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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떤 일을 새로 시작할 때 인터넷에서 로그인을 하지 않으면 창이 열리지 않는 것처럼 처음부터 잘못 들어선 길이라면 그 일이 더이상 진행되지 못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아이디, 비밀번호가 일치하지 않습니다.'하는 말과 함께 숫제 화면도 열리지 않는다면 비극적 운명 앞에서 좌절하거나 지난 일을 후회하는 일은 더이상 없을 테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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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란 말은 뼈아픈 의미가 숨어 있다. 한 여인, 아니 어쩌면 수많은 여인들에게 철저히 무관심했던 이기적인 한 남자와 그 남자만 바라보며 불을 향해 뛰어 드는 나비같은 삶을 일관했던 가엾은 여인의 삶의 여정을 그린 소설이다. 사실, 짝사랑을 하는 것 자체보다 그것에 기대를 거는 것이 어리석다. 만족하지 못함으로 해서 불행이 시작되니까. 마음을 비우고 시작하면 그리 괴롭지 않은 것도 짝사랑이다. 짝사랑에만 만족하는 보기 드문 별종타입이 있고, 짝사랑으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속하는 타입도 있다. 전자의 타입은 인간관계에 대한 귀차니스트로 '가까워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이들은 살아가면서 완전한 끝을 이루는 사랑보다 자유분방한 연애, 혹은 편한 짝사랑을 오히려 즐기지만 그것으로 인한 절망이나 슬픔을 겪진 않는다.
살아가는 것이 조금 무미건조하겠지만. 이 소설의 여자 주인공은 그녀 스스로는 부정하겠지만 후자의 타입에 속하며, 남자 주인공은 브리짓 존스가 정의하는 의미의 '정서 장애자'라고 볼 수 있다. 감정의 상호교환을 원하는 경우에 있어서 짝사랑의 시작은 달콤해도 그 끝은 매우 쓰다.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로 혼자서 몰래 그의 아들을 낳아 기르는 상황은 내 이성으로는 공감하기 매우 힘들었다. 내가 만약 주인공의 입장이어서 고백해 봤자 소용없고 혼자서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인연임을 안다면 감정만 바치는 선에서 한계를 그엇겠지만 이 주인공의 사랑은 무분별한 순정의 극치를 보여준다.
짝사랑의 상대를 향한 여자의 태도는 이기심과는 거리가 멀고 욕심없는 희생으로만 비칠 수도 있겠지만, 그녀 또한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그에게 알리고자 하며 알아주길 바라는 은밀한 욕망이 숨어 있음을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그녀는 그를 원망하진 않는다고 편지에서 거듭 되뇌이지만 그녀가 편지에 남긴 기구한 사연과 그의 분신으로 존재했던 아들의 죽음이 그에게 죄책감을 불러 일으킬 것은 예상하지 못했을까? 대답없는 혼자만의 가슴앓이가 스스로 가엾고 억울한 끝에 펜을 들었을진 몰라도 이렇게 진실한 사랑을 품었다면 끝까지 그가 모르게 하는 것은 불가능했을까? 여자를 사랑의 대상이 아닌, 일시적 성적 욕망의 배출구로만 여기는 바람둥이라면 제아무리 사회적 신분이 고매해도 순정파인 한 여자에게 그토록 오랜 기간 순애보적인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는지 조금 의심스럽다. 짝사랑이란 증세에 잘 걸리는 여성이라면 첫눈에 반하는 환상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못함으로 인한 불행을 조심해야 할 듯 싶다. [인상깊은구절] 다만 저는 당신이 제 사랑의 비밀을 눈치채고 행여 놀라시지 않을까. 그 점이 두려웠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가벼운 것, 유희적인 것, 단순한 것에만 흥미를 느끼시고, 심각하거나 복잡한 일에 끼어드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운명적인 것을 꺼려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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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사랑을 한다. 하지만 그 사랑의 모습들은 각각 다르다. 그리고 그 사랑의 정도도 모두가 다르다. 그래서 사랑은 언제나
우리들에게 큰 의미를 갖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사랑 때문에 살고, 누군가는 사랑 때문에 죽게 된다. 우리가 만나는 많은
이야기들이 사랑 이야기인 것도 바로 그 사랑이 갖고 있는 특별함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 이야기만큼 사람을 웃고 울며 화나게
하는 감정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사람이 하는 일들 중에서 가장 큰 이유가 되는 것이 바로 사랑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만나는 선택의 순간에 사랑 이야기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된다. 사람들이 하는 많은
바보짓 중에 하나가 바로 사랑 때문에 벌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사랑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들에게 큰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이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는 바로 그런 사랑 이야기 중의 하나를 들려준다. 그것도 가장
잔혹한 외사랑의 이야기를 만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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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글을 읽는 사람의 반응은 어떨까? 정말 궁굼하기 짝이 없다. 어떻게 반응할까, 어떤 생각을 할까하는 기대없이 편지를 쓸 수 있을까? 혹시 답장을 주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우편함을 수시로 확인해보지는 않았는지?
