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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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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우리나라 소설을 잘 읽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나라 문단의 흐름이라던지 새롭게 등장한 신예들이라던지 아무렴 어떻냐 하는 식으로 외면하고 있었다. 그랬는데 이 책을 읽게 되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문화사조라던지 사상이라던지 내게 거부반응을 일으키던 것들에서 참 많이 변한 것 같다. 어쩌면 알맹이는 그대로이지만 표현 방법만이 다소 유해졌을지도 모른다. 난 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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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우리나라 소설을 잘 읽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나라 문단의 흐름이라던지 새롭게 등장한 신예들이라던지 아무렴 어떻냐 하는 식으로 외면하고 있었다. 그랬는데 이 책을 읽게 되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문화사조라던지 사상이라던지 내게 거부반응을 일으키던 것들에서 참 많이 변한 것 같다. 어쩌면 알맹이는 그대로이지만 표현 방법만이 다소 유해졌을지도 모른다. 난 가공되지 않은 듯 거친 것들은 통밀빵처럼 소화시키기가 힘들었는데 다행이다.

 

난 여성작가를 선호하는 편이다. 처음부터 여성작가의 책만 읽어야지 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고 입맛에 맞는 책들 위주로 읽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후에 내가 가지고 있는 한국 작가들의 책들을 살펴보니 거의 여성작가인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여성 작가의 글부터 읽기 시작했다. 모두 3편의 소설이 있었는데 하나하나 개성이 뚜렷했다. 소설을 다 읽기도 전에 해설을 찾아서 읽은 작가도 있었고 처음 들어본 작가지만 딱 내 취향인 작가도 있었다. 그리고 남성 작가의 소설 또한 흡입력 있게 읽을 수 있었다. 현 시대에 작가를 단순히 성별로 구별한다는 것이 말도 안되는 분류법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가장 기분 좋게 읽은 소설은 김애란 작가의 "큐티클"이다. 무겁지 않고 상쾌하게, 하지만 지나치게 가볍지는 않은 저울로 잰 듯 딱 알맞은 무게다. 처음 들어본 이름이지만 앞으로 자주 찾게 될 것 같은 이름이다. 1980년생이라고 하니 나이에 딱 어울리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사실 난 아직 젊은 사람이 세상의 쓴맛 단맛 다 맛보고 이제는 모조리 다 안다는 듯한 어조로 쓴 글은 왠지 밉상으로 보였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 문제지만 자신의 나이를 잘 살린 글이 내가 읽기에도 좋았다. 여러가지 면에서 내가 선호하는 글을 쓰는 작가이다.

 

그리고 요즘 여기 저기서 본의 아니게(?) 자주 만나게 되는 그 이름 김연수. 2009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의 주인공이 아닐까 싶다. 대단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김연수 작가의 글을 실제로 읽기는 처음이다. 난 이상한 고집이 있어서 남들이 좋다고 하더라도 무작정 따라 가는 것에는 왠지 거부감이 있었다. 그래서 일단 튕기다 나중에야 접하고 후회하는 일이 여러번 있었는데, 이번에도 그런것 같다. 이렇게 멋진 작가의 글을 이제서야 읽게 되다니 하며 아쉬워 한적이 많았는데 김연수작가는 뭐라 할까. 지금 현재까지는 완전 멋지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뭔가 더 많이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그외에도 김태용의 쓸개, 박민규의 절, 윤이형의 스카이워커, 이장욱의 고백의 제왕, 최인석의 스페인 난민수용소, 한유주의 재의 수요일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서평도 있다. 내가 쓰는 것처럼 조잡스러운 게 아니라 진짜 진지하게 분석한, 하지만 조금은 어려운 단어들이 조합된, 2008년의 화제작 '개밥바라기 별'과 '엄마를 부탁해'의 서평이 기억에 남는다. 추천 소설 목록에서 내가 읽은 게 있나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아쉽게도 난 실패했지만.

n****3 2009.03.2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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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소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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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으면서 단편이 좋아요? 아님 중편? 또는 장편?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어느 소설이든 작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서 쓰지 않는 소설은 없다.하지만, 글쓰기를 배울 당시에 단편이 가장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단편은 버림의 미학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만 명작이 나온다고 하였다.오늘의 소설은 작가가 선정한 소설 8편을 수록하고 각 편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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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으면서 단편이 좋아요? 아님 중편? 또는 장편?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어느 소설이든 작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서 쓰지 않는 소설은 없다.
하지만, 글쓰기를 배울 당시에 단편이 가장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단편은 버림의 미학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만 명작이 나온다고 하였다.
오늘의 소설은 작가가 선정한 소설 8편을 수록하고 각 편에 대한 논평이 첨부되어 있다.
소위 말하는 옴니버스식 단편 소설집이라고 보면 되겠다.
내가 접해본 단편 소설집들은 신춘문예나 이상문학상 수상자들의 글들이다.
아니 솔직히 몇 권 접해 본적이 없다.
아직 문학에 대한 이해나 소견이 짧아서 그런지 너무 어려운 단어나 철학이 담겨 있으면 침울해 지기 쉬워서 그런가 보다.
내가 아는 작가는 누가 있지? 황석영 작가? 신경숙 작가? 아님 뭐 누가 생각나지? 태백산맥의 조정래 작가?....나는 이렇게 모르기도 하고 존경하는 작가가 없다. 부끄럽다는 생각을 해 본적 없지만 문제가 있긴 있는 것 같다. 오늘의 소설에 등장하는 작가들 중 유일하게 김연수 작가만 알뿐이다. 사실 김연수 작가의 작품이 궁금해서 이 소설을 손에 들었는지도 모른다.


