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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이 만들어지기까지는 採詩(채시)·獻詩(헌시)·刪詩(산시)의 3단계를 거쳤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설이다. 周代(주대)에는 列國(열국)의 풍속과 정치상황을 고찰하기 위해서 採詩官(채시관)을 두어 시를 채집하였으며 또한 卿大夫(경대부)들로 하여금 시를 지어 바치게 한 다음 太師(태사)와 樂官(악관)이 이를 편찬·정리했다는 것이다. 刪詩說(산시설)은 司馬遷(사마천)의 『史記(사기)』에 '공자가 詩(시)·書(서)를 刪定(산정)했다'는 말에 근거한 것으로, 공자가 당시 유행하는 詩篇(시편) 중에 勸善懲惡(권선징악)이 될 만한 것만을 뽑아 만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근거가 확실치 않으며, 唐(당)의 孔穎達(공영달), 宋(송)의 朱子(주자) 등도 의문을 제기하였다. 다만 『논어』「子罕(자한)」편에 '衛(위)나라로부터 魯(노)나라로 돌아온 뒤로 음악이 바루어져서 雅(아)와 頌(송)이 제자리를 찾게되었다'( 『논어집주』, 성백효, 전통문화연구회, p. 175)는 말로 미루어, 공자가 현재와 같은 체제로 정리한 것이라고 생각된다고 역주자는 주장한다.
『시경 』을 風(풍)·大雅(대아)·小雅(소아)·頌(송)으로 나누면 上卷(상권)에는 風(풍)과 小雅(소아) 일부로 이루어져 있고 下卷(하권)에는 小雅(소아)의 나머지 부분과 大雅(대아)와 頌(송)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이중에서 風(풍)은 다시 正風(정풍)과 變風(변풍)으로 나누어지고 정풍은 다시 周南(주남)과 召南(소남)으로 나누어지며, 변풍은 패(紂의 都城(도성)인 朝歌(조가)의 북쪽 나라), 용(조가의 남쪽나라), 衛(위)(조가의 동쪽 나라로 武王(무왕) 동생 康叔(강숙) 封(봉)이 다스림), 王(왕), 鄭(정), 齊(제), 魏(위), 唐(당), 秦(진), 陳(진), 檜(회), 曹(조), 빈 등의 13나라의 풍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경 』에 실려있는 詩篇(시편)은 원래 모두 음악으로 연주할 수 있는 것들이었으나 후대 樂譜(악보)의 失傳(실전)과 原始藝術(원시예술)의 분화과정에서 한갓 歌辭(가사)만이 남게 되었다고 하는데, 요즘의 유행가를 들어보면 가사는 슬픈 노래인데 음악은 신나는 댄스곡이거나 한 것이 있는 것을 보면, 『시경』의 가사만 남아있고 음악은 남아있지 않아 정확히 무슨 내용인지 알기 어렵다.
예전에 10월유신, 명치유신이란 말을 많이 들었지만 유신이란 말뜻을 잘 몰랐는데 이 책에 維新(유신)이란 말이 나온다. 새롭게 한다는 뜻인 것 같다.(p. 191) 그리고 에스키모에겐 눈을 표현하는 말이 수십 가지라고 하더니만, 옛날에 교통수단이 말이어서 그런지 말(馬)에 대한 말과 수레에 들어가는 부품에 대한 말이 무척 많이 나온다. [인상깊은구절] 小雅(소아) 小弁(소변) 더없이 높은 것이 산이 아니겠는가 더없이 깊은 것이 샘이 아니겠는가 君子(군자)가 내는 말을 함부로 하지 말지어다. 귀가 담장에 붙어 있느니라 내 魚梁(어량)에 가지 말아 내 통발을 꺼내지 말았으면 하건마는 내 몸도 주체하지 못하거늘 하물며 내 뒤를 근심하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