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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는 물보다 진하다- 영조를 만든 경종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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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인간이 태어난 뒤 최초의 경쟁자는 형제가 아닐까 싶다. 조금이라도 부모의 사랑을 더 많이 차지하려면 견제해야 하는 대상이 바로 형제일터니.  어렸을 때야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형제를 견제하게 되지만 성인이 된 뒤에는 쟁탈 대상이 사랑이 아니다. 부모의 유산을 두고 혹은 기업 경영권을 두고 형제간에 분쟁이 나는 경우는 드물지 않았고, 권력이 세습됐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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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인간이 태어난 뒤 최초의 경쟁자는 형제가 아닐까 싶다. 조금이라도 부모의 사랑을 더 많이 차지하려면 견제해야 하는 대상이 바로 형제일터니. 

어렸을 때야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형제를 견제하게 되지만 성인이 된 뒤에는 쟁탈 대상이 사랑이 아니다. 부모의 유산을 두고 혹은 기업 경영권을 두고 형제간에 분쟁이 나는 경우는 드물지 않았고, 권력이 세습됐던 왕조의 경우에도 형제간 분쟁이 심심치 않았고, 심하면 골육상잔이 벌어졌다. 피는 물보다 진하는 말이 권력 앞에서는 무색해졌다.

    

 

 

조선의 경우에도 적장자 승계 원칙이 있지만 적장자가 왕위에 오른 경우가 오히려 드물다보니 세자 책봉이나 왕이 요절했을 경우 아우에게 왕위가 계승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 계승되는 과정이 순탄하게 이루어지기 보다는 물밑으로 치열한 권력 투쟁이 수반됐고, 형제사이가 정적으로 돌변하는 상황도 발생하게 됐다. 이러다 보니 왕자들은 서로 잠재적 경쟁자가 됐던 것이다.

 

경종과 영조는 어땠을까? 경종이 영조를 선뜻 세제로 책봉한 것인가? 아니면 경종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노론의 승리인 것인가?

어쨌든 영조는 세제로 책봉됐고, 그 뒤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경종이 급서하자, 경종 독살설이 제기된 것은 영조에게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경종은 병약했지만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영조의 정통성 문제를 야기시켰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경종 독살설은 뿌리 깊게 남아있어 '혹시'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영조를 만든 경종의 그늘'은 경종에서 영조로 보위가 이어지기까지 일련의 사건들을 살피면서, 경종이 자의로 영조를 세제로 책봉하고 후대 임금 자리에 올린 것인지 또 두 사람 사이의 우애나 영조의 정통성 시비를 더듬어가고 있다.

경종 시절이 노론과 소론의 당쟁이 격화됐던 것을 감안하자면, 당쟁과 세제 책봉, 보위 계승까지 모두 경종-영조 두 사람 관계 뿐 아니라 당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경종의 이름은 윤,영조의 이름은 금, 이 책에서는 경종, 영조 묘호보다는 이름을 더 자주 사용하고 있는데, 아마도 왕 이전에 형제라는 것을 상기하기 위한 필자의 의도가 아닐까  짐작했다. 왕들 이름을 보면서 뜬금없이 왜 조선 세자들 이름은 거의 다 외자인건지 궁금해졌다. 왕자들이 한둘이 아니었을텐데 뒤로 갈수록 이름으로 쓸만한 한자가 남아 있었을까?

 

윤과 금 두 사람은  여러 면에서 서로 대립각을 세울만한 여지가 있었다. 우선 경종의 모친이 장희빈, 영조의 모친은 숙빈 최씨로, 두 왕의 모후 사이는 그야말로 앙숙이었다.

조선에서는 모후가 생존했느냐 여부가 생각보다 훨씬 영향이  컸다.  단종에게 모후가 살아있었다면 그런 참화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견해까지 있을 정도인데, 그도 그럴 것이 모후만큼 든든한 보호막이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경종이 호불호가 심한 성격의 숙종 눈밖에 나..폐세자까지 고려했던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적장자인 세자를 폐할 명분이 없었던만큼  예정대로 왕위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픽 웃고 말았다. 장희빈에게 빠져서 원자를 낳자마자 세자책봉을 감행한 것이 바로 숙종 자신일텐데..변덕이 심한 왕, 그 변덕으로 정국을 주도한 왕이라 아들에 대해서도 변덕을 부렸나 보다.

