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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 폴 드루아, 모니크 아틀랑 「희망에 미래는 있는가」 (미래의 창, 2016)
"로제 폴 드루아, 모니크 아틀랑 「희망에 미래는 있는가」 (미래의 창, 2016)" 내용보기
처음에 책 제목 <희망에 미래는 있는가>을 보고 <미래에 희망은 있는가>를 잘못 표기한 것이 아닌지 의아했다. 소제목과 목차를 보니, ‘희망’에 관한 인문학적 고찰임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을 비롯한 많은 철학자들이 왜 ‘희망’을 부정적으로 보았는지, 기독교에서의 희망과 오늘날 세속화된 희망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지금도 우리는 희망하는
"로제 폴 드루아, 모니크 아틀랑 「희망에 미래는 있는가」 (미래의 창, 2016)" 내용보기

처음에 책 제목 <희망에 미래는 있는가>을 보고 <미래에 희망은 있는가>를 잘못 표기한 것이 아닌지 의아했다. 소제목과 목차를 보니, ‘희망’에 관한 인문학적 고찰임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을 비롯한 많은 철학자들이 왜 ‘희망’을 부정적으로 보았는지, 기독교에서의 희망과 오늘날 세속화된 희망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지금도 우리는 희망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지 무척 흥미로운 주제들로 가득 차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 이야기부터 해석이 남달랐다. 본래 신화에서 판도라가 연 것은 상자가 아니라 '피토스'라 불렀던 항아리였단다. 거기에 남아 있던 ‘엘피스’는 미래에 닥칠 일을 정확히 예지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엘피스’가 항아리에 남아있는 것은 인간에게 다행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질병이나 죽음이 언제 일어날지 안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이렇게 희망이라 번역되는 ‘엘피스’는 앎과 모름이 양립하는 단어다. 한편, 플라톤에게 지상에서의 희망은 “인간이 숙명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악이 누그러지기를 바라는 마음”(p. 63)이다. 따라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철학자들에게 희망은 부담스러운 대상임이 분명하다. 희망은 이성과 비이성, 위안과 불안, 이로움과 해로움을 동시에 의미하는 양면성이 있다. 그런가 하면 기독교에서 희망은 믿음, 사랑과 함께 하나님을 대한 세 가지 덕 중 하나다. 그런가 하면 유대교에서 희망은 이유가 필요 없는 ‘희망을 위한 희망’이다. 따라서 “희망을 지키기 위해서는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 하며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억눌러야 한다.”(p. 103). 결론적으로 이 책의 저자는 희망하는 일은 포기해야 할 것이 아니라 더욱 키워나가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희망은 각자 마음속에 싹을 틔워 끈질기게 버티는 은밀한 감정이다. 인간만이 희망한다. 따라서 희망을 포기하는 행위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p. 303).

 

그렇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참되게 희망하는 것이다. 오늘날 희망이 얼마나 오용되고 있는가? 희망은 단순한 낙관론이나 긍정적 사고방식이 아니다. 참된 희망은 인간에게 자유와 존엄성을 주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 희망은 위험하다. 인간은 불확실한 미래를 생각할 수밖에 없고 불확실한 미래는 두려움과 희망을 함께 일으킨다. 이 때 희망을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생각하기에 희망은 어린 묘목과 같아서 관심을 가지고 물을 주고 돌보아야 한다. 우리는 희망하는 법을 배우고 익힘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자유와 존엄성을 지켜 나가야 할 것이다. 지금 이 땅은 엄청난 불의로 인해 평화가 깨지고 국민들은 분노하고 좌절한다. 이럴 때 희망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연약하다. 하지만 성숙한 시민들은 이 사회에 대해 희망을 놓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이며 자유를 붙잡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말로 희망을 붙잡아야 할 때다.