뭐가 문제지? 사실 나는 김연수 작가의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 봤어"가 가장 어려웠다. 쉽다고 생각하면 굉장히 쉬운데 아직 나의 이해력으로는 쉽게 다가설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소설의 내용을 말하기는 그렇지만 단편이라는 특색에 맞게 읽고 난 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과연 김연수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무얼 이야기 하고자 했던 것이지? 그 작가의 생각이나 의도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런 생각을 뒤로하고 "큐티클"이라는 작품으로 넘어갔다.


"큐티클"은 김애란 작가의 단편이다. 한 직장여성의 단편적인 일상을 소설화 한 것인데 여성의 직장 생활에 관한 스트레스나 또는 사치에 대해서 아주 섬세하게 표현 되어있다. 그것이 얼마나 부질 없는 것이지 알면서 남들이 하니까. 라는 생각으로 따라하게 되는 네일샵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이 안쓰럽다. 세상살기 참 각박하다. 남들보다 잘 하지는 못해도 비슷하게는 가야지. 그게 세상살이 아닌가? 그래도 결국엔 맘 털어 놓을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다. 여성 내면의 심리를 살짝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단편소설이었다.


김태용 작가의 "쓸개"는 참 제목 그대로 씁씁한 소설이다. 작가 내면 또는 세상을 바라 보는 관점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하다. 아주 짧은 독립 영화 한편을 본 느낌이랄까? 죽을지 알면서 달려 드는 불나방 같은 것이 사람인가 보다. 그리고 도망치고 싶은 현실에서 주저 앉고 마는 것이 사람인가 보다. 건강이 악화되어 쓸개를 잘라 버린 한 남자가 엉망이 되어 버린 현실에서 죽음을 향해 치닫는 소설. 나는 그렇게 살고 있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많이 들게 했다.


박민규 작가의 "절" 이라는 단편은 정말이지 유머러스 하면서도 세상에 대한 비판이 들어 있는 것 같다. 중학교 시절 무척이나 좋아했던 무협 소설 주인공들이 살아 나온 것 같지만 또 그런 소설이 아니다. 단어나 주인공의 이름 그리고 주인공과 주변 사람들이 행하는 기이한 행동들은 무협소설의 그것과 닮았지만 사실 현시대에 대한 비판이다. 오로지 법과 금전의 부로만 성공 가치를 따지는 세속 사람들 속에 200살이 넘은 무협 주인공과 그 주변인들...그리고 세속에 점점 동화되어가는 그들을 통해 작금의 물질 만능 주의를 돌아보게 한다. 아마 오늘의 소설에 실린 단편 중에 가장 위트 넘치는 소설이 아니었나 한다.


윤이형 작가의 "스카이 워커"는 새롭다는 말로 시작하고 싶다. 나보다 나이는 어린 작가지만 역시 작가는 작가다. 특이한 소재로 시작하는 스카이 워커. 핵전쟁 후 살아 남은 인류가 용신을 믿으며 예배 의식의 한 부분으로 트렘벌린을 하는데 트렘벌린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봉봉 이라는 기구를 타고 공중제비를 하는 것이다. 봉봉을 모르면 곤란한 이야기지만 어릴적 무척이나 좋아했던 놀이 기구라서 주인공과 감정이입이 저절로 되는 듯 하다. 이 소설은 바로 획일화 된 현실을 비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획일화된 교육제도와 주입식 성공 주의가 나은 어두운 현실들. 오로지 물질적 성공을 위해서라면 남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리고 획일화된 사람과 조금이라도 틀린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한다면 그 사람은 소외 된다. 주인공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예배 의식 중 의도된 틀린 동작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지쳐가는 현대인들이 꿈꾸는 일상 탈출이 아닐까?


이장욱 작가의 "고백의 제왕"은 음침하면서도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현시대는 상실의 시대다. 조금만 세월이 흐르면 사람들은 육체적 원인보다 정신적 원인으로 더욱 많이 죽어 갈 것이다. 그 이유는 더욱 세분화 되는 세상 속에서 점점 개인은 소외되어 가기 때문이다. 그 소외는 대화의 단절을 놓게 되고 그 단절은 바로 죽음으로 가게 하는 우울증을 놓기 때문이다. 고백의 제왕은 대학 시절부터 자신의 불우한 가정사나 신변의 일들을 친구들에게 고백하는 그런 친구다. 세상에는 때론 고백해서 좋을 일이 있고 나쁜 일이 있다. 고백의 제왕 곽은 그런 부분이 없다. 대학 시절 후에 모두들 친구 곽을 멀리 하게 되지만, 알고 보면 다들 한번씩 만나서 그의 고백을 듣거나 자신의 고민을 고백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곽의 고백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긴 하지만, 상실의 시대에서 대화의 소중함이나 자신의 문제점을 남에게 이야기 할 수 없는 이 시대에 대한 고찰이 아닌가 생각한다.


