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측의 주장 토론에서 스티븐핑거 교수는 인류의 진보를 낙관하는 구체적인 증거로 10가지를 꼽고 수치까지 제시한다. 평균수명, 보건, 절대빈곤, 평과, 안전, 자유, 지식, 인권, 성평등, 지능 등 10개 항목에 걸쳐 인류가 분명히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단언한다. 반대편의 알랭 드 보통은 좀더 깊숙이 파고든다. 인간의 근본적인 불완전성을 상기시키며 과학 지상주의와 통계 만능주의에 경종을 울린다. 그는 “우리가 영혼이라 부르는 인간정신의 복잡성을 간과해서는 안 되며 여기에는 철학과 예술, 그밖의 다른 인문학의 겸허한 성찰이 요구 된다”고 주장한다. p.11 5가지 토론 쟁점 첫째, 인류의 진보 자체를 논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둘째, 과학기술에 대한 입장 차이다. 셋째, 인류 차원의 진보와 개인적인 삶의 행복이 비례하느냐의 문제이다. 넷째, 진보에 대한 기대도 천차만별일 수 있다는 점이다. 다섯째, 추론의 타당성이라는 논리적인 문제도 있다. 관전 포인트 미래를 쉽게 포기하지 않되 결코 과신하거나 오만하지도 않는 태도다. 그 중용의 지혜에 이르기까지 전개되는 설전의 과정이 최고 지성의 격돌인 동시에 향연이라 할 만하다. p.16 |
|
‘인류의 앞날에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가’ 라는 주제로 4명의 지성이 모여 찬성과 반대 2:2로 나뉘어 토론을 진행한다. 토론에 참여한 네 사람 모두는 '최고의 지성인'이라는 찬사를 받는 사람들이다.
찬성 팀에는 하버드대 교수 ‘스티븐 핑커’와 영국 상원의원이자 저널리스트인 ‘매트 리들리’ 가 속하고, 반대에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 ‘알랭 드 보통’과 논픽션 베스트셀러 작가 ‘말콤 글래드웰’이 팀을 이뤘다.
찬성팀은 큰 관점에서 10가지의 수치화할 수 있는 지표를 제시하며 과거에 비해 나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생명, 보건, 절대빈곤, 평화, 자유, 지식, 인권, 평등 이렇게 10개 항목에 대해 계속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고 앞으로도 나아질 것으로 예측한다.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이 있지만 하나씩 해결하고 개선하다 보면 미래는 더 나아질 것이라 주장한다.
과거에 비해 전쟁이 줄었고, 기아로 고통 받는 아이의 숫자가 줄었다. 의학과 과학기술의 발달로 환자는 줄고 생활은 점점 편리해졌다. 생활환경이 나아지면서 인간의 수명도 늘고 있다. 아직 ‘암’이라는 병을 정복하진 못했지만, 향후 20년 혹은 50년이 지난 미래에는 원인도 밝혀지고 치료약도 개발되리라는 것을 믿고 의심하지 않는다.
“신문의 머리기사 제목을 보고 인류의 진보 여부를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언론이 뉴스를 보도하는 것은 안전하게 이륙한 항공기가 아니라 추락한 항공기입니다. (…) 제가 상상하는 영화로운 미래에도 질병과 빈곤은 여전히 존재할 겁니다. 테러와 억압도 있을 겁니다. 전쟁과 잔인한 범죄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재앙들은 지금보다는 아주 훨씬 더 적을것입니다. 이 말은 수십억의 사람이 오늘날 우리보다는 형편이 더 나을거라는 뜻입니다.” (p143)
반면, 반대팀은 10가지의 지표가 과거에 비해 개선되었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현존하고, 의학/과학발달로 인해 오히려 새로운 문제가 생기고 있다면서 미래가 나아지고 있다는 물음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과거의 지표가 좋았다고 해서 미래의 지표도 좋을 것이라는 낙관론에서도 의견은 엇갈린다. 의학과 과학기술은 발달했지만 그로 인해 새로운 문제도 함께 생긴다. 새로운 문제가 인간을 위협하는 수준은 이전에 비해 결코 작거나 적지않다. 과거엔 전쟁과 먹거리, 사소한 질병으로 생명을 잃었다. 지금은 환경오염과 생활습관병, 자살, 정신병, 핵테러 위협과 같은 새로운 문제로 생명을 위협당하고 있다. 생명을 위협하는 항목만 바뀌었지 나아지고 있지 않다는 주장이다. 어떤 부분에선 파괴력이 더 커졌다고도 볼 수 있다. 비관론자들은 자신을 비관론이라기 보다는 유쾌한 현실론자로 불리워지길 원했다.
