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 잉여인간의 수상한 발걸음
한 남자가 남자를 쫓는다. 비가 오는 날이면 정확히 아침 9시에 '슈퍼' 문을 닫고 밖을 돌아다니는 사람을 쫓아 그(부코스키)를 몰래 미행하고 있다. 언뜻 들으면 '섬뜩한' 이야기는 소설 <부코스키가 간다>의 중심 사건. 부코스키를 쫓는 이는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백수 '나'와 그에게 우연히 얹혀 살고 있는 애인 비슷한 여성 '거북이'다.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 평범한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첫장부터 시큰퉁했지만 눈은 의지와 달리 활자를 쫓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활자를 따라 미행에 참여하고 있었다. 신예 작가 한재호의 소설 <부코스키가 간다>이다.
특별한 날이 생기면 오히려 이상한 백수의 하루에 우연히 끼어든 소문은 '비가 오는 날이면 가게 문을 닫고 나가는 남자' 였다. 누가 시킨 것도 딱히 궁금한 것도 없었지만, '나'는 그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런 이가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를 추적하게 된다. '나'의 집에 얹혀서 기생생활을 하는 애인 비슷한 여자 '거북이'는 추임새를 놓듯 호기심만 북돋으며 '오랜만에 얻은 나의 일'에 동참한다. '별 희안한 놈도 다 있다'며 비웃었지만, 딱히 할 일도 없는 백수라면 나도 그럴껄? 하는 동조감도 교차했다. 눈은 여전히 작가 한재호의 글을 미행하고 있었고...왜냐고? 궁금하니까.
'나'는 부코스키를 왜 쫓고 있을까? 그는 백수이기 때문이다. '노느니 염불한다'고 했던가? '할 일'이 없는 그는 스스로 할 일을 만들었다. 늘 변함없이 구직생활을 하고 있는 '나'지만 늘 그렇듯 '합격소식'은 없다. 그에게 구직활동은 습관이 되었다. 그래서 희망도 긴장감도 없다. 무료함이 일상이 된 백수인 '나'에게 '부코스키'라는 인물의 이력은 귀에 감기는 이름이요, 다른 별나라 사람의 행동이다. 이제 사실을 밝히는 것은 그의 당면과제가 되었고, 누가 시키지도 돈도 주지 않지만 그를 쫓기 시작한다. 급기야 그가 가게 문을 닫는 비가 오는 날을 기다리게 된다.
'나'와 함께 부코스키를 쫓으면서 일하는 인간, 호모 에르가스터Homo ergaster 가 되고 싶은 백수'의 욕망을 엿본다. 그가 부코스키의 정체를 추적함은 이력서를 기업에 던지고 채용소식을 막연히 기다리는 것보다 즐겁고, 스스로의 힘으로 밝혀낼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스스로' 답을 구하려고 하는 의지는 청년백수가 가진 마지막 자존심은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익히 알고 있는 서울의 번화가를 걷는 그들을 쫓음은 눈에 보이는 듯한 사실감도 있었고, '나'를 쫓아가는 또 다른 한 사내는 독자인 나 같아서 약간의 스릴이 따랐다.
이 소설은 백수소설이다. 2000년 이후부터 [백수소설]이 우리 문학의 한 장르로 자리잡고 있는데, 문학평론가 황종연은 "민주화 이후 한국에 양산되고 있는 빈곤층을 포함한, 새롭게 형성된 하류사회의 정치적 무의식의 한 표상일지도 모른다"고 말하며 백수소설을 '신빈곤층 문학'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부코스키를 붙잡고 '당신은 왜 비만 오면 9시에 밖을 나가는가'하고 직접 물음직도 하고, 그를 끝까지 추적해서 밝혀낼 수도 있건만 오히려 '사실'을 알게 되면 더 이상의 '일'은 없어질까 그냥 추적하는 과정을 즐기는 듯한 '나'를 따르며 무력감과 답답함을 느꼈다. 부코스키의 정체가 아무것도 아니었다면 어쩔려고? 라고 묻는다면 '아니면 말고'라는 식의 사보타주같은 푸념이 그의 행동과 대화를 통해 전해졌다.
