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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오스카 시상식에선, 주연상을 받은 두 남녀배우(나이도 서로 비슷)가 단연 시선을 모았다. 남우주연상 수상 배우야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저 뼈대가 곧은 늙은 아주머니는 누군가 하는 이들이 많거나, 아 코미디물에 이런저런 조연으로 얼굴을 내민 정도로 알든가 하는 반응이던데, 이미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조엘 코엔의 <파고>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던 분이다. 그뿐 아니라 더 젊었을 때에는, 내가 지난 일요일 리뷰에서 잠시 언급도 했던 <미시시피 버닝>에서의 열연으로 조연여우 부문에 지명도 되었던 바로 그분이다. 참 그리고 작년에 개봉되었다가 소리소문 없이 내려졌고, 지난 일요일에 모 채널에서 틀어주기도 한, 헐리웃 지난시절 한 대목을 풍자적으로 포착한 <헤일 시저>에도 얼굴을 비춘 배우임. 이거 재방송 한번 해야 하는데 그날 피곤해서 보다가 잤음. 요것도 코엔 형제 솜씨임.
여담이 좀 길어져서 미안하지만, 게리 올드만은 평소 스크린에서 보던 대로의 그 또라이 같은 분위기는 간데없고 수줍은 소년 같은 태도로 나와 즐거운 황당함(그뿐 아니라, 그 정도 큰 성취를 이룬 이치고는, 아무리 큰 상을 받았다곤 해도 지나치게 수줍어하며 감격해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듦. 그런 상 따위가 아니라도 이미 충분히 위대했던 배우 아닌가)을 선사했는데, 사실 인간적 본색이야 언제나 저와 같았던 인물이다. 반면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평소 연기 속에서 보여 줬던 차분함과 절제는 간데없고, 지금 벼락출세한 연기자 캐릭터 하나를 즉석에서 만들어 뭔가 쇼 하나를 연출하는 중인 듯한 호들갑을 떨어대어(게리 올드만과 정반대 방향의) 의아함을 자아내었다.
여튼 지금 이 작품은 윈프레드 왓슨의 원작 소설(한국어판으로 번역되어 있음)을 때늦은 감 있게 은막에 옮긴 08년산이다. 영화 <킹콩>(오리지널 혹은 피터 잭슨의 리메이크)에도 보면 대공황이 휩쓸고 간 빈곤과 황폐상이 도시 속 몇 풍경을 담아내는데, 나오미 와츠의 앤 대로가 노점상에서 사과를 훔쳐 먹다 걸려 혼쭐이 날 뻔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에피소드가 여기에서도 나온다. 바로 미스 페티그루가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사과 조각을 보고 군침을 흘리는 씬이 그것이다. 1차 대전 당시 의지할 남자를 잃고 현재는 생계가 막막하여 막일이라도 알아 보러 다니는 불쌍한 처지의 중년인 그녀는, 뜻하지 않게 허영심 가득한 여배우(막 떠 보려고 안달인 신인 배우가 나온다는 점도 공통)에게 운 좋게 발탁되어, 자신의 처지와는 극과 극이라 할 만한 '사교 담당 공보 비서'로 채용된다. 사실 여배우 딜리시아도 비서를 고용하거나 그 비서의 품위를 유지시켜 줄 경제적 형편은 못 되는데 여튼 모든 비용을 졸부 닉 앞으로 달아놓고 내일 무서운 줄 모르곤 마구 써 댄다. 닉 역은 목소리 좋다며 내가 자주 언급하던 마크 스트롱이 맡았다.
여기서 눈여겨 봐야 할 건 미스 페티그루의 인간적 질박함이다. 그녀는 뜻하지 않은 행운을 잡아 한순간에 팔자를 고치기 직전이고, 정체가 탄로나기 직전까지 가는 위기에서도 여튼 좋은 제안(?)을 받아 얼마든지 속물적 위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헌데도 그녀는 '바른 말'과 '나 자신에 솔직하기' 같은 원칙에 언제나 충실하여, 적어도 자신을 속이고 뿌리 깊은 열등감을 만회해 보려는 천박한 언행은 언제나 극력 회피하려 든다. 아무 재능도, 심지어 그럴 의도도 없었던 페티그루가 어떻게 모두가 깜짝 놀랄 '매직'을 선보일 수 있었을까? 서양 속담에 '최상의 책략은 정직'이라는 말이 있듯, 현실을 직시하고 정도를 걷는 게 결국은 모든 꼬이고 꼬인 문제를 푸는 유일한 해법이었던 것이다.