최인석작가의 "스페인 난민 수용소"는 영천이라는 지역에 난민 수용소가 생기면서 생겨난 일들과 주인공의 의식 변화와 행동들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지금 이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방어적이 되어서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을 난민으로 보는 경향이 있지 않는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생겨나는 난민들과 난민 폭동으로 인해서 어머니가 죽게 되고 어머니의 죽음은 과격한 민족학생운동의 리더가 되게 하였으며 그의 행동은 난민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며 결국 자신도 파멸의 길로 인도한다. 지금의 우리도 그러하지 않을까? 물론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고 작가는 이런 의도로 소설을 쓰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를 가두고 또는 남들을 적대시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본다.


한유주 작가의 "재의 수요일"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수요일에 대한 이야기다. 프랑스에 불어를 배우기 위해 온 유학생의 이야기다. 그녀는 매우 부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무엇을 하지 않았다. 불을 붙이지 않았다. 모두가 부정적인 단어들로 시작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아니다라는 주제보다는 없음을 주제로 한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꼭 무슨 일이 일어 날 것 같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작가는 바로 일상에서 오는 무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일탈을 원하고 있지 않는가?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 나지 않는다.


각 소설에 대한 나의 생각을 서평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처음 생각과 달리 많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확실한 것은 장편소설의 장점도 있지만, 간결하면서도 모호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단편의 장점도 중요한 것 같다. 오랜만에 나를 즐겁게 하는 소설들을 본 것 같아서 행복하다.
그리고 소설을 쓰는 작가들에 대한 노고에도 깊이 고개 숙이는 바이다.

a******k 2009.04.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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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 (김연수 작가의 소설을 읽어봤어!)
"2009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 (김연수 작가의 소설을 읽어봤어!)" 내용보기
몇 달 간 소녀시대의 'Gee'라는 노래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그렇게 들었는데도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Gee, Gee, Gee'라는 후렴구밖에 외워지지 않는 나의 머리엔'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는 네 글자만 선명하게 남는다.내 아버지가 늘 나에게 했던 잔소리처럼 요즘(!) 노래를 들을 때마다 "도대체 무슨 말이야?"라는 투덜거림이 절로 나온다.<2009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을 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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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간 소녀시대의 'Gee'라는 노래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그렇게 들었는데도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Gee, Gee, Gee'라는 후렴구밖에 외워지지 않는 나의 머리엔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는 네 글자만 선명하게 남는다.
내 아버지가 늘 나에게 했던 잔소리처럼 요즘(!) 노래를 들을 때마다 
"도대체 무슨 말이야?"라는 투덜거림이 절로 나온다.

<2009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을 읽으며 내가 받은 첫 번째 충격은
작가들의 어린 나이이다.
80년생(김애란), 82년생(한유주), 그리고 어려 보이는 윤이형 작가까지.
내겐 너무 어려 보이는 작가들.
소설을 좋아하는 나를 사로잡았던 당대의 소설가들은 모두 나의 언니, 오빠들이었는데,
어느새, 동생들이 문학을 이끌어가는 주역이 되고 있다.

'펴내면서'를 읽으니, 기획위원들이 먼저 그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이러한 세대교체의 흐름을 이렇게 멋진 말로 표현해주고 있다.
"선정하고 나니 올해의 문제작 목록은 
젊은 작가들 쪽으로 그 축이 완연히 옮겨온 것 같은 인상이다."
<2009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은 이들 작가들을 통해서
시대적인 감수성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고 말하며, 이렇게 질문한다.
"그렇다면 이 변화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낀다.
모더니즘 시대를 살아온 내게 포스트모더니즘은 혼란 그 자체이고,
소녀시대의 노래를 들으면서도 'Gee, Gee, Gee' 외에는 알아듣지 못했던 것처럼,
작가들이 이야기하는 시대적 감수성에 공감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고 말이다.

그러나 <2009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에서 나는 두 번째 충격을 받는다.
그것은 작가 '김연수'의 발견이다.
내게 '오빠' 작가여서 더 고맙고 반갑다.
김연수 작가의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를 읽으며 '심 봤다'를 외치고 싶었다.
문학사에 길이 남는 거장의 번역된 소설보다,
우리 작가의 잘 써진 한 권의 소설이 감성의 더 깊은 곳까지 와닿 듯이,
요즘 숱하게 읽어댄 번역 소설보다 더 명료하게 느껴지는 그 무엇이 있었다.
차갑고 파란 청명한 겨울 하늘을 손톱으로 톡 건드리면 깨질 것 같다던 시인의 묘사처럼,
내 마음 안에서 '쨍그랑' 하고 깨어지는 그 무엇이 있었다.

열일곱 살 연하의 한국의 젊은이를 사랑했던 미국의 여류 소설가와,
세 살배기 아들을 잃고 공부를 해서 언어를 번역하는 통역가와의 대화에서
나는 작가 김연수의 고민을 보는 듯 했다.
마음 안에 있는 그 뜨거운 느낌을 이야기하려는 작가와 그것을 담아내는 언어 사이의 단절,
그리고 그렇게 담아낸 작가의 이야기와 
그것을 비평하고 해석하는 전문가(독자)와의 소통 사이의 단절.

