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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총림에 주석하시던 스님들에 대한 책은 상좌들의 노고로 자주 법문집의 형태로 출간되곤 했지만, 한소식 하셨다는 춘성스님에 대한 책은 전혀 찾을 수가 없어서 항상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춘성스님에 대한 방대한 자료와 사진을 곁들인 책이 출간되어, 타는 목마름의 갈증을 해소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책은 크게 3편으로 나뉩니다. 1편은 작가가 춘성스님과 인연이 있는 분들과 면담을 통한 자료수집과 문헌을 통한 자료수집 방법으로 춘성스님의 발자취를 찾아가면서 일대기를 서술합니다.
2편은 춘성스님과 인연 있었던 스님과 재가불자들이 스님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무비스님과, 수경스님, 시인 고은을 비롯하여 스님의 상좌격이 되는 여러스님들과 춘성스님께서 주석하시던 망월사 보살님들의 생생한 증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3편은 스님의 평소 일화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러 책에서도 자주 인용되었던 [경찰서 조사사건], [육영수 여사와의 일화] 등을 비롯하여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일화 20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흥미를 이끌만한 내용이 많습니다. 그리고 스님의 기행과 파격적 언행을 가감없이 표현하였습니다. 작가의 자료수집과 조사를 높이 평가합니다.
한 가지 우려가 되는 점이 있다면 스님의 기행과 파격적인 언행에만 초점을 맞추어 재미와 엽기 위주로 읽는다면 우리 독자들이 달을 보지 못하고 작가의 손가락 끝만 바라보면서 춘성스님을 이해하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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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할머님을 따라 동네 뒷산 장대골 절에 가던 날 그 어느해 내가 열 살도 안된 나이에 걷던 산길 오솔길 같기도 한 그 소나무숲이 파란 새싹을 드러내고 있는 등불 달린 그 산길을 올라가 보았던 그 절에서의 주변 경치와 나물로 비벼서 먹던 그 공양은 나와 나의 할머니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있다. 까만 글을 읽으면서 그 옛날을 생각 하고, 할머니를 생각 하고 스님들을 생각 하면서 그 감동을 옮겨본다. 스님을 볼때나 만날 때면 그리고 절에서 부처님을 뵙거나 할때면 나에게 꼭 한가지 마음에서 들려 오는 소리가 있다. 나도 부처가 되고 싶고,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며 그렇게 일생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을 살면서 삶이 무엇인지 알아 가는 시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부처가 되고 싶고, 그렇게 행복 하고 싶은 생각 밖에 없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들 삶을 때로는 힘들게도 하고, 슬퍼게도, 그러나 기쁠때도 있고, 즐거울때도 있는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진 희노애락의 삼라 만상을 느끼며 하루 하루를 살아 가고 있는 거 같다. 행복 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은 현실에서 피하려고 해도 피할수 없는 하나의 그물처럼 얽히고 설킨 사슬의 그늘을 끊을수 없는 것은 역시 욕심이 사람을 집착에 사로 잡히게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한 용운 님은 교과서에서 많이 들어서 익히 알지만 내가 존경하는 이유는 독립 운동가시고, 스님이시고, 시인 이라는 그런 부분들이 공감가고, 나를 불제자로 있게 하는 것인지 모른다. 내가 정말 닮고 싶은 한분이신 만해 스님의 수제자라는 것이 정말 부러운 부분이다.