어려서부터 잘못된 기대에 찌들어 비틀린 인성을 갖게 된, 비루먹고 쪼그라든 늙은 닭대가리가 입만 벌렸다 하면 허세와 가식이 썩어나는 거짓말을 뿜어대는 것과는 정반대의 미덕이라 할 수 있다. 남 위에 서고 싶고 자신이 아닌 그 무언가가 되고 싶은 허세의 욕구는 하늘을 찌르는데, 제 머리에 들어찬 건 닭똥만도 못한 폐품 원생동물의 불량 시냅스이니 그 좌절감과 열등감이 얼마나 크겠는가. 헌데 이런 인생일수록 그 비참한 현실을 직시해야 답이 제대로 나오는 법이다. 거짓말과 사기벽으로 골병이 든 정신이 거짓말로 병을 치료하러 드니, 가뜩이나 비루먹은 체격이 더 쪼그라지고 눈깔은 뿌리에서 썩어가며 꼬리뼈의 밀도는 그 뇌(라고 부를 수나 있다면)의 부패도와 각축을 벌이는 수준으로 급전직하하는 것 아니겠는가. 본래가 불량으로 태어난 주제에 여기서 밑바닥을 어떻게 더 치겠다고 저런 패악질이란 말인가.
여기서 분수를 모르고 방방 뛰지만 결국은 페티그루의 그윽한 인간성에 감화되어 가난뱅이 피아니스트와 미국에서 새 삶을 시작(근데 가 봐야 별수없거나 오히려 더 개고생?)하려는 델리시아 역을 맡은 에이미 애덤스는, 언제나 내 리뷰에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그 정도까진 아니었나?)해 왔듯 좋은 연기를 보여 준다. 목소리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그녀는 타고난 음색도 좋지만 어쩜 그렇게 발성 하나하나가 또렷한지 들을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전에도 한번 말했지만 <줄리, 줄리아(아직 리뷰 안 씀)>에서 마지막에 '보나뻬띠!'를 외칠 때, 마치 다른 세계로 우리를 모셔 가는 주문처럼 들렸을 만큼, 그녀의 딕션은 가히 우주 최강이다. 차분하고 절제된 연기도 최고이지만 이처럼 방방 뜨는 분위기도 그녀처럼 해 낼 자원이 별로 없겠는데, 예전에 한번 <박물관이 살아..>2편 리뷰에서 아멜리아 이어하트 역을 지적하며 언급한 적 있다.
풍신 좋고 무게감 가득한 성공한 남성 디자이너(더불어 인맥도 넓은 거물) 역을 맡은 키어런 하인즈는 저 맥도먼드보다 실제로 몇 살 많은(그런데 같은 또래거나 살짝 더 젊어 보임), 또 정극 무대 공연에서 잔뼈가 굵은 경력을 자랑하는 영국 배우(사실은 아일랜드계이며, 그래서 이름이 이상한 것)이다. 무대에서의 교과서적 솜씨라면 또 맥도먼드가 빠지지 않는다. 사실 이 영화는 이처럼 무대 경력이 화려한 베테랑 배우들이 잔뜩 등장하여 알게모르게 연기 경연을 펼치고 들어가는 품이 볼만하며, 개구리 울음소리를 음성 변조 장치를 통해 사람의 육성으로 돌려놓은 듯한 딕션의 셜리 핸더슨도 여기서 밉지 않은 악역 의상실 오너 역을 잘 소화했다. 맥도먼드, 애덤스와 함께 극을 三分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반면 남우들은 외양이야 화려해도 이 여성 배우들의 현란한 개인기 앞에 어째 다분히 위축된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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