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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 매일 탑골 공원을 출근하던 때가 있다. 나는 멀쩡했지만 요쿠르트도 받아 마셔 봤고, 장기 두는 곳에 얼씬거리다가 지팽이로 맞을 뻔한 적도 있던 바로 그 시절이다. 다소 도발적이지만 내 질문의 요지는 항상 이랬다. "어떻게 살아 오셨어요?"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제각각이었지만 허리 부분엔 항상 빠지지 않는 스토리가 있었다. 수만번의 배고픔과 또 그것보다 약간 모자란 수의 극복기. 이것을 녹음하고 있노라면 결국 항상 근처의 2000원짜리 국밥집에 모시고 갈 수밖에 없었다. 아, 그 절대 빈곤의 흔적이라니.
90년대말의 짧은 외환위기를 제외하곤, 이렇게 정말 리얼이라 소름 돋는 경제 한파의 경험은 우리 젊은이들에겐 충격이었다. 언제부턴가 내 주변의 모든 공동체,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경제 공동체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흔들림은 내 삶으로 고스란히 전달되어 어지러운 멀미와 차가운 가슴을 요구한다. 아무런 준비 없던 몇몇 사람들은 끝내 이 세상의 모든 곳에서 절대적인 방식으로 작별을 고하기까지 했다. 기실 살림의 경제학이라는 말의 당위성은 우리 현실이 명징하게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강수돌 교수에 의하면 성장이란 자본을 신봉하는 소수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노동을 제공하는 대다수의 필요에서 벗어나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희생하고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유해한 부의 개념이다. 그 추동력은 역설적으로 희생당하는 바로 그들로부터 비롯되고 있으니 그 구조의 해체는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자본에게 뿐만 아니라 노동에게도 통하지 않는다. 대안으로 그려내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희망을 얼마나 관심있게 현실화 할 수 있을까 싶은 것이다. 당장 이 모든 주장에 줄을 그어 가면 읽고 있는 나조차도 실제로 행동하기 위해선 햄릿이 될 수밖에 없음에 말이다.
소위 '막장 드라마'가 모든 구체적 개연성은 제거한 채 심리적 환기에만 몰두하는 경향처럼, 경제적 자유라 불리는 그것도 결국 불확실성을 두려워한 우리의 심리적 불안과 끝없는 축적 욕망에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왜 그런 생각하며 사냐는 강수돌 교수의 답답함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느껴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지언정... 자꾸 이런 접속사만 떠오르며 잠들던 나는 다음날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 옷을 챙겨 입고 주린 배를 쥔 채 만원버스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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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학기 증후군에 허덕이던 나는 학부모총회가 있던 날 드디어 탈진의 고비를 맞게 되었다.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야 하는가, 허무해지기 시작했다. 돈? 즐거움? 보람? 뿌듯함? 금방 대답을 찾기는 어려웠다. 내 힘듦은 아랑곳하지 않고 주변에서는 더 더 열심히 살라고 채찍질하고만 있다. 2009년의 목표였던 '여유'는 몸에 있어서도 마음에 있어서도 온데간데 없고 정신차려보니 토요일 저녁 6시까지 퇴근을 못한채 학교에서 뭉기적거리고 있었다.
살림이라는 단어를 접한 순간 '살림살이'가 떠올랐다. 살림이라는 말 자체가 한집안을 이루어 살아가는 일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단다. 결국 살림살이는 '사는 것'에 도움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살림의 경제학은 우리가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경제학이다.
