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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이 평화시장 노동 환경과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활동하다 분신하였습니다. 몸속까지 타 들어가면서도 태일은 아들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어머니에게 세상의 버림받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죽는 아들을 이해해 주기를 바라며 슬퍼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였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뜻을 받들어 몸이 가루가 되더라도 노동자들이 주인 되는 세상을 위해 끝까지 하겠다는 뜻을 아들에게 전했습니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 가난을 멍에처럼 짊어지고 살아내야 하는 상황에서 배가 고픈 삶은 지속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분신한 날 밤을 넘기지 못하며 태일은 배가 고프다는 짧은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습니다.
가난한 집안의 맏이로 학업을 이을 수 없는 상황에서 집안 살림을 일으키기 위해 여러 일을 전전하며 가세가 펴지기를 바라지만 꼬인 실타래처럼 환경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구두닦이, 신문팔이, 손수레 밀이, 비오는 날에는 우산 장사, 밤에는 꽁초 줍기 등 열여섯 나이의 작은 몸으로 길거리를 전전하며 돈을 벌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가난을 면하지 못하였습니다. 서울로 올라왔지만 몸 하나 눕힐 공간이 없던 터라 지인의 단칸방 마루 아래 잠자리를 만들어 잠을 자면서도 태일과 그의 어머니는 따뜻한 정을 나누며 지냈습니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지내는 것보다 누추하게 지내더라도 함께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는 소박한 믿음이 서울의 시장 일대를 오가며 밥벌이를 하여 헤어진 가족이 1년 만에 한자리에 모여 살게 되었습니다. 이후 태일은 청계천 평화시장의 봉제공장 노동자로 거리 생활을 청산하였습니다. 재단사로 일하던 태일은 따스한 볕도 보지 못한 채 잔업과 철야를 잇는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어린 여공들이 맥없이 쓰러지고, 영양이 부실하여 운신이 어려운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을 보면서 노동 현실 개선을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고 여겼습니다. 여공들이 행복한 생활을 잇는 것이 자신의 신앙이라 말하는 태일은 노동자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골몰하다 충격요법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서라면 노동법에 대한 학습이 필요하다고 여긴 태일은 힘든 노동이 끝난 뒤에도 근로기준법을 공부하며 비인간적인 노동 현실을 세상에 고발하였습니다. 하루 16시간을 일하면서도 시간을 내어 책을 가까이하고 일기를 쓰면서 성찰하는 삶을 살았던 태일은 죽음으로서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바랐습니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며 온몸에 타오르는 불길에 생명을 맡긴 그의 짧은 생이 남긴 외침에 깃든 의미를 어머니는 노동청에 아래의 사항을 요구하였습니다. 1. 주일휴가(유급휴일) 실시 2. 법으로 임금 인상 3. 8시간 노동(초과 시 잔업수당) 4. 정규임금 인상 5. 정기 건강검진 실시 6. 여성의 생리휴가 실시 7. 이중 다락방 철폐 8. 노동조합 결성 지원 요구사항이 지켜지지 않을 때에는 아들의 장례식을 치르지 않겠다는 어머니는 노동청장의 약속을 직접 받아내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업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어용 노조와 대별되는 청계피복노조는 태일의 죽음 이후 노동자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노동자를 위한 노조가 결성되었습니다. 태일의 분신 후 노동문제가 큰 관심사로 떠올라 지식인과 학생, 종교인, 노동자들이 스스로 주인 되어 살아가려는 인간 중심의 선언에 공감하며 기득권층에게 핍박받은 권리를 되찾는 도화선이었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질 때마다 경제성장 일변도로 치닫는 현실에서 노동 운동 탄압은 가속되었지만 사회적 약자들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향한 열망은 큽니다.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법규를 지키지 않는 노동 현실에 제동을 걸어 기계처럼 일하면서도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노동 현실을 타개하는 길에 목숨을 바친 그의 숭고한 희생정신에 외경심을 품습니다. 경쟁보다는 우애를, 다함께 나눔을 위해 스물두 해를 살다 간 고 전태일의 삶은 안이하게 지내는 자신을 담금질하여 공생의 삶을 지향하며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는 삶을 떠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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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이 치열하게 살아간 흔적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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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도에 대학에 입학했었습니다. 저도 대학시절에 전태일평전을 읽었더랬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다 생각했고, 특히 전태일님의 글 중에서 "내 전체의 일부인 너"라는 표현이 그 분의 사람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절묘하게 잘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하며 아직도 기억하고 있던 문구였더랬습니다.
