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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을 훔치다가 자신을 찾다 - 다니엘 켈만의 『나와 카민스키』
예술계에는 불문율이 존재한다. 작품의 가격은 작가가 죽은 다음에 치솟는다. 이 과정에서 많은 예술가들이 사후에 '위대한', '불멸' 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전설로 남는다. 우리는 흔히 예술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고독한 예술가 개인의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미 예술-산업의 체계가 구축된 세계 속에서 예술의 가치와 명성은 제조되는 경우가 많다. 예술의 대중화가 부르주아 사회의 계급 장벽을 허물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던 벤야민이 이 광경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독일 신세대 작가 다니켈 켈만은 『나와 카민스키』를 통해서 예술이 산업과 결탁하여 어떻게 불멸의 작가와 작품이 제조되는지를 유쾌하게 풍자한다. 소설은 예술사 전문기자인 세바스티안 쵤러가 고령의 화가 카민스키의 전기를 기획하면서 펼쳐진다. 고령에다가 병에 시달리고 있는 카민스키는 깊은 산 속에 은거하는 기이한 성격의 소유자에다가 눈까지 멀어가는 화가이다. 카민스키는 마티스, 피카소 등 20세기 중반의 유명 화가들과도 알고 지냈다. 그리고 테레제라는 여인과 헤어진 후에 두 번째 아내와도 이별하고 딸과 같이 칩거하고 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카민스키의 삶과 그림과 아픈 사연들을 그럴 듯하게 엮어보리라. 세바스티안 쵤러는 카민스키의 삶과 그림, 특히 눈이 보이지 않은 이후에 그린 그림들과 삶을 연계시켜서 그럴듯한 '카민스키 전기'를 쓸 계획에 들떠 있다. 전기가 완성되면 자신은 예술사 분야의 대가로 유명해지지 않겠는가.
하지만 쵤러의 계획은 사사건건 틀어진다. 카민스키의 딸 마리암은 엄격한 재활-투약 시간에 맞춰서 인터뷰를 허용하며 쵤러를 방해하기 일쑤다. 늘어나는 체류비용과 진도가 나가지 않는 인터뷰 때문에 쵤러의 초조함은 점차 고조된다. 이런 상황에서 쵤러 자신의 사생활 문제까지 겹쳐진다. 쵤러의 무책임한 태도에 질린 여자친구 엘케는 결별을 통보하고, 잡지사의 편집장 마겔 바흐는 인터뷰 지원 비용을 청구하는 쵤러의 요구에는 관심이 없다. 마겔 바흐의 관심은 오직 '위대한 카민스키'를 다룬 쵤러의 결과물일 뿐이다.
안팎의 위기 속에서 쵤러는 카민스키에게 마지막 카드를 뽑아든다. 카민스키가 사랑했던 여인 테레제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리자 과연 카민스키는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테레제와의 재회를 원하는 카민스키와 둘이 여행을 떠나게 된 쵤러는 마침내 전기를 완성할 수 있다는 예감에 기뻐한다. 심한 변덕을 부리는 카민스키의 괴팍한 성격과 치매증상에 시달리며 쵤러는 두 사람을 재회시키는데 성공하지만 현실은 한없이 남루하기만 하다. 그들의 재회에 위대한 화가의 애틋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치매를 앓는 두 노인의 더듬거리는 대화만이 있을 따름이다.
타인의 삶과 예술을 빌미로 성공을 노렸던 쵤러는 카민스키를 취재하는 여정에서 불현듯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예술 산업의 피라미드의 아랫부분에 놓여진 채 '위대한 예술의 기획'에 이용당하고 있지 않은가. 자신이 하는 일이란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예술가의 작품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고, 타인의 아픈 기억들을 헤집어서 윤색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 카민스키는 쵤러의 심경변화를 눈치 채고 빙긋이 웃으며 말한다. "난 자네를 좋아하네." (233쪽) 미소를 교환한 둘은 작가와 취재자의 역할을 접고 일출을 보러 바닷가로 향한다.
