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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고양이'는 어린이용으로 나온 책으로만 읽어봤었다. 성인용인 이 책과 비교해보니, 어린이용은 지나치게 잔혹한 장면을 편집해내고 만든 거였다. 애초부터 어린이용이 아닌 충격적 내용이기에 편집된 책을 읽고도 으스스하고 기괴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졌었지만, 본 내용이 모두 수록되어 있는 이 책은 한층 더하다. 공포를 극대화시킨 듯한 그림과 더불어 짧은 분량 안에 인간의 추악함과 어리석음, 잔인함이 모두 녹아 있다. 어쩌면 현대사회의 일면이기도 하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고양이를 괴롭히는 방법은 현실 속에서도 일어난다. 러시안블루 종의 고양이의 목을 조르고 매달며 괴롭히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왔던 적이 있고, 아기고양이를 불태워 죽이는 사진이 돌아다닌 적도 있다. 에드거 앨런 포는 상상 속에서 인간의 잔혹함과 악한 면을 극대화하여 드러냈지만, 현실 속에서 힘없는 동물들을 상대로 가해지는 고문과 폭행을 보면 소설을 보고 무섭다고 하기가 부끄러워지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이 책에는 '검은 고양이' 외에도 '저승과 진자', '때 이른 매장'의 두 단편이 더 실려 있다. 공포 3부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나머지 소설도 그로테스크하고 음침한 분위기이다. 그러나, 무력한 상태에서 가해지는 폭력, 시시각각 조여드는 죽음의 공포로 몸이 오싹해지는 '저승과 진자'나, 죽은 것으로 잘못 판명되어 산 채로 매장당한 이야기를 그린 '때 이른 매장'은 모두 해피엔드로 끝난다. 애간장이 졸아들다 끝에 가서야 편해짐을 느끼는 경험도 나름 괜찮았는데, 책의 문장 하나하나를 실감나게 읽을수록 후에 만나는 안도의 한숨이 주는 후련함도 그만큼 클 것이다. 어찌 보면 '검은 고양이'도 고양이 입장에서는 해피엔드와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적어도 목숨을 구했고, 여주인의 복수도 해주었으니까.
포의 작품은 내용도 충격적이지만, 그 내용을 고급스럽게 빛내주는 문장력과 구성력에 더 점수를 주고 싶다. '저승과 진자'는 주인공과 감정을 동일시하여 읽다 보면 그 탈출구 없는 괴로움이 내 일인양 매우 실감나게 읽혀지고, '검은 고양이'는 작품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분위기가 기괴하고 음산하여 오싹함까지 든다. 만약 같은 내용을 다른 작가가 쓴다면, 애드거 앨런 포만큼 조여드는 긴장감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을 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개성과 잘 맞아떨어지는 '검은 고양이'는 포의 작품일 때 가장 빛나는 소설인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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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봤던 ‘검은 고양이’를 다시 보게 됐다.
좋은 책이다.
글도 좋고 그림도 좋다. 퀄리티가 있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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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 때 '검은 고양이'를 처음 읽었는데 어찌나 공포였고 무서웠던지 며칠 동안은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였다. 더구나 그 당시 단독주택에 살고 있었는데, 소설 속에 등장하는 곳과 비슷한 어두컴컴한 지하실도 있었고 담과 담을 넘어 다니던 도둑고양이들이 동네에 천지였다. 소설 속 공포와 내 머릿 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공포는 지하실과 고양이들을 공포의 원천지로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지금도 새끼 고양이든 아주 우아한 고양이든 모든 고양이들은 나에게 두려움을 준다. 그만큼 그의 작품들은 생생한 느낌을 전해준다. 주인공들이 겪게 되는 극한의 공포와 죄의식, 삶에 대한 열망,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읽는 이로 하여금 고스란히 함께 느끼게 하는 힘이 있다.
에드거 앨런 포를 처음 만나게 해준 '검은 고양이'의 소설 속 이미지는 선명하게 각인되었고 그 뒤 그의 작품들을 연이어 만나게 되면서 그의 작품 속 음울하고 괴기스러운 이야기들 속에 빠져들게 되었다. 특히 '검은 고양이'와 함께 '어셔 가의 몰락', '고자질하는 심장'은 생생한 이미지로 나에게 남게 된다. 그의 삶이 고난과 슬픔의 연속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의 작품들은 작가의 슬프고 혼란스러웠던 내면을 엿보는 것 같아 마음이 스산해지고 슬퍼진다.
'검은 고양이' 에는 '저승과 진자', '때 이른 매장'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저승과 진자'에는 차라리 죽고 싶다고 느낄 정도로 극한의 공포까지 내모는 장면들이 많아 읽는 내내 숨이 차고 가슴이 쿵쾅거린다. '때 이른 매장'에는 산 채로 매장된 사람들의 경험담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보여준다. 두 작품 모두 생과 사를 넘나들면서 인간의 원초적인 생에 대한 열망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들이어서 작가가 생각하는 생과 사에 대한 생각들을 엿볼 수 있다.