한 용운 -박윤성
스님! 지금 어디에 계시나요 백담사에서 도를 닦으시며 기미년 33인의 한사람 내가 닮고 싶은 부처님의 제자 사람 세상에 부처의 진리를 꽃잎 흩날리듯 날리고 간 사람 사랑의 이 땅 사람
그렇게 나의 뇌리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한 스승이라 생각 합니다. 세상의 나의 스승에게 이글을 바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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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받아들고 멈칫 자그마한 고민을 하였다. 우리가 살아가는 땅위에는 수억수천만년을 대대로 이어져내려오는 역사가 존재하고 그 속에 우리가 알고 있기도 하고 모르기도 하는 다양한 풍습과 생활습관과 그리고 또 마음으로 의지하고자 하는 심리를 이용하여 생겨나기도 하고 다른곳에서 전해져 퍼지기도 한 수 없이 많은 종교가 생존한다는 것이다. 그 종교중 나는 그 어느것도 선택하지 않는다. 하지만 불교의 책자를 여러번 읽어본적이 있다. 바른 도리를 일컷는 좋은글귀들이 있어 첫장은 읽었으나 그 다음장부터는 읽어도 무슨 뜻인지를 모른다. 그래서 덮어둔 책자가 우리집 서재에 아직도 있다. 그다음 기독교의 성경책이 또 한권이 서재구석에 꽂혀있다. 아직은 내 영혼이 어느 종교도 선택하지 않았다. 그냥 관심을 조금 두고 이것 저것 다 읽어두면 좋을 것 같아서 말이다. 오늘은 춘성이라는 도서를 만나고 솔직히 내가 이 책을 읽고 소화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한것 같다. 왜냐하면 스님들의 이야기에 대해서 아는게 하나없고 오로지 절에서 마음을 수양하고 도닦으시는 분들? 이렇게 스님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정리가 정말 거기에서 끝이다. 다른 분들은 모두 춘성스님에 대해서 유명하셨다고. 잘 안다고 혹 잘은 몰라도 춘성스님에 대해서 들은바가 있다고들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나는 너무 아는것이 적어 이 책을 읽는데 특히 나의 모든 것을 집중하고 신중히 읽기시작했었다. 무애도인 춘성이라 불리우며 이 역사에서 사라진지 30년이 된 그를 이렇게 책으로 낼만큼의 현대불교에서 큰격랑을 헤쳐왔다고 소개한다. 지상과 인터넷상에서 그가 남긴 정신 사상, 일화, 비화 등이 정착할 주소도 모른채 떠돌아다니고 있다고 한다. 정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밖에 없을만큼 시선을 집중시킨다. 언젠가 서울 가는 길에서 여자스님 한분을 옆좌석에 모시고 짧은 시간을 이야기 나눠본적이 있다. 차려입은 복장만 틀리고 같은 여자임에도 헤어스타일이 다를뿐 그냥 보통 사람이다. 참 신기하게 생각하고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았던 내 모습이 부끄러울 정도로 너무 평범하고 이야기도 곧잘 하셨다. 하지만 한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우리 동네 교회 다니는 아줌마들처럼 졸졸졸 따라다니면서 입버릇처럼 우리교회 나오세요 라는 식으로 <절에 한번 나오세요.> <불교믿으세요> 라는 말을 한번도 들은것 같지 않다. 그래서 더더욱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고 갔고 마지막에 연락처까지 주면서 가끔 연락해서 안부 남기자고 하고 헤어졌다. 수련중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그 이후 한번도 통화를 해본적은 없지만 그때 그 짧은 만남이 강하게 인상에 남는다. 책속에서 독자와 많은 공감대를 이루는 글줄을 여러번 읽기도 하고 다시 또 펼쳐보기도 하면서 춘성스님이란 분에 대해서 조금씩 조금씩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사는것이 다 대중이 있을적에 내가 거기에 있는 것이지... 대중이 없으면 나 혼자서 거기에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런 자그마한 글줄 하나도 왜 이렇게 마음에 와 닿는 것일까... 춘성스님은 자신이 수십년간 수행을 하고 정성을 다해서 살아온 삶을 그려낸 책이다. 누구에게나 삶은 소중하고 그 삶에 대한 책임, 그리고 그 가치에 대해서 충분한 노력을 한다. 어떤 사람은 죽으을때가 되면 자기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 웃으면서 자식들에게 들려줄 수 있고 또 어떤 이는 허무하게 살아온 자신의 삶을 한탄하며 죽어도 눈을 못감는 것이 바로 그 차이점인듯 하다. 한생을 고스란히 불교와 함께 세상을 떠났어도 역사에 남을만큼, 책으로 나올정도로 도인이심을 알게 되었다. 가는길이 다를지언정 이런 멋진 분들의 이야기를 알고 지내는것도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배울수 있는 점이 많고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 더욱 늘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삶은 하나일뿐, 내가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한번이라도 생각하고 있다면 이 도서를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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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스님의 책을 좋아하는 편이다.
법정스님의 책은 하나도 빠지지 않고 챙겨본다.