이 소설은 한 여인이 죽고 난 뒤 사랑하던 남자에게 배달된 편지의 이야기 이다. 주인공은 처음과 끝에 잠깐 등장하고, 이야기의 대부분은 주인공을 사랑한, 그러나 주인공은 모르는 여인의 편지로 이루어져있다. 책에서 편지를 쓴 여인은 자신이 죽고나면 편지가 배달될 것이라는 얘기를 한다. 자신이 죽은 뒤에야 상대방이 편지를 읽을터인데도 편지 속에서 읽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며 글을 쓰고 있다. 이 여인은 자신의 편지를 읽은 남자의 반응이 궁굼하지 않았을까? 손으로 쓴 편지를 주고 받는 것이 언제적 일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나는 인터넷 메일에 익숙해져있다. 손으로 쓴 편지이든, 인터넷으로 쓴 메일이든 읽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즉 편지라는 것은 누군가에게 읽혀지기 위해 쓰여지는 것이다. 편지란 상대방이 나의 글을 읽은 다음에 어떤 반응을 되돌려주기를 바라며 쓰게 된다. 종이로 보낸 편지이든, 인터넷으로 보낸 메일이든 무언가 감정이 들어간 나의 이야기를 쓴 글을 보내고 나면 상대방의 반응이 궁굼했다. 답장편지가 왔는지 우편함을 들여다보고, 인터넷으로 보낸 메일은 상대방이 수신확인을 했는지 수시로 확인해보곤 했다.
오로지 나만을 위한 글이 있을까? 일기? 아주 어렸을때 순수한 마음으로 쓰던 일기조차도 일기를 검사하는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읽을 것이라는 기대하에, 열심히 일기를 쓰면 상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썼던 기억이 있다. 블로그에 쓰는 글 역시 누군가 보아주길 바라며 쓰는 글이다. 그 반응 속에서 나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편지를 쓴 여인처럼 상대방의 반응을 기대하지 않고 글을 쓰는 날에는, 글속의 여인처럼 마음이든, 몸이든 죽음을 기대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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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전혀 알지 못하는 당신에게 이따금 눈앞이 깜깜해지곤 합니다. 어쩌면 이 편지를 끝내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게 남은 힘을 다해서 일생에 단 한번 당신에게 보내는 이 편지를 써내려 가고자 합니다. 저를 전혀 알지 못하는 당신에게...‘ 누구나 이런 편지를 받는다면 기분이 어떨까. 모르는 여인은 편지에서 두 사람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한 사람은 열 살정도의 아이고 또 한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고. ‘저를 전혀 알지 못하는 당신에게’ 남기는 편지는 자기가 죽는 순간 붙여질 수 있기 때문에.. 섬뜩하지 않은가... 한 소녀가 한 남자를 바라보고, 사랑한다. 그의 생일이면 하얀 장미를 보내 그녀가 기다리고 있음을 알린다. 세월이 흘러 여자는 우연을 가장해 남자를 만나고 아이를 갖는다. 남자는 욕망을 채우고, 여자는 사랑을 얻지만 남자는 그녀를 알지 못한다. 여자는 마지막 부탁을 한다. ‘당신의 생일날마다 장미를 사서 꽃병에 꽂아주세요. 1년에 한번은 죽은 애인을 위해 미사를 올리듯이..‘ 그는 몇 년 동안 텅빈 꽃병을 바라 보고, 그녀를 분명하게 기억할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