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태 내가 읽어본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작품은 전원과 목가적인 작품이 주를 이루었다. 그래서 그의 다른 작품들도 그러려니 하고 있었는데, 제목부터가 작가와 어울리지 않은 『임신중절』라는 제목을 가졌다. 물론 어떤 역사 로맨스라는 부제가 붙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이 궁금했다. 그는 어떤 로맨스를 말하는 것일까.
소설의 배경은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특별한 도서관. 그곳을 지키는 남자와 그 도서관을 찾아 온 아주 아름다운 여자와의 로맨스를 담고 있다. 그가 일하는 도서관이 어떤 곳이냐 하면, 아마 이 세상에서 찾아볼 수 없은 아주 특별한 곳이었다. 그 어느 곳에서도 출판되지 않은 책을 가져오면 책을 받아주는 곳. 책은 글이 없이 그림만 있어도, 그 어떤 이야기도 가능하다. 책들은 이곳 도서관으로 왔다가 포스터에 의해 봉인된 지하 저장소로 옮겨진다. 남자는 아침 9시에 문을 열고, 밤 9시에 문을 닫는 곳이다. 그리고 그곳 도서관에서 기거한다. 하루도 문을 열지 않으면 안되는 곳, 밤늦게 혹은 이른 새벽에 찾아와도 문을 열어주는 곳이다.
그곳에 어느 날 한 여자가 찾아왔다. 육체적 아름다움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에 대한 내용을 책으로 쓴 여자였다. 그녀의 이름은 바이다. 자기의 육체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이 힘들어 숨어살다시피 했다. 그게 고통일수도 있다는 말을 하는데, 도서관의 남자에게만은 편안함을 내보인다. 둘을 사랑했고, 밤이면 바이다가 도서관으로 찾아와 사랑을 나눴고 얼마 뒤 임신을 했다. 이들이 할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둘 사이엔 아직 아이를 가질만한 여유가 없었고, 합의에 의해 임신중절 수술하기로 했다. 당시에 임신중절수술이 불법이었기에 그들은 멕시코로 건너가 수술하기로 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유념할 것은 도서관과 바깥 세상과의 차이다. 도서관의 사서인 남자는 임신중절 수술 때문에 3년만에 처음으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그동안 사서는 도서관 안에서 세상밖으로부터의 모든 것을 차단한 채 살고 있었다. 이제 임신중절 때문에 멕시코의 티후아나로 가게 되었다. 세상밖에서 살았던 바이다는 사서에게 현실의 삶을 살라고 권한다. 세상 밖으로 나와 현실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
도서관에 오는 책만 받던 사서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현실의 세계에서 임신 중절을 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길을 물어 병원으로 가야 한다. 현실의 세계에서는 바이다가 그를 인도한다. 사서에게는 도서관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도서관이 인생이었던 남자. 그런 남자가 병원에서 임신중절 수술을 경험한다. 그것도 네 번씩이나. 이로써 그는 도서관 밖의 삶을 보고 배운다. 그에게 새로운 인생이 찾아왔던 것이다.
여러가지 생각이 들게 한다. 사랑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임신과 낙태수술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 새로운 관계로의 시작일 수도 있고, 관계의 단절도 될 수 있다. 그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사회의식이 없는 예술이란, 돈 있고 배부른 귀족들의 사치일 뿐, 결코 인간정신의 고양이나 잃어버린 전원의 회복에는 도움이 될 수 없을 겁니다. - 리처드 브라우티건
여러가지로 마음이 어지러운 때다.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생각, 새로운 삶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이 책에서 처럼.
