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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아는 분이 자신이 쓴 시 한편을 메일로 보내왔습니다. 한 번 읽어보고 괜찮다고 하면 만 55세 이상인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실버문학공모전에 한번 참여해보고 싶다는 내용을 덧붙였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시를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경지(^^)까지 다다른 분은 이미 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지만 시를 쓰고 싶어도 도대체 어떻게 써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시인도 많고 시도 천지에 늘렸지만 저 자신이 시 한 편을 쓰려고 종이를 펼쳐놓으면, 그리고 그 종이에 뭐라고 주절주절 써놓아 보아도 이것이 과연 시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다른 사람에게 내놓기가 참 망설여집니다. 제게 시를 보내주신 분께 제가 그 시에 대해 뭐라고 말하기 보다는 이 책 한 권을 보내드릴 작정입니다. 이만큼 시에 대한 애정이 있는 분이시면 가까운 곳에 있는 문화센터에 나가서 시를 배우셔도 좋겠고, 시 모임에 참여해도 좋겠지만 그전에 이 책을 한번 읽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안도현 시인의 강연에 한 번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말 중에서 자신이 쓴 시에 대해 사람들이 쉽게 썼다고 느끼는 점이 서운하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확실히 안도현 시인의 시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쉽게 잘 읽히면서도 우리 마음에 서늘한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이 말하기를 이렇게 쉽게 읽혀지는 시를 쓰기 위해 자신은 너무나 깊이 생각하고 고뇌하는데 반해 주변의 반응들이 “시한 편 뚝딱 써봐라”여서 몹시 서운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때도 시가 도대체 뭔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책을 읽게 되었고,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이렇게 쉽고도 명료한 시작법을 쓴 책이 있었구나, 참 고마웠습니다. 그동안 시작법을 몇 권 읽었지만 이렇게 체계적으로 정리되어있으면서도 어렵지 않고, 다 읽었을 때 시에 대해 조금은 그 실마리가 잡히는 느낌을 받은 책은 없었습니다. 물론 한 번 읽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저도 이 책을 세 번 정도 읽었고, 아직 더 읽을 작정입니다. 가을입니다. 누구에게나 시심이 흘러넘치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짧은 계절에 시에 대해 갈증을 느끼는 분이 계시다면 이 책을 곁에 두고 시시때때로 읽다보면 그 목마름이 어느 정도 해소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좋은 시를 쓰려면 당신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장 젊은 우리나라 시인의 시부터 읽어라. 젊은 시인의 시는 교과서요, 늙은 시인의 시는 참고서다. 우리나라 시인의 시는 한 끼의 밥이지만, 외국 시인들의 시는 건강보조식품이다. -사랑에 대해서 쓰려면 ‘사랑’이라는 말을 시에다 쓰지 말아야 한다고, 제목으로도 쓰지 말아야 한다고, ‘사랑’이라는 말을 아예 잊어버려야 한다고 훈수를 할 것이다. -형용사의 과도한 사용은 시의 바탕이라 할 은유와 상징이 설 자리를 빼앗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미지가 들어앉을 자리를 형용사가 차지하고 있으면 그 시는 겉으로 화려해 보이지만 내용이 없고, 그 뜻은 쉽게 드러나지만 깊이가 엇어 천박해진다. 사물의 핵심을 표현하는데 게으른 시인일수록 형용사를 애용한다. -한 편의 시를 쓰는 일은 한 채의 집을 짓는 일과 같다.