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대 배경은 춘추 전국시대이다. 이 시기는 봉건제도가 해체되고 중앙집권체제가 형성되어가는 과도기적 시대이다. 춘추시대는 서주 이래의 제후국이 140여 개나 존속하였으나 전국시대에 들어와서는 강국이 약국을 병합하고 하극상까지 심화되어 마침내 진(秦)·초(楚)·연(燕)·제(齋)·한(韓)·위(魏)·조(趙)나라들의 전국칠웅(戰國七雄)으로 재편되었다. 각 군주는 왕을 자칭하고 영역을 통치할 관료기구를 정비하였으며, 부국강병을 위한 인재등용에는 출신 성분을 가리지 않았다. 또 탈취한 지역에 군(郡)을 두어 다스렸는데, 이것은 군현제(郡縣制)로 발전하였다. 그 가운데 서쪽의 진(秦)나라는 위(衛)나라 상앙의 변법(變法)을 빌려 적극적인 정치개혁을 펴나가는 한편 동쪽으로 진출, 마침내 BC 3세기 초 천하통일에 성공한다. 합종연횡은 전국시대의 최강국인 진(秦)과 연(燕)·제(齊)·초(楚)·한(韓)·위(魏)·조(趙)의 6국 사이의 외교 전술이며 지금도 흔히 사용되는 용어이다. BC 4세기 말 여러 나라를 유세하고 있던 소진(蘇秦)은 우선 연에게, 이어서 다른 5국에게 '진 밑에서 소꼬리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닭의 머리가 되자'고 설득하여, 6국을 종적(縱的)으로 연합시켜 서쪽의 강대한 진나라와 대결할 공수동맹을 맺도록 하였다. 이것을 합종(合從:從은 縱)이라 한다. 뒤에 위나라 장의(張儀)는 합종은 일시적 허식에 지나지 않으며 진을 섬겨야 한다고, 6국을 돌며 연합할 것을 설득하여 진이 6국과 개별로 횡적 동맹을 맺는 데 성공하였다. 이것을 연횡(連衡:衡은 橫)이라고 한다. 그러나 진은 합종을 타파한 뒤 6국을 차례로 멸망시켜 중국을 통일한다. 굴원은 초나라 왕실의 성씨를 이어 받고 그 학문과 인품을 회왕(懷王)에게 인정받아 왕에게 변법(개혁)을 시행해야 한다고 하였으나, 기득권 세력이었던 귀족의 이익에 반하는 일임에 간신들의 참소로 내쳐짐을 당하고 세번에 걸쳐 귀양살이를 하였으나 마지막 귀양살이에서 자진하고 만다. 굴원은 합종으로 진나라를 경계해야 한다는 친제파인 반면에 조정의 대신 대부분은 연횡을 주장하는 장의의 계략에 넘어간 친진파였다. 어리석은 회왕은 끝내 굴원의 상소를 무시하고 간신배와 애첩의 꼬임으로 많은 전술 전략적 실수를 저지르게 되고 종국에는 화친회담의 함정에 빠져 진나라의 볼모신세가 되고 만다. 뒤를 이은 경양왕(頃襄王)도 마찬가지였다. 백성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과 국력 신장을 위한 충언이 간신배가 휩쓸고 있는 조정에 전달되고 시행될 리가 만무했는데, 당시 상황을 「어부사」에서 중취독성(衆醉獨醒, 모두 취하여 있는데 홀로 깨어 있다)이라 말하며 시대의 어리석음을 한탄했다.
또한 어부사에서 등장하는 유명한 싯귀가 있다. 어부가 듣고서 빙그레 웃고는 돛대를 올리며 가면서 노래하길 '창랑의 물결이 맑을 때라면 이 내 갓끈 씻을 수 있고, 창랑의 물결이 흐릴 때라면 이 내 발이나 씻어보리라.' 마침내 가 버리곤 말이 없구나. 이 책에서는 굴원의 시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끊임없는 애국 애족정신을 실천하려 애썼으나 난세의 광풍에 휘말려 희생된 굴원의 일대기일 뿐이다. 이를 바탕으로 굴원의 글을 읽는다면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