|
|
임신중절 : 자연적인 분만기 이전에 태아를 인위적으로 모체 외로 배출시키거나 모체 내에서 살해하는 행위를 말한다. (백과사전) 지금도 수많은 태아가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져 갑니다. 잉태되긴 했으나 태어나지는 못한 아기들이 살인당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가지긴 했으나 생명이 될 자격을 못 얻은 자들이 죽어갑니다. 사살된 시체들은 깊은 어둠 속에서 잊혀집니다. 해설서에 보니, 이러한 현상을 작가는 세상에 출간되지 못한 책에 비유했다고 합니다. 유머 코드가 많이 나오면서도, 책이 전체적으로 어두운 이유가 있더군요. 출간되지 못한 책을 보관하는 이 독특한 도서관은, 글(그림)은 완성됐으나 책으로 만들어지지 못하고 낙태되는 병원 같은 곳. 그리고 지하 저장고는 낙태된 시신들이 버려지듯 책들이 영원히 묻히는 무덤. 이 해설을 읽으니 '내 소설도 낙태되어 묻힐까?'란 의문도 생겼습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이 괴상한 도서관에 일하는 남자 '나'의 이야기입니다. 아니 나와 그녀의 이야기입니다. 출간되지 못한 책만 기증받는 이 요상한 도서관에 한 여자가 찾아옵니다. 그녀는 어떤 남자든 무조건 반하는 미녀입니다. 운전하며 그녀를 쳐다보다가 사고로 죽는 남자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녀가 책을 기증하러 왔다가 남자에게 반하고 둘은 사랑을 만들어 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임신하고 맙니다. 남자는 무보수로 일했기에 전화 걸 10센트도 없었고 여자도 벌이가 신통치 않았습니다. 아직 아기를 키울 준비가 안 됐다고 생각한 둘은 임신중절이 합법인 멕시코로 가서 수술을 받고 옵니다. 그런데 하루 사이 어이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서점이거나 헌책방이거나 도서관이 배경인 소설은 무척 재밌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일 것입니다. 그래선지 도입부부터 빠르게 집중됐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절세미녀. 그녀와의 사랑. 해설서를 읽기 전까지는, '임신중절이 얼마만큼 고통스러운지에 대한 소설' 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니더군요. 하~~~ 저는 초고만 써놓고 아직 퇴고를 못 한 장편소설이 하나 있습니다. 3년 동안 쓴 첫 소설은 종이책 출판에 실패하고 전자책으로 냈습니다. 저는 요즘 또 하나의 초고를 쓰고 있습니다. 그래선지 해설을 읽고 나니 왠지 우울해졌습니다. 내 소설들도 결국 무덤에 묻히고 말까? 책으로 태어나지 못하고 임신중절 당할까? 이 소설은 임신중절이나, 출판되지 못한 책에 대한 소설만은 아닌 것도 같습니다. 모든 태어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소설은 아닐까요? 저녁에 먹으려고 샀다가 냉장고에서 썩은 두부, 다 피지도 못하고 차가운 물에 목숨을 빼앗긴 세월호 학생들, 수많은 죽음으로 이뤘지만 사이비종교 광신도에 의해 무너진 민주주의.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임신중절 수술을 당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임신중절 수술 당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막고 싶어졌습니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민주주의를 위해. 지금도 수많은 생명들이 죽을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가치들이 사장될 위기에 몰려 있습니다. 사람다운 삶을 위해,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서는 침묵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이렇게 글을 씁니다. |
|
멋진 작품 잉태의 꿈 [임신중절]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장편은 처음이다. 단편 속에서 빛나는 문장들을 접하고 황홀해 했었는데, 장편은 단편만큼 빛나는 문장에 더해 또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적절한 비유와 뜻하지 않은 비틀기는 너무나 멋져서 잠깐씩 숨을 멈추어 그 순간을 음미해야만 했다. 정말 천재 아닌가? 싶어 몇 번씩 그 부분을 읽고 또 읽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품고 있는 상징을 찾아내서 진짜 뜻과 매치하는 과정에서는 재빨리 연결짓지 못하는 나를 놀리는 듯했다. 겉으로 드러난 이야기 자체가 너무 비현실적이면서도 사람을 빨아당기는 환상적인 면이 있어서, 이야기에 푹 빠져 있다 보니 어느새 끝나 있더라~ 이야기 자체의 여운을 더 즐기고 싶었는데 뒷부분의 해설은 두 가지씩이나 이 책을 읽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야기는 환상우화 한 편을 읽는 느낌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도서관이 있다. 어떤 출판사에서도 받아 주지 않는 책이나 저작물을 받아주는 도서관이다. 사람들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느 때고 도서관에 찾아와 친절한 사서에게 자신의 책을 맡긴다. 자기 집 고양이 잭에 관해 열두 살 여자 아이가 쓴 책, 일흔 살 중국 신사의 말 도둑을 다룬 서부소설, 고뇌 투성이의 여자가 두고 간, 프라이해야 할지 서가에 꽂아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기름투성이였던, 1파운드 베이컨같은 책, 리처드 브라우티건이 쓴 <무스>같은 책들이 속속 도착한다.
아, 책들의 어둠 속에 앉아 있는 것은 너무도 좋다. 나는 피곤하지 않다. -26
도서관에서 3년째 틀어박혀 책들을 기증 받는 주인공 '나'에게 어느날, 보티첼리풍의 완벽한 외모를 자랑하는 여인이 찾아온다. 그녀는 육체적 아름다움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알리려고 자신의 '몸'에 관한 책을 썼노라는 말을 하며 눈물을 글썽인다. 루저들이 자기 책을 가지고 오는 이상한 도서관에 사는 남자와 완벽한 아름다움을 지녔지만 영혼이 완벽하지 않은 여자 '바이다'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그들에게 아기가 생기자 아직 세상에 적응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들은 '임신중절'을 결심한다. '나'가 유일하게 연락하며, 도서관의 책들이 옮겨지는 지하 저장고에서 일한다는 '포스터'의 도움으로 그들은 멕시코의 티후아나로 간다. 거기서 바이다가 수술을 하는 동안, '나'는 바이다를 포함, 세 번의 중절 수술을 목격한다. 도서관을 '집'이라 믿으며 다시 돌아왔지만 새로운 사서에 의해 '나'는 내쳐진다. '나'와 '바이다', 그리고 '포스터'는 각자의 길을 찾아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보통의 '임신중절' 소재 이야기에서 기대하는 눈물 따윈 없다. 감정 과잉을 불러오거나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호소력 짙은 문장도 없다. 다만 사건의 나열들이 앞만 보며 직진하고 루저 같아 보였던 이들은 '임신중절'을 겪으면서 다시 힘차게 도약한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해설에서 제시한 두 번째 방법처럼, 인간과 책의 관계, 또는 저자와 글쓰기의 관계에 대한 은유로 읽을 수 있다.