아주 오랜만에 다시 읽게 된 '검은 고양이'는 여전히 진한 공포의 감동을 주었고 또 다시 에드거 앨런 포의 놀라운 이야기와 아르헨티나 출신의 루이스 스카파티의 그림을 함께 수록되어 작품의 분위기를 보다 생생하게 보여주어 반가웠다. 좋은 작가의 작품은 세월이 아무리 많이 흘러도 독자들이 느낄 수 있는 감동은 사라지지 않고 더욱 더 빛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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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저씨 천잰데? : <검은 고양이>를 읽고 - 에드거 앨런 포/강미경 역/문학동네/2009(1845)
에드거 엘런 포의 글을 처음으로 읽었다. 에드거 엘런 포의 이름은 많이 들어 보았지만, 세상에 많은 작가가 있는 만큼 그의 이름이 크게 와닿지는 않았었다. 다만 <우울과 몽상>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출간된 두터운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더랬다. 그러던 중 지난 1월 사랑해 마지않는 외화 <슈퍼 내추럴>의 소설버전인 <Supernatural never more>을 읽었는데, 거기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의 발생이 에드거 엘런 포의 소설과 관련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책의 전개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음미하지도 못한채 그저 의아해했다. 그래서 기회가 닿는대로 그의 책들을 읽어보리라 생각했었는데, 다른 책들과는 약간 다른 모양새의 이 책이 인터넷 쇼핑 중 눈에 띄어 주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며칠 전 손에 잡히게 되어 읽었는데 그 내용이 약간 충격적이었다.
뭐랄까- 이 단편집의 글들을 하나의 주제로 묶자면 인간의 편집성이 거창해지면 인간이 어떻게까지 될 수 있는가-정도가 될 것 같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표제작인 <검은 고양이>였는데 인간의 애정이란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 인간의 애정이란 얼마나 가변적인 것인지, 그리하여 인간이란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인지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하여 점점 자기중심적 우주에 빠져들어 끝내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타인을 증오하여 괴롭히고, 끝내는 살인에 이르러서까지 뉘우침을 모르는 더러운 족속.
그것이 바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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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고양이'는 어린 시절의 섬뜩한 책읽기에 대한 기억으로 남겨져 있었다. 어린이용으로 편집한 책이었다는 기억에 이번에 원문을 살려 번역을 했다는 이 책을 펼치며 어떤 느낌을 받을지 스스로 궁금해하고 있었다.
<검은고양이>, <저승과진자>, <때이른매장> 세 편의 단편을 실은 이 책은 한마디로 말하면 하드고어 영화같은 인상을 준다. 특히 앞의 두편이 그렇다. 도끼를 쓰는 끔직한 살생과 낭자한 피에 대한 묘사, 서서히 내려오는 도끼날을 이용한 고문과 독자의 가슴마저 오그라들게 하는 묘사들, 그리고 섬뜩한 일러스트가 효과를 더해 준다.
<검은 고양이>는 인간의 내면에 자리잡은 악에 대한 본능이 일깨워지는 순간 인간이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최고치의 것들을 담고자 작가가 애를 쓴 듯하다. 일단 일깨워진 사악한 본능이 강도를 더해가고, 더불어 완전범죄의 희열이 더욱 범행을 대담하게 하고 급기야 서서히 미쳐가게 되고 스스로의 범죄를 발각시키는데 일조하게 되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검은고양이가 그에게 복수를 한 듯 이야기는 끝나지만 작가가 그리려 한 것은 고양이가 아니라 인간의 악한 본능에 대한 성찰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 저승과 진자>는 극한의 공포에 이르렀을 때 인간이 스스로를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자신의 심장을 가르게 될 도끼날이 서서히 내려오는 것을 직시한 채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죄수는 극도의 공포에 몸을 떨며 미쳐가다가, 스스로 위로하며 자포자기하고 평화로워 지다가. 다시 미친 듯한 공포에 시달리며 상상을 만들어 내는 등 다양한 단계를 거치며 상태가 변화한다.
<때이른 생매장>은 작가가 의학적 보고서처럼 다양한 사례들을 나열한 뒤 자신의 강박증이 가져온 상상의 생매장이야기를 하고 있다.
세편 모두 1인칭 시점을 고수하면서 작가는 최대한 자신의 경험인양 자신의 범행을 털어놓는 양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이야기의 내용이 사뭇 다급하고 박진감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작가의 문장은 조금은 장황하고 현학적이다. 하지만 단편소설 특유의 막바지 반전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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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이나 공포소설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애드거 앨런 포의 받았고 고양이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번에 다시 읽으니 감회가 남달랐다. 마치 에드거 앨런 포 자신의 모습을 비유한 게 아닐까 싶었다. 자신이 저지른 만행이 완전범죄가 될 뻔 하다가 괜한 허세로 인해 범행이 발각되고 마는데 모든 원인이 자신이 아끼던 검은 고양이인 것처럼 얘기하는 화자의 독백이 씁쓸했다. 비좁은 공간에 갖힌 채 점점 다가오는 진자의 칼날의 공포를 그린 '저승과 진자'는 솔직히 확 와닿지는 않았다. 묘사하고 있는 장면들이 잘 연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단편인 '때 이른 매장'은 종종 '진기명기'나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프로그램에서 본 듯한 얘기로 실제로도 사람이 완전히 죽지 않은 상태에서 매장한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그대로 산매장이 되고 만다. 이를 오해해서 시체를 손괴하거나 오욕하는 일도 종종 보고되곤 한다. 이런 일들을 소재로 글을 썼다는 것 자체가 그 당시엔 정말 파격적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의 글들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외롭게 죽는다. 자신이 만든 노래나 글 대로 자신의 인생이 풀리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에드거 앨런 포인 것 같다. 요즘에야 이런 공포, 괴기소설들이 넘쳐 나지만 그 당시에만 해도 낯설고 새로운 장르의 소설이었을 것이다. |