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학을 했다는게 확 느껴지는 어린이 도서관. 지난주만 해도 애들이 계속 내놓는 책들을 다시 꽂는 지지부진한 작업을 반복해야 했는데 이번주는 아주 한가했다. 간혹 학부모들이 와서 애들이 볼 책들을 골라 가고 완전 애기들이 와서 놀다 가는 것 외에는 조용한 도서관. 오전 중에 잔뜩 쌓여진 전날 반납한 도서들을 정리하고 났더니 할일이 없더라. 로비 한 바퀴를 돌면서 반납 선반에 놓여진 책 두권을 발견했고 그중 한권을 집어서 들어왔다. 직장인들이 느끼는 이야기를 소재로 해서 그려내는 소설이다. 비가 오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집으로 가야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표제작이 제일 뒤에 수록되어 있다. 저마다 집에 가야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헤어진 아내와 살고 있는 아들을 다음날 일찍 만나야 하고 학원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아이 등등 폭우가 쏟아지는 와중에 약간의 휴머니즘도 느끼게 되는 뭐 그러한 이야기. 표제작보다도 <바릴로체의 후안 카를로스 몰리나> 라는 이야기가 더 흥미로왔는데 절대 제목을 외울 수 없는 이 이야기는 주인공의 취미생활을 다룬 이야기다. 후안 카를로스 몰리나 라는 피겨 선수의 연기를 보고 계속 좋아지게 되었다는 거. 안 드러냈는데 어쩌다보니 같은 직장의 다른 사람도 그 선수의 연기를 보는데 그 사람이 보기만 하면 그 경기는 망한다는 거. 축구 경기를 내가 보지 않는 거하고 비슷하다. 내가 보면 꼭 진단 말이지. 아뭏든 이 피겨 선수의 이야기가 너무 흥미로와서 실제로 있는 선수인가 하고 검색도 해봤다. 물론 없더라마는.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남녀 모두 금메달을 따는 등 김연아 선수 이후에 발전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피겨계가 들썩이고 있다. 사대륙 선수권 대회에서도 좋은 실력을 보여줬고. 그래서 더 관심이 간 것일까. 자신이 좋아하던 아껴 쓰던 볼펜이 없어져서 찾는 이야기는 너무 공감. 사람마다 자신이 애착을 두는 필기구가 있기 마련이다. 나 또한 오늘 집에 와서 수능 샤프를 찾아서 한바탕 뒤집었으니 더욱 공감할 수 밖에. 나같은 경우는 내가 다른 필통에 넣어둔 것이지만 같이 생활하는 공간인 회사에서 없어지면 대략 난감. 누가 가져갔다고 왜 가져갔냐 물어보자니 너무 쫌생이 같고 그렇다고 하나하나 뒤져볼 수도 없고. 회사라는 특성상 공유하는 것은 어쩔수 없다 해도 개인적인 것은 서로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이랄까. 이 책과 함께 [라임포토스의 배[라는 책이 선반에 놓여 있었다. 제목이 내가 모르는 단어가 나와서 그냥 패스 하고 이 책을 집어 들었는데 알고 보니 같은 작가의 책이더라. 그럴 줄 알았으면 그 책도 같이 가져올 걸 그랬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그 책도 읽어볼까 싶다. |
|
쓰무라 기쿠코의 소설 「어쨌든 집으로 갑니다』를 읽으려고 첫 장을 펼쳤을 때 가슴이 두근거렸다. 첫 번째 실린 소설의 제목이 「직장의 매너」였다. 어렵게 들어간 첫 직장에서 상사의 괴롭힘에 시달리다 10개월 만에 퇴사한 경험이 있는 쓰무라 기쿠코가 그려내는 직장에서 지켜야 할 매너란 어떤 것일지 궁금했다. 「직장의 매너」에는 '블랙박스', '무시가 상책', '블랙홀', '소규모 팬데믹'이라는 소제목으로 네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도리카이 사치코의 시점으로 쓰인 소설은 직장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사건으로 꾸며져 있다. 기한 내에 일을 하도록 다그치는 사원들에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일처리를 보여주는 다가미 씨의 이야기, '블랙박스'는 직장 안에서 자존심을 잃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는 노하우가 실려 있다. 친인척의 일들까지 들먹이며 관심을 받으려는 기타와키 부장에게는 '무시가 상책'이라는 처방을 내려준다. 펠리카노 주니어는 독일 펠리컨 사가 제조하는 아동용 만년필의 이름이다. 만년필이라고 하면 비싼 이미지가 있지만 크레용처럼 몸통이 굵은 플라스틱제 펠리카노 주니어는 세금까지 합해도 1575엔이면 살 수 있다. 나는 문구점 리뉴얼 세일 때 이 회사에서 받은 첫 월급으로 파란색 펠리카노 주니어를 샀다. 1260엔이었다. 이전 회사를 그만두고 이곳에 들어올 때까지 8개월이라는 공백을 실업 급여로 버텼기에 정말 돈이 없었지만, 그래도 스스로를 격려하는 의미로 구입했다. 