읽으면서 손창섭의 '잉여인간'이 계속되서 오버랩되었다. 자기 현실에서 제대로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쓸모없는 인간으로 간주하여 외면하는 현실세태를 역설적으로 비판한 작품이 '잉여인간'이라면 이 시대에 일하지 못하는 젊은 청춘들을 시니컬하고 격하게 표현한다면 21세기의 잉여인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독자로 하여금 다른 생각 못하고 또 다시 '나'를 미행하게 하는 작가의 흡인력이 돋보인 작품이었다. 비오는 날 아침 9시면 이 소설이 생각날 것 같다.
|
|
나비 첫눈상? 상 이름 한번 참 예쁘다. 첫 책을 출간한 신인 작가들 중 독자의 관심을 많이 받은 저자에게 수여하는 나비 첫눈상, 첫 번째 수상자가 한재호이다. 제2회 창비 장편소설상을 수상한 작가 말이다. 그의 공식적인 첫 작품이 궁금해진 건, 그 ‘첫’에 있다. 내 손에 들어온 <부코스키가 간다>를 펼치자마자 깃털 같은 가벼움이 반긴다. 경쾌한 리듬으로 다 읽고 덮자, 가벼움이라고 믿었던 무게가 실은 은근히 묵직하다는 것을 알겠다. 독자에 따라 다르겠지만 검은 우산으로 상징된 개개인의 일상의 음울이 고드름에 위태롭게 매달리다 목덜미에 떨어진 물방울처럼 차갑다. ‘나’와 나와 잠깐 함께 사는 거북(동거녀), 비 오는 날이면 슈퍼를 닫고 무작정 떠나는 중년의 사내 일명 부코스키와 왕따 소년 민호가 주요인물의 전부다. 대학 선후배 사이인 나와 거북이 취업전선과 나른한 일상을 무던히 견뎌내고 있던 중 부코스키가 등장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들의 삶에 부코스키를 동참시킨다. 부코스키의 정체를 알아내려는 목적은 시간이 흐를수록 흐려지고, 그를 미행하는 행위는 일상이 되어간다. 반복된 일상에 활력이 되어주던 부코스키는 또다른 부코스키를 쫓고 있고, 나 또한 누군가의 부코스키가 되어 서울을 걷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나, 수많은 ‘나’가 쫓고 있는 것은 검은 우산만큼의 영역인지도 모르겠다.
|
|
중고등학교를 지나 대학교에 다닐 때까지 소설을 썼었다. 물론 드러낼 수준은 아니지만 아주 진지하게 소설가를 꿈꿨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대부분 나의 유년시절 경험담 혹은 주위 이야기로 써내려간 그것들. 주위 소설가들의 초기작을 읽어보면, 대부분 작가의 유년시절을 더듬은 성장소설이거나 현재 자신의 위치에서 바라본 세태소설이 대부분이다. 하여 글쓴다고 하면 으레 자기 이야기가 그 출발점인 것이다.
한재호란 신인 작가의 소설. '부코스키가 간다'. 제2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이란 타이틀로 내게 전해졌다. 좋아하는 디자이너인 오진경 선생의 표지 디자인인데, 아주 직관적인 상황 표현과 강렬한 검은색 우산이 도드라진다. 소설이 담고 있는 단순한 플롯을 단번에 잡아낸 표지다. 각설하고, 한재호 작가는 젊다. 내동생보다 어리다보니 요즘 젊은 작가들의 생각은 어떤지, 어떤 감수성으로, 문장으로 써내려갔을 지 자못 궁금했다.
대학을 졸업한 지 3년째인 백수. 우연히 대학동기의 결혼 파티장을 찾는다. 쓸데없는 이야기들이 부유하는 곳에서 적당히 분위기 맞춰 술에 취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자신의 자취방에서 함께 누워자고 있는 여자 후배. 거북이를 닮은 얄미운 그녀와 동거를 시작한다. 그는 우연히 들른 허름한 식당에서 '부코스키'에 대한 얘기를 듣는다. 수퍼마켓 주인인데, 비만 오면 문을 닫고 여기저기를 떠돈다는 것. 이후 거북이와 함께 부코스키를 미행하기 시작한다. 그 미행은 끝까지 계속된다.
