 현재 권력을 쥐고 있는 자는 첩자를 풀어서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게 되고 심할 경우 암살로 해치우기도 한다.
이책을 읽으면서 민주정치 체제가 아닌 방식의 권력 이동은 너무나 비정하여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었다. 푸셰는 반항인은 아닌것 같은데 이책에 들어있어서 좀 어울리지는 않는 것 같다. 그래도권력의 속성에 대해서는 가장 많이 생각해 보게 만든 인물이었다.
그렇지만 이책에 등장하는 작가들의 경우 그들을 읽는 것이 아주 즐거웠다. 그들은 반항이 꼭 정치적 반항만 있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주어 이책을 읽으면서 그나마 조금은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있는 성에 관련한 부분은 아주 부담없이 읽었는데 역사속에서 반항이 낭만적이기도 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현재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미국 출생 반항인이 달랑 베블런 한 사람이라는 것은 좀 아쉬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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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항 한다. 고로 존재 한다.'
이미 제목에서 벌써 이 책의 내용을 짐작케 한다. 사실‘나는 반항 한다 고로 존재 한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말 같기도 하다. 아 그것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 한다 고로 나는 존재 한다' 아니었던가? 그렇다 보편적으로 인용되어지는 데카르트의 말에서 책의 제목을 인용하여 그 덕을 보려 하였나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 하고 인터넷을 검색 했다. 그러자 알베르 까뮈가 이렇게 말했단다. ‘나는 반항 한다 고로 존재 한다’
아 이제 알 것 같다. 까뮈가 누구인가? 늘 사회의 부조리에 반항하는 집필과 2차 대전 중 에는 레지스탕스활동에 참여 하는 등 스스로가 시대의 반항아였던 그가 아니던가? 그래서 제목만으로 이 책의 어떤가를 이미 말하고 있다 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누구나 그렇듯이 반항이라는 단어가 주는 갈등과 사건 등에 대한 기대감이 사뭇 지루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면서 첫 장을 넘겼다. 6개의 주제별 단락과 25명(사실은 71명이다. 5장의 ‘47명의 무사들’에서 그 들을 한사람씩으로 계산해야 하는 것 아닌가?)의 인물 중심으로 나눠져 있는 것 또한 이 책을 부담 없이 읽게 하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결코 가볍거나 역사적 증거나 제시가 협소하지 않다. 오히려 인용하고 있는 시대적 연계성과 그 많은 자료들의 제시는 정말 작자의 독서량을 짐작케 한다. 가능한 작자의 주관적 평가의 차분한 절제와 시대적 객관성과 민중의 역사적 평가의 보편성을 손상하지 않으면서도 정돈된 시대적 연관성을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거르지 않는 작가의 필력은 그냥은 결코 표현 될 수 없는 것이며, 이것이 작가의 독서량뿐만 아니라 치우치지 않는 독서 편력을 짐작케 하는 것이다.
또한 자칫 인물중심의 역사적 시각으로 전체로 보지 못하고 궁색하거나 반항이라는 사회적 편향성의 시각으로 왜곡 되어 질수 있는 역사적 고찰을 적절한 문헌과 참고 서적들을 통해 제시되어지고 있다. 짐짓 작가가 이렇게 다양한 책들을 정말 다 읽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을 정도다.
그리고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리얼리티다. 앞서 언급했듯이 반항이라는 단어가 주는 갈등과 사건적 요소 그리고 역사라는 것이 모여 진정 소설적 요소를 다 만들어내면서도 사실이라는 리얼리티가 이 책을 쉽게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읽은 것이 이틀 반나절 걸려 완독했다. 책을 빨리 못 읽고 줄을 그어가며 메모까지 하며 읽어가는 나로서는 무척 빨리 읽은 것이다. 오타도 2군데나 발견했다.(153p/ 161p)
아무튼 기대 이상으로 재미와 가벼운 역사적 식견, 인물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을 주는 썩 괜찮은 책인 것 같다. 처음 써보는 서평에 너무 좋은 이야기만 한 것 같아 혹시 작가와 친분이 있나 하는 오해가 걱정된다. 전혀 그렇지 않다.
그냥 시대라는 한계가 한 인간을 반항이라는 또 다른 사회적 굴레도 덧 씌워지기 전에 한 인간으로써의 번민과 독백을 생각하게 하고 다시 현실과 시대라는 동시성이 만나서 만들어 지는 앞으로 새로운 역사에 어떠한 고민과 기대가 주어지고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오히려 이것이 이 책에게 더 주문하고 싶기에 더 간절하게 생각나나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