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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난 황진이를 떠올린다. 교과서에도 수록된 그녀의 시는 유려한 문장과 풍부한 함축으로 인해 그녀의 지적 능력이 얼마나 드높았던지 짐작을 하게 해 준다. 비단 그녀만이 아닐 것이다. 비록 신분 계층을 놓고 보면 가장 밑부분에 속하는 게 기생이었지만 숱한 양반들과 풍류를 논하고 시, 그림, 춤 등 각종 예술 활동에 끊임없이 참여했던 걸 보면 그에 합당한 능력을 소유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기생에 대한 사고는 고정되어 있다.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직업, 남자를 호리는 데에 적지 않은 에너지를 투자하는 가벼운 여자들 즈음으로 많은 이들이 기생을 생각한다. 1908년 대한제국 시기에 궁중 관기가 해체된 이래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직접 기생을 경험한 이가 아직까지 살아 있을 확률은 극히 드물다. 고맙게도 이 책에는 이미 이 세상에서 만나볼 수 없는 기생에 관한 기록들이 가득 수록되어 있었다. 비록 엽서 한 장이지만 이를 통해 나는 그녀들의 삶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엽서는 시대를 담고 있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기생 역시 우리의 전통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는 듯해 보였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그녀들은 전통적인 한국미를 고루 갖추고 있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 곱게 빗어 넘긴 머리. 굳이 꾸미지 않아도 아름답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 있는 것이겠지? 그녀들은 길게 땋은 머리를 하고는 둥글게 둘러 앉아 가야금, 아쟁, 해금, 소금 등의 악기를 연주했다. 이제는 특별한 장소에서나 볼 수 있는 검무, 사자무, 학무 등도 그들에 의해 부족하나마 전승, 보전되었다. 예악문화의 실현자이자 종합예술가들이라는 저자의 말이 허튼 게 결코 아니었다. 게다가 그녀들은 남들보다도 앞서 있었다. 1920년대 초반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서양춤에도 그녀들은 능했다. 한복의 스타일이 바뀌듯 기생들 역시 변화했다. 다소 짙은 화장을 하나 둘씩 하기 시작했다. 대중의 요구에 끊임없이 부응하지 못하면 도태되고 마는 게 오늘날 연예계이듯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한 일인(日人) 남성들의 기대치를 충족해야만 했던 탓이 클 거다. 그렇게 그녀들은 자의라고 할 수 없는 과정을 거치며 기생이라는 이름을 서서히 벗고 스타가 되었다. 대중스타로 부상한 왕수복, 오늘날 연예인은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괜찮은 직업으로 많은 이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자신의 자녀가 연예인이 되겠다는 의사를 비추면 과거와는 달리 많은 부모들이 그 뜻을 부지런히 밀어준다. 하지만 여전히 기생의 이미지는 그리 좋지가 못하다. 감출 수 없는 끼를 소지했을 뿐만 아니라 그 끼를 드러내기 위해 다방면을 갈고 닦았을 그녀들의 명예회복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사진의 힘은 위대하다. 고인이 되었을 그녀들이 젊은 적 고운 모습을 하고 내 앞에 서 있는데, 먼 훗날 지금의 나도 후대의 사람들에게 그렇게 다가가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