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의 약력은 특이합니다 폴란드 출생에서 미국의 심장부로 진입한 전략가이자 행정가였읍니다 이책에서는 세분의 대통령에 대한 치부사항을 노정시켜 앞으로 미국대통령은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에 대해서 훈수를 하고 있읍니다
세분의 대통령에 대한 약술해 보면
1.아버지 부시(부시1세):전통적인 안정을 보존하기 위해 힘과 정통성에 의지한 경찰관 2.클린터:진보를 가능하게 세계화에 의지했던 사회복지의 옹호자 3.아들부시(부시2세):악의 세력에 대항하는 자기 선언적 성격의 실존적 투쟁을 추구하기 위해 국내적인 공포를 동원한 자경단으로 묘사함
위와같은 과오를 발판삼아 차기의 대통령에게 두번째의 기회를 이용해야만 된다고 역설하고 있읍니다 이런 근거로 미국은 현재 어느 국가보다도 잠재력 즉 - 군사적 영향력에 대한 독점적 지위 - 전대미문의 경제력 소유 - 기술적인 혁신력 - 그리고 전세계적인 정치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
지정학적 전술가답게 책을 읽는중에 인상깊은 구절을 보면
1.안정적인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는 점진적으로 육성되고,내부로부터 촉진되어야 한다
2.민주주의는 역사적으로 볼때, 처음에는 경제적인 영역에서 시작해서 정치적인 영역으로, 처음에는 일부 특권층에서 시작해서 한층 넓은 층에까지 확대된 인권신장의 장기적인 과정을 통해 등장했다
3.아놀드 토인비는 그의 고전적 연구에서 제국들의 몰락은 궁극적으로 그들 지도자들에 의한 자살적 국가 통치술에 기인한다고 주장했다
3.부시(아들 부시)는 그 자신을 전시 대통령으로 자칭하고 자임했다 공중의 불안에 대한 공식적인 부추김은 묵시록적 대참사의 예언을 불러내는 거대한 테러 전문가 그룹을 양산했다
4.클라우제비츠의 유명한 격언,"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다".
5.인간의 행동범위는 그 자신의 이해 범위를 뛰어넘게 마련이다 그렇지 않다면 신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6.중국인들은 인내심이 강하면서도 타산적이다.
|
|
조지 H. W 부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소련이 무너진 후 미국을 이끈 대통령들이다. 이들에게 점수를 매긴다면 얼마나 받을까? 조지 H. W. 부시는 'B,' 빌 클린턴은 'C'쯤 된다. 그럼 조지 W. 부시는 'F'다. 너무 가혹한 점수라고 생각하는가? 그럼 미국 원로 외교 전략가이자 <거대한 체스판> <제국의 선택>의 저자 Z.브레진스키가 쓴 <미국의 마지막 기회>(Second Chance)로 들어가보자.
Z. 브레진스키는 지미 카터 정부 때 국가안보 보좌관을 역임하면서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을 비밀리에 지원했다. 이 지원은 소련을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덫에 걸리게 하였고, 결국 소련제국 몰락을 이끌게 된다.
브레진스키는 <미국의 마지막 기회>에서 소련제국 몰락 이후 미국은 글로벌 리더가 되었지만 기회로 삼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이 뽑았던 세명의 대통령들이 제국을 위기로 몰았다고 지적한다.
글로벌 리더 1세인 부시 1세 시대를 "원죄, 그리고 전통적 상상의 함정"으로 평가했다. 부시 1세는 탁월한 외교간으로 소련 제국 몰락 이후 위기 관리는 잘했지만 냉전 종언과 함께 전 세계는 야심차고, 좀더 적극적이며, 좀더 비전에 가득 찬 갈망을 원했지만 글로벌 리더로서 그는 미래를 주조할 수 있는 기회를 이용하지 않았고, 방향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브레진스키는 비판했다.