작가는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기억과 함께 선명한 이미지를 가진 '밤뫼'에 가고자 하나,
나름의 논리와 지도를 통해 그것을 해석하는 통역가가 찾아낸 '밤메'는 전혀 다른 지점이다.
세 살배기 아들의 "으아아아으으어"에 담긴 의미를 미처 깨닫지 못했던 통역가는,
그 아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자신의 이름 '혜미'를 기억하기 좋게 'help me'로 번역해주는데,
작가는 그 불편한 이름을 멋대로 'happy'로 바꿔 이해한다.

자신을 'happy'라고 부르는 작가에게
"도대체 무슨 'nak'으로 살아가느냐"를 이야기하며, 
'nak'이라는 말을 영어로 옮겨 설명하지 못하는 혜미의 좌절 또한 
작가 김연수의 것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happy'와 'nak' 사이의 간극을 느끼는 그의 명민한 예민함에 매료된다.
작가의 그것이 전달 불가능하고, 
그리하여 작가와 나 사이의 간극도 결코 완전하게 메워지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어쩌면 내가 지금 김연수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느끼는 이 모든 인상도
작가가 전하려 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이해 못하는 독자 덕에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보는 것"이 
작가에게도, 내게도 공허한 메아리가 될지라도,
나는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본다."

<2009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은 선정된 소설에 대한 
작품 설명과 서평을 함께 실어주고 있다.
그러나 나는 작가들의 작품 설명과 서평을 읽으면 내 어줍잖은 글솜씨가 부끄러워
이나마 쓰고 있는 서평 쓰기가 겁이 날까봐 내 글을 쓰기까지 아직 읽지 않았다.

<2009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을 읽고나서 안도한다.
자꾸만 개인 안으로 움츠려 들듯,
자기의 이야기를 하려는 작가의 경향이 뚜렷해도,
아직은 소설을 읽으며 "도대체 무슨 말이야?"라는 질문을 하지 않아도 될만한 
시대적 감수성이 내게 있음이 확인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c***1 2009.03.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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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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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고를때 거의 나의 관점에서 고르게 된다. 대부분 내가 좋아하는 장르중 이야기 형식으로 되어 잘 풀리는..우리네 삶이 가장 찐하게 놓여있는 거기다가 약간의 역사가 더해지면 바로 구입을 해 버리고 만다. 거기다 주로 장편소설을 읽으니 단편은 잘 안 읽게 된다. 왠지 일의 전개가 시작되어지면서 바로 끝나버리는 것 같은 뭔가 모자른 듯한 것같이 생각되어졌다. 그것이 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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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고를때 거의 나의 관점에서 고르게 된다. 대부분 내가 좋아하는 장르중 이야기 형식으로 되어 잘 풀리는..우리네 삶이 가장 찐하게 놓여있는 거기다가 약간의 역사가 더해지면 바로 구입을 해 버리고 만다. 거기다 주로 장편소설을 읽으니 단편은 잘 안 읽게 된다. 왠지 일의 전개가 시작되어지면서 바로 끝나버리는 것 같은 뭔가 모자른 듯한 것같이 생각되어졌다. 그것이 주로 장편에 길들여진 여파라고나 할까... 장편에선 일의 전개를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풀어놓아주기 때문이다. 그곳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 단편은 새로운 이야깃거리이다. 할머니한테 옛날 이야기 들을때랑 애들한테 이야기해 줄땐 되도록 짧으면서도 삶이 묻어나는 그런 종류를 찾게 되는데 아마 짧은 글의 편리성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2009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은 나에게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준 책이다. 평상시에 접하지 않는 단편이라는 것이고 또 그 짧은글에서 작가님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최대한 집약시켜 놓은걸 보았으니 말이다. 작가님들 대부분이 처음 들어본 작가들이다.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난 책을 읽으면서 작가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읽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다 읽고 난뒤 이 작가님은 누구구나 하고 지나가버리니 내 머리속에 남아 있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더군다나 이렇게 신예인 작가들이니 더 머리에 남아 있지 않는다. 하지만 이 작가님들은 신예지만 대단하다. 기존의 작가님들이 선정한 2009 오늘의 소설 한 자리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2009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은 무척이나 괜찮은 책인 것이다.

 

이 책은 8분의 선정된 작가님들의 이야기와 그 소설들의 평론가님들의 해설이 있고, 또  9명의 서평가들의 가장 인기있는 작가님들의 소설이 소개되어지고 있다. 그곳에 내가 읽은책이 많이 없어 약간 속상하긴 하지만 서평으로나마 그 명성을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냥 단편을 읽으면 이해 못해서 약간의 답답함과 호기심이 생기는데 이것을 해소 해주신다. 평론가님들의 해설을 읽으면서 아 그랬었구나란 고개도 한 번 끄덕여 진다. 그리고 한 발 더 다가가 이해도 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한 유주님의 " 재의 수요일"이 눈에 뛴다. 참 특이하게도 시대를 반영한다. 프랑스어에서 미래의 시제를 배우지 못하고 의심과 가정법을 배우고 있는 학생이자 직업인인 어느나라에서 왔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왔다고 속이는 약간 시니컬한 그녀의 이야긴 우리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긴 것 같기도 하고 너무나 자기가 속하지 못한 세계에 불이라도 나기를 바라는 그녀를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함돈균님의 평론에서 잠깐의 이해를 구한다.