심사평에서도 20~30대 청년실업자 혹은 구직자들의 일상, 그 세태를 잘드러낸 작품이라 평가한다. 글쎄다. 창비문학상을 받을 정도의 소설일까? 우선 '레이먼드 챈들러와 찰스 부코우스키 등을 읽으며 빈틈과 군더더기가 뒤섞인 소설을 구상했다'고 밝힌 작가 한재호. 수상소감 또한 지극히 상투적이다. 광화문 스타벅스에서 3년동안 길을 오가며 썼던 소설이라고 하니 소설 자체의 영향일까? 밋밋하면서도 뭔가 묘한 매력이 있다.
또 하나, 동국대 국문과 출신. 뭐 출신 성분을 따지자는 얘기가 아니라, 동국대 일대는(압생트님도 잘 아시겠지만) 나의 뒷마당이다. 정문은 물론 후문과 그 후문으로 이어지는 충무로, 대한극장, 청계천과 종로 등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공간적인 이미지가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생동감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약 3시간만에 책 한권을 몰입해서 읽었으니 말이다.
부코스키를 미행하는 나를 언제부턴가 미행하기 시작한 또 다른 녀석이 등장한다. 하릴없이 떠돌기만 하는 지루한 미행. 매일 이력서를 고치고, 자고, 담배를 피우며 하릴없이 일상을 보내는 백수의 삶과 다를 바가 없다. 또한 백수이기에 '비만 오면 문을 닫고 거리를 헤매는 부코스키'에 흥미를 가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코스키는 정말 원래부터 존재하던 부코스키일까? 나를 미행하는 또다른 녀석을 확인하며, 결국 부코스키는 없는 건 아닐까란 생각을 했다. 부코스키를 미행하는 또다른 부코스키와 또또 다른 부코스키들만 있을 뿐. 그렇게 따지면 미행하는 사람들은 모두 부코스키를 미행하는 사람들이리라.
단순한 플롯을 흡입력 있게 이끌어간 작가의 솜씨는 인정한다. 다만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ㅅ이 된소리로 표현되어 있다. 써비스, 메씨지, 쎅스... 무미건조한 일상을 부정하는 아우성으로 보면 될까? 이래나 저래나 의미는 맞으니 말이다. 또 하나 디자인 회사에 대한 작가(주인공)의 생각에 살짝 흥분했다.
'꼴에 홍대라고, 걷다보니 디자인회사가 자주 눈에 띄었다. 하나같이 코딱지만했지만, 개중엔 그럭저럭 탄탄한 곳도 있지 않을까. 다음엔 저런 종류의 회사에도 이력서를 던져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딱히 이유랄 건 없었다. 왠지 만만해 보였달까.'
나도 홍대 근처 디자인 회사에 근무한 적이 있다. 많은 회사가 난립한 건 맞지만, 그렇게 호락호락 지원해서 버틸 수 있는 회사는 아니다. 늘상 얘길 하지만 골수를 빨리고, 영혼을 내다팔아야 하는 치열한 삶의 터전이다. 만만해 보인다는 말에, 울컥했다. 그러니 백수로 그렇게 살아가는 거겠지.란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워가며 말이다. 아무튼 '나비문학상' 이벤트에 언제 참여했는지 모르겠으나, 작가의 친필사인과 함께 내게 선물로 보내졌다. 어쩌면 백수의 몸부림 끝에 사업을 시작하는 내게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자 한 건 아닐까? 목표없이 부유하는 부코스키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뭔가를 말이다. |
|
학교 도서관에서 친구가 빌려온 것을 얼른 가로체서 읽어버렸다^^*
매일 비가 아침부터 내리면, 자신의 가게인, 보장슈퍼의 문을 닫고 어디론가 떠나버리는 부코스키..
이러한 부코스키를 신기하게여겨, 뭔가를 알아내기위해 매일같이 그를 쫓아다니는 주인공과, 그의 여자친구 거북이.
결국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채, 그냥 평상시처럼 미행을 하다 끝이나버린.... 결말이 다소 허무한 이야기 였다.