글로벌 리더 2세 빌 클린턴 시대는 "선량한 무능, 그리고 방종의 대가"라고 평가했다. 클린턴은 부시 1세와는 달리 전 지구적인 비전을 가졌고, 미래지향적이었지만 제국 미국이라는 거대한 힘을 행사함에 있어 전략적 일관성을 잃어버림으로써 결국 거대한 역사적 흔적을 세계에 남기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글로벌 리더 3세인 부시 2세는 "파국적 리더십, 그리고 공포에 기댄 정치" 시대로 평가하면서 강력한 직관을 지니고 있었지만, 역사적 순간을 오해했고, 단 5년 만에 미국의 지정학적 위상을 위험스럽게 훼손했고, 경멸의 대상으로까지 만들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다행인 것은 미국 대통령 임기가 8년으로 제한 되었다는 점이다.
원죄와 선량한 무능, 파국적 리더십으로 세명의 리더들은 첫 번째 기회를 살리지 못했지만 미국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두 번째 기회는 마지막 기회다. 마지막 기회를 살리는 대안을 브레진스키는 영민한 글로벌 리더가 등장함으로써 마지막 기회를 살릴 수 있다고 보았다. 영민한 글로벌 리더는 공화당이 아니라 민주당에서 나온다고 보았다.
저자가 <마지막 기회>를 쓴 때가 2007년 초였다. 영민한 글로벌 리더는 누구였을까? 브렌진스키는 힐러리 클린턴이 아니라 오바마로 판단했고, 그를 지지했으며 바람대로 오바마가 당선되었다. 이 영민한 지도자가 해야 할 일은 아직까지 미국에 대해 남아 있는 선의를 활용해야 한다.
"세계 대부분이 아직도 전 지구적으로 지도적 위치에 있기를 기대하는 미국의 모습은, 자신의 책임감을 인식하고, 대통령의 수사가 신중하며, 인류가 가진 생활 조건의 복잡성에 대해 민감하고, 대외적인 관계에서 마찰을 일으키기보다는 합의를 추구하는 모습이다."(222쪽)
결국 미국이 마지막 기회를 살릴 수 있는 길은 "우리는 이제 제국이고, 우리가 행동할 때,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현실을 창조한다"는 일방주의가 아니라 미국과 유럽이 중심이 된 '대서양공동체'를 확립해야 한다고 브레진스키는 지적한다.
또 대서양 공동체를 넘어 비서구 국가인 일본과 한국까지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기 이유는 이렇다.
"선진적이고 민주적인 비유럽 국가들을 선별해 전 지구적 사안에 긴밀하게 협조하도록 끌어들임으로써, 중용과 부, 민주주의를 갖춘 지배적 핵심세력은 건설적인 세계적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투사할 수 있다."(243쪽)
이렇게 하지 못하면 미국은 탈제국주의 시대 상황 속에서 오만하게 제국적 것으로 보편적으로 간주되고, 탈식민주의 시대에 식민주의라는 진창에 빠지면서 초강대국 미국의 위기는 구제 불능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라 브레진스키는 단언한다.
하지만 브레진스키는 포기하지 않는다. 미국은 "강대국의 힘은 만약 그 강대국이 이상을 위해 일하기를 멈춘다면 쇠약해질 것이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미국의 힘을 정치적으로 각성된 인류의 열망과 명백하게 연관 짓는 차기 대통령이 선출된다면 미국은 아직도 그것을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과연 브레진스키 바람과 예언대로 미국은 마지막 기회를 살릴 수 있을까?