'지속 가능한 생산'은 없다. 하다못해 땅에 과수를 심어도 몇년이 지나면 토양에서 영양분이 다 빠져나가버려 질이 나쁜 흙이 된다. 근대 이후 근면 성실만을 강조하며 노동자에게 했던 채찍질은 지금 경제 불황과 환경 오염이라는 결과로 돌아왔다. 우리는 충분히 노동을 신성시해왔다. 이제는 조금 게을러질 필요도 있지 않을까? "88만원세대"에서 개미핥기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과 사다리의 맨 위로 올라가기 위해 경쟁하는 사람들은 결국 동일한 사람들일 것이다. 지난주 '한겨레21'에서 삼성그룹 경영 승계 상황을 읽으면서 우리 노동자들은 개미핥기에 잡혀먹고 사다리 아래에서 머리를 밟히며 재벌 기업의 배를 불려주는 존재 밖에 더 무엇이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중앙일보가 싫고 대기업 방송 장악에 반대하고 그룹의 독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 나지만 핸드폰도 mp3도 대기업 제품을 사용한다. 그래서 덩치큰 것들만 살아남는 이 시대에 강수돌교수가 이야기하는 '다품종 소량생산'의 방법들이 현실성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를 깎아먹으며 이용만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살림의 경제학에 대해 꼭 공부하고 고찰해볼만한 것 같다. 경제학이라는 단어에 위축되어서인지 쉽게 읽히지만은 않았다. 여유가 있을 때 다시 숙독해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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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놓은 작금의 상황에 대하여 분명 이대로는 안된다는 의견을 갖고 있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는 당연히 다를것이다. 강수돌 교수님 역시 그러한 많은 분들 중 한명일 것이다. 경제학자가 바라보는 신자유주의(물론 그 안에서도 하이에크이냐..케인즈이냐에 따라서도 다를것이고), 사회학을 보는이도 다를것이고, 교육자의 입장에서도 다를 것이고, 정치인의 입장에서도 다 다를 것이다. 나처럼 부분만 아는 사람들도 다르게 생각할 것이란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문제를 진단하는 기본적인 전제에는 동의하지만 그 전개방식에 있어서는 불편함을 다소 느낄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너무 한쪽면만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에 반대의견까지는 아니더라도 시각의 보편성을 담아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이 든다. 학교가 노동력을 길러낸다고 하는 것, 일상의 노동을 돈벌이로만 보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화 시키고, 교육철학이나 노동철학적인 측면에서 봐야할 것들도 신자유주의 입장에서 몰아가기 때문에 도대체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리처드 코치가 20대 80의 법칙이라는 책을 내어 놓았을 때에는 분명 그 근거와 자료를 제시한 후에 그러한 결론을 제시하였다. 세계화의 덫이라는 책에서도 20대 80의 사회라고 하였을 때, 그 근거를 제시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 말을 별다른 근거없이 자주 인용하고 있어서 사실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 세상사람이 별다른 근거 없이도 그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의 행복, 개개인의 행복을 20대 80으로 나누어 이야기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신성한 노동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돈벌이라는 것을 목적화 시켜 써놓은 글들을 볼 때마다 돈벌이가 수단일수도 있다는 측면은 보지 않으려고 한 것 같다.
유시민이 근간에 썼던 '후불제 민주주의'라는 책에서는 행복이나 돈벌이에 대하여 지극히 공감을 갈 수 있도록 쓰고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개개인의 다양성을 충분히 그가 제시를 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리고 결정적으로 불가피한 현실이라는 것도 있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것은 그 책을 보시길)..
이 책은 같은 말들이 너무도 다르게 반복이 많이 되어 있다. 때문에 학교 문제를 다루다가, FTA를 다루다가 군대문제를 이야기하다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이윤이야기를 다루다가 한다. 하지만 작가의 표현을 그대로 빌려 말하자만 그 모든 것의 이유는 사람들이 돈중독 소비중독에 걸려 자본주의가 떨어뜨린 떡고물이나 먹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책에서 그러한 표현들이 사실 맘에 들지 않았다. 차라리 대기업과 기업친화적 정치현실이 노동자들의 임금을 내리고 하는 식이었다면 나았을테지만 현실에서 변화되어야 할 부분들은 결국 나로부터의 시작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귀착하게 된다.
개인의 변화가 분명 사회전체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분명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에 대한 진단에 맞는 처방이 대증적인 요법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많은 케인즈주의 학파들에게나 금융자본주의 위기에 대처하는 그러한 방법은 아니엇을 것이다.
나는 차라리 교수님이 자연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를 그냥 써내려가줬다면 차라리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자꾸 딴지만 거는 것 같아서 죄송하기도 하지만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처는 근본적으로 신자유주의가 이끌어온 지난세기를 돌아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물론 교수님이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가 결합된 이러한 신자유주의,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정부조차 막을 수 없었던 자유시장앞에 지금 이 세계는 다시금 다른 대안을 찾아 가고 있다.