이 작품은 출간되지 않은 모든 원고는 마치 장의사의 관처럼 도서관 선반에 나란히 놓여 있다가, 종국에는 지하무덤으로 옮겨져 묻히고 망각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35 (해설 중)
'나'가 목격한 세 번의 임신중절은 저자가 이 소설을 쓰기 이전 발표했던 세 권의 소설과 들어맞으니 '임신중절'은 저자의 작품이 태어나지 못하고 묻히는 것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겠다. 도서관은 원고들이 출판을 기다리며 모이는 곳, 지하 저장소는 원고들의 죽음을 상징하는 무덤같은 곳이라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나'에게 아름다운 '바이다'가 새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과정이 낭만적 로맨스로 포장된 것은 리처드 브라우티건이 메마른 삶 속에서도 낭만을 바랐다는 증표로 보아도 될까?
브라우티건이 책 속에서 창조한 이 특이한 도서관을 기념해 실제 브라우티건 도서관이 세워졌고, 거기서는 실제로 출판되지 않은 책 원고들만 받아서 보관했다고 한다. 실로 많은 이들의 꿈을 위한 도서관이 세워진 셈이니, 브라우티건의 낭만이 실현된 것이다.
|
|
제목을 들고 원제를 보니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이 들어 찾아보니 (아, 다행이다. 바로는 생각이 안나도, 잠깐 포기하는척 했더니 생각났다. 아직까진 건망증을 그닥 염려하지 않아도 되나보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5 (책과 인연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5))]에서 소개된 적이 있는 책이다. 일본에선 [사랑의 행방]이란 이름으로 번역, 소개되었나보다. 송어낚시란 제목을 달고 송어낚시 소개가 아닌 책임이 밝혀졌던 것처럼, 어떻게 임신중절이 로맨스와 사랑으로 풀이되는지..난 언제나처럼 작가의 책으로 힐링을 하리라는 큰 기대감으로 책장을 펼쳤다. 하지만, 책장을 펴자,
...작가란 누구보다 먼저 주위 사건들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제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사회의식이 없는 예술이란 돈있고 배부른 귀족들의 사치일뿐, 결코 인간정신의 고양이나 잃어버린 전원의 회복에는 도움이 될 수 없을 겁니다....
란, 작가의 말이 있었다.
'나'는 샌프란시스코의, 클레이가에서 새크라멘토 가까이 이어지는 블록의 언덕 부지에 있는 도서관에서 3년째 일하고 있다. 이 도서관을 책을 빌려주거나 읽기 위해 사람들이 오는 곳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쓴 책들을 가지고 24시간 어느때든 방문한다. 물론, 도서관이 열고 닫는 시간이 있지만, 그들은 언제든 노트나 스케치북에 크레용으로 그리거나, 자필로 쓰거나, 타이핑을 한 책을 가지고 와서 실버벨을 울리고, 자기가 원하는 곳에 놓고 갈 수 있다. 이 책들을 분류하는데엔 듀이의 분류법이나 그런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으며, 모아진 책들은 북캘리포니아의 지하저장고로 가게 된다. 이 책들을 가져오는 사람들은, 오랜 기간이던 짧은 기간이던 자기가 썼던 책을 미련없이, 또는 헌정하듯, 털어놓듯, 관심없는듯 놓고 가버리고... '나'는 이들을 위해, 부드럽고 정중한 옷차림과 태도와 표정을 준비한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아름다운 육체란 어색한 성에 갇힌듯한 여인네, 바이다를 만나게 되고, 힘듦을 토로하는 그녀는 자신의 방으로 안내하며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임신. 나는 지하저장고에 사는 포스터의 도움으로 그녀의 임신중절 수술을 위해 멕시코의 티후아나로 떠나게 되며, 3년만에 도서관에서 나오게 된다.
장르가 패러디이며, 반어적인 부분도 있고, 또 작가의 말도 있지만, 난 이 책을 읽으면서 '나'가 바이다를 바라보는 시선에 좀 더 관심이 기울여졌다. 아프던지, 건강검진때 대장내시경 등을 받고 나와 밖에 나가게 되면 햇빛에 눈이 부시고 바닥이나 물건들이 원래의 고정의 형태와 달리, 굴절되거나 출렁이듯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처럼, '나'는 바이다를 보는 시선이 '비현실적'이다. 현실에 대한 패러디보다는 마치 환타지를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얼마나 한 여인네를 사랑하는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가 하는 그런 환타지 로맨스.