우리는 타인의 삶을 관찰하며 살아간다. 미디어와 예술이 결합된 현실 속에서 타인의 삶은 굴절된 채 전달된다. 정치가, 예술가, 연예인, 심지어 범죄자와 장애인, 이웃의 삶까지. 무수히 많은 타인의 삶은 언제나 특정한 기획에 의해 왜곡되어 전달된다. 위대하다고 칭송되는 어떤 대상들도 대부분 시대와 대중의 필요에 의해 형성되지는 않았을까. 물론 모든 작가와 예술의 가치에 대하여 회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카민스키의 기이한 성격과 삶을 취재하면서 자신의 삶을 통찰하게 된 쵤러의 모습은 웃음의 코드로만 작용하지 않는다. 모든 희극성은 슬픔과 연동되기 마련이다. 타인의 삶에 숨겨진 내밀한 사연들을 우리는 과연 관찰할 의지를 지니고 있는가. 쵤러와 카민스키의 우스꽝스러운 만남은 바로 이 질문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책 속의 밑줄 긋기
인간은 원래 거의 모든 것과 작별하게 된다. 원하지 않는 경우라 하더라도. -116쪽.
"착상도 충분히 해 뒀고, 내 시대가 오리라는 걸 알고 있었거든. 명예욕이란 어린아이가 앓는 병 같은 거야. 그걸 이겨내면서 강해지는 거지." -142쪽.
"진실은 오로지 분위기 속에만 존재하는 거야. 그러니까 그려진 형태가 아니라 색채 속에서. 정확하게 포착된 소실점은 진실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어. 자네 교수들은 그런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았지?" -167쪽.
이 모든 것이 그의 역사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 역사를 체험했고, 이제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나는 절대 그의 일부분이 될 수 없다. (……) 그의 삶. 그런데 나의 삶은? 그의 역사. 나에게도 역사가 있을까? -210쪽.
더 소개할 책 - 개별적인 삶에 관한 응시를 담은 책
<리스본행 야간열차> - 파스칼 메르시어, 들녘 <나다> -카르멘 라포렛, 문예출판사 <그것이 어떻게 빛나는지> - 토마스 브루시히, 문학과 지성사 <내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 김연수, 문학동네 <나를 보내지 마> - 가즈오 이시구로, 민음사
-네이버 '오늘의 책' 게재 예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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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나와 카민스키>에는 두 사람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 책의 화자인 세바스티안 쵤너는 무명의 예술사가이다. 그는 한때는 명성이 자자했던 초현실주의의 대화가 마누엘 카민스키를 찾아가서 그의 생애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 쵤너는 카민스키에 대한 존경심과 예술사가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전기를 쓸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카민스키의 사후에 자신이 쓴 그에 대한 전기를 발표하여 부와 명예를 얻고자 하는 욕망으로 인해 카민스키를 찾아간 것이다. 마티스가 스승이었고, 피카소가 친구였으며, 위대한 시인 리하르트 리밍이 양부였던 카민스키는 현재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괴팍하고 퉁명스러운 괴짜 카민스키는 전기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카민스키의 딸 미리암의 감시는 쵤너에게 부담만 된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카민스키, 그의 눈은 진짜로 보이지 않는 것일까. 철저히 속물적이고 이기적인 쵤너와 모든것이 비밀에 쌓여있는 카민스키의 심리전이 책을 읽는내내 흥미진진하게 만들었다. 카민스키의 눈이 멀었다는 소문이 퍼졌을때 그의 작품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아마 그가 죽고 난 뒤에는 그림 값이 더 뛰게 될것이다. 이렇듯 <나와 카민스키>에는 예술계의 이면에 감추어진 추악한 모습들이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미디어와 예술계는 어쩌면 닮은 점이 많은듯 하다. 돈이 된다 싶은것에는 눈에 불을 키고 달려드는 하이에나떼와 같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서로의 살을 뜯어 먹으며 생존하고 있는 곳이 이쪽 세계가 아닌가. 자신의 명성과 부를 이용할려고만 하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카민스키가 애처롭고 불쌍해 보였다. 난 이 책 <나와 카민스키>를 읽으면서 마누엘 카민스키라는 작가가 실제로 생존하고 있는 작가일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컴퓨터로 찾아보기까지 하였다. (결국 카민스키는 작가가 창조해낸 완전한 허구의 인물이였다^^) 이 책의 저자 다니엘 켈만의 책은 처음 읽는 것이였는데 좋은 이야기꾼을 만나게 된것 같아서 기쁘기까지 하다. 특히 바닷가에서의 마지막 장면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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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카민스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접했을때 카민스키가 무엇을 의미하는건지 궁금하게 생각했었다. 왠지 모르게 특이한 이야기일거 같다는 생각도 들게 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책이 내손에 들어왔다. 결코 많아보이지 않는 분량의 책이 말이다. 미국, 스페인,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등 20여 개국의 독자를 매료시켰다고 하는데 과연 나 역시도 이 책에 매료시킬수 있을지 궁금해졌고 기대가 되어졌다.
