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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의 그림 vs 그림 김진희 지음│WILLcompany 刊
적어도 독자에게 미술 만큼 위안과 교양을 안겨주는 장르는 드물다. 더구나 미술감상의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다 보이지만 볼 수 있는 능력이 문제라잖는가. 그 문제에는 다소
이를테면 죽은 그리스도를 그린 만테냐는 초기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이다.
천사의 용모룰 미소년으로 그리기 시작한 '미켈란첼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가 등장하는
서양미술사를 빛낸 기라성같은 화가들의 이야기는 늘 재미있다. 성모 마리아 찬가를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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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해 보이는 그림 두 장을 나란히 제공한다.
전문비평인의 평을 듣기에 앞서 독자 나름대로 감상할 수 있는 권리를 먼저 부여한다.
독자와 예술가의 작품 외에 전문비평가의 선입견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감상할 시간을 주고 있다.
화가명도 없이 제작시기와 제목만이 주어진다.
한 페이지에 그림 한 장씩 두 페이지에 비슷해 보이는 다른 작품 하나를 나란히 배치해서 작품을 더 잘 보이게
한다.
명화를 많이 접한 사람들은 그림만으로도 누구의 작품인줄 알겠지만 나와 같은 일반독자는 블라인드테스트처럼 작품을
먼저 바라본 후 저자의 비평을 들어 볼 수 있다.
벨라스케스의 작품 <난쟁이와 함께 있는 발타사르 카를로스왕자>와 앙리 루소의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는 모두 2인 초상화 형식인데 벨라스케스의 작품에선 왕자를 돋보이기 위해 난쟁이 하인을 루소 자신의 초상화를 돋보이기
위해 여신을 함께 등장시킨다.
고귀한 왕자의 핏줄을
돋보이기 위해 당시엔 기형적이고 열등한 비교 대상을 초상화에 함께 넣었다고 한다. 그러나 벨리스케스의
작품에선 난쟁이의 모습이 전혀 열등하거나 하찮아 보이지 않는다.
명화라기 보다는
그림책에 나오는 일러스트처럼 보이는 앙리 루소의 작품은 제목을 알지 못하면 영감을 주는 뮤즈인지 모를 만큼 아름답지 않고 뚱뚱하며 전체 그림은
평면적인데 모델의 실물과 똑같이 그리려는 노력과 달리 그의 작품은 실물과 닮지 않고 화면 구성요소의 밸런스도 맞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요소들로 조명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풍속화처럼
서민들의 일상을 담을 그림을 서양미술사에선 <장르화>라고
하며 네덜란드 장르화는 보여지는 것 이면의 교훈이나 상징처럼 숨겨진 의미도 있다고 한다.
<포도주 잔을 든 소녀>의 창분 부분의 그림을 잘 보면 양손에
직각자와 굴레를 각각 들고 있는 여인을 통해 포도주의 단맛과 음주를 경계하는 절제를 <뚜쟁이> 란 작품에선 매춘의 한 장면을 통해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탕자 이야기”와 연관된 종교적 의미와 함께 악덕을 비판하는 도덕적 교훈을 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림만 보면 그런 교훈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색유리창의
그림도 말해줘야 알 수 있다.
<포도주 잔을 든 소녀>는 관람자를 의식한 듯한 연극의 한
장면처럼 보이는 17세기 일반 가정의 한 장면이라며 <카페에서>는 19세기 카페의 황금기였던 파리의 도심의 카페 한 장면을
보여준다.
근대 생활의 화가인
마네의 <카페에서>의 작품은 19세기 프랑스 도시 파리의 사회를 보여준다.
말하는 그림 vs. 보여주는 그림 ![]() <사려분별의 알레고리>에선 노인, 중년, 청년의 세 얼굴이 한 화면에 담겨있고 <찰스 1세 삼중 초상화>는
찰스 1세의 방향에 따른 세 모습이 나타난다. 세 얼굴이란
공통점이 있지만 <사리분별의 알레고리>에서 알레고리란
제목에서 짐작하듯 사람의 세 단계를 통해 과거 현재 미래를 상징하고 기억, 지성, 예지라는 인간의 세 미덕과 대응된다. 본문 187쪽 인용
과거에서 배워서, 현재에 현명하게 행동해야, 미래를 그르치지 않을 수 있다 본문 187쪽 인용
<사리분멸의 알레고리>에선 말하려는 상징이 숨겨져 있고 <찰스 1세 삼중 초상화>는
찰스 1세왕의 세 모습을 말 그대로 보여준다. 서로 다른
시간에 다른 방향을 응시한 찰스 1세를 그린 후 한 화면에 조합한 듯 입은 옷 색깔도 다른 점이 흥미롭다.
