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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확인했다. 내가 지금 두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과 이 땅에서 교사로 살아가는 일이 어마어마한 축복이라는 것을, 내 행복이 그 안에 다 있다는 것을, 더 바랄 게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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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칭찬하라>의 본문 내용은 150페이지 정도에 불과하다. 그리고 제목처럼 ‘학교’와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 언뜻 교육 분야의 성공 지침서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요아힘 바우어는 교육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 의대교수이자 정신과 의사다. 그럼으로 그가 교육에 접근하는 방식 역시 ‘신경 생물학’이라는 학문적 바탕에서 출발한다. 물론, 이 책은 그렇게 난해한 책은 아니고 나름의 의학적, 학문적 근거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가 이 책에서 거론하고 있는 신경 생물학의 개념은 ‘거울뉴런 mirror neurons' (거울현상, 공명현상)이라는 체계인데, 이것은 흔히 ’성과‘와 ’결과‘로 귀결되고 마는 최근의 교육 분야에 대한 압박에 대한 학문적 대안이 될 듯 하다. 애초에 이 책은 <규율을 찬양하라>라는 책의 반론서로 출간되었다. <규율을 찬양하라>는 독일의 사립학교 교장이자 교육학자이기도 한 베른하르트 부엡이 저술한 책이며, ‘교육의 현장에 귄위와 규율이 다시 자리 잡아야 한다’는 요지의 책이다. 하지만 <학교를 칭찬하라>는 이런 부엡의 의견에 반대하며, 교육 환경 외의 조건에도 주목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 책은 독일을 기준으로 한 현재의 학교 교육 환경의 조건들과 심리적 상태를 돌아보며, 학생과 교사, 학생과 학부모, 교사와 학부모, 사회와 학교 등 교육을 둘러싼 관계들이 호의적으로 흘러가야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독일의 교육 환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만큼, 가끔 저자는 우리로서는 부러운 상황조차 투덜거리고는 한다. 가령 ‘어떻게 교사들이 학급당 25명 이상, 심지어 30명이상이나 되는 학생들을 잘 가르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이 아이들 가운데 절반이 건강하지도 않은데 말이다.'(p.19)라고 말하는 부분이 그렇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가 교육 환경의 문제점을 조목 조목 건드리는 부분들은 우리로서도 충분히 이해할만 하다. 사람들은 복잡한 문제들을 단순화시키기 좋아한다. 흔히 ‘시스템’이라고 불리우는 체제의 문제점을 건드리기는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단순히 ‘누군가의 문제’라고 국한해서 설명하는 것이 이해하기도 쉽고 문제 해결도 간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이든 한국에서든 문제의 근원으로 제시되는 것인 ‘교사’의 문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요아힘 바우어는 이런 문제 인식의 출발점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한다. ‘오늘날의 교육이 실패한 이유는, 학생들이 어떤 시점에 어떤 지식을 습득해야 하는지 교사들이 몰라서가 아니다. 교사와 학생이 성공적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가능한 수업 상황을 만들어내는 데 학교가 실패했기 때문이다.’ (p.18) 바우어는 학교를 둘러싼 여러 환경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교육 관료들의 일방적인 태도가 문제점이라고 지적하며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행동은 상호간에, 대화를 통한 관계 속에서 일어난다’(p.20)고 말한다. 그러므로 당연히 문제의 해결점 역시 관계와 소통에서 비롯됨은 분명해 보인다. ‘가장 최근에 실시한 신경생물학적 연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려준다. 즉 우리의 동기체계가 활발하게 작동하기 위해 결정적으로 중요한 조건들이 있는데, 그것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게 되는 관심, 사회적인 인정 그리고 개인적인 평가라는 것이다.’(p.27) 신경생물학적으로 아동과 청소년들의 동기는 이런 감정에서 비롯된 생물학적 신호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것이 결핍될 경우 결국 ‘대리 자극’인 술, 니코틴 그리고 마약과 관련된 중독이나 컴퓨터 게임 중독과 인터넷 중독으로 치환되고 만다는 것이다. 바우어는 이 지점에서 앨버트 반두라가 제시했던 ‘거울뉴런’이라는 이론을 가지고 설명하는데, 쉽게 말하자면 아동과 청소년기에 교사, 부모, 멘토들과의 관계 형성을 통해 아동과 청소년들은 ‘따라하기’를 하며 ‘자신들의 잠재력과 개발 가능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인식하게 된다’(p.34)는 것이다. 