 

경종이 왕위에 오른 뒤에도 당쟁은 여전했다. 연일 노론과 소론의 대립으로 정국이 시끌했다. 경종이 소론의 지지를 받았음에도 노른자위 자리는 여전히 노론이 차지하고 있다보니, 소론이 잠자코 있을 리가 없었다.

노론과 소론의 격렬한 대립은 결국 노론의 지지를 받고 있는 영조와 소론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경종의 대립을 더욱 부추기게 됐고, 자신들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 두 형제의 갈등을 부채질하는 결과를 낳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염집이 아닌 왕가의 형제 사이는 긴장감이 감도는 관계인 것일까. 경종처럼 병약한데다 후사까지 없다면 거기에 다른 형제도 없다면 다음 보위를 기대하는 것은 인지상정일 수도 있겠다. 경종은 다른 왕족을 양자로 들이는 방법도 있을텐데, 이를 거절하고 영조를 세제로 책봉하게 된다. 무려 중국에서 권한 방법이었음에도. 이복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피 한방울이라도 더 섞였기에 동생을 다음 보위로 택한 것일까.

 

우여곡절끝에 세제로 책봉된 영조, 하지만 이른바 목호룡의 고변으로 다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다. 목호룡이 세제 금을 역모설에 끌고 들어간 것이다. 소론인 목호룡이 총대를 메고 세제를 공격한 것인데, 경종은 금을 묵인하고 목호룡의 발언을 삭제까지 하면서 금을 지켜준다.

이것을 보면 경종이 영조를 정적으로 여긴 것 같지는 않다.오히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그래도 이복 동생에게 양위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인지, 영조에게서 왕의 자질을 발견한 것인지 세제가 무사히 보위를 잇는데 전적으로 밀어준 것이다.

 

혹자는 이런 경종의 호의를 무시하고 영조가 경종을 해한 것이 아닌지..의구심을 표할 수도 있겠지만 경종이 젊은 나이에도 영조를 세제로 책봉한 것에서 아무리 권력 앞에는 피도 눈물도 없다지만,그래도 피는 물보다 진한 것이구나 싶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해도 경종은 형으로서 아우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하지만 늘 우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대리청정 문제나 세제 책봉에 이르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고,

경종이 영조를 시험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사적으로는 형제지간이라지만 엄연히 군신 관계였으니, 경종은 영조의 생사여탈권은 쥐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때만 해도 둘 사이는 아슬아슬했다. 경종이 영조에게 사약을 내리는 건 아닌지, 퍠세제를 하는 것은 아닌지 그러다 골육상잔의 비극이 다시 발생하는 것은 아닌지, 당시에는 왕의 일거수 일투족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기도 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두 형제가 다른 당파의 지지를 받다보니 필요 이상으로 문제가 번지고 커지고 복잡해지기도 했다. 영조가 탕평을 추진하게 된 것도 이때의 당쟁으로 인한 경험이 바탕이 된 것이 아닐까. 

 

재위 4년만에 승하한 경종은 그 치세동안 노론 등 여러 신하들이 죽었지만 동생 영조는 끝까지 보호해준  셈 이었다.

이 책 말미에는 영조는 즉위 뒤 내내 선왕인 형을 깎듯하게 모셨고 소론 신하들도 배척하지만은 않았다고 정리하고 있다. 자신을 지켜 준 선왕에 대한 의리를 보여준 것이었다. '영조를 만든 경종의 그늘'은 경종 독살설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경종 윤이 동생 금과의 우애를 지킨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영조는 왕이 된 뒤 새삼 선왕의 우애를 확인했고, 또 왕이 되고 보니 더욱 형, 경종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요즘 나온 조선 왕을 다룬 책을 읽다보면 독살설의 그림자가 상당히 짙게 드리워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대중들에게는 이 독살설이 인상적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한두명도 아니고 저렇게 여러 왕이 독살될 정도라면, 최고 권력자의 기본적인 안위조차 지키지 못한다는 말이고, 그렇게 통치 시스템이 훼손된 왕조라면 일찌감치 망하지 않았을까.