삶의 철학으로서 그리고 나로부터의 혁명이라는 관점에서 자연을 생각하고 삶을 돌아보는 것은 분명 누군가에는 아름다운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싶어도 살지못하는 것은 돈벌이나 복지혜택만 받으면 된다는 내면화된 의식 때문이 아니라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인 것이다. 삶의 의미나 목표, 가치를 불특정다수를 지칭하는 듯이 그렇게 돈의 노예라고 말을 할 수는 없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자본주의 체제가 문제인지, 신자유주의 사상이 문제인지.. 그러한 관점에서 봐야하는데 사람들의 삶이 그렇다는 식으로 하는 것은 뭔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교수님이 말하는 너도 살고 나도 사는 살림의 경제, 자연주의 경제가 멋진 삶은 될 수 있고, 공동체적 삶을 부를 수 도 있지만, 지식기반 사회 자체가 가진 또하나의 미래에 대한 것과는 다른 접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바라보는 시각이 그러했다. 인간의 발달과정상의 문제, 한 개인이 삶의 끝자락에서 삶의 과정을 돌아보면서 성찰하면서 깨달을 수 있는 문제 역시 신자유주의가 모든 인간의 삶을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게 만들었다고 말하는건 지나진 일반화라는 것이다. 한개인 한개인을 기계의 톱니바퀴로 매도하고 워킹맘과 여성의 노동을 구분하지 않는것, 가사노동과 일은 자본주의시대의 문제이기 이전에 가부장제 사회의 문제가 아닌가 하는 것들이 그러한 예였다.
이 책의 89페이지를 보면 사회전체적으로 살림의 경제를 구축하기 위하여 크게 세가지를 말하는데 첫번째가 각 나라마다 삶의 자립성, 자율성, 자치성이 회복되어야 한다..하고 그냥 끝이다. 말그대로 이건 당위적인 슬로건으로만 느껴져서 구체적으로 자립성이, 자치성이, 자율성이 없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이걸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무튼 나로서는 읽으면서 사람은 보고자 하는 것만 보기 때문에 그래서 모든 원인도 다 그렇게 본다면 그렇게 보일수밖에 없는 그런 느낌이 많이 들었다.
리뷰어클럽에 가입했다가 오렌지회원이 될수는 없었기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아마 그것이 아니었더라면 차라리 쓰지 않았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이건 내생각이라서 괜히 꼬투리 잡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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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의 경제학. 강수돌 지음. 인물과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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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4.오늘날 경제는 삶의 주체들이 돈벌이 도구로 객체화, 대상화되고 마는 '파괴의 경제'이며 '죽임의 경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삶의 주체들이 객체화가 어떻게 해서 파괴와 죽임의 경제를 낳는 걸까? ....자본과 국가에 의한 '물리적 폭력'을 통해 이뤄지지만 시간이 갈수록 '물질적 보상'을 통해 신사적 모습을 띠고, 마침내 달콤한 보상의 맛에 길들여진 사회 구성원들이 '자발적 수용'을 하면서 더욱 공고해진다.
지금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했지만 '돈은 많이 벌면 장땡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많이 벌어야 먹고 싶은 것도 많이 먹고, 책도 많이 사고, 넓은 집에서 살수도 있고 여행도 많이 다닐 거라고. 소유에 집착하면 재화를 보관할 넓은 집이 필요할 거고 넓은 집을 장만하면 그에 걸맞은 구색을 갖추기 위한 지출이 필요하다. 그러다가 다시 집이 좁아 보이면 더 넓은 집으로 가고, 그 집에 맞는 구색을 다시 갖추려고 지출을 하고. 그런데 그 끝은 어디지? 개인만 그런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지금도 이야기한다. 소득 3만불 시대를 향해 나아가야한다고. 대기업이 세계 초일류상품을 개발해서 수출해야하고 외화를 많이 벌어야 국민들이 다 같이 잘 살수 있다고. 당장은 힘들지만 조금만 더 허리띠 졸라매고 노력하면 모두가 풍족하게 살 수 있는 시대가 온다고. 1960년대도 이렇게 이야기했고, 1980년대도 이렇게 이야기 했다. 2000년대도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 결과는? 부자와 가난한 자의 간격만 더 크게 벌려 놓았다. 물론 전체적으로 경제 사정은 많이 나아졌다. 그렇지만 분배보다 효율을 강조하다보니 빈부 격차는 점점 심해져간다. 파이를 키워야 나눠 먹을 것이 커진다고 했는데 과거에 조금 적게, 조금 많이 나눠먹던 파이를 지금은 소수가 대부분을 차지해버리고 다수가 파이의 작은 부분을 나눠야 한다. 물론 과거에 비해 내가 먹을 수 있는 파이가 커지긴 했다. 그렇지만 가슴 허한 이 상대적 박탈감은 어찌하라고?
일본사람들은 아이에게 '남에게 피해주지 마라'라고 가르치고 우리 나라는 아이에게 '남보다 더 잘 해라'고 가르친다. 남을 딪고 올라서야 내가 먹을 수 있는 파이가 커진다고 아주 어릴 때 부터 훈련을 시킨다. 아주 체계적으로. 조금 덜 노력한 사람은, 가진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많이 부족해도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세뇌를 시킨다. 사람은 더 이상 궁극적 가치가 아니다. 무한 경쟁에 내몰린 객체요 도구일 뿐이다.