이와 같은 조건을 충족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아이들이 가깝게 여기는 어른들이 곁에 있어주는 것임은 물론이다. 단, ‘본보기’를 보이는 부모나 교육자들의 경우에 완벽해야 할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완벽함보다 더 중효한 것은 그들의 독특한 성격이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거울세포라는 체계를 거쳐서 아이들에게 공명(Resonanz)을 일으키며 불꽃을 활활 타오르게 할 수도 있고 정열에 불을 지필 수도 있다.’(p.35)고 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공격성’에 대한 고찰이다. 바우어는 미국의 아이젠버거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사람의 뇌는 신체에 가해지는 고통을 사회적인 소외나 굴욕과 같은 방식으로 평가한다. 결과적으로 사회적 소외나 굴욕, 즉 신체적․심리적 고통은 공격성으로 대답하게 된다’고 말하는데, ‘학교가 폭력적인 잠재성의 근원은 분명 아니지만 학교는 그런 잠재력들이 펼쳐지는 영역이므로, 학교는 더욱더 청소년들에게 소외되고 배척당한다는 감정을 강화시켜줘서는 안 된다’(p.39)고 역설하고 있다. 결국 바우어는 현재의 학교들이 결국 학생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체계를 지니고 있으며, 이런 상황에 변화가 요구됨을 간과하지 않는다. 그는 학교 공간이 음악과 운동을 통해 동기를 강화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당연하게도 이런 상황이 가능하려면, 학교에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이와 더물어 교육상담소와 같은 시설 역시 학교와 좀더 강력하고 능률적인관계가 성립되어야하는 것이다. 이런 외적인 조건과 함께, 바우어는 교육 주체들 간의 관계에 대해 주목한다. 바우어가 인용한 미국계 아일랜드 작가이자 30년간 교사로 일한 프랭크 맥코트의 말은 교사의 직업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만한 대목이다. “교사는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그는 자신만의 스타일과 목소리를 가져야만 한다. 진정한 권위란 불가사의라 할 수 있다. 인격, 감수성, 지식, 기분이 혼합되어 있다. 언제 압력을 가해야 하고 언제 그러면 안 되는지에 대한 본능 역시 그에 속한다. 많은 교사들은 위협과 공포심을 수업의 수단으로 이용한다. 그러나 학생의 주의를 끌고 그들이 규율에 따르게 하려면 격려의 말과 영감이 필요하다. 나는 이를 통해 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믿는다.”(p.62) 바우어는 이렇듯 사회 통념의 보편적이며 성실한 교사상과는 다른 ‘교사상’을 이야기 한다. 그에게 훌륭한 교사는 ‘고윺한 성격이 있는 사람’이자 행동하는 교사이며 즉흥적이며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바우어에게 있어 좋은 교사가 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며 오히려 서로 간의 ‘교사상’을 가지고 논쟁을 벌일 것이 아니라 ‘교사들 내부에서 동료의식을 갖고 연대하며 서로를 지원할 수 있게 하려면, 무엇보다 좋은 교사가 되는 데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고 교사들간의 체계적으로 정기모임을 갖고 ’개별 학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바우어의 이상적인 교사는 적극적이기는 하지만 항상 거리를 유지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교사가 병에 대한 저항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시스템을 위한 교사 양성 시스템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는데, 먼저 바우어가 꼽는 교사의 자질은 ‘교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하나의 전공 혹은 여러 개의 전공을 사랑해야 하고 잘해야 하며, 그 외 몇 가지 전제조건도 만족시켜야 한다. 즉, 삶에 대한 기쁨을 가지고 있고, 사람과 접촉하는 걸 좋아하고, 사람들을 다루는 재능이 있으며, 아동과 청소년들에 대한 사랑이 있고, 가능하면 유머도 있어야 한다’(p.88) 정도로 설명된다. 동시에 바우어는 교사들이 단지 전공 뿐 아니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법, 교사로서 학생들의 주의를 끌 수 있는 방법, 학급에서 역동적으로 흘러가는 과정들을 인지하고 건설적인 기여를 하며 문제가 생길 경우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반응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야 한다’(p.90)며 현실적인 교육 현장 중심의 교과 과정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는 교사가 되기를 지원하는 학생들의 실습 기간을 더 많이 늘릴 필요가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즉 ‘학교는 대학이 되고, 대학은 학교가 되어야 한다! 의학 분야에서는 모든 대학병원이 그 지역에 있는 의대생들이 배우는 병원의 역할을 하듯, 교사를 양성하는 모든 대학들은 많은 학교와 연계할 필요가 있다.’(p.102) 책의 후반부에서 바우어는 학교만큼이나 부모의 역할이 중요함을 역설하는데, 우리는 흔히 아이와의 관계가 ‘평등’을 지향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비해, 바우어는 ‘아이는 혼자서 세상을 개척할 수 없으며, 특히 아직 알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는 결정을 내릴 수 없다’(p.110)고 단언한다. 