“당신이 개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어떤 진전이 있을 때 그것이 또다른 문제를 추가로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가요? 새로운 문제들은 뭔가요? 새로 발생하는 문제들은 해결한 문제들보다 더 큰 문제인가요? 아니면 같은 가요, 더 작은가요?” (p161) 처음 질문만 듣고는 낙관론에 한 표를 던졌다. 낙관론으로 마음을 정하고 읽다 보니 낙관론의 이론에는 동의를 하고, 비관론자의 의견에는 반박을 하며 읽고 있었다. 그러다 반대팀의 일리있는 의견에 설득 당하기도 했다. 책 말미쯤에는 이분법적으로 '낙관과 비관 둘 중에 하나를 꼭 선택해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낙관론을 기준으로 삼되, 비관론자들이 주장하는 위험성에 대해 경각심을 갖는게 좋겠다. 대책없는 낙관론이나 순진한 희망만으로 미래를 대비하는 것보다 위기와 리스크를 관리하고 염려하면서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게 좋을 것 같다. 결국, 찬성과 반대의 논리를 혼합하여 현실적인 수준에서 결론을 내린다. |
|
사피엔스의 미래 알랭 드 보통, 말콤 글래드웰, 스티븐 핑거, 매트 리들리/전병근 모던아카이브/2016.10.24. sanbaram 우리는 지금 불안한 세상을 살고 있다. 북한의 핵위협과 미국 대통령이 된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로 인한 경제 위축이 우려되며, 한반도 사드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성 경제 제재와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테러 등으로 인한 것이다. 국내적 요인으로는 청년실업문제와 노인문제, 인구 감소 및 정치인들의 비리로 얼룩진 최순실 게이트까지 무엇 하나 속 시원한 것이 없다. 서양의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이성의 빛을 통해 인간 사회가 개선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들의 눈에 역사의 주인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었다. 하지만 물질적인 면에서 삶이 풍요로워 졌다고 하여 행복해진 것은 아니며, 과학의 발달이 오히려 불안을 증폭시키는 면도 있다. 분배의 불균형으로 인한 부의 양극화 현상이나 종교 갈등으로 인한 테러나 내전 등이 그것이다. <사피엔스의 미래>는 러디어드 그리피스의 사회로 인류의 미래는 낙관적인가 아니면 비관적일 것인가를 놓고 각기 두 명씩 저명한 인사가 토론을 진행하는 과정을 옮겨 놓은 책이다. 다섯 가지 토론 쟁점은 “첫째, 인류의 진보 자체를 논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둘째, 과학기술에 대한 입장 차이다. 셋째, 인류 차원의 진보와 개인적인 삶의 행복이 비례하느냐의 문제이다. 넷째, 진보에 대한 기대도 천차만별일 수 있다는 점이다. 다섯째, 추론의 타당성이라는 논리적인 문제도 있다.(p.16)” 관전 포인트는 미래를 쉽게 포기하지 않되 결코 과신하거나 오만하지도 않는 태도다. 그 중용의 지혜에 이르기까지 전개되는 설전의 과정이 최고 지성의 격돌인 동시에 향연이라 할 만하다. 토론에서 스티븐 핑거 교수는 인류의 진보를 낙관하는 구체적인 증거로 10가지를 꼽고 수치까지 제시한다. 평균수명, 보건, 절대빈곤, 평화, 안전, 자유, 지식, 인권, 성평등, 지능 등 10개 항목에 걸쳐 인류가 분명히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단언한다. 반대편의 알랭 드 보통은 좀 더 깊숙이 파고든다. 인간의 근본적인 불완전성을 상기시키며 과학 지상주의와 통계 만능주의에 경종을 울린다. 그는 “우리가 영혼이라 부르는 인간정신의 복잡성을 간과해서는 안 되며 여기에는 철학과 예술, 그 밖의 다른 인문학의 겸허한 성찰이 요구 된다(p.11).”고 주장한다. 나는 누구의 주장에 공감하는지 생각하면서 그들의 토론을 지켜보자. 낙관론자들이 주장하는 우리 삶에서 긍정적인 사실 10가지는 첫째, 인간의 생명 자체가 늘어나고 있다. 둘째, 건강측면에서 여러 가지 질병을 극복하고 있다. 셋째, 물리적으로 번영하고 있다. 넷째, 평화다. 다섯째, 안전이다. 여섯째, 자유다. 