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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리뷰를 다 쓰고 올리기 버튼을 눌렀는데 취소 버튼으로 눌렀나보다. 다 날라갔다. ㅜ.ㅠ 이것도 신의 뜻이려니 하고 다시 마음잡고 전혀 다른 내용으로 써본다.
<신과 나눈 이야기1,2,3>, <신과 나누는 우정>, <신과 나눈 교감> 예전부터 내 가치관을 근간을 형성하고 있는 닐 도날드 월쉬의 책들이다. <신과 나눈 교감>이 마지막이 될 줄 알았는데, <신과 집으로>가 출간 되었다하니..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하고 서태지가 솔로를 들고 나왔을 때보다 더 기뻤다. '이제 음악 안 한다더니!'하는 나무람보다 내용이 훨씬 궁금해서 선예약을 해서 샀을 때의 즐거움처럼..
이 책은 기본적으로 죽음을 다루고 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나 주변에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둔 이들에게 큰 선물이 될 것같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 삶역시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더욱 진짜 삶에 더 가깝게 살 수 있단다. 내가 주목하는 부분 역시 그것이다.
우리는 신성의 표현이므로(개별화된 신), 집(신)을 벗어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신과 집으로 돌아간다는 말은 어폐가 있다. 우리는 늘 신과 하나이니까...하지만 그렇게 느낄 수는 있다. 우리는 신성의 표현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고, 그 길에는 더 고된 길과 덜 고된 길들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모든 길을 신으로 통한다. 그걸 막을 방도는 없다. 우리는 덜 고된 길들을 창조할 수 있다. 그 길을 택하기 위해 몰두하는 것만으로도 상황을 쉽게 만들 수있다. 탐구하고, 명상하고, 기도하면 된다.
<신과 나눈 이야기>에 있는대로 우리가 세상에 와서 더 배워야할 것은 없다. 모두 우리의 기억속에 존재한다. 마치 씨앗처럼..씨앗은 그저 나무가 되었을 뿐이다. 뭔가를 더 배운 것은 없다. 물론 주변의 물이나 햇볕의 도움이 있어야 하지만, 자신이 가진 것을 그대로 활용했을 뿐이다. 우리도 나무와 같다.
이 책에는 삶과 죽음 뿐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개념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나와있다. 양자물리학과 관련된 개념들이 삶에서 신에 가기 위한 덜 고된 길을 찾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책에서 가슴 벅찬 한 부분(대부분이 그렇지만..)을 인용하며 끝을 내어 본다.
p. 94 동일한 삶의 도전과제들과 체험들을 몇 번이고 다시 창조하는 것에 '잘못되거나 나쁜' 건 없다. 너희가 같은 도전 과제들을 몇 번이고 다시 직면하고 싶다면, 가서 그렇게 하라. 다른 일들처럼 여기서도 너희는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
다만 알아두어야 할 중요한 사실은, 너희가 이 도전 과제들을 피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너희는 다시 한 번 그것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건 당연히 약간 반복적이고 지겨울 수 있다. 사람들로 하여금 지금의 도전 과제에 그냥 더 이상 직면하고 싶지 않다고 느끼게 만드는 건 자기 혼자만 그 과제에 직면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건 잘못된 생각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한다. 지금 세상에서 외로움은 가장 큰 괴로움이다. 아는 사람 하나 없고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처지에서 느끼는 고립감, 상처, 중압감인 감정적 신체적 영적 외로움은 절망을 불러오는 공식이다.
끝없는 절망에 직면하면 결국 달아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중요해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너희는 달아날 수 없고, 달아나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너희가 피하고자 하는 것을 처음부터 다시 되풀이할 것이다.
내가 지금 여기에 와서 너희에게는 의지할 곳이 있다고, 너희 중 누구도 의지할 곳 없는 이는 없다고 말하는 이유가 이것이고, 너더러 이것을 온 세상에 알리길 부탁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너희가 해야할 일은 단 한가지, 내가 거기에 있으리라는 절대 앎은 가지고 나를 부르는 것, 절대 믿음을 가지고 내게 다시 손을 내미는 것 뿐이다.
