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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0. 20. 금. 진작에 읽었는데, 이제야 리뷰를 올린다. 이 시집은 지난 1월에 예스블로그의 전설이자 역사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닌 아자아자님의 책나눔으로 받은 책이다. 물론 아자아자님은 완전 새책을 주문해서 보내주셨다. 어쨌든 그 때 책나눔을 받은 것을 계기로 나도 책나눔을 시작하게 됐으니, 나의 책나눔 시작은 아자아자님께서 먼저 가르쳐주신 덕분임을 여기서 확실하게 밝힌다.
작년부터 발간된 모악시인선의 시집을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1집부터 완전 반해서 3집까지 리뷰를 올렸었다. 모악시인선은 시인들이 없는 돈을 털어서 종잣돈을 만들고 그 돈으로 모악출판사를 차렸다고 한다. 그리고 시인의 유명세보다는 정말 제대로 된 시인의 시를 선별해서 시집을 내고 있다고... 각각의 시집이 정말 개성도 강하고 귀하고 좋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까지 일곱 권의 시집이 나왔는데, 오늘 내가 올리려는 것은 네번째인 정동철 시인의 시집이다. 역시나 모악시인선은 실망을 주지 않는다. 시인은 1967년생으로 따뜻한 그리움이 가득한 시로 시집을 채웠다. 2006년에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해서 등단했으며, 문태준 시인은 정동철 시인의 매력을 "다른 생명에 대한 돌봄과 보호"에 있다고 말한다. 선배 시인의 평 속에서 전반적인 시의 분위기를 짐작하며 기대하게 된다. 시 속으로 살며시 들어가보자.
폭 설
마침내
나는
세상과 끊어졌다 --- 13p.
보통 일기예보가 있고 폭설이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냥 눈을 기다리기는 해도 폭설을 기다리는 사람은 없다. 한꺼번에 쏟아지는 많은 양의 눈은 온 세상을 덮으며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엄청난 피해가 기다리고 있기에 결코 반갑지가 않다. 미끄러운 길, 거북이처럼 기어가는 자동차, 꽉 막히는 교통정체, 산간지방 고립, 대관령같은 고개들은 사고방지를 위해서 임시통제...등등 폭설은 어떻게 보면 자연재해가 되기 십상이다. 그런데 시인은 달랑 3행의 싯귀로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마침내"라는 표현은 "갑자기"라는 표현보다 자연스럽지 않다. "세상과 끊어지"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으므로 "갑자기"라고 표현해야 시의 제목과 잘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다. "갑자기"라고 시를 썼다면 시인이 세상과 끊어짐으로써 당황했다는 현재의 상황을 나타내는 시가 됐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렇구나...라는 그저그런 평범한 시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마침내"라고 씀으로써 시인은 "폭설"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는 마음을 확실하게 잘 드러내고 있다. 왜일까. 스스로 고립하고 싶어도 이 사회는 우리를 고립하도록 내버려두질 않는다. 시인은 세상과 부딪히면서도 시를 발견할 수 있지만, 세상과 고립된 채 저만치 떨어져서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시인다운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세상과 고립되고 싶은 욕망, 단절되고 싶은 욕망, 그것을 이뤄줄 폭설을 간절히 기다리는 시인... 시인은 그렇게 고마운 폭설 덕분에 세상과 고립됨으로써 더 멋진 시를 만들어 낼 것이다.
나타났다
나타났다 라는 말이 힐끗 내 기억 저쯤에서 모습을 보였다
- 엄마, 엄마 나타났다, 라는 말이 무슨 말이야?
저녁노을 속으로 나와 누이와 동생들이 숨어들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곤소곤 구구단을 외웠다 아침이면 책가방을 들고 논둑길을 걸었다 논둑길을 따라 배미콩 포기들이 하늘거리고 있었다 꽁지 붉은 잠자리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저녁은 금세 황톳길까지 숨차게 달음박질쳐 왔다 엄마는 논둑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중이었다
- 나타났다는 말은 어딘가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말하는 거야
숨어있다는 말 몸을 웅크리고 때가 되길 기다리는 말 갑자기 나타나는 말 남부시장 한 모퉁이 채소를 팔던 할머니가 나를 외면했을 때 서둘러 떡집 골목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던 그 말
내 마음 속 어딘가 모습을 숨겼던 귀신고래처럼 기억의 심해 속에서 잠들어 있던 그 말이 내게 나타났다
할머니 --- 18p. - 19p.