 

이렇게 우리가 만나지 못한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되어 좋았다.

s******2 2009.03.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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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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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회의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나는 모른다, 라고 말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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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회의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나는 모른다, 라고 말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의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아마) 수상 소감같은 작가의 말.

 

-

『2009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 중

김연수의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견한 기쁨은 무척이나 크다. 게다가 역시 내가 원하는 글이라면 그 감정은 배가 된다.

 

어려운 글을 쓰는 작가라 되려 단편이 편하다. 그의 단편집인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는 두어개 남겨두고 미처 다 읽지 못했지만 그보다도 더 읽기 쉬운 작품인 것 같다.

 

찾아보니

 

소설가 김연수(39·사진)씨의 단편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가 ‘작가’ 출판사의 주관으로 소설가·평론가 100명이 참가한 조사에서 지난해 발표작 중 가장 많은 19회 추천을 받았다. 또 김씨의 장편소설 『밤은 노래한다』는 소설 단행본 중 최다인 16회 추천을 받았다

 

라는 기사도 나온다. 그냥, 괜히 뿌듯하다. 좋아하는 작가의 좋은 소식이니까.

 

-

(본문 중)

 

 

나는 이미 50대 후반이고...

지금 나를 형성하는 세포들은 사랑이 뭔지 모른다.

케이케이를 사랑하던 세포들은 이제 내 안에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면 나는 슬픈 마음에 오랫동안 두 눈을 감지 못한다.

 

-

 

우리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임에 틀림없는, 이 어둡고 비밀스럽고 거무스름한 물질이 우리 우주의 90%를 차지한다.

.....

이 우주의 90%가 우리가 감지할 수 없는 것들로이뤄져 있다면, 결국 케이케이의 어린 몸도, 그 몸을 사랑했던 내 세포들도 달리 갈 곳은 없을 것이다.

나의 가장 아름다운 얼굴도 마찬가지다.

.....

우리가 지나가고 난 뒤에도 저 불은 우뤼의 예상보다 좀 더 오랫동안 타오를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 안에서, 내부에서, 그 깊은 곳에서

어저면 우리가 늙어서 죽을 때까지도.

이 우주의 90%는 그렇게 우리가 볼 수 없는 , 하지만 우리에게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는, 그런 불들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물론 우리가 살아잇는 동안 우리는 그 불들을 보지 못하겠지만.

 

 

l********5 2010.12.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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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손질하는 사람들이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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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보고 울었다. 그녀가 표현한 어머니의 존재를 평론가는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궁금했다. 황석영의 '개밥바리기별'은 너무 조곤해서 지쳤다.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요즘 젊은이들이 이 책을 왜 좋아했는지 궁금했다. 김경욱의 '위험한독서'를 보며 아쉬웠다. 먼가 빠진 조미료가 있는 것 같았다. 이 책은 그 세 가지 책의 평이 담겨 있다. 아니 다른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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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보고 울었다. 그녀가 표현한 어머니의 존재를 평론가는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궁금했다.

황석영의 '개밥바리기별'은 너무 조곤해서 지쳤다.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요즘 젊은이들이 이 책을 왜 좋아했는지 궁금했다.

김경욱의 '위험한독서'를 보며 아쉬웠다. 먼가 빠진 조미료가 있는 것 같았다.

이 책은 그 세 가지 책의 평이 담겨 있다. 아니 다른 평론과 단편소설이 있지만,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오로지 세권의 책을 읽은 나와 평론가들의 차이점을 알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느낀 점은 단편소설이 너무 재미있다는 것이다. 제일 인상깊었던 것은 김애란의 '큐티클'이었다.

대한민국의 여자는 여성으로써 갖추어야 할 덕목이 너무 많다.  외모가꾸는 것도 참 많은데, 내가 제일 어려워하는 것이 바로 손톱손질이다. 손이 이뻐보일만큼의 손톱이 있으면 음식할때 등등 불편하다. 정말 때가 잘 낀다.  그리고 손톱깍기로 긴 손톱을 자르는 것이 어렵다. 대부분 깍는 대신 손톱을 간다. 그리고 손톱의 시작부분을 정리한다. 손톱이 시작하는 곳과 살의 경계에 있는 부분... 그것이 바로 큐티클이다. 나도 네일숍에 가서 처음들은 단어였다. 이젠 그런 단어를 모르면 대화가 통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난 아직도 그 부분이 깔끔하지 않다. 그 부분을 손질하지 않은 사람은 처음 네일숍에 갔을 때, 꽤나 고생을 한다. 손질할 부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소설속에서는 다행이 무사히 손톱관리를 마무리했지만, 내 경우에는 피가 났었다. 작고미세한 가위로 큐티끌의 잔 부분을 자르는게 아마도 그게 문제였나보다. 아니 큐티끌 부분을 깔끔하게 하기 위해 큐티클 끝부분까지 특정 기구로 밀다가 피가 났을 지도 모르겠다. 아플만큼 깊이...깊이 큐티클을 밀어내었다.마치 불편한, 없어서는 안될 존재처럼...