같이 들어 있던 스티커에 도리카이 사치코라고 이름을 써서 카트리지 투입구에 붙이고, 메모는 전부 펠리카노 주니어로 하는 등 회사에서 글씨를 써야 할 때는 언제나 그것만 썼다. 주니어의 파란 몸통을 쥘 때마다 고되었던 전 직장을 떠올렸고, 어떻게든 지금 회사에서 살아남겠다는 의욕을 불태웠다. 입사 1년 차인 내게 펠리카노 주니어는 이른바 동지 같은 존재였다. ( 「직장의 매너」, '블랙홀' 中에서) 마미야 씨는 정년을 앞둔 넉넉하고 태평한 성격의 좋은 사람이다. 출장을 떠날 때도 도리카이 한테 선물을 사다 주겠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도리카이는 펠리카노 주니어를 사다 달라고 말하고 싶은 걸 참는다. 이전 직장에서 그만두고 실업 급여로 버티고 이 회사에 취업할 때 '스스로를 격려하는 의미로' 산 펠리카노 주니어를 잃어버렸다. 남의 물건을 스스럼없이 가져다 쓰는 마미야 씨가 펠리카노 주니어를 쓰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마미야 씨가 쓰고 블랙홀 같은 자신의 서랍에 넣어 두지 않았을까 의심이 든다. 그렇다고 남의 책상을 함부로 뒤질 수는 없는 노릇이라 도리카이는 혼자 애가 탄다. 건물을 옮긴 회사의 팩스 번호를 찾다가 마미야 씨의 책상 서랍을 열어볼 기회를 갖게 되고 그 안에서 잃어버린 푸른색 펠리카노 주니어를 발견한다. 몸이 안 좋다는 말을 여러 번 하며 아는 친구가 판다는 마스크를 반값에 사라는 말을 노래처럼 하는 영업부의 야마자키 씨. 도리카이는 독감에 걸려 결근을 한다. 돌아온 회사는 독감 바이러스가 스멀스멀 퍼지고 있는 중이었다. 다들 독감 바이러스를 피하지도 예방하지도 않는 분위기에서 야마자키 씨는 그 자신이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줄도 모른 채 지낸다. 결국 이미 독감에 걸린 도리카이, 자전거를 타고 다녀서 괜찮다는 조노우치, 마스크와 타미플루를 반값에 사라는 야마자키 씨만이 회사에 출근한다. 다른 사원들은 모두 독감에 걸려 결근을 한다. 몸이 안 좋아도 회사에 나오려는 야마자키 씨의 성실함은 알지만 바이러스 제공자임에도 당당한 그라서 할 말이 없어진다. 「바릴로체의 후안 카를로스 몰리나」에서 도리카이는 상냥한 사원 조노우치의 해박함과 마이너스 기운 때문에 놀란다. 아르헨티나의 남자 피겨 스케이팅 선수에게 관심을 보이고 그가 나온 경기를 녹화하는 도리카이. 조노우치가 응원하는 팀이나 선수는 늘 이상하게도 그날 경기를 망치거나 부상을 당한다. 도리카이는 조노우치가 후안 카를로 몰리나의 경기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원치 않지만 그녀의 해박한 언어 실력과 스포츠 지식에 압도당한다. 표제작이기도 한 「어쨌든 집으로 갑니다」는 폭우가 쏟아지는 날 집으로 가기 위한 회사원들의 고군분투기를 다루고 있다. 간척지에 세워진 회사라 무료 통근 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데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버스는 일찍 끊겨버렸다. 하라는 오니키리의 스쿠터 비옷을 찾아주고 구호 음식을 먹으려 망설이다가 버스를 놓친다. 빗속을 걸어가다가 편의점에 반값 음식을 잔뜩 사는 오니키리를 만나 북쪽 길을 안내받으며 다리를 걷는다. 이혼남인 사카키는 내일 세 살 아들을 만나야 하기 때문에 회사에서 잠을 잘 수가 없다. 양복바지가 젖고 구두 속이 질척이는데도 1분 차이로 버스를 놓쳐 걸어간다. 편의점 앞에서 망가진 우산을 고치려는 미쓰구라는 소년을 만나 함께 다리를 걸어간다. 오니키리는 오늘 주문한 홍차가 택배로 온다. 그래서 집으로 가야 할 이유가 있다. 하라는 내일이 토요일이긴 하지만 동료 직원의 연애장으로 변해버린 사무실에서 구호 음식을 먹을 순 없다. 무인양품에서 파는 과자 '집에서 뒹굴뒹굴'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고 싶다. 모두들 비가 쏟아져도 버스가 끊겨도 회사가 아닌 집으로 가야 할 이유들이 있다. 집에 있어도 집에 있고 싶다. 쓰무라 기쿠코가 그려내는 회사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사소한 일들로 이루어져 있다. 오지랖으로 상대를 곤혹스럽게 하거나 회사 안의 물건은 모두 회사 소유라는 생각에서 함부로 가져다 쓰는 사람,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말에 냉기를 묻혀 발사하는 사람. 『구멍』을 쓴 오야마다 히로코의 세계와는 다르다. 일상적이고 따뜻하고 그래도 내일은 주말이라는 희망을 보여준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일요일이고 내일은 월요일이라는 현실이 놓여 있지만 일요일에 읽는 쓰무라 기쿠코의 소설은 삼일만 나가면 설 연휴라는 깨우침을 주었다. 도리카이의 회사 생활을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었던 펠리카노 주니어를 검색해서 주문했다. 그전에 가지고 싶었는데 가격이 비싸 망설였던 라미 샤프 옐로우도 같이. 내일의 알 수 없는 불안을 쇼핑으로 해결하는 게 좋은 일은 아니지만 택배를 기다리는 즐거움으로 출근길의 고통을 잊어버릴 수 있으리라. 택배를 받아 포장을 풀어야 하니 신나는 기분으로 어쨌든 집으로 고고씽. |