 

l******y 2016.11.2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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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에서 피어난 혁명의 불씨, 촛불집회
"절망에서 피어난 혁명의 불씨, 촛불집회" 내용보기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지게 된다는 헛소리를 한 친박 친위대원도 주말마다 타오르는 광화문 촛불집회에 분명 겁을 집어먹었을 것이다. 악을 행했거나 악에 동조했는데도 연이은 촛불시위를 보고서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무서운 줄 모른다면 분명 정상 멘탈은 아니다. 민주시민의 역량을 보여준 광화문 평화시위에서 나는 단지 촛불, 피켓, 구호의 이벤트가 아닌 이른바 '민심은 곧 천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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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지게 된다는 헛소리를 한 친박 친위대원도 주말마다 타오르는 광화문 촛불집회에 분명 겁을 집어먹었을 것이다. 악을 행했거나 악에 동조했는데도 연이은 촛불시위를 보고서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무서운 줄 모른다면 분명 정상 멘탈은 아니다. 민주시민의 역량을 보여준 광화문 평화시위에서 나는 단지 촛불, 피켓, 구호의 이벤트가 아닌 이른바 '민심은 곧 천심'이라는 오랜 격언의 힘을 체감할 수 있었다. 희망에 미래는 있는가? 희망은 미래가 아니라 언제나 이미 '지금 여기' 결집된 민주시민과 함께 간다.

희망이 가장 절실한 시기는 언제나 최악의 상황이다. '희망'이라는 말이 무척 암울하게 들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절망적 상황 때문에 희망을 포기하거나, 희망의 힘을 냉소하거나 무시해서도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박근혜 게이트'라는 최악의 상황에서 매주 촛불집회라는 정치적 희망을 구성하고 있다. 본래 '희망'을 뜻하는 그리스어 '엘피스'는 미래에 대한 단순한 낙관이나 긍정, 위안이 아니라 불안한 미래에 대한 일종의 경보 사이렌이었다. 판도라 신화에 따르면 희망은 숙명론을 거부하고 자율적인 사고를 통해 자신의 불안한 미래를 책임진다는 매우 어른스런 의미를 가진다.

희망은 때로는 약이 되고 때로는 치명적인 독이 되는 이중성을 지닌다. 희망의 이런 이중성은 가장 끔찍한 상황에서 최선의 상황을 상상한다는 데 있다. 니체가 희망으로 버무려진 경솔한 낙관주의와 천진난만한 유토피아적 혁명 열망을 약골의 신념이라고 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니체도 반만 맞은 셈이다. 희망의 문제는 믿음의 문제도 성격의 문제도 아니다.

만일 여러분이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희망의 계보학'을 살펴보고자 한다면 로제 폴 드루아와 모니크 아틀랑의 책을 일독하길 강추한다. 책은 고대 그리스 사상, 유대교, 기독교에서 희망의 기원을 탐색하고 근대 계몽철학에 이르러 희망의 세속화 양상을 소개하고 있다. 

z***a 2016.11.2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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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에 미래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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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물에게는 각자만의 삶의 방식이 있다. 인간의 입자에서 보여지는 그들의 생존은 그저 본능이라고만 여겨지지만, 과연 그만큼에서만 멈춰지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인간은 지구 상에서 유일한 이성적인 동물이라고 칭한다. 다른 생물들과 차별화될 수 있는 점이라고들 한다. 본능과 이성을 가르는 기준이라는 것을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애매하게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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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물에게는 각자만의 삶의 방식이 있다. 인간의 입자에서 보여지는 그들의 생존은 그저 본능이라고만 여겨지지만, 과연 그만큼에서만 멈춰지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지구 상에서 유일한 이성적인 동물이라고 칭한다. 다른 생물들과 차별화될 수 있는 점이라고들 한다. 본능과 이성을 가르는 기준이라는 것을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애매하게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은 더욱 더해지기도 했다.


저자의 말대로 희망에 대한 연구가 여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 의아하다. 앞으로에 대한 희망없이 어떻게 거친 현실을 버텨나가는 건지도 말이다. 이를 인문학적인 관점으로 풀어낸다는 시도조차도 참으로 진귀한 건지도 모른다. 서양의 저자들인만큼 당연히 서구의 지식과 철학으로 나타낸 시각이 주를 이룬다. 평소 인문학적 지식을 갖춘 이들이 읽기에는 큰 무리가 없을 책일테지만, 나는 그렇다고 하기엔 부족해서인지 어려움이 없진 않았다. 특히 1부에 비해 2부가 더 그랬다. 가장 어려워하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나올때가 확연히 그랬다. 그렇다고 해서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여러번 되풀이해서 읽어야하는 수고는 있었다.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제목대로 희망의 미래는 있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의 답이었는데, 읽으면서 과연 이런 지식의 재료들이 저 물음의 답에 근접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들었다. 물론 책을 다 읽은 지금은 그렇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읽어나가는 과정에서는 의문이 들었다는 소리다.