시집 제목과 같은 시 <나타났다>이다. 어느 날 문득 생각난 어머니와의 대화, 그리고 할머니에 대한 기억...그것은 "나타났다"라는 단어 속에 깊이 새겨져있다. 아이의 질문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는"말이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니, 자신이 시장 모퉁이에 나타났을 때, "채소를 팔던 할머니가 나를 외면"하던 것, "서둘러 떡집 골목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나... 가난이 죄도 아니건만 부끄러움에 서로 못본척 하던 모습들이 어두운 기억 속에서 애잔하게 떠오른다. 마지막 연에 단 한 단어로 끝낸 저자의 마음이 울컥하며 와닿는다. "할머니"...이제는 아마도 저승에서 어른이 되어 옛시절을 회상하며 죄송해 하고 있는 손자를 흐믓해하고 계실까. "할머니"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잊고 있던 옛시절의 추억들이 가물가물 피어오르며 잔잔한 감동과 함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포릉포릉
흰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날 아침이었다 할아버지가 먹다 남은 소주에다 씨나락 한 움큼 담갔다가 양지쪽에 뿌려놓았다
동생이랑 부엌문 뒤에 숨어서 참새들이 쪼아 먹는 것을 지켜보다 뛰어나가면 날아올라 탱자나무 숲에 앉았다 작은 머리를 좌우로 갸우뚱 갸우뚱, 가지에 앉아있던 참새들 검은 탱자가시에 얼다만 눈이 반짝이며 날리고 있었다
발소리 한 번 쿵 울리며 다가가면 참새들이 떨어져 내렸다 포르릉 날개 짓 한 번 갈지(之)자를 그리며 자유낙하 한 번 포릉포릉 날개 짓 두 번 갈지자를 완성하며 자유낙하 두 번 술 취한 참새를 구워먹으며 할아버지는 뒷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지만 그날도 어김없이 눈이 내렸다
똑바로 살고 싶었다 비틀거리지 않으려고 앞만 보고 걸었다 어깨에 내린 눈을 털다가 문득 뒤돌아보니 걸어온 길이 갈지자다 가끔은 뒤도 돌아보며 살아야한다고 함박눈이 내 어깨를 툭 툭 치며 위로하는 밤 --- 28p. - 29p.
참새의 날개짓을 "포릉포릉"이라고 표현한 게 예쁘고 재미있다. 거의 채식만 하던 그 시절, 고기가 귀하던 그 시절에 조그마한 참새가 뭐 먹을 게 있다고 참새구이를 하기 위해서 할아버지는 작전을 쓰신다. 드시다 남은 소주에 씨나락을 담갔다가 양지쪽에 뿌리시고, 그 씨앗들을 먹은 참새들은 탱자나무 가시에 갸우뚱 거리며 취해서 앉아있다가 발소리에 쿵...떨어진다. 그리고 그 참새들을 구워주시던 할아버지... 먹는 모습도 사랑스러워서 "뒷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할아버지의 사랑, 참새들에게는 기억하기 싫은 슬픈 사연이겠지만, 저자에게는 참새를 볼 때마다 할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에 가슴이 뻐근해 질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 시절의 그 입맛이 살아나서 참새를 보면 입맛을 다실까? 참새는 우리나라 고유의 텃새이고 여름에는 해충을 잡아먹지만, 가을에는 곡식을 쪼아먹어서 농부들이 참새를 쫓기 위해 들판에 허수아비를 새우던 기억이 난다. 어렸을 때는 참새가 참 많았는데, 요새는 비둘기만 보이고 참새는 안보이니... 어디로 갔을까, 그 작고 귀여운 참새들은... 어린 시절 학교 가는 길에 전깃줄에서 짹짹거리던 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쟁쟁하기만 하다. 술취한 참새처럼 비틀거리지 않고 "똑바로 살고 싶었다"는 저자의 바람은 곧 이 책을 읽는 독자의 바람이기도 하다. "뒤돌아보니 / 걸어온 길이 갈지자"로 보이는 것은 누구나 돌아볼 때 자신의 과거를 만족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 뒤도 돌아보며 살아야"함을 다독이며 말해주는 시인의 한마디가 독자의 어깨를 펴게 하고, 다시금 신발끈을 매도록 격려하고 위로하는 느낌이다. 술에 취하지 않아도 세상사에 지쳐서, 혹은 사람들에 부대낌에 상처 입고서 마냥 비틀거리기만 할 때, 가끔은 뒤도 돌아보라고, 더 힘들었던 시절도 있었노라고 "함박눈"을 빌어서 시인은 우리의 어깨를 다독이며 위로해 주고 있다.
감기 몸살
나는 지금
내 몸의 뼈
마디와 마디마다
한 편씩 시(詩)를 새기고 있는 중이다 --- 70p.