주인공과 거북이가 매일같이 이력서를 작성하고 면접을 보지만, 매번 떨어지고... 이래서, 이 책이 청년실업의 문제를 다룬 책인가보다^^*
나도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게 될때.. 이들처럼 되지는 않을련지.....ㅜㅜ 걱정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 |
|
블로그 활동을 시작한 이후 처음 이벤트에 응모하여 받은 작품이다. 생각해보니, 참 오랜만에 책 선물을 받았다. 마침 주문했던 책들도 모두 읽었고, 이번 달에 읽을 책을 주문하려던 참이었는데 잘 되었다. 그렇게 기분 좋은 마음으로 책을 들었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역시 작품을 꿰뚫어 보는 시각이란 보는 사람의 수준이나 시야에 따라 큰 차이가 나는 듯 하다. 내가 받아들이기에 작품은,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그저 백수의 미행이야기에 약간의 추리적 요소가 가미된 특이한 이야기였다. 조금 더 생각해 볼 시간을 갖지 않았던 것이 실수였을까? 바로 작품 해설을 읽어버린 데 대한 후회 아닌 후회의 찝찔함이 가시질 않는다.
아! 그렇게도 볼 수 있구나! 아! 그런 의미가 담겨 있구나! 아휴~ 다시 읽어보고 싶네. 하는 마음들을 뒤로하고 리뷰를 적는다.
너무 이야기와 인물, 사건에만 열중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조금 더 솔직하게, 상을 받을만한 작품인가 하는 의구심이 읽는 내내 들었다. 작품 해설과 심사평을 읽은 후에는 스스로가 조금 부끄럽더라. |
|
구경미 작가의 『키위새 날다』를 읽다, 도대체 이 작가는 누군가 싶어 검색을 해봤다. 72년생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놀랐고, ‘백수문학’의 대표작가라는 작가에 대한 소개에 씁쓸해졌다. ‘백수문학’이라는 게 있구나. 그런가 보다. 청년실업 인구가 점점 늘어나는 상황이다보니 백수문학이니 백수소설이니 하는 것들도 소설의 한 장르처럼 구축되고 있다. 그리고 21세기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세태소설’이 되고 말았다. 한재호의 『부코스키가 간다』도 형식적 측면에서 보자면 백수문학 혹은 백수소설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이제껏 보아왔던 구경미나 김경욱의 작품과는 궤를 달리 한다. 뭐랄까? 무색무취무미하다. 존재 자체가 희미하거나 혹은 투명하다. ‘아니, 뭐 이런.’ 당혹스럽다. 그러나 어쩌면 이것이 한재호가 경험한, 혹은 표현하고 싶었던 서울을 살아가는 서른의 취업준비생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만약 의도된 것이라면 그는 성공했다. 작품은 시종일관 어깨에 힘을 빼고 어슬렁거린다. 무릎까지 오는 반바지 혹은 트레이닝 복에 삼선 슬리퍼를 끌고 집앞에 있는 슈퍼라도 가는 차림으로 서울 시내를 어슬렁거린다. 형식적으로 보자면 ‘미행’이 주요 소재이므로 긴장감이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슬리퍼를 질질 끌고 어슬렁거리니 애초에 긴장감 같은 게 있을리 없다. 동네 골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강아지처럼, 애초게 목에 개줄이 걸려 있지도 않다. 그냥 가고 싶은 대로 가고 오고 싶은 대로 온다. ‘아니, 뭐 이런.’ 비오는 날만 미행 혹은 추적이 이루어진다. 비오는 날이 배경이라고 해서 뭔가 낭만적이거나 향수를 자극하지도 않는다. 거리에선 ‘비오는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이라는 노래가 한 번이라도 들릴 법 하건만, 그의 소설속에서는 모든 소리가 사라져 있다. 무성영화 속 주인공들을 보고 있는 것 같다. 혹은 ‘Mute’된 화면을 보고 있는 것 같던지. 그런데 그 화면도 매우 단조롭다. 뭔가 있겠지, 뭔가 있겠지 싶은데, 동일한 화면을 반복하여 재생하듯 시종일관 비슷비슷하다. ‘아니, 뭐 이런.’ 내가 이 작품을 읽으며 당황스러웠던 건 기존의 문학에 대한 어떤 개념이나 믿음에서 시종일관 미끄러지고 있기 때문이었나 보다. 그런데 그게 작가의 의도로 보이지는 않는다. 보기 좋게 배신당했다기보다는 뭔가 좀 뒤끝이 씁쓸하다. ‘이건 뭐지?’ 심사위원들은 "우리 시대의 첨예한 사회적 현안 가운데 하나인 청년실업 문제를 재기 발랄한 착상과 경쾌한 어조로 그려낸 작품"이라고 평가하고 있는데, 나는 정말 모르겠다. 도대체 어디가 어떻게 재기발랄하고 경쾌하다는 건지. 