감상
감상자가 할 일은 작품의 뒤를 캐고 주변을 둘러봐서 작가의 의도를 이해해 주는 것이라 작품 앞에서, 그 표면에 시각을 집중하여 예술가와 동등한 자격으로 소통하는 것이다. 이주헌의 추천 글에서
적어도 나는 예술가와 동등하게 소통할 수 없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그림에 전문적인 평을 하는 전문비평가와 달리 순전히 사적인 감상자의 눈을 통해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즐겨도 무방하지만
딱 거기뿐이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그림에서 보여주는 내용들을 다 보고 있지 않았다.
저자는 치밀하게 비슷한 구도의 그림들을 찾아냈을 뿐 아니라 작가들의 비슷한 점과 다른 점들을 함께 제공한다.
명화의 양보다는 명화를 깊게 볼 수 있는 도상학적 비평과 서양미술을 통해 서양 역사의 흐름을 읽어내는 지적인
순간을 만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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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감상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잘 알려진 화가들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는 전시회를 기다리거나, 아니면 여행 중에 미술관을 찾아야 한다.
확실히 경험할 수 있는 양이나 폭이 작다보니, 감상전에 미리 많은 자료를 찾아보곤 한다. 그런데 <서양미술사의 그림
vs 그림>은 도리어 그런 부분이 아쉽다고 한다. 작품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그럴 때도 있다.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진짜 작품과 관람자 사이에는 일단 사진기가 끼어 들어와 있다. 그래서 크기에 당황할 때가 있었는데, 그러다보면 작품을 보기보다는
실제로는 저렇게 컸네, 혹은 작았네라는 생각에 먼저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매우 독특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일단 사진복제로도
효과가 덜해지는 회화중에서 비슷해 보이는 작품을 나란히 배치해둔다. 화가에 대한 소개도 제일 뒤로 미뤄두고
있어서, 화풍으로 알아볼 수 있었던 몇몇 화가를 빼고는 정말 아무런 정보 없이 작품을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베르메르의 ‘포도주 잔을 든 소녀’를 보고는 나는 소설 ‘게이샤의 추억’을 떠올렸다. 그래서 그림으르 소개하며 화가의 전작인 ‘뚜쟁이’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맞아
나는 그런 느낌으로 접근했다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아마
그림에 대한 소개를 먼저 읽었다면 내가 느낀 감상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작품과 함께 소개된
것은 마네의 ‘카페에서’이다. 정면으로 화가 혹은 감상자를 바라보고 있는 여성이 먼저 시선을 사로잡지만, 그림속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배경이 되어주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공통점이기도 하다.
비슷해 보이기는 하지만 정말 극명하게 다르게 느껴졌던 작품도 있었다. 바로 ‘빗장’vs’실내’이다. 프라고나르의 ‘빗장’은 더욱 격정적인 느낌을 주지만, 이상하게 내 시선은 드가의 ‘실내’에 멈춰 있었다. 정적인 그 공간에 드리운 무게감에 나마저도 끌려들어가는 느낌이랄까? 화폭에 팽팽하게 담겨 있는 긴장감때문인지 이 작품을 보러 필라델피아로 떠나고 싶을 정도였다. 아마 '실내'만 봤으면 이렇게까지 강한 끌림을 느끼지는 못했을 수도 있다. 그림과 그림을 함께 보면서 느끼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두 작품 다 밀실안에 있는 남녀를 포착해냈는데, ‘실내’는 정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기도 했다. 내가 생각한 상황은 책에서 제시한 것들과 또 달랐는데, 그런 것이 미술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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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볼 때 드는 생각이 있다. 화가란 존재는 나와는 다른 별나라에서 온 사람일까? 아니면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일까? 지금까지는 별나라 사람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그림을 보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서양 미술사의 그림 vs 그림>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버릴 수 있었다. 저자의 한 마디가 너무나 나를 편안하게 이끌어주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그림을 만났다면 그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을 만난 셈 치라고.