|
제목 『어쨋든 집으로 돌아갑니다』 음, 작가가 누군가 궁금해진다. 다 읽고 나니 작가가 누군인지 궁금해졌다. 작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알아봐야한다. 작가는 ‘쓰무라 기쿠코’라고 한다. 처음 듣는 일본 작가다. 사실은 재미없게 읽었다. 그래서 작가가 궁금해진 것이다. 뭐랄까? 아무 사건도 없는 것 같다. 톡톡 튀는 인물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이 작품이 어떻게 나왔을까? 그것도 궁금해진다. 무엇인가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이 책으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런 문제까지 모르겠다. 단지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재미없다는 것과 만약 드라마로 만든다면 그냥 조용한 드라마로 탄생하지 않을까 싶다. 막장드라마로 만들 수 없어서 현대인들이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막장드라마에 질린 사람들이나, 직장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큰 호응을 받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하지만 영화로는 만들 수 없을 것 같다. 영화에는 큰 사건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너무 조용하게 흘러가면 이 영화보다가 영화관이 침실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심하게 이야기한 것 같아서 이 이야기는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한 것으로 결론짓자. 음. 이 소설에는 세 편의 이야기가 있다. 한 편, 한 편 읽어봤다. 두 편의 이야기와 마지막으로 나온 『어쨌든 집으로 갑니다』는 상황만 다르지 거의 같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앞의 두 편의 이야기에는 사람들의 트러블이 발생할 수 있는 이야기가 속에 담겨 있어서 조금은 좋았다. 하지만 마지막 이야기인 “어쨌든 집으로 갑니다” 에는 사람들과의 트러블이 없다. 사건이 일어날만한 이야기가 아니어서 조금은 시시했다. 더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그 이야기의 주인공의 일기를 담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일기. 소설이 아닌 개인적인 일상의 이야기를 담은 일기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비가 너무 몰아치는 어느 날 회사에서 퇴근하는 사람의 이야기. 그저 그런 이야기가 아닌가. 만약 이런 이야기라면 퇴근하는 직장인들에게 쓰라고 하면 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한 가지 드는 의문. 마지막 이야기에 나오는 가게. 편의점 맞나? 대한민국의 편의점은 24시간 꺼지지 않는데. 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편의점은 문을 닫는다고 이야기를 한다. 아, 이거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나라 소설이라면 거짓말이라고 당장 책을 던져버렸을 것 같다. 편의점은 24시간 풀로 돌아가는 가게란 말이야, 라고 외치면서 말이다. 가게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나는 한 달에 두 번밖에 쉬지 않았다. 그런데도 가게가 잘 안 돼서 스트레스가 심해져서 그만두고 말았다. 그런데 편의점이 24시간도 안 하고 문을 닫는다니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염마장’에 대해서 알게 되다. - p. 15에 보면 염마장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최근에 주호민이라는 만화작가의 작품을 읽어보니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 작품에서는 염마장이라는 염라대왕의 장부에 대해서 나온 것을 보니 재미있었다. 암튼, 착하게 살아야지. 염마장에 착한 사람이라고 적힐려면. 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