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왁자지껄 하던 복제양 돌리, 영롱이가 어떻고, 생명윤리가 어떠하다느니 하던 이야기는 이제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린지 오래다. 심지어는 게놈 프로젝트가 완성되었고, 인간복제가 성공했네 안했네 가지고 떠들어대던 목소리도 이젠 자취를 감추었다. 한창 전쟁 소식이 뉴스의 대부분을 덮고 있을 시기에 난 이 책을 폈다. 그리고 사스가 한국에 상륙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이 책을 덮을 수 있었다. 정말 긴 시간동안의 장독이었다. 비록 많이 어려웠지만, 긴 시간을 투자할 만큼 충분히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 이제 지나가던 어린아이도 생명공학이 무엇인지 어느정도 감을 잡을 정도로 일반화 되어있으며, 사회에서는 IT산업을 뛰어넘어 BT산업이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의 장이라고 떠들어 대면서 달려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람들이 더욱 편하고, 윤택한 삶을 살 수 있다라는 미명아래 산을 깎고, 바다를 메우듯 난개발을 해나가고 있는 이 시점을 확실하게 꼬집고, 대책을 간구하려는 그의 노력을 나는 높이 평가 하고싶다. 그의 사회적 지위나, 그의 전문적 소양 능력을 생각한다면 나의 이 말은 매우 건방진 소리일지 모르겠지만 그 위치에서 더욱 중립적이지 못한 사람이 많은데, 그 곳에서 중립적 위치에서 그런 발언을 한 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현실성있게 대책을 촉구한다는 것은 나에겐 매우 놀랄 만한 일이었다.
생명공학이라는 것이 다른것과 마찬가지로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동전의 양면성이라던가, 양날의 검이라고 해야할까?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활로를 찾을 수 있는 길 일수도 있다. 물론, 그로 인해 저자가 역설하는 인간의 본성을 상실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들의 논쟁을 펼치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극단적인 모습이다. 마치 냉전시대의 사회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대립하듯 서로 상대방의 의견을 도외시한 채 자신들의 주장만을 피력하고 있는 실정이다. 무조건 생명공학의 발전을 위해 모든 것을 개방하고, Open mind 된 상태에서 결과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과학계의 목소리와, 인간의 생명 윤리와 신에게 대항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에 더이상의 - 연구 목적으로라도 - 실험은 용납할 수 없다는 종교계의 첨예한 목소리 사이에서 우리는 그 어느쪽의 손을 들어주기 힘든게 사실이었다. 그들이 내세우는 주장들이 너무나 막연하고, 추상적이었으며 결정적으로 극단적이었기 때문이다. 화려한 미래, 환상적인 미래....그에 반하여 암울하고 어두운 미래를 너무 극단적으로 비춰주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느것 하나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차라리 선택해야한다면 밝은 쪽에 손을 들어주려는 모습이 현실적이라 하겠다.
이럴 때 저자는 그들에게 결정적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그게 아니다! 라고.... 너무 극단적으로 치우치지 말고, 무엇이 이로운지 무엇이 해로운지를 확실하게 판단하며, 그것 가운데서 국가적, 부족하다면 국제적인 강제기구를 설치하고, 그 가운데 확실한 통제가 이루어 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바로 동전을 세워버리는 발상이 아닐수가 없다! 물론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자는 생각은 가질 수 있지만, 어떻게 중립을 가질것인지 방법을 제시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한 면에서 저자가 말하는 방법은 이 상황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의 한 지평을 열었다고 하겠다. 생명공학의 난개발로 인한 위험성을 생각하고, 그것이 얼마나 현실적며,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위를 알려주는 그의 표현들에 나도 동감하고, 많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인상깊은구절] 질병과 사회적 갈등이 제거되고 우울증, 정신질환, 외로움이나 정서적 고통도 없으며, 섹스는 손쉽게 해결된다. 심지어 욕망의 발생에서 만족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최소로 유지하는 일만 전담하는 일만 전담하는 정부기관도 있다. |
|