무애도인의 삶의 이야기... 순탄치 않은걸이라.. 으레 짐작하고 책을 열게 되었다.
총 3단락으로
춘성 일대기 내가 만난 춘성, 일화로 만나는 춘성으로 나눠져 있다.
내가 재밌게 보았던건 일화로 만나는 춘성스님 이였다.
- 공부를 철저히 하는것 , 그리오 무엇보다 돈에 욕심이 없는 것, 아무것도 소유치 않는 것은 지금 스님들이 배워야 합니다. -
좋은 옷은 네가 입어라 에는 정말 無의 삶을 보여 주셨고..
불우한 사람에게 자기 옷을 벗어주고 스님은 몇겹을 짚은 옷을 입고 다니셨다 한다.
박경훈과 춘성의 대화에서..
"스님 모처럼 부탁 해서 해 입은 새옷을 하루만 입어 보시고 남을 주시면 됩니까?"
"입고 싶은 옷 , 하루만 입었으면 족하지, 평생 입든 이틀은 입든, 언젠가는 벗어야 할 껍데기다"
-숙연해졌다.
일화에서... 오후 2시에 50세쯤된 남자가 추위에 벌벌 떨고 있었는데..
춘성은 그자리에서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어 주고 팬티만 입은 차림이라 나갈수가 없어서
어둑어둑 해지자 길가로 나왔다
그리고 절에 들어갔다.
그리고 비구니가 가져온 입을 입으면서 중얼거였다
나라면... 가능했을까?
춘성은 평생 옷 한벌 바리때 하나만으로 살다가 무소유 실천자였다.
자신의 삶의 죽음 앞에..게송을 읊었다
"87년의 일이란 일곱번이 넘어졌다, 여덟 번 일어나는 것이로되
횡설수설이여
붉게 타는 화로 위에 한 점의 눈일레라."
자신의 삶을 극명하게 정리하였다.
무애도인으로써 자신의 삶을 불사지르고, 역사의 저편으로 갔다
아마 그곳은 삼세제불도 만날수 없는 곳일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 삶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無에 대해 생각 했다.
무소유에대해.. 나눔에 대해.. 그리고 내 마지막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어려운 책이지만... 한동안.. 머리속에 남을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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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孟子)>에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올바로 기르면 천지 사이를 꽉 채울 수 있는데, 그 기를 기르기 위해서는 도(道)와 의(義)가 항상 수반되어야 하며, 도(道)와 의(義)가 없으면 그 기가 점점 줄어든다고 하였다.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호연지기를 쉬운 말로 풀이하자면 ‘양심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을 때 저절로 발하는 당당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애행(無碍行)이란 행동이 규율에 제약받지 않는 것을 말한다. 어떤 것이든 행하지 않을 것이 없고, 무엇이든 먹지 못할 것이 없다는 뜻의 막행막식(莫行莫食)으로 표현되는 무애행은 불가(佛家)의 계율에 따르면 행하거나 먹어서는 안 되는 것까지 구애받지 않는 것을 뜻한다. 무애행은 세상의 이치를 터득하여 세속(世俗)에서 부여하는 가치가 허무하다는 것을 깨닫고, 심지어는 자신의 생명조차 초개처럼 여기며, 표리(表裏)가 여일(如一)할 때 비로소 나올 수 있는 ‘당당함’이다. 유가에서는 시종 예의(禮義)를 버리지 않으나, 불가의 무애행은 예의조차도 구애받지 않는다. 무애행으로 이름이 알려진 분은 구한말의 경허 스님인데, 경허의 제자가 만공이고, 춘성이 만공을 스승삼아 수행했으니, 춘성의 무애행은 연원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춘성은 13세에 강원도 백담사에서 출가하여 만해 한용운의 상좌승이 되어 받들다가 3.1운동 후 만해가 형무소에 갇히게 되자 옥바라지를 하였다. 이때 스승인 만해가 차가운 감옥 마루에서 누워있을 것을 생각해서 자신도 불도 때지 않은 방에서 이불도 없이 생활했다고 한다. 이후 학승(學僧)으로서 불경을 연구하여 한때는 화엄경(華嚴經)을 거꾸로 암송할 정도로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이전에도 수행을 위해 물독에 들어가 잠을 쫓기도 하고 한겨울 바위 위에서 몸이 얼도록 좌선하기도 했지만, 본격적으로 선(禪) 수행을 하기 시작한 것은 40대 중반 이후 만공을 만나면서부터이다. 