 

 

e****0 2015.01.20. 신고 공감 3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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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조를 만든 경종의 그늘
"- 영조를 만든 경종의 그늘" 내용보기
어머니는 다르지만 아버지는 같다. 하지만 역대 대대로 불행한 형제들이 있다. 바로 왕의 아들들이다. 왕자의 난으로 피바다 속에 던져질 수도 있고, 당쟁 속 희생자로 역사에 기록될 확률이 큰 존재들. 그들은 때로 너무나 불행했고, 서로 친해질 수도 없었으며 한 배에서 나도 서로 찔러야 할 순간이 오기도 했다. 요즘 드라마 [동이]에 등장하는 깨방정 숙종의 아들들이 바로 경종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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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다르지만 아버지는 같다. 하지만 역대 대대로 불행한 형제들이 있다. 바로 왕의 아들들이다. 왕자의 난으로 피바다 속에 던져질 수도 있고, 당쟁 속 희생자로 역사에 기록될 확률이 큰 존재들. 그들은 때로 너무나 불행했고, 서로 친해질 수도 없었으며 한 배에서 나도 서로 찔러야 할 순간이 오기도 했다. 

요즘 드라마 [동이]에 등장하는 깨방정 숙종의 아들들이 바로 경종 윤과 영조 금이다. 경종은 희빈 장씨의 아들, 영조는 동이 숙빈 최씨의 아들이다. 또한 탕평책과 아들 사도세자, 손자 정조로 인해 더욱더 유명한 쪽은 영조였다. 하지만 이 책은 기억의 반대편에 선 경종에 관한 이야기다. 

세계적으로 여러 임금들이 독살설에 시달리지만  조선의 왕 중 가장 심하게 시달린 왕이 바로 영조가 아닐까. 물론 정조대왕 독살설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지만 영조가 올린 음식과 약을 먹은 뒤 경종이 죽어 버렸으므로 영조는 왕위를 위해 형을 독살한 임금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했다. 

그런 영조를 위한 작은 변명과 경종에 대한 몇가지 오해의 매듭을 이 책 속에서 풀어낼 수 있기를 바래 읽기 시작했는데, 절반쯤은 성공한 듯 싶다. 하지만 여전히 매듭의 첫 자락은 마음 속에 고이 모셔두고 있다. 영조가 아닌 이상 그 누구도 진실을 알 수 없고 이미 그는 고인이니까. 

그리 건강하지 못했으며 실어증까지 걸려 있던 경종 윤. 어미가 죽고 권력의 비호를 잃어 더 없이 불쌍했을 궁궐 속 힘없는 소년. 더욱이 아버지 숙종은 변덕이 심했다고 하니 그는 살기 위해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익숙한 사람도 의심해야 했을 그가 과연 떠오르는 왕세자 후보인 아우 금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이 사랑하였다고 저자는 전한다. 어린 시절에야 붙임성 좋고 평범했던 왕자 금이지만 자라면서 왕에 대한 꿈이 자라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왕비의 후사가 없는 궁궐. 고만고만하던 후궁의 자식들. 어미가 살아 있지 않은 날개꺽인 왕세자를 두고 그들은 무슨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일까. 

저자의 말처럼 정치는 곧 명분이었다. 노론의 손에서 "명분"을 빼앗을 만큼 영리했던 윤이 신체적으로 비리비리 했다고 해서 그들에게 만만하게 보였을리 없다. 그래서 독살되었던 것일까. 

저자의 주장처럼 진짜 독살은 낭설이었으면 좋겠다. 편편하게 대물림되지 않었던 조선 왕조사에서 모든 불안 요소에도 불구하고 우애가 돈독했던 형제의 이름을 단 한사람도 떠올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종과 영조는 정말이지 마음 속 깊이 서로를 사랑하는 형제였길 바래본다. 

