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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님이 쓴 리뷰글 너무 공감백배다. 불교인들은 불교를 왜 잘모를까 교회다니는 사람이나 성당 다니는 사람은 성경공부하면서 잘알면서... 불교내용을 다루지만 불교인이나 비종교인이라 상관없이 읽어볼만한 추리소설 다빈치코드를 즐긴자라면 불교계의 다빈치코드를 권하고 싶다 불교용어가 나와서 좀 읽는데 어렵지만 각주가 있고 중반부로 갈수록 흥미진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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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사천왕상이 늘 절 들어가는 입구에 있어서 무서워 했다. 그래서 절은 거의 가지 않았다. 수학 여행때라거나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산도 다니지 않는지라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그 눈이 튀어나와 마치 나를 잡으려고 달려들 것 같은 모습은 생생하다. 왜 절 입구에 그런 배치를 했을까 의문이다. 부처님께 절을 해본 적도 없다. 석가모니께서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실 때 사람들의 마음에 두려움을 먼저 안겨주고자 하셨을까 의문이 든다.
영락사라는 절에서 불교미술을 전공하다 마찰을 일으켜 쫓겨난 현인호는 속세 친구였던 현담 스님의 부탁으로 수련생들에게 강의를 하게 된다. 그런데 스님들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거기다 그가 믿고 의지하며 찾아뵙던 홍제 스님까지 이상한 그림만 남기고 사라지셨다가 살해된 채 발견된다. 이미 절에는 그 전에도 사건이 있어 전직 경찰이 조사를 진행중이었다. 절의 일이라 경찰에 알리지 않고 내부에서 쉬쉬하는 모양새가 인호는 마땅치 않은데 자신이 찾아야 하는 그림이 있어 살인범을 쫓게 된다.
주인공 현인호를 통해서 작가는 가장 청렴해야 할 곳이라 믿는 학교와 사찰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대학에서 교수가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다. 줄도 잘 서야 하고 백도 있어야 하고 아니면 돈이라도 들여야 한다고 하는 세상이다. 교수만 되면 연구를 어떻게 하든 논문을 표절하든 아무리 말썽이 생겨도 그때뿐이고 여전히 그들의 세상은 그들 방식으로 돌아간다. 마찬가지로 절까지 그렇게 되어 버렸다. 여기에서 변해버린 인물로 현담이 현인호와 대립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절에 사람이 많이 와서 불전함에 돈만 쌓이면 된다는 식의 생각, 자신들의 절에서 총무원장이라든가 종단에서 일할 스님이 나와야 한다는 이유로 살인도 숨기기에 바쁜 이들에게서 부처님의 대자대비한 말씀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작가는 이것을 추리소설이라는 형식으로 비판하려 한 것인 모양이다.
우리가 불교를 믿었던 세월이 얼마인지를 생각하면 길어야 이백여년도 안된 기독교에 너무 몰입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자에서도 멀어졌다고는 하나 어찌되었든 한자 문화권인데 영어보다 한자가 더 어렵게 느껴지고 기독교적인 내용은 책을 통해 많이 접해 익숙한 반면 불교적인 내용과 글귀는 낯설고 읽기조차 힘들었다. 종교를 떠나 문화와 전통이라는 것이 너무 몰인정하게 쉽게 내쳐지는 것 같아 읽는 동안 내 스스로의 모습에서 실망감과 안타까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영락사라는 절과 그 절이 있는 주변의 한정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 작품이지만 고립된 것도 아니고 그 안의 인물들만으로 구성된 것도 아니니 추리소설에서 말하는 클로즈드 서클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추리소설적 개념보다 불교라는 종교, 속세를 떠난 스님들이 사는 스스로가 사회와 단절과 고립을 선택한 폐쇄성이라는 점과 깨달음이라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에 대한 이야기가 독자를, 독자의 생각을 가두는 역할을 하는 정신에 대한 클로즈드 서클, 스스로가 알아야 한다는 것에 대한 갇힘에 대해 추리적 소재로 삼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생각을 종교와 사상으로 가두는 이들에 대한, 그리고 박노자의 말처럼 그것을 화석화시키는 것에 대한 반발적 심리를 다룬 작품이라고 또한 말하고 싶다.