물음에 대해 간단한 답을 하는 것은 사실 어렵다. 더군다나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인문학적인 지식이 없다해도 자신의 경험이 우러나 세상의 진리를 깨우친 사람들은 제외하고서 말이다. 애초에 호기심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책의 제목과 물음도 그렇지만, 인문학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에 더욱 더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던 책이다. 물론 이는 내가 여태 읽어왔던 인문학 도서들에서도 나름대로의 답을 찾아볼 수 있었을테지만, 저자들의 시각이 더 궁금한 탓이기도 했다. 아울러 나의 인문학 공부가 미흡하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기도 했다. 모든 생물은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믿는다. 그 중에서도 인간이 가장 그럴 것이다.

d*******2 2016.11.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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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 폴 드루아 외 2 저의 『희망에 미래는 있는가』를 읽고
"로제 폴 드루아 외 2 저의 『희망에 미래는 있는가』를 읽고" 내용보기
로제 폴 드루아 외 2 저의 『희망에 미래는 있는가』를 읽고‘우리에게 만약 꿈이나 희망이 없다면 무슨 낙으로 생활해 나갈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그 답을 찾기가 힘들 것 같다. 지금 당장은 정말 어렵고, 힘들고, 절망적이어도 멋진 꿈과 희망이 있기에 얼마든지 참고 버텨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위대하고, 역사 속에서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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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 폴 드루아 외 2 저의 희망에 미래는 있는가를 읽고

우리에게 만약 꿈이나 희망이 없다면 무슨 낙으로 생활해 나갈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그 답을 찾기가 힘들 것 같다.

지금 당장은 정말 어렵고, 힘들고, 절망적이어도 멋진 꿈과 희망이 있기에 얼마든지 참고 버텨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위대하고, 역사 속에서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각자가 그것을 온 몸으로 실질적으로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내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않는 한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경우는 사람의 일생 중 자주 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천운은 절대 기약하지 않는다.

전혀 생각하지 않을 때에 부딪치는 우연한 만남, 우연한 사건, 우연한 책 한권 등에서 내 자신의 정신 속으로 쏘옥 들어왔을 때 커다란 변화가 들어왔을 때인 것이다.

이때부터는 진정 뭔가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그것이 변화의 시작이다.

꿈과 희망을 향한 출발이다.

바로 이런 경험을 빨리 만나야만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앞으로 힘차게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의미 깊은 책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희망에 대해서 한 번 점검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급격하게 변화해 나가는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바쁘게 생활해 나가다보면 솔직하게 자신에 대해서 냉철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가 쉽지가 않다.

그러다 보면 그럭저럭 시간이 흘러가게 되고, 자신의 희망과 미래도 잠식되어진다.

그런데 이 일부러라도 이 좋은 책과의 만남 시간을 통해서 가장 속 시원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서 삶의 에너지, 희망, 불안한 현재에 발 묶인 현대인에 필요한 희망의 기술 등에 대해서 확실하게 익히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솔직히 이런 시간을 거의 갖지 못하고서 흘러가버린 시간을 탓하기에 앞서서 지금 당장에라도 이런 귀한 시간을 마련하고 출발한다면 그 누구보다도 앞서나가는 선도적인 인물이 되리라고 확신하면서 적극 성원 보낸다.

희망에 대한 것도 양면적 속성을 성찰하고, 다시 희망하는 법을 연구한 책이기 때문에 희망에 대해서 확실하게 자신에 대해서 자유롭게 생각하고서 자신의 불확실한 미래를 스스로 책임진다는 것을 뜻한다고도 한다.

그렇다고 조급함에 희망이 멈추도록 강요받기도 하지만 새로이 희망하는 법과 희망의 기술을 배우면 된다면서 그것을 안내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독자는 얼마든지 더 멋진 희망을 갖고서 더 멋진 인생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그리하여 꼭 이루고야 말겠다는 큰 꿈과 희망을 향하여 즐겁게 열심히 임하는 최고 멋진 평소 모습을 보여주리라 확신해본다.