일곱째, 지식이다. 기초교육을 받는 인구가 17%에서 100%를 향해 올라가고 있다. 여덟째, 인권이다. 아동, 여성, 노예제도 폐지 등이 그것이다. 아홉째, 성 평등이다. 열째, 지능이 10년에 3점 꼴로 향상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낙관론자들이 판단하기에 인류가 가장 큰 진전을 이룰 것으로 보이는 4가지는 첫째, 지식이 무지를 이긴다고 믿는다. 둘째, 빈곤의 고통이 세계 경제 성장과 더불어 일소될 것으로 생각한다. 셋째, 전쟁이 사라질 것으로 생각한다. 넷째, 의학을 통해 질병도 일소될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비관론자들의 주장은 다르다. “선진국 스위스나 그 비슷한 나라들조차 완벽하지 않은 이유 첫째, 인간의 어리석음이란 이성에 의해 제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빈곤은 국내 총생산을 끌어올린다고 해서 근절되지 않는다. 셋째, 인간의 저열함과 폭력, 잔인함이 끊이지 않는다. 넷째, 의료기술이 발달해도 사람들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삶은 완벽해야 하며, 알려진 모든 문제는 뿌리 뽑을 수 있다고 믿는 이 시대에 우리는 정작 사물을 감상하는 법은 잊어버렸다.(p.50)” 이처럼 낙관론자들이 가장 큰 진전을 이루었다고 하는 것들은 단지 평균적인 수치에 불과하지 그 이면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완전히 해결 된 것은 아니다. 기계적인 수치로 인간의 삶의 질을 판단하는 것은 잘못 된 논리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잘 사는 나라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지수가 못사는 나라 사람들의 행복지수보다 높지 않다고 주장한다. 토론 전 투표 결과는 주제에 대한 찬성표가 전체의 71% 반대가 29%로 나왔다. 토론이 끝난 후 최종 투표 결과는 찬성 73%, 반대27%로 바뀌었다. 그러나 비관론자들은 “경제 발전의 진정한 비극 중 하나는 사람들의 물질적 조건을 향상시키면 인간이 더 행복해진다고 생각한 겁니다. 사람들을 부유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는 경제적 불만을 사라지게 할 수 없습니다. 남과의 비교는 사회에서 근절할 수 없는 일종의 풍토병이며,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불만족의 느낌은 억만장자들 사이에서도 존재합니다.(p.149)”라고 말하며 가장 크게 발전했다고 하는 교육에 대해 언급한다. 교육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며 의학도 교육과 비슷하다. “저는 인간이라는 종의 미래에 대해서는 낙관적이지만 미래의 인간은 더 이상 호모 사피엔스가 아닐 겁니다. 천 년 뒤에는 죽지 않는 종을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할 거라고 믿습니다. 이 새로운 종은 지식을 적절히 사용할 수 있어서 항상 행복해하고 천성이 공격적이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라 다른 종일 것입니다.(p.152)” 이처럼 본질에서 벗어난 것은 이미 호모사피엔스가 아닌 다른 종의 문제라는 것이다. ‘내 생각은 과연 어느 편에 서 있는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이 토론에 참가한 알랭 드 보통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시작으로 사랑, 행복, 불안 등 현대인의 관심사를 주제로 베스트셀러를 다수 냈다. 또 다른 토론자 말콤 글래드웰은 <뉴요커>의 기자로 활동하며, <티핑 포인트>, <아웃라이어>등 다섯 권의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스티븐 핑커는 인간의 마음과 언어, 본성과 관련한 심도 깊은 연구와 저술 활동을 한다. 저서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마음의 과학>, <언어본능> 등이 있다. 매트 리들리는 <이코노미스트>의 과학 전문기자를 거쳐 칼럼리스트로 활동하며 과학, 환경, 경제 분야의 글을 썼다. <이타적 유전자>, <본성과 양육>, <이성적 낙관주의자> 등의 저서가 있다. |