현재 존스흡킨즈대학 국제관계대학원 학장으로 있는 이 책의 저자는 1989년 ''''''''역사의 종말''''''''이란 저서로 세계적인 논쟁을 일으켰으며, 국제관계와 현대사회분석등의 분야에서 손꼽히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책이 발간되기 이전에도 이미 생명공학의 발전과 그에 수반되는 여러 문제점들이 제기 되어왔고, 매스미디어는 복제양 돌리와 얼마 전 미국의 복제아기의 생산을 소개함으로써 평범한 사람들도 이러한 문제를 새삼 우려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매스미디어의 보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일은 막연히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졌고 복제아기나 냉동 인간 등의 이야기는 바로 옆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닌 공상 과학 영화의 한 단편처럼 느껴졌다. 이 책을 읽은 후 나는 생명공학의 브레이크 없는 발전이 반드시 다시 생각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저자가 우려하는 인간존중이나 인간본성의 위태로움이 도래할지도 모른다고 진지하게 걱정하게 되었다. 생명공학의 선택적인 도입과 무한정한 발전을 규제하려는 것은 그것이 모든 현재를 사는 사람들 속에서 공유되는 인간본성과 인간존중의 초석에 변화를 초래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다 읽을쯤,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보았다. 영국에서 선천적인 골수질환을 가진 어린이를 치료하기 위한 맞춤아기의 생산을 허용했다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도구로서 기능하기 위해서 만들어진다는 사실, 인간이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가 아니라 공장에서 부품을 제조하듯 제조된다는 것, 지금 이 시각 하루도 안 걸리는 거리의 나라에서 그런 인간제조가 시행된다는 사실이 서글픈 충격으로 다가왔다. 가까운 사실임에도 낯선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저자가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논의하는 인간본성과 인간존엄성의 정의는 한문장의 단호한 명제로 결론지어지지는 못했지만 모든 보편적인 사람들이 인간의 도구로서의 생산과 폐기를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 일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본성에 대해 옛 철학자나 현대의 새로운 접근이 아니더라도 보통의 사람들은 나름대로 그에 대한 정의를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본성과 인간존중에 대한 나의 나름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나'' 라는 한 사람이 느끼는 모든 감정과 감각과 사고의 능력등이 내가 아닌 타인 즉 모든 사람에게도 공유되고 있으며, 그럼으로 ''나'' 를 소중히 여기듯 타인들, 즉 모든 인간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하며, 존중하려 노력하는 것이 인간본성이며, 인간존중의 이유라고 생각한다. 만일 내 스스로가 누군가의 도구로 생산되었고 그래서 목적을 다 수행하고 폐기되어야 한다면, 나는 무엇을 느낄 것인가?
이러한 생각에서 난 생명공학의 상상을 초월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간본성을 믿기 때문에 그다지 생명공학의 위험을 걱정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사회에는 trend 라는 것이 있으므로, 예를 들어 요즘의 급격한 이혼율의 증가나 일본에서 유행한다던 부부 교환 섹스 등은 과거의 보수적인 사회에선 생각하기 힘든 일 이었으나 그러한 일들이 바로 옆 이웃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면, 평범한 사람들도 ''나도 한번''이란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 속에 존재하는 인간본성만을 믿고 아무런 규제 없이 생명공학의 발전과 적용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작가가 암시하는 것처럼 생명공학의 발전에 따른 미래의 모습은 결코 행복한 모습이 아니다. 수명연장에 따른 노년층 인구의 급격한 증가, 출산율 저하에 따른 청년층의 감소, 생명공학의 발전에 따른 젊기만 육신에 피로에 지친 정신 등, 미래사회는 현재보다 훨씬 생기 없는 우울한 사회가 될지도 모른다. 나와 같은 복제인간이 만들어져 몸이 병 들 때마다 병든 장기를 복제인간의 장기로 대체할 수 있다면 더 없이 편리하겠지만, 인간의 삶의 완성도는 오직 건강한 육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시련을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현재에도 그러한 현상이 있긴 하지만 미래에는 그 사람의 경제적 여건에 따라 수명을 연장 할 수 있는 사회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평생 그러한 돈을 모으기 위해 노동하며 살련 지도, 또한 가난한 사람들에겐 무병장수가 잡기 힘든 신기루정도로 전락하고 ''인명은 제천''이라는 보편적 속담이 의미를 잃은 옛날 속담정도로 될 지도 모른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생명공학에 대한 규제가 합법화되었다. 저자의 생각처럼 국제적인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핵무기보유금지''처럼. 누구나 다 생명공학의 발전에 따른 편리함을 상상해 봄직하다. 나도 아이가 낳기 싫어서, 남자도 임신 할 수 있는 생명공학 기술적 시도가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해하였고 그러한 기술을 가까운 미래에 볼 수 있었음하고 바랬으며, 시험관에서 커 가는 아이의 모습을 정기적으로 보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있다. 분명 생명공학은 커다란 유혹이다. 이러한 커다란 유혹 때문에 국제적인 규제가 쉽지는 않을 것이며, 규제가 극히 엄하게 시행되지 않는다면, 또 그 규제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는다면 규제가 이루어지지 힘들거라 생각한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게 와 닿았던 생명공학의 단편으론 맞춤아기였다. 모든 사람이 부성애와 모성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남보다 똑똑한 아이, 멋진 외모, 건강한 아이를 원할 것이다.