이 책은 세바스티안 쵤너라는 인물에 의해 서술되어지고 있다. 그는 괴팍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주위의 것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면이 강하고, 비난도 서슴지 않는거 같다. 그는 자기 자신의 힘에 의한 삶을 살아가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이용해 살아가는 부류이다. 여자친구의 집에 얹혀서 살고 있던 그는 거기에서도 쫒겨난 상태인데 그는 마누엘 카민스키라는 초현실주의 화가를 찾아가게 된다. 마티스의 제자이자 피카소와 친구였던 카민스키는 과거에 유명했던 화가인데 시력을 잃은 후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 인물이다. 쵤너는 그의 전기를 써두었다가 그의 사후에 발표해 부와 명예를 거머쥐려고 그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가 찾은 노화가 마누엘 카민스키 그 역시 그냥 평범한 인물은 아니었다. 쵤너만큼이나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카민스키는 쵤너가 원하는대로 순순히 따라주는 인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책은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주로 하고 있는데 어찌보면 두 사람은 비슷해보이기도 했다. 자기 자신의 욕망을 꿈꾸는 존재로서 말이다. 그들은 예상치못하게 카민스키의 옛사랑을 찾아떠나게 된다.
사실 나는 예술이라는것에 대해 잘 모른다. 누군가 예술은 고독한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한 예술을 하며 평생을 살아왔기에 카민스키는 그러한 성격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쵤너와 카민스키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게 한다. 요즘에도 본인은 예술가라고 치부하지만 부와 명예만을 쫒아 예술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것이라 생각한다. 예술뿐만 아니라 우리사회의 각계 각층에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거 같다. 과연 그러한 사람들은 자기가 누리고 있는것에 대해 얼마나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 책은 인간의 속물 근성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 역시도 부와 명예를 쫒지 않는다고 자신있게 말할수는 없는거 같다. 이런점에서 볼때 이 책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면서도 씁쓸한 마음을 가지게 한다. 이 책을 통해 다니엘 켈만이라는 작가를 만날수가 있어서 너무도 좋았다. 앞으로도 그의 책을 만나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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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작가의 작품은 어린시절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파우스트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은뒤 처음인것 같다. 너무나도 유명한 작품과 비교하기는 뭐하지만... 나와 카민스키도 그 만의 독특한 매력이 있는 책인것 같다. 전 생활과 문화가 다른 나라의 작가의 작품을 접할때면 그 새로움에 빠져들곤 합니다.