쫓고 쫓기는 자들이 쓰고 다니는 검은 우산이 작품의 지배적인 분위기인 이 소설을 어떻게 재기발랄하고 경쾌하다고 느낄 수 있는 걸까 ‘우중산책’이라고 낭만적으로 부를 수도 있을 것 같은, 비오는 날마다 반복되는 서울 기행은, 시종일관 밋밋하고 무미하다. 차라리 분노라도 하면 좋을 것을. [덧붙임] 1. 이런 장면이나 표현들은 다소 인상적이다. 조용하지만 여느 때와는 조금 다른 한낮이었다. 어디선가 살살 불어오는 바람에 이따금 커튼이 펄럭거렸다. 이 방엔 에어컨이 없다. 바람이라도 없었더라면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22). 스스로는 잘 모르는 듯했지만, 결국 거북이가 말한 무서움이란 그런 게 아니었을까.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왜 나랑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을 쫓아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 뭐 그런 식의 맥빠짐(59). 나나 내 친구들은 대학을 졸업한지 이삼년이 지났지만 대부분 직장이 없는 처지였다. 온종일 집에서 인터넷을 떠돌며 잠을 청하거나 도서관에서 졸고 있거나, 둘 중 하나였다. 설령 직장을 가졌다고 해도 잠시 땡볕을 피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여름은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63-64). 늘 그렇듯 이런저런 페이지를 돌아다니는 사이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다. 한때는 이런 식이라면 평생 검색만 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누군가는 인터넷만 돌아다녀도 그것도 공부고 여행이라 말했다는데, 아예 인터넷이 생활이 되어버린 지금에야 시대착오적인 말이 돼버렸을지언정 어느정도는 공감이 가는 게 사실이었다(68). 언제나처럼 2호선은 녹색과 어울리지 않게 음울하고 혼잡했지만(110), “네, 근데 그 세대론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네요? 여기 보면……” 거북이는 모니터를 가리켰다. “팔십팔만원 세대론은 서구에서 유행한 신좌파이론의 재탕 삼탕으로 요즘 세대의 실제와는 동떨어진 면이 많다. 사실 현재의 젊은 세대는 개인적인 꿈이나 여가 따위에 그다지 애착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통념과는 달리 이전보다 가족이나 사랑 따위의 고루한 가치에 더욱 비중을 두는 걸로 분석된다. (후략)” (116) “왜 그렇게 매사 지겨워해요? 촌스럽게.” (116) “여름의 거리는 어디나 똑같아요. 직접 다녀보면 알게 되죠. 어디나 다 잘 흘러간다고 할까? 덥다 덥다 말은 많으면서도, 덥다고 다 멈춰서서 헉헉대고 있는 건 아니랄까요?” (139) 나는 시간을 견디기 위해 이력서를 썼다(180).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퍼즐이 맞아가긴 하는 건지, 내가 뭘 기다리는지 나도 알 수 없었다(182). 2. 책날개에 있는 작가 사진은 백가흠의 작품이다. 둘은 무슨 관계일까? 소설보다는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한 부분.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부코스키를 쫓는 ‘나’처럼. 3. 작가는 레이먼드 첸들러나 찰스 부코우스키 등을 읽으며 ‘빈틈과 군더더기가 뒤섞인’ 소설을 구성했단다. ‘부코스키가 간다’라는 작명도 ‘찰스 부코우스키’에서 따온 거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 대한 허전함을 메우기 위해(독자인 내가 이 작품을 읽고 허전함을 느꼈다면 이 역시 작가의 의도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으려나? 빈틈이 있는 소설을 쓴 거니깐) 조만간 찰스 부코우스키의 『팩토텀』을 읽어야겠다. 아마도 이 소설까지 다 읽은 이후에야 『부코스키가 간다』 읽기는 ‘제대로’ 종결되지 않을까 싶다. 4. 작가는 왜 쌍시옷을 강조할까. 이를 테면 ‘메씨지’, ‘씨멘트’, ‘싸이트.’ |
|
요즘의 현실은 어째 다들 조마조마하고 불안하고 안정이 안 되는 느낌이다. 그래서 뭔가를 악착같이 붙들고 있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안고 우리는 현대를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사실 적게 먹고 적은 걸로 행복하다면 그리 악착을 안 떨어도 될 텐데, 많이 가져야 하고 많아야 행복한 현실이니 현재 가진 걸로는 늘 불안한 것이다. 그래서 더 뭔가에 집착하고 어딘가에 소속되어야 한다.