춘성이 만공을 처음 만났을 때 만공은 춘성이 너무 많은 지식이 있다고 해서 화두(話頭)를 주지 않았다고 한다. 선(禪) 수행의 핵심은 한 조각의 말을 화두로 삼아 수행하여 깨달음의 경지로 나아가는 것이므로, 많은 지식은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기 때문이다. 춘성은 스스로 ‘달마가 왜 서쪽에서 왔는가?’라는 화두를 붙잡고 참선수행을 했는데, 그 후에 만공이 그에게 ‘별전일구(別傳一句)는 재기처(在其處)요’라고 묻는 것을 화두로 삼고 수행하였다. 어느 날 꿈에 만공이 그에게 연꽃을 들어 보이는 것을 보고 문득 깨달음을 얻으니, 그때 나이 50세였다. 그 후 87세에 열반에 들 때까지 한 점 거리낌이 없는 무애행을 행했다고 한다. 우리 같은 범속(凡俗)한 사람들이 무애행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 당시 불가에서도 그랬던 듯 싶다. 춘성과 같은 경지에 이르지 못한 중들이 춘성의 기상천외한 행동을 보고 비난했으며, 반대로 춘성의 무애행의 본질을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겉모양만 흉내 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말이다. 춘성을 이해하지 못해서 비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업망(業網)에서 허우적이면서 인연(因緣)의 끈도 끊지 못해 정신을 차리지도 못하는 자들이 그저 춘성의 겉모양만 흉내 내는 것은 가소로운 일이다. 이를 두고 광망(狂妄)하고 허탄(虛誕)하다고 하는 것이다. 육신(肉身)을 갖고 있는 동안 끊임없이 오욕칠정(五慾七情)에 노정(露呈)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엄청난 각고의 노력 후에 오도송(悟道頌)을 인정받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수행의 시작임을 알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그만둘 수 없다. 춘성이 평생 이불을 덮지 않고 단벌의 옷으로 무소유를 실천한 것은 바로 이런 까닭이다. 머리털만 깎고 가사만 걸쳤지 단 한 번도 용맹한 수행을 해보지 않은 땡중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른바 깨달았다고 자인한 후에는 수행을 던져버리고 경허나 춘성의 막행막식을 흉내내는 중들 역시 경계해야 할 것이다. 고려 시대에도 깨달았다고 하면서 그 뒤로 수행은 하지 않고 허탄한 짓만 일삼는 중들이 많이 있었는가 보다. 당시 보조국사 지눌은 돈오점수(頓悟漸修), 즉 한순간의 깨달음에 빠지지 말고 꾸준히 수행할 것을 주창했다.
철두철미(徹頭徹尾)한 무소유와 표리통철(表裏洞徹)하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떳떳함과 인민(人民)을 불쌍히 여기는 자비심이 없이 하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진짜 무애행이 될 수 없다. 이 책에서 보이는 춘성은 진실로 무애행을 행한 것 같다. 위로 부모를 봉양하고 아래로 처자식을 부양해야 하는 업을 지니고 사는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그의 무애행을 본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평생 무(無)자를 화두로 삼아 수행하라는 가르침을 새기고 사는 것은 좋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고민하고 성내는 것 모두가 소유욕, 집착에서 온다. 이 모든 것의 실상은 연기나 안개처럼 허무한 것이라는 것을 몸으로 느끼지는 못하더라도 머리로, 가슴으로 알고만 있어도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춘성 자신이 워낙 명리(名利)를 돌아보지 않았고, 자신의 법어(法語)를 글로 옮기는 것도 싫어하고, 죽은 후에도 자신을 기리지 말라고 해서, 그 동안 춘성에 대해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며, 혹 그의 이름을 안다는 사람도 그의 본 모습을 안다고 하기 보다는 기이한 행동만을 기억하는 것이 다였다. 그런데 이 책이 나와서 춘성이라는 큰 스님, 큰 스승이 이 땅을 다녀갔으며, 여전히 가르침의 울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