그녀는 네일샵에서 손톱관리를 받으며 느낀 점을 아주 솔직하게 풀었다. 너무 공감갔다. 아니 예전에 내 마음에 살짝 놀러와서 확인해본 것 같았다. 이걸 왜 하나 싶기도 하고, 이 부분이 깔끔한 사람들, 집에서 직접 관리하는 사람들이 신기했다. 내자신이 의기소침해졌다.

네일케어를 받고 메니큐어를 바르고 나면 애써 돈주고 만든 작품을 쉽게 망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자랑하고 싶다. 매니큐어는 바로 마르지 않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지만, 그런 습관이 길들여지지 않는 나는 슬슬 뾰족한 부분이 찍히고야 만다. 그것도 잠시, 일주일만 지나면 이쁜 내 손톱의 매니큐어는 슬슬 지워지고 있고, 큐티클과 손톱 부분의 살들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걸 매주, 2주에 한번씩 꼬박하는 그녀들의 부지런함과 돈 씀씀이게  경의를 표한다. 난 그 돈으로 내가 좋아하는 진~~한 아메리카노를 사먹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남자들이 알기 어려운 잘꾸미지 못하는 여자들의 심리가 잘 묘사되어 있다. 남자들에게 잃히고 싶다. 당신이 좋아하고 깔끔해보이는 그녀가 되기 위한 노력과 투자가 얼마나 되는지, 그걸 다 못하는 여자들이 왜 존재하는지... 좀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내 마음을 너무 잘 읽어난 김애란의 '큐티클'을 이 책의 최고로 손꼽고 싶다.

 

무서운 심리학이 담겨 있는 '고백의제왕'은 무서웠다. 달갑지 않지만, 사람의 집단적 심리와 개인적 심리의 구분은 마치 지킬과 하이드 가탔다. 그들의 집단적인 모습은 지킬같다. 아주 이성적이고 보편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들... 그러나 개인적으로 스스로의 가슴속 이야기를 털어내려고 했던 모습은 하이드다. 평온해보이는 지킬속에서도 버젓이 살아가고 있던 하이드, 그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지킬의 한 모습이다. 단지 사람의 이성이 있기에 억누르고 있었던 것 뿐이다. 가슴속 깊이 있는 그 무엇은 모두들  감추려하지만 감추기보다 덜어내고 싶은 것들이다. 이 소설은 착잡했다. 공동체에 의존할때과 개별적인 모습이 상이한 인간의 모습, 그리고 공동체속에서의 이기적인 모습.

너무 대놓고 그러내서인지 놀랍운 소설이었지만 참 우울한 책이었다.

 

그들의 책속에서 교과서에 있던 유명한 단편소설의 냄새를 맡았다. 요즘 소설은 예전 소설에 비해 떨어진다는 둥, 너무 깊이가 없다는 말은 이제 덮어두었으면 한다. 작가들은 지금의 언어로 색깔을 내고 맛을 내어 향기를 표현했다. 마냥 달콤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내가 가진 현실속에서 나도 모르게 잊고 있었던 우리들의 냄새를 다시 기억하게 해주는 것 같아서 반가웠다. 엽기적인 상황속에서도 당당한 각 소설속 주인공들이 좋았다. 그들이 자신의 삶에 주체적인 것 처럼, 나도 세상의 잣대말고 내 스스로의 잣대로 살아가고 싶다.

y******7 2009.04.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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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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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2009'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이란 책을 선택한 동기는 소설이라 함은 비교적 읽기 쉽고 내용도 어떤 이야기를 바탕으로 글이 쓰여지기 때문에 책을 많이 읽지 않아 문장력 없고 융통성 없는 나일지라도 그다지 어려울 것 같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다 읽고 난 후에도 머릿 속이 어지럽다 아! 이런 책도 있구나 이런 소설도 있었어... 굉장히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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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2009'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이란 책을 선택한 동기는

소설이라 함은 비교적 읽기 쉽고 내용도 어떤 이야기를 바탕으로 글이 쓰여지기 때문에

책을 많이 읽지 않아 문장력 없고 융통성 없는

나일지라도 그다지 어려울 것 같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다 읽고 난 후에도 머릿 속이 어지럽다

아! 이런 책도 있구나 이런 소설도 있었어...

굉장히 많은 의미를 담고 있고, 비유적이면서  반어적인 표현으로도 이렇게 멋진 소설을

쓸수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작가가 선정한 훌륭한 소설들은 내게 너무도 버거웠다

나처럼 초보자의 눈으로 보고 느끼고 서평을 쓰기에는 정말 어렵다

읽고 또 읽고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 부분들이 참으로 많았다

그래도 김연수님의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 봤어'는 두어번 읽으니까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다

김연수님만의 매력이 어떻게 발산 되어지는지 어렴풋이나마 아웃트라인이 잡힌다

케이케이라는 연하의 한국남자를 사랑한 외국 여성작가가 그남자의 나라에 와서 그리운

그의 흔적 밤뫼라는 고향을 찾아 나선 상황에서 통역사 해피와의 완전한 소통이 이루어 지지 않는

답답함이나 세살때 죽은 아들을 잃고 말을 하지 않는 혜미의 삶의 nak이 케이케이의 젖은 몸으로

대변되는 사랑의 이미지,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것들이 사실은 10%에 불과하다는 암흑 물질의 이야기등

비유적인 표현들. 또한, 화자가 죽은 연인 케이케이의 죽음의 원인도 알지 못하고

죽은 후에야 알게 된 본명 키준 김을 한번도 불러 보지 못해 안타까워 하는 것과

불에 탄 트럭을 보고 케이케이의 젖은 몸과 같다고 한 것에서 알수 있는 우주속의 환원, 변화, 윤회...