독살설에 대해 반대 입장에 선 저자의 몇가지 타당한 주장을 되새겨보면서 마음이 반반이라 저자를 따를 수도 반박할 수도 없는 중심에 서서 바램만이라도 그들의 형제애에 한 표 던지고 싶어졌다,.
i*****i 2010.06.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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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종의 다른 면을 찾아서..
"경종의 다른 면을 찾아서.." 내용보기
조선왕조에는 총 27명의 임금이 존재했다.. 태조처럼 왕조를 창건한 인물도 있었고..태종처럼 피도눈물도 없이 권력과 왕조의 기반마련을 위해 가차없이 주변인물을 제거한 임금도 있었으며...성군으로 추앙받는 세종도 있었고..망국의 경계에서 결단력이 미약햇던 고종도 있었다..   나름, 싫든 좋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후손들에게 각인을 남기고 임금들은 이승을 떠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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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에는 총 27명의 임금이 존재했다..

태조처럼 왕조를 창건한 인물도 있었고..태종처럼 피도눈물도 없이 권력과 왕조의 기반마련을 위해 가차없이

주변인물을 제거한 임금도 있었으며...성군으로 추앙받는 세종도 있었고..망국의 경계에서 결단력이 미약햇던 고종도 있었다..

 

나름, 싫든 좋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후손들에게 각인을 남기고 임금들은 이승을 떠났는데..

그 중 몇몇 임금들은 짧은 재위기간과 미약한 정치력으로 인해..후손의 뇌리속에 큰 인상이 없는 경우도 있다..

어린조카를 죽인 세조와 훌륭한 군주라는 평을받는 성종사이에 낀..예종..

1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동안 효(孝)라는 이미지만을 남긴채 떠난 인종...

장희빈의 아들과 당쟁에 휘말리기만 햇던 무능한 군주라는 경종....

그리고 세도정치 속에서 임금 자리만 지키다 하직한 헌종과 철종 등...

 

그중 저자는 조선 20대 임금인 경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자 이 책을 저술한 것 같다..

다른 책의 서평에서도 몇번 언급을 했었지만.....

편견과 선입견으로 둘러싸인 한 인물 또는 사건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시도는 언제나 환영한다..

역사의 주인공이 아닌 마이너로 자리를 잡은 그러한 인물과 사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역사를 바라보는 독자들의 시각을 넓혀줄 수 있을뿐 아니라 사고의 다양성에까지 영향을 끼칠수가 있기 때문이다..

 

과연 경종은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병약하고 무능하게만 4년을 허비한채....그 생애를 허비했던 것일까?

저자는 여러 역사적 고증과 자료분석을 통해서 경종의 그러한 이미지를 깨기 위해서 노력한다...

 

경종이 우애깊고, 단호한 신념과 결단성을 지녔다는 반론을 위해서 저자는

1. 경종은 이복동생인 연잉군 이금(영조)을 권력의 경쟁자가 아닌...동생으로서 진심어린 우애로 대했다..

2. 연잉군 역시 이복형인 경종을 진실된 마음으로 일관되게 대했다.이런 면에서 영조와 그의 배후세력이

   경종을 독살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3. 경종은 단지 당시 매우 격화되고 있는 당쟁의 소용돌이속에서

   무능하기만 했다고 하기에는 무리라고 볼 수 있는, 여러 정치적 수완을 보여주기도 했었다..

 

저자의 여러 주장을 단순히 근거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하기에는 경종이 보여준 여러 생각과 행동을

실록을 비롯한 여러 자료를 통해서 느껴볼 수가 있다...

물론, 경종을 둘러싼 편견을 전면적으로 뒤집어엎을 수 있는 정도라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에 대한 편견을 조금이라도 벗어던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만으로도 저술의 의의는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몇가지 점은 지적하고 넘어가고 싶다..

1. 전체적으로 저자의 문체는 감정적이고 추측에 일관되는 면이 많아 설득력이 부족할 때가 종종 있다.

   아무래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경종의 진심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면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그 주장에 동의하지 못하는 적도 꽤 있었다......

   [~~~했으리라..]., [~~했다는 것이 아닐까?]등의 문구는 독자에게 근거가 부족한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들게끔 할 수 있으니깐 말이다.

2. 시종일관 경종과 영조(또는 연잉군)를.....그들의 이름인 윤과 금으로 지칭하는 것은..어색하다.

   이름으로 왕을 지칭하는 것은 어느 역사서적에서도 본적이 없는 시도라..처음에는 참신했지만.

   그래도 어색한 것은 어쩔 수 없다.꼭 과연 그렇게 지칭했어야 했는지..