[밸런스 : 일과 인생의 균형잡기]를 쓴 R. 빅스는 이렇게 말한다 "재산, 은행 예금, 직업적 성공,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시간 등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좋아한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이러한 것들이 내 삶의 중심이 되었을 때, 내 기력은 이미 완전히 바닥나 있었다. 나는 다 타버려 재밖에 남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재만 남은 삶' 이 아니라 '가치로운 삶'을 살기 위해 참된 사회적, 개인적 실천을 해야한다. 죽어라 일 안 해도 여유를 가지면서 생활이 가능한 사회를 위한 사회적 실천이 필요하다. 좀 더 나은 능력이나 기회를 가졌다고 능력 이상의 것을 소유하는 것이 당연시 되는 사회라면 희망이 없다. 정규직은 500만원 가져가고 비정규직은 150만원 가져가는 사회가 아니라 아주 많이 더 가진 자도 없고 아주 부족한 자도 없는 사회가 희망이다. 미국의 기업가와 일반 노동자의 수입 격차는 400배라고 한다. 이런 사회는 희망이 없다.
국제환경회의가 열리면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은 할 말이 없다. 선진국(강대국)이 지구를 살리기 위해 주장하는 그들의 기준을 그들만큼 경제력을 갖추지 못한 나라들은 따라 갈 수 없다. 선진국은 지구를 살리기 위해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고, 기준을 지켜야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늘날 지구가 몸살을 앓는 것은 선진국이 산업혁명 이후 200여년이 넘도록 괴롭혀 왔기 때문이다. 200년 넘게 어떤 제재도 받지 않고 성장만 해 온 그들이 아직 기지개도 펴지 못한 지구 구성원들에게 똑같은 기준을 들이미는 건 폭력이다.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재빨리 사다리를 타고 난 후 걷어차버린 꼴이다. 이른바 '사다리 걷어차기'다.
더 이상 약육강식의 논리로 세상을 바라보면 안 된다. 무한 경쟁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것은 모두의 파멸이다. 빈부격차가 심한 잘 사는 나라보다 골고루 조금 부족하게 사는 세상이 더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 마음깊이 새겨야 한다. 이것이 이 책을 읽은 나의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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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의 경제학 / 강수돌 지음 / 인물과사상사]
언제부턴가 서점가의 흐름은 재테크 서적이 주도하고 있고 대학교에서는 모든 관심이 취업에 쏠려있다. 사회의 관심은 다양성이 사라지고 맹목적인 목표, ‘돈벌이’를 향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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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스트레스 사회가 되었다. 나라의 윗사람에서부터 어린아이들에 이르기까지 온통 경쟁사회에 내 몰려 살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가정경제와 자녀교육을 위해 직장과 일터에서 안간힘을 쓴다. 20대 80의 사회로 재편된 상황에서 상위 20%에 진입하려는 돈벌이 경제에 미쳐가고 있다.
그와 같은 모습은 흡사 사다리의 윗부분에 올라 앉으려는 것과 같은 일이다. 사다리라는 게 본래 위는 좁고 아래는 넓다. 세계적인 차원에서 그 질서는 선진국, 중진국, 후진국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상류층, 중산층, 하류층으로, 그리고 아이들의 학교에서는 우등반, 보통반, 열등반으로 나뉠 것인데, 모두들 위층에 올라서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다.
이와 같은 사다리의 돈벌이 구조 속에서는 지금 당장은 사다리가 유지되겠지만 머잖아 아래층에 있는 사람들이 일중독과 정신적인 공황 속에서 죽게 될 것이고, 자연도 제 목숨보다 일찍 사라지는 일만 남게 될 것이다.
이러한 때에 당장이라도 사다리 구조와 질서를 걷어차고, 사람도 살리고 자연도 살릴 수 있는 살림살이 경제학을 외치는 이가 있다. 바로 고려대학교 경영학부 교수인 강수돌의 〈살림의 경제학〉이 그것이다.
그는 세계가 금융한파를 맞이하고 있는 요인이 미국 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도, 더 근본적인 요인은 자기 집을 가지려는 욕망과 더불어 손쉽게 돈을 벌고 손쉽게 쓰려는 낭비적 생활방식이 경제 쓰나미를 만들어 냈다고 진단한다.