이렇게 의미를 부여하는 김연수님의 멋을 서서히 깊이 있게 알고 싶어진다. 

 

김애란님의 '큐티클'에서 느껴지는 정감은 내가 가끔 일상 생활에서 느끼는 감정과 사뭇 다를바 없다

네일아트를 하는 여자들을 은근 슬쩍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도 욕구를 충족 시켜 보고 싶은 감정은

정말 내모습을 보는 듯 했다

여자로써 의상에 한껏 멋을 부리고 외출을 하면서 자기만족에 빠져 괜히 우쭐된 감정, 그 뒤에 이어지는

불편함과 세련미의 뒤쳐짐, 시행착오적 감정들...

궁핍하지 않게 적당한 소비를 함으로써 더해지는 과소비에 대한 자신의 합리화.

또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그 공허한 허기.

여기엔 우리 세대의 자화상이 비춰져 있다

흥분된 감정으로 집을 나섰다가 여러 사람을 만나는 과정 속에서 더해지는 추락되는 감정은 결국

절망의 나락에 빠진다

쉬운 언어를 통해 감정을 몰입시키는 매력속에서 우리세대의 허기진 욕망과 무상한 화사함을 일깨워 준다 

 

김태용님의 '쓸개'는 씁쓸함을 남긴다

 쓸개 없이도 살 수 있다.

하지만 몸의 장기중 하나를 떼어내고 살아간다는 생각을 해보면 왠지 씁쓸하다

'쓸개'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불순한 관계를  그려냄으로써 그야말로 쓸개 빠진 놈의 인생을

비유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그 어떤 불행과 고립의 감각만을 분명히 보여 주었고,

인간이 겪어 나가는 격리와 단점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마치 어려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명확하지 않은 불행한 삶을 우리가 헤쳐나가야 하는것 같이...

 

대의와 명분이 살아있고 승부와 영광과 퇴락이 있던 무림시절의 영웅 4명이

이제는 전락한 무학의 늙은이들로 법과 돈이 지배하는,

변화된 공간 속에 존재하는 박민규님의 '절'은 물질만능과 권력에 굴복 당하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스카이 워커'는 하늘을 걸어다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을 의미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규칙의 제한을 받는 것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변화되는 틀속에서의 규제를 받으면서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을 계속한다

왜? 하고 싶었는지 이유를 모른체...

또다른 잃어가는 것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계속해서 트램펄린을 탄다

나를 지탱해 주는 진정한 친구가 곁에 있으므로 하여 모든 쓰라림을 견딜 수 있게 해 준다

 

어리버리한 친구를 통해 이모양 저모양의 삶을 비하하는'고백의 제왕'

고백이란 화자 자체의 진정성과 말의 진실성을 통하여 차마 말하지 못했던 고통이나 소중한 진실들을

솔직하게 다른이에게 털어 놓음으로 비로서 편안해지고 후련해지는 것이다

 친구들 서로가 손가락질 하던 '고백의 제왕' 곽에게 끌리는 묘한 마력의 힘이 나타난다

곽의 고백은 보이지 않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을 통해 친구들 저마다 고백을 할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매개체 역할을 했던 곽을 통해 우리를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난민수용소는 삶의 장소를 잃어 버린 사람들이 감금되는 핏빛 진실의 공간이다 

'스페인 난민 수용소'는 정신적인 문제를 인도주의적인 시선으로 은폐하려는 거짓을 의미하는

난민을 중심으로 권력 앞에 소리없이 무너진 주인공 상철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다

어머니의 억울한 죽음으로 상철의 몸부림은 시작되고 그의 몸부림은 보이지 않는 힘,권력에

굴복 당하는 비참한 현실이 드러난다.

상철은 난민과 시민의 삶의 경계가 존재 하지 않음을 깨달으면서 허무함을 강하게 느낀다.

 

끝으로 '재의 수요일'은 한마디로 속내를 보이지 않음이다

내 속내도 타인의 속내도 전달 도지 않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고,아무 말도 하지않음이다

최면 당한 채 움직이되 누구에게도 관심없는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의 일상을 말한다

 

「2009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은

내가 지금까지 읽은 책중에서 가장 어려운 책이였다

제각각 다른 내용으로 다른 의미를 부여한 소설들이지만

내가 느끼는 건 하나같이 화자가 주는 정확한 의미를 모른채 의미의 주변부를 헤매이게 하는 오묘함으로 묘사된다

s*********6 2009.04.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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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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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들어보는 ‘소설집’. 소설을 읽다보면 꼭 오랫동안 찾지 못했지만 여전히 사랑한다는 진행형이 되고 마는 내 마음의 첫사랑처럼 아련해 진다.  소설은, 나에게 처음 글 읽기의 즐거움을 줬고, 슬픔이 많았던 고교시절 도피처가 되기도 했으며 특별할 것 없던 내 유년에 글쓰기의 원동력이 되어 나를 돋보이게 했던 유일한 출구와도 같았다.  그 만큼 특별한데도 요즘 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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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들어보는 ‘소설집’.

