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
|
파랑 바탕에 데이지꽃을 배경으로 여자와 남자가 멀리서 애틋하게 바라보고 있는 듯한 그림이 <내가 사는 이유>라는 제목과 함께 눈에 들어 온다.
미국의 살고 있는 열 닷섯살 데이지는 자신이 태어나면서 엄마를 잃은 데이지는 요즘 새엄마와 새로 태어날 의붓동생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 있는 상태다. 거기에다 새엄마가 자신이 먹을 음식에 독을 탔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음식 먹기를 거부하기 시작하면서 거식증에 걸려서 몸다 깡 마른데다 새엄마와 사이뿐 아니라 아빠와 관계마져도 서먹해 진다. 그러던 차에 이모가 살고 있는 영국으로 보내진다. 당시는 전쟁의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미국의 뉴욕에 살았던 데이지는 자신이 살았던 도시와는 너무 다른 영국의 시골 생활에 낯설기도 하지만 새롭고 신비롭게 다가온다. 거기에다 첫눈에 반한 에드먼드와 함께 사촌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녀의 거식증도 부정적인 생각들도 어느덧 긍정적으로 바뀌게 된다. 이모를 통해 자신의 엄마를 그려보기도 하고 이모가 출장을 간 사이 사촌들과 함께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도 잠시 전쟁이 터지고 군인들이 마을과 집을 점령하게 된다. 행복의 순간도 잠시 사랑하는 에드먼드와 남자 사촌들과 어린 파이퍼와 데이지는 서로 헤어지게 된다. 전쟁의 공포와 죽음과 기아의 공포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파이퍼를 통해 데이지도 힘을 얻고 우여곡절 끝에 다시 집에 돌아 온다. 하지만 에드먼드와 사촌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아빠의 걱정된 전화 한통으로 데이지는 미국의 뉴욕집으로 가게 된다. 그후로부터 6년... 전쟁이 마무리 되고,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사촌들과 재회를 하게되는데...
데이지가 영국에 오지 않았더라면 미국의 뉴욕에서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존중받지도 사랑받지도 그렇게 존재감 없이 살다가 거식증으로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국으로 사촌들과의 만남을, 전쟁을 통해서 데이지는 성장해 가고 어른이 되어 간다. 데이자와 에드먼드의 사촌간의 사랑이야기. 우라나라 정서와는 다른감이 있긴하지만 순수한 그들의 사랑에 응원을 보낸다. 그 안에 들어 있는 많은 사랑중에서 파이퍼와 젊은 군인의 순수하고 애틋한 전쟁속에서 피어난 사랑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내가 사는 이유>는 데이지라는 10대 소녀의 성장소설이다. 전쟁을 배경으로 하면서 과거의 전쟁처럼 적군과 아군이나 동맹국과 적국의 개념이 무너진 듯하다. 누가 적군이고 아군인지도 왜 전쟁을 하는지도, 같은 민족이면서도 서로 다른쪽에 서있기도 한다. 2분법적 사고가 아닌 글로벌시대에서 우리라는 개념보다 나라는 개인주의적인 이념이 깔려 있어서 이기도 하고 구지 구분을 할 필요가 없어서이기도 할 것이다.