|
초등학교 때 공상과학 그림 그리기나 글짓기를 할 때면, 으레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나, 유리 같은 막으로 덮인 도시, 작은 공간을 차지하면서도 윗부분은 광활하게 넓은 땅 등이 묘사되기 일쑤였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것이 참 이상했던 나는 이미 세상은 충분히 발전해 있으며, 발전된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세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글짓기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선생님은 나에게 매우 진지하게 조언 같은 것을 했던 것 같다. 그리하여, 30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내 생각과 세상은 얼마나 바뀌었나 생각하면 물론 어매이징하게, 징하게 많이 발전했다. 당시 무지개 색이던 내 애플컴퓨터 로고는 이제는 핸드폰에도 패드에도 붙어서 세상을 바꿔 놓았다. 어디가나 수세식 화장실이 있고, 브라운관 티브이는 찾아보기 힘들어졌으며, 부잣집에만 검은색으로 있던 자가용도 누구나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인류의 앞날에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가
수치상으로 우리는 엄청나게 진보했다. 첫 번째 토론자인 스티븐 핑거는 그렇게 말하며 열 가지 증거를 제시한다. 그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일찌기 주장한 바 있는 논거들을 제시하며 우리가 지금까지 진보하고 있으며 앞으로 그럴 것이라는 낙관론을 제시한다. 대표적인 근거로는 수명이나 질병의 치료, 물질적 변영과 평화, 인권의 신장 등이다. 그는 이런 사실들이 주식시장처럼 폭락하거나 폭등할 수는 없다고 포문을 연다. 이에 대해 반대편에 서 있는 알랭드보통은 그들의 주장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전쟁과 빈곤, 질병이 결국에는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이성이 더 완벽한 세상을 만들 것인가에 대해서도 인간은 여전히 불완전하며, 전쟁은 사라졌지만 저열한 형태의 모든 폭력이 사라졌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설사 실제로 완벽해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행복하게 만들 것인지는 미지수라고 말한다. 특히 완벽해지려는 과정에서 우리가 예술과 삶에 대해 잃은 것이 너무 많으며, 타인의 결함을 결코 용서할 수 없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다음 낙관 쪽 주자는 '게놈', '이성적 낙관주의자'의 저자인 매트 리들리이다. 역시 그는 비관하는 이들에 대해 독설을 하며, 인구 문제, 수명 문제, 평등 문제, 협업 등을 근거로 미래는 더욱 나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번에도 역시 낙관을 주장하는 쪽은 수치와 통계, 과거 자료 등을 활용한다. 이런 표현이 재미있다. '제가 고층 빌딩에서 곤두박질 치고 있는데 2층을 통과하는 지점에서 지금까지는 좋다고 외치는 사람 아니냐고요'. 그가 2층을 지나는 지 매트리스 위로 떨어지는 지와는 무관하게, 마지막 토론자인 말콤 글레드웰은 이에 대해 이렇게 반박한다. 폴리아나(어리석을 정도로 낙천적 여주인공)라는 이름을 별명으로 부르며, 당신들은 당연히 자신들이 이미 최고의 지위에 있으며 최상의 삶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말한다. 최상의 지표들만 가득한 곳에서 그것은 낙관적일 수 있지만, 이를 위협하는 것들은 테러, 핵, 해킹 등 모두 새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진보를 이뤄서 과거의 문제점을 사라졌지만 이와 동시에 새로운 문제점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 미래를 마냥 낙관할 수 없는 이유라고 주장한다.