신문기사를 통해 만화책이 출시된 것을 알게 되었고 고등학생 딸과 중학생 아들에게 읽히고 싶어 바로 세트를 주문했습니다.
아이들은 벌써 읽었고, 저는 뜸을 들이다가 밤늦게 퇴근하면 조금씩 아주 천천히 그림과 글과 과정을 음미하며 전태일님의 상황 속으로 빠져들어갔습니다.
마지막 5권을 남겨두고, 저는 잠시 망설였습니다. 5권에서 전태일님의 분신을 목격해야 하기 때문에 선뜻 책장을 넘기기 어려웠습니다.
오늘, 토요일 오후에서야 용기를 내어 5권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후반으로 치달으면서 안타까움에 요동치던 저는 드디어 결단의 순간으로 다가가면서 그만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어찌나 울었던지 정말 꺼이 꺼이~ 소리를 내며 울고 말았답니다. 고등학생 딸이 의아해할 정도로....
두어 시간이 지나 퉁퉁 부은 눈으로 지금 자판을 두드리며 드는 생각이, 어쩌면 대학생 시절 평전을 읽으면서 품었던 세상에 대한 소박한 다짐이 20여년의 세월을 건너 오늘 이 만화를 통해 기억 저편으로부터 되살아오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올 11월에는 아이들 데리고 모란공원에 꼭 참배를 다녀올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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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지역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책을 대출해 보곤했습니다. 직장에 취직을 하고 부터 아이들끼리 다녀오곤 했는데 어느날 <태일이>를 1,2권 만 빌려왔더군요. 갑자기 마음이 슬픗 떨려와 아이들이 먼저봐도 아무 말도 못했지요. 그즈음 큰아들 녀석이 공부보다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것에 재미를 붙이고 저의공하란 소리를 지겨워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석이 " 아~ 엄마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소중한것인지 몰랐어요.""여기에 비하면 우리 아빠는 약과예요."하는 거예요. 저는 속으로 제대로 봤구나했지요. 그리고 저도 보면서 잘 몰랐던 님의 어린 시절을 알고 울며 보고 다음권을 빌려보자 했지만 인기가 있는지 쉬 빌릴 수가없어 5권을 먼저보게 되어 아들 녀석과 울며 보았습니다. 아들 녀석은 몇번을 보면서 또울고 또울고 하더군요. 작은 아들은 왜 자기는 눈물이 안나오냐며 다시보고... 큰 아들 왈, "넌 인생을 몰라" 하더군요. 전태일님께 감사한 마음 마저 들었답니다. 이참에 빌리지말고 사서 힘겨울때 마다 꺼내봐야지 싶어 주문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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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39주기군요. 아침에 신문 보고 알았습니다. 꼭 39주기에 맞추어 쓰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멀쩡히 잘 살다가 무슨 날만 되면 어줍잖은 지식으로 설치는 인간이 되고 싶지도 않고요. 그냥 요즈음 아이들과 보던 책입니다.
저는 대학 입학후,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란 책으로 전태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고교 시절 전교조 선생님의 말씀으로 들어 본 적은 있었지요. 아마 그 후 <전태일 평전>으로 다시 나온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평전을 읽어본 적이 없더라도 현대사 등을 통해 성인분들은 전태일의 삶을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부분은 생략하겠습니다.
이 책은 만화입니다. 그런데 학습위인만화처럼 가볍고 쉽게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의 삶 자체가 그러하기도 했지만, 글 내용보다 그림의 힘이 큰 것 같습니다. 아동용이라고 막 그린 그림이 아니고, 뭐랄까요, 쿠르베나 도미에의 사실주의 노동자 그림처럼 목탄 냄새 황토 냄새 나는 그런 색감입니다. 보다보면 아른하니 가슴이 아파 오게 만듭니다.
내용은 전체 5권 구성에서 1~3권까지는 어린 시절을 다루고 있어서, 성인용 평전과 조금 다릅니다. 어린 친구들을 예상 독자로 설정했기 때문이겠죠. 본격적인 청계천 피복공장의 노동현장이야기는 4권부터 나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그의 배고픈 어린 시절을 통해 사회의 근본적 문제를 보다 고민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의 삶을 다 알고 있는 성인 독자분이라도, 읽어 보세요. 자녀와, 조카와 같이 읽고 이야기 해 보세요. 평전과 다른 이 작품만의 '무언가'를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비록 이글을 쓰는 저는, 직접 뛰어들어 참여하는 인간이 아니라, 이렇게 그를 이따금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저를 돌아보아서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비겁한 인간이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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