여기 등장하는 남자가 바로 그런 남자다. 거북이(처럼 얄밉게 생겨서 그런 별명을 얻은)는 그의 여자 친구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이 남자, 백수를 즐기는 것도 아니고 나름 노력도 한다. 열심히 이력서를 준비하고 면접도 보러 다닌다. 하지만 아직 직업을 잡지 못해 졸업한지 좀 됐지만 여전히 학교 근처에 살고 있다. 그러다 우연히 듣게 된 동네의 한 남자에 대한 얘기에 솔깃하게 된다. 물론 거북이의 충동질도 있었다.
‘그것은 근처 주민인 듯한 한 남자에 대한 소문이었는데, 남자의 이름-이라기보다 별명-은 부코스키, 그는 비가 오는 날마다 어디론가 외출한다고 했다.’
왜 부코스키인가에 대한 당위성은 좀 떨어져 보이지만 작품 자체의 내용이 무척 흥미로웠다. 현대 사회에서 백수인 한 인물을 표방해서 리얼리티를 충분히 살렸으면서도 스토리 전개가 기발하고 특이하다. 인간의 외로움, 소통의 부재 그리고 뭔가 해보려는 노력... 상상력이 뛰어나면서도 간단명료한 문체도 상쾌한 작품이다. 복잡하지 않고 편안하게 스토리를 끌어간 점, 그러면서도 경박하거나 가볍지 않은 주제로 잘 끌어간 멋진 작품이다.
실업자이다 보면 직업을 갖는 것만이 최고의 목표가 된다. 나머지는 전혀 의미가 없어진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 대척점에 의미 없(어보이)는 일상에 더 큰 자리를 준다. 그건 비오는 날만 되면 수퍼를 닫고 우산을 쓰고 아무데나(!) 걸어 다니는 그 일명 부코스키를 따라다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다가 아니다. 그 뒤를 이어...
이 작품은, 이 작품이 품고 있는 건 어쩌면 어쩔 수 없이 ‘서른 살 소년’으로밖에 살아갈 수 없게 만드는 이 세상에 대한 반항처럼 보인다. 나도 똑같이 남들처럼 살아가려고 노력하지만, 그래야 어딘가에 소속되지만, 그 안에서의 고독과 외로움은 어쩌면 아웃사이더로서 느끼는 그것보다 더 클지도 모르지 않는가. 아웃사이더가 더 많은 이 사회, 그 아웃사이더도 할 일이 있고 할 말이 있고 나름의 삶이 있다.
하루쯤은 나도 비가 오는 날, 부코스키가 우산을 들고 길을 나서면 그 뒤를 따라가 보고 싶다. 그게 자장면을 먹으러 간 것이든, 산본의 어느 벤치이든 말이다. |
|
20대 취업준비군 젊은이들을 수식하는 무수한 단어들은 더 이상 낯설지도, 익살스럽게 들리지도 않는다. 이 거대한, 시스템의 저편에 도사리는 일련의 소외된 계층에 의해 주도적으로 번지는 암울한 공감대가 날로 공고해져만 간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빠져나가는 것과 비슷한 확률로 탈출과 비상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합류하고 추락하는 세 또한 줄어드는 일 없으니, 그들을 한숨과 우스갯소리의 영역에서 종종 확인하는 일은 필수불가결한 숨구멍 같기도 하다.
레이먼드 챈들러와 찰스 부코우스키를 모범 삼았다는 작가의 프로필은『부코스키가 간다』의 가장 친절한, 그리고 유일한 가이드라인이 되어주었다. 추적과 불모. '부코스키'를 따라, 백수가 걷는 도시 여정은 추적과 불모의 응축된 시공의 한 단면이다. 무엇하나 심각할 것 없으며, 누구라도 동참가능하고, 기원을 묻는 것은 게임의 룰이 아니며, 전임과 후임이 도시전설에 필요한 만큼만 자생되는, 맨 체이싱 게임에 동참하고자 하는 이들은 진지함과 경박함 속을 누비며 일상의 누추한 모험을 지속한다.
