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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삼국지 5 : 세 번 찾아 공명을 얻다> 이희재 / 휴머니스트 (2016) [My Review MMCCCXXVI / 휴머니스트 54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쉰다섯 번째 리뷰는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떠돌기만 하다 드디어 날개를 달고 훨훨 날게 된 유비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이희재 삼국지 5>다. 조조와 원소의 대격돌, 관도대전이 한창일 때 유비는 흩어졌던 관우, 장비와 해후한 뒤에 '여남'을 중심으로 주변 세력을 규합하게 된다. 조자룡을 비롯해서 주창, 관평, 그리고 유벽 등이 유비와 힘을 합쳐 조조의 뒤통수(허도)를 공격한다. 하지만 조조는 이마저도 단단히 대비를 해놓았고, 명장 조인의 공격에 유벽은 죽고, 유비는 겨우 살아남아 다시 도망길에 오른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바로 유표의 영지인 '형주'다. 과연 형주에서 유비는 어떤 일과 조우하게 될까?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이희재 삼국지 5> 관점 포인트 : 소설의 주인공은 '유비'지만, 역사의 주인공은 '조조'다. 그런 까닭에 소설 <삼국지>의 줄거리는 '조조의 관점'에서 큰 줄기가 흐르고 있음을 파악해야 한다. 유비가 형주에 막 도착했을 때에는 '관도대전'도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 승부도 어느 쪽으로 판가름이 날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누가 승자가 되든, 하북을 다 먹은 승자의 다음 목표는 손권이 다스리는 동오다. 그런데 하북에서 강동까지 곧바로 내려오기에는 버겁다. 더구나 100만 대군을 이끌고 내려갈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육로'보다 수월한 '수로'를 택하는 것이 정석이다. 당시에는 황하와 장강을 잇는 '대운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도대전에서 승리한 조조는 전쟁을 마치고 정비하는 시간 동안에 '형주 공략'에 나섰던 것이다. 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조조의 정비 시간'에 형주에 머물고 있던 유비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비는 가는 곳마다 '원래의 주인'을 파멸시키거나 '한 주인'을 오래 섬긴 적도 없었기에 유표의 아내 채륵과 처남 채모는 유비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반대가 심했고, 심지어 여차하면 죽여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내면서 실제로 죽이려는 모의 또한 수차례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의심 받고 있는 처지에서 유비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었을까? 그저 허송세월 놀고 먹는 일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온 고사성어가 '비육지탄'이 아니겠는가? 그러던 유비에게 '수경선생'이라 불리는 사마휘와 우연히 대면하게 된다. 그리고 수경선생에게서 유비에겐 든든한 팔다리가 되어줄 인재는 많지만, '머리'가 되어줄 책사가 부족하다며 '복룡'과 '봉추' 가운데 한 명만 얻어도 천하를 가질 수 있다는 조언을 듣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조조와 여러 번 싸우면서 느끼는 점이었지만 관우, 장비 같은 '만인지적'의 장수를 두고도 전략에서 밀리고 계략에 빠져서 이렇다할 성과도 얻지 못하고 패배를 하곤 했기 때문이다. 유비는 그 날 이후로 복룡과 봉추를 만나는 기대를 품고 부푼 꿈을 꾸게 된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인연이 바로 '서서'다. 비록 그 인연은 짧았지만 유비에게 아주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조조에겐 곽가와 순욱, 원소에겐 전풍과 저수, 손권에겐 주유와 노숙 등의 책사가 있어 일찍부터 세력을 확장하고 전략과 내정을 두루 살피는 인재를 활용해서 단단히 득을 보았다. 