그는 부모 역시 적절한 개입과 협력으로 문제를 접근해 나가야 한다고 말하며 단순히 학교를 비판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이 책의 제목이 <학교를 칭찬하라>임에 주목하자.) 부모 역시 교육의 주체로서 학교와 협력하며 ‘거울뉴론’이론에서 보듯 부모의 부정적 인식은 아이에게 그대로 전염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학교를 칭찬하라>는 학생을 둘러싼 가정과 학교가 감정이입과 반사가 적절히 이루어지는 ‘거울체계’가 작동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이는 단순히 학교에 모든 문제를 떠넘기는 것 대신 적절한 소통과 함께 지원이 이루어져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각 장에 쓰여있던 문구 중 인상적인 구절 두 개를 적으며 이 글을 마친다. 교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영원한 낙관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 필립 비글러, 1998년 ‘올해의 교사’ 교육은 삶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 바로 삶이다! - 존 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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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완벽한 학교상을 그려내다 '학교를 칭찬하라'가 그려내는 학교상은 그야말로 완벽함이다. 요아힘 바우어가 그려내는 이상적인 학교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선생이 학생들에게 친밀감과 신뢰감을 동시에 얻으며 자신의 특성에 따라 학생을 올바른 길로 지도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교사는 완벽할 필요가 없으며(다시 말해 실수를 해도 괜찮으며) 비록 완벽하지 못하다 할지라도 그 선생의 인간적 특성이 학생들에게 받아들여질 때 그 과정에서 인간적인 교감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 안에 전제하는 것은, 학교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 아니라, 인성적인 면을 발달시키고 인간으로서의 면모를 정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요아힘 바우어는 그러기 위한 몇 가지 조언과 사례를 들며 단순히 학교를 비판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학교라는 공간이 칭찬받을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2.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 그에 따르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굉장히 단순하다. 선생은 단순히 교육의 대상으로서의 학생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학생을 바라보고 학생은 선생을 무시하고, 그저 성적만 올려주면 되는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배워야 할 것이 있는 선지자로서 대우해주면 된다. 얼마나 간단한가. 문제는 한국의 교육현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이와는 정반대라는 것이다. #3. 교육으로서의 학교기관 왜 많은 이들이 특목고를 가려고 기를 쓰고, 조금이라도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사교육을 불사하는가. 그것은 사회가 만들어내는 강박관념에 기초한다. 어차피 결과는 스펙으로 나타나고, 그것으로 인간을 잣대짓는 사회 안에서 인성교육보다 좋은 성적이 중요하다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학생들 또한 인성보다는 좋은 성적을 얻는 것이 좋다고 배웠고, 생각한다. 정확히 말하면 성적만 좋으면 어찌 되었든 상관없다. 라는 인식이 강하다. 또한 만연한 사교육 아래 선생이라는 존재는 단순히 지식전달의 객체로만 존재한다. 그러니 선생이고 뭐고 존중할 만한 가치가 안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지. 게다가 일부 학부모들의 행태는 그것을 더욱 강화시키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4. 선생 또한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사회탓, 학생탓을 할 수가 없는 것이 분명 학교라는 곳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은 선생 또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학생을 올바르게 가르치겠다는 이상적 목표는 집어치우더라도, 적어도 학생을 하나의 인격체로서 대우하는 선생 또한 많지 않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선생이라는 직업을 택하는 이유가, 교육에 뜻이 있거나 자신의 지식을 나눔으로서 성취감을 얻기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평생직장'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지 않은가. 