p. 96 나는 너희에게 말하고 싶다..... 지금 이 순간, 기적의 가능성을 생각해보라고. 너희가 내게서 해결책을 받는 경험을 하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그 이유가 중요하지 않다. 지금 중요한 건, 너희 코앞에 해결책이 있을 가능성을 너희가 지금 이 순간 생각해보는 것이다. 눈이 열면 보일 것이고, 마음을 열면 알 것이며, 가슴을 열면 그것이 있음을 느낄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절대 앎에서 나를 부르기만 했더라도, 너희는 자신이 자신의 대답을 받았음을 자각했을 것이라고. 왜냐하면 너희 체험 속에서 진실이 되는 건, 너희가 아는 것과 너희가 느끼는 것, 너희가 선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절망 속에서 나를 부를 때, 나는 거기에 있겠지만, 너희의 절망이 너희를 눈멀게 하여 나를 보지 못하게 막을 수 있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행한 어떤 일도 치유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하지 않고, 너희에게 일어난 어떤 일도 치유할 수 없을 만큼 심하게 망가지지 않는다고. 나는 너희를 다시 온전히 만들 수 있고, 그렇게 할 것이다. 하지만 너희는 자신을 심판하길 그만둬야 한다. 자신에게 가장 강력한 심판을 내리는 이가 자신이다. 다른 사람들이 외부에서 안을 들여다보면서 너희를 심판할 수도 있지만, 그들은 너희를 모른다. 그들은 너희를 제대로 보지 못하니, 그들의 심판은 유효하지 않다. 그것들을 너희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그것들을 유효하게 만들지 말라. 그것들은 아무 의미도 없다. 다른 사람들이 너를 있는 그대로 봐주길 기다리지 마라.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고통이라는 눈으로 너를 보리니. 그보다는 내가 지금 너희를 보고 있음을, 경이와 진실의 눈으로 너희를 보고 있음을 알아라. 그리고 내가 보는 너희는 완벽하다는 걸 알아라. 내가 너희를 볼 때, 나는 한 가지 생각만 한다. "이는 내가 지극히 기뻐하며 사랑하는 자라."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신의 왕국에서 굳이 용서가 필요한 건 아니라고. 어떤 식으로도 신을 화나게 하거나 신을 해할 순 없다. 전 우주를 통틀어 중요한 단 한가지 물음은 너희의 죄의식이나 무구함과는 관계가 없다. 그건 너희의 정체성과 관계가 있다. 너희는 자신이 참으로 누구라고 알고 있는가? 너희가 이것을 알 때, 외로움에 관한 모든 생각이 사라질 것이고, 무가치함에 대한 모든 관념이 증발할 것이며, 절망에 대한 모든 숙고가 너희의 삶이자 너희 자신인 기적에 대한 경이로운 자각으로 바뀔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여, 마지막으로 나는 말한다..... 너희는 지금 이 순간 수십만 천사들에 둘러싸여 있다고. 이제 그들의 봉사를 받아들여라. 그러고 나서 그들이 너희에게 준 선물을 남들에게 넘겨줘라. 너희는 주는 것으로 받을 것이고, 치유하는 것으로 치유되리니. 너희가 기다려온 기적이 너희를 기다려왔다. 너희 자신이 남들이 기다리는 기적이 될 때, 너희는 이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가서 너희의 기적을 행하라. 너희의 죽음이 가장 슬픈 선언이 되게 하지 말고, 가장 영광스런 순간이 되게 하라. 죽음을 파괴의 도구가 아니라 창조의 도구로, 물러설 도구가 아니라 앞으로 나갈 도구로 사용하라. 이런 선택을 할 때, 너희는 육신을 가지고 사는 동안에도 삶 자체를 명예롭게 할 것이고, 삶이 너희를너희의 가장 장대한 꿈으로 데려가게 만들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에 너희 영혼에 평화가 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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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3년 연속 베스트셀러!라는 토막글귀에 놀라웠다. 물론, 나와 거리가 멀어서 접해보지 않을뿐더러 관심이 없었다고 봐야 좋을 것 같다.
닐 도날드 월쉬 작가선생님의 신이 전하는 경이로운 메시지에 훑어보게 되었다. 나는 21세기를 바라보고 점점 빨라지는 인류에게 무심코 던지는 신의 메시지에 놀라웠을 따름이다. 삶의 참된 의미를 잘 몰랐던 나로써 한해 한해 나이를 먹음으로써 그의 맞게 조심스럽게 발을 딛고 있으니 말이다. 항상 부족해 나 자신을 반성하는 시간을 찾다가 우연히 이 책을 함 접해보기로 했다. 모든 근원이 자신이라는 것에 고쳐먹음의 발전을 희망으로 용기를 내어 보았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기를 열망하는 사람들에게 크나큰 깨달음으로 온 우주와 하나되는 희열을 느끼게 해주는 책. 우리 삶의 끝이라고 하는 죽음을 신과 이야기 또는 대화형식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책의 내용을 조금은 잘 이해하지 못해서 그냥 읽어내려 갔다. 중간쯤 페이지가 넘겨져 왔을때... 나와 또 다른 세상을 이야기를 나누고 신이라는 존재를 삶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는 글귀에 정말 신이라는 존재가 있을까? 조금은 어렵기까지 느껴졌다.