명성을 얻고 싶은 젊은 예술사가 vs 과거를 되찾고 싶은 노화가 등장인물은 책제목처럼 쵤너와 카민스키이다. 쵤너란 이름은 독일어로 세금을 징수하는 사람, 죄인이란 뜻이 있다고 한다. 쵤너는 집도 없이 여자집에서 얹혀 살다가 이별통보로 쫒겨나게 된다. 현재 일을 하는곳에서도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하며 고약한 성격의 젊은 남자이다. 카민스키는 마티스의 제자이며 피카소와 친구였던 그는 시력을 잃은후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쵤너는 산골에 은둔중인 초현실주의 대화인 카민스키를 찾아간다. 그의 전기를 써두었다가 그의 사후에 발표해 부와 명예를 거머쥐려는 야심을 감추고 있다. 그러나 그런 계획은 쉽게 되지는 않는다. 산골을 찾는 과정도 쉽지가 않고 카민스키의 딸인 미라암 또한 카민스키와의 접촉을 못하게 한다. 쵤너는 잔꾀를 내어 꺼낸 말이 예정에 없던 여행길에 오르게 되고 칸민스키의 옛예인을 찾으러 떠나게 되는 두사람은 그들만의 세계가 시작된다.
책은 마치 추리소설처럼 긴장감을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이책을 읽는 재미가 더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끝이 없는것 같은. 결론이 없이 그냥 끝나버리는 장면들 덕분에 연결될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자신의 것을 버림으로써 자유를 찾아 떠나는 쵤너의 모습에서 우리도 한번 자신의 돌아보기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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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접하기 전부터 흥미가 많았다 말많은 미술계를 소재로 했기 때문에 기대가 되었다 결국 예술계에서 성공이라는것도 잘짜인 드라머처럼 각본에 의해 흘러가는 한편의 드라마와 같다 나와카민스키 결국 두사람의 이야기다 똑 같은 두사람 나는 명성을 얻고 싶어하는 젊은 예술사가 쵤너로 정당하고 실력으로 얻으려는게 아니고 뻔뻔하고 야비하며 유명한 화가의 전기를 미리 써두었다가 그후 사후에 맞쳐 발표해 부와 명성을 얻으려는 사람이다 카민스키는 마티스의 제자이자 피카소의 친구였지만 그렇게 유명하지 않다가 시력을 잃은후 그림값이 뛰어오른 은둔중인 초현실주의 대화가다 나인 쵤너가 카민스키의 전기를 쓰기 위해 산골도 찾아가는 것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카민스키의 집을 찾아가는 과정도 쉽지 않았고 찾아가서도 딸인 미리암에 의해 철저히 카민스키를만나지 못하게 한다 왜 딸인 미리암은 카민스키를 만나지 못하게 하고 자기를 통해서 들으라고 할까? 꾀를 내 드디어 카민스키를 만나는 쵤너 예정에 없던 카민스키와의 여행 전기를 쓰기위해 녹음을 꾸준히 하는 쵤너 중간중간 나타나는 카민스키의 눈에 대한 암시 둘만의 여행 종착역은카민스키의 옛애인집 이 과정이 탐정 소설 읽는것처럼 넘 흥미진진하고 재밌었다 옛애인과의 만남 그리고 찾아온 딸 미리암 딸 미리암을 따돌리고 다시 바닷가에 온 두사람 쵤너와 카민스키 애매모호하게 끝나는 끝장면 외국영화 보면 항상 끝이 애매모호해 2편이 나오는것처럼 이책도 2편이 나오지않으려나하는 기대감이 든다 추악한 예술계의 모습이 적라나하게 나오지는 않지만 오히려 더 가슴에 와 닿게 나오는 아주 재미있는 책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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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려한 문체로 멋있게 시작된 이 책은 읽어나갈수록 종잡을수 없는 스토리로 빠져들어간다. 한때 위대했던 미술가의 죽음을 앞두고 그를 취재하러간 기자가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제대로 된 취재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조바심이 난다. 