편안한 일상인가, 행복한 삶인가
이 토론은 멍크 디베이트라고 연 2회 각 분야를 대표할만한 명사들이 나와 의견을 주고받는 행사이다. 이 책은 그 토론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진화와 유전자를 연구한 두 학자는 지금까지의 결과물을 매번 들여다보고 공부해서인지 앞으로도 더 나은 쪽으로 나아갈 것이라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와 반대로 인문학에 가까운 두 논객은 단순한 수치로 인간이 진보한다는 생각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반대를 한다. 책으로 옮겨서 내용을 간추린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다. 모든 말을 다 옮겨 놓아서 읽다 보면 네 명의 논객이 폭발 직전까지 가는 것은 아닌지 느껴질 정도이다. 뭔가 좀 고상하게 토론하기를 기대했다면, 초등학생처럼 서로를 비꼬면서 말의 포문을 여는 것이 이채롭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워낙 유명한 사람들의 토론이 기대했던 바가 컸는데 사실 활동분야가 조금 다르다 보니 각자의 이야기로 끝난 점이 조금 아쉽긴 하다. 결론 내릴 수 없지만 결국 안전해지고 편해지는 것에 방점을 찍을 것인지, 마음이 평온해지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삶에 무게를 둘 것인지에 따라 양쪽의 의견은 다 맞는 셈이다. |
|
인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역사는 순환적일까, 아니면 일직선적일까? 이런 주제를 놓고 명석하고 예리한 지성들 두 명이 한팀을 이룬 두 팀이 치열한 논쟁을 했다. 생각만 해도 흥미롭다. 더우기 알랭 드 보통(작가), 말콤 글래드웰(저널리스트) 팀 vs 스티븐 핑커(인지과학자), 매트 리들리(과학 저술가) 팀의 대결이라니... 그런데 어떤 팀이 낙관적인 견해를 드러냈고 어떤 팀이 비관적인 견해를 드러냈을까? 답은 보통, 글래드웰 팀이 비관적인 견해, 핑커, 리들리 팀이 낙관적인 견해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
멍크 디베이트는 처음 알게 되었지만, 엣지(Edge.org)의 토론을 연상케 한다. 다르다면, 엣지는 주로 지면(인터넷 화면)을 통해서 논쟁이 이뤄진다면, 멍크 디베이트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면전에서 토론이 이뤄진다. 작년 하반가의 주제는 ‘인류는 진보하는가’였다. 더 구체적으로는 ‘인류의 앞날에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가’이다. 이 질문을 두고서 찬성 쪽 둘, 반대 쪽 둘의 세계적 지성이 맞붙었다. 찬성 쪽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의 인지과학자 스티븐 핑커와 『이성적 낙관주의자』의 과학저널리스트 매트 리들리이고, 반대 쪽은 작가 알랭 드 보통과 저널리스트 말콤 글래드웰이다(찬성 쪽은 책 제목을 쓰고, 반대 쪽은 책 제목을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찬성 쪽의 둘은 다른 책도 냈지만, 이 주제와 분명하게 연관된, 언급한 책을 냈지만, 반대 쪽의 둘은 전체 기조가 그렇지, 이 주제와 분명하게 연관된 책은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의 토론은 치열하다. 점잖게 다른 편의 주장을 인정하면서 자기 주장만 펼치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인신 공격적 주장까지 펼친다. 이를 통해 논점을 분명히 하려 하며(그건 자신의 편 쪽에 유리한 논점을 만들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상대방 논리의 허점을 공격하고 있다. 토론이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스티븐 핑커와 매트 리들리는 줄기차게 인류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 견해를 펼친다. 그들의 주장은 데이터에 근거한다. 과거와 현재를 비교했을 때 전쟁, 질병, 빈곤, 민주주의(아! 대한민국!), 성 평등 등의 문제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을 했으며 이 발전이 미래에 반전을 일어날 것이라 볼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의 가장 큰 지구적 문제랄 수 있는 기후변화도 해결할 방안이 있으며, 인류를 그것을 해결해 나갈 것이라는 낙관적 견해를 펼친다.
반면, 말콜 글래드웰과 알랭 드 보통은 이러한 스티븐 핑커와 매트 리들리의 주장은 과거가 이랬으니 미래에도 그럴 것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으로 일축하고, 현재에 산적한 문제들에 대해 경고한다. 어느 한 사람의 실수로라도 핵전쟁이 일어나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르는데, 인류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리라는 견해는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무책임하다는 것이다.