(p. 86) 모든 전쟁에는 전환점이 있다. 모든 사람에게도 전환점이 있게 마련이다. 데이지에게 전환점은... 내가 사는 이유... 데이지가 사는 이유는 에드먼드다. 예전에는 아마도 왜 살아야하는지 왜 살아가는지를 몰랐을 수도 있고, 알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전쟁 때, 또 전쟁이 끝나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녀가 사는 이유는 에드먼드다. 그럼 데이지가 아니 내가 사는 이유는 뭘까?! 곰곰히 생각해 본다. 내가 사는 이유를... |
|
내가 사는 이유
푸른 색 바탕의 하얀 꽃, 꽃 위에서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소년과 소녀. 내가 사는 이유...... 뭘까? 의미심장한 제목이다. 그리고 성장소설. 이 책을 골라 읽게 된 이유이다. 성장소설은 성장소설 특유의 매력이 있다. 어른이 아니라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의 소년이나 소녀. 개인마다 그 나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과정을 겪어왔기에 그만한 나이에는 그랬었지 하게 된다. 그런 한걸음 물러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어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읽게 되는 게 아닐까. 미국 뉴욕에 사는 열다섯 살의 소녀 데이지. 계모의 미움을 피해 영국의 펜 이모네로 가는데 담배를 꼬나문 깡마른 사촌 에드먼드가 마중을 나와 그와 첫대면을 한다. 핸드폰 수신불가지역의 시골마을이 마치 수백년이나 살았던 것처럼 곧 익숙해지고 사촌 오누이 사이에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인 척 가장하던 마음이 불어오는 봄바람에 살랑 일어나 춤을 추듯 에드먼드에게로 주체할 수 없이 쏟아져버린다. 둘은 낮에는 낮잠을 자고 다른 사람들이 잠든 시각에 일어나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줄다리기를 하는데 그 줄다리기는 전쟁으로 인해 그만 끊어지고 만다. 전쟁이 시작된지 5주일이 흘렀다고 해도 어디선가 폭탄이 새로 터졌다는 소문이 있었다고는 해도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배급이라는 말에 아무래도 사태가 좀 심각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하얀 넝쿨 장미가 집 앞 벽을 뒤덮으며 흐드러지게 피고 다람쥐랑 고슴도치랑 오리, 사슴, 개, 염소, 닭, 양이 한가로이 노니는 풍경 속에 나타난 낯선이는 평화로운 정적을 깨뜨리고 새로운 사건이 등장할 것임을 예고했다. 그리고 전쟁과 군인들은 예상대로 그들을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파이퍼와 데이지는 '소모가능한 민간인 신분'의 나머지식구들과도 떨어져 끝도 없는 길을 달리는 자동차를 타고 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빌려서 사는 것처럼 맥에보이 가족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다른 사촌들이 있는 곳을 알아낸 파이퍼와 데이지는 우여곡절 끝에 집에 도착하지만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울린 전화벨. 데이지에게 익숙한 목소리였다. 데이지가 아빠에게 돌아간 후로도 세월은 흐르고 사람들은 살아갔다. 데이지는 다시 영국을 찾아 사촌들을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듣는다. 다시 만난 에드먼드는 상처투성이의 외모처럼 마음도 상처투성이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상태였다. "사랑해".... "그럼 왜 나를 떠났어? -224쪽에서- 손에 쥐가 나도록 잡고 너를 생각하며 살았다는 이야기를 한 뒤 에드먼드가 한 한 마디의 말에 가슴이 찡 했다. "오케이" 그리고 차가워진 데이지의 손을 다시 따뜻한 자기 손으로 감싸쥐는 장면도. 사람들이 죽어가면서 내는 소음을 어떻게 꺼야할지 몰라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었다니.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다. 그리고 에드먼드와 데이지는 정원사가 되었다. 마지막 문장이 책을 덮고도 오래도록 잊혀지지가 않는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많은 경험을 한 후 나는 내가 어디에 속하는지 깨달았다. 여기, 에드먼드가 있는 이곳. 바로 이것이 내가 지금 사는 이유다. -237쪽에서-
모든 전쟁에는 전환점이 있다. 모든 사람에게도 전환점이 있게 마련이다. -87쪽에서- 미국에서 영국으로, 도시에서 시골로, 일상에서 전쟁으로, 아이에서 어른으로. 전환점을 지난 데이지의 이야기에 감동이 일면서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전율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작가 멕 로소프의 글은 처음 읽는데 이 단 한 권의 소설로 나는 이 작가에게 반해버렸다. |
|
자신때문에 엄마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데이지는 아빠와 재혼한 새엄마(데이지는 그녀를 악녀 다비나라고 부른다)가 임신하자 엄마의 언니인 펜 이모가 사는 영국으로 보내진다. 공항에 내리자 이종사촌인 에드먼드가 담배를 피며 그녀를 맞이하는데 그는 데이지가 입밖에 내지 않은 그녀의 마음까지도 읽어내는 능력을 갖고 있어 데이지는 놀란다. 이때까지만 해도 둘 사이에 사랑의 씨앗이 싹틀거라고는 난 생각지도 못했다. 그때부터 데이지는 그녀를 다정하게 맞이해준 펜 이모와 그녀의 아이들인 오스버트, 에드먼드, 아이작, 파이퍼와 고양이들과 개들과 함께 영국의 쓰러져갈 것 같은 집에서 살게 된다. 하지만 얼마 후 펜 이모는 강의를 위해 오슬로로 떠나고 그 후 생각지도 못한 전쟁이 발생한다. 사실 이부분은 좀 허무맹랑한 느낌이 들었는데 전쟁이 났다고 했지만 책을 읽는 동안 그 전쟁이 정말 일어난 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함께 일하던 아이가 총에 맞아 죽는 장면에서야 비로소 진짜 전쟁중인 상황이구나 싶었다.