어려운 형편에 이 미술가의 전기를 출간해 성공의 입지를 마련하려는 기자가 변변한 취재는 고사하고, 자신의 돈과 시간과 인간관계만을 축내는 상황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어이없게도 그런 상황은 책의 마지막 - end - 까지도 계속된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첫 1/3을 넘어서면 책의 대체적인 구도가 그려지기 시작하는게 보통이고, 그때부터는 책을 읽는 속도가 붙기 마련인데, 이 책은 끝까지 주의를 기울여 찬찬이 읽어보았지만 끝내 종잡지를 못하고 말았다. 책을 다 읽고 뒤에 붙은 후기를 보면서 비로소 내가 책을 잘못읽었다는 것을 꺠달아다. 머리속으로 그때까지 책을 읽은 내용을 역회전을 시켜보았다. 아뿔사.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목요연하게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내가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나는 작가의 관점에서 이 책을 읽으려고 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이야기가 진전되지 않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이 책을 철저하게 제 3자의 관점, 아니면 이 책에 화자가 아니라 대상으로 등장하는 미술가의 관점에서 이 책을 읽었더라면 책의 내용은 정반대로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이루기 위해 미술가에게 접근해서 그의 삶의 숨겨진 부분들을 캐어내서 전기작가로서의 입지를 구축하여 명성을 누리려는 작가의 개인적 욕심에 나도 모르게 동화되고, 나도 화자인 전기작가의 입장이 되어 같이 초조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마음을 비꼬아서 오늘날의 세태를 비웃는 블랙유머를 간직한 책이란 것을 몰랐던 것이다. 하긴 그런 것을 모르고 보았고, 책을 다 읽고 난 후에야 그것을 깨닳았기 때문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멍한 느낌의 또 다른 감동을 느끼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렇게 나를 철저하게 감동시키고, 마음아프게 하고, 나 자신이 선 위치를 깨닿게 해주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전기작가의 입장에 섰던 나의 속물성과 마주대변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책에 나오는 작가들의 그림. 거울에 비친 사물의 모습의 반영. 자꾸만 비틀려가는 자화상. 몇개의 선들 사이로 희미하게 나타나는 사람의 모습들. 괴팍하게 보이면서도 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읽지 않는 화가의 이상한 모습. 바쁘고 정확하게 돌아가는 세태의 흐름과는 도무지 템포를 맞추지 않는 화가의 낮잠습관. 세상 사람들이 그가 이미 죽은 것처럼 여기게 만든 긴 시간에 걸친 철저한 은거. 그러면서 수십년을 세월을 걸쳐 잊지 못하는 옛사랑에 대한 우스광스러울만큼 순수한 추억....
미술계가 바라는 것은 화가가 죽는 것 뿐이라는 말이 있다. 이 책에서도 그 말이 되풀이해서 등장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빠름의 세계에 속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 대가의 죽음을 바란다. 그의 앞에서 어떤 비굴함을 보이든지 그들의 속마음에는 이 화가의 죽음과 그로 인한 그림의 희소성의 완결. 그리고 그로 인해 자신들에게 돌아올 이익에 대한 계산만이 들어 있을 뿐이다. 본의 아니게 화가와 긴 여행을 떠나는 전기작가도 화가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잘 팔릴만한 에피소드들을 모으는데만 관심이 있다.