 

 

http://blog.naver.com/bluemir98

b******9 2009.09.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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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를 만든 경종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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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주에서 죽음에 사도세자, 아버지인 영조에 의해 죽은 사도세자. 왕으로서 자신의 꿈을 펼쳐볼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 불운의 사도세자.. 이 사도세자의 죽음은 정조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럼 왜 영조는 사도세자를 죽일 수밖에 없었을까? 사도세자의 고백이라는 책을 읽고 어느 정도 의문이 해소되었지만, 또 다른 의문이 슬그머니 자라난다. 경종의 독살설에 휘말려 경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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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주에서 죽음에 사도세자, 아버지인 영조에 의해 죽은 사도세자. 왕으로서 자신의 꿈을 펼쳐볼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 불운의 사도세자.. 이 사도세자의 죽음은 정조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럼 왜 영조는 사도세자를 죽일 수밖에 없었을까? 사도세자의 고백이라는 책을 읽고 어느 정도 의문이 해소되었지만, 또 다른 의문이 슬그머니 자라난다. 경종의 독살설에 휘말려 경종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영조와 경종은 도대체 어떤 사이였을까?

이런 이유로 선택한 책이 ‘영조를 만든 경종의 그늘’이다. 지은이가 밝힌 것처럼 이 책은 영종과 경종의 우애에 많은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전의 책들과 다른 시각으로 경종과 영조의 관계를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하고 구입한 책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실망감이 크다.


 첫째, 역사소설들과는 달리 역사서는 정확한 사료를 바탕으로 추론해서 결론을 이끌어 내야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료를 사용하느냐 그리고 얼마나 정확하게 그 사료를 이용하느냐가 중요하다. 다시 말해, 작가 자신의 목소리보다는 객관적인 사실이 주가 되어야 한다. 아쉽게도, 이 책은 작가가 너무 많이 개입한 느낌이 강하다. 그 작가의 목소리 또한 사료에 의해 정확하게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설득력 있게 사료를 이용하지 못함으로써 공허한 울림으로 남는다.


둘째,  경종과 영조의 우애라는 렌즈로 사건을 비추다보니 객관적으로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정말 경종은 연잉군에 대한 우애 때문에 대리청정을 승낙할 마음이 있었을까?’  노론이 연잉군을 세자로 책봉할 당시 경종도 건강상의 이유로 동의했다고 한다. 또한 대리청정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론은 임인옥사로 대리청정을 주장한 4대신들의 죽음과 영조가 설 자리가 좁아졌다는 것이다. 이미 대리청정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경종이 왜 돌변해 4대신을 제거하고 연잉군에게 역적이라는 주홍글자를 씌워 이인좌의 난과 나주벽서사건과 같은 영조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는 사건의 발단을 제공했을까? 여기서 작가는 4대신의 대리청정 주청에 연잉군의 이름도 올라있어서 괘씸한 마음에 그렇게 했다고 한다.(p.202) 조선시대에는 역적모의로 이름이 거론되었다는 자체가 역적을 의미하기 때문에 죽음을 면치 못했다. 그것을 아는 경종이 단지 연잉군의 이름이 명단에 올라 있다는 이유로 대리청정의 명을 번복했을까? 대리청정을 인정하고 연잉군에게 섭섭함을 표현하는 것이 더 이치에 맞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경종의 영조에 대한 사랑을 감안하더라도, 임인옥사는 노론에 대한 경종의 왕권회복이라는 입장으로 해석하는게 더 맞는 것 같다.  


셋째,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김일경을 추종하는 입장에서 환관 박상검은 남인이면서도 소론과 더욱 뜻을 같이하게 되었다. p.171' ’금이 처음 세제가 되어 궁으로 들어왔을 때 박상검은 그에게 아첨하며 달라붙으려고 하였다. 미래의 왕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때문일 것이다. ......... 그런데 연잉군과 그 사이는 결국 틀어지면서 박상검은 불과 스물한 살에 형벌을 받고 죽었다. p.183' 박상검은 소론, 연잉군은 노론이 지지를 받고 있는 상태였다. 소론 김일경의 도움을 받은 박상검이 연잉군에게 아첨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경종이 병환동안 영조가 시약청을 설치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 ‘독살을 하고자 했으면 금으로서는 병으로 인한 사망으로 위장하기 위해 어떻게 하든 시약청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 p.246' 원래 조선시대에는 왕이 아프면 대궐 안에 시약청을 설치해야한다. 하지만 연잉군 금은 설치하지 않았다. 따라서 독살설은 말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다. 당연히 시약청을 설치해야 하는데 하지 않은 그 자체가 더 이상하지 않는가?