다른 이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생각없이 단순히 학생을 패거나, 비인격적인 대우를 했던 선생에 대한 기억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러니 단순히 그런 사람들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라는 말을 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5. 복합적인 문제 물론 위에서 언급한 상황들과, 요아힘 바우어가 언급하는 상황은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칭찬하라'에서 언급되는 - 학교를 망치는 사례들은 분명 우리의 그것과 어느 정도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이 단순히 '이것이 문제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연계되고 얽히며 현재의 교육상황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해결책은 첫부분에 언급한 서로에 대한 인간적인 교감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제도로서(체벌금지라든지)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니 절대로 해결될 수조차 없을 뿐더러 부작용만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6. 천천히 한 걸음씩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그러니 선생과 학생, 그리고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를 뒤흔드는 것은 단기간에는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눈 앞에 있는 대상을 조금씩 존중하는 것에는 큰 노력이 들지 않는다. 단순히 선생-학생의 관계도 마찬가지고, 아이에게 선생을 존중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도, 학생이 처해있는 전반적인 환경을 개선하는 것도 우리 모두의 몫이고, 모두가 조금씩 바꿔나가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단기간에 가능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포기하면 결국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비록 불가능해 보이더라도, 조금씩 바꿔나가야 할 뿐이다. 그것이 우리의 학교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고, 학교를 칭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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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규율을 찬양하라"라는 책을 반박하는 의미에서 나왔다는 이 책의 원제는 "학교를 찬양하라"였다고 한다. 엄격한 규율을 강조하는 보수 진영에 대해 진보에서 반박하는 느낌이라기보다는, 중도에서 7장에 걸쳐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책 제목 속 '칭찬'이라는 단어를 보며 사기가 떨어진 학교를 믿어달라는 내용이리라 기대했는데,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학교의 생태를 신경생물학적으로 풀어가면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요즘 워낙 교육계에 자주 오르내리는 책이지만, 특히 최근에 "공부상처"를 읽으면서 자주 등장해서 꼭 읽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최근 비슷한 맥락에서 교육을바꾸는사람들 이찬승 대표님 말씀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학습 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우선 순위는 결과론적 접근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의 관계, 학생의 정서에 집중하는 일이다. 후기 중 일부를 옮겨본다. "대표님께서는 '모두의 성장을 위한 교육'을 강조하시면서 "한국도 시스템 자체를 바꿀 때가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반드시(some)+모두(all)"를 아우르는 큰 그림이 필요합니다.
저자는 교사가 수업 시간에 학생들 앞에 등장해서 말을 거는 순간 속에서도 학생들은 교사가 어떤 심리 상태인지 무의식 중에 파악한다고 주장한다. 그만큼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효과적인 학습, 나아가 행복한 학교 생활의 필수 요소이다.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행동은 상호간에, 대화를 통한 관계 속에서 일어난다(20쪽)." "집을 지을 때 건축자재들이 어느 정도의 하중까지 견딜 수 있는지를 계산한 비율을 안전율이라 하는데, 학교라는 시스템에도 세 가지 안전율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교육을 받고자 하는 동기이고, 두 번째는 배우는 학생, 가르치는 교사, 학부모가 서로 협조하려는 의지이며, 마지막 세 번째는 교사와 학생이 관계를 맺는 능력이다. 하지만 도대체 누가 이와 같이 중요한 세 가지 요소를 잘 알고 있을까? 학습동기, 협조적인 태도, 그리고 관계형성이라고 하는 요소들은 결국 신경생물학적인 바탕에서 나온다. 따라서 우리에겐 '학교의 신경생물학'이 필요하다." 15쪽.