잃어버린 희망을 찾아가게 만들어 주는 인문학 여정의 안내서로서 일독을 강력히 권해본다.    

m***3 2016.11.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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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에 미래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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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나라 현실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아 눈길을 끌었던 책.믿고 싶지 않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치욕적인 현실을 마주하며 이 나라에,나의 미래에 그리고 내 아이에게 미래는 있는 것인가....수없이 쏟아지는 사건들과 보도에 슬픔과 분노가 섞인 한숨에 그저 '미래는 있는것인가...'란 말만 읊조리게 되었는데 잃어버린 희망을 찾아가는 인문학 여정이라는 글귀에 ​작게나마 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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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나라 현실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아 눈길을 끌었던 책.

믿고 싶지 않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치욕적인 현실을 마주하며 이 나라에,

나의 미래에 그리고 내 아이에게 미래는 있는 것인가....

수없이 쏟아지는 사건들과 보도에 슬픔과 분노가 섞인 한숨에 그저

 '미래는 있는것인가...'

란 말만 읊조리게 되었는데 잃어버린 희망을 찾아가는 인문학 여정이라는 글귀에

​작게나마 무언가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이 들었다.

​이 책은 프랑스 철학자와 저널리스트가 쓴 책이다.

​'희망'이란 주제를 신화와 역사, 기독교와 유대인, 시간과 철학자에서 끌어온

​이야기들의 접근 방법은 꽤 신선하게 다가와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두려움과 걱정과 슬픔등을 안고 있는 희망은 행동력이 있다는 내용을 읽어내려가며

독립운동가들이 생각이 났는데​ ​나라를 빼앗기고 이름을 빼앗기고 언어를 빼앗기고

모든것을 빼앗기고 원치않는 강요와 핍박을 받았던 시절

꽃다운 나이, 피끓는 청춘을 나라를 위해 몸바치며 목숨조차 아끼지 않았던

 독립운동가들은

한 어머니의 아들이었으며 아이들의 아버지였으며 아내의 남편이었으며

학생들의 스승이었다. 그 분들은 두려움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더욱 의지를 굳혀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일념으로 목숨조차 아까워하지 않았다.

조국을 되찾고 내 동포, 내 아이들, 내 가족에게 더 나은 미래를 되찾게 해주기 위한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들면서 지금 시대 더 절실하게 와닿았던

책이었던 것 같다.

 

d****i 2016.11.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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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에 미래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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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희망한다는 것은 우리의 자연스런 바램이자 삶이 지향하는 방향이기도 하다.희망이 희망적이지 않고 절망적이거나 절망적일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과연 희망에미래라는 가치가 존재하기나 할까?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절망에서 피는 희망의 꽃을 찾는것이 인간이라면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그러한 환경에놓여 있음을 실감할 것이다.대한민국 사회를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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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희망한다는 것은 우리의 자연스런 바램이자 삶이 지향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희망이 희망적이지 않고 절망적이거나 절망적일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과연 희망에
미래라는 가치가 존재하기나 할까?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에서 피는 희망의 꽃을 찾는것이 인간이라면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그러한 환경에
놓여 있음을 실감할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헬조선', 과히 듣기 좋은 말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와 우리의 삶이 담겨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고스란히 대변하는 말이라면 그것은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자 희망적인 미래를 강구하고픈 푸념과도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잃어버린 희망을 찾아가는 인문학 여정'이라는 책의 부제처럼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잃어버린 희망에 대해 우리의 관념은 이미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유물론을 닮아있다.
그런 우리의 삶에서의 희망은, 미래를 답보할 수 없다는 스스로의 외침이자 변화를
수용하려는 각성이랄 수 있을것이다.


서양사적 흐름에 담긴 희망에 한국적 '한'의 정서를 교감할 수 있을수도, 아닐 수도
있는 연관성을 저자 로제 폴 드루아와 모니크 아틀랑은 희망에 대한 연구 결과와
함께 희망해야 하는 삶의 희망법을 밝혀주고 있어 철학적 사유에 대한 이해를 더욱
높일 수 있다.


