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등학교 때 읽고 언젠가 다시 한번 읽어야지 하면서 미루고 미뤘던 <폭풍의 언덕>을 이제야 다시 읽게 되었다. 히스클리프의 광적인 사랑이 한없이 멋지게만 보였던 고등학교 때와는 물론 느낌이 달랐지만 그래도 언덕 가득히 핀 보라빛 히스꽃의 이미지와 글 전체에서 느꼈던 암울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매력적이라고 생각되었던 분위기는 그대로였다. 히스클리프. 절벽위에 핀 히스꽃이라는 뜻을 지닌 히스클리프. 꽃 자체가 주는 아름다움보다는 절벽 위에 피었다는 것에서 외롭고 고독할 수 밖에 없는 숙명을 안고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이름에서 감지할 수 있다.
이야기가 시작된 시대적 배경은 1801년. 영국의 황량한 시골 마을인 기머튼의 워더링 하이츠와 스러시크로스 저택을 배경으로 한다. 이야기는 록우드라는 사람이 스러시크로스 저택에 세를 들면서 가정부로 있던 엘렌 딘 부인에게 집주인인 히스클리프에 대해 캐묻고 딘 부인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액자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워더링 하이츠'는 바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데, '워더링'이란 그 지방의 방언으로 폭풍이 몰아칠 때 격렬하게 요동치는 대기의 모습을 표현하는 형용사라고 한다. 그 집에 살았던 히스클리프와 캐시의 폭풍처럼 격렬하고 잔인했던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평생을 살면서 나보다 더 나같은 사람, 영혼이 똑같다고 느끼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런 인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입밖에 내어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고등학교 시절,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무지했던 나름 순수한 시절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되었던 아니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던 히스클리프와 캐시의 맹목적인 사랑, 캐시가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다른 사람과 결혼해야만 했던 상황, 캐시를 사랑했지만 동시에 그를 버린 그녀에 대한 증오, 그녀의 무덤을 파헤칠 정도의 광기어린 집착, 자신을 학대했던 이들을 향한 무자비한 증오 등이 지금에 와서는 자꾸 이해를 하려고 과도하게 노력하는 바람에(그동안 세월에 찌든 탓이다) 몰입도가 떨어지기는 했으나 에밀리 브론테의 거침없는 필력을 다시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야기가 전개되면 될수록 히스클리프의 광기에 저절로 빨려들어갈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의 유일한 소설이라고 하는데, 몇개의 작품이 더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게 다가온다. 에밀리 브론테의 언니인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도 다시 한번 읽을 때가 된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