그런 세상을 비웃으며, 그런 세상을 묵묵히 참으며, 그런 세상을 등지고 삶을 살아가며, 그런 세상이 원하지 않는 그림을 그리며, 그 세상에서 떄묻지 않은 옛사랑의 추억을 간직하며, 비록 눈을 멀었지만 마음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눈 먼 화가의 입장에서 이 책을 다시 생각해본다면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문법이라는 것이 얼마나 정신없는 미친세상같은지를 절실하게 느낄수 있다. 나도 툴툴거리면서도 그 중 한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바로 그 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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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카민스키(다니엘 켈만 지음) 부제 : 명성을 얻고 싶은 젊은 예술사가 vs 과거를 되찾고 싶은 노화가 통렬한 풍자로 예술계의 위선을 도려내다 30대 중반의 유명 독일인 작가의 글은 어떨까? 영어권 작가들과는 어떤 다른 면이 있을까? 헐리우드 영화와 독립 영화를 비교하듯이 영어권 작가들의 작품과 유럽의 타 언어권 작가들의 작품 차이에도 이런 유사성이 있을까? 이런 궁금증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제목에 등장하는 ‘카민스키는 누구일까?’ 하는 의문도 함께 말이다. 소설은 12개의 장이 있다. 연극처럼 막과 장이라고 표현한다면 12막이 맞겠다. 각 막은 약 20 페이지 정도가 할당되어 전체 240 페이지 분량으로 되어 있다. 책의 서두에 주인공이자 화자인 “쵤너”가 등장한다. “쵤너”란 이름은 독일어로 「세금을 징수하는 사람, 죄인」이란 뜻이 있다고 한다. 쵤너는 괴팍하고 이기적이며 뻔뻔한 인물이다. 가진 것이 하나도 없으면서도 자부심만은 대단하다. 애인의 집에 얹혀살고 전기 작가로 남의 인생을 이용해 한몫 챙기려 드는 악당 글쟁이다. 미술학을 전공하고 졸업후에 몇몇 화가들의 작품을 비평하면서 글로 돈을 버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대화가 『카민스키』를 이용해 먹기 위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마티스의 제자이고 피카소와 동시대에 등단하여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은 천재작가 『카민스키』. 중년이후 차츰 시력을 잃어 10년 쯤 전부터 홀연히 세상에서 이탈해 버린 노화가를 쵤너는 지금 만나러 가고 있다. 이미 그전에 노화가의 배경을 뒷조사하여 몇가지 글의 소재를 챙겨두었다. 실제 당사자를 대면하여 그의 숨겨진 이야기를 듣고 싶은게 쵤너의 목적이다. 하지만 카민스키의 건강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고 그의 딸 미리암 또한 쵤너를 반기지 않는다. 이때부터 쵤너는 이기심과 탐욕심을 한껏 드러낸다. 하인을 매수하여 집으로 잠입하고 개인 아뜰리에의 미공개 작품들을 뒤져 사진을 찍기도 한다. 그리고 개인 편지나 노트 등을 뒤지고 옮겨 적기도 한다. 이러한 쵤너의 노력으로 카민스키의 첫사랑 ‘테레제’의 존재를 알게 되고 현재 그녀가 어느 곳에 살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쵤너의 여러 질문에도 변변한 답이 없던 카민스키. 테레제의 존재는 그런 그를 쵤너와 함께 그녀를 찾아가는 사건으로 발전하게 만든다. 이제 쵤너는 카민스키에게 묻고 싶었던 것을 마음껏 물을 수 있다. 앞이 안보이는 노화가를 데려가 줄 사람은 쵤너뿐이기 때문이다. 노화가는 어쩔 수 없이 조금씩 그의 옛 일들을 이야기하게 된다.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쵤너의 삭수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의 말투며 행동이 왠지 작가(다니엘 켈만)의 것이 아닌지 혼동이 될 정도였다. 우리가 흔히 말하듯 재수없고 밥맛인 인물이 주인공이다. 그래서 왠지 책 읽기가 거북해 졌다. 서두에는 그런 쵤너의 성격적인 묘사와 상황 묘사가 매우 지루하여 더욱 거부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쵤너가 카민스키와 만나면서 그들의 대화는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 냈다. 그때부터 소설은 재미가 있었다. 카민스키가 쵤너의 인도로 테레제를 만났을 때. 그 순간의 묘한 감정 표현은 생동감이 넘친다. 이후 쵤너는 다른 사람이 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이 부분은 직접 확인해 보길 바란다. 이 책을 보는 동안, 보고 난후 내게 이런 질문이 생겼다.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일까? 죽기 전에 무엇을 원할까? 자신의 목적과 가치기준은 언제나 옳은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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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빠져들고 있는 책들이 바로 들녘의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시리즈이다. 이젠 너무나도 익숙하게 다가오는 일본소설이나 국내소설과는 다르게 잘 접해보지 못했던 독일 스페인 프랑스 등등의 문학을 접해 볼 수 있어서도 좋다는 생각으로 한 권씩 접했는데 이게 은근히 중독성이 있는 듯하다. 이번에 읽게된 『나와 카민스키 』 또한 이 지리즈의 13번째 책으로 독일의 젊은 작가 다이엘 켈만을 내게 소개시켜 주고 있다.