희망은 행동을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
행동은 다시 희망을 일으키게 하고 이 둘은 반복되는 과정을 거쳐 순환의 구조를
만든다. 우리가 하는 행동의 모든것들, 좋든 나쁘든 모든 행동에는 분명 어떤 의미를
담고 있으며 그 행동을 통해 우리는 희망이라는 가치를 품게된다.
세상 삶의 고단함과 어려움이 희망마저 마음을 다치게 하는 희망고문으로 둔갑하는
실정이고 보면 오늘을 사는 우리는 희망을 품고 사는것이 아닌 그저 사는것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희망의 밝은 면이 있는가 하면 희망의 어두운 면, 모순성도 존재하며 그러한 희망의
다각적인 이해를 통해 진정 우리가 희망해야 할 희망의 진실한 모습을 깨닫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n********1 2016.11.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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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 폴 드루아 #모니크 아틀랑 #희망에 미래는 있는가 #미래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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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에 미래는 있는가 로제폴 드루아, 모니크 아틀랑미래의 창 은퇴절벽, 고령화, 저출산... 이런 말을 볼 때마다 인간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고 삶의 끈이라고 볼 수 있는 희망이 점점 사라져가는 것 같다. 지금 같은 국정농단을 보면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던 작은 성공에 대한 희망도 사라져버린지 오래이다. 희망은 과연 인간에게 점점 사라져 가는 감정인 것일까? 저자는 희망은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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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에 미래는 있는가

로제폴 드루아, 모니크 아틀랑

미래의 창




 은퇴절벽, 고령화, 저출산... 이런 말을 볼 때마다 인간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고 삶의 끈이라고 볼 수 있는 희망이 점점 사라져가는 것 같다. 지금 같은 국정농단을 보면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던 작은 성공에 대한 희망도 사라져버린지 오래이다. 희망은 과연 인간에게 점점 사라져 가는 감정인 것일까?


저자는 희망은 여전히 존재하고 강인한 생명력으로 의식 속에 들어가있다고 한다. 전쟁, 질병, 빈곤이 지구에 아직 남아있지만 그것이 언젠가는 없어지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희망이라는 것을 주제로 하여 과거부터 미래까지 희망에 대한 철학을 보여주고 있다.


정치인들은 항상 희망을 외치며 자신들이 미래에 희망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이렇게 희망에 대해 이야기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기암시법을 통해 모두 성공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고 믿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는 것은 여전히 팍팍하고 어렵기만 하다. 희망과 미래는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과거의 철학자들은 절망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은 있어도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 한적은 거의 없다고 한다. 실체가 없는 희망은 논리적으로 보면 무의미한 상태라고 한다. 희망은 철학자들 사이에서 배척을 받았지만 결코 사라진 적은 없다.


희망은 사람처럼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 희망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장기간 지속되는 감정이라고 한다. 짧은 희망도 있지만 대대손손 내려가는 희망도 있기 마련이다. 희망은 혼자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전국민이 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희망이라는 감정이 미래에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m*********s 2016.11.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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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에 미래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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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에 미래는 있는가. 지금 대한민국은, 희망에 미래는 있는가. 이 책은 철학자 로제 폴 드루아와 저널리스트 모니크 아틀랑이 잃어버린 희망을 찾아가는 인문학 여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학문으로서의 철학이 어떻게 현대 사회의 위기를 극복하는 다리가 될 것인가. 한국 사회는 현재 큰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공동체적 희망의 소멸. 이 책에서는 희망의 개념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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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에 미래는 있는가.

지금 대한민국은, 희망에 미래는 있는가.

이 책은 철학자 로제 폴 드루아와 저널리스트 모니크 아틀랑이 잃어버린 희망을 찾아가는 인문학 여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학문으로서의 철학이 어떻게 현대 사회의 위기를 극복하는 다리가 될 것인가.

한국 사회는 현재 큰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공동체적 희망의 소멸.

이 책에서는 희망의 개념에 대해서 역사적, 문화적, 철학적, 사상적으로 살펴봅니다.

무엇이 희망인지를 제대로 아는 것부터가 시작인지도 모릅니다.