결국 논쟁의 승부는 사전 투표와 사후 투표의 결과로 보여주고 있다. 토론 전 투표는 찬성이 71%, 반대가 29%였던 데 반해, 토론 후는 각각 73%, 27%로 나타났다. 찬성 쪽, 즉 스티븐 핑커와 매트 리들리 팀이 승리로 판정하고 있다. 전체적인 분포에서도 보듯이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는 낙관적인 견해가 훨씬 우세하다. 이 멍크 디베이트가 열린 캐나다라는 지리적 여건도 이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만약 캐나다보다 훨씬 경제적으로 뒤쳐진, 정치적으로 불안한 나라에서 이 투표를 했으면 조금은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우리나라라면 어땠을까?). 그렇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낙관적 견해를 가진 사람이 더 많을 것이란 예측은 상당한 근거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 그만큼 인류가 이뤄온 업적은 대단한 것이고, 그 업적과 발전은 앞으로의 위기도 어떻게든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스티븐 핑커와 매트 리들리의 견해는 충분히 근거가 있는 것이다(개인적으로 매트 리들리의 『이성적 낙관주의자』를 읽었을 때와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읽었을 때의 느낌이 아주 달랐다. 『이성적 낙관주의자』는 상당히 부담스럽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반면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는 그의 논지를 충분히 긍정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랭 드 보통과 말콤 글래드웰 같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다고 본다. 여기에는 정말로 인류의 미래가 별로 밝을 것 같지 않다고 믿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인류는 발달해 왔지만, 그 발달의 한 면으로 어두운 측면도 발전하여 한 순간 무너질 위험성이 있음을 두려워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며(말콤 글래드웰처럼), 인간성에 바탕을 두고, 미래에 대한 비관적 태도를 갖는 것이 불행한 사태에 대해 대비할 수 잇는 보장책이라는 점에서 의도적으로 어두운 관점을 태도를 취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알랭 드 보통처럼).
나는 이 토론의 전이나 후나 찬성 쪽에 투표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알랭 드 보통과 말콤 글래드웰의 관점을 무시하지 않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본다(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알랭 드 보통의 의도적인 어두운 관점이 더 의미 있다고 본다). 스티븐 핑커도, 매트 리들리도 그러리라 본다.
그러나 이 논쟁을 읽으며, 조금 아쉬운 것은, 인류의 미래에 대해 부정적인 관점을 취하는 두 인물이 너무 인상적인 관점만으로 비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토론 후에 오히려 반대 쪽의 투표가 줄어든 것은, 인문적 반성의 사유는 분명히 중요한데도 무엇이 부족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본다. 알랭 드 보통이나 말콤 글래드웰은 주로 스티븐 핑커나 매트 리들리의 견해에 대해 반박하고, 부정하는 방식으로 토론에 임하고 있으며, 내놓는 증거나 인문적 견해는 너무나도 부족하고 결정적이지가 않다. 심지어 현재에는 틀린 것으로 입증되고 있는 주장을 증거로 내세우기까지 한다. 인문적 반성의 사유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런 사유는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뭔가가 더 필요하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 사피엔스의 미래 】 알랭 드 보통 외 | 모던아카이브 원서 : Do Humankind's Best Days Lie Ahead?
“인류의 앞날에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가?”
1. 인지 과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스티븐 핑커가 하는 말이다. “저는 인류의 앞날에는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시킬 계획입니다. 예, 저는 확신합니다.” 스티븐 핑커는 세계의 운명을 올바로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은 사실과 수치를 살펴보는 것이라고 한다. 시간의 경과에 따른 좋고 나쁜 일의 발생 빈도를 도표로 그려보는 것이다. 그 궤적을 통해 비로소 세계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알 수 있고, 그런 움직임의 동인을 파악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우리 삶에서 긍정적인 사실을 무려 10가지나 들어 보인다. 그중 몇 가지만 옮겨본다. 인간의 생명 자체를 긍정 요인 첫 번째로 제시한다. 150년 전만해도 인간의 수명은 30년이었다. 지금은 70년이 되었다. 성장세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자유에 대해선 이렇게 이야기한다. “몇몇 나라에서 뒷걸음질 치긴 했지만 전 세계 민주주의 지수는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계 인구의 60%이상이 열린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이 수치는 사상 최고에 해당합니다.” 이외에도 지식, 지능, 인권, 성 평등 등이 예전에 비해 훨씬 좋아졌기 때문에 앞으로도 더욱 좋아지리라 내다보고 있다.