|
|
쉽게 말해서, 2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는 두 개의 체제로 구성되어 있었고(이것도 논쟁의 여지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 두 개의 체제 중 하나의 체제는 미국(그리고 그 주변국들)에 의해서 동유럽의 몰락과 소련의 붕괴로 패배를 하게 되었고, 이것은 결과적으로 미국의 승리이고 자본주의의 승리라고 말하게 되었고 그 말을 믿게 되었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의 과정과 그 과정과 결론 속에 수많은 내용들을 담아내고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런 고리타분하고 복잡한 얘기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실질적으로도 미국은 그 이후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국가가 되었기 때문에 이런 이견에 대해서 큰 반박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의 승리로 그리고 자본주의의 승리로 끝을 맺으리라 생각되었던 세계는 보다 더 급격한 변화를 그리고 불안정을 보여주게 되었고, 그 급변과 불안정 속에서 초강대국이었던 미국의 위상은 점점 더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브레진스키의 물음은 여기서 시작되고 있고, 그의 물음은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게 된 이후에 집권했던 세명의 지도자에 대한 철저한 검토를 통해서 그들이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지, 어떤 것이 부족했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논하게 된다. 브레진스키는 타고난 전략가이고, 그는 주어진 조건 속에서 어떤 선택이 가장 이득을 줄 수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의견에는 냉정함과 함께 치밀한 계산이 담겨져 있다. 그의 평가로는 아버지 부시를 시작으로 해서 클린턴, 그리고 아들(이자 얼간이) 부시의 순으로 집권자로서 시대와 세계에 대한 리더로서의 적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하고 있고, 그 근거를 다양한 자료를 토대로 제시하고 있다. ‘거대한 체스판’으로 그의 분석을 접하게 되었고, 그의 분석이 갖고 있는 명료함과 치밀함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그의 신작에도 당연히 관심을 갖게 되었고, 뒤늦게 읽기는 했지만 아주 늦은 것 같지는 않은 것 같다. 그는 이번에도 여전히 말을 돌리거나 애매하게 표현하지 않고, 현재 상황에 대한 단호한 평가와 함께 그동안 무엇이 부족했고, 필요한지를 말하고 있다. 그는 아버지 부시에 대해서는 뛰어난 공로를 인정하면서도 그의 아쉬웠던 부분에 대해서 매우 애석하게 생각하고 있고, 클린턴에 대해서는 신랄하게 비판을 하고 있다. 물론, 아들 부시에 대해서는 칭찬할 부분을 찾을 수도 없기 때문인지 담담하게 그가 어떻게 모든 것을 망치게 되었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망칠 수도 없다는 식의 무표정한 담담함으로 느껴진다. 브레진스키는 이전 ‘거대한 체스판’과 같은 저작에서는 당시의 정세를 분석하고 그 정세분석과 향후의 방향에 대해서 모색함으로써 어떤 선택이 필요한지를 들려주었다면, 이번 ‘미국의...’는 기존의 그의 분석방식에서 ‘지도자(그리고 리더십)’에 대한 중요성을 보다 더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 특색인 것 같다. 그가 점점 더 마키아벨리처럼 되어가는 것 같지만 생각해보면 이미 그는 마키아벨리였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어쨌든 그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제도’가 갖고 있는 장점과 단점이 결국 지도자가 어떤 운용을 보여주느냐에 따라서(혹은 어떤 파트너들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큰 변화를 보이게 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이들과 큰 특이점을 보이는 것 같다. 이제는 시스템이 모든 것을 장악했기 때문에 개인의 능력으로는 어떤 변화도 모색할 수 없다는 관점이 우세한 상황에서 그는 조금은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고, 어쩐지 그의 생각에 조금은 흥미를 느끼게 된다. 그는 현재의 가장 핵심적인 사안들을 서술하면서 그 사안들이 어떻게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동유럽의 붕괴와 소련의 몰락이 어떠한 급격한 변화를 보이게 되었는지 말하며 그 이후의 세계의 모습과 세명의 지도자로 인해서 그 세계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분석하며 앞으로 어떤 부분에 대해서 모색을 해야 하고 미국이 세계를 이끌어야 하는지 들려주고 있다. 그는 기본적으로 미국이 여전히 세계를 이끌어야 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생각을 바꾸지는 않고 있다. 그리고 그 시각으로 어떻게 미국이 지도국(또는 지도자)으로서의 모습과 본보기 그리고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들려주고 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 그는 보다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도 하고 있다. 약간은 의외의 해결책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예상을 할 수 있는 해결방안이었기 때문에 지금의 지도자(오바마)는 그의 생각에 대해서 어떤 의견을 갖고 있을지 궁금하게 생각한다. 