믿음이라는 신앙을 난 그리 믿지않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종교라는 틀을 언제쯤 벗어났을까? 그리고, 아직까지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그리 와 닿지는 않지만... 좀 더 나이가 들어서 다시금 읽어도 좋을 듯 싶었다.
작년에 자원봉사을 하면서 어르신들의 표정들을 보고 개개인을 알 수 있었다. 죽음을 두려워 지금 현실에 부딪히는 것 조차도 마음이 편치 않으셨다. 나이가 먹음으로써 줄어드는 활동에 식사까지... 꼭 어릴적 아기들을 돌보는 듯 했다. 내가 아직 그 상황을 닥쳐보지 않아서 어르신들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는 못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은 앎을 알아갔다. 천국이라는 곳과 지옥이라는 두 분류가 어르신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어내어 어르신들의 표정에서 느낄수 있었다고 할까?
죽고 난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 법한 두려움으로 인해서 사람들은 영혼이 있다고 느껴지는 듯 싶다. 이 책에 모든 인간이 존재하고 오랜 동안 끊임없이 탐구해온 덕에 신이라는 것을 믿게 만들어주는 힘의 원천이라고 해야 좋을 듯 느껴진다. 질문과 답변으로 짜여져 숨막히는 듯 싶다가 잘 이해하지 못하고... 또 다시 읽다가 이런 신이 전하는 메시지에 조금은 희망이라고 할까. 아님 그냥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낳을법 했다. 현실과 영혼이라는 공간이 똑 같음을 알게 해 주었으니 말이다.
앞으로 죽음을 두려워하기 보다 지금의 처에있는 현실을 즐겁고 신나게 모든 지인들게도 나눔으로써 삶을 바꿀 수 있는 빛을 구하는 그런 날이 오길 갖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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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접한 이 책은 우선 그 아름다운 표지가 눈에 가득 들어왔다. 제목만으론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알 수가 없었던 나...보통 이렇게 표지에서 어느 힌트도 얻지 못하는 경우, 나는 책을 손에 들고 가장 중간부분을 멋대로 펼쳐 내용을 읽어보곤 하는데, 이번에도 역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두꺼운(;) 책을 한 손에 들고 반으로 갈라 펼쳐 보았다.
일단 굉장히 독특한 구성의 책. 펼쳐보았던 그 페이지 뿐만 아니라, 책의 내용 전체가 질문과 대답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치 두 명의 연극 시나리오를 보는 느낌이었달까?
어느정도 관찰을 마친 후 찬찬히 읽어보기 시작한 책.. 처음엔 어색하게만 느껴지던 대화의 형식이 차츰 익숙하게 읽혀갔다. 하지만 종교서적과는 거리가 먼 내가 읽기에 어색했던 부분도 꽤나 많았던 것 같다; 결국 도중에 책을 잠시 덮고 책 설명을 찾아보았더니,이런 구절이 눈에 띄었다.
'저자는 스스로 인생의 낙오자라 절망하고 있던 어느 날 우연히 신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새벽 4시, 테이블에 앉아 신에게 편지라도 쓰듯 푸념을 늘어놓고 있는데, 갑자기 그것이 자기 의지로 쓰는 글이 아닌, 신의 대답을 받아 적는 대화가 되어버린 것이다.'
작가의 이력을 읽어봤더니, 이 저자, 꽤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주인공인듯 했다. 다섯 번의 이혼. 매달 양육비를 보조해줘야 하는 아홉 명의 자녀를 가진 전직 지역 라디오방송 토크쇼 진행자.. 순탄치 않은 자신의 삶에 대해 괴로워하다 급기야는 신이란 존재에게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대단하다고 해야하나...^^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이루어진다. 소멸과 이별, 그리고 죽음... '신'이 아니면 질문할 수 없었을 다방면의 내용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확실하게 알 수가 없었다. 과연 저자는 신에게 자신의 모든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얻은 걸까? 그리고 '죽음'이라는 존재를 과연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현명하단 것일까?
사실, 책을 읽고 난 내 기분은 오히려 더 답답한 느낌도 있었다. 아마 아직까지 이 이야기들을 모두 마음으로 이해하기엔 내가 가진 그릇이 한참 모자라기 때문이겠지...그런 생각이 든다^_^ 언젠가, 내가 조금 더 마음으로 성숙했다고 여겨지는 날이 오면 다시 한번 차분히 읽어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