아울러 천박한자본주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선성장-후분배론'에 매달려 모두가 선진국형 사다리타기에 열심을 올리고 있는 것 또한 미친 짓이라고 역설한다. 사다리의 기득권에 중독된 위쪽이든, 기득권에 집착하는 아래쪽이든 생존권과 기득권 경쟁을 하는 이들은 모두가 자본과 권력이 만들어 놓은 질서 안에서만 움직이는 꼴이기 때문이란다.
"'너도 올라갔으니 나도 올라가겠다'는 식은 참된 대안이 될 수 없다. 진정한 대안은 '네가 올라간 곳이나 길이 잘못되었으므로 나는 전혀 다른 길을 찾겠다'는 것이다. 죽임의 길이 아니라 '살림의 길' 말이다."(프롤로그)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살림의 길', 다시 말해 사다리 구조와 질서의 대안으로 무엇을 제시할 수 있을까? 그는 A부터 F까지 자기 소질과 재주를 가지고 자기 행복과 사회 행복을 함께 추구하도록 연대하는 원탁형 구조에서 그 해법을 찾는다. 이를 교육과정에 반영한다면 개성 있는 고교평준화, 개성 있는 대학평준화, 개성 있는 직업평준화 등의 연대가 그것이다.
아울러 현 자본주의 질서에 단순히 적응하라는 생존논리를 거부하고, 사람과 사람, 자연과 자연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대안공동체 운동에 가담할 것도 주문한다. 그 운동으로 유기농운동, 학교급식운동, 농민장터운동, 지역물류시스템운동 등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1999년부터 충남 연기군 조치원의 고려대학교 캠퍼스 뒷산 서당골에다 집을 짓고, 부모님과 함께 3세대가 함께 살기 시작했다는 그는 현재 그곳의 텃밭을 중심으로 소박하게 줄이면서 사는 순환형 살림살이를 연출해 나가고 있다. 이는 홀로서 가능한 게 아니라 지역주민들과 함께, 그리고 참살이 경제를 꿈꾸는 모든 이들의 연대를 통해서 가능한 일이지 않나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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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행복을 위해 살고 그 행복을 위해 자아실현이라는 가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말들은 이제 중고등학교 도덕 혹은 윤리 교과서에나 실릴 표현들이다. 온 세상이 돈에 미쳐 돌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돈 되는 산업, 돈 되는 학문, 돈 되는 생각, 돈 되는 '사람'이 우선이고 대접받는다. 과연 사람이 아닌, 자본이 중심이 된 '자본주의' 사회라 할만한다.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말이 아니다. 문제는 사회를 운영하는 틀이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을 진정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있느냐이다. 요즘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담아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의 삶이 각박해지고 여유가 없어지고 있다. 교과서에나 등장하는 '행복'이니 '자아실현'이니 하는 말들은 희미한 기억에나 존재할 뿐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해 살아가는 삶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나의 행복과 자아실현을 가로막고 있는가?
대부분의 경우 정답이라고 주어지는 것은 명쾌하다. 나의 태만, 나의 게으름, 자기계발을 하지 않는 나가 바로 내 행복과 자아실현을 가로막고 있는 주범이다!!
해결책 또한 명쾌하게 주어진다. 아침형 인간이 되자, 딱 1년만 미치자, 재테크 기술을 익히자, 상사에게 잘 보이자, 인맥관리에 힘쓰자 등등등...
얼마 전 CEO특강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한 CEO의 강연 내용을 보고 깨달았다. 많은 경우 '성공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사람들에 의한 '성급한 일반화'가 우리를 옭죄고 있다는 것을.
그 CEO에 의하면 '시장경제'는 그 누가 만든 것도 아닌, 태초부터 존재했던 자연스러운 것이며 인위적인 제도의 변경이나 통제는 경제의 침체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사람은 그닥 많지 않다. 다만 시장경제=자본주의 의 등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자본주의의 발생은 잉여생산물의 축적과 이어진 자본의 축적에 의해 가능하다는 것은 역사학자, 경제학자 모두 동의하는 사실이다. 문제는 자본주의를 시장경제로 오도하면서 자본주의의 정당성을 역설하려는 태도일 터.
그렇다면 과연 대안은 있는가? 대표적인 반자본주의 운동이었던 공산주의가 소련, 동구권의 실패로 끝나면서 자본주의의 대안은 없는 것처럼 여겨진 측면이 있다.
아지만 여기저기서 대안적 경제체제들이 제시되고 있으며 이번 강수돌 선생님의 <살림의 경제학>도 그러한 시도들 중 아주 성공적인 시도로 보인다.