... 슬프다. 사랑의 순수함은 단지 단계적으로 변해가는 신체적 상황일뿐, 우리의 키스 같은 것은 아니었다....p.178
하지만, 이 환타지 로맨스는 중절수술을 앞둔 소녀와 가족들, 수술을 더 하고 싶은 의사, 내던지듯 해고하는 여성, 그리고 바이다가 택한 직장 등으로 현실과 부딪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신중절이란 비극적이라면 비극적인 행위를 바이다 ('생명'이란 의미)의 여성이 그동안의 수동적인 인생의 자세를 벗어나 자기 주도적으로 결정을 내리며 선택하고, 또 '나'가 해고가 끝이 아니며 새로운 삶의 차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그 결정'을 비극적인 사건이 아닌 역사적인 로맨스로 만들어버린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이 쓴 [무쓰]. 저자는 장신에 금발이없으며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을 주는 긴 노란색 콧수염을 달고 있었다. 그는 다른 시대에 속한 사람처럼 보였다. 이 책은 그가 가져온 세번쨰인가 네번째의 작품이었다....책 제목은 생각이 안나지만, 내 기억에 미국하고 관련이 있었던것 같다. "이번에는 무엇에 관한 책인가요?"... "그냥 또다른 책이에요 (Just another book)." 그가 답했다. 그의 대답으로 미루어보아 내가 뭔가 물어봐주기를 기다린 것은 아닌 것 같았다....p.29
|
|
이것은 또 어떤 은유의 세계인가. 올해 나이 31살의 청년인 “나”는 어느 작은 도서관에서 혼자 근무하고 있다. 굳이 다른 일손이 필요 없게 된 이유란 별개 아닐 수도, 많이 특별한 사연일수도 있는데 이 도서관은 대여나 열람이라는 고유의 기능 대신 남녀노소 상관없이 자신이 쓴 책(책의 기준조차 모호한, 그 수준과도 무관한)을 가져와서 무슨 책인지 간단히 설명한 후 책장에 알아서 진열하면 된다는 곳이기 때문이다.
여기 책을 들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밤낮 없이 벨을 눌러대니 자다가 문을 열어 책을 접수하는 일이 다반사. 그러다보니 청년은 도서관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전에 많은 사서들이 이곳을 거쳐 갔지만 그 누구도 진득하게 버텨내지 못했기에 그에겐 천직인 셈이었다. 사실 손님들은 하나같이 평범하지 않다. 책의 소재나 성격을 듣고 있자면 과연 그런 것들이 책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을까? 도서관에 진열될만한 수준인가? 어쩌면 책의 가치에 철조망을 둘러친 오만방자하고 편협한 시각일지도 모른다.
작가도, 접수하는 이도, 그 어떤 누구도 이것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하지 않는데 책이라는 세계는 우리가 알고 있는 범위보다 훨씬 광대한 지향점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신비하면서 감동적인 행렬이자 진열이겠다. 그렇게 늘 도서관에서 일상을 보내는 청년을 단절된 외부로 끄집어내기 위한 길잡이 또는 유혹으로 봐야 할지 그에게도 사랑이 찾아온다. 무려 3년 만에.
여신은 "바이다 크레이머"라는 젊은 아가씨. 글래머스러운 자신의 육체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는 내용의 책을 들고 온 것이다. 행복한 고민 아니냐고 말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녀에게는 심각함과 우울함의 상징 그 자체였고 청년이 그녀의 육체적 관능에 먼저 반하더니 결국 두 사람은 사랑에 빠져 동거하게 된다. 별다른 고민 없이 행복하게 살았다면 좋았겠지만 바이다가 임신을 하는 바람에 두 사람은 상의 끝에 누군가의 소개로 멕시코 타후아나로 낙태 수술을 하러 출발하게 된다.
임신과 출산을 사랑의 결정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이들이 아직 정서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관계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데, 초반의 도서관 생활과 로맨스, 중반 이후 낙태 여행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은 앞서 읽었던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작풍과 비교해서 다소 누그러진 것 같으면서도 특유의 분위기와 은유적 세계관들이 여전히 헤엄치고 있음을 또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봄바람이 살랑거리듯 마음을 편안히 먹고 읽어 갈 수 있는 소설이라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낙태는 그동안 벗어나지 못했던 울타리를 벗어나 그 너머의 세상으로 떠나기 위한 일탈과 자유적 행위의 상징으로 해석하고 싶다. |
|
<쇼핑왕 루이> 속 루이가 마음에 들어. 고복실을 향한 지고지순 사랑을 무슨 말로도 표현할 길이 없어. 그런 남자의 사랑을 받는 고복실이 부러울 나름이지. 누구나 글을 쓸수있다. 완성된 원고를 가지고 출판사를 찾아갈 수도 있지. 다만 출판사에서 원고를 받게 하려면 완성도가 높은 글을 가지고 가야겠지? 내 글이 다른 사람에게 읽힐(선택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하에 출판사에서 원고를 받아주는 것일테고. 아니라면 자비출판을 해야겠지. 출판사에서 거절당하고 자비출판으로 성공한 작가도 있다.《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의 작가 넬레 노이하우스가 그중 하나다.