작품은 작가가 첫 작품이라고 말하는 것과는 달리 괜찮았다. 어려운 용어만 덜 쓰고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불교적 용어를 이해하기 쉽게 썼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형식적으로 작품 속에 여러 간략한 장자의 이야기라던가 석가모니의 이야기, 또 김명도의 이야기와 작품 속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 영락사의 몰락을 담은 이야기가 소소한 재미를 주며 눈길을 끈다. 책의 제목처럼 한 방울의 물을 마르지 않게 하는 법이 종교적으로만 거창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작가의 글이 물처럼 마르지 않게 독자가 그를 지켜줬으면 좋겠다는, 그런 면으로도 접근해보면 어떨까 싶다. 모처럼 괜찮은 추리소설이 등장했으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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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처음에는 불교에 대해서도 잘모르고 그래서 이 책은 재미가 없겠구나 생각하고 기대하지않고 책을 읽었습니다. 초반부에는 불교에 대해서 나오는 것이 너무 내용이 어렵고 무슨내용인지 잘 모르겠어서 애를 먹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중반부로 갈수록 재미 있어지더군요 불교를 잘 알고 있던 잘알지 못하던 책안에서 좀더 알수있게 되고 흥미로웠어요.. 범인을 잡기위해서 많은 것들을 풀때에는 외국작품 못지않게 재미있고 아 이런것도 있었구나 싶었던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그다지 재미없을 줄 알았지만 점점 읽어갈수록 빠져가고 기분좋게 마지막장을 넘길수 있었던것같습니다. 꼭 권해 드리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다만 불교에 대한 설명이 많아 싫어 하시는 분은 싫어하실것같아요 하지만 저는 그런설명들을 통해 불교를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된것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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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읽은 후 한동안 '중세 카톨릭'을 배경으로 한 추리 소설에서 벗어 나지 못했다. 에코 뿐만 아니라 그의 아류작까지 섭렵을 하다가 다빈치 코드에서 그 장대한 전성기를 맛보았다.
얼마 전에 산사에 다녀와서 그 때의 감흥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불화를 소재로 한 추리 소설이라는 문구에 아무 생각없이 책을 집어 들었다. 세월을 이긴 산사의 건축물과 나무를 보고 있자면 그곳에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요즘 불화에 관심을 두고 절에 갈 때마다 유심히 보고 있었기에 이 책을 발견한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소설의 내용처럼 우리는 서양 미술사에 대해서는 훤히 꿰고 있으면서 우리그림에 대해서는 정말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서양화의 대작들이 결국은 기독교적 종교화이다. 그러나 나는 그 그림들을 볼 때 종교적인 의미보다는 미학적인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탱화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종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종교적 신념도 중요하겠지만 단지 예술품으로서도 충분히 감상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불화와 함께 불교 자체에 대해서도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려고 시도한 것 같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이미 많이 이야기되어 왔던 것에서 더 많이 나간 것 같지는 않다. 한권의 책 분량으로 불화와 불교 자체를 논하는 추리 소설을 쓰기에는 책이 짧은 것 같다.
책을 읽어 가면서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몇 년전에 읽은 '단테클럽'이다. 중반부에는 '다빈치 코드'가 후반으로 가면서 생각나는 것은 '장미의 이름'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생각난 것은 뜬금없게도 30년 전에 읽은 '독일인의 사랑' 마지막 부분이다.
그리고 이왕 불화를 소재로 소설을 쓸거면 '지옥도'보다는 수월관음도나 아미타여래도, 관경변상도 같은 그림을 소재로 하면 국제관계나 문화재 약탈 등 더 재미있는 글이 나올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