결국 그림도 화가라는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담긴 것인데 나는 왜 그렇게 그 모든 그림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세상에는 나와는 생각과 행동방식이 나와는 전혀 다른 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처럼 이 책은 독자가 그림을 대하는 자세부터 편안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인다. 그림은 말 그대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 말 또한 어찌나 크게 나를 위로해 주는지.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저자의 성장배경, 역사적 배경, 시대적 흐름, 미술 사조 등을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던 내게 저자의 이 한 마디가 모든 두려움과 어려움을 날려버리는 해독제가 되었다.
저자는 먼저 두 개의 비슷한 주제를 다룬 그림을 보여주면서 독자 스스로 그림을 보고 느끼라고 한다. 그 후에 각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어 독자의 이해를 도운 후 마지막으로 화가를 소개하면서 각 장을 마무리한다.
각 장 첫 머리에 담긴 그림을 보고 느낀 점이 저자의 설명과 같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그림 자체를 바라보는 내 시각에 이 책의 구성이 힘을 실어준 것만은 분명하다. 다른 이의 눈이 아닌 바로 내 눈으로 본 그림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으니까.
여전히 그림을 보고 감상하는 일이 익숙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내게 맞는 그림을 보며 감상할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살아 움직이기에 두려움이 그림을 대하려 한다. 내게 맞지 않는 그림이면 피하면 되고 맞는 그림이면 그 느낌을 즐기면 되고.
나처럼 그림 감상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분명 가장 좋은 감상의 길을 제공해 줄 내비게이션이 될 것이다. |
![]()
"서양미술사" 라는 제목이 들어가면 일단은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림을 잘 그리시는 아버지와 언니 그리고 조카들까지 집안에 3대가 이어서 그림을 잘 그리지만 어린시절부터 그림을 그리는데는 영 재주가 없었다 게다가 르네상스시대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다빈치,보티첼리,라파엘로,미켈란젤로 등의 대가들의 작품을 자주 접하게되다보니 그림 전반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 거 같다 특히 서양미술에 대한 책은 생각해보니 참 많이도 종류별로 읽었지만 여전히 새로 나온 책을 보면 읽어보고 싶고 또 읽으면 알지 못했던 그림이나 화가를 알게되니 더욱 좋은 공부가 되었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스스로 서양미술사에 대해, 많은 화가와 작품들을 알고 있다고 자신만만했지만 전문가가 아닌 이상 여전히 모르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비슷해 보이는 두 개의 그림을 두고 비교하면서 그 그림을 그린 화가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괘 상세하게 들려준다 첫 시작은 여인들의 뒷모습을 그린 어쩌면 독특한 그림으로 시작되었다 언뜻 보면 르누아르와 마네의 작품이 생각나지만 이 그림들을 그린 화가는 와토와 카유보트~ 그나마 와토는 들어본 적이 있지만 카유보트는 전혀 알지 못 했던 이름이라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되어서 좋았다 이 책은 낯익은 그림과 화가들 보다 낯선 작품과 화가들이 많아서 더욱 유익한 거 같았다 "소녀의 엉덩이"라는 부분을 읽으면서 여성의 누드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사회적 배경과 이유에 대해서 알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권력을 가진 남자들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부셰의 작품은 전에도 몇 번인가 본 적이 있었지만 그가 왕의 뚜쟁이 역할까지 한 것은 참 의외이기도 하지만 그도 결국 왕의 신하 중 한명일뿐이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귀족의 기원이 전사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로마시대를 생각하면 전사들은 모두 무기와 장비, 기병이면 군마까지도 자비로 분담해야했으니 그만한 재산이 있어야 하니 너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한때 영화, 소설로도 나왔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의 화가이자 여전히 베일에 싸인 베르메르의 초기작도 만날 수 있었다 "포도주의 잔을 든 소녀" 라는 제목의 그림을 처음 봤을 때는 화가가 베르메르라고는 생각지 못 했다 애니메이션 "플랜더스의 개" 에서 소년 네로가 죽기 전에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작품의 화가 루벤스는 일생을 부와 명예를 다 가진 행운의 캐릭터라고 생각했었는데 40대 이후 30년이라는 긴 세월을 손과 발이 뒤틀리는 고통 속에서 작품을 창작했다는 것은 알지 못했었다 찰스 1세의 초상화를 그린 화가 반 다이크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그의 