소세지 공장 사모님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로 명성을 얻은 넬레 노이하우스에게도 원고를 가지고 출판사를 찾아다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위안을 안겨준다. 누구나 무명일때는 있는 것이니까. 도서관에서 산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책을 읽거나 빌리기 위해 방문하는 것이 아닌 도서관에서 숙식하는 등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면? 도서관을 직장삼아 출근하는 사람도 있고 당연히 당직을 하는 이도 있겠지만 그들도 당직이 있는 날에만 도서관에 머물 수 있지 머물고 싶다고 언제든지 머물수 있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요즘 도서관에서 밤을 지새며 책을 읽는 이벤트가 유행하고 있다는 말은 들었어.
매일 도서관을 숙소삼아 머물며 언제든 새책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기 위해 대기상태에 있어야 하는 남자가 있다. 그는 도서관 뒷쪽에 작은 부엌이 달려있는 방에 거주하며 방문객을 기다린다. 그것이 그의 임무인 탓이다. 한달에 한번 도서관을 찾아와 잔디를 깍아주는 흑인 소년, 돈을 받고 하는 일이 아니니 순수 자원봉사라 할만하다. 주말이면 도서관에서 자원봉사하는 학생들도 눈에 띄게 보인다.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있어 적은 인원으로도 도서관이 운영될 수 있는 것이겠지. 일의 특성상 매일 같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아니니 외로움을 타는 사람은 일하기 힘들 것 같아.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새크라멘토 가 3150번지, 현재 도서관이 있는 위치다. 한번 세워지면 특별한 이유가 없는한 계속 운영되는 것이 당연한 일반 도서관과 달리 주인공이 일하는 도서관은 필요에 따라 이사를 가지고 한다고. *책은 직접 가져와야 한다* 24시간 언제든지 열려있는 이 도서관의 업무는 사람들이 가져온 책을 받아 주는 것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이 쓴 책을 가져올수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책이 되는 것이지. 재미난 사실은 책을 가져온 사람들이 다시 방문하는 일은 없다는 것, 그들은 단지 자신이 쓴 책을 맡기려고 도서관을 찾는 것이다.
"우린 스물네 시간 일주일 내내 열어. 절대 닫는 법이 없지." (p.97) 들어오는 책을 받는 일만 한다지만 하루 24시간 자유를 억압당한 채 살아갈 수 있을까? 누군든지 출판되지 않은 글을 써서 가져오면 보관해주는 곳, 이런 꿈같은 도서관이 실제 존재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가며 후기를 읽어보니 '브리우티건 도서관'이 동부 버몬트 주 벌링턴에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도서관이 존재했으면 좋겠어. 굳이 인쇄된 종이책이 아닌 직접 한자 한자 적어 쓴 소중한 책을 받아주는 곳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 욕심은 아니겠지? 그런 곳이 존재한다면 나도 열심히 글을 써서 가져다 맡길테데. |
|
1967년 <미국의 송어 낚시>를 통해 20세기 미국 문학의 거장이란 이름을 알린 브라우티건의 1971년 작품 <임신중절>. '임신중절'이라는 단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이미지를 생각했을때, 조금은 무겁고 안타까운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부제는 어떤 역사 로맨스. 과거의 어느 연인의 사랑 이야기인가?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고,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 이야기가 펼쳐졌다. 우리는 책을 분류하는데 듀이의 십진분류법이나 다른 분류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는다. 도서관 장서 원장에 등록한 다음에는, 그 책을 저자에게 돌려주어 그가 원하는 곳, 또는 그의 필이 꽂히는 서가에 직접 꽂도록 하고 있다. 책은 어디에 두어도 아무 상관 없는 것이, 아무도 그걸 빌려가기 위해 찾아오거나 도서관에 와서 읽어보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는 그런 도서관이 아니다. 이곳은 다른 종류의 도서관이다. p.20-21 주인공 '나'는 31살로 28살 때부터 3년간 도서관에서 일하며 숙식생활을 하고있다. 근무하는 곳은 조금은 특이한 곳. 24시간 책으로 출간되지 못한 원고와 문서를 받아주고, 보관해주는 도서관이다. 지루할법한 생활에 나름 만족을 하며 살아가던 어느날 자신의 신체에 대한 이야기를 쓴 책을 가지고 온 바이다를 만난다. 육감적인 몸매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이 불편한 그녀는 자신의 몸을 증오하고 있다. 첫만남에 책을 보관하며 그녀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둘은 서로 호감을 느껴 연애를 시작한다. “나하고 자고 싶어요?” 내가 물었다. 그리고 바이다는 임신을 한다. 아이를 낳아 키울수 없는 상황이기에 그들은 낙태를 하기로 결정하고, 낙태가 불법이었던 미국과는 달리 낙태가 허용됐던 멕시코 티후아나로 임신중절 수술하러 가기로 한다. 