희망은 이성과 비이성, 지상과 천상, 위안과 불안, 이로움과 해로움을 동시에 의미합니다. 희망은 각각의 의미 위에서 모순성을 형성하며 오늘날까지 계속 누적되고 진화되고 있습니다. 희망은 얼핏 보기에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감정인 듯 보이지만 희망마다 고유한 면과 다양한 형태가 있어서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현대에 이르러 희망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철학자 프레데리크 보름스는 오늘 고통스럽고 참담한 일을 겪으면 그 일이 희망의 길을 열어주고 희망을 뒷받침할 수도 있고, 미래를 두려워하고 미래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는 계기를 제공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기는 사건, 즉 재앙이나 참사와 같은 예측불허의 상황이나 기대 이상의 좋은 상황을 초래하는 사건이 공동체의 감성에 흔적을 남기면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따라서 과거, 현재, 미래 관계의 변화 양상을 살펴보면 희망에 관한 기존 인식이 바뀌게 됩니다. 이때 시간의 흐름에 따른 연계 방식이 변화하는 시점을 잘 포착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당신이 어느 시대에 사는지 말해주면 당신이 어떤 미래를 희망하며 미래에 관해 무엇을 걱정하는지 말해주겠다"를 기본 원칙으로 삼을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다시 말해 희망의 시간은 우리가 겪고 느끼고 살아보는 등의 인지 작용을 통해 우리의 내면에 깃들어 있는 시간입니다. 개인적 심리뿐만 아니라 공동체적 표상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공동체로 존재하는 이 세상은 항상 끝나지 않은 상태에 있으며 노동, 희망, 투쟁도 영원히 계속됩니다. 이를 다른 용어로 표현하면 실제적, 역사적, 구체적 삶이라고 할 수 있고 희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희망은 환상이 아니라 삶에 꼭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철학이 추구하는 방향, 희망을 거부하면서 희망에 대한 무관심이 확산되었던 시대적 상황들을 살펴본 것은 이제 철학이 내일에 대한 의무, 미래를 향한 결단, 희망에 관한 지식을 갖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이러한 변화의 의무를 철학자들에게 부여하여 철학자들이 변화의 필요성을 인지하도록 돕고 싶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변화를 가능하게 하려면 희망에 대한 학습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니체와 에른스트 블로흐가 말했듯이 "희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말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희망에 관한 인식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희망을 배척했던 태도를 추방하고 희망을 토론의 장으로 다시 불러내야 합니다. 미래를 이야기할 때는 괜한 환상만 자극해서는 안됩니다. 희망과 행동은 하나입니다. '행동하는 희망'을 통해서만 우리의 미래, 희망을 앗아가려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행동하지 않으면 희망할 수 없으며, 희망하지 않고는 행동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희망은 있습니다.

YES마니아 : 로얄 a*****7 2016.11.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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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에 미래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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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희망을 주제로 한 인문학 저서이다. 철학과 종교, 심리학까지 다양하게 다루고 있으며, 깊이 다가가면 인문학에 관한 기본 지식 없이 읽어간다면 힘들어질 수 있다. 하지만 희망에 관한 본질적인 가치가 무엇이며, 우리는 언제부터 희망을 추구했는지 고찰해 볼 수가 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희망이 언급되었던 시점이 언제일까 되돌아 보았다. 아날로그 사회와 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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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희망을 주제로 한 인문학 저서이다. 철학과 종교, 심리학까지 다양하게 다루고 있으며, 깊이 다가가면 인문학에 관한 기본 지식 없이 읽어간다면 힘들어질 수 있다. 하지만 희망에 관한 본질적인 가치가 무엇이며, 우리는 언제부터 희망을 추구했는지 고찰해 볼 수가 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희망이 언급되었던 시점이 언제일까 되돌아 보았다. 아날로그 사회와 디지털 사회로 구분되며, 아날로그 감성에서 디지털 감성으로 바뀌면서 희망을 얻기 위해서 점점 더 노력하게 된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는 바로 정보의 접근성이다. 정보의 접근성이 증대됨으로서 우리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으며, 급격한 변화를 가지게 된다. 변화의 폭이 점점 커져감으로서 우리 스스로 불확실성과 마주하게 되고, 희망에 대해 집착하는 이유가 되었다.