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즉흥적으로 집을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설계도면이 있어야 하고, 그 일을 수행할 인부와 집을 세우는데 필요한 재료들을 확보해야하고, 충분한 공사기간이 있어야 한다. 시가 하나의 유기체적 구조물임을 염두에 둔다면 행을 바꾸거나 연을 나눌 때에도 시인의 의도가 충분히 개입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계획과 의도 없이 절대로 행을 당신 마음대로 바꾸지 마라. 시의 리듬을 고려해 행을 바꾸었다고 구차하게 변명 좀 하지 마라. -혼자 써놓고 혼자 보는 시라면, 그걸 습작이라 한다면, 남의 옷을 입고 자신의 옷이라고 우기고 싶지 않다면 당신은 모방할 줄 알아야 한다. 하늘에서 시적 영감이 번개 치듯 심장으로 날아오기를 기다리지 마라. 그보다는 차라리 흠모하는 시인의 시를 한 줄이라도 더 읽어라. -시인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진 ‘발명가’가 아니라 ‘발견자’에 가깝다고 생각하라. 이미 이 세상에 와 있으나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은 것들이 있다. 보물인데도 보물로 보지 못하고, 숨겨진 의미가 있는데도 의미를 찾지 못한 것들이 있다. 그것을 찾아내는 사람이 시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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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에서 출간한 안도현 작가님의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리뷰입니다. 내지 구성이 큼직큼직하고 보기 좋아요. 시를 제시하고 이에 대해 설명하는 구성이기 때문에 좋은 시도 읽고 시를 제대로 읽고 쓰는 방법도 알게 되어서 좋습니다. 시에 다가가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추천해요. 중간중간 작가님의 위트가 돋보여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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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의 시작법,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토란 잎에 구르는 물방울처럼 물고기비늘 반짝이는 건 밤새 바다에 떨어진 별빛 배부르게 먹었기 때문일 거야
- 이재무, 「해돋이」 부분 -
시인의 동심은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물고기 비늘이 반짝이는 건 물고기가 바다에 떨어진 별빛을 많이 먹었기 때문이라고. (48쪽)
백 대쯤 엉덩이를 얻어맞은 암소가 수렁논을 갈다 말고 우뚝 서서 파리를 쫒는 척, 긴 꼬리로 얻어터진 데를 비비다가 불현듯 고개를 꺾어 제 젖은 목주름을 보여주고는 저를 후려 팬 노인의 골진 이마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그 긴 속눈썹 속에 젖은 해가 두 덩이 오래도록 식식거리는 저물녘의 수렁논 - 이정록, 「주름살 사이의 젖은 그늘」 전문-
이 시는 시적 대상을 오래 들여다본 결과물이다. 논을 갈던 암소가 고개를 꺾을 때 생기는 목주름과 노인의 이마 주름의 대비, 소의 굵은 눈망울과 젖은 해 두 덩이의 비유가 더없이 적절하다. 이러한 관찰이 시적 기교로 끝나는 게 아니라 말 없는 짐승과 인간을 한 식구로 동일화하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55쪽)
달빛 밟고 머나먼 길 오시리 두 손 합쳐 세 번 절하면 돌아오시리 어머닌 우시어 밤새 우시어 하아얀 박꽃 속에 이슬이 두어 방울
- 이용악 「달 있는 제사」 -
이 짧은 시에 이야기가 들어 있을까? 있다 어머니의 슬픔은 이슬이 두어 방울에 집약되어 있다. 두어 방울의 이슬은 이슬의 양이나 슬픔의 무게가 아니다.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반어다.(181쪽) 슬픔을 안간힘으로 이겨내고 있는 표현이다.
왜 사는가? 왜 사는가.. 외상값.