친구에게 도서관을 잠깐 맡기고, 벤과 비행기를 타고 경유해 멕시코에 도착한 후, 호텔에 짐을 맡기고 병원으로 가 수술을 받고 좀 쉬었다 다시 돌아오기까지 단 하루의 여정에 불과했다. 이 짧은 여정으로 인해 '나'의 인생은 바뀌게 된다. 수술 때문에 3년 만에 도서관 밖의 현실세상을 마주한 '나'는 수술 후 다시 도서관에 돌아갔지만, '나'의 자리는 이미 다른 사서로 채워졌다. 잠시 일을 맡겼던 친구가 도서관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다. '나'는 도서관에서 나오게 되고 결국 바이다의 집으로 거처를 옮긴다. 300페이지 정도에 달하는 짧은 소설은 이렇게 끝이 난다. “작가란 누구보다 먼저 주위 사건들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제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무슨 어마어마한 정치적, 문화적 대변인은 결코 아닙니다만, 사회상과 문화에 대한 민감한 반응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회의식이 없는 예술이란, 돈 있고 배부른 귀족들의 사치일 뿐, 결코 인간정신의 고양이나 잃어버린 전원의 회복에는 도움이 될 수 없을 겁니다. -리처드 브라우티건”
책소개 |
|
어떤 역사 로맨스,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임신중절’은 소설의 줄거리를 따라 읽게 된다면, 샌프란시스코의 한 독특한 도서관에서 일하는 남자와 그 도서관에 자신의 책을 기증하러 찾아왔다가 도서관에서 일하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임신을 하게 되지만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아 임신중절 수술을 받고 그 사이에 남자는 도서관의 일자리를 잃게 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는 조금 특이하기는 하지만 별다를 것 없는 연애이야기로 읽을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 생각없이 이 책을 읽어나간다해도 – 바로 내가 그랬으니까 – 책을 읽다보면 저절로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필력을 느끼게 된다.
사실 이 소설이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소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은 생뚱맞은 느낌의 ‘임신중절’이라는 제목은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더구나 제목과는 달리 처음 시작은 도서관에서의 일상을 보여주고 있었고, 정식 사서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사명감을 갖고 24시간 도서관을 지키는 한 남자의 이야기는 그 독특함과 도서관에 기증되는 책들의 내용들로 인해 임신중절을 잊고 단순히 이야기속에 빠져들어가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도서관에 기증되는 책의 내용에 담겨있는 은유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역사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1960년대라면 온갖 차별과 불평등에 반대하는 운동이 있다하더라도 여전히 그곳에는 인종차별, 남녀차별이 존재하고 동성애가 죄악시되며 금지되고 있었고 임신중절도 불법이었으며 이 모든 내용들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소설의 줄거리와는 별개로 그때부터 책을 읽는 내내 문장에 담겨있는 은유와 블랙유머로 인해 이 짧은 소설을 생각보다 길게 읽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렇다고 문장에만 그런 은유가 담겨있다고 이해를 하면 안된다. '임신중절'은 그 줄거리 자체에도 하나의 맥락처럼 은유와 블랙유머가 담겨있어서 책을 다 읽고 나면 왠지 이런 문학이 바로 리처드 브라우티건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버린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사회의식이 없는 예술이란, 돈 있고 배부른 귀족들의 사치일 뿐, 결코 인간정신의 고양이나 잃어버린 전원의 회복에는 도움이 될 수 없을 겁니다."라는 그의 말을 통해서도 그가 그의 문학작품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말하려고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과 그 의미를 말한다면 왠지 별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그 의미심장함만을 찾으며 심각해질지도 모르겠지만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글을 접해본 이들에게는 특별한 언급이 없어도 이 책을 읽게 될 것이고, 혹 그를 모른다고 한다면 그의 작품은 실제로 읽어보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하고 싶다.
이 책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다양한데,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도서관에 기증된 도서의 작가로 브라우티건이 등장하는데, 실제로 이 도서관의 정신을 기리며 출간되지 못한 모든 책의 원고와 문서를 기증받아 설립된 브라우티건 도서관이 있다고 한다. 왠지 조금 더 멋있어보이는 건 그동안 내가 틀에 박혀 살아왔기 때문일까?