소설을 읽다보면 꼭 오랫동안 찾지 못했지만 여전히 사랑한다는 진행형이 되고 마는 내 마음의 첫사랑처럼 아련해 진다.  소설은, 나에게 처음 글 읽기의 즐거움을 줬고, 슬픔이 많았던 고교시절 도피처가 되기도 했으며 특별할 것 없던 내 유년에 글쓰기의 원동력이 되어 나를 돋보이게 했던 유일한 출구와도 같았다.  그 만큼 특별한데도 요즘 가까이 하지 못했는데 “2009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집은 내 깊은 수렁 속에 빠져있는 아련함을 움트게 만든다.  해마다 ‘이상문학상’을 읽으면서 다음해 수상작가와 예사롭지 않은 필력들을 만나는 은근한 기쁨을 즐겼는데, 올해는 ‘오늘의 소설’을 읽으며 신예작가들과 중견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우리 문학의 흐름을 점쳐보기도 한다.


올해 단연 돋보이는 작가는 ‘김연수’이다.  솔직히 그의 작품을 단편집을 통해 군데군데 읽어보긴 했지만 평론가들이 얘기하는 만큼 훌륭한지는 늘 의심의 대상이었다. 단박에 끌림을 받지 못한다면 쉽게 잊혀지는 것이 우리 출판계의 현실이 아닌가 말이다.  첫 번째 작품인 ‘김연수의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를 유심히 읽는다.  그의 글을 따라가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성과는 있었다.  한국에서 온 젊은 애인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여류작가의 발자취를 통해 기억하는 것과 기억하고 싶은 것의 관계들.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자신에게 편한 쪽으로 읽고 발음한다는 것.  소통이 되지 않는 개인의 생각들이 서로 엉켜드는 과정들.  그 불완전성을 안아가는 과정들. 그가 왜 사랑받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탐나는 무언가를 만났을 때(그것이 먹을 것이든, 입을 것이든, 책이든, 아이들이든...) 이렇게 말한다.  ‘침이 고인다’라고.  아마도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를 읽은 후부터가 아니었을까.  그녀의 단편 큐티클은 어딘가에 낀 여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현대여성들이 겪는 상황들을 잘 묘사한 작품이었다.  내가 싫어하는 일상이지만 알고 보면 그것은 바로 내 모습이다라는 걸 시인하게 할 만큼 그녀의 소설은 설득력을 가졌다.  독특할 것 없는 일상적인 소재를 가지고도 이렇게 심리묘사를 제대로 풀어나갈 수 있다니. 그녀의 소설에 또 ‘침이 고인다.’


김태용의 ‘쓸개’ 또한 재밌게 읽었다.  잘 짜여진 구성.  군더더기가 느껴지지 않는 문장들. 어쩌면 나는 쓸개 없는 우리 엄마를 늘 가까이서 봐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생각해보면 끔찍한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감춰진 여인과 그녀가 돌봐주길 부탁하는 그녀와의 관계 - 이들은 서로 이복동생) 결국 ‘쓸개빠진’ 인간으로 살아가야하는 ‘나’. 그리곤 다시 꺼낸 돌멩이를 씹어야하는 ‘나’.  의미 같은 건 부여하고 싶지 않다.  


박민규의 소설은 색깔이 분명하다.  읽는 내내 나는 왜 ‘아라한 장풍 대작전’이라는 영화가 생각났을까?  세상의 외곽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와 풍자들.  그 외에 윤이형의 스카이워커..., 소설이라는 장르가 많이 다양화되고 시공간을 초월하고 있다는 생각에 아직은 준비되지 않은 내 개인적 취향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그녀의 무중력 상태에서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이장욱의 고백의 제왕 또한 재밌게 읽었다.  고백의 제왕이 고백을 할 때마다 섬뜩해졌다.  그 고백이 사실인지 아닌지가 중요해져서가 아니라 그 이야기가 미치는 영향력에 대한 섬뜩함이다.  함부로 고백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곽의 마지막 고백만을 남겨둔 채 소설은 끝을 내지만 결코 끝나지 않은 그의 고백이 꼭 우리의 고백 같아서 영 씁쓸한 마음이었지만 소설을 풀어가는 내공의 힘은 읽는 독자를 소설 속으로 말고 가는 힘이 느껴져서 좋았다.  최인석의 스페인난민수용소, 한유주의 재의 수요일까지 이 책은 모두 8명의 작가의 단편들이 소개되었고 각 단편마다 평론가들의 평론이 한편씩 수록되어 있다.  그 외에도 올해 출간된 책 중에 화제가 된 9개의 소설집에 대한 평론가들의 서평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b****h 2009.03.2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