 책을 읽고 나면 꼭 뒤에는 참고문헌들을 본다. 그 참고문헌들의 분량을 보면서 이 책 한권을 만들기 위해서 작가들이 얼마나 공부하고 노력하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역사학자도 역사 관련학과도 나오지 않는 내가 작가의 노력의 결실에 대해 왈가불가 할 생각은 없다. 한 명의 독자로서 개인적인  감상을 적었을 뿐이다.

l*******g 2012.02.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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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감상적인, 그래서 실망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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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우한 임금 경종과 그를 이은 영조를 정치관계 대신 순수한 형제애로 묶어 보는 새로운 시도였다. 경종의 독살설을 부인하고, 대신 경종이 나름대로의 치밀한 정치계산으로, 그리고 이복형제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영조를 세자로 택하면서, 자신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주장이다.   책을 읽는 내내 가졌던 불편한, 아니 낯선 느낌은 저자가 계속 두 임금을 그들을 이름으로 (윤,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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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우한 임금 경종과 그를 이은 영조를 정치관계 대신 순수한 형제애로 묶어 보는 새로운 시도였다. 경종의 독살설을 부인하고, 대신 경종이 나름대로의 치밀한 정치계산으로, 그리고 이복형제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영조를 세자로 택하면서, 자신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주장이다.

 

책을 읽는 내내 가졌던 불편한, 아니 낯선 느낌은 저자가 계속 두 임금을 그들을 이름으로 (윤, 금) 칭하는 데에서 왔다. 그들의 어린 시절의 기록에 따른 일화는 기대와는 달리 두어 가지만 언급하는데 그치고, 그들의 정치적 행보를 논하는데도 계속해서 경종과 영조대신 윤과 금을 등장 시킨다. 그만큼 이 두 임금의 개인적 관계를 강조하고 싶었던 듯하다. 하지만 저자의 의욕이 과한 것일까. 두 임금의 어린시절 일화 (206쪽) 말고는 두 사람 (개인 윤과 금) 사이에는 특별한 형제애가 느껴지지 않는다. 의례적인 칭찬과 사과, 그리움에 대한 기록들을 저자는 문자 그대로 이해한다. 그 덕에 이 둘을 사랑에 넘치게 바라보고, 모든 것을 감싸기로 작정한 저자의 문체가 너무 "감상적"으로 읽힌다.

 

정작 저자가 주장하는 경조 독살설의 부당함은 형제애가 아니라 당시의 상황들로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형제애가 극복하는 것은 별로 없는 듯하다. 경종은 영조를 받아들임으로 정치 생활을 더 용이하게 할 수 있던 것이고, 영조도 경종의 그늘아래에서 최소한의 정통성을 부여 받은 것이다. 영조의 즉위후 '황형'을 그리워 하는 부분도 재차 반복되는 "형이면서 어버이였던" 경조에 대한 예의갖춤이다.

 

책의 중간부분, 흔히 무능한 임금으로 치부되던 경종의 재해석 부분이 그나마 가장 돋보이는데, 이것은 다른 사학자 정회선씨의 논문의 도움이 컸단다. (하지만 그 도움이 정확하게 어느 정도인지 표기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책 전반부의 작가의 경종 평가와 약간 엇갈리는 부분도 있고, 끝내 그에 대한 평가를 명확하게 내리지 않고 있다.

 

두 임금을 개인 이름으로 부르면서까지 다른 역사책들과의 차별점을 두고자 했으나, 저자의 너무나 너무나 감상적인 (때론 읽는 내가 무안할 지경이기도 했다) 문장과 탄탄하지 못한 주장으로 실망스러운 독서였다.

 

 

 

 

y********o 2009.04.03. 신고 공감 0 댓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