다섯명의 아이들은 처음엔 전쟁에 대한 심각함을 느끼지 못한다. 그저 자신들을 감시하는 어른이 사라졌다고만 생각했을 뿐. 더구나 서로에게 강하게 끌리던 데이지와 에드먼드에겐 둘만의 시간을 맘껏 갖을 수 있었으니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점점 먹을 것도 떨어지고 군인들이 강제로 집을 점거해버리자 데이지와 파이퍼는 다른 곳으로 보내진다. 그곳에서 둘은 열심히 일을 거들기도 하고 몰래 나머지 아이들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갑작스런 적군의 침입으로 위험했던 순간, 둘은 탈출에 성공하여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길을 걷고 또 걷는다. 왠지 끝없이 길을 걷는 장면은 <더 로드>를 연상케했다. 결국 데이지와 파이퍼는 집에 도착하고 얼마 후 갑작스런 아빠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은 후 데이지는 미국으로 돌아간다. 몇년의 시간이 흐르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 데이지는 그곳에서 사촌들과 재회하고 전쟁의 아픔을 내면에 고스란히 간직한 에드먼드를 만난다. 하지만 그는 떠나간 그녀를 원망할 뿐 그녀의 얘기조차 듣기를 거부한다.
현대적인 시대를 배경으로 전쟁이란 매개체를 이용해 아수라장인 전쟁터의 한복판에서 객관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이종사촌인 데이지와 에드먼드의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책을 읽어보면 그들의 사랑이 불륜이란 느낌보다는 서로의 마음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한차원 더 높은 정신적인 교감의 대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의 잔상으로 내면으로 숨어버려 말도 하지 않으려 하고 자신의 이야기조차 들으려 하지 않는 에드먼드를 향해 데이지는 끝없이 이야기한다. 너를 만나기 위해 그동안 살았노라고. 그것이 바로 내가 사는 이유였다고.
