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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통섭' 또는 '융합'이 유행이다. 통상적인 학문 구분에서의 학문들이 서로 교류하면서 학제 간 연구를 하고, 학문의 벽을 허물어서 통합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시도이다. 학계에서는 물론, 최근 학교 교육에서도 이러한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대학에서도 수학, 과학에 관심이 많은 문과생, 인문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이과생을 뽑고 싶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 통상적인 교과목 중심의 수업 및 평가에 익숙한 분위기, 문이과의 경직된 구분 등의 이유로, 실제적인 통섭이나 융합 교육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21세기 정보화 시대에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면서 통섭 또는 융합적 사고를 하는 인재가 요구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에, 이쪽에 관심을 가져야 할 사명감이 있었다. 지리 교과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이 어떤 것이 있을지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이 책과 저자를 알게 되었다. 책 제목은 '열대'가 들어가 있어서, 열대지역의 지리적 특징에 대한 책인 것 같기도 하고, '서구'란 말이 들어가서 서구에 대한 철학적, 역사적 사유에 대한 책인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저자는 정작 자연과학인 의학을 전공한 교수이다. 아주대 의대 교수인 저자는 '열대학 연구소'의 소장이라고 한다. 저자의 특이한 이력에 관심이 갔고, YES24에서는 절판으로 구매할 수가 없어 다른 사이트에서 구매했다. 저자는 지리적 공간인 '열대'에 관심이 많은 의학자이다. 저자의 관심은 유럽이 열대를 만나게 된 시대부터 시작한다. 통상적인 열대에 대한 접근은, 근대화되고 우월한 유럽 문명이 열대 지역의 여러 비문명화된 지역을 지배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서술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통상적인 접근을 타파한다. 유럽의 근대성이라는 것은 원래부터 유럽에서 기원한 것이 아니라, 유럽이 열대를 만나면서 상호작용을 통해서 구성된 것이라고 본다. 거칠게 얘기하면, 유럽은 원래부터 우월했던 것이 아니라, 열대를 만나서 식민지로 만들어가는 시행착오를 거친 뒤인 19세기 후반에서야 우월해지게 되었다는 말이다. 르네상스 이후에 근대를 발견하고 찬란한 문명을 발전시켜 주변지역인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을 지배했다고 서술하는 기존 서구 중심의 지리 인식, 세계사에서는 접하기 힘든 관점이어서 관심이 갔다. 특히 열대를 직접 접한 게 아니라, 서구를 거쳐서 2차적으로 인식해 온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신선하다.
<훔볼트의 대륙 : 남아메리카의 발명자, 훔볼트의 남미 견문록> 리뷰 : http://blog.yes24.com/blog/blogMain.aspx?blogid=rheb320&artSeqNo=7738386 유럽인들이 처음부터 열대를 비문명권으로 인식한 것은 아니었다. 열대의 풍토를 종교적 이상향, 에덴동산으로 접근하는 유럽인들도 많았다. 훔볼트, 린네 등 열대의 화려하고 수많은 동식물상에 감탄하면서 박물학 연구를 해 온 학자들도 많았다. 열대에서 만난 질병에 대해서 열대문명권 고유의 치료법을 연구하여 극복하려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곳을 식민지로 만들어야 하는 사명감에 빠진 이들은, 식민지로 만들 때 부딛친 장벽인 열대의 질병을 반드시 정복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빠졌다. 식민지배를 위해 건너간 유럽인들이 죽어가자, 이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열대의 풍토(기후, 식생, 토양, 지형, 문화 등 지리적 총체)를 연구하여 질병의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의료지리학'의 연구가 19세기에 본격적으로 진행되었고, 이 과정에서 유럽의 의학기술이 급속하게 발전하고 위생이 개선되었다. 나아가 유럽인들은 이러한 자신들의 우월한 과학기술로서 열대를 식민지로 만들어 나갔고, 이 과정에서 과학기술을 넘어서 이념적, 사상적 지배체계를 만들어낸다. 질병이 많은 곳에서 살아가는 아시아인, 아프리카인 등의 인종적 열등성, 이에 대비되어 열대 질병이 없는 풍토에 살아가는 유럽인들의 인종적 우월성이 핵심이다. 이러한 인종주의적 시선은 유럽이 열대를 만나서 의료기술을 발전시키고, 식민지배를 위한 이데올로기를 만들어가는 연장선이었다. 지리적 특성과 피부색을 연결시키고 이를 문명의 발달수준과 매치하여, 우월한 유럽인(문명)-열등한 열대인(문명)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 말이다. 암흑의 대륙 아프리카, 게으른 아시아인들 등의 '상상의 지리'가 형성되는 것이 다 이 시기였다. 저자는 이러한 사상적 전환점을 19세기 후반, 1870년 경으로 보고 있다. 의료기술의 발달과 인종주의, 사회진화론 등이 연결된다는 저자의 이야기는 흥미를 끌었다. ![]() 호지스, 마타바이 만의 두 선박(1776)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a/af/Hodges,_Resolution_and_Adventure_in_Matavai_Bay.jpg ![]() 고갱, 언제 결혼하세요(1892) http://m.blog.daum.net/_blog/_m/articleView.do?blogid=0JjA7&articleno=2799103 두 미술작품은 같은 장소인 타히티의 풍경을 그렸지만, 타히티 인의 피부색이 차이가 크다. 그 원인은 유럽인들의 열대에 대한 시선 변화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가 얘기한 1870년대를 기준으로 유럽인들이 열대의 피부색을 열등한 것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근대적 삶은 서구의 위생 관념, 발달한 서구 의료기술에 기원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근대적 삶의 기원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 역사적 기원을 추적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특정 분야의 학문적 논의가 다른 분야까지 영향을 주는 과정에 대해서 학문적 관심이 갔다. 자연과학을 공부한 저자의 인문학적 사유와 문제제기는 진정한 학문적 통섭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의료지리학이라는 분야에도 관심이 갔다. 저자는 수많은 참고문헌을 활용하여 논의를 전개해 나간다. 300페이지도 되지 않는 비교적 얇은 책에서 참고문헌 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커서 놀라울 정도이다. 책의 두께는 얇지만 책이 시사하는 이야기는 의미가 크다. 이 책을 통해서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만남을 모색해 보고, 또 서양과 동양의 관계맺음에 대한 고민도 해 보면 좋을 것이다. 한편 저자의 이 책이 출간된지 오래 되어, YES24에서 절판이다. 저자의 다른 저서들은 몇 권이 검색이 되지만 이 책에서 조금 심화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책과 관련한 이야기를 더 보고 싶으면 아래 링크로 들어가면 많은 글들이 있다. 열대 전문가 이종찬 교수의 '열대, 서구를 만들다' http://banni.interpark.com/column/list.html?webzine_person_seqno=40§ion=2&choice_desc=regd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