희망은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의 추구이다. 태고적부터 원시생활을 하면서부터 가지고 있었으며, 앞으로도 가질 것이다. 어떤 걸 욕망할때 그것에 다다를 확률이 커진다면 우리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운이 요구되는 아주 낮은 확률 조건이 주어지면 우리는 희망보다 절망을 먼저 생각하게 되고, 포기하는 경우도 생겨난다. 여기서 확률이라는 것은 경쟁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며, 경쟁이 치열한 사회로 바뀌면서 능력을 가진 이들은 다양한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자포자기 하게 되고, 있는 자와 없는 자 간의 갈등이 만들어지게 된다.

책에는 이스라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1000년 동안 세계를 떠돌아 다녔던 그들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형성 할 수 있었다. 여기서 그들에게 국가란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꾸게 만드는 매개체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매개체를 포기 할 수 없었으며, 그것을 사수하기 위해서 국방과 과학기술을 발달 시켜 왔다. 그들이 가지고 싶어하는 희망은 우리가 생각하는 희망과는 다른 성격을 가지게 된다. 우리는 당연히 국가라는 것에 대해서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고 생각하는 반면, 이스라엘은 그들이 찾은 국가를 빼앗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하고 있다. 어쩌면 희망을 붙잡고 있으면서,놓칠까 두려워 하는 마음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현재 모습이 아닐까 생각하였다.

희망이라는 것에 대한 집착과 염원...우리는 과거보다 희망이 더 사라졌을까. 과거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우리가 사회에 요구하는 기대치는 그것을 넘어서게 되었다. 예전에는 1개가 나에게 주어졌다면 그것에 만족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1개를 가지면 , 2개를 가질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게 되고, 우리는 점점 희망과 멀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러한 우리의 모습에 대해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 바로 이책이다.

k*******2 2016.11.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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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에 미래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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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에 미래는 있는가 희망에 실망하고 배신당할까 두렵다는 이유로 사회 전체가 희망을 나눌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버린다면, 또 공동체의 견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정말 애석한 일이다. 15쪽어디서 많이 보던 문구가 아닌가. 어차피 뻔하다던가, 더 나을 것이 없다던가, 이미 틀렸다던가 하는 식의 체념 혹은 포기상태. [희망에 미래는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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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에 미래는 있는가




희망에 실망하고 배신당할까 두렵다는 이유로 사회 전체가 희망을 나눌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버린다면, 또 공동체의 견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정말 애석한 일이다. 15쪽



어디서 많이 보던 문구가 아닌가. 어차피 뻔하다던가, 더 나을 것이 없다던가, 이미 틀렸다던가 하는 식의 체념 혹은 포기상태. [희망에 미래는 있는가]는 철학자 로제 폴 드루아와 저널리스트 모니크 아틀랑이 지은 인문학서로 부제에 그 목적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잃어버린 희망을 찾아가는 인문학 여정. 저자들의 서문을 보면 한국인들의 뿌리깊은 불교와 유교사상이 기독교 사상에 비해 덜 희망적인데다 서양인들을 대상으로 기획 및 연구된 이 책이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했다. 일리있는 이야기지만 달을 보고 소원을 비는 조상들의 모습이라던가, 새벽기도 등의 습성은 종교와 거의 무관하게 이어져온 한국인들의 '희망적'인 부분이라 염려되는 서양인들을 대상으로 연구되었다는 부분만 감안하면 크게 다른 감상이 나오진 않을것 같았다. 본문 첫 문장은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던 희망의 뜻과 함께 기존의 지식을 잊으라고 말한다. 왜냐면 이 책은 개인의 희망이라기 보다는 사회 전체가 함께 희망을 가지는 것이 주요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애초에 '희망'이란 단어가 어디서부터 시작이었는지 독자를 백지상태로 세팅한 뒤 최초의 희망을 쫓아간다. 책을 읽는 동안 부제를 결코 잊으면 안된다. 이것은 인문학적 사고에서 바라보는 희망을 찾는 여정이자 개인이 아닌 단체로서 꿈꾸는 미래에 희망이 가능한지를 쫓는 여정이다.