|
|
우리가 누리는 일상의 평화가 그대로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은 잠재되어 있으며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 우리가 누리는 일상의 평화가 얼마가 깨지기 쉬운 것인지 날마다 인식하며 산다면 그것처럼 고통스러운 것도 없을 것이다. 망각은 신이 내린 축복인 것이다. 그렇지만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것도 있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생을 온통 사로잡는 기억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우리는 또한 그것 덕분에 살아가며, 때로 전쟁을 이겨내기도 한다. 뉴욕에 살던 데이지는 열다섯 살짜리 소녀다. 계모가 데이지를 싫어하는데다가 임신까지 하는 바람에 영국에 있는 이모 집에 보내진다. 공항으로 마중을 나온 사람은 이모가 아닌 사촌 에드먼드다. 입에 문 담배하며, 깜깜한 밤중에 불도 안 켜고 자기 혼자 도끼로 대강 머리를 자른 것 같은 머리 스타일하며, 도대체가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열네 살짜리 소년과는 영 딴판으로 생긴 소년이다. 그런데 바로 그 사촌 에드먼드랑 사랑에 빠진다. 사촌들과 친하게 지내게 된다. 그런데 이모가 평화 회의에 참석하러 노르웨이 오슬로로 출장을 간 사이, 정체불명의 적군이 영국을 침공하여 전쟁이 일어난다. 영국은 방어 불능의 상태가 된다. 어른 없이 남겨진 아이들은 이내 혼란을 극복하며 농장을 그들만의 세상으로 만들며 즐긴다. 데이지는 에드먼드랑 집 꼭대기에 있는 작은 침실, 아니면 처마 밑에 있는 창고, 아니면 새끼 양 헛간, 아니면 그동안 찾아낸 수천 군데 비밀 장소 중 하나로 숨어들어 더 오래, 더 많이 서로를 갖기 위해 몸부림친다. 전쟁 상황이지만 행복한 나날이 아닐 수 없다. 계모가 만든 음식을 먹느니 차라리 굶는 것을 선택하던 데이지는 살이 쪘다는 소리를 걱정할 정도로 나아진다. 그러나 전쟁은 이들의 평화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군인들이 마을에 주둔하면서 변화가 일어난다. 농장을 점령한 군인들은 데이지와 그녀의 어린 사촌인 파이퍼를 다른 지방으로 보낸다. 에드먼드와 헤어진 데이지는 파이퍼와 함께하며 여러 어려움들을 극복한다. 우리는 천천히,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우리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 핏줄을 타고 흐르는 피가 내 손을 통해 내가 잡고 있는 파이퍼의 손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사랑해, 사랑해” 파이퍼에게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말하고 있었다. 내 손에 쥐인 파이퍼의 손은 처음엔 죽은 것처럼 차갑고 힘이 없었다. 나는 그 손을 살려내려고 있는 대로 내 의지를 불어넣었고, 몇 시간쯤 걷고 난 후에는 드디어 그 손가락들이 내 손을 되잡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약하게 잡았지만 점점 세져서 마침내 그 손가락들이 아직 살아 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나는 파이퍼의 손을 놓지 않았다. (178쪽) 전쟁의 참혹한 풍경 앞에서 무너지려는 사촌 동생의 손을 놓지 않는 데이지를 그린 장면이다. 아빠와 계모에 대한 반감으로 거식증까지 앓던 소녀가 이렇게 바뀌었다. 그러나 이들이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며 도착한 집에서 찾은 것은 참혹한 전쟁의 살상 흔적이다. 다행이라면 에드먼드와 다른 사촌들의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 낙담한 데이지는 어쩌면 에드먼드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그러다 데이지는 뉴욕에 있는 아빠에 의해 뉴욕으로 돌아간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뒤 데이지는 영국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거기서 완전히 망가진 에드먼드를 만난다. 에드먼드는 데이지에게 전혀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렇지만 데이지의 선택한 자명하다. 이미 진정한 사랑의 손을 내밀어 본 사람은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파이퍼를 구함으로써 나는 나 자신도 구했다. 그리고 우리를 죽일 수 있었던 모든 것들이 또한 우리를 살린 것들이기도 했다. 고집과 무지, 잠재울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갈구로 인해 우리는 전쟁의 손아귀에서 살아남은 것이다. 에드먼드가 얼마나 부서졌는지 전혀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다만 그 애가 평화를 필요로 한다는 것, 그리고 사랑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뿐이다. 둘 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들이다. (237쪽) |
|
어른인 작가가 아이의 탈을 쓰고 이야기를 전개해 가는 것을 좋아한다. 세상 물정을 통찰해버린 아이 혹은 읽는 독자는 뻔한 상황인데 아이인 책 속 주인공은 영문을 모르는 듯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을 아이의 심정으로 말하는 글이 재미있다.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 속에 자라지 않고 남아 있는 아이의 모습이 겹쳐지기 때문일까? 아니라면 순수하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 맹하기도 했던 우리의 어린 시절을 아직까지 기억하기 때문일까?