누구나 한번쯤은 앓게 되는 "감기 몸살"이 단 네 줄로 시가 되었다. 지독한 감기 몸살을 앓게 되면 정말 온몸이 다 결리고 쑤셔서 꼼짝도 못하기도 한다. 그 기분을 시로 표현하면 이렇게 될까.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은 감기 몸살에 걸렸을 때 아무 생각도 못하고 끙끙 앓기만 하거나 겨우겨우 병원이나 찾을 텐데, 시인은 그렇지 않다. 뼈마디가 결리는 것을 "한 편씩 시(詩)를 새기"는 걸로 표현하고 있다. 뼈의 "마디와 마디마다" 새겨지는 시는 어떤 시일까. 흔히 엄청 힘든 결단을 내릴 때 "뼈를 깎는 고통"이라고 표현한다. 뼈에 새긴다는 것은 뼈를 깎는다는 말과 다름아니다. 감기 몸살을 앓으면서도 시(詩)만을 생각하는 시인이기에 뼈에도 시를 새기나보다. 그랬기에 이렇게 그 새긴 시를 토해내서 시집을 엮을 수 있나보다. 난 언제쯤 내 뼈의 "마디와 마디마다" 간절하고 절절한 시(詩)를 새길 수 있을까. 지난 달 내내 감기 몸살을 세게 앓았는데도 남은 것은 없다. 아마도 더더 세게 앓아야 하는가보다. 역시 시인의 길은 멀고도 멀다.
청개구리
강 건너편에 서 계셨다 걱정스런 눈빛으로 이편의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아버지 몰래 미역 감으러 나온 거 아니라고 중간치기를 한 것도 수박서리를 한 것도 아니라고 열심히 변명을 해댔지만 여전히 걱정스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당신과 나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나 내 맘대로 살았다 아버지랑 반대쪽으로 걸으면서 지게 작대기도 불땀 나던 회초리도 잘도 피해 다녔다 삽과 괭이보다는 나무그늘을 성경책보다는 수음을 하며 나이를 먹었다
청개구리가 징그럽게 우는 밤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남몰래 대들던 별들이 오래도록 나를 따라오며 손가락질해댔다 뒤통수가 따갑도록 별빛들이 달그림자를 따라오고 있었다 --- 90p. - 91p.
엄마의 말에 정반대로만 행동하던 청개구리는 엄마가 돌아가시면서 한 유언을 반성의 의미로 제대로 지켰다. 엄마는 늘 그랬던 것처럼 반대로 행동할 줄 알고 그것까지 계산해서 유언을 남긴건데... 그래서 물가에 엄마를 묻은 청개구리는 비가 올 때마다 엄마 무덤이 떠내려갈까봐 개굴개굴 구슬피 울었다. 그런 청개구리처럼 아버지의 말을 듣지않고 "내 맘대로 살았"던 시인이 과거를 돌아본다. 아버지의 "걱정스런 눈빛"을 피해 변명만 일삼던 어린 시절,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남몰래 / 대들던" 그 시절은 누구나 성장통처럼 겪으며 통과하는 시절이기도 하다. 여자아이들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하고, 남자아이들은 아빠처럼 살지 않겠다고 하고... 하지만, 결국 어른이 되어 보면 절대 닮지 않겠다고 결심하던 그 마음은 온데간데 없고, 다들 거울 속에서 엄마를 만나고, 아빠를 만난다. 일단 생긴 모습에서 부모의 모습을 만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 조금은 다를지라도 엇비슷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아, 그 분들이 사신 것의 반만 따라가도 좋겠다, 그 분들의 깊은 혜안을 10분지 1이라도 따라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어리석었던 자신들의 말과 마음에 후회를 하게 된다. "별들이 오래도록 나를 따라오며 손가락질을 해댔"다는 것은 결국 스스로 어리석었던 자신을 비웃고 있은 것은 아닐까. 언제나 어릴 때는 미래를 모르기에 꿈만 꾸고, 성장해서는 후회와 아쉬움이 꼭 남는 우리들의 삶... 그래서 계속 배우고 익혀야 함을 오늘도 깨닫는다.
어제 이벤트를 마무리 짓고, 시집을 읽었다. 이 시집, 열 번쯤 읽은 것 같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시, 시들... 같은 소설을 열 번을 읽지는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시는 그게 가능하다. 눈으로, 입으로, 마음으로... 정동철 시인은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이미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를 소환한다. 어머니는 가끔 시 속에 조연으로만 등장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아버지와 더 애증이 깊었던 것 같다. 딸들이 어머니와 애증이 깊은 것처럼. 이제는 자신이 아버지가 되어서 돌아보는 현재의 아버지는 작아지고 병들었고 식물인간이 되셨지만, 그 깊은 마음은 어느새 시인이 따라가야 할 지혜임을 깨닫게 되고, 더할 나위없이 깊은 사랑을 주셨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시인의 마음 속에 귀한 추억으로 자리잡았다. 그 때의 작은 에피소드들 속에 스민 애틋함과 부끄러움과 죄의식이 지금은 시의 질료가 되고 있기에 시인은 몸살이 나도 뼈에 시를 새기고, 폭설을 기다리며 고립을 자처하고 살아가고 있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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