심지어 동탁에겐 이유, 여포에겐 진궁이 있어 화려한 전공을 거두고 일시적이나마 '든든한 뒷배'가 되어 동탁과 여포가 화려한 비상을 하지 않았느냔 말이다. 그런데 유비에겐 이제서야 '서서'라는 날개를 얻고 활기차게 날아오르려 했다. 유비의 기분이 얼마나 째졌을까? 허나 조조의 책사 정욱 때문에 서서는 사기를 당하고 유비의 품을 떠나 조조의 새장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만다. 유비의 상심은 말할 것도 없다. 여기서 그 유명한 '삼고초려' 고사가 등장한다. 정사 <삼국지>에는 고작 딱 한 줄, '유비가 제갈량을 세 번 찾아갔다'는 기록이 전부이지만, 나관중은 딱 이 한 문장을 가지고 세상에서 가장 간절하고 가장 아름다운 '풍경'으로 서술했다. 그리고 유비는 제갈량에게서 '천하삼분지계'라는 지혜를 얻게 된다. 조조가 북쪽을, 손권이 남쪽을, 그리고 유비가 서쪽을 차지하고 '정족지세'를 유지하는 것이 현재 유비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유비는 부풀어오르는 야심을 시작도 하지 못하고 눈물부터 쏟아낸다. 제갈량의 지혜에서 나온 계책이, 유비에게는 형주의 '유표'와 익주의 '유장'이라는 황실사람으로부터 땅을 빼앗으라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이런 유비의 눈물에도 제갈량은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천문지리를 살펴보니 유표의 목숨은 그리 길지 않고, 유장은 백성의 신임을 얻지 못하고 있으니 유비가 굳이 빼앗지 않아도 그 땅이 유비에게 저절로 굴러들어올 것이라며 안심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삼고초려' 직후에 유표의 건강 악화 소식이 전해진다. 그리고 유표는 유비에게 '형주'를 맡아달라 부탁하지만 유비는 감히 받을 수 없다고 단칼에 거절한다. 유표에겐 두 아들이 있고, 유표의 유지는 당연히 두 아들 가운데 한 명이 이어받아야 하기 때문이라면서 말이다. 그러자 유표는 두 아들 가운데 누굴 '후계자'로 삼으면 좋겠냐고 묻는다. 이 역시 장남 유기여야 한다고 단칼에 답한다. 허나 이 얘기를 유표의 아내가 들었고, 처남이 채모가 누이가 낳은 아들인 '유종'을 후계자로 삼기 위해 '유기'를 죽이려 든다. 이에 유기는 유비를 찾고 제갈량에게 지혜를 얻어 '강하'로 몸을 피신하지만, 때마침 조조가 '정비 시간'을 마치고 형주를 집어 삼키기 위해 병력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만약 유비가 유표의 유지를 이어받아 '형주'를 받아 직접 다스렸다면 어땠을까? 물론 유비 홀로 조조의 100만 대군을 상대할 수는 없었겠지만, 제갈량은 손권에게 동맹을 요구하며 함께 싸워 승리했을 것이다. 제갈량의 머릿속에는 이미 조조군을 상대할 대비책이 다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신야와 번성 등이 있는 '장강 이북'은 조조의 수중에 들어갔겠지만, '장강 이남'에 있는 양양과 강릉, 그리고 강하를 거점으로 '수전'에 약한 조조를 충분히 괴롭히며 조조의 100만 대군을 야금야금 깎아먹으며 조조가 제풀에 지치게 만드는 방법을 써서 승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손권도 주유와 황개 등을 앞세워서 남양과 수춘을 공략하며 조조를 충분히 괴롭히고 더 나아가 서주땅까지 빼앗게 된다면 절대 손해보는 일은 없었기에 유비와 동맹을 맺고 열심히 싸웠을 것이다. 그 뒤에 유비는 세력을 정비하고 서쪽의 익주를 다스리는 유장을 대신하여 파촉과 한중까지 아우르게 된다면 '천하삼분지계'는 완성이 되고, 완벽한 '정족지세'를 이루어 한 황실의 부활과 부흥을 장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유비가 '형주'를 마다하는 바람에 일은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비의 장점은 바로 이것이었다. 애초에 가진 것이 없었기에 빈털털이 유비가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장점 '도덕적 우월감' 말이다. 유비는 하는 일마다 '인의'를 앞세웠고 '불의'를 보면 참지 않는 옹고집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런 유비의 장점은 백성들에게 잘 먹혔다. 그래서 유비가 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살기 좋은 세상이 왔다며 좋아했고, 유비를 '성군'으로 높여 부르길 그치질 않았다. 