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는 신화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우리의 내면의 깊은 우물을 신화라는 말로 포장하는 것이 아닌가 싶싶다. 어쩌면 나의 내면 그 깊은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분석해내고 해석해내는 작업이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이 책을 보면서 신화를 보면서 맞다는 확신이 들게 된다.
세계가 생겨난 이야기, 우리나라의 단군신화등을 읽으며 내 내면속의 은밀한 비밀을 깨달아가는듯도 하고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마음속을 그려내는 듯도 하다.
심리학 책들을 읽다보면 청소년기에 부모님으로부터 떠나는 작업이 청소년들에게는 꼬옥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 말이 사실이라는 듯이 두 번째 천지창조에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에덴동산에서 하느님의 보살핌을 받고 평화롭게 아무런 고민없이 살다가 하느님이 절대로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은후 아담과 이브는 평온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는 것이 청소년기와도 닮아있다. 저자는 창조의 계기는 하늘에서 독립하려는 인간의 읮, 그리고 신과 같은 능력을 갖겠다는 원초적 비전이라고 말하고 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우리가 많이 들어왔던 이야기 역시 신화속에 담겨있다. 5세기 한반도 신라의 비처왕인 정자로 나았가다 까마귀와 쥐를 만나게 된다. 쥐가 사람인 왕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까마귀를 따라가라." 왕이 기병에게 시켜 따라가니 돼지 두 마리가 싸우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연못이 있었는데 한 노인이 연못 속에서 나와 왕에게 봉투를 준다. 그 속에는 왕에게 아주 중대한 문제를 해결할 만한 단서가 쓰여있었다. 이렇듯 동물들은 사람들과 이웃하여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야 하는 것을 깨닫게 하는 글이다. 지금의 우리삶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다.
신화를 보는 것은 역사를 알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과학속에 갇혀서 우리의 내면에 숨어있는 보석을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다. 마치 기억 상실증에 걸리 사람이 갇고 있는 내면의 상처. 그 상처를 대면한다는 것이 고통스러워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기억하지 못하는 방법을 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진정한 내면의 성찰을 통해 내 내면이 치유될수 있다는 것을 신화를 읽으면서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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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은 책을 출판하셨네요 저는 고등학교 추천도서로 학교에서 추천해 주어서 이것을 계기로 읽게 되었는데 아들이 정말 꼭 읽어야 될 책이라는 말에 저도 읽게 되었는데 정말 좋은 책이네요 지금 책 때문에 고민하시는 분이나 또 어떤 책을 선물할 지 고민하시는 분 이책 선물하시면 후회없으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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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역사를 흔히들 이성의 힘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고 여긴다. 무정형 신의 지배를 받던 세상이 인간 이성의 영향력 하에 놓이게 되면서 우리는 많은 부분 예측가능한 형태의 삶을 살게 되었다. 그렇지만 현대에 들어서면서 각 분야의 학자들은 틀에 박힌 인간 이성의 한계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 등이 다시금 주목을 받게 된 데에도 이와 같은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답만을 강요 받는 분위기 하에서 성장해서인지 나는 아직까지 신화에 대해 크게 감동을 한 적이 없다. 인간과 흡사한 모습을 했고 인간마냥 시기, 질투하고 사랑의 감정도 느끼는 신이라니… 오히려 신화를 접할 때마다 난 인간 상상력의 위대함에 대해 떠올리고는 했었다. 괴물, 요정, 천사 등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묘한 존재들의 등장도 신화가 허무맹랑한 무언가처럼 여겨지는 데에 한 몫 톡톡히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지만 단순히 흥미진진하기만 했더라면 신화는 이토록 긴 시간 동안 전승되기 힘들었을 거다. 많은 이들이 익히 말하듯 신화는 우리 인간의 뿌리를 엿볼 수 있는 많은 단서를 간직한 이야기이기에 그 생명력이 긴 것은 당연하다. 하기에 신화에 관심을 갖고 더 나아가 각 이야기가 내포하는 바를 이해하는 것은 곧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와도 직결될 수 있다. 지구 상에 참으로 많은 민족들이 모여 사는 만큼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야기들이 많이 떠돌고 있으리라 짐작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동서양의 많은 신화들을 접하면서 나는 ‘인간’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공통분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제 방에 앉아서도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와 대화할 수 있는 오늘날엔 개성 못지 않게 획일성 역시 강요될 수 있다. 헌데 과거에는 오늘날과 같은 활발한 이동도 불가능했을 터이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인류는 교류가 부족한 상태에서도 이처럼 닮은 꼴의 이야기를 토해냈단 말인가? 문화는 서로 다르나 생을 향한 의지만은 닮았기 떄문일지도… 아무튼 닮은 꼴을 하고 있는 신화였기에 작가는 좀더 수월하게 다양한 신화를 이 책에 수록할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 세상은 세분화되어 있다. 하나의 우물만을 진득하니 파길 바라는 사회 분위기 하에서는 서로 다른 속성을 지닌 두 집단간의 교류가 힘들다. 하지만 태초의 세상은 현재처럼 확실한 경계선이 존재치 않았다. 오히려 인간은 인간 외의 존재들과도 대화를 했다. 자연이 이야기하는 바를 들을 수 있었고, 반대로 자연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던… 어느 한 쪽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 다른 쪽이 나서 제 일마냥 돕고 도움을 받았던, 우리 조상들의 삶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인간의 오만함 때문인지 현대로 오면서 인간은 제 타고난 능력을 완벽히 상실하기에 이르렀다. 한 때 한 몸처럼 사랑했던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외면할 수 있게 되었고, 심지어는 무책임하다 싶을 정도로 제 삶을 터전을 스스로 파괴하는 누를 범하기까지 했다. 인간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 버린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만끽할 수 있는 다채로움을 복잡함이라며 폄하했다. 그것이 타고난 바요, 자연스러움임을 알지 못하니 좌절했던 것은 당연하다. 복잡계는 이해하기 어렵다거나 다양한 것이 뒤섞여 있다는 점 때문에 복잡한 게 아니다. 서로 무관한 것, 주요 원인-주요 결과의 단순 구도에 포함되지 않는 숱한 요인들이 하나의 사건에 그물처럼 얽혀 그 사건의 전개와 귀결을 돕고 있다는 뜻이다. 나아가 하나의 요인에서 출발하여 복잡 그물을 통해 전개된 사건은 하나의 결과만 낳는 것이 아니라 여럿의 결과를 낳는다는 뜻이다. 이는 열린계, 복잡계의 작동 방식이다. –p312 각 사회가 품어온 신화 속에는 열린 사회가 잠들어 있었다. 열린 사회 속에서는 하나의 불균형이 탄생하면 연쇄적으로 모든 것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이는 마치 하나의 종이 파괴됨에 따라 생태계 전체가 교란되는 것과 유사하다. 변화에의 민감함, 이야말로 살아있는 사회라면 으레 갖춘 특성이다. 신화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 사회에도 적용되는 엄밀한 법칙인 것이다. 그렇기에 우린 신화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 안에 우리가 따라야 하는 길이 있기에, 그 사실성 여부를 의심하는 것은 다음 단계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바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