모든 종류의 악이 항아리에서 빠져나갔는데, 희망은 왜 나머지 악처럼 빠져나가지 않고 항아리 바닥에 남아 있었을까? 37쪽


인문학적 사고의 가장 중요한 것은 이론을 그대로 수긍하기보다는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갖는 것이며 그야말로 '사고의 중요성'을 깨닫는 과정이다. 저자의 해석을 듣기 전에 먼저 고민해본다. 왜 희망은 빠져나가지 않았을까? 이제껏 생각했던 것을 비우라고 한 상태에서 생각해보자면 희망이 무거웠기 때문이다. 죄악보다 희망이라는 녀석이 더 무서워서 미처 빠져나가지 못했을거란 것이 내 생각이면 저자는 그동안 역사속에서 논란이 되어왔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러면서 판도라란 여성을 인간 세상에 보내기 까지의 상황, 그리스 신화 속 인간, 성별, 앎, 선과 악 등에 관한 이야기가 연이어 등장한다. 고대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빠질 수가 없는데 당대는 물론 후대에 이르기까지 그리스철학자들은 희망이 신기루와 같아서 부정적으로 여겼던 반면 플라톤은 '현재보다 덜 힘들기를 소망하는 마음'즉 지금보다 더 나아지길 바라는것이 희망이라고 보았다. 희망은 현재가 아닌 미래 그리고 변화에 가깝기 때문에 기독교 사상과 가장 잘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고린도서에 등장하는 바울의 이야기를 통해 현세가 아닌 내세에서의 행복을 소망하는 것이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고 이때 소망과 함께 믿음 그리고 사랑을 더해 세 가지 덕으로서 기독교사상 속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정의내렸다. 1부에서 고대에서 시작된 희망의 역사를 돌아봤다면 2부에서는 오늘날 과연 희망이 어떤 상태에 놓여져 있는지를 분석한다.


희망이라는 기이한 감정은 대체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희망은 대단히 보편적인 감정이며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세상 누구나 마음속에 열렬히 품고 있는 감정임에 틀림없다. 131쪽


1부는 읽기가 상당히 수월했다. 머리를 비우고 문제를 제기하면 백지상태의 머리로 새롭게 의심하고 나만의 답을 내놓고 저자의 해석과 함께 비교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2부에서는 슬슬 인문학서 다운 면모를 드러낸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 연구를 통해 바라본 희망은 과연 무엇일까.  정신분석학에서 중요시 여기는 것은 기존에 우리가 절대시간이라고 여기는 시간 외에 심리학적 으로 존재하는 시간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무의식'상태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우리가 무의식중에 지나치는 모든 것은 기존의 절재시간의 개념을 결코 느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심리학적인 시간의 구조에 대해 궁금해 할 독자들을 위해 페이지를 할애했고 그 중 '꿈'을 예로 든 부분에 특히 관심이 갔다. 이어지는 3부의 제목은 '행동하는 행복'으로 우리가 무언가를 희망할 때 이것은 단순히 감정적인 부분을 넘어서 실제 '행위'가 더해져야만 한계를 뛰어넘는 위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우리가 희망하는 순간부터가 이미 희망이 시작되는 것으로 반대로 보면 우리가 희망하지 않고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그 행위자체가 결국은 우리가 무언가를 '희망'하는 상태로 도달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지옥에 들어가는 자들이여, 모든 희망을 버려라." <신곡>, 302쪽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오히려 희망이 무엇인지 정의하기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저말보다 더 확실하게 희망을 알려주는 말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서두에 밝힌 것처럼 개인적인 소망 혹은 희망을 갖는 것에 그치면 그 희망은 서로 충돌하고 크게 보면 그것은 선이 아닌 악에 해당된다. 하지만 서로 충돌하지 않는 한 단체나 사회의 희망은 그 방향이 달라진다. 불확실한 미래인 것은 맞지만 우리의 행동 하나가 희망의 과정이라는 맥락에서 보자면 그 미래가 마냥 불확실한 것만도 아니기 때문이다. 본문에 인용한 베르그송의 말처럼 우리의 행위에 자신이 없고 확신이 없어 주저하는 것이 실패를 꿈꾸게 하고 그런 결말에 이르게 만든다고 볼 때 미래에 희망이 있다고 보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그러니 희망하라, 그것이 곧 미래에 우리가 마주할 현재가 된다.

 

YES마니아 : 로얄 i********g 2016.11.2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