그래서 조조가 유비가 있는 '신야'로 쳐들어왔을 때 신야의 백성들은 조조가 아닌 유비를 따르기로 작정하고, 조조군의 칼날을 피해 신야를 버리고 번성으로 집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는 조조가 도겸에게 복수한다며 '서주대학살'을 벌인 전례가 있었기에 더 확신에 찬 백성들의 행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번성에서 잠시 목숨을 부지한 백성들은 이번에 조조의 대군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에 또다시 유비를 따라 양양으로 떠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대로라면 유비는 조조의 공세를 피할 길이 없고, 유비의 적은 병력으로는 따르는 백성을 모두 살릴 방법도 없다. 그래서 제갈량도 여러 차례 '따르는 백성'을 내버리고 속히 양양으로 가서 '유종'으로부터 양양을 빼앗아 조조의 대군을 상대해야 한다고 진언했다. 그런 와중에도 유비는 백성을 버리지 않았고, 유종에게서 양양을 빼앗는 일은 더더욱 할 수 없다 했다. 왜냐면 이것이 유비에게 유일한 장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게 묘하게도 먹히는 방법이었다. 단, 목숨이 붙어있으면 말이다. 나가는 글 : 제갈량은 속이 타들어갔을 것이다. 주군으로 모신 유비에게 '천하'를 안겨드리겠다는데도, 유비는 이 방법도 싫다, 저 방법도 싫다며 '퇴짜'만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제갈량도 깨달은 바가 있었다. 지금까지 유비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이만큼 '명성'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도덕적 우월감'이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자신도 유비를 따르겠다고 결심한 대목이 바로 유비가 내세운 진심에 '공감'했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다. 그 '도덕적 우월감'을 내세워서 천하를 다스리도록 작전을 변경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조조의 파상 공격에 겨우 몸만 살아남은 유비 세력은 '조조의 다음 목표'인 동오를 구하기 위해서 '동맹 결성'에 올인하게 된다. 제갈량은 '동맹'이란 이름을 빌어서 조조와 손권을 서로 싸우게 만들고, 그 틈을 타서 유비가 형주를 차지하고, 이를 밑천으로 파촉땅까지 접수한 뒤에 천하대권을 차지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 한다. 그 첫걸음은 바로 '적벽대전'이다. 일명 조조와 손권의 힘을 서로 빼고 빼앗기게 만들고 유비는 '어부지리'로 형주도 먹고, 익주도 먹겠다는 작전이었던 것이다. 이 적벽대전도 정사 <삼국지>에는 간략하게 적혀 있다. 조조의 대군이 '풍토병'에 시달리다 손권군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후퇴했다고 말이다. 그 어디에도 '동남풍'이 불고 '화공'으로 수많은 배들이 장강의 물속으로 가라앉고 수십 만의 병사들이 물고기 밥이 되었다는 기록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모두 나관중의 수려한 묘사였던 것이다. 하지만 팩트가 아니라고 '적벽대전'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독자들은 제갈량과 주유의 지략 싸움에 흥미를 느끼며 '전쟁'이라는 참극 속에서 서로 속고 속이는 흥미진진한 대결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두고 '중국인들의 허언증'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는 비판을 넘어 비난거리를 제공하는 면도 없지 않지만, 소설 <삼국지>를 읽으면서 이 대목이 재미없고, 내용과 결말이 뻔해서 진부하다는 독자는 찾기 힘들다. 심지어 소설 <삼국지>를 읽고 난 뒤에 정사 <삼국지>를 읽으면 머릿속에서 다채롭고 수려한 서사가 펼쳐지기 때문에 그 힘든 '완독'을 해내는 원동력을 얻기도 한다. 이게 소설이 가진 진정한 힘이기도 하다. 허구로 쓰여진 글에 불과하지만 '상상력'에 날개를 달게 해주고, '지혜'를 외우는 것이 아닌 깨달아서 써먹을 수 있게 해주는 등 온갖 '마법'을 부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21세기에도 '고전소설'을 읽고, 감동을 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다음에 계속. #리뷰 #에세이 #이희재삼국지 #휴머니스트 #삼고초려 #적벽대전 #제갈량 #책이있는구석방 #추천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