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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나라는 최순실 게이트로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일개 아줌마가 대통령을 조정하여 국정을 농단하고 재벌들에 압력을 행사해 엄청난 부를 축적한 것이다. 이 엄청난 불의에 국민이 분노하고 좌절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크리스 마셜은 <성서는 정의로운가> ‘1장.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정의는 “분배, 공정, 권력, 권리”라는 개념적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한다(pp. 16~18).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사회의 상충되는 요구들을 조정하는 합법적인 권력이 행사되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정당하게 받아야 할 것을 빼앗기 위해 권력이 남용되면 불의가 발생한다. 지금 대통령과 그 측근들에 의해 저질러진 한국사회의 불의를 정확하게 지적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히브리 노예들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율법 아래 언약공동체를 형성한 사건과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야 말로 진정한 정의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정의’야 말로 성서에서 가장 자주 반복되는 주제라고 말한다. 특히 정의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에 속한다는 가르침은 매우 강력하게 마음에 다가왔다. “정의는 하나님의 보좌의 ‘기초’이고, 우주의 기초다(시편89:14, 97:2)”(p. 37). 세상에서 악이 명백히 승리하고 있음에도 성서의 선지자들은 하나님 자신의 정의와 신실하심의 실재를 의심하지 않았단다. 미국의 흑인 민권 운동의 지도자 마틴 루터 킹도 “세상은 정의의 편에 서 있다”라고 선언함으로써 성서 전통을 반향하고 있다. 이 책에서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정의는 전부 관계에 대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건강한 관계, 행복한 관계를 위해서 반드시 정의가 실행되어야 한다.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는 사회에서 불의의 희생자들,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들의 편에 서야 한다. 성서의 하나님이 그렇게 편애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편애는 궁극적으로 사회를 샬롬의 상태로 회복하기 위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회적 삶은 네 가지 면이 뚜렷이 드러난다(pp. 77~88). 첫째, 그는 사회적 차별에 대해 거부하며 종교인들의 독선과 오만을 비판했다. 둘째, 그는 경제적 불의에 대해 비판하며 당시의 탐욕스러운 자들을 공공연하게 공격했다. 셋째, 그는 제도권 권력에 불신을 드러내며 궁극적인 주권은 정의의 하나님께 있음을 분명히 했다. 넷째, 그는 전쟁과 폭력에 대해 거절하였다. 말하자면 그는 열심당의 혁명적 선택, 에세네파의 은둔적 선택, 성전 통치자들의 권력 체제의 선택을 모두 거부하고 제 4의 길을 선택했다. 그 길은 비폭력적이고 희생적이고 평화를 만드는 사랑의 길이다. 이는 예수를 따르는 모든 자에게 동일하게 요구되는 것이다.
도대체 이 땅의 크리스천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보수 집단은 정치와 종교의 분립을 주장하며 오히려 권력가들에게 아부하고 있다. 전 세계는 이기적인 욕망으로 춤추고 있다.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이 이에 대한 증거다.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추구할 때, 세상은 인종차별, 성차별,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들에 대한 착취, 등으로 정의와 샬롬이 사라질 것이다. 이러할 때에 정의의 하나님과 정의에 대해 수없이 말하는 성서를 믿는 자들은 정의와 샬롬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 지금 광화문 광장이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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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이사야 30:18, 비교구절:시편85:10) ..."
나는 신학교육가이신 크리스 마셜님께서 저술하시고 <KAP>에서 펴낸 이책 <성서는 정의로운가>를 꼼꼼이 읽다가 윗말씀에 마음이 확와닿았다.
사실 나는 크리스천은 아니지만 종교에 관심이 많다. 물론 성서가 예전부터 전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이고 구약, 신약은 오래전부터 읽혀오고있다.
그런데, 내가 성서를 처음 접하게된 것이 양정고등학교 2학년재학시였다. 그당시에 불어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번 기말고사에서 불어성적이 중간고사보다 현격히 잘본 학생에겐 선물을주시겠다는 말씀에 열심히 공부해서 마침내 내가 불어시험을 잘보았고 성적도 잘나오게되었다.