10권 정도 딱딱한 책만 읽다가 만나게 된 소설이어서 좋았다. 게다가 이 책은 내 입맛에 딱 맞았다. 성장 소설이라는 점, 게다가 일인칭 주인공 시점이고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이 배경이 된 것도 마음에 들었다.
미국 뉴욕에서 살던 데이지라는 15살 소녀가 아빠와 새엄마의 임신에 적응하지 못하고 영국에 사는 돌아가신 엄마의 언니 즉 이모의 집으로 유배?되는 것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평화로운 영국 시골의 전원생활에 젖어가는 데이지를 읽으면서 잔잔한 피아노 소나타를 듣는 기분이었는데, 사촌들과 강가에 수영을 나갔던 행복 절정의 날을 마지막으로 평온이 순식간에 깨져버리게 된다.
번역이 좋았을까? 저자의 냉소적인 유머 감각이 손상되지 않고 전해졌다.
[아빠는 여자 친구 고르는 취향만 빼면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아마 밤낮으로 아빠의 잘못된 취향을 지적하는 내가 없으니 훨씬 마음이 편하실거라는 이야기도 했다.]
[난 전쟁 걱정을 하는데 별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왜냐면 5년 가까이 모두 다 전쟁이 날까 안날까에 대해 엄청나게 떠들어 대고 있지만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는데 뭐하러 그 이야기를 계속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런 것을 물을 때면 감사하지만 괜찮다고 대답했는데, 어떤 때는 우리 대답에 안도하는 빛이 너무나 역력해서 전혀 신세질 마음이 없었는데도 조금 섭섭하기까지 했다.]
[나는 '아뇨! 아무 것도 필요 없어요! 특히 남아 도는 부모를 우리에게 붙여줄 생각은 절대 하지 마세요. 절대 사양이예요!' 하고 외치고 싶었다.]
'내가 사는 이유'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머물며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살 수 있는, 살아가는 이유인 것이다. 생존 이외의 모든 일이 사치가 되어 버릴 때, 그런 극한 상황에서 인간은 자신을 드러낸다. 잠재되어 있던 잔인한 괴물로 퇴화되기도 하고 인간성이 만개된 진정한 인간으로 진화하기도 한다.
엘리자베스라는 이름 대신 데이지라고 자신의 이름을 정한 소녀의 성장 이야기, 즐거웠다.
|
|
엘리자베스는 데이지로 불린다. 먼나라 여왕처럼 뭔가 슬프고 고상한 이름,, 엘리자베스. 그러나 데이지라는 이름이 더 어울린다. 데이지는 아빠가 새엄마를 들이면서 둘 사이의 불화로 사촌들이 사는 영국으로 보내진다. 펜이모대신 지프차를 몰고 마중을 나온 에드먼드. 14의 에드먼드. 담배를 피우며 지프차를 운전하는 14이 우리문화에선 생소하기 아니, 거부감이 드는건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에드먼드와 데이지는 만났다.
그 해 여름, 펜이모는 오슬로로 떠난다. 이모가 영국을 떠난지 얼마안되 전쟁이 일어났다. 보호자가 없는 상황에서 전쟁을 맞은 아이들은 자유를 만끽하는 즐거움대신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그와중에 에드먼드와 사람에 빠지는 데이지... 헛간을 오가며 전쟁중에 숨어지내는 아이들에게 어느날 영국군이 찾아오고 아이들은 뿔뿔히 훝어진다. 여기까지는 전쟁중이라도 전쟁스럽다거나 어떤 공포스러움 같은건 찾을 수 없다.
왜 책 제목이 [내가 사는 이유]이지? 의구심이 들었다. 왜냐하면 왜 사는지 이유를 도통 헤아릴 수가 없었으니까... 그러다 에드먼드를 재회한 데이지를 보면서 그랬구나... 그렇게 한참을 돌아서 에드먼드 곁을 찾아온 그 이유가 데이지가 살고 있는 이유였구나...