2. 반대 입장 즉, 인류의 앞날에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지 말자는 쪽에 알랭 드 보통이 있다. 그의 말을 들어본다. 그는 현대과학과 비즈니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저돌적 태도와는 반대편의 존재감을 ‘비관주의적 현실주의’라고 이름 붙인다. “오늘날 과학과 비즈니스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우리가 지금 처한 상황을 더 즐겁게 느끼도록 하려고 끊임없이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저돌성은 위험하고 잔혹하다는 것이다. 그런 태도가 인간관계에도 좋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무지와 빈곤과 전쟁, 질병은 결코 인류의 미래를 장밋빛으로만 물들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3. 영국의 저널리스트, 대중과학저술가인 매트 리들리는 긍정의 위치에 있다. ‘찬성’팀이다. “미래에 대한 저의 낙관론은 과거에 일어난 일을 미래에 투사해서 계산하는 방식에 기초한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원인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바로 혁신입니다. 아이디어가 서로서로 만나고 짝짓기를 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산해내는 것에 의해 힘을 얻는 혁신이야말로 진보를 몰고 가는 동력입니다. 그리고 그런 동력은 고갈되고 있기는커녕 이제 막 생겨나기 시작한 것에 불과합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낳기 위한 아이디어의 재결합 방식은 무한합니다.”
4. ‘반대’ 팀엔 말콤 글래드웰이 자신에게 마이크가 넘어오길 기다리고 있다. 과거에 비해 현재 상황까지 거의 모든 면에서 상행 곡선을 그려온 점은 인정하지만, 오늘 논쟁은 과거에 대한 것이 아니고, 미래에 관한 것이라고 못을 박는다. 지금 이 시점부터 앞으로 상황이 좋아질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래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은 터무니없이 순진합니다. ‘더 낫다’는 단어 자체가 잘못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미래를 볼 때 실제로 직면하게 되는 미래는 다른 미래입니다.”
5. 멍크 디베이트라는 행사가 있다. 캐나다 금광 재벌 피터 멍크가 세운 오리아 재단이 2008년부터 열어온 지적 경연이다. 당대에 가장 뜨거운 현안을 두고 연 2회 세계 정상급 지식인들을 불러 토론을 벌인다. 이 책 『사피엔스의 미래』는 2015년 11월에 실시된 밍크 디베이트를 엮은 책이다. “인류의 앞날에 더 나은 미래가 있어왔던가?” 인류가 끝까지 안고 갈 질문이자 숙제이다. |
|
인류 진보를 낙관하는 핑거와 리들리 반대편의 드 보통과 글래드웰의 토론을 소개한 책으로 제1장에서는 토론을 2장에서는 토론 전 인터뷰를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찬성팀'의 스티븐 핑커의 인사말로 시작하게 됩니다. 삶에서 긍정적인 사실 10가지를 나열하여 말하고 두 가지 심각한 위협이 있지만 해결 가능하다면서 핵무기와 기후변화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핵무기, 인류의 관점으로 보면 절대 개발하지 않았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평화적인 목적이 아닌 전쟁을 위해 사용된 적이 있기 때문에 더더욱 조심스러운것이 아닐까 합니다. 기후변화는 요즘 심심찮게 겪고 있기 때문에 더욱 현실에 와 닿고 있습니다. 잦은 태풍, 토네이도 등 지구곳곳에서 이상 기후 현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희생당하는것을 볼때 지구환경보전을 위해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반대편의 드 보통은 비관주의적 현실주의를 언급하면서 완벽주의자들을 경계하는 발언을 하고 있네요. 다음으로 리들리의 그리고 글래드웰의 순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후 사회자 러디어드 그리피스가 상대편의 발언에 대한 반박할 기회를 주고 있네요. 서로 상대방의 주장에 반박을 하게 되고 사회자의 중재로 다시 한번 서로 반박하는 논조를 펼치게 됩니다. 네 분 명사들의 열띤 토론을 보고 있노라니 알지 못했던 많은 지식과 함께 과연 우리는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될지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었습니다. 과거보다 더 위험해지기도 했으며 덜 위험해지기도 한 측면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발전할지 퇴보할지는 우리의 결정과 생각에 달린건 아닐까요? |
