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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랑이 왜 귀찮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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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문단의 논쟁적인 작가로 꼽히는 마리 다리외세크의 「남자를 사랑해야 한다」는 '프랑스 문학상의 상'을 받았다. 읽어보니 확실히 상을 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주인공은 「가시내Cleves」의 주인공 솔랑주의 20년 후의 모습이다. 프랑스에서 할리우드로 건너 온 솔랑주는 배우가 되었다. 조지 클루니, 맷 데이먼 등과 작업하면서 스티븐 소더버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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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문단의 논쟁적인 작가로 꼽히는 마리 다리외세크의 「남자를 사랑해야 한다」는 '프랑스 문학상의 상'을 받았다. 읽어보니 확실히 상을 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주인공은 「가시내Cleves」의 주인공 솔랑주의 20년 후의 모습이다. 프랑스에서 할리우드로 건너 온 솔랑주는 배우가 되었다. 조지 클루니, 맷 데이먼 등과 작업하면서 스티븐 소더버그의 러브콜을 받는다. 아들은 고향 클레브에 남기고 왔다. 화려한 생활 속 고독을 느끼던 솔랑주는 그녀와 같은 이방인을 발견한다. 바스크 출신의 그녀, 존재하지 않는 대륙 아프리카 출신의 그- 매력적인 남자 쿠웨소. 드레드락 머리에 탄탄한 몸, 깊은 눈빛의 남자에 사로잡힌 솔랑주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다.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가련할 정도로 간절하게 그를 욕망하고, 또 알고 싶지만 쿠웨소는 냉정하기만 하다. 대화를 나누지만 서로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솔랑주는 결코 그를 이해할 수 없다.

 

로맨스로 시작하여 영화 촬영으로 이어지는 구성이 좋다. 특히 후반부의 영화 이야기는 생생한 현실감을 획득한다. 그리고 작품 전체를 휘감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는 여성과 남성, 문화와 엮여 글을 이끌어 나간다. 솔랑주는 쿠웨소를 이해할 수가 없다. 여성이 결코 남성을 이해할 수 없듯이. 그러니까 이게 무슨 이야기냐면 다리외세크의 소설에서 여성은 늘 기다리는 존재다. 남성이 욕망을 표현하기를, 그 욕망의 근원이 어디에서 시작된 건지 알지 못하기에 그것을 철학적 반열에 올려놓고 탐구하는 느낌이다. 로맨스적 관계는 문화적 관계이기도 하다. 솔랑주는 백인이고 쿠웨소는 흑인이다. 존재하지 않는, 무형의 아프리카로 정체성을 규정당하는 대륙의 수많은 사람들. 지배 문화가 피지배 문화를 이해할 수 없듯이, 솔랑주는 쿠웨소의 이야기들이 와 닿지 않는다. 하지만 그를 사랑하기에 가까이 가려고 노력한다. 쿠웨소에게 솔랑주는 노력의 대상이 아니다. 그의 안에서 솔랑주는 이미 규정된 무엇이기에.

 

솔랑주는 지배 문화 속의 여성이고, 쿠웨소는 피지배 문화 속의 남성이다. 그가 내세우는 수많은 가치들, 위대해보이는 무엇은 결국 어떤 식으로 드러나는가. 할리우드의 자본으로, 할리우드 배우들이 연기하는 조지프 콘래드의 소설 「어둠의 심연」을 콩고 로케로 촬영하는 것. 아카데미 시상식에 등장한 그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턱시도를 입었으며 수리남 출신의 배우에게 애정을 표한다. 쿠에게 모든 것을 헌신했던 솔랑주의 사랑은 어떻게 드러나나. 스크린에서 확인되는 존재의 부정. 솔랑주는 쿠에게 있어 일종의 트로피였다. 지배 문화 속에서 몸부림치며 내 것을 보여주겠다던 남자에게, 그의 남성성을 확인시켜주는 자존감 메이커이자 물주. 그러니까 솔랑주를 정복함으로써 솔이 상징하는 문화에 대한 정복감을 맛본 것이다. 보너스에 실린 재회 장면에서도 욕이 절로 나온다. 콩고의 위대한 정신을 주창하지만 토속 음식은 별로, 프랑스식 정찬을 좋아하는 남자가 말한다. 당신의 사랑이 왜 귀찮겠어? 이건 뭐...

 

영화 촬영이 시작되는 후반부로 넘어가기 전, 오만하다 비판받았던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다카르 연설이 실렸다. 이 연설과 쿠웨소와 솔랑주의 관계를 성과 문화와 엮어 다리외세크가 소설 속에서 주장하고자 했던것이 무엇일지 생각해본다. 예전에 르 클레지오가 문화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문화란 물과 같아서 시간이 지나면 서로 자연스레 어울려 흐르게 된다... 하지만 그 문화 속에 젖어 살아가는 인간들은 그 안에서 정체성을 얻고 사고방식을 정립한다. 다른 사람들을, 그를 구성하는 근간이 나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깨달을 수 있을까. 겪어야만 알까? 같은 사회를 살아가면서도 존재에 대한 시선과 기대는 다를진대,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솔랑주의 순진함과 예술혼으로 무장한 껍데기의 무책임에 가슴을 치게 만드는 작품이다. 로맨스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가시내Cleves」의 어린 솔랑주와 비오츠의 관계와 겹쳐지기도 한다. 아, 사랑이란 뭘까? 어쩌면 상대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를 더 사랑할 수 있는게 아닐까? 이 작품의 제목이 되는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한 말처럼.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다리외세크가 계속 이런 글을 썼으면 좋겠다. 그의 작품을 계속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