전혀 모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브레진스키의 민주당에서의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물론, 세상은 그렇게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과는 다르게 움직여지게 마련이고, 그의 분석에도 어느 정도의 한계 또는 그릇된 판단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전에 보여주었던 분석과 제시들이 갖고 있었던 철저한 현실적인 판단이라는 점에서 그의 의견은 여전히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 같다. 그는 기본적으로는 하나의 공통된 규범과 국가들 간의 그리고 사회 간의 유기성을 강조하고 있고, 이를 위해서 미국이 보다 선도적이고 모범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절제와 온정(희생)’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브레진스키의 시각을 갖고도 다양한 분석 또는 해석을 할 수 있기는 하겠지만 그런 장황스러운 분석을 하기 이전에 그가 갖고 있는 치밀한 현실감각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미국 국내의 문제들에 대해서 그는 세밀하게 다루지 않고 있고, 굵직한 문제점을 간단히 거론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고,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경제적인 문제와 불평등에 관해서도 특별히 의식하고 있지는 않고 있다. 그는 전략가이고, 정치에 대해서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혹은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무지하기 때문에 아예 끼어들 생각을 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단점들을 찾아내기 보다는 그의 시각 자체를 받아들이며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그는 여전히 말끔하고 군더더기 없이 현실을 파악하고(그는 말 그대로 그냥 그대로 이 시궁창과 같은 현실을 바라보라고 말하고 있다) 그 파악한 결론에 따라 앞으로 어떤 선택을 혹은 모습을 보여야 할지를 말해주고 있다. 이제 미국의 헤게모니가 많이 위축되었고, 이전에 갖고 있었던 이점들이 약해진 상황에서 그는 이 기회가 마지막 기회일 것이라는 생각은 아마도 대부분 인정할 것이다. 그리고 이에 따른 미국의 선택이 어떤 선택을 보일지 혹은 그들이 자신들의 지도자에게서 무엇을 얻어내려고 하고 있는지는 현재진행형이다. 이에 따라 당연히 모든 것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 방향에 따라 모든 국가들은 또다른 움직임을 보일 것이다. 참고 : 그는 ‘거대한 체스판’에 비해서는 보다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한반도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크게 관심을 갖게 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그가 햇볕정책에 대해서 조금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인데, 아마도 그는 기본적으로 국가 간의 합의에 의거해서 그리고 상황에 따라 그에 맞는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는 점에서 햇볕정책이 갖고 있는 독자적인 움직임에 비판적이며, 일관성은 있지만 그런 일관성은 좋지 않기만 할 뿐이라는 생각으로 바라본 것 같다. 이에 대해서 반론 또한 가능하겠지만 그건 아마도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바라보는 것과 실제 당자로서 바라보는 것의 차이일 것 같다. 혹은 손해와 이득으로서 바라보는 사람이거나 하나의 ‘민족’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보는 사람의 차이일 것이다. |
|
이책의 저자 브레진스키는 카터 행정부에서 외교정책을 담당한 이후 학계에서 활동하면서 미국의 외교정책에 관한 저서를 여러권 냈고 그 분야의 권위자로 인식된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이책은 이전의 저서와 마찬가지로 냉전 이후 미국의 외교정책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전의 저서가 방향을 제시하는데 치중했다면 이책은 냉전 이후 아버지 부시와 클린턴, 아들 부시의 3명의 대통령을 거치면서 세계공동체에서 미국의 리더십이 어떻게 망가졌는가를 회고하는데 치중하고 있다. 이책에서 저자가 회고하는 20년은 위기라는 말로 요약된다. 냉전 이후 미국은 유일한 초강대국으로서 하나가 된 세계를 리드할 유일한 국가였다. 어떤 국가도 미국만큼 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더 중요한 것은 세계를 리드할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막강한 실력과 의지를 가진 미국은 냉전 시절 동맹국들을 이끌면서 세계를 운영했던 것처럼 이후의 세계를 리드할 것으로 기대되었고 미국 자신도 그럴 의지가 있었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미국은 그 기회를 망쳤을 뿐이라고 결론내린다. 이러한 평가는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대다수 전문가들의 공통 의견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그 원인을 기술하는데 이책은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한다. 