장점이 참으로 부러웠다 나로 하여금 좋은 면을 드러나고 개발하게 하며, 스스로를 더 근사한 사람으로 여겨지게 하는 사람이라고 하니 그는 화가로뿐만 아니라 인간으로도 완벽한 인간이 아니었나 싶다 아마 공자나 맹자가 만났다면 자신들이 책으로 남긴 인(仁)을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림 속에서 여자 천사가 등장한 것이 남녀평등의 사상이 아니라 천사의 격이 떨어진 증거라고 한다 그림 자체에 대한 설명도 재밌었지만 그 그림에서 전혀 알지 못한 의미들 또한 많이 알 수 있어서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이 글은 해당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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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다 보인다'라고 했을 때 그 말에 동감하면서도 실감하지는 못했다. 아니, 처음부터 그런 느낌을 갖게 된 것은 아니다. 기존의 다른 미술서적과는 달리 이 책에서는 아무런 설명없이 대비되는 그림 두 점을 내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해서 독자로 하여금 아무런 선입견 없이 그림 자체를 살펴보게 해 주고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다 보인다,는 말이 내 마음을 울린 것은 첫번째 그림을 보고 난 후 그에 대한 부연설명을 읽기 시작했을 때였다. 다른 책을 볼때보다는 조금 더 긴 시간동안 진중하게 그림을 쳐다보고 글을 읽기 시작했음에도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그림 속의 인물과 배경에 대한 설명을 읽는 순간, 나는 아직 그 중요한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없구나,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서양미술사에 대해 많이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림에 관심이 많아 관련 서적을 많이 읽어봤기 때문인지 아무런 설명없이 그림만 봤을 때, 왠지 낯익은 그림과 그 그림을 그린 화가를 떠올리게 하는 경우도 많아서 완전히 그림 자체만을 바라보며 감상을 할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사전지식없이 작품만을 비교해보고 있을 때는 조금 더 그림을 바라보게 되는 것 같기도 했다. 화가의 대표적인 작품을 보여주기 보다는 서로 비교가 되는 그림 도판을 실은 것도 좀 더 작품 자체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효과가 있어서 내게는 더 좋은 느낌이었고 특히 홀바인의 예수 그리스도는 오래전에 체 게바라의 시신과 비교한 것만 봤었는데 또 다른 화가인 만테냐의 그리스도 그림과 비교해 보면서 홀바인의 그림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보게 되어 좋았다. 그래도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화면의 주종관계라는 주제를 놓고 벨라스케스의 '난쟁이와 함께 있는 발타사르 카를로스 왕자'의 그림이다. 그림의 풍채로 벨라스케스의 그림이구나,라는 것은 느낄 수 있었는데 그림 자체를 스치듯 봤었던 나로서는 솔직히 누가 왕자고 누가 난쟁이지? 라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망설이게 되었는데, 바로 그런 나의 느낌 자체를 벨라스케스가 의도한 그림 그리기라는 설명에서 감탄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더구나 저자의 설명을 읽으면서 그림은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그 안에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서양미술사를 담아낸 책으로써는 그리 특별한 것이 없을수도 있다. 하지만 편집과 글의 구성으로 봤을 때 그림 자체에 좀 더 집중을 하고, 선입견이나 배경과 환경에 대한 지식으로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술 그 자체'로 그림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으로는 이 책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 그러니까 중요한 것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을 때, 그림에 대한 설명과 그 시대의 사회, 문화에 대한 설명에 더하여 조금 더 깊이있게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저자의 글은 더욱 반가울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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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나 예술에 이제까지 거의 문외한에 가까웠지만 최근 들어 관련된 책도 조금씩 읽고 전시회도 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미술은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더라구요. 