친구의 결혼식이나 취직소식에 무덤덤한 축하를 하고, 지속적인 응모와 짜깁기 매뉴얼로 응시원서를 쓰고, 불쑥 굴러들어온 대로 그렇게 나가버릴게 빤한 같은 처지(구직)의 후배('거북이')와 동거를 하고, 도시의 외진 구석까지 흘러들어온 '부코스키 전설(비가 오면 아침 9시에 슈퍼를 닫고 어딘가로 향하는 '부코스키'라고 불리는 특정인)'에 주춤주춤 동승하는 '나'는 소설적 주인공이 되기엔 한 없이 부족하고, 그가 겪는 도시괴담조차 일상의 또 다른 연장선상이나 다름없다. 백수적인, 너무나 백수적인 백수문학의 현장을 가감 없이 전달하는 최상의 설정인 셈이다.
비가 오면 슈퍼의 문을 닫고, 검은 우산을 받쳐 쓴 채 하염없이 도시를 헤매는 부코스키를, 마지못해 한다는 식으로 미행을 일삼다가 우연히, 우연이 아님을 발견하는 사소함 속에는, 냉혹한 도시의 생존법칙이 고스란히 숨겨져 있다. 심심풀이 삼아 이 입 저 입으로 퍼져나가며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태도로 흘려듣는 듯하지만, 꼭 다음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부코스키를 쫓는 나, 그런 나를 쫓는 후임자에게로, 비 오는 날 하릴없이 도시를 쏘다니는 이를 추적하는 사소한 모험이 대물림된다. 이것은 부코스키 또한 전임 부코스키를 쫓았던 것에 불과했다는, 실상을 알고 나면 식상하기 이를 때 없는 도시전설의 실체와도 같다.
기약 없는 이력서, 유명무실한 자기소개서를 쓰는 행위나, 시작이 언제인지도 모를 부코스키의 추적게임이나 지극히 비생산적인데도 끊지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도시 곳곳에 산재해있는 '30살 소년'들이 썩 다를 바 없는 사연들을 공유하며, 타인과의 단절과 소통부재에 시달리다 못해 희미해져가는 나날들에 대한 보고서라고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나'와 가장 그럴 듯한 대화를 나누는 등장인물은 수상쩍은 사연으로 동거하게 된 '거북이'도 아니고, 포장마차, 지하철 등에서 부코스키 전설을 소모적으로 나누게 되는 타인들도 아니고, 동네 놀이터에서 만난 왕따 초등학생인 것이 참으로 씁쓸하다.
거대한 청년실업군, 백수들의 자화상을 목도하기 위해 백수적 일상을 타박타박 따라 걸었다. '좀비 같은' 출근행렬 속에 합류하는 것이 최종목적일 테지만 어설픈 미행으로 보내는 치기어린 하루, 또 하루의 무의미한 축척을 확인하는 난망함. "할 일 없으면 뭐라도 해요. 쓸데없는 짓 말고요. 그래도 밥벌이는 해야죠."라는 타박을 들어도 어쩔 수 없고, 왕따 초등학생한테 왠지 말이 잘 통한다는 칭찬의 말을 들어도 떨떠름할 뿐. 실체 없는 음모론 마냥 부코스키를 쫓는 30살 소년군상들 그 자체가 도심 속에 뿌리박힌 괴담의 몸통이다. |
|
다 읽고 나도 물음표 열개쯤 찍게 되는 난감한 작품이다.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이라 책의 마지막에 해설과 심사평이 있었으니 망정이지 그마저 아니었다면 그전 난감해하고 말았을 작품이다. 아무리 요즘 작품들이 열린 결말이 대세라지만 이렇게 배려없는 작품을 받아들일만큼 난 아직 열려있지 못한 독자다. 해설을 읽고 나서야 알았지만 이런 소설을 백수소설이라고 하단다. 백수를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다룬 백수소설. 대학을 졸업하고도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 받아주지도 않을 이력서만 주구장창 써대면서 취업을 위한 그 이상의 노력도 그 이하의 노력도 하지 않는 백수들. 그들이 잘못인지 사회가 잘못인지 그 어떠한 비판도 없이 그저 백수들의 일상의 지루함에 평범한 동네 주민의 기이한 행동을 캐고자 비오는날의 미행이라는 비일상적이고 비상식적인 행위를 끼워넣음으로 백수들의 지루함에 변화를 주고자 했지만 별로 여의치 않았던 듯 보인다.