중국과 UN 대사를 지냈고 CIA국장을 지냈으며 레이건 시절 외교정책에 관여한 경력이 있었던 부시는 냉전 이후 세계를 관리할 적임자였다. 그리고 그는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아버지 부시는 소련의 갑작스런 붕괴로 세계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을 능숙하고 신중하게 관리해냈다. 그리고 냉전 이후의 신세계질서에 대한 첫 도전이었던 걸프전을 성공적으로 치뤄냈다. 대단한 업적이다. 그러나 저자는 부시가 연이어 터져나오는 사건들에 휘말려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일에 치여 거기에 매몰되었다고 진단한다. 부시 행정부가 했어야 할 일은 냉전이 시작될 때 트루먼 행정부가 했던 것처럼 세계를 어떻게 재편할 것인가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셜 플랜과 같은 전략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부시의 외교정책은 사건은 능숙하게 처리햇지만 전체적으로 세계질서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내용의 부재는 클린턴에 이어지면서 미국의 리더십을 약화시켰다고 저자는 말한다. 부시가 재선되었다면 비전을 만드는데 착수했을 것이고 성공했을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그러나 비전의 부재에 따른 결과는 그의 후임자들을 두고 두고 괴롭히게 되었다고 말한다. 비전의 부재는 걸프전을 엉성하게 끝내게 해 이라크전쟁이란 쓸데 없는 전쟁의 원인을 제공했고 보스니아 사태나 소말리아 사태와 같은 문제를 무시하게 하면서 세계질서를 불안정하게 하는데 기여했다고 본다. 그러한 문제는 외교학 학사이면서도 외교에는 무관심했던 클린턴에 의해 방치되었다. 그가 관심이 있었던 것은 그의 선거구호였던 '바보야 경제가 문제야'처럼 경제일 뿐이었고 그의 외교정책은 세계화 한 단어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클린턴이 외교를 안한 것은 아니다. 보스니아 사태를 마무리 지었고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려 진심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그의 동기와 정책은 미국의 국내정치에 끌려다녔을 뿐이며 세계질서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비전에 관해서는 더더욱 한 것이 없었다. 그런 문제는 아들 부시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특히 저자가 '글로벌 발칸'이라 부르는 중동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로 물려지면서 9.11 사태가 일어났고 그 재앙은 부시가 미국의 지위를 완전히 말아먹도록 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아버지 부시와 클린턴은 냉전 시절의 유산인 대서양 공동체를 존중했다. 미국은 대서양 공동체를 이끌면서 냉전을 승리로 이끈 것이었고 대서양 공동체가 실질적으로 세계에 질서를 잡았던 것이다. 냉전 이후의 세계에서도 질서를 잡아줄 무게의 추는 대서양 공동체에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 부시와 클린턴은 대서양 공동체를 실체로 인정했고 공동체 내의 국가들을 존중하고 합의를 존중했다. 그러나 아들 부시는 네오콘의 근본주의에 휘둘려 미국을 제국으로 착각했다. 그리고 말을 함부로 하면서 일방주의적으로 행동했다. 그 결과 대서양 공동체는 심각하게 홰손되었다. 이상은 이 시기를 다루는 다른 책들과 그리 다르지 않은 부분이다. 이책이 다른 부분은 결론에 해당하는 마지막 챕터이다. 마지막 챕터에서 저자는 레이몽 아롱의 말을 결론으로 제시한다. "강대국의 힘은 그 강대국이 이상을 위해 일하기를 멈춘다면 쇠약해질 것이다." 하나로 묶인 세계에 질서를 줄 수 있는 능력은 미국 밖에 없다. 미국의 리더십이 망가졌다지만 아직도 미국외에 리더십을 발휘할 국가는 없다. 문제는 힘으로 리더십이 발휘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냉전 시절처럼 냉전 이후에도 미국의 리더십이 의지할 기초는 이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 내용은 냉전 시절의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것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그 이름을 '인류의 존엄성'이란 말로 표현하고 있다. 이상이 이책의 내용이다. 전체적으로 이책은 특출나지는 않다. 냉전 이후 외교사를 정리하는 부분은 나름 요점을 잘 정리하고 있지만 다른 책들보다 더 뛰어나지는 않다. 그렇다고 결론에서 제시하는 전망이 구체적으로 이미지가 그려지는 것도 아니다. 실질적으로 이책의 알맹이는 결론부분이 될 것이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세계정세를 잘 요약하고 있고 그 정세에 따라 미국의 정책이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를 잘 정리하고 잇으며 그 정책의 기초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도 제시한다. 전체적으로 이책의 뼈대는 요령있게 잘 만들어져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문제는 뼈대에 붙이는 살이다. 외교사를 정리하는 부분은 적은 분량에 그림을 잘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결론은 그리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을 것같다. 그러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일에 대한 글로서는 이책 이상을 기대하기도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