근데 이 책의 추천글에서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을 읽고 약간의 노하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미술 감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마음의 여유'입니다. '마음의 여유는 감각을 섬세하고 예민하게 북돋워 감상대상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합니다. '전문지식이나 경험의 부족에 따른 소외감, 열등감도 털어버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 저자는 '감상자가 할 일은 작품의 뒤를 캐고 주변을 둘러봐서 작가의 의도를 이해해주는 것이 아니라 작품 앞에서, 그 표면에 시각을 집중하여 예술가와 동등한 자격으로 소통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게 잘 안된다면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을 만난 셈 치고 다른 사람, 다른 작품과 대화를 이어 나가면 된다'고 말합니다. 이 내용을 보는 순간 예술작품을 대하는 제 마음가짐이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책의 전체적인 구성은 비슷한 주제의 두 그림을 먼저 보여줍니다. 그림에 대한 정보를 생략해서 미리 생길 수 있는 선입견을 방지합니다. 독자가 자신만의 시각으로 그림을 감상한 후에 설명을 읽으면서 그림을 이해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의 의도대로 저도 최대한 여유를 가지고 그림을 감상하려고 노력했더니 이전과 다르게 그림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서양미술의 전통은 현실에서 벗은 몸과 예술 속의 벗은 몸을 구별'합니다. <누워있는 소녀>와 <유령이 그녀를 지켜본다> 두 작품은 여성의 누드를 표현한 작품입니다. <누워있는 소녀>를 그린 화가는 부셰입니다. 부셰는 루이 15세와 그의 후궁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으며 권력과 영향력을 가졌던 화가입니다. 그림의 대상이 되었던 소녀는 이 그림을 본 루이 15세에 의해 궁으로 들어가게 되기도 하죠. <유령이 지켜본다>는 '고갱'이 그린 작품입니다. 고갱은 '10여년을 주식중개인으로 살다가 1882년 파리 주식시장 붕괴를 계기로 그전까지 취미였던 그림에 인생을 걸기로' 합니다. 그러나 '35살에 새로 시작한 일에서 성공하기가 쉽지 않고 화가로 산 20년 내내 가난에 쪼들'렸습니다. 정처없이 흘러다니다가 타하티에 도착한 그는 <유령이 지켜본다>에 등장하는 13세 소녀 테하아마나를 만납니다. 그때 고갱은 43세였구요. 그곳에서 머무는 테하아마나와 결혼생활을 했지만 유럽에 남아있는 진짜 아내와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지금의 시각으로는 참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죠. 군중속의 개인을 표현한 <십자가를지고 가는 그리스도>와 <가면과 함께 있는 자화상>도 인상깊었습니다. 다양한 얼굴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각각의 얼굴들이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지 상상하다보니 재미도 있었습니다. 또한 신혼부부를 주제로 한 <정원 속의 부부>와 <앤드류스 부부> 두 작품은 당대의 결혼과 사랑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그외에도 다양한 작품들을 다루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태도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들이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미술 작품을 볼때 가장 우선해야 하는 것은 자기 눈으로 그것을 보는 것'입니다. '제 눈으로 보기도 전에, 작품에서 궁금한 점이 생기기도 전에 화가의 생애나 사회적 배경, 미술사적인 의의 등의 설명을 들어버릇해서는 미술만의 재미와 맛을 느끼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 '미술작품 앞에서 항상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까지 합니다. 앞으로는 강박관념이나 부담감 없이 최대한 편한 마음가짐으로 미술작품을 감상하려고 노력해봐야겠네요.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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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vs 그림, 제목처럼 비슷해 보이는 그림 두 점을 작가 이름을 제외하고 제목 및 제작연도, 보관장소만 간략하게 표기하여 제시함으로써 그림 자체에 집중하게 한 다음, 유사성과 차이점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책이다. 유사성이 큰 그림을 제시하여 반복에 의한 주제또는 소재의 강조를 경험하게 되고 시기나 양식, 작가가 다르다는 차이에 의한 관점과 시선의 차별성과 다양성을 경험하게 만든 책이라고 한다. 명화읽기 류의 미술감상에 관심이 있는 미술 문외한에게는 아주 도움이 많이 되는 책이었다. 소개말에 나와 있듯이 시각예술로서의 미술감상의 묘미를 보다 충실히 느끼도록 안내하는 작가의 깊은 배려가 돋보이는 책이었다. 그리고 그림의 배경이나 예술가들의 생애에 대해 알게 됨으로써 느껴지던 혼란스러움을 작가가 아래와 같은 말로 정리해놓은 것 같아 공감이 되었다. ^^; "어린이를 위한 위인전 시리즈에 화가나 조각가가 끼어 있는 것을 보면 당혹스럽다. 아이들에게 작품을 보여주는 것은 권할 만한 일이겠으나, 그 인생에서 뭔가를 배우라는 말은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창작의 재능이 없는 보통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예술가들의 독선과 이기심, 오만은 사실 배워서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나쁜 사람이 예술가가 된다는 말이 아니라, 예술 창작의 과정이 그만큼 벅찬 것이라는 뜻이다. 