그런데, 나는 시험은 잘봤지만 나보다도 더 잘본 친구가 있으리라 생각되어 내가 선물대상자로 호명은 안될거라 생각되었다.
그러나 이게 왠걸 불어선생님게서 내이름을 부르시는게 아닌가! 나는 너무나도 뛸듯이 기뻤다.
그래서 단상으로 나가 선물을 받아 내자리로 와서 뜯어보니 그것은 바로 성서였다. 그때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친구들의 모습들도 기억이 난다.
아무튼 선생님께서는 <이번에 성적이 많이 올랐더구나! 앞으로도 열심히 불어공부하길 바란다. 글고 성서도 조금씩 읽어보길 바란다>라는 간단한 쪽지도 동봉하시는걸 잊지않으셨다.
바로 그때가 내가 성서와 접하게된 첫만남이었다.
물론 어렸을때 크리스마스즈음해서 교회오면 먹을걸 준다는 말씀에 교회를 갔던 추억은 누구나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기말고사에서 불어성적이 중간고사보다 현격히 잘봐 불어선생님에게서 주셨던 그선물 성서는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못할 선물이였다. 더군다나 그 여선생님께서 우리 고교때 유일한 여선생님이셨으니 기분이 더좋았다. 지금도 그 성함을 기억하고있을 정도이니...^^*
그러한 추억도 있었기에 나는 이책 <성서는 정의로운가>를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이책을 읽게된 동기는 성서에서 말하는 정의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것이 법에서 말하는 정의와는 어떻게 다른지 알고싶어서이다.
그런데, 이책은 책크기도 크지않고 페이지도 107쪽밖에 안돼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법에서 이야기하는 정의는 이세상이 불의가 아닌 의로운 사회, 정의가 살아숨쉬는 사회를 구현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런데, 성서에서 이야기하는 정의는 시편에 따르면 <하나님 보좌의 기초이고 우주의 기초>이다. 즉, 정의는 우주의 올바른 배열, 곧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현실의 작동방식을 가리킨다.
따라서, 성서저자들로 하여금 어디에서든 불의를 비난하도록 허락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모든 정의의 원천이고 척도의 기본확신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정의에 대해 설명해주시니 성서에서의 정의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기독교가 사회의 아픔과 같이하고 사회현실에 좀더 자애로운 손길을 보내주셨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글고 이책은 크리스천이 아닌 내가 읽기에도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물론 크리스천이 아니기에 다 알 수는 없었지만... 나는 만화 성서 등도 구입해 종종 보는 등 성서에도 관심이 많기에 그렇게 낯설지는 않았다.
그래서 앞으로도 좀더 공부를 해서 이책 <성서는 정의로운가> 에서 말하는 정의의 다양한 해석을 통해 성서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고싶은 생각도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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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광화문 일대에서 촛불집회가 있었습니다. 100만명이 모인 촛불 집회는 평화롭게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왜 모였을까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권력을 가진 이들이 우리의 삶과 안전을 위해서 존재해야 하건만 그들은 그렇지 못하였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살아왓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며, 우리 스스로 정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이유였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정의란 분배,공정, 권력,권리 이렇게 네가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우리는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왔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만든 법과 제도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척도이며, 때로는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면서 균형과 조화로움을 추구합니다. 그것을 책에는 인간적 정의라고 부르며, 성서에서 추구하는 신적 정의와 구분 됩니다. 성서에 쓰여진 신적 정의은 인간적 정의를 포함하고 있으며, 죄를 지을때 그에 따른 처벌을 하는 인간적 정의와 달리 하나님께서 내세우는 신적 정의는 배상과 보상을 통해서 그에 응당한 대가를 지불합니다. 그것은 인간적 정의와 다른 개념이며, 사람들과의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처벌은 서로의 관계가 회복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크리스 마셜은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마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p43) 이