이제껏 대안제시에 취약했던 측면을 이 책은 다각도로 극복해내고 있다. 물론 책의 대부분은 기존경제체제가 가진 문제점, 그에 대한 비판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간혹 대안제시 부분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부분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냥 제시된다고 해서 의미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실천 가능한, 실천 되었던 내용들-검증된 내용들이 제시된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들이 지속적으로 보완되고 큰 틀을 담아낼 때 어느 순간 사회의 대세도 바꾸어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본다.
패배주의와 무사안일주의라는 커다란 걸림돌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 책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가슴이 뜨거워지다가도 나 자신, 스스로 '그래봤자 세상이 바뀌겠어'라는 생각에 휩쓸리게 되지만 그래도 이런 책은 널리 읽혀야 하며 그래야 수많은 삶들이 이 세상에서 풍성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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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느껴지는 살림의 경제학이라는 말에 직간접적으로 살림을 잘하는 경제학이란 생각이 들었다. 부제역시 사람을 살리고 자연도 살리는 살림살이 경제학!
목차를 읽고 .. 첫장을 제대로 읽자니..저자의 의도와 내가 잠시 아니 오래잊었던 생각들이 고개들 들기 시작했다.
(본문내용중) 이론적으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그러나 현실적으로 인간의 가치는 서로 다르다.연간 임금에 노동력으로 활동할 기간을 곱한것이 그가치다.... 예컨대 인간의 가치는 아프리카 여러나라들에서는 매우낮고 미국 뉴욕에서는 매우높다.뉴욕시민의 죽음은 인류에게 큰손실로 기록되지만 인도시민 죽음은 별주목도 받지못한다.또 고급노동력의 죽음은 사회적이슈가 되지만 뒷골목마약중독자나 가난한 노인의 죽음은 무관심 속에 방치되기 일쑤다.선진국의 핵폐기물이 후진국으로 수출되는것도 후진국 사람의 가치가 선진국과 비교도 안되기때문이다...중간생략 -모든 인간이 '노동력'으로 평가되는 사회-
군대에서는 규율과 복종을 가르쳐 일꾼을 만들고.학교에서는 고급노동력을 만들기 위한 기초를 다지고.그 출발선상으로 성실함을 무기로 만드는 개근상개념이 도입되었다는 글을 읽으며..나역시 그렇게 당연시하며 나를 괴롭히고 주변사람들을 괴롭히는 삶을 사는것은 아닌가 반성이 들었다.
자본주의 틀에서 '삶의 패러다임'은 경제가 돈벌이가 잘되면 경제가 잘돌아가고 돈벌이가 안되면 경제가 안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 과연 ... 잘사는 방법이 이렇게 노동하며 계속적으로 구입하며 소비하며 사는가 하는 것이다. 기쁨과 즐거움조차 제대로 누리지못하며 사는것인가. 필자는 아파트에서 대해서도 가볍지만 핵심을 찔러대며 글을써내려간다. 소위 우리가 편하고 안전하다는 아파트가 과연 편한가이다. 인간의 욕구측면을 살펴보면 아파트에 살거나 보험에 가입하면 안전해질것같다는 피상적 욕구와 어디를 가도 불안감없이 이웃과 더불어 편한하게 살고 싶다는 심층적욕구를 구별해서.. 어디를 가도 심층적욕구와 피상적욕구를 채울수 있는 곳이라면.. 굳이 인간이 가진 편리와 안전에 대한 보통사람이 가진욕구를 채울 수 있는 곳이라면 그것이 진정한 참살이 아닐까 싶다.
(대안하나)줄이며 사는것도 방법-갠적으로 언젠가 부터 김치냉장고가 집집마다 있기시작하며..집공간을 버젖이 차지한다. 냉장고 세탁기.냉동고.와인저장고.김치냉장고.티디 .디비디..컴퓨터두대..등등 .. 공간이 넓고 매니아들이라면 이해하지만 마치 광고를 통해서.. 다 있어야 참으로 잘사는것처럼 이구동성으로 말하니.. 다들 집안에 비집고 자리를 차지한다.. 기계들이.. 전기를 잡아먹으며 버티고있다.
텃밭을 가꾸든지. 조그만 화분에 야채를 키우며..제대로 된 생산과 소비를 효율적 소비를 하자는 취지!
아마도 저자가 그렇게 살지 않으면서 이렇게 주장한다면 전혀 아니올씨다일텐데.. 그렇게 생활하는 사람인지라.. 설득력있게 주장되어진다.