전쟁의 참혹함이 자꾸만 엄습해와서 급한맘에 책을 덮고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다시 펼치곤 다시 덮는데까지 한참이 지났다. 데이지가 들려주는 전쟁의 참혹함은 내가 지금 전쟁의 악몽을 꾸는듯 섬칫했다. 데이지가 전쟁의 공포속으로 들어갈때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그 여운이 강하게 남는다. 데이지처럼 어리고 무고한 생명까지 앗아가는 전쟁이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제발 그 전쟁의 주체들이 이 책을 읽어주길 바란다. 에드먼드의 고통이 가슴을 누른다 |
|
살아가면서 내가 사는 이유에 대해 그다지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만약 지금 내가 사는 이유를 묻는 다면 바로 가족일테다. 결혼하고 아이들이 있기에 여느 부모들처럼 아이들이 우선이 되고 가족이 먼저가 되는 것 같다. 아마도 내가 지금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기게 그런 말이 나올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족이 먼저 우선하는 나를 보면서 가족에게서 나라는 존재는 어떻게 되는 걸까 생각을 해보면서 점점 줄어드는 나의 위치를 보면서 조금은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성장소설에 관심이 가는 이유는 아마도 아이들 때문인것 같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부모의 입장으로만 아이들을 대하게 되는데,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혹시나 지금보다 더욱 더 아이들을 이해하기 힘들어지는 상황이 올지 몰라 비슷한 성장기 또래의 모습을 통해 아이들을 조금 더 이해 하고 싶은 생각에 읽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사는 이유>라는 제목을 보면서 내가 사는 이유에 대해 또 다시 생각을 해보았지만, 앞서 말한 이유와 별 다른 이유가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수 많은 상을 휩쓸며 세간의 관심을 모은 괴물 같은 성장소설이라는 문귀는 이 책을 읽기에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주인공 데이지는 새 어머니와의 갈등을 견디지 못해 거식증이라는 병을 앓게 되고, 영국 시골 이모에게 맡겨진다. 열다섯 그녀에게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이다. 사촌과의 행복한 나날에 기분 좋은 날이 계속 되지만, 그녀의 행복한 진정한 이유는 사촌 에드먼드이다.
이종 사촌을 사랑하게 되는 꼭 죄를 짓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데이지와 에드몬드 서로를 갈구하고 끊임없는 서로를 원하는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도 잠시...전쟁으로 인해 그들은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다. 어린사촌 파이퍼와 데이지는 다른 사촌들과 멀리 떨어진곳에 맡겨지고 그들 각자는 어떤 고통이 있을지 모르는 암담한 현실에 처한다.
전쟁이라는 어른들의 싸움에 버려진 아이들, 그들에게 전쟁은 새로운 전환점을 맡는다. 언제나 철부지 였던 그들에게 가족의 중요성 그리고 삶에 대한 새로운 면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사람으로 태어난다. 단순히 이종사촌과의 사랑이라는 주제만 생각해본다면 청소년 성장 소설에 전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들의 사랑이 있었기에 전쟁에서 살아 날 수 있었고 또한 존재하는, 살아가는 이유가 된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아름다운 영국 시골 마을 풍경이 그려진다. 시골 농장의 동물들과 동거동락하는 내 모습을 발견 하기도 하지만, 전쟁이 앗아가는 하나 하나를 짚어 보면서 슬픈 기운이 감돈다. 또한 안타까운 이들의 죽음, 전쟁으로 인해 완전 폐인이 된 에드몬드는 한없이 안타깝지만 곁에 데이지가 있어 조금은 안심이 된다. 영국과 미국등에서 필독서로 읽혀지고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는 <내가 사는 이유>는 한번쯤 자신이 사는 이유를 되돌아 보고, 또한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갈등을 이겨내기 위해 읽어봐도 좋을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