|
흠 나는 이 책을 사피엔스보다 먼저 읽게 되었다 좋아라하는 작가 이름이 셋이나 떡하니 나란히 적혀 있었고 그것도 대담 형식이라니 하고 아무 생각없이 지르고 받아봤는데 음 뭐랄까 책에다가 어지간해서는 그리고 이런 작가들이 등장한 상황에서는 창렬이라는 표현을 함부러 꺼내기 참 뭣하다만 이거 그냥 TED 꼭지로 넣을 것이지 뭣하러 스크립트로 만들어서 사람을 낚는가 싶을만큼 짜증이 났지만 출판사 이름을 보니 세상에 모던 이면서 아카이브라니 허탈한 웃음과 함께 묘한 설득이 되었지만 아무튼 이 책은 어쩌면 참여한 저자들조차 이거 정말 진지하게 대화에 임하고 있는 것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대화가 그야말로 드문드문 이어진다 난 뭘 배워야 할지 모르겠다 내 식견이 부족한 탓인지 아카이빙에서 지나치게 압축율을 고려한 탓인지.. |
|
사피엔스의 미래라는 거창한 제목의 책, 호모 사피엔스 생각하는 사람, 과연 어떤 생각들이 펼쳐질지. 사실 제목보다 눈길을 끄는 것이 저자들이었다. 워낙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들, 그것과 과학과 인문학적인(?) 글로써 명성이 높은 사람들이라서 먼저 내 눈에 들어왔다. 과연 그들이 어떤 미래를 제시할 것인가가 궁금했다. 유토피아 아니면 피스토피아?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볼 것인가? 대부분 사람들은 낙관적으로 보지 않을까? 소수의 사람들만이 미래의 불안을 경고하고 있으니. 물론 더 과학과 기술이 더 발전하겠지 하지만, 그 발전의 씨앗이 골고루 배분되리라는 생각은 회의적이다.
빈곤을 보통은 “갖고 있는 것이 충분하지 않다는 느낌”과 리들리는 “사람들이 정말로 생계를 이어갈 수 없거나 생존조차 할 수 없는 처지를 의미”로 본다. 그들의 빈곤의 정의만 봐도 이들의 생각의 차이를 금방 알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의 경우를 봐도 분명히 절대빈곤을 넘어섰고 생활의 수준과 삶의 질 등은 나아졌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에게는 너무나 모자람이 넘친다. 왤까? 평등하지 못해서일 것이다. 그렇다고 하향평준을 하고 싶어하는 이들은 적지 않겠는가? 상향평준을 이루고 싶은데 현실은 못 따라가니 한숨만이 넘치는지도 모르겠다.
과학과 기술이 점점 이해의 수준을 넘어서 소수에 의한 발전을 이루고, 대부분 사람들은 그저 따라오라는 식의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기에 두렵기도 하다. 소수의 천재들에 의한 발전과 점점 그 규모가 커지는 거대과학의 시대에 과연 우리는 어떤 위치에 있는지?
이 책은 전체적으로 과학자와 인문학자라는 큰 범주에서의 토론이지만, 생물학자들과 철학자와 경영학자라고 해야 할까? 조금은 인문학자들이 밀리는 양상이다. 무엇보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이야기보다는 점점 숫자로 바뀌는 것 같다. 수치를 보여주고 나아졌다고 말하는 데 반론을 제기하기 쉽지 않다. 토론을 책으로 만들어서인지 저자들의 평소에 비해 깊이가 좀 모자라는 느낌이 든다. 생물학자 한 사람 대신에 물리학자였다면 어떤 미래를 그려냈을까 궁금하다. 거기에다 편집이 조금 아쉽다. 좀 더 가벼운 책이 되었으면 더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든다.
경고 아닌 경고, 사피엔스라는 종이 사라지고 새로운 유형의 인간이 등장할지 모르겠다는 예언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인간이 이대로 가다 보면 자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점점 그 파괴력이 증가하는 과학의 힘이 꼭 우리의 의도대로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분명한 것은 지금 현재는 불완전하지만, 과거보다는 분명히 나아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과학의 기본은 끊임없는 의심과 사고다. 우리의 미래에 대한 사고가 우리에게 보다 밝은 미래를 열어줄 것이다. 하지만, 말콤 “우리가 매번 새로운 문제를 낳게 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우리가 이룩한 진보에 대한 열광을 누그러뜨릴 필요가 있다”의 경고도 명심해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토론은 대립이 아닌 더 나은 길로 가기 위한 좋은 방법이다. 토론을 통해 서로의 길을 제시하고, 서로를 존중하면서 더 나은 길로 나아간다면 인류의 미래는 더욱 밝아질 것 같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