우리가 구별할수 있는 똑똑한 사람이 되었음 좋겠고.참살이를 제대로 할수 있는 진정한 살림꾼이 되어서 휘둘려 살지 않은 인생이 되었음 하는 바램이다.
[살림의 경제학]은 저자의 친절하고 해박한 지식에서 나온 글이다.관점을 달리하며 차분차분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노사관계를 전공하는 교수답게 진정하게 호흡하며 노동자가 잘살수 있는 삶을 제시해주고 있다. 자칫 이것이 공산당처럼 다같이 잘살자 하면서 자본주의 패러다임자체를 무너뜨리는것이 아니라 다같이 생각해보자는 취지해서 허용한다면 이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서 다같이 한번 되짚어 생각해볼수 있는 쉼표가 되는 책이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다같이 돈벌기 재테크에 혈안이 되어.. 지금의 삶을 공허하고 소비나 지나친 절약으로 피페하게 사는 삶에서 뒤돌아 보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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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처음에는 단란한 가정을 어떻게 잘 꾸려나갈까? 라는 생각으로 다소 막막하지만 그럭저럭 행복한 생활을 했었습니다.
그러다, 아기를 가지게 되면서 우리 아이들에게는 가난을 되물림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데요. 그래서, 관심이 자기계발에서 경제적 안정으로 그리고, 재테크로 옮겨갔습니다. 주식이 좋을까? 내집 장만을 해서 언제 또 갈아타기를 하지? 어떤 주식을 사면 대박이 날까?를 고민하다가 다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과연 이렇게 돈을 벌어서 어디에 쓸까? 원하는 만큼 돈을 벌면 나의 꿈을 이룬것인가?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단지 돈을 많이 벌기위한것일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제가 어릴적에 아니 불과 20년 전이었네요. 다들 못살았죠.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가더라도 카메라를 가지고 있는 친구가 반에 몇명안되었죠. 지금은 디카 없는 집이 거의 없죠.
이렇게 삶의 질이 향상되면 훨씬 살기 좋아질 줄 알았죠.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더라구요. 직장다니는 것은 전쟁터같고 모처럼의 주말은 가족들과 야외로 나가야만 하고 일요일 저녁만 되면 지옥으로 가는 것 같고 정말 제가 꿈꾸어 왔던 생활이 아니더라구요. 이 책을 읽는 내내 저의 중학교 시절이 생각나데요. 여름 방학때 할머니 댁에 1달 넘게 머물렀는데 지금 처럼 큰 걱정없이 살았던 것 같아요. 밤이 되면 모기불 피우고 감자 구워서 수박이랑 먹으며 풀벌레 소리 들으며 잠을 청하고 내일은 일찍 일어나서 밭에 일하러 가야지.
농촌에서 산다는게 도시에서처럼 편한 생활은 누리지 못하지만 나름 걱정없이 행복했어요. 어쩌다가 매일매일 통근버스에 시달려야 하고 단 1분이라도 지각하면 상사에게 좋지 못한 소리를 들을까봐 걱정이 되서 뛰어야 하고 점심시간이 되면 의지와 관계없이 밥을 먹어두어야 하고... 농촌에서 살때는 안그랬죠. 일하러 10분 쯤 늦게가도 별탈없고 옆사람과 경쟁적으로 모내기하고 밭일 할 필요 없었는데 말이죠. 정말 우리가 원했던 것은 지금도 원하는 것은 나이 들어서 귀농하여 소나 돼지 키우면서 밭일하면서 사는 것이지요. 옛날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새삼 지금에 와서 그 때가 그리워지네요.
얼마전에 읽었던 책을 보면 아프리카가 과거에는 아주 풍부한 곡창지대였더라구요. 이 책을 읽으면서 보다 자세히 알게되었죠. 불과 수십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는 것을... 모두가 인간에 의해 그것도 모든 인간이 아닌 일부 부유층에 의해... 그렇다고 일부 부유층만을 탓할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면, 우리들 아니 저 자신부터 그런 사람을 부러워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죠. 제가 부끄러워 지더군요. 한 평생 살면서 후회없이 잘자고 다짐했었는데...