특히 유전적인 질병의 경우는 맞춤아기를 통해서라도 절실히 치료하고 싶어 할 것이다. 생명공학의 규제 없는 미래엔 결혼이 필요 없을지 모른다. 젊은이들은 맞춤 아기 생산을 위한 비용을 위해 노동을 할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자연적으로 낳은 아이가 이웃의 맞춤아기 생산으로 인해 남들보다 훨씬 열등해진다면 난 과연 자연스럽게 임신을 해서 출산하기를 원할 것이며, 양육을 할 것인지, 스스로도 자신이 없었다.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행복한 길이라고, 생명공학의 편리함은 행복한 미래의 올바른 길이 아니란 걸 모든 사람에게 적극 설득하고 전 세계의 의견을 모을 때가 온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이 세계에서는 질병과 사회적 갈등이 제거되고 우울증, 정신질환, 외로움이나 정서적 고통도 없으며, 섹스는 손쉽게 해결된다. 심지어 욕망의 발생에서 만족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최소로 유지하는 일만 전담하는 일만 전담하는 정부기관도 있다. |
| 역사의 진보는 끝났다고 했다. 그 전제 중에서 역사의 진보를 끝마치게 하는 것 중에는 과학이란 테두리가 있겠다고 후쿠야마는 이 책을 시작하면서, 역사, 인류의 진보에서 다시금 시작점을 찾고 있다. 정치나, 경제체제로서의 발전모습은 역사의 선택과 인류의 자유와 평등이 확산되는 현상으로 많이 극복해 왔다. 현재에 있어서는 종말이라는 것은 바로, 과학의 종말, 과학 발전의 한계이다. 과학도 역시나, 기본 자연 물리력의 한계에서 시작하고 실험하고 있기때문에, 무한히 발전하리라, 발달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더 예상할 수 없는 것은, 기계화, 산업화 그 발전의 속도는 이제 시작된 것이고, 인류의 철학,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지금까지 몇 천년의 갭이 있듯이, 지금의 과학의 종말이 오기까지는 아직도 먼것 같다. 그 속에서 과학은 순수한가? 라는 질문에, 계속 대응한 것 같다. 순수과학으로 탐구와 학문 열정을 가지면서, 유전자 공부, DNA 구조, 변형에 대해서 연구하지만, 그것이 어쩌면, 인간 복제, 복제 식물등 대단히 많은 가치판단 요소를 지니고 있다. 즉 급변하는 과학, 생물학적 시대에, 우리가 판단해야하는 인간으로써 해결해야 하는 기술외적 문제에 더욱 접근해야 겠다. DNA의 나선 구조가 밝혀지면서, 많은 의료 분야에 도움도 되겠지만, 그 다른 사용용도로, 유전자 우생학, 태아의 유전자 감별등을 해서 인간역시 기계처럼, 맞춰지는, 삶, 그런 인간이지만, 기계같은 비 인간성을 띄는 것에 대해서 많은 우려를 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또한 어느 한 국가의 통제로 될 문제도 아닌 것 같다. 규제가 높은 나라에서 규제가 낮은 나라로,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것처럼, 이런 많은 연구소들도, 같은 논리로 행동할 것이 뻔한 사실아닌가?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낙후된 나라에서, 우리는 또 많은 투자와 세금을 낼 이런 기업을 또 마다할 것인가? 우리는 필요하다, 과학은 인류가 만든 편리한 이기이다. 하지만 그 편리한 이기가 갈 수록 똑똑해지고, 더 복잡한 상황이 돼, 편리함 보다는 현명한 사용이 없다면, 위험에 처할 수 있게 되는 양날의 칼 처럼, 조심해서 다루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