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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모 케이블 채널에서 1980년대 후반에 MBC에서 제작한 드라마 <인현왕후>를 틀어 주던데 일주일에 딱 한 번, 그것도 금요일 한밤중이라서 아주 힘들게 시청하고 있습니다(라고 할 수도 없고, 대략 이 주에 한 번 정도나 운 좋으면 보는 정도..)... 예전 드라마라서 확실히 캐릭터들이 평면적이고 판에 박힌 대사가 반복되는 게 좀 답답한데, 그래도 1980년대 사극(KBS, MBC 불문)을 평정한 고 신봉승 선생 솜씨라서 최소한의 경외심을 갖고 보긴 합니다.
여튼 이 드라마에서는 유교적 덕목(구시대적 여성관이겠으나)의 화신 정도로 인현왕후 민씨를 묘사하며, 그의 숙적인 희빈 장씨는 세상에 둘도 없을 악녀로 세팅됩니다. 군주 숙종은 선의를 품은 상식인이지만 다소 어수룩한 데가 있어 처음에는 장씨의 간교한 술책에놀아났다가 이후에는 정신 차리고(혹은, 그저 악녀 모드로 폭주만 했다뿐 기실 전술의 섬세한 조율 능력이 부족했던 장씨의 삽질 덕에 현실을 바로 보고) 악의 세력(?)을 축출하는 걸로 나오지만, 실제 역사가 과연 그러했는지는 의문입니다.
당파 싸움에 나라 기둥이 허물어진 조선 시대 후기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이 숙종, 그리고 그 아드님인 영조, 그 증손자인 정조 등은 꽤 노련한 군주요 정치인들이었습니다. 특히 후 2자의 치세에 내내 "탕평"이라는 구호가 등장했는데, 이 말이 등장하게 된 건 영정조 이전에는 편당의 풍조가 만연했다는 뜻도 됩니다. 일당 전제의 기운이 득세한 건 물론 군주의 의도가 그리 깔려서도 있겠으나, 기본적으로는 능양군 정변 이후 서인이 크게 세력을 확장한데다 본디 이 정파에 명문 거족, 명현이 많이 출현한 까닭에 애초에 정치 구도가 "기울어진 운동장"인 데서 연유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랬기에 효종, 현종 이래 남인들이 (비록 사대를 국시로 내세우는 소국이라고는 하나) 군주의 특별함을 옹호했던 것이고(기해, 갑인 양 예송에서 잘 드러닙니다), 군주를 "동료 중 으뜸" 정도로만 여긴 서인들이 그런 과감한 기조를 내내 유지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 책은 풍류남아처럼(?) 여러 여인을 거느렸던 숙종의 독특한 개성과 행보에 대해 깊이 천착했으며, 동시에 날카롭게 대립하면서도 왕권을 견제하고 이익을 다투었던 사대부들의 세력을 요리조리 잘도 갖고 논 그의 수완에 대해서도 엿볼 수 있는 유익한 책입니다. 현종 12년(1671)에 경신대기근(경술, 신해) 구제책 호소차 청 강희제를 알현했던 복선군이 "너희 나라는 신권이 강해서..." 같은 말을 들었다고는 하나, 이때로부터 3년 후에 즉위한 숙종, 또 그의 직계 후손들은 신하들을 다룸에 있어 하나같이 노련한 솜씨를 보였습니다. 역사는 역시 팩트를 제대로 공부한 후에 무슨 평가나 감상을 담아도 담을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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