어쨌거나 여러의미에서 브라우티건의 작품은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
리처드 브라우티건, 김성곤 역, [임신중절 - 어떤 역사 로맨스], 비채, 2016. Richard Brautigan, [THE ABORTION : AN HISTORICAL ROMANCE 1966], 1970. 미국에서 1970년에 발표한 한 권의 소설, 아주 특이한 도서관의 사서와 육감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의 사랑과 임신 그리고 멕시코에서의 낙태 이야기는 이것을 기념하여 실제로 버몬트 주 벌링턴에 브라우티건 도서관을 세웠다고 한다. 책으로는 출판하지 않은 원고를 받아 보관하는 매우 특별한 도서관이다. "작가란 누구보다 먼저 주위 사건들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제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무슨 어마어마한 정치적·문화적 대변인은 결코 아닙니다만, 사회상과 문화에 대한 민감한 반응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회의식이 없는 예술이란, 돈 있고 배부른 귀족들의 사치일 뿐, 결코 인간정신의 고양이나 잃어버린 전원의 회복에는 도움이 될 수 없을 겁니다." _리처드 브라우티건(p.9) 작가가 사회문제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말은, 소설은 단순히 언어의 나열이나 오락적 유희가 아니라 나름의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뜻인듯싶다. 이것을 뒤로하고서라도 작가의 상상은 어디까지일까? 책을 좋아해서 일상에서 자주 마주하는 도서관을 기발한 장소로 바꾸고, 그곳을 찾는 각양각색의 사람과 기이한 저작은 눈길을 끈다. 하지만 사랑의 행위만큼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또 있을까? 하루 스물네 시간, 일주일에서 칠 일을 도서관에서 사는 세상 물정 모르는 나와 어려서부터 자신의 신체 발육을 불편하게 여기는 바이다의 사랑놀이는 이것을 엿보는 관음증과 에로티시즘을 불러일으키고, 탐미주의에 빠지게 한다. 작가는 여기에 시대를 향한 메시지를 담는다. 이제 책을 등록할 시간이었다. 우리가 받는 책은 모두 도서관 소장 도서 원장에 등록한다. 거기에는 매일, 매주, 매달, 그리고 매해 우리가 기증받은 책의 목록이 다 들어 있다. 그 책들은 모두 원장에 기록된다. 우리는 책을 분류하는데 듀이의 십진분류법이나 다른 분류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는다. 도서관 장서 원장에 등록한 다음에는, 그 책을 저자에게 돌려주어 그가 원하는 곳, 또는 그의 필이 꽂히는 서가에 직접 꽂도록 하고 있다. 책은 어디에 두어도 아무 상관 없는 것이, 아무도 그걸 빌려가기 위해 찾아오거나 도서관에 와서 읽어보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는 그런 도서관이 아니다. 이곳은 다른 종류의 도서관이다.(p.20-21) 도서관은 샌프란시스코 지진 후에 세워진 노란 벽돌 건물로,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새크라멘토 가 3150번지에 있었다. 비록 우편으로는 책 기증을 받지 않았지만, 어쨌든 주소는 그랬다. 책은 직접 갖고 와야 했다. 그게 이 도서관의 규정 중 하나였다.(p.23) 공식적으로 사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서른한 살의 남자와 늘 사람들이 성적인 관심을 보인 커피를 잘 끓이는 스물한 살의 여자는... 모든 행위에는 결과가 따르듯이 뜻하지 않은 임신, 아니 아직 준비되지 않은 임신으로 당황한다. 대부분이 그러하듯 이들도 같은 선택을 하는데, 당시 미국은 낙태 시술이 불법이라서 멕시코로 가야만 한다.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샌디에이고에 도착, 국경을 넘어 티후아나로 가는 길은 마치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신들의 여정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다른 여자가 아무리 예뻐도 내 여자만큼은 아니다. 작가는 이것으로 세상이 아무리 좋게 변한다고 해도 지금의 내 삶만큼은 아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나 보다. 바이다 크레이머의 외모는 남자들 사이에 혼란을, 여자들 사이에 분노를 일으킨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이 쓴 [무스]. 저자는 장신에 금발이었으며,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을 주는 긴 노란색 콧수염을 달고 있었다. 그는 다른 시대에 속한 사람처럼 보였다. 이 책은 그가 가져온 세번째인가 네번째 작품이었다. 매번 책을 가져올 때마다, 그는 좀 더 나이 들어 보였고 좀 더 피곤해 보였다. 첫 책을 갖고 왔을 때는 꽤 젊었었다. 책 제목은 생각이 안 나지만, 내 기억에 미국하고 관련이 있었던 것 같다.(p.29) 소년은 버킷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가 화장실에 가서 태아와 기타 수술 잔여물을 좌변기에 넣고 물을 내렸다.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가 난 후, 나는 수술기구를 불에 소독하는 소리를 들었다. 오늘 멕시코에서는 물과 불로 행하는 고대의 의식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었다.(p.193) 책의 기증자 사이에 등장하는 저자는 세 번째인가 네 번째 작품을 주고 간다. 멕시코에서는 그날 세 여자가 임신중절수술을 받는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은 이 책을 쓰기 전에 세 권의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것이 빛을 보았는지 아니면 변기 속으로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기의 이야기를 작품 속에 투영하고 있다. 번역자는 이 소설을 '잃어버린 목가적 꿈과 기계문명 속 메마른 현실에서 좌절하는 현대인의 이야기'(브라우티건 도서관의 뜻을 기리며 p.233)라는 틀에서 보는데... 세상하고 단절된 도서관은 전원에서의 삶을 의미하고, 도서관에서 나와 쇠로 만든 자동차와 비행기 그리고 수술 도구를 사용해서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는 낭만적·목가적 꿈의 상실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럴듯한 해석이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의미나 상징을 찾기보다는 이야기 자체에 초점을 두었는데,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비교하여 정신적인 빈곤에 허덕이는 시대라서 굳이 의도하지 않았어도 시대정신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장르소설을 패러디했다고 하지만, 세월의 흐름은 이마저도 고전의 반열로 끌어올린다. |
|
임신중절. 낙태라는 한자어로 쓰이기도 하는 이 단어는 아이를 가졌지만 어떠한 이유로 아이를 낳을 수 없어서 아이를 지우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볼 것이냐에 따라 이 임신중절에 관한 문제는 살인과도 연결이 되어지는데 그런 이유로 나라별로 임신중절에 관한 법이 저마다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으로 되어 있으며 정당한 이유가 있을때만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제목만으로도 한없이 무겁게 느껴지는 '임신중절'이라는 책은 단순히 이 행위보다는 오히려 한 사람의 인생에 슬며시 끼어들어서 그가 어떻게 이런 행위를 하게 되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그러므로 인해서 이 행위 자체만으로 책의 전체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지 않는다. 소재도 독특하고 배경도 독특한 작가만의 독특함이 살아있는 책이다.