우선 카민스키가 진짜 화가일까 궁금해졌다. 그림쪽으로 조금은 문외한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이기에 진짜 실존하는 화가를 주인공으로 만들었을까 하는 호기심이 인것이다. 주인공인 카민스키를 마티스의 제자니 피카소와 친구니 하는 등 유명화가의 이름이 언급되었기 때문에 정말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몇번의 검색으로 웃음을 짓고 말았지만.
늙어 세상의 기억에서 사라져 가는 위대한 화가와 그의 마지막을 자신의 영화를 위해 취재하고픈 한 기자의 만남. 앞이 보이지 않는 화가로서 유명하지만 가슴속에 외로움을 안고 살고 온통 퉁명스러움와 꼬장함 그리고 툭박스러움으로 가득찬 카민스키, 여자친구의 집에 얻혀 살고 주머니에 쓸 돈이라고는 한 푼도 없지만 이제 인생이 얼마 남지 않은 노(老)화가의 삶에 대한 전기를 써서 그가 죽은 후 발간한다면 명성도 얻고 한 몫을 챙길 수 있다는 속물적인 생각으로 카민스키에 접근하는 세상의 때가 묻은 예술사가 췰러가 이 책의 주인공이다.
독특한 두 사람의 만남은 처음에는 전기를 쓰기 위해 어떻게든 카민스키의 삶의 여정을 들여다 보고자 하는 췰러의 초조함과 날카로움 그리고 툭박스러움 속에 무언가가 숨겨져 있을 것 같은 카민스키와 딸 미리암 사이의 긴장감으로 시작된다. 그러다 죽은 줄 알았던 카민스키의 첫사랑을 알게 되고 췰러의 당돌하고 즉흥적인 여행 계획으로 카민스키와 췰러는 첫사랑을 만나기 위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어딘가 어설퍼 보이고 거동도 불편하며 괴팍한 노인네로만 보이던 카민스키를 잘 요리하면 대박을 칠만한 소재를 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췰러의 머리 위에는 항상 카민스키가 있다. 자신의 욕심을 위해 끊임없이 카민스키를 자극하고 있지만 카민스키 역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위해 헛똑똑이 기자 췰러를 손아귀에 쥐고 있다. 서로의 목적이 분명했던 이 둘은 세상의 이기심에 입은 상처를 보듬으며 여행안에서 서서히 서로의 모습에 이끌려 가게 되고 바닷가에서의 한 장면으로 교감의 끝을 보이게 된다.
예술이란 시대가 바뀌어도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가슴속에 남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평론가가 아니니까 예술은 비평하고 조각조각내서 분석하기 보다는 눈으로 즐겁고 마음으로 행복해지며 시간을 잠시 멈추게 하는 정도의 편안함이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예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카민스키의 유명세가 작품의 완성도나 예술성 보다는 첫 인터뷰 때의 오해로 만들어진 그가 눈 먼 화가라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으며 그것을 알고 있는 노 화가의 쓸쓸한 마음은 스스로를 더욱 틀안에 가두어 두게 만든다. 순수라는 말이 통용되어야 할 예술가의 길에 언론과 이기적인 사람들의 개입은 카민스키를 더욱 과거와 첫사랑에 집착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행운을 비네, 세바스티안" 서로를 위해 그리고 세상사람들을 위해 행운을 비는 두 사람의 모습이 조금은 희망적이게 느껴지는 이유는 세상의 기만에 씁쓸해 하는 모습보다는 아직은 많은 결정이 남아 있는 인생에 브라보를 외치는 두 사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분명 미래는 존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