저자는 자신이 정신과 의사임을 십분 활용하여 어른에 대한 학생의 모델링에 대해 이야기할 때 '거울뉴런'을 끌어온다. 이에 따르면 학생은 주변 사람들에게서 행위 뿐만 아니라 감정까지도 전염된다. 또한 자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교사, 부모와 같은 의미 있는 어른들을 닮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피드백을 통해 자신의 나아갈 길에 대한 방향을 잡는다. "... 아동과 청소년들은 두 가지, 즉 행동하는 어른들의 직접적인 모델 그리고 친밀한 사람들로부터 얻게 되는 반사된 자신들의 모습을 이용하는데, 이는 한 단계씩 '자아'를 계발하고 인격을 형성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바로 교육과 교양의 핵심이며, 어른들과의 관계가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유이다. 우리가 '본보기'로서 아이들과 형성하는 관계를 통해, 우리는 아이들이 무엇이 될지에 결정적으로 기여하게 된다. 그와 같은 과정을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아이들이 가깝게 여기는 어른들이 곁에 있어주는 것이다. 또한 친밀한 관계에 있는 어른들은 '특징을 가진 인간'으로서 인지되어야 한다... 즉 그들은 거울세보라는 체계를 거쳐서 아이들에게 공명(resonanz)을 일으키며 불꽃을 활활 타오르게 할 수도 있고 정열에 불을 지필 수도 있다... 아동과 청소년은, 부모 혹은 선생님이 인지하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자신을 비춰볼 줄 알고, 가까운 사람들이 자신에게 무엇을 통보할지 감지한다." 34-35쪽.
이렇게 학교에서 형성되는 관계와 거울뉴런의 작동이 학생에게 중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아무나 교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이 교사가 되어도 되는지 일찍 검증하고, 실습도 이른 시기에 많이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사는 스트레스로 인해 질병을 얻거나 소진될 수 있다. 학교 평가에 있어서 독일인 학자가 개발했다던 피사 시험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한다. 학교 평가는 "1. 단순하고 비관료적이어야 하고, 2. 중요한 과정과 성과를 파악해야 하며, 3. 이 성과들은 학교의 참여자들(학생, 교사, 학부모)에게 피드백되어 자체적으로 개선 과정이 일어날 수 있어야 한다(137-138)." 좋은 취지로 고민을 거쳐 시작했다던 교원평가제가 취지와 다르게 돌아가고 있어 대안을 고민하는 이야기를 듣곤 하는데, 저자의 생각을 참고할 만하다. 현재로서는 세 요건 다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서로 존중해야하고 폭력은 절대 허용하지 않음, 교육 주체들이 협력하기, 학생은 등교할 때 신체적으로 공부할 준비를 해오기(아침 먹기, 8-9시간 이상 자고 오기, 인터넷과 게임 시간 조절), 학부모는 자녀가 등교하기에 적합한 상태인지 확인하기, 자녀와 부모가 일주일에 7번 이상 밥 함께 먹고 대화하기 등의 학교계약을 예시로 보여주고 있는데 완전 공감되었다.
도덕, 윤리과에서는 "가치관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사회적, 감정적 능력을 개발하고 구축할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130쪽)"는 내용 역시 받아들일 만한 부분이다. 한국에서 도덕, 윤리과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저자가 말하는 방향성을 찾아가야할 필요성이 많다. 번역도 명쾌하게 잘 되어 있고, 요즘 관심이 많은 분야에 대한 책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게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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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나온 책을 번역한 것으로, 아마 읽어보니 원제는 '학교를 찬양하라'였을 것 같다. 찬양 이라는 말이 아무래도 종교적인 색채가 강해서 바꾼 것 같고... 유럽 국가들, 그 중에서 독일 교육은 핀란드 등과 같이 우리가 배울 것이 많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독일이나 우리나 교육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영역이 그리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교육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주목해야 할 점 역시 '관계'라는 것도. 너도나도, 그리고 이제 곧 선거철이 오고, 좀 있으면 5월이 오니 학교와 교육, 교사 등을 물고 뜯고 씹기 바빠질텐데, 책 제목처럼 학교를 칭찬까지는 아니더라도 격려하는 분위기가 조금 더 생겨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내 아이가 다니고, 그 아이가 만들어갈 미래는 결국 학교의 에너지가 바탕이 되는 것이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