마지막에 그런말이 나오더군요.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부터 시작하자. 나부터 실천하다 보면 반드시 이루어 진다라고. 제가 삶면서 제 스스로가 대다하다고 느꼇던 적이 한번 있었죠. 제 스스로가 변하고 실천하다 보니 제 주위사람도 저를 따라 웃더라구요. 항상 그때 일을 생각하며 지치고 힘들어도 포기하지않고 스스로 노력했죠. 다시 한번 마음 가다듬고 실천해보겠습니다. 원래부터 제가 계획했었고 이룰수 있다고 확신했던 것을 [살림의 경제학]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다짐했을 따름이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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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되지 않은 자본주의: ‘신자유주의’를 옹호하고 이용했던 기득권자들은 화려한 돈 잔치ㆍ빚잔치를 아무런 죄책감 없이 즐기면서 지금까지 윤택한 삶을 누려왔다. 그러나 이들의 돈 잔치의 결과는 미국발 금융위기를 촉발시켰으며 세계경제 침체를 안겨주고 있다. 이런 부패한 자본주의는 전 세계의 시민들을 궁핍하게 만들었으며,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들에게도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이러한 세계 속에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우리들은 정부에서 매년 제시하는 고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서 각자의 일터에서 모든 시간을 바치고 그렇게 혹사의 대가로 보상받는 ‘돈’에 중독되어 ‘삶이 곧 돈’으로 귀결되는 사회를 살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자녀들마저 ‘표준화된 노동력’으로서의 삶을 강제로 떠안기고 있다. 이것은 비록 힘들지만 돈을 벌어서 자유롭게 쓸 수 있으므로 행복한 삶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 라는 물음에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우리사회가 이렇게 된 이면에는 그릇된 성격의 사회적 장치들(예, 해방 후의 빈곤한 생활)이 얽혀 있다고 한다. 또한 우리들이 이와 같은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아야지만 행복한 삶을 위한 첫걸음을 뗄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자본주의의 폐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자의 대답은 바로 ‘돈의 패러다임’에서 ‘삶의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사다리의 꼭대기에 위치한 ‘기득권층’의 탐욕을 이 사회에서 퇴출시켜 개개인이 사회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아래로부터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달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풀뿌리 민주주의란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단순한 지원정책이 아니다. 잘못된 인식으로 댓가없이 베풀어지는 자본은 민초들의 삶에 활기를 불어넣기는커녕 갈수록 무기력하게 만들뿐이라고 한다. 저자는 민초들 스스로가 삶에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 풀뿌리 민주주의의 핵심요소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들은 거대해져 버린 자본주의에 익숙해져 있는 상태에서 단순한 이론이 아닌 실제적인 방법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에 저자는 개개인들의 사고확립을 통한 지역사회에서의 공동체를 형성하여 대안의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해답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실제로 저자는 오래전부터 풀뿌리 민주주의의 확립을 위한 대안의 경제활동을 벌이고 있는 상태이고 그 외에도 국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대안 경제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책에 담고 있었다. 대안 경제활동의 추구로 인한 시민단체와 노동자단체간의 다툼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데 거기에 대한 저자의 해결책은 연대와 소통이 유일하다고 말하고 있다. 즉, 공동체들 간의 관계를 ‘경쟁과 적대’가 아니라 ‘상호이해’로서 정립한다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저자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보면서 능동적인 사회구성원으로 탄생하는 것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이 책을 통해 더 넓은 시야를 얻게 되었다.
대안적 식생활 운동, 생활협동조합 운동, 귀농 운동, 대안교육 운동, 마을공동체 운동, 대안화폐 운동, 대안에너지 운동, 노동자기업 운동, 공정무역 운동, 대안세계화 운동 등과 같은 대안 경제활동들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자본주의의 저항의 성격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사회간접자본투자로 인한 안전망 구축 달성 행보에 눈길이 쏠려 있던 나에게 저자는 국내에서도 많은 분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어 국내의 상황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많은 반성을 하게 만들었다.
인상깊은 구절비록 가난하더라도 예를 잃지 않고 더불어 도와가며 사는 것, 애환이 있더라도 늘 삶의 즐거움을 느끼며 사는 것, 부족하고 힘겹지만 활기 넘치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경제'의 본래 의미다.
만약 당신들이 우리를 도와주러 왔다면 그냥 돌아가시오. 그러나 만약 당신의 문제와 우리의 문제가 뿌리가 같다고 보고 함께 해결하고자 한다면 함께 일해봅시다. '가난한' 나라 부탄이 피상적인 GNP(국민총생산) 대신 GNH(국민총행복)를 국정 지표로 쓴다는 사실은 신선하다. 두려움을 조장하는 장치, 두려움에 갇힌 정치는 결코 아무도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두려움을 정면으로 이겨내야 참된 자유와 희망을 얻는다. 한을 품고 죽은 자들이 우리에게 남긴 유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