- 황인숙의 「삶」 전문 -
외상값의 의미는 부모에 대한 빚, 이웃에 대한 빛, 연인에 대한 빚 등....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그게 나 자신일수도 있고 그 빚을 갚아야 하기에(182쪽)
이런 얘기를 들었어. 엄마가 깜박 잠이 든 사이 아기는 어떻게 올라갔는지 난간 위에서 놀고 있었대. 난간 밖은 허공이었지. 잠에서 깨어난 엄마는 난간의 아기를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이름을 부르려 해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 아가,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엄마는 숨을 죽이며 아기에게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갔어. 그러고는 온몸의 힘을 모아 아기를 끌어안았어. 그런데 아기를 향해 내뻗은 두 손에 잡힌 것은 허공 한줌뿐이었지. 순간 엄마는 숨이 그만 멎어버렸어. 다행히도 아기는 난간 이쪽으로 굴러 떨어졌지. 아기가 울자 죽은 엄마는 꿈에서 깬 듯 아기를 안고 병원으로 달렸어. 아기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는 울음을 그치고 잠이 들었어. 죽은 엄마는 아기를 안고 집으로 돌아와 아랫목에 뉘었어. 아기를 토닥거리면서 곁에 누운 엄마는 그후로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지. 죽은 엄마는 그제서야 마음놓고 죽을 수 있었던 거야. 이건 그냥 만들어낸 얘기가 아닐지 몰라.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서 나는 비어 있는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다보았어. 텅 비어 있을 때에도 그것은 꽉 차 있곤 했지. 속없이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그날밤 참으로 많은 걸 놓아주었어. 허공 한줌까지도 허공에 돌려주려는 듯 말야.
- 나희덕 「허공 한줌」 전문 -
죽음으로 아기를 살리는 모성도 감동이지만 삶의 어떤 집착으로부터 풀려나는 인간의 모습이 시를 읽는 독자까지도 시의 자장 안으로 끌어들여 해방시킨다. 시인의 뛰어난 소재 장악력이 감동을 낳았다. (184쪽)
나도 땅을 가지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민병하 선생님도 수원 근처에 오천 평이나 가졌는데...
싼 땅이라도 좋으니 한 평이라도 땅을 가지고 싶다. 땅을 가졌다는 것은 얼마나 좋으랴....
땅을 가지고 싶지만,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
땅을 가지고 있으면, 초목을 가꾸고, 꽃을 심겠다.
- 천상병 「땅」 전문 -
어떤 이들은 도대체 이런 게 무슨 시인가, 되묻고 싶을 것이다. 이 시에는 비유도 없고 시적 발견도 없다고 할 것이다. 시인은 땅을 갖고 싶고 돈을 벌고 싶다는 욕망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그 욕망은 초목을 가꾸고 꽃을 심겠다는 꿈이다. 바로 무욕의 욕망이다. 시에서 억지로 은유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은유를 잘못 배우면 말을 요리조리 비틀게 된다. (199쪽) 안도현은 이런 비틀고 교묘한 표현들을 ‘비유의 덧칠’이라고 지적한다.
나주 들판에서 정말 소가 웃더라니까 꽃이 소를 웃긴 것이지 풀을 뜯는 소의 발밑에서 마침 꽃이 핀 거야 소는 간지러웠던 것이지 그것만이 아니라 피는 꽃이 소를 살짝 들어 올린 거야 그래서, 소가 꽃 위에 잠깐 뜬 셈이지 하마터면, 소가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한 것이지
- 윤희상의 「소를 웃긴 꽃」 -
특정한 개념과 틀에 갇히지 않은 상상력, 엉뚱함의 힘.(205쪽)
무논에 써레가 지나간 다음 흙물이 제 몸을 가라앉히는 동안 그는 한 생각이 일었다 사라지는 풍경을 본다 한 획 필체로 우레와 침묵 사이에 그는 있다 - 문태준, 「황새의 멈추어진 발걸음」 전문-
표면적으로는 써레질이 끝난 뒤 흙물이 가라앉는 모습이 시의 소재가 되고 있다. 흙물이 그저 가라앉는 게 아니라 ‘제 몸을 가라앉히는 동안’이라고 말하는 것도 범상하지 않지만, 그것을 ‘생각이 일었다 사라지는 풍경’으로 확장하는 상상력은 놀랍다. 그리하여 ‘우레와 침묵 사이에’ 있는 존재의 고독과 무상함을 드러내기에 이른다. 여기에서 황새는 단순한 조류가 아니라 드높은 정신주의의 한 표상으로 읽힌다. ‘써레’와 ‘우레’라는 유사한 음성기호가 동일한 의미로 나란히 서 있는 언어유희도 볼 만하다. (247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