도서관에서 숙식을 하며 일을 하고 있는 '나'는 이곳이 좋다. 도서관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곳이 아니다. 24시간내내 언제든, 사람들이 원고를 가지고 오면 받아서 보관을 하는, 출간되지 못한 원고들의 보관소이다. 나이에 구분없이 어떤 책이라도 자신이 쓴 글을 가져오면 이름과 제목을 적고 자신이 원하는 곳에다 두면 그것으로 끝이다.
궁금해진다. 이 도서관을 운영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왜 이런 것을 모으는지 말이다. 이 도서관에 관한 설명은 그것 뿐 어떤 다른 이유도 주어지지 않는다. 도서관은 책들이 넘치는 것을 대비해 지하저장공간이 따로 있다. 그곳을 관리하는 포스터는 가끔씩 나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어느날 밤 자신이 쓴 책을 가져온 바이다를 만난다.
자신의 몸에 관한 책을 썼다는 그녀는 나에게 자신의 몸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날부터 친해지게 되고 나의 여자친구가 된다. 이쯤 되면 제목이 의미하는 바를 알게 된다. 그렇다. 바이다는 아이를 가졌고 아직 어리고 준비가 되지않은 그들은 임신중절을 하기로 계획하고 포스터에게 도움을 구한다.
'바이다'라는 존재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자. 그녀는 어딜 가나 남자들의 주목을 받는 몸을 가졌다. 남자들은 한번만 봐도 그녀에게 홀리기 일쑤이며 그것은 나이가 많던 적던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녀를 보고 지나가다 사고를 내는 것은 예사로 있는 일이며 어떤 예쁜 여자가 있더라도 바이다 옆에만 가면 흔한 말로 '오징어'로 변한다.
그녀가 얼마나 이쁘길래 그럴까. 이쁘다는 것보다는 오히려 뛰어난 몸매를 부각시킨다. 그녀는 그것을 싫어하고 신경을 쓴다. 나는 그녀가 아주 좋은 몸을 가졌다는 것을 안다. 사람들이 그녀를 쳐다보는 것도 안다. 그러나 그렇게 크게 개의치는 않는 듯 하다. 작가는 바이다를 왜 이런 존재로 만들었을까. 그냥 평범한 여자가 아닌 뛰어난 여자로 만든 이유는 평범한 '나'라는 존재에 상응하는 존재를 만들고 싶었던 것일까.
책이라는 비행기를 타고 영원의 페이지를 날아다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78p)고 한 나의 이야기는 어쩌면 도서관에 갇혀 버린 나의 인생을 나타내는 것일수도 있다. 포스터가 주장하듯이 말이다. 나는 도서관에서 돈도 받지 않고 일절 밖에 나오지도 않았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오직 그 곳에서만 박혀서 살아왔다. 그것도 삼년동안 말이다.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런 관심도 없었던 것일까? 나라는 존재는. 아무리 언제 누가 원고를 가지고 올지 모른다고 해도 가끔씩은 나와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일까? 사람들이 매일같이 줄을 지어서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분명 시간은 아주 많았을텐데 그 나머지 시간에 나는 무엇을 하고 지낸걸까. 혹시 거기 있는 책들을 읽었으려나. 사람들이 저마다 가지고 온 원고들을 읽으면서 책 속에서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닐까. 한참을 책에 빠져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여기는 현실이고 시간이 몇년씩이나 지나버렸다는 그런 이야기가 비단 이야기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는 중절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은 도서관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온 나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도서관에서 행복함을 추구하던 나. 여자친구의 수술로 인해서 삼년만에 밖에 나오게 된 나. 그리고 하루동안의 일탈이 불러온 바뀌어 버린 나의 생활. 나는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가게 될까? 임신중절을 계기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