이력서를 쓰는 것 이외에 별다른 노력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두 남녀의 기이한 동거에서부터 별 발전없는 사고의 연속까지..이 시대에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을 갖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지만 아직 취업을 하지 못한 백수라고는 부르기 민망해지는 그들은 소설 속 남녀를 어떻게 생각할까. '백수'라는 단어를 무릎나온 추리닝에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동네에서 담배나 피워대는 사람들로 정의할 때는 이미 지나지 않았을까. 작품 해설만 다섯번쯤 읽어봐도 도저히 해설에 세뇌당할 수 없는 그런 작품이다. |
|
나는 재미있게 읽었는데 다른 분들 평점은 그리 좋지는 않은가보다. 아마도 호불호가 분명한 소설이 아닐지. 어쩌면 "해답"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고 단순한 플롯이 지루할 수도 있겠고 "그래서?"라는 의문이 남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내가 좋은 평가를 내린 이유는, 그 부코스키나 "나"라는 인물이나 모두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이 아닐까...하는 생각 때문. 제2회 창비장편소설 수상작이다. 그만큼 실험 정신이 돋보이고 다양한 시도를 한 듯 보인다. 신인이란 타이틀은 바로 그런 시도들이 모이는 것이 아닐까. 소설 속에는 잡코리아나 gs25 같은 브랜드 이름이 직접 등장하고 있어 무척이나 현실적이 느낌을 받았다. 때문에 이 쫓고 쫓기는 이들의 미스테리한 게임이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 나 자신의 문제로 보였을지도. "나"는 현재 백수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취업 준비생. 매일 늦게 일어나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고 이력서를 쓰고 자기소개서를 짜깁기 한 다음 할 일 없는 하루를 보낸다. 면접에 가서도 열정적이지 않은 대화를 나누고 붙어도 그만, 떨어져도 그만, 이라는 생각이 가득하다. 아마도 "나"는 수없이 많은 면접을 봤고 많은 실패를 경험한 것 같다. 이런 삶에 상당히 오랜 시간 적응이 된 것이다. 변화는 그런 일상 중에 일어났다. 동기생들과의 술자리에서 함께 집으로 온 한 여자 후배. 그리고 제육볶음을 먹으며 우연히 들은 "비만 오면 오디론가 외출한다는 부코스키"에 대한 소문. 시작은 일상의 무료함을 벗어나기 위해서였는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 "나"는 쫓고 쫓기고 누군가를 만나고 이야기하는 동안 그 모든 것이 반복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렇다. 삶이란 돌고 도는 쳇바퀴의 한 부분에서 열심히 뛰고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깨달음을 얻는다. 아무리 벗어나려 해봤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자리에서 열심히 뛰는 것 뿐. 매일이 똑같다고 불평해봤자 돌아오는 것은 후회와 절망 뿐이다. 부코스키가 왜 외출하느냐가 중요할까. 매일 취업 준비를 하고 노력을 해도 돌아오는 답변이 시원치 않은 매너리즘에 빠져 허우적대는 이 사회의 수많은 젊은이들은 부코스키를 따라가며 어떤 생각을 할까. "우리가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는 건가?"...77p "과연 준비하고 또 준비하면 손에 쥘 수 있을까."...161P 작가는 부코스키와 나, 나를 쫓는 누군가를 통해... 나와 50대 중반의 남자, 나와 민호와의 만남을 통해 삶은 그렇게 계속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대의 그런 시간조차 그대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음을. 고민하고 걱정하는 그 순간에도. 소설 속 "나"가 [꽃집에서]라는 시에 반응하듯 나도 왠지 그 시에 깊이 감응한다. "해야 할 일이란 그토록 많아" ... 그래, 내가 잠깐 멈춰 서 있는 동안에도 해야 할 일은 정말 많지만... 그 멈춰 있는 시간조차 내게는 도움이 되리라 그렇게 믿는다. 그리고 그 쉼을 자양분삼아 또 앞으로 나아가야겠지. 삶이란, 그런 게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