많은 경우에 뛰어난 예술적 성취는 원만하고 행복한 삶과 양립이 어렵다." 훌륭한 예술 작품이 존경할 만한 인격과 품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형편 없는 인격에도 불구하고 그 인격의 폐허를 거름삼아 탄생하는 경우가 많다는 말 말이다. 이 책 역시 편견없이 그림과 제목만으로 그림이 보여주고자 한 것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왜 이 그림에서 진한 외로움이 느껴졌는지는 그린 사람이 누구이고 어떤 상황에서 그려진 것이다 라는 배경 설명을 들으니 더 와 닿았다. 작품 마지막에 화가의 생애에 대해 짧은 소개가 있었는데 몇몇 화가에 대해서는 작가의 주관이 다소 많이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경우가 있었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 또한 다른 작가가 풀이한 화가의 인생에 대한 주관적인 느낌을 토대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이 화가에 대해서는 이렇게 양립하는 시선이 있구나라는 걸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사진이 없던 시절의 관광 기념사진 같은 여행자 초상화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재미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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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서양미술사의 그림 VS 그림 그림을 좋아한다. 예술이 주는 힐링을 알기 때문일까? 그냥 좋아서일까? 그냥 그림이 좋다. 보고 있으면 기분 좋아지니까 말이다. 사람은 뭐가 좋으면 자주 그것을 찾는다. 내게 그림도 그런 듯 하다. 특히 이것이 그림이다 싶은 명화들이 그렇다. 모르겠다. 내가 이것이 명화라니까 좋은 건지 아니면 정말 그냥 좋은건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무명화가의 그림도 그냥 멋져 보일때도 많다. 이 책은 미술평론가가 쓴 책이다. 비슷한 두 그림을 비교해서 이야기 해준다. 저자는 우선 그림을 편견없이 보라고 한다. 그리고 난 후 그림에 대한 설명이 들어가는데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보니 그림에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가 참 재미있었다. 인상깊었던 것은 내가 좋아하는 로코코풍 화가에 관한 거였는데 그 숨은 이야기가 참도 재미있었다.
그림의 주인공은 15세에 가난한 집안의 여자란다.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로 어릴때부터 화가의 모델이었는데 15세에 이 그림의 모델이 되었다고 한다. 로코코 화풍 답게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그림의 뒤에는 안타까운 사연이 숨어 있었다. 뷔쉐는 마담뚜라는 불명예스러운 소릴 들을 정도로 관능적인 그림을 그려서 욕을 먹었단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그림 때문에 이 모델의 소녀는 왕에게 불려가 왕의 노리개가 된다. 그리고 17세에 아이를 낳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후궁도 되지 못하고 왕에게 버림받는다. 부쉐는 그림으로 왕의 욕정을 불러켰다고 한다. 어찌보면 이런 그림들이 어떤 예술로 보기 보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다른 의미가 부여되기도 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예술은 보는 이에 따라 완성된다고 본다. 보기에 무척이나 아름다운 그림인데 그 사연에 안타까웠다. 이 책을 보면서 예술에 대해 다른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참고 자료 부셰(Francois Boucher: 1732-1806) 18세기 프랑스 로코코 화가. 부쉐는 18세기 중반에 프랑스 궁정생활의 경박함과 표면적인 우아함을 가장 잘 나타낸 화가이며, 프라고나르와 함께 18세기 프랑스 회화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와토의 페트 갈랑트 회화(사랑의 연회)를 계승했다. 귀족들의 세속적인 취향에 걸맞는 선정적이고 장식적인 그림으로 더욱 유명하다. 저자소개
김진희 저자 김진희는 미술평론가. 연세대학교 신학과,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아트컨설팅서울, 광주문화예술진흥위원회 등에서 전시기획, 문화예술행정 업무를 했다. 현재는 미술의 역사와 현장에 대한 글쓰기에 집중하고 있다. <네이버캐스트>에 ‘화가의 예술과 생애’, 에 ‘Art in the Street’, 웹진 에 ‘그림 vs 그림’ 등을 연재했고, 논문으로는 <레디메이드로서의 작가 : 마르셀 뒤샹의 ‘로즈 셀라비’ 연구>가 있다.
『서양미술사의 그림 vs 그림』은 자기 의도를 전달하는 능력에 있어서 의문의 여지가 없는 믿을 수 있는 대가들의 작품을 선정하고, 비슷해 보이는 두 작품을 찬찬히 살피며 닮은점과 차이점을 따져 보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그러나 저자는 처음부터 화가의 생애나 사회적인 배경, 미술사적 의의 등을 설명하지 않는다. 독자들이 예술가나 비평가들의 권위에 짓눌리지 않고 예술가와 동등한 자격으로 소통하는 것이 미술 감상의 본질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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