문장이 눈에 들어 온 것은 우리 사회의 모습을 비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랑한다는 것은 내세우는 것입니다. 나를 내세우고, 경쟁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여기서 인간의 욕망은 커져 가고 있으며, 갈등과 반목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정의에 따라서 사랑과 공의를 실천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자가 될 수 있으며, 서로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성서적 정의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요구되는 과정에서 형성됩니다. 성서적 정의는 우리의 생존과 인간의 자아실현을 위해서 우리가 누려야 할 권리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권리를 빼앗긴 사람들에게 그 사람이 당연히 가져야 할 존엄성과 자유를 되돌려 주려고 노력하며, 그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갑니다.단절과 불합리함에서 벗어나 관계회복을 추구하는 것 , 그것이 성서에서 말하는 정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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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는 정의로운가
사실 '성서'라는 말은 그렇게 많이 사용하지 않는것 같아요. 개신교계에서는 성서라는 말보다는 '성경'이라는 단어를 더많이 사용하는것 같네요. '성서'라는 단어는 카톨릭쪽에서 많이 사용하는것 같은데.. 아무튼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제목을 '성서는 정의로운가'보다는 '성경은 정의로운가' 이렇게 했다면(물론 내용에도 성서보다는 성경으로) 나에게는 더 쉽고 친근하게 다가왔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정의'라는 말이 핫이슈인것 같습니다. 최근까지 정의란 무엇인지를 놓고 관련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고, 지금은 한무당에 의해 대통령이 휘둘리는 엽기적인 사태가 일어나다보니 세상이 '정의'가 무엇인지 이야기하는것보다 정의를 찾기위한 실천적인 행동에 더 많은 관심과 움직임을 보이는것 같네요. 촛불이 100만명이 모여서 1987년 6월항쟁이후 가장 많은 인파가 광화문에 모였다는 소식을 들으며 이땅에 정의는 죽지않고 살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네요.
크리스찬인 우리에게 정의는 어떤것이고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정의는 무엇일까하는것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게 될 즈음에 이책을 만난게 행운이네요. 아니 어쩌면 하나님은 나에게 이책을 통해서 정의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보라고 전해준것인지도 모르지요.
작금의 현실에서 그동안 개신교들이 권력에 붙어 권력지향적인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다보니 우리 개신교가 전체 손가락질 받는것이 아닐까 생각하네요. 역대 대통령중에 장로출신이 3명이나되고, 현재 국무총리라는 사람도 교회 장로라고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보여준 모습들이 크리스찬답지 못하고 자신의 이익과 뜻과 욕심을 채우는 세상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니까 기독교의 선한 영향력이 세상이 미치지 못하는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책은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정의에 대해서 구약과 신약 성경속의 말슴을 찾아서 해석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정의를 추구하는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첫번째 의무가 되어야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네요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며 멸시하며 너희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 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아모스5:21~24)
어떤 제사나 찬양보다도 정의를 행하는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씀하고 계신답니다. 또한 그정의는 그 사회의 가장 취약한 구성원들이 필요한것을 채워주는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이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성서의 하나님은 곧 사랑의 하나님이며 동시에 정의의 하나님이라는것을 이책에서 성경말씀을 근거로 설명하고 있어요.
이책의 마지막 구절이 이책 전체를 관통하는 저자가 찾아낸 하나님의 말씀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 말씀이 정의를 잊어버리고 사는 어지러운 우리나라 현실에 주는 하나님의 또하나의 메세지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 나라의 정의를 위해 분투하는 것은 '평화에 기여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정의를 추구하는 것은 또한 공동체의 상호 유대를 증진하는 것이고, 성령 안에서 기쁨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마침내 성서적 정의는 기쁨을 주는 정의이지 냉혹한 정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회복하고, 치유하고, 모든 것을 바로 잡는 것이기 때문이다 .
제목: 성서는 정의로운가
저자: 크리스 마셜
출판사: KAP
출판일: 2016년 10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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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여러나라에서 '정의'는 사람들에게 가장 관심을 끄는 성서에 '정의'가 정의 되어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궁금하다. 성서에서 말하는 '정의'는 세상에서 말하는 정의와 다르게 보일수도 있지만 이 비종교인인 나의 생각으